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ice | |
언젠가는, 어떻게든
<되살아나는 목소리> “언제든 기록하는 것이 저에게 최우선이었어요.” 디지털 복원으로 되살아난 필름들을 따라 역사를 되짚는 <되살아나는 목소리> 곳곳에는 절박한 기록의 몸짓이 새겨져 있다. 인생의 경로를 바꾼 사건을 만난 이후 카메라를 들고 찍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찍었다는 박수남 감독은 20세기의 절반을 기록자의 자세로 살았다.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을 찾아 나선 그 길에서, 기억을 전하는 일의 필요를 힘주어 말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
Choice | |
결코 마르지 않는
<열 개의 우물> <열 개의 우물>은 김미례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다. 근 이십 년간 한국 사회에 자리한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를 꾸준히 탐구했던 감독은 최근작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2020)에서는 일제 전범 기업 연속 폭파 사건의 가해자이자 자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했던 활동가들을 추적하며 연대운동의 가능성을 질문했다. 평범한 이들이 삶에서 어떤 차별과 폭력을 맞닥뜨리는지, 그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험과 관계를 쌓는지 포착하는 것이 감독에게 주요한 주제였다. <열 개의 우물> 역시 사회와 인간을 향한 예민한 감수성이 돋보인다.
|
Choice | |
악취의 근원
<럭키, 아파트> 희망이 엿보이는 제목과 달리, <럭키, 아파트>는 공간 마련과 함께 찾아온 갈등 상황의 한복판에서 문득 시작한다. 심각한 얼굴로 대화하는 이들은 오래된 연인 선우(손수현)와 희서(박가영). 무리해서 아파트를 장만했지만, ‘은행 집’에서의 탈출은 요원해 보인다. 그런 데다 체육관에서 일하던 선우는 다리를 다쳐 실직한 상태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희서는 계속해서 오르는 대출이자를 감당하려 나름대로 고군분투 중이다. 곤란한 상황은 서로에 대한 서운함과 괜한 화를 불러온다.
|
Choice | |
훨훨
<공작새> 왁킹 댄서 신명(해준)은 결의를 다지며 파이널 무대로 입장한다. 무엇보다 상금 천만 원이 걸려 있는 배틀이다. 그 돈이면 성전환 수술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자연히 입대는 무효화되고, 댄서로서 커리어를 중단하는 상황도 벌어지지 않는다. 신명은 비로소 자신답게 살 기회라 여기며 무대를 누빈다. 너무 큰 기대를 품은 탓일까. 재대결 끝에 신명은 끝내 우승 트로피를 놓치고 만다. 뭐가 부족했는지 알려달라는 물음에 심사위원은 단호하게 응수한다. “넌 너만의 컬러가 없어.”
|
Choice | |
비상 착륙
<잠자리 구하기> 대한민국의 입시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거의 “사람을 죽이지 말지어다.” 정도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수많은 10대가 자기 존재를 지우고 입시라는 삶의 유예기간에 무방비하게 내던져진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면 다 보상받게 되리라고, 대학에만 간다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으리라고 어른들은 말한다. 물론 이 말은 인정받는 대학에 가지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리라는 가정을 포함한다. 홍다예 감독의 다큐멘터리 <잠자리 구하기>는 그러한 유예기간을 불안과 함께 살았던 감독 자신과 친구들의 초상을 담는다.
|
Choice | |
사람들은 나를 몰라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라디오에서는 Y2K 종말론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거실에는 두 소녀가 나른한 오후를 보내며 나란히 앉아 있다. 혼돈의 1999년, 이들에게는 먼 종말보다 지금의 감정과 내일의 잠자리가 더 중요하다. 사랑에 빠진 주영(박수연)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네 곁에 있겠다며 천진한 얼굴로 연인을 바라본다. 주영의 집에 신세 지는 처지인 예지(이유미)는 그때까지 여기 머무는 건 민폐가 될 거라고 한다. 그는 이제 곧 다른 거처를 찾아 떠나야 한다. 어린 연인의 미래에는 일찌감치 그늘이 지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환한 얼굴에는 따스한 빛이 깃든다.
|
Choice | |
너와 나, 각자의 싸움
<위국일기> 삼십 대 중반의 소설가 마키오와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사춘기 소녀 아사. 그들은 과연 식구가 될 수 있을까? <위국일기>는 서로 다른 세대의 여성들이 관계 맺는 과정을 그리며 독자에게 꾸준한 지지를 얻은 야마시타 토모코의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만화는 마키오와 아사의 첫 만남부터 아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기까지 긴 시간을 다루는데, 영화는 시간대를 축약하여 둘의 동거 초반에 초점을 맞춘다.
|
Choice | |
지금, 우리는
<해야 할 일> <해야 할 일>에 부제를 붙인다면 ‘인사팀 사람들’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외부에서 보면 단지 노사갈등 사안으로만 비치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과정에서 인사팀이 어떤 업무를 하는지를 영화는 자세히 그린다. 사측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들이 회사의 논리를 대변하며 동료 직원들을 만나고, 해고 대상자를 추려내느라 밤낮으로 일한다. 조금은 낯선 풍경을 통해 오늘날의 노동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
Choice | |
가족의 조건
<장손> 영화로 가족을 그린다는 건 뭘까? 가족 구성원 각각을 손에 잡힐 듯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그들이 모인 풍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그를 통해 보편적 공감의 지점을 자극하는 방식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한편으로는 가족을 이루는 비가시적이고 강력한 힘에 집중해 보는 방식도 있을 테다. 개인이 가족으로 묶이고, 그 안에서 각자 부여받은 역할을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기술하는 것을 넘어 그들 사이에 작동하고 있는 어떤 관계성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서는 힘의 질서뿐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마찰과 균열도 좀 더 깊이 숙고할 수 있다. 조금 더 세밀한 탐구를 시도한다면, 가족을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동시에 그러한 시선으로도 포착할 수 없는 비밀의 저편을 담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
Choice | |
투정이 아니라고
<한국이 싫어서> 기억은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 눈부신 남태평양 바다 앞에서 인천 구월동의 낡아빠진 아파트로 넘어갈 만큼 자의적이고 끈질기다. 낮과 밤도 계절도 뒤바뀐 공간에서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런 마음으로” 적응한다 한들, 계나는 중력처럼 자신을 잡아끄는 존재와 관계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나기 어렵다. 영화는 연쇄하는 기억을 이미지로 다루며 “한국이 싫어서”라는 짤막한 동기가 포함하는 감정을 서술한다.
|
Choice | |
거울 없이도
<러브 달바> 긴장과 공포로 잔뜩 굳어 있던 달바(젤다 샘슨)가 거울 앞에서 처음으로 웃는다. 진한 화장, 금발로 물들인 머리카락, 촌스러운 업스타일, 레이스 블라우스와 진주 귀걸이. 열두 살 여자애의 취향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성숙한 외양인데, 거울 속 제 모습을 확인한 소녀는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영화는 다음 장면에서 구치소 면회실로 이동한다. 백열등 밑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달바 앞에 등장한 자크. 자그마치 7년간 딸을 납치하고, 감금하고, 학대하고, 강간한 죄로 수감된 아버지다.
|
Choice | |
일곱번째 나팔소리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레드는 알아주는 ‘강성’이었다. 그들만큼 분출에 능하고 도취에 진심인 곳도 드물었다. 트레이드마크는 이름처럼 경기장을 시뻘겋게 물들이는 홍염. 레드는 아편굴에 입장한 망나니처럼 화약을 터뜨리고 시야를 가로막는 연기 속에서 승리를 만끽했다. 홍염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구나’ 싶을 만큼 폭발적이고 집단적인 체험을 선사한다. 우리만 경험할 수 있는, 우리 전부를 압도하는 의식에 가깝다. 문제는 이렇듯 애정과 헌신, 자부심으로 일궈온 역사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
|
Choice | |
머지않았다
<미래의 범죄들> 촉수가 달린 괴상한 침대, 포유류의 뼈처럼 생긴 이상한 의자, 갑각류를 본떠 만든 듯한 웅장한 해부용 석관, 두꺼비처럼 미끈거리는 수술 기계 조작판. <맵 투 더 스타>(2014) 이후 8년 만에 신작을 만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세계는 수많은 영화 팬을 열광케 했던 <비디오드롬>(1983)이나 <플라이>(1986) 같은 20세기의 역작들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1998년에 크로넨버그가 직접 구상한 이 괴상망측한 이야기는 거의 25년이 흐른 뒤 영화화됐다. <미래의 범죄들>은 배경이 불분명한 근미래를 다룬다.
|
Choice | |
요동치는 몸과 마음
<러브 라이즈 블리딩>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고장 난 트럭처럼 질주하는 영화다. 등장인물 모두 부조리와 결함을 지녔으며, 악을 처단하는 악으로 쾌감을 자아낸다. 코엔 형제의 <블러드 심플>(1984)이 보여준 필름 누아르의 유산,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1994)이 선보인 다종다양한 장르의 결합, 데이빗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에서 목격한 괴상한 버디무비의 가능성 등을 계승하면서도 영화는 저만의 길을 개척하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
Choice | |
다시 일어서려면
<더 납작 엎드릴게요> “그래요 원하시는 만큼 나를 누르세요. 제가 더 납작 엎드릴게요.” 언뜻 자조적이고 수동적으로 읽히는 제목은 영화의 원작자이자 각본가인 헤이송 작가의 에세이 제목에서 가져온 것이다. 실제로 불교 출판사에서 일하며 보고 겪은 일들은 물론, 불안한 마음으로 통과했던 20대 시절의 이야기까지 담은 에세이는 <평야의 댄서>(2020), <눈을 감고 크게 숨 쉬어>(2022) 등 좌충우돌 청춘들의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는 김은영 감독의 세계와 넉넉하게 어우러진다.
