3월 24일부터 인디스페이스에서 반짝다큐페스티발이 개최된다. 단 3일간 열리는 영화제이지만 꽃망울처럼 속은 꽉 차 있다. 출품 공모로 모인 중·단편 분량의 독립다큐멘터리 21편과 특별초청작 5편을 상영하고 ‘지속 가능한 영화제’를 주제로 포럼도 연다. 2020년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잠정 중단을 알린 이후, 다큐멘터리를 보고 함께 이야기 나눌 자리를 그리워했던 이들이라면 눈을 반짝일만한 소식이다. 하지만 반짝다큐페스티발은 단지 그리움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여기엔 인디다큐페스티발을 이어가고 싶은 의지와 더불어 새로운 고민을 같이 시작해보자는 권유의 목소리가 있다. 우리에게 영화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앞으로 어떤 영화제를 만들어가야 할까? 지난해 여름 인디다큐페스티발을 사랑하는 다섯 명의 감독이 모여 마음속에 담아뒀던 질문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진 대화는 반짝이는 영화제의 탄탄한 바탕이 됐다. 이제 이들은 모든 계절을 함께 겪으며 나눈 고민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 한다. 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반짝다큐페스티발 준비모임의 다섯 멤버 김수목, 명소희, 오재형, 조이예환, 최종호를 만났다.
이제 개막이다. 그간 출품, 상영작 선정, 상영 시간표 구성 등을 마쳤는데 지금은 어떤 일이 남아있나.
김수목_ 우선 개막식을 잘 준비하려고 한다. 폐막식에서는 지속 가능한 영화제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포럼을 할 예정이다. 개막을 앞두고 모든 GV에서 수어 통역과 문자 통역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출품요건에도 ‘한글 자막 필수’ 항목이 있다. 접근성을 고민한 결과일 텐데.
오재형_ 모든 영화가 배리어프리로 제작되는 게 가장 이상적일 테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화면 해설을 넣으려면 공부가 필요하고 영화의 구조도 바꿔야 해서 권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한글 자막만 있어도 영화에 대한 접근성은 훨씬 좋아진다. 국제영화제에 출품하려면 영어 자막을 꼭 넣어야 하지 않나. 마찬가지로 출품 조항에 한 줄만 추가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서울인권영화제 심사평을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있어 심사 단계부터 자막을 요청했다. 심사위원이라고 다 비장애인인 건 아니기 때문이다.
조이예환_ 요새 미학적 이유로 영화에 한글 자막을 넣지 않거나 자막을 작게 만드는 경향이 눈에 띄는데, 좀 별로다. 우린 이미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을 통해 한글 자막이 화면을 가리는 걸 익숙하게 여기지 않나. 다큐멘터리에서는 특히 언어가 잘 전달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한글 자막은 필요하다. 미학적인 부분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싶은 거다.
‘60분 이내의 중·단편 다큐멘터리영화’, ‘국내·외 영화제 상영 2회 이하’, ‘작품제작연도 제한 없음’ 등 출품요건의 다른 항목에 대해서도 이유를 설명해주면 좋겠다.
명소희_ 다섯 명이 처음 모였을 때 했던 여러 이야기가 바탕이 됐다. 많은 영화제가 프리미어 때문에 제작연도 제한을 건다. 그러다 보면 시기를 놓치고 상영 기회를 잃는 작품이 생기게 마련이다.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나? 제한을 풀고 더 많은 영화를 만나보자는 취지에 모두 공감했다. 완성도가 높지 않더라도 각자의 의미와 장점, 가치를 지닌 영화들을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런 전제들이 독립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과 연결돼있다고 본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중단되고 코로나를 겪으며 다들 비슷한 고민을 했을 거다.