|
Choice | |
세상은 말이야
<퍼펙트 데이즈> 빔 벤더스와 야쿠쇼 코지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퍼펙트 데이즈>는 실제 도쿄 시부야 내 17개의 공중화장실을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 ‘The Tokyo Toilet’에서 시작됐다. 주최 측에서는 프로젝트의 의미를 담은 영상 작업을 기획했고, 40년 전에 16mm 카메라를 들고 같은 곳을 방문했던 빔 벤더스를 적임자로 판단했다. <도쿄가>(빔 벤더스, 1985)처럼 감독 자신이 동경하는 오즈 야스지로의 흔적을 쫓는 데 몰두하는 것은 아니지만, <퍼펙트 데이즈> 또한 곳곳에 <동경 이야기>(1953,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향수와 존경을 간직한다.
|
Choice | |
슬퍼하지 말고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는 그러한 무채색 풍경 속에서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도시 재생의 실천들에 집중한다. 이는 대체로 사적 차원에서 이뤄진다. 새로운 공간을 찾던 사람들은 기본 100여 년이 넘은 건축물을 운명적으로 발견하고 그곳을 고쳐서 다시 쓴다. 부지를 선정하고 옛 건물을 말끔히 밀어버린 뒤 반듯한 아파트를 올리는 흔한 재개발 방식과 확연히 다른 길이다.
|
Choice | |
유일한 해방구
<생츄어리> 전국 각지에 17개의 야생동물구조센터가 존재하고 해마다 15,000여 마리의 동물을 구조하지만, 그중 35퍼센트만 자연으로 돌아간다. 학대와 부상, 고립의 위험에 처한 나머지 65퍼센트의 운명은 결국 안락사로 귀결된다. 껄끄러운 현실을 영화가 굳이 일러주는 이유는 “회귀 불능의 야생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시설”, 즉 생츄어리가 이들 동물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여겨서다.
|
Choice | |
아직도 불안한
<다섯 번째 방> <다섯 번째 방>은 일종의 투쟁기다. 며느리가 되어 시댁의 작은 방에 붙박였던 엄마 효정은 그 방에서 독립해 안방으로, 또다시 2층으로 계속해서 이주한다. 이는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주도적 이동이다. 밖에서 보기에 효정의 여정은 밝고 힘차게 느껴진다. 2층으로 이사하면서 페인트칠을 다시 하고 방을 예쁘게 꾸미는 장면은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독립을 위해 주체적으로 이동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일은 여성들에게 항상 주요한 화두였기에, 영화가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은 그 자체로 보편적 설득력을 획득한다.
|
Choice | |
소녀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부터 댄싱퀸>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K플러스 부문에서 소개된 <오늘부터 댄싱퀸>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계에 선 아이들을 화면 중앙에 데려온다. 열두 살 소녀 미나에게 찾아온 변화는 단순하지 않다. E.D.윈을 향한 이끌림엔 호기심과 동경이 뒤섞이고, 춤은 타고난 재능과 각고의 노력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던진다. 2022년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동일 부문에 초청됐던 <비밀의 언덕>(이지은, 2023)의 주인공 명은(문승아) 또한 미나와 같은 열두 살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고, 부러움과 부끄러움을 번갈아 느끼며 지금과 다른 나를 꿈꾸는 나이. 두 작품은 주제도 배경도 서로 상이하지만, 상처받고 좌절하면서도 나름의 성장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영화 속 동갑내기 소녀들은 뚜렷한 공통점을 지닌다.
|
Choice | |
집착과 방관
<목화솜 피는 날> <목화솜 피는 날>은 창작집단 연분홍치마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공동 제작한 세월호참사 10주기 영화 프로젝트 ‘봄이 온다’의 유일한 극영화다. 유가족의 시선으로 10년을 되짚는 <바람의 세월>, 보도 현장에 있던 기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레이존>, 유류품을 매개로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에 접근하는 <흔적>, 생존자 학생과 또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드라이브97>에 이어 참사의 여파 속에 사는 이들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목화솜 피는 날>에 담겼다.
|
Choice | |
새클러의 거짓말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1970년대 말 사진작가로 데뷔한 이래 낸 골딘은 성소수자 커뮤니티, 성적 억압과 에로티시즘, 에이즈 위기 등을 작품에 담으며 검열과 차별에 저항해 왔다.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사진집 『성적 의존의 발라드(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1986)와 동명 슬라이드 쇼, 기획 및 큐레이션을 총괄한 종합 전시 <증인들: 우리의 사라짐에 저항하여(Witnesses: Against Our Vanishing)>(1989)은 낸 골딘의 예술 세계뿐만 아니라, 그가 통과한 투쟁의 역사를 드러내는 주요 작품이다. 60대 중반에 접어든 2017년부터 낸 골딘은 ‘P.A.I.N(Prescription Addiction Intervention Now)’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미국 전역에 오피오이드 위기를 확산한 옥시콘틴 제약사 퍼듀 파마와 회사의 실소유주 새클러 가문, 그들에게 받는 기부금으로 운영 자금을 마련하는 전 세계의 대형 미술관과 박물관을 겨냥해 전방위적 활동을 펼쳤다.
|
Choice | |
우주의 선물
<미지수> 권잎새·이돈구 이돈구 감독과 권잎새 배우는 비슷한 부류다. 그들의 시작을 듣고 있으면 덩달아 마음이 바빠진다. 가슴 뛰게 하는 일을 찾은 뒤, 둘은 잠도 안 자고 즐거운 일에 매달렸다. 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뚝딱 만들어 내거나 무대에 서서 연기하는 건 그들에게 벅찬 설렘을 안겼다. 샘솟는 에너지를 어쩔 줄 몰라 마구 달려 나갔던 감독과 배우는 누구보다 성실히 준비해 현장에 도착하는 이들이 됐다.
|
Choice | |
아마도 그곳에
<미지수> <미지수>는 <가시꽃>(2013), <현기증>(2014), <팡파레>(2020), <봄날>(2022)에 이은 이돈구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다. 폭력과 공포 등 인간 내면에 자리한 암흑을 집요하게 파고들던 감독은, 신작에서 상실과 그에 따른 혼란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고통에 무너진 인물을 대변하듯 서사는 개연성을 잃은 채 조각나 있다. 파편으로 흩어진 이야기들은 차츰 한자리에 모여 맥락을 구성하지만, 영화는 끝내 인물들의 트라우마 증상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미지수>는 SF적 표현을 통해 앞뒤 안 맞는 상상을 증폭시킨다.
|
Choice | |
새로운 길
<여행자의 필요> 홍상수의 영화는 나날이 단출해지고 있다. 이번에도 제작, 각본, 감독, 촬영, 편집, 음악을 감독 혼자 도맡았고, 그 외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스태프는 세 명뿐이다. <여행자의 필요>는 이 정도의 규모와 여건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대신, 영화 제작을 둘러싼 어떤 조건들을 다시금 숙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따금 초점이 맞지 않는 화면과 소음처럼 들리는 외부의 소리들을 노출하면서, 돈이나 언어 같은 문제를 이야기 속에 끌어들이면서 말이다.
|
Choice | |
모든 걸 잃었을지라도
<정순> 정지혜 감독의 데뷔작 <정순>은 중년 여성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주요 사건으로 다룬다. 자발적 촬영과 비자발적 유포 사이에서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에 앞서, 정순은 우선 본인을 가로막는 편견에 부딪힌다. 영화에서 50대 여성과 디지털 성범죄는 나란히 엮일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아줌마가 빨개벗고 춤춰.” 정순의 동영상은 당사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틈에 동료뿐만 아니라 딸의 직장 사람들에게까지 급속도로 퍼지는데, 동영상을 전달받은 이들은 대개 비슷하게 반응한다. 그들은 성범죄 영상을 본다거나 타인의 경계를 침범한다는 자각 없이 웃고 비아냥댄다.
|
Choice | |
지속과 균열
<돌들이 말할 때까지> 김경만 감독의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제주 4·3을 경험한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사람들이 끌려가 죽는 걸 눈앞에서 보고, 경찰서에 잡혀가 고문당하며, 군사재판을 받고 육지에 있는 형무소로 보내진 이야기. 아마 어디선가 들어본 내용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사건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다고 여겼던 제주 4·3은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의 말과 얼굴을 통해 그렇게 구석구석 세밀하게 드러난다.
|
Choice | |
굴하지 않는
<바람의 세월> <바람의 세월>은 ‘세월호 탑승자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나온 시점부터 참사 10주기를 맞이한 현재까지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는 연대기적 구성을 취한다. 단지 참사 이후 10년을 갈무리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이토록 지난한 세월을 우리가 함께 거쳐 왔다고 말하기 위함이다. 문종택은 카메라를 통해 증거를 남겼다. 정치인의 거짓말과 기만적 태도를 포착했고, 일부 극우단체를 위시해 혐오와 조롱에 앞장섰던 이들을 주시했다. 하지만 영화가 더 열성적으로 비추는 것은 그에 굴하지 않는 마음이다.