오재형_ 사람들이 인디다큐페스티발을 그리워하는 이유, 우리가 그걸 계승하려는 이유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요즘에는 영화계가 너무 제작지원 시스템 위주로 돌아가고 큰돈이 없으면 영화를 못 만들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돼있다.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봤던 영화들, 때깔이 좋지 않고 거칠더라도 혼자 열심히 만든 작품들을 볼 자리는 점차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 작품을 발굴해 상영하고 싶었다. 영화제 상영 횟수를 제한하고 출품요건을 중·단편 다큐멘터리로 한정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공모 결과 153편이 출품됐다. 편수가 꽤 많은데 눈에 띄는 흐름이 있던가.
명소희_ 제작연도에 제한을 두지 않았기에 지금의 경향이 어떻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심사하면서 그동안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부지런히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모두 열심히 살았구나 싶더라.
조이예환_ 이제 정말 누구나 영상을 만드는 시대가 됐다는 걸 새삼 느끼는 계기도 됐다. 어떤 작품들은 영화제보다 유튜브에 더 어울려 보였다. 자연히 내가 그 둘을 어떤 기준으로 구분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되더라. 관객들과도 그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한편으론 중·단편만 받은 게 조금 아쉽기도 했다. 고민이 깊은 작품은 많았지만 정말 오랜 시간을 쏟아부은 작품은 드물어 보였다. 예전에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봤던 ‘작은 장편’의 맛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김수목_ 사적인 이야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담담하게 담아낸 작품이 많았다. 다양한 지역의 미디어 센터에서 만들어진 수료작도 여럿 들어왔다. 둘 다 반가운 일이다.
오재형_ 나 역시 수료작으로 영화제에 발을 딛었다. (웃음) 다큐멘터리를 처음 만드는 분들이 이번 영화제를 경험하고 그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출품작 중엔 가족 구성원의 일상이나 역사를 담는 작품이 꽤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소중한 영상이겠지만, 같이 보기에 적합한지 고민하며 심사를 진행했다.
최종호_ 만든 이의 눈이 느껴지는 작품이 많았다. 부족한 제작비 안에서 카메라 한 대로 만든 영화의 매력을 다시 느끼는 시간이었다. 출품작 각각이 지닌 매력이 다양해 심사하며 고민이 깊어지더라.
어떻게 모였는지 궁금하다. 관심사와 작업 방식이 각자 다를 텐데 소개해준다면.
최종호_ 대학에서 방송동아리 활동을 하며 다큐멘터리 제작을 처음 접했다. 이후 학교 측에 의해 여러 동아리가 퇴실당하는 상황을 기록한 <자리>(2015)를 만들었다. 7년 정도 구로FM이라는 마을방송국에서 일했다. 영화 작업과 활동가 업무를 오가며 많은 시너지를 얻었지만, 한편으론 지치기도 해서 올해는 방송국 활동을 쉬기로 했다. 그러던 중 반짝다큐페스티발 참여를 제안받았다. 작업과 병행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오랜만에 다큐멘터리 하는 동료들과 즐겁게 일하는 중이다. 신진 감독들이 모여 작은 상영회, 워크숍 활동을 벌였던 ‘신다모(신나는다큐모임)’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오재형_ 피아노 사랑을 담은 배리어프리 영화 <피아노 프리즘>(2021)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엄마의 생애를 기록한 <양림동 소녀>(2022)를 연출했다. 겨울은 보통 방학 기간이라 놀 때인데 반짝다큐페스티발 일을 덜컥 맡게 돼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주로 홍보물 만들고 SNS 운영하는 일을 한다. 여기서는 ‘오쟁’이라는 이름을 쓴다. 우리는 서로 소희, 수목, 종호, 오쟁 그리고 조이라고 부른다.