|
Choice | |
모두가 외지인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얼핏 도시와 지역의 갈등을 조명하고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비판하려는 영화처럼 보이지만, 하마구치 류스케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처럼 흔한 구도에 마냥 편히 기대지 않는다. “자연에는 선과 악, 그리고 정의가 없다.”며 제목을 설명한 감독은 다소 명확해 보이는 경계의 미묘한 회색 지대에 머물며 그만의 독특한 풍경 영화를 완성했다. 메마른 얼굴의 도시인들이 자연을 만나 천진한 깨달음을 얻는 동안, 평온함을 품은 숲은 점차 섬뜩한 어둠을 만든다.
|
Choice | |
세상 끝 사랑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은 2017년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활동을 시작으로 그간 세월호 참사를 꾸준히 기록해 온 장민경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다.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26회 인천인권영화제 등을 통해 본래 2021년에 공개했던 작품인데,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이한 올해 극장 개봉한다. 감독은 재작년에 발생한 10.29 이태원 참사를 일례로 들며 사회적 참사가 거듭되는 상황이 뒤늦은 개봉을 결심하는 데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
Choice | |
팰린드롬
<메이 디셈버> 창작자들의 호기심과 욕망은 끝이 없다. 이목을 끌 이야기만 있다면 사람들의 일상을 파고들고 과거를 헤집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메이 디셈버>의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도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그는 연극과 TV 시리즈로 인기를 얻은 배우인데 이번에는 세기의 스캔들을 일으킨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 출연할 예정이다. 20여 년 전, 그레이시(줄리안 무어)는 30대 중반에 13살 남학생과의 성관계를 들켜 현장에서 체포됐고 감옥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레이시의 출소 이후 둘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메이 디셈버>는 엘리자베스가 영화 촬영을 위해 그레이시와 조(찰스 멜튼) 부부를 방문하며 시작한다.
|
Choice | |
일기일회(一期一會)
<패스트 라이브즈>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며 이목을 끈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 셀린 송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데뷔작으로, 긴 세월에 깃든 사랑과 관계의 깊이를 탐구한다. <미나리>(정이삭, 2021) <라이스보이 슬립스>(안소니 심, 2023) <리턴 투 서울>(데이비 추, 2023) 등 근래 공개된 이민 2세대 감독의 영화에 속하지만, 이민 가정의 고단한 삶과 유년기를 재현하는 작업과는 거리가 멀고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디아스포라의 여정에도 꼭 들어맞지 않는다. ‘이민자 영화’로 묶이는 작품 중에서는 차라리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 트로피를 거머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다니엘 콴·다니엘 샤이너트, 2023)와 비교할 만하다.
|
Choice | |
아무도 몰라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SF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단편 <웅비와 인간 아닌 친구들>(2020)을 연출한 김다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주민센터에서 전통주 만들기 수업을 듣고, 분주히 학원 버스에 올라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세상의 “알 수 없는 원리”에 대해 생각했다는 감독은 인생의 의미를 묻다가 급기야 세계를 우주적으로 확장하는 이야기를 썼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견디기 위한 실용적 지침서가 아니다.
|
Choice | |
꿈꾸는 에도
<오키쿠와 세계> 정갈한 흑백 화면에 불러들인 19세기 풍경을 보며 누군가는 <7인의 사무라이>(구로사와 아키라, 1954) 속 감동을 기대할지 모르겠다. 혹은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과 제목의 유사성을 짚으며 <오하루의 일생>(미초구치 겐지, 1952) 같은 이야기를 예상할지도. 그러나 <오키쿠와 세계>에는 대의명분에 목숨을 걸거나 비장한 각오로 전투를 치르는 무사가 없다. 얼룩진 인생을 살다가 뒤안길로 스러지는 비련의 여인 또한 등장하지 않는다. 감독 사카모토 준지에게 ‘에도’는 향수가 아니며 회한은 더더욱 아니다. 영화는 에도를 지나간 시대로 박제하는 대신에, 약동하는 청춘의 시간이자 땅에 발 딛고 사는 생활인의 공간으로 되살린다.
|
Choice | |
진기한 마주침
<벗어날 탈 脫> <벗어날 탈 脫>의 두 주인공은 각자 무언가를 찾거나 기다리는 중이다. 영목(임호준)은 깨달음에 이르고자 매일 108배에 명상에 묵언수행까지 한다. 무슨 사연일까. 지우(위지원)는 영감을 원한다. 미술작가인 그는 다가오는 전시에 새 작업을 내놓고 싶다. 늘 하던 걸 또 해도 된다지만 아무래도 성에 차지 않는다. <벗어날 탈 脫>에서 지우의 시간과 영목의 시간은 기이하게 마주친다. 두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은 방 구조부터 냉장고 모양까지 똑같다.
|
Choice | |
이게 허구라고?
<플랜 75> <플랜 75>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10년>(2019)에서 선보였던 동명 단편을 장편화한 작품이다. 영화 배경은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의 근미래. 젊은이들은 “넘쳐나는 노인이 나라 재정을 압박하고 그 피해는 전부 청년이 받는다”며 울분을 토하고, 전국에서 노인을 겨냥한 범죄가 급증한다. 대안 마련에 나선 정부는 75세 이상의 노인에게 안락사를 장려 및 지원하는 정책을 해법으로 내놓는다. 과연 ‘플랜 75’는 고령화 문제를 타개할 묘수일까?
|
Choice | |
진실의 크레바스
<추락의 해부> 살인 혐의로 한 여자가 기소됐다. 사망한 이는 그녀의 남편인데, 집 앞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검사는 범죄를 의심하고 변호사는 자살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가운데, 부부가 지나온 인생의 파편들이 하나둘 증거물로 제출된다. 불행으로 점철된 듯한 편린들은 언뜻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들의 사고, 외도, 자살 시도처럼 자극적인 말들이 법정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추락의 해부>는 법정 스릴러가 아니다. 여기 교묘한 술수, 은밀한 음모, 판세를 뒤집는 결정적인 증거 같은 건 없다.
|
Choice | |
밀레니엄 맨드라미
<세기말의 사랑> 노스트라다무스의 불길한 예언으로 거리가 술렁이고, 9시 뉴스 앵커는 밀레니엄 버그의 위험을 경고한다. 1999년 겨울, 영미(이유영)는 남들처럼 지구 종말을 걱정하며 라면과 통조림을 쌓아 둘 겨를이 없다. 낮엔 공장에서 경리로 근무하고 밤엔 졸음을 쫓아가며 재봉틀을 돌린다. 형편이 빠듯해 몸을 축내는 모양새지만 영미가 요즘 퀭한 눈으로 억척을 떨어대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 남자, 도영(노재원)을 구해야 해서다.
|
Choice | |
지옥선 타고
<울산의 별> <울산의 별>은 인물들의 사연을 다발로 펼쳐놓는다. 해고 위기에 놓인 중년 여성과 불투명한 미래를 바라보는 청년들. 당면한 현실을 각자의 방식으로 돌파해 보려고 갖은 애를 쓰던 이들은 여러 방면으로 좌절한다. 윤화는 일찍 죽은 남편 몫까지 책임지며 지금껏 홀로 두 아이를 키웠다. 그러나 자식들은 엄마처럼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들은 가파른 언덕 위 낡은 집에서 아슬아슬하게 동거한다.
|
Choice | |
희망의 원리
<나의 올드 오크> <나의 올드 오크>는 사회 제도의 모순과 계급 불평등을 꾸준히 이야기한 감독 켄 로치의 신작으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미안해요, 리키>(2019)를 잇는 ‘영국 북동부 시리즈’의 최종편이다. 은퇴를 암시하며 60여 년의 창작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영화로 언급한 이번 작품에서 감독은 미처 못다 한 말을 마쳐야겠다는 듯 2016년으로 돌아간다. 디지털 취약계층, 플랫폼 노동자, 싱글맘, 홈리스 등 동시대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표현했던 그의 시선은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유럽으로 이주한 난민과 그들을 마주한 선주민에게로 향한다.
|
Choice | |
거기서 그러지 말고
<이어지는 땅> 유럽의 거리에서 첫 번째 장편을 완성한 조희영 감독은 이전에도 <기억 아래로의 기억>(2018), <두 개의 물과 한 개의 라이터>(2020), <주인들>(2022)처럼 서사의 구성력이 약한 자유로운 단편을 만들어왔다. 감독은 줄곧 “이것이 내 것이 맞을까? 내 기억은 과연 정확할까?”하는 의문을 중심에 두고 작업했다. 그의 영화에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걷다가 자리를 바꿔보고, 미묘한 질문을 던지다가 문득 세계의 희한한 구조를 알아채곤 했다. 어쩌면 조희영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이어지는 땅’의 거주자들인지도 모른다.
|
Choice | |
헬싱키 사람들
<사랑은 낙엽을 타고>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가을은 푸른빛이다. 낭만이 깃든 온화함이 아니라 현실의 차가움이 이 세계를 채우고 있다. 무표정한 사람들은 힘없이 거리를 걷고 무심한 세상은 가난한 자들을 배척하며 점점 더 나빠진다.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고 굶주리며 누군가는 머물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다. 도무지 좋은 일이라곤 벌어질 것 같지 않은 이곳에도 희망이 스며들 수 있을까?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희망의 건너편>(2017)을 만들고 은퇴를 선언했던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여러 전작처럼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를 배경으로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
Choice | |
어서 와, 여기 있다
<홈그라운드> <홈그라운드>는 레스보스를 비롯한 서울 내 퀴어들의 공간을 경유하여 약 50년을 아우른다.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명동의 샤넬다방이 퇴폐 업소로 낙인찍힌 과정을 돌아보는가 하면,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진 신촌공원의 기이한 문화를 기록하기도 한다. 사라진 공간의 자취를 더듬을 뿐만 아니라, 현재 망원동에서 댄스 클래스이자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루땐’ 스태프의 고민도 담는다. “두꺼운 관계망과 넓은 커뮤니티”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명우 형과 레스보스는 일종의 증인 역할을 맡는다.
|
Choice | |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물비늘> <물비늘>은 <홈리스>(2020)에서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장르적 화법으로 풀어낸 임승현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입주 스릴러’ 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법한 <홈리스>와 비교하자면, 사람 놀라게 하는 대목이 없는 <물비늘>의 톤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다만 가끔 아무렇지 않게 화면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수정의 환영이 기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실종자를 가족 구성원이 외롭게 찾아 헤맨다는 설정은 한편으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묻게 한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은 <홈리스>가 그랬듯 <물비늘> 또한 그러한 주제를 밀고 나가는 대신 인물의 내적 갈등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
|
Choice | |
여기가 끝인가
<빅슬립> 기영(김영성)은 제가 몰고 다니는 자동차와 닮은 사내다. 기름칠한 흔적 하나 없이 녹슬고 낡아빠진 인생. 짐인지 쓰레기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운 것들을 잔뜩 실은 구형 승합차처럼 갑갑한 속내. 차 뒷바퀴를 발로 툭툭 치며 길호(최준우)가 묻는다. “아저씨, 이 차 굴러는 가요?” 맹랑한 소년에게 기영은 귀찮다는 투로 응수한다. “굴러가지, 새끼야” 둘은 만난 지 하루쯤 됐다. 어젯밤 기영이 오갈 데 없이 떠도는 길호를 집에 데려와 재웠고 아침이 밝자마자 내보내는 참이다. 다신 오지 말라는 기영의 말이 서운할 법도 한데 길호는 그저 웃어 보인다.
|
Choice | |
본량(本良)에 관하여
<어른 김장하> 하마터면 주인공 없는 인물 다큐멘터리가 될 뻔했다. MBC경남 제작 PD인 김현지 감독은 몇 해 전 한약사 김장하 선생을 차기 프로젝트의 중심인물로 점찍었다. 자칫하면 허풍으로 의심할 만큼 어마어마한 선행을 베풀며 살아온 독지가의 이야기가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한약방을 운영해 번 돈으로 지금껏 1,000명 웃도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는 전설 같은 일화를 듣고 있자면 감독의 선택을 단번에 이해하게 된다. 그는 정말 대단하고 궁금한 인물이다. 문제는 김장하 선생이 여태 단 한 번의 인터뷰도 수락한 적이 없다는 데 있었다.
|
Choice | |
보이지 않는, 잡을 수 없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장건재는 의도적으로 과거를 토양 삼아 새로운 영화를 만든다. 영화 밖에 두 영화가 있다. 먼저 제목에서 드러나듯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아녜스 바르다, 1962)가 이 작품에 지속해서 영향을 준다. 영화 밖에 있는 두 번째 작품은 <잠 못 드는 밤>(2012)이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사실과 기억, 과거와 현재, 연기와 실제의 구분 선을 지워 나간다. 주희의 시간, 그리고 그와 동시에 흐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호진의 시간을 담은 무덤덤한 흑백 화면을 보고 있으면 문득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
Choice | |
라면을 끓이며
<우리의 하루> 몇 가지 단서만 가지고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주인공이 계단을 올라가야 나오는 집에 산다든가, 누군가 주인공을 찾아와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든가, 주인공이 라면에 고추장을 풀어서 먹는 독특한 식성을 지녔다든가. 반면 주인공의 성별과 나이 같은 정보는 정해지지 않고, 그들의 사정이나 속마음 같은 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양각색의 영화들이 만들어질 텐데, 그런 작업은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한 각각의 작품이 얼마나 많이 달라질 수 있는지 관찰하는 즐거움을 준다. 홍상수의 서른 번째 영화 <우리의 하루>는 얼핏 그와 비슷하다.
|
Choice | |
입술을 깨물고
<믿을 수 있는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처음 공개된 날, 곽은미 감독에게 실례를 끼쳤다. 전주국제영화제 GV 현장에서 영화 제목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잘못 말한 것이다. 예상과 달리 감독은 “그런 사람 꽤 많아요”라며 태연히 웃어넘겼다. 감독이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준비 과정부터 후반 작업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함께한 스태프조차 제목을 착각하여 오기하는 일이 왕왕 일어났다. 믿음이 ‘있다’는 긍정보다 ‘없다’는 부정이 입에 잘 붙는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듯하다고 덧붙이긴 했으나, 감독은 이를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으려 조심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언어가 단지 소통 방편이 아니라 생활 습관과 시대 흐름, 사회 시선을 담는 그릇임을 상기하면, 이 일화는 그저 그런 실수로 여기며 무심코 넘기기엔 어려운 경험으로 남았다.
|
Choice | |
대신 낳아드립니다
<팟 제너레이션> 가까운 미래, 인류는 드디어 인구 재생산의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자궁 센터’의 설립과 함께 여성이 임신으로 겪는 각종 어려움은 물론 고질적인 출생률 감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팟 제너레이션>의 세계에선 자궁 센터에서 제공하는 거대한 달걀 모양의 팟이 모체를 대신해 태아를 기른다. 수정부터 출산까지 온갖 “힘든 일은 우리가” 맡겠다고 자궁 센터는 속삭인다. 인공 자궁은 단절 없이 일하면서 아이도 갖길 원하는 여성들을 위한 최상의 선택지다.
|
Choice | |
알다마다
<킴스 비디오> 비디오 빌리러 가는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만든다면 그건 어떤 영화가 될까? <킴스 비디오>는 말 그대로 비디오 가게 가는 여정을 담는다. “혹시 킴스 비디오 아세요?” 감독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본다. “킴스 비디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그걸 알아보려고 하거든요.” 밑도 끝도 없이 시작한 영화는 보편적 인터뷰로 이뤄진 다큐멘터리, 미스터리한 인물을 탐구하는 추리물, 뜬금없는 유머를 구사하는 코미디, “사람을 살해하는 장소”인 다리 아래로 향하는 누아르, 강탈의 쾌감을 정점으로 끌어올리는 범죄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정신없이 오간다. 그 중심에 있는 건 영화와 비디오에 대한 못 말리는 애정이다.
|
Choice | |
순전한 기적의 비밀
<어파이어> 네 명의 청춘 남녀가 모여든 여름 별장에서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까.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차지한 <어파이어>는 독일 감독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열 번째 장편영화이자, ‘역사 3부작’으로 칭하는 <바바라>(2012) <피닉스>(2014) <트랜짓>(2018)에 이어 <운디네>(2020)로 시작한 ‘원소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어파이어> 개봉을 앞두고 감독은 시사회와 인터뷰에서 연출 의도를 여러 차례 밝혔다. 본래 차기작에서 디스토피아 사회를 다루려고 했으나 팬데믹을 거치며 그러한 절망을 그려내는 일에 흥미를 잃어버렸고, 그 무렵 에릭 로메르의 영화와 안톤 체호프의 소설을 다시 보며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 요지였다. 감독이 예고한 대로 <어파이어>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머러스하며 여름 특유의 계절감을 묘사하는 데도 공을 들인다. 다만, <어파이어>는 밀고 당기는 연애 소동 대신에 예술과 젊음을 고통으로 인식하는 주인공에게 집중한다.
|
Choice | |
깜빡깜빡 SOS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듣도 보도 못한 이들이 신호를 보낸다. 우리는 여기에 살아있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우당탕 생존 신고는 등대의 불빛이 되어 검은 바다를 비춘다. 그러면 깜빡깜빡. 또 다른 불빛들이 켜진다. 2021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되며 돌풍을 일으켰던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이야기다. 한꺼번에 조명이 켜지듯 순식간에 매진된 건 물론이고 영화제 종료 후에도 관람 문의가 쇄도했다.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듣보인간’들의 모습은 그렇게 다른 이들의 전구를 켰다. 크레딧에 ‘듣보인간1’, ‘듣보인간2’, ‘듣보인간3’으로 표기된 이들은 영화를 공동 연출한 권하정과 김아현, 그리고 그들의 친구 구은하다. 세 사람이 처음 빛을 쏜 대상은 ‘방구석 음악인’ 이승윤.
|
Choice | |
마침내
<어느 멋진 아침> 지식이 사그라지고 언어가 실패할 때도 사랑은 남으리라. <어느 멋진 아침>의 엔딩에 흐르는 곡은 그렇게 말한다. 산드라(레아 세두)의 아버지 게오르그(파스칼 그레고리)는 희귀한 신경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탓에 점차 뇌 기능을 잃어간다. 그의 머리는 눈이 본 것을 정확히 처리하지 못해 입으로는 완전히 딴소리하게 한다. 평생 철학 교사로 살아온 게오르그의 삶은 질병과 함께 커다란 지각변동을 겪었다. 생각하기를 일생의 과업으로 여기고 살아온 이에게 뇌 기능 저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좌절일 것이다. 마침내 집에서조차 길을 잃기 시작하자 가족과 사회복지사는 그를 요양원 대기자 명단에 올린다. 그런데 심각한 기억상실 때문에 자기 위치를 제대로 가늠하기 어려운 때에도 게오르그는 사랑을 말한다.