김수목_ 노동 이슈에 관심이 많다.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니가 필요해>(2014), 여성 홈리스의 인터뷰를 담은 <그녀들이 있다>(2018), 광화문 촛불 광장 이후를 찍은 <일상의 촛불>(2017) 등을 작업했다. 영상 제작 교육도 하고 있다. 반짝다큐페스티발을 준비하면서 왜 영화제에 사무국이 있어야 하는지 체감 중이다. 집이 사무국처럼 변했다. (웃음)
명소희_ 춘천 소양로라는 공간과 나의 기억, 그리고 외할머니, 엄마, 나 이렇게 세 여성의 삶을 다룬 <방문>(2018)을 만들었다. 이미지가 가진 힘을 좋아하고 내레이션에 관해 많이 고민한다. 내레이션은 나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이면서 관객들과 내가 만나는 장치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다큐멘터리 감독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인디다큐페스티발에 큰 애착이 있다. 영화제가 계속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반짝다큐페스티발 준비를 시작했다. 물론 또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창작자들이 모여 영화제를 만든다는 데서 의미를 찾게 된다.
조이예환_ 중앙대 학생들이 학교 기업재단(두산)을 상대로 벌인 투쟁을 다룬 <사람이 미래다?>(2011)로 작업을 시작했다. 2019년에는 7년간 제작한 인디 록 뮤지션의 삶을 다룬 <불빛 아래서>를 만들었다. 일관성 없어 보이는 주제처럼 그때그때 가장 흥미로운 관심사에 꽂히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대안 배급 활동이나 상영회 개최, 주목받지 못하는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는 등 연출 외에도 여러 일을 해왔다. 연출작을 개봉해보고 프로듀서로서 규모가 큰 작품을 진행하기도 하면서 독립 다큐멘터리 작업에 대한 회의와 고민이 생겼다. 그게 반짝다큐페스티발에 흥미를 갖고 참여하도록 만드는 동력이 아닌가 싶다.
언제부터 반짝다큐페스티발을 기획하고 준비했나.
김수목_ 작년 6월에 김동원 감독, 인디다큐페스티발 변성찬 전 집행위원장, 최민아 전 사무국장, 시네마 달 김일권 대표, 인디스페이스 안소현 국장 등이 모인 자리에서 독립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는 공간이 다시 필요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 역시 그곳에 있었다. 큰돈을 지원받고 엄청난 노력이 들어가는 방식은 부담스러우니 포틀럭 파티나 기획전 같은 형태로 짧고 굵게 시작해보면 좋겠다고 이야기됐다. 7월에 준비모임 구성원이 모였고 영화제 방향과 실무에 관해 이야기하며 지금까지 흘러왔다.
최종호_ 그저 모임에 참여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야기 나누는 과정 자체가 너무 재밌었다. 초기에는 주로 영화제를 다시 여는 이유에 관해 논의했고 그것이 출품요건에 반영됐다. 한편으론 영화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지 않으려면, 어렵게 끌고 가는 방식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준비모임 멤버가 모두 창작자인 데에도 이유도 있나.
김수목_ 6월 초동모임의 중요한 논의 중 하나가 기존에 영화제를 만들어왔던 분들이 다시 비슷한 방식으로 영화제를 꾸리는 것을 지양하자는 거였다. 이제 막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은 젊은 창작자들이 모여서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지길 바란 거다. 인디다큐페스티발도 처음엔 감독들과 제작자들이 모여서 ‘우리의 영화제’를 만드는 느낌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감독들은 게스트로 초대되고 사무국과 자원활동가들이 그들을 맞이하는 방식으로 변해왔다. 초기의 마음을 살려서 감독들이 호스트이자 게스트가 되는 영화제를 다시 만들면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그렇게 다섯 감독이 각자의 고민을 안고 만났다.
오재형_ 처음엔 얘기나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돈 문제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롭고 좋았지.
조이예환_ 확실히 처음부터 영화제 추진 모임 같은 성격은 아니었다. 우리가 진짜로 영화제를 하는구나 하고 느낀 건 얼마 안 된다. 다들 말하는 것처럼 처음 합류했을 땐 부담 없이 만나서 함께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더라.
김수목_ 전화로 의사를 확인하고 한 달 정도 뒤에 오쟁의 사무실에서 처음 모였다. 각자 고민하는 바를 알음알음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함께 얘기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시작하니 너무 재밌고 ‘케미’가 맞는다는 느낌이 딱 들더라. 의견을 나누고 방향을 결정하는 게 어렵고 심각한 일이 될 수 있는데, 우리 회의는 그렇지 않았다. 경청하고 설득하며 의견을 맞춰가는 과정이 참 즐거웠다. 자연스럽게 결정된 사항도 많았고. 회의하러 가는 길이 늘 설렜다. (웃음)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만들어야 했으니 어려움도 컸을 텐데.
조이예환_ 의외로 다들 실무를 너무 잘하더라. 영화만 잘 만드는 사람은 많잖나. 근데 이 정도의 실무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니, 기존에 다큐멘터리 하는 사람들한테서는 그런 걸 못 느껴봤다. 모두에게 정말 고맙다.
최종호_ 처음엔 건방진 생각도 했다. 난 미디어 활동가 일도 해봤고 사무 일도 해봤으니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난 아무것도 모르더라. (웃음) 영화를 만들기만 해온 입장에서 영화제라는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분이 노력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동료 감독들에게 정말 권하고 싶은 경험이다. 무엇보다 덜 외롭다.
명소희_ 우리가 만든 영화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영화제는 필수 불가결한 장소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손으로 영화제를 만드는 건 그렇게 어색한 일도 아니다. 함께 영화제를 꾸려나가면서 우리가 지금 어떤 환경 안에서 작업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됐다.
김수목_ 준비를 잘하고 계획대로 진행한다고 해도 항상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더라. 영화제라는 게 그런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예전에 영화제를 만들었던 선배들의 모습이 많이 떠올랐다.
조이예환_ 선뜻 도와주겠다고 나선 선배들과 주변 분들한테 되게 고맙다. 자기 자원을 흔쾌히 나누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 분들을 보며 독립 다큐멘터리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많이 느꼈다.
김수목_ 일을 진행하며 외부와 연락할 일이 잦은데, 응원을 정말 많이 받는다. 또 6월에 모였던 초동모임 멤버들이 큰 의지가 됐다. 돈 문제를 포함해 우리가 뒤에서 밀어주고 받쳐줄 테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이야기해주었으니까.
‘반짝다큐페스티발’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김수목_ 오쟁의 아이디어였다.
오재형_ 여러 후보가 있었다. ‘입춘다큐페스티발’도 고려했다. (웃음)
조이예환_ 그래서 2월에 열자는 얘기도 있었지.
오재형_ 그러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반짝’에는 물론 반짝인다는 뜻도 있다. 하지만 내년에 영화제가 또 열릴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이번에 반짝 집중해서 즐겨보자는 의미도 있다.
최종호_ 걱정이 많던 시기에 오쟁이 작업한 포스터 디자인을 보고 힘을 많이 받았다. 반짝거리는 순간이었다. (웃음)
출품과 심사를 진행하는 동안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해 새롭게 얻은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가.
조이예환_ 아무래도 돈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나를 포함해서 인디다큐페스티발을 시작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감독들이 꽤 될 거다. 그 이후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잖나. 제작지원에 기대거나 알바를 엄청나게 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제작지원을 받을 만큼 사이즈가 큰 영화들과 다른 결의 작품을 보고 싶어서 반짝다큐페스티발을 연다. 하지만 그다음은? 이런 작품의 지속 가능성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응원밖에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명소희_ 환경 자체가 변해야겠지.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지금 우리가 경쟁을 부추기는 시스템 한 가운데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공적 지원을 받지 않으면 작업을 지속하는 게 정말 어렵다. 제작지원을 받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볼까 싶어서 작년에 알바를 미친 듯이 했다. 정말 죽을 것 같더라. 결국 제작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되는 굴레가 참 답답하다. 이번 영화제가 응원의 의미도 있겠지만, 사람들에게 “이런 영화도 있었잖아” 하고 말을 건넬 수 있는 장이 되면 좋겠다. 그러면 지금의 제작지원 시스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문제 제기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상영하는 감독들이 서로 그런 동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픈 역사가 남긴 흔적을 탐구하고 그것을 다시 영화에 새기는 작업을 주로 해온 신나리 감독 특별전을 진행한다. 상영 기회가 많지 않던 <8부두>(2021), <붉은 곡>(2018), <뼈>(2022)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하다. 작년에 감독의 암 투병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최종호_ 조이의 제안으로 꾸려진 섹션이다.