|
Choice | |
광화문에서 금남로까지
<피아노 프리즘> <피아노 프리즘>은 예술가 오재형의 바이오그래피이자 포트폴리오이며, 신인 피아니스트의 콘서트 실황을 기록한 메이킹 필름이기도 하다. 피아노는 취미와 직업, 메인과 서브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간다. 그는 피아노 학원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으면서도 실력이 늘지 않아 고전하는가 하면, 정통 클래식 연주자들이 선다는 ‘더 하우스 콘서트’ 무대에서 마른침을 삼킨다. 한편, 작업실에 틀어박힌 그는 “또 뭔가를 하려고 합니다”라는 설명이 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거듭 일을 벌인다. <피아노 프리즘>은 셀프 영화다. 연출, 제작, 촬영, 편집, 미술, 음악, 출연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할을 도맡는 사이, 오재형은 지금껏 자신이 생산해 낸 예술 작품을 영화 속에 활용한다.
|
Choice | |
최후의 보루
<강변의 무코리타> 오기가미 나오코는 데뷔작 <요시노 이발관>(2001)부터 근 20년간 공동체에 관해 이야기한 감독이다. 결핍을 지닌 개인이 더불어 사는 삶이란 어떻게 가능한지 질문하면서, 그는 세상에 존재했으면 하는 최소의 단위와 최후의 보루를 상상한다. 대다수 영화는 필연적으로 현실과 격리된 이상 지대 묘사에 치중하는데, 인적 드문 헬싱키 골목에 일식당을 연 <카모메 식당>(2007) 속 주인공을 따라 출신지와 접점이 전혀 없는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가 하면, <안경>(2007)에서는 조용하고 평온한 일상을 되찾고자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바닷가로 터전을 옮긴다. 오기가미 나오코는 대중에게 익숙하거나 역량이 과대평가된 대도시에서 벗어나 전통적 개념의 마을과 동네를 복원하려 한다.
|
Choice | |
낙원은 없다
<지옥만세> “그냥 다 망해버렸으면 했어.” 세상에 도무지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소녀는 저주의 마음을 담아 악플을 쓴다. 그저 악플일 뿐이다. 또 다른 소녀는 억울함과 분노가 차오를 때 굵은 나무 허리를 있는 힘껏 걷어찬다. 걷어차는 발만 엄청나게 아파 보인다. 가슴 속에 차오르는 절망의 크기는 너무나 큰데, 몸집 작은 여자아이들은 그걸 도무지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모르는 것만 같다. 그래서? 이들은 그냥 죽기로 한다. 집단 괴롭힘과 따돌림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나미(오우리)와 선우(방효린)는 제대로 세상 하직할 방법을 찾고 있다.
|
Choice | |
헤이, 게이
<퀴어 마이 프렌즈>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광장 옆에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합창하는 무리는 동성애는 죄악이기에 나와 마찬가지로 신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윽박지르는 중이다. 그들이 지목하는 당신 중 하나인 강원은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는 듯 입꼬리에 힘을 준다. 축제의 흥분이 가라앉으려는 찰나, 강원 옆에 서 있는 아현이 툭 끼어든다. “오빠, 우리 지옥에서 만나자. 내가 지옥까지 같이 가줄게!” 둘은 그제야 마주 보며 와하하 웃는다. 농담에 실어 보낸 것은 일종의 프러포즈다. 신이 용서하든 말든, 세상이 비난하든 말든 나는 너와 함께할 거라는 약속. 친구의 커밍아웃 스토리로 시작한 <퀴어 마이 프렌즈>의 클라이맥스가 될 만한 순간이다. 한데 영화는 이 장면을 아껴두지 않고 미리 꺼내 보인다.
|
Choice | |
리빙 데드
<다섯 번째 흉추> <다섯 번째 흉추>의 주인공은 “더럽게 안 지워지는 곰팡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곰팡이에서 피어난 의문의 생명체다. 생명체는 척추를 강탈한다. 사람들의 척추를 하나씩 빼내어 모으더니 점차 인간의 형체를 갖춰간다. 이게 무슨 말인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다섯 번째 흉추>에선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 영화는 생명체가 탄생하기 538일 전에 시작해서 그가 태어나고 484,498일 후에 끝난다. 단순한 일대기를 넘어서는 이 여정은 연인들의 찐득한 감정, 노동자들의 피로, 서울과 경기도의 풍경을 두루 아우른다. 독특한 스타일로 공포와 로맨스의 정서를 종횡무진하는 동안 영화에 고이는 건 의외로 기묘한 슬픔. 상대와 온전히 마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느끼는 외로움과 그리움이다.
|
Choice | |
파국이 이르노니
<비닐하우스> 인간은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위기를 직감한 듯 새들이 프레임 저편으로 푸드덕 날아간다. 검푸른 새벽, 인기척 없는 공터, 바짝 긴장한 카메라가 조심히 주시하는 건 한 동의 비닐하우스. 오래도록 버려진 폐가처럼 음침해 보이는가 하면, 낯선 곳에 불시착한 비행선마냥 위태로운 인상이다. 다음 장면에서 영화는 비닐하우스 내부로 이동한다. 맨먼저 눈에 띄는 건 한 여자의 뒷모습이다. 비쩍 마른 등, 늘어진 어깨, 땅에 처박듯이 아래로 떨군 고개. 카메라는 밖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느리게 다가간다.
|
Choice | |
불구의 사랑
<러브 라이프>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랑은 할 수 있어” <러브 라이프>는 동명의 노래 가사로부터 시작됐다. 오래전 발표된 일본 가요 속 화자는 온화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당신은 살아있어 주기만 하면 돼. 나의 사랑은 수많은 장벽을 넘어가고야 말 거야. 그리 생소한 주제는 아니다. 통속적 멜로드라마는 대체로 사랑의 시련과 완성을 아름답게 그리는 걸 목표로 삼으니 말이다. 후카다 코지 감독은 여기 물음표를 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 사이의 어마어마한 거리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정말 가능한가? <러브 라이프>는 한 가족의 비극을 중심에 두고 그처럼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
Choice | |
니네 아빠, 니네 엄마
<비밀의 언덕> 거실에 모인 식구들이 밥상에 둘러앉는다. 가운데 놓은 양푼엔 삶은 대게가 수북이 쌓여 있다. 수저를 내려놓고 양손을 바삐 움직이는 어린 남매에게 성호(강길우)는 게살 발라 먹는 법을 차근차근 일러준다. 경희(장선)는 그런 성호가 못마땅한 눈치다. 돼지고기 한 근 떼어와서 구워 먹으면 훨씬 싸고 편할 텐데 굳이 비싸고 귀찮은 메뉴를 골랐다. 경희는 곧장 “니네 아빠”를 향해 불만을 터뜨린다. 부모가 그렇게 실랑이하는데, 아이들은 심드렁하다.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이어가던 열두 살 명은(문승아)은 TV로 시선을 돌린다.
|
Choice | |
하염없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목적지를 아는 이라면 대답을 망설일 필요 없는 질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디 잘 헤매는 존재 아니던가. 사람들은 종종 가야 할 곳이나 가고 싶은 곳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여기저기 배회하곤 한다. 길이 곧잘 삶의 은유가 되는 세상에서, 희망하는 행선지에 관한 물음은 금세 철학적 고뇌가 되고 만다. 그런데 김희정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에선 사정이 좀 다르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묻는 이가 다름 아닌 스마트폰 음성인식 프로그램 ‘시리’인 탓이다.
|
Choice | |
어디 계십니까?
<206: 사라지지 않는> 기억은 머릿속에 간직한 장면이 무심결에 떠오르는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아니면 잊지 않겠다고 힘주어 되뇌며 마음을 다잡는 다짐이나 약속일까. 전쟁 희생자 유해 발굴 현장을 비추는 다큐멘터리 <206: 사라지지 않는>에서 기억은 생리적 본능도, 의식적 결단도 아닌 특별한 행위다. 땅을 파헤치면서 망각에 저항하고 흙을 털어내며 은폐를 차단하는 사람들. 퍼내고 나르기를 부단히 반복하면서 누군가는 되찾고 싶은 기억을 건져 올리고, 다른 이는 영영 지우지 못할 기억과 대면한다. 땀 흘리며 보낸 계절이 저물어 갈 무렵, 수십 년간 지하에 묻혀 있던 뼈가 모습을 드러내면, 지상은 드디어 새로운 이야기를 얻는다.
|
Choice | |
물새의 노래
<수라> 수라는 이름이다. 잊지 않고 계속 부르기 위해 누군가 붙인 호칭이다. ‘비단에 새긴 수’라는 아름다운 이 명칭은 전북 군산에 위치한 어촌 ‘수라마을’에서 따온 것이다. 온갖 조개와 생물이 넘쳐나고 금빛 모래가 반짝이던 마을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오랜 몸살을 앓았다. 어업은 붕괴했고 땅은 윤기를 잃었다. 2000년대 중반 국내 환경운동의 주요한 거점이었던 새만금 갯벌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격렬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폭력적인 대응과 강제 물막이 공사로 말라붙은 땅이 됐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갔다. <수라>는 갯벌을 잊지 않은 사람들을 따라 여전히 생명이 약동하는 땅의 모습을 담는다.