조이예환_ 난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영화하는 사람들을 처음 만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나처럼 인다페에서 사람을 만나고 즐거워하는 이들을 보면 항상 행복했다. 이들도 이곳에서 나만큼 새로운 작업을 할 힘을 얻어가는구나 싶었던 거다. 특히 오쟁과 신나리 감독이 그랬다. 신나리 감독님은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여러 작업자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었다. 부산에서 활동하다 보니 아는 작업자가 그리 많지 않다고. 투병 소식을 듣고 그처럼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발생한 인연과 감독님의 작업을 소개하고 싶었다.
오재형_ 인디다큐페스티발에 처음 갔을 때 신나리 감독을 만났다. 부산에서 영화를 상영하러 오셨더라.
조이예환_ 그게 2016년이다.
오재형_ 술을 전혀 못 드시는데도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서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시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용기를 많이 얻으신 것 같더라. 이후에 작업을 활발하게 하셨고, 여러 영화제에서 뵐 수 있었다.
최종호_ 신나리 감독의 영화들은 이번에 보게 됐는데 일종의 발견이었다. 사회적 이슈를 알리면서도 내밀한 표현을 놓지 않는 작품들이더라.
조이예환_ 미군의 탄저균 실험을 다룬 <8부두>는 기획자가 따로 있는데도 연출자의 색채가 확실히 드러난다. 일본의 조선인 강제 징용을 다룬 <붉은 곡>과 <뼈>는 감춰져 있던 진실을 파헤치고 드러내는 작품이다. 공모 선정작과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장애인 이동권 연대 특별초청전을 마련해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집단 ‘다큐인’의 단편 2편을 상영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투쟁에 관한 작품들이다. 다큐멘터리가 뉴스와 어떤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비추는가를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듯하다.
최종호_ 한창 심사를 진행하던 시기에 ‘달 보기 운동’처럼 시민들한테 연대를 요청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활동을 접하게 됐다. 다큐인에서 활동하는 안창규 감독님이 유튜브에 단편 작품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중 두 작품을 골라 상영하게 됐다. 유튜브 채널엔 꽤 여러 편이 올라와 있다. 모두 소중하지만 전부 다 상영할 수는 없으니 현장 보도의 성격에서 한 발 더 들어간 작품, 투쟁을 벌이고 있는 분들의 감정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골랐다. <마도로스>(비오, 2022)는 선원이 되고 싶었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이야기를 담는다. <아침 출근 지하철에 문이 열리면...>(안창규, 2022)에는 시민들의 반응이 생생하게 담겼다.
김수목_ 종호가 제안한 게 섹션 구성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아예 별도의 섹션으로 꾸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상영 여부에 대해서는 논의할 필요가 없었다. “너무 좋은데? 그럼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할까?”하고 이야기가 바로 넘어갔다. 우리가 봐왔던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액티비즘적인 이야기를 늘 영화제 자체에 녹여내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장을 만들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아닐까.
폐막식에 열릴 포럼에서는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잠정 중단을 알릴 때부터 쟁점이 됐던 ‘지속 가능한 영화제’에 관해 이야기할 예정이라고.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
명소희_ 일단 우리 다섯 명이 다 같이 앞에 나가서 영화제를 준비한 과정과 이 영화제의 필요성에 관해 이야기할 듯하다. 지금 영화제가 매우 많은데 왜 굳이 반짝다큐페스티발이 지속 가능해야 하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거다. 우리가 생각하는 지속 가능성의 방점은 반짝다큐페스티발이 창작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제라는 점에 있다고 본다. 저예산으로 만드는 실속 있는 영화제, 그 안에서 많은 감독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영화제, 창작자들이 직접 꾸려가는 영화제를 우리는 어떻게 지속 가능하도록 할 수 있을까? 아마 이게 구체적인 우리 고민이지 않을까. 관객석에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길 바라고 있다. 다른 창작자들의 고민과 생각이 궁금하다.
영화제를 찾을 관객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나. 추천작을 소개해줘도 좋겠다.
김수목_ 정말 다양한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만나실 수 있을 거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상의 모습을 질감하고 다시 생각할 기회가 될 테니 적극적으로 즐겨주시면 좋겠다. 또 감독들한테는 이번 영화제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의 소식을 나눌 수 있고, 새로운 동료를 만날 수 있는 반짝이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한다.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주시길.
최종호_ 우리 주변의 여러 사안들, 고민해볼 만한 문제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기회일 테니 많이 찾아와 주시길 부탁드린다. 다큐멘터리가 보도물과 어떤 다른 방식으로 소재를 다루는지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도 될 거다.
명소희_ 난 추천작을 말해보겠다. (웃음) <관>(류승진, 2023)은 내레이션이 인상적인 다큐멘터리다. 광주에서 관을 구하러 다녔던 이야기를 다루는데, 어느 시점이 되면 여성 내레이터가 자기가 죽은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중에 감독님께 물어보니 내레이션 작업은 따로 협업했다고 하시더라. 몇 줄의 기록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내레이션을 구성한 인상 깊은 영화다.
오재형_ <소라지는 선율들>(이태호, 2017)을 추천한다. 제주도의 역사와 풍경을 담고 있는 작품인데, 이번 출품작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관객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GV에서 문자 통역을 내가 한다. 예산 문제로 수어 통역만 전문가들을 섭외할 수 있었다. 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보기에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다. 타자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너그럽게 봐주시면 좋겠다.
조이예환_ <곁에 서다>(심상범, 2017)와 <케세라세라>(정리건, 2020)를 추천한다. <곁에 서다>는 오랜 세월이 갈아 넣은 작품이라 굉장히 애정이 간다. <케세라세라>는 히키코모리를 다룬다. 감독님이 젊은데 이 작품을 은퇴작으로 생각하셨다고 하더라. 많이들 응원해주시면 좋겠다. 금요일에 상영한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건 페스티벌을 페스티벌답게 즐겨달라는 거다. GV 많이 들어주시고 뒤풀이에서도 그 여운을 이어가 주시면 좋겠다.
김수목_ 덧붙이자면 영화제가 끝나도 3월 말까지는 후원을 계속 받을 예정이다. 영화제의 지속을 위한 디딤돌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영화제가 끝나면 뭘 하고 싶나. 다음 작업도 궁금하다.
오재형_ 피아노 치는 데 매진하고 싶다. 해야 하는 영화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영화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도 많지만, 생각은 영화제가 끝난 다음에 하려고 한다. 어쨌든 이번 영화제가 재밌길 바란다.
김수목_ 영화제를 무사히 마무리한 이후에 우리가 밟아온 과정을 잘 돌아보고 싶다. 올해엔 오래 끌어왔던 작업에 올인하려고 한다. 여성 노동에 관심을 가지고 기획 중이다.
명소희_ 춘천, 오키나와, 태국 등을 오가며 사라진 여성들의 목소리를 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다른 시공간을 살았던 여성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동시대의 우리 삶과 접속되는지 생각하는 영화를 만드는 중이다.
최종호_ 개발 문제로 오랜 세월 아픔을 겪고 있는 오류시장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작업 중이다. 다른 멤버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새삼 영화제 이후의 행보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이예환_ 아직 다른 계획은 없다. 영화제가 끝날 때까지 즐겁게 지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