|
Choice | |
말없이 반짝이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공연이 끝난 후 돌발한 잼 세션처럼 소리가 하나씩 겹친다. 일정한 속도로 바닥에 채는 줄넘기 소리와 케이블 로프를 당길 때마다 울려 퍼지는 쇳소리, 여기에 샌드백을 치는 타격음까지 더하자 명쾌한 리듬이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소리와 무관한 케이코(키시이 유키노)가 체육관에 들어선다. 서른을 목전에 둔 여자 주인공과 복싱. 단순한 조합만으로 떠오르는 영화가 적지 않다.
|
Choice | |
유일무이
<그 여름> 그 여름, 사랑은 사고처럼 찾아왔다. 수이(송하림)의 축구공에 맞은 이경(윤아영)은 집에 돌아가 그 아이의 얼굴을 떠올린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수이는 매일 딸기우유를 사 들고 이경을 찾아와 안부를 묻고, 이경은 운동장을 누비는 축구부원 수이를 먼발치에서 눈으로 바삐 좇는다. 혹시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조심스러운 기대는 금세 햇살 같은 희망이 된다.
|
Choice | |
침묵할 기회
<말없는 소녀> 코오트(캐서린 클린치)는 언제나 외롭다. 가난한 집에서 넷째로 태어난 이 조용한 소녀에게 세상은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는다. 계속된 임신과 집안일로 피곤을 달고 사는 엄마는 코오트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고, 경마와 술에 빠져 지내는 폭력적인 아빠는 코오트를 “겉도는 애”라고 매정히 부른다. <말없는 소녀>는 코오트가 엄마의 먼 친척 부부에게 맡겨진 어느 여름 방학의 정경을 담는다. 크고 깨끗한 집, 온화한 어른들, 고요한 식사 시간. 부부의 보금자리는 코오트가 떠나온 곳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
Choice | |
마지막 마츠리
<남은 인생 10년> <남은 인생 10년>은 일본 작가 코사카 루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는다. 극 중 마츠리와 마찬가지로 폐동맥성 폐고혈압증이라는 희소병을 앓던 작가는 『남은 인생 10년』 집필과 투병을 병행했고, 끝내 출간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채 2017년 사망했다. 영화는 원작에 코사카 루카의 실제 에피소드를 반영하면서 마츠리를 조금씩 탈바꿈한다. 소설 속 주인공이 우연히 코스프레에 참가했다가 만화 그리기에 빠져든다면, 영화 속 마츠리는 학창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냈던 소설 쓰기에 다시 도전한다. 물론 영화 역시 마츠리와 중학교 동급생 카즈토(사카구치 켄타로)의 재회를 담으며 안타까운 러브 스토리를 전개하는 데 무게를 둔다.
|
Choice | |
환장하겠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말은 복잡하다. 사전에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라고 풀이된 이 단어는 현실에서 단순한 감정의 표출을 넘어 협상, 호소, 변명, 폭로 등의 기능을 너르게 수행한다. 말 한마디로 별 게 다 드러나고 또 바뀐다. 더구나 말은 화자의 성격과 상황은 물론 표층 아래 숨겨진 진실까지 알려준다. 누군가의 말은 때로 그가 하지 않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짐작하게 한다. 그러니 창작자에게 말이란 다루기 까다로운 요소이자 제대로 요리해 보고 싶은 재료일 것이다. 여섯 연출자가 참여하고 서울독립영화제가 기획, 제작, 배급을 맡은 옴니버스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는 관객을 말의 난장 속으로 데려간다.
|
Choice | |
기적 대신, 마술 대신
<토리와 로키타> 로키타(졸리 음분두)와 토리(파블로 실스)는 최근 벨기에로 이주한 아프리카계 이민자 남매다. 이들은 쉼터에서 지내며 정식 체류증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로키타가 체류증을 얻으려면 인터뷰에서 토리가 친동생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토리가 동생임을 어떻게 알아봤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이 까다롭다. 설상가상으로 인터뷰에서 몇 가지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서 난처한 상황이 된다. 그전까지도 마약 거래와 같은 위험한 일을 감수했던 로키타는 가짜 체류증이라도 발급받기 위해 석 달 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지내야 하는 열악한 대마 농장 일을 받아들인다.
|
Choice | |
지독한 여름
<클로즈> “슬픔과 분노는 꽤 비슷해” 수확을 앞둔 꽃밭에서 전쟁놀이를 벌이는 천진한 소년들은 슬픔과 분노의 유비를 아직 알지 못한다. 들리지 않는 총성에 깜짝 놀라고 보이지 않는 적군을 피해 급히 달아나는 이들을 추동하는 건 오직 환상이다. 그들만의 놀이를 발명하고 그들만의 비밀을 공유했던 레오(에덴 담브린)와 레미(구스타브 드 와엘), 두 소년이 애써 쌓아 올린 환상의 성채는 언제까지나 공고할까. <클로즈>는 흑과 백으로 또렷이 이분된 현실의 습격에 노출되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 레오와 레미의 관계를 근접해서 보여준다.
|
Choice | |
사악한 구원자의 재림
<피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살인마가 나를 괴롭히는 무리를 모조리 납치해 간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그런데 한편으론 신기하다. “다 죽었으면 좋겠어!” “저들을 벌해주소서.” 울부짖거나 소리 내어 기도한 것도 아닌데 사악한 구원자가 적시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인공을 신나게 놀려대던 이들은 이제 피범벅 된 손으로 도움을 요청한다. 오줌을 지릴 만큼 무서운 상황이지만 주인공은 구조를 바라는 손길을 외면하고 살인마에게 인사를 건넨다. 살인마는 주인공만 멀쩡히 남겨두고 유유히 떠난다.
|
Choice | |
다음엔 일부러 만날까요?
<튤립 모양> 백 명이 각자 머릿속에 튤립을 그린다고 생각해보자. 백 개의 꽃은 대략 비슷한 이미지겠지만 그중 똑같은 모양은 없을 것이다. 색깔과 크기, 질감이 천차만별일 테고 어쩌면 종 자체가 아예 다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식물을 떠올리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림이나 조각을 상상할 수도 있다. 때마침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에게는 두둥실 흘러가는 구름 위에 튤립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튤립 모양>은 그렇게 같은 대상을 놓고도 늘 서로 다른 모양을 그릴 수밖에 없는 너와 나의 이야기다.
|
Choice | |
진공의 공명
<물안에서> 도대체 무엇을 봐야 할까? 홍상수의 스물아홉 번째 영화 <물안에서>는 내내 그러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화면 속의 시각 정보가 너무 많아서가 아니다. 반대로 프레임 안의 요소들을 뚜렷하게 식별하기 어려워서다. <물안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웃포커스로 촬영된 영화다. 초점이 인물이나 배경에 정확히 맞지 않아 프레임 전체가 뿌옇게 보인다는 뜻이다. 제목처럼 물 안에서 세상을 보는 것만 같다. 세부는 뭉개지고 윤곽은 흐릿하다.
|
Choice | |
루피 따라 수학여행
<장기자랑> 열여덟, 재능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나이였다. 타고난 재주가 많아서가 아니라 뭐든 할 수 있고 누구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했기에 모두 재능 넘치는 아이들이었다. 모델, 뮤지컬 배우, 래퍼 등 꿈은 각양각색으로 빛났다. 장래 희망이 로봇공학자였던 동수는 평소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를 즐겨 봤다.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수학여행을 떠난 동수가 끝내 제주도에 도착하지 못한 그날 이후 9년이 흘렀다. 동수 엄마 김도현 씨는 아들이 좋아했던 <원피스> 주인공 루피 피규어를 공들여 닦는다.
|
Choice | |
텅 빈 집
<흐르다> “부녀의 이야기이자, 가족의 죽음에 미숙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아주 느린 이야기” 김현정 감독은 <흐르다>를 부녀의 느릿한 이야기로 설명한다. <흐르다>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룬 여러 영화가 스크린을 채운 동안 아빠와 딸 사이를 천천히 바라보며 더디게 걸어온 작품이다. 모녀만큼 역동적이진 않지만 그 못지않게 복잡한 감정으로 얽힌 이 까다로운 관계를 영화는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흐르다>는 다가가는 대신 한발 물러선다. 돋보기를 들지 않고 멀리서 가족을 바라본다. 언뜻 평범한 답 같지만 감독의 전작 <나만 없는 집>(2017)과 <외숙모>(2020)를 떠올리면 이 방법의 특별함이 보인다.
|
Choice | |
환상의 전율
<파벨만스> 흔히 사랑을 교통사고에 비유한다. 아무리 전방 주시하며 경계해도 누가 와서 들이받으면 피할 도리가 없다. 나의 운전 실력과 조심스러운 태도, 계획된 경로까지 모조리 무력하게 만드는 한순간의 충돌. 이때 사랑은 통제 불가능한 사건이 된다. 어린 새미(마테오 조라이언 프랜시스드 포드)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미스터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아버지 버트(폴 다노)와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 미치(미셸 윌리엄스)의 손을 잡고 생애 처음으로 극장에 방문한 날이다.
|
Choice | |
죽음의 곶(串), 운명의 만(灣)
<이니셰린의 밴시> <이니셰린의 밴시>는 극작가로 먼저 유명세를 얻은 마틴 맥도나가 직접 쓰고 연출한 네 번째 장편 영화다. 현실의 다양한 재료들을 가져다 장르적 코드를 활성화하는 특기는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거대한 우화로도, 세밀한 블랙 코미디로도 읽을 수 있는 이번 영화는 베니스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여러 시상식에서 감독에게 각본상을 안겼다. 마틴 맥도나의 장편 데뷔작 <킬러들의 도시>(2008)에서 호흡을 맞췄던 브렌단 글리슨과 콜린 퍼렐의 조우만으로도 <이니셰린의 밴시>는 반가운 작품이다.
|
Choice | |
무르만스크 서곡
<6번 칸> <6번 칸>은 전혀 다른 두 인물이 동행하는 이야기다. 우연히 한 배를 타서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을 나눈 타이타닉호의 연인과 마찬가지로, 무르만스크행 기차에 몸을 실은 남녀에게도 이렇다 할 접점이 없다. 라우라는 외국인이고 대학생이다. 육체노동자인 료하에 비해 경제 상황이 나은 편이며 러시아에 얼마나 체류할지 확신할 수 없다. 료하는 흔히 상상할법한 러시아 남자의 전형처럼 보인다.
|
Choice | |
찰리의 소파
<더 웨일> 소파만큼 거대한 남자가 땀을 잔뜩 흘리며 헐떡이고 있다. 찰리(브렌든 프레이저)는 걷는 건 물론이고 앉은 자리에서 크게 웃는 것도 힘겨워한다. 비만으로 인한 울혈성 심부전을 앓는 탓이다. 제대로 숨쉬기조차 어려운 모양인지 그는 연신 쌔근거리고 그르렁댄다. “들어봐도 돼?” 오래전 이혼한 아내 메리(사만다 모튼)는 오랜만에 조우한 찰리에게 울분을 쏟아낸 뒤 묻는다. 광활한 바다를 누비는 덩치 큰 동물의 호흡을 연상케 하지만 사실 찰리의 가슴에서 들리는 건 죽음의 소리다.
|
Choice | |
말들의 풍경
<컨버세이션> 김덕중의 두 번째 영화 <컨버세이션>은 쓸모없는 대화의 쓸모를 탐구하는 작품처럼 보인다. 데뷔작 <에듀케이션>(2019)에서 성희(문혜인)와 현목(김준형)은 애써 대화를 청하거나 의도적으로 대화를 중단한다. 소통에 실패하는 관계를 비추며 인물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과 거리를 주시했던 전작과 달리, <컨버세이션>은 스스럼없이 대화를 시작하여 말과 이야기를 생산해내는 인물 사이로 진입한다.
|
Choice | |
사랑하라, 그러나 조심하라
<피터 본 칸트> 뮤즈를 향한 예술가의 사랑. 영화, 연극, 소설 등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이 보편적 테마엔 폭압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들은 평등할 수 없다. 예술가의 권력 앞에서 뮤즈는 너무도 쉽게 약자가 된다. 그러나 때로 사랑이라는 이상한 힘 때문에 이러한 불균형은 전복된다. 어떤 관계에서는 덜 사랑하는 사람이 강자다.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안 돼?” 피터(드니 메노셰)는 사랑을 갈구한다. 주인공의 이름을 고스란히 제목으로 삼은 <피터 본 칸트>는 사랑 때문에 부서지고 망가지는 어느 예술가의 초상이다.
|
Choice | |
비극의 매뉴얼
<다음 소희> <다음 소희>는 죽음을 다룬다.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이 콜센터에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실제 사건이 영화의 모티브다.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이 열악한 노동 환경에 내던져져 죽거나 다치는 현장실습생의 사연은 안타깝게도 우리 시대에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가 됐다. 뉴스, 시사 프로그램, 르포 기사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실태가 드러났지만 비극은 반복되는 중이다. 이토록 절망스럽고 답답한 현실을 극화할 때, 영화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
Choice | |
출렁이고 반짝이는
<애프터썬> <애프터썬>은 기억과 감각이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사실을 안다. 파편이 된 기억을 그러모으며 한 사람을 복원해가는 과정에서 영화는 몸을 일종의 공간처럼 활용한다. 소피의 몸은 비밀 상자 여러 개를 보관해둔 다락방이자 캘럼의 복잡다단한 내면으로 들어가는 복도다. 볕에 그은 피부는 따갑고 어깨와 등에 선크림을 발라주는 아빠의 손길은 부드럽다. 소피는 이러한 촉각을 통해 물놀이를 재촉하던 아빠가 얼마나 유쾌했는지, 딸에게 어떻게 관심을 표현했는지 되새긴다.
|
Choice | |
혼자서 부를 노래
<라인> <라인>은 요란한 충돌로 시작한다. 흩날리는 악보, 부서지는 맥주병, 한 여자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채 악다구니를 쓰며 다른 여자에게 달려드는데 놀랍게도 둘은 모녀다. 허구한 날 밖에서 치고받느라 몸에 성한 구석이라곤 없는 첫째 마르가레트(스테파니 블렁슈)는 엄마 크리스티나(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를 향해 길길이 날뛴다. 열두 살 막내 마리옹(엘리 스파그놀로)이 언니를 막아보려 하지만 역부족. “이놈의 집구석 진짜 돌겠다!” 쌍둥이를 임신한 둘째 루이즈(인디아 헤어)의 푸념은 모녀의 대립을 해소할 뾰족한 방도가 없다는 자인이다. 엄마를 때린 딸과 딸을 내쫓은 엄마, 옳고 그름을 따지기엔 갈등의 골이 너무 깊다.
|
Choice | |
그래도 괜찮을까?
<유랑의 달> <유랑의 달>은 <훌라 걸스>(2006), <악인>(2010), <분노>(2016) 등을 연출한 이상일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신작. 원작인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시종 “나도 언젠가는 위험한 사람이 될까?”라는 의문으로 물들어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분방한 성정이나 격렬한 충동, 유년의 불행한 기억 같은 것들은 존재의 불안이 되어 현재와 미래를 흔들어댄다. 그러나 숨 쉬며 살아있는 한 “앞으로도 쭉 이것들을 이고 지고 걸어가야” 한다. 다른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자신만의 짐을 지고 고군분투한다는 점에서 사라사와 후미는 동류다. 영화에서 재차 반복되는 “어린 시절부터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는 시구가 그러한 지점을 좀 더 분명히 강조한다.
|
Choice | |
불행도 스펙
<해시태그 시그네> 투렛 증후군을 안고 살아가는 일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 인기를 모은 유튜버가 있다. 채널 개설 한 달 만에 구독자는 30만 명을 훌쩍 넘겼고, 힘겹게 젓가락질하며 라면을 먹는 영상의 조회수는 무려 400만 회에 달했다. 하지만 ‘감동 스토리’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거짓으로 장애를 꾸며냈다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도전과 용기를 응원한다는 댓글창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결국 유튜버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증상을 과장했다고 시인해야만 했다. 2년 전 한국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해시태그 시그네>의 시그네(크리스틴 쿠아트 소프)가 접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
Choice | |
네버 엔딩 스토리
<3000년의 기다림> 친구 셋이 바다에서 표류 중에 소원을 들어준다는 마법 물고기를 잡았다. 한 친구는 집에 가서 아내와 있고 싶다고, 또 한 친구는 자식들과 뛰어놀고 싶다고 말했다. 둘은 배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남은 한 명이 사라진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그들이 여기 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었다. 이 짧은 우화가 주는 교훈은? 소원과 관련된 옛이야기에는 꼭 함정이 있다는 것이다. 소원을 빈 사람은 해피엔딩을 맞이하기 어렵다. 소원은 반드시 대가를 동반한다. 서사학자 알리테아(틸다 스윈튼)는 눈앞에 정령 지니(이드리스 엘바)가 나타나자 그 사실을 떠올리고 입을 다문다.
|
Choice | |
예술 혹은 외설
<크레이지 컴페티션> <크레이지 컴페티션>의 원제는 ‘Competencia Oficial(Official Competition)’. 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을 가리키는 문구다. 이는 영화 속 인물들이 집결한 일차적 목표이기도 하다. “훌륭한 영화”는 어떻게 탄생하나? 관객을 만족시키고 평단을 전율시키려면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할까? 사실 움베르토가 생각하는 세기의 걸작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원작, 감독, 배우 모두 최고여야 한다.
|
Choice | |
황후의 고원
<코르사주> “내 본분은 우리 제국의 운명을 다스리는 것이고 당신은 그걸 대표하는 얼굴이 되면 되는 거요.” 합스부르크 왕가의 가장 유명한 여성이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초대 황후인 엘리자베트. <코르사주>는 인형처럼 앉아서 꽃같이 웃던 엘리자베트(비키 크립스)의 특별한 1년을 흥미롭게 재구성한다. 영화는 물에 잠긴 엘리자베트의 모습으로 문을 연다. 40세 생일을 앞둔 그녀는 왕족의 규범과 세간의 시선에 짓눌린 듯 보인다. 욕조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몸무게를 재고 가느다란 허리를 만들기 위해 ‘코르사주(코르셋)’를 있는 힘껏 조이는 모습은 엘리자베트가 평생 외모 가꾸기에 집착했다는 일화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
Choice | |
빛이 있으라
<페르시아어 수업>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프리모 레비는 수용소 생활 일주일 만에 청결의 욕구를 상실했다고 고백한다. 그가 씻지 않고 멍하니 세면장을 배회하자, “마음씨 좋은 사람” 슈타인라우프가 다가와서 타이른다. “이곳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이야기를 하기 위해, 똑똑히 목격하기 위해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아우슈비츠에서 절멸을 곱씹으며 혼란스러워하는 레비와 어떻게든 야만에 휩쓸리지 않으려 안간힘쓰는 슈타인라우프. <페르시아어 수업>의 질(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은 그들 사이에 위치한다.
|
Choice | |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만인의 연인> 어느 날 동네에 홀연히 나타난 소녀. 새침하고 예쁜데다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풍기는 그 아이는 순수한 소년의 마음을 뒤흔든다. 소년은 시름시름 앓는다. 사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첫 키스를 쟁취한다. 그러나 소녀는 곧 떠나 다른 남자 품에 안기고 소년은 슬픔 속에서 성장한다. 해묵은 소년 성장담의 한 페이지는 언제나 애틋한 첫사랑의 일화로 채워진다. 그저 지나간 추억 정도로 갈무리되면 좋을 텐데 <건축학개론>(이용주, 2012)의 그 유명한 대사처럼 소녀는 너무 쉽게 ‘썅년’이 된다.
|
Choice | |
고요한 게임
<창밖은 겨울> 단편 <다정함의 세계>(2017), <경화>(2018) 등을 연출한 이상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창밖은 겨울>은 이별 속에서 느리게 전개되는 새로운 사랑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고향 진해에 내려와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기 전에 석우는 두 번의 이별을 경험했다. 서울에서 함께 영화를 만들던 애인 수연(목규리)과 헤어졌고 그 일로 석우는 영화마저 관뒀다. 표면적으론 이미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석우는 애인과도, 영화와도 완전히 헤어지지 못했다. 수연이 놓고 간 물건이라 짐작하며 고장 난 MP3를 어떻게든 고치려 애쓴다. 방안 책장엔 아직 정리하지 못한 영화 책과 DVD가 여전히 빼곡하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석우를 대변하듯 영화의 시공간은 2000년대 초반쯤에 멈춰버린 모양새다.
|
Choice | |
사랑의 탄원
<파이어버드> <파이어버드>는 금지와 억압 속에 피어난 사랑을 다룬다. 냉전이 한창인 1970년대, 소비에트 연방이 점령한 에스토니아 공군기지엔 휘청대는 청년들이 복무 중이다. 이들은 딱 봐도 어리고 서툴다. 국가의 부름에 답하긴 했으나 진정 군인의 길을 꿈꾸는 이는 없어 보인다. 밤이면 담 넘어 바다에 뛰어드는 세르게이(톰 프라이어)는 작은 카메라에 들꽃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며 전역을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부대에 새로 부임한 전투기 조종사 로만(올렉 자고로드니)이 세르게이의 마음에 불꽃을 심는다.
|
Choice |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여느 가족 드라마와 다른 길을 걷는다. 갈등에 시달리던 모녀가 차츰 거리를 좁히면서 용서에 다다르는 여정은 어찌된 일인지 성사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상충하는 수경의 욕망과 이정의 욕망은 스릴러 영화의 긴박한 흐름과 비슷하다. 수경은 이정과 무관한 자기만의 행복을 되찾으려 하고, 이정은 과거 따위 상관없다는 듯 거침없이 전진하는 수경을 순순히 바라봐줄 마음이 없다. 잘라 말하면, 모녀의 싸움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
Choice | |
이토록 기이한
<탑> <탑>은 단일한 장소에서 전개되는 영화다. 도심에 위치한 이 건물은 식당, 작업실, 주거 공간 등으로 이뤄져 있고, 각 층은 나선형의 가파른 계단으로 연결돼있다. 카메라는 사람들이 들고나는 중에도 끈질기게 건물에 머문다. 건물 내부를 비추거나, 간혹 건물 앞 언덕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술집, 출판사, 카페와 같은 장소는 늘 중요하게 다뤄졌지만, <탑>의 경우처럼 유일한 배경이 됐던 적은 없다. 그런 점에서 <탑>은 이례적이다.
|
Choice | |
부족한 우리?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영태(박송열)와 정희(원향라)는 생활고에 시달린다. 연인이었던 둘은 부부가 됐으나 각자 짊어졌던 가난 또한 곱절이 됐다. 대리운전과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계비를 마련하는 영태와 정희는 “존재를 지워야 하는” 노동과 지긋지긋한 금전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구직 활동을 병행하지만,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외려 위기에 거듭 직면한다. 유일한 재산인 카메라를 아는 형에게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놓인 영태,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카드 값을 막을 방도가 없자 급한 마음에 사채를 쓴 정희. 박송열 감독의 두 번째 작품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자연스레 전작 <가끔 구름>(2019)의 명훈(박송열)과 선희(원향라)를 떠올리게 한다.
|
Choice | |
오사카, 평양, 그리고 제주
<수프와 이데올로기> 양영희 감독에게 가족은 단지 애정 어린 공동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대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벗어날 수도, 끌어안을 수도 없는 존재. 가족이 거쳐온 세월은 현대사의 암울한 역사와 고스란히 맞물리고, 그 안에서 싹튼 의심과 불안은 영화를 만드는 동력으로 작동했다. 10년 동안 아버지와 카메라를 매개로 대화하며 완성한 <디어 평양>(2006), 평양에 사는 조카의 눈을 빌려 북한 사회를 다각도로 관찰한 <굿바이 평양>(2011)에 이어 감독은 10년 만에 세 번째 다큐멘터리를 내놓는다. 3부작을 마무리하는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4.3 체험자인 어머니 강정희의 증언과 기억을 따라가는 동시에 감독이 남편 아라이 카오루를 만나 새로운 가족을 꾸리는 과정을 담는다.
|
Choice | |
침묵은 당신을
<애프터 미투> “내 침묵은 나를 지켜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침묵도 당신을 지켜주지 않을 것입니다.” 흑인 레즈비언 시인이자 페미니스트 작가인 오드리 로드는 「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바꾼다는 것」이라는 짧은 글에서, 말하는 용기와 소수자의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침묵을 깨고 말하는 행위야말로 사회의 변화를 불러오며 서로 다른 여성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라고 평한다. ‘피해자일 뿐만 아니라 전사(戰士)’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이때 중요한 건 여성을 침묵하게 한 횡포와 억압의 서사만이 아니다. ‘말하기’에 기어이 도달하고야 마는 주체의 의지와 힘에 집중할 때, 이전까지는 상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
Choice | |
꿈에도 소원은
<2차 송환> 해방 10년 후 태어난 김동원 감독에게 한국전쟁은 그리 먼 과거가 아니다. 부모는 평안북도 강계 출신이고, 어릴 적 거실에는 인풍루 정경을 담은 그림이 걸려 있었다. 물론 한반도에 38선이 그어지고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들어선 것도,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전쟁이 휴전 협정을 맺기까지 3년이 걸린 것도 감독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 벌어진 일이다. 다만 부모와 친척이 오래 간직해온 비밀, 국가보안법 존폐를 둘러싸고 지난하게 거듭되는 소란, 우연으로 시작해 어느덧 떼어낼 수 없는 인연으로 삶에 자리 잡은 관계는 그에게 끈질기게 질문을 던졌다.
|
Choice | |
부유하는 주검
<달이 지는 밤> <달이 지는 밤>은 무주산골영화제가 ‘한국의 개성 있는 감독들을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해 시작한’ 제작 지원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과물로, 무주에서 무주 군민들의 참여를 통해 완성된 영화다. 프로젝트의 출발을 함께 한 감독은 김종관과 장건재. 각자의 리듬과 색깔로 영화 여정을 꾸려온 두 연출자는 공간과 소재를 느슨하게 공유하며 두 개의 단편을 만들었다. 각각 독립된 영화로 봐도 무방하지만, 두 단편은 보름달이 자취를 감추는 새벽 기운 아래서 하나로 만난다.
|
Choice | |
우리 이제 어디로
<홈리스> 두 사람 모두 스물을 갓 넘겼을까. 젊다기보다 어리다고 표현해야 할 얼굴엔 애티와 피로가 반씩 섞여 있다. 한결(전봉석)과 고운(박정연)은 갓난아이 우림을 데리고 모델 하우스를 찾는다. 널찍하고 깨끗한 침대에서 우림이 곤히 잠든 사이, 고운은 “이런 집 살면 진짜 아무 걱정 없겠다”고 중얼거린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그런 집에 살 가능성이 없는 부부는 걱정거리를 한가득 달고 산다. 한결 옆에는 커다란 캐리어와 짐 가방이 두 개씩 놓여 있다. 집을 나온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실은 집이 없어 떠도는 신세다.
|
Choice | |
물안경 쓰고 텀블링
<성적표의 김민영>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 2001)의 주인공은 교문 밖 세상에서 각자 고단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스무 살 아이들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뒤 만들어진 <성적표의 김민영>은 스물 언저리의 아이들이 따로 또 함께 겪는 그러한 멀미를 저만의 방식으로 다루는 영화다. 언제까지고 곁에 있을 것 같았던 친구들은 저마다의 상황에 적응하는 게 우선이라 상대에게 쉽게 소홀해지고, 안개처럼 희뿌연 앞날을 가늠해보는 일은 언제나 청춘을 풀 죽게 만든다.
|
Choice | |
정말 거기에 있었습니까?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은 2019년 상해국제영화제가 주최한 동아시아 감독 6인의 저예산 영화 제작 프로젝트 ‘Back To Basic: A Love Supreme’의 일환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이시이 유야는 각본과 연출은 물론, 프로듀서까지 겸하며 작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국내에는 개봉 시기상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2021)이 먼저 소개됐으나, 실제 촬영은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이 먼저 이뤄졌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청춘 남녀의 멜로드라마를 중심으로 사회에 내재한 우울과 허무를 파고든다는 점에서 감독의 전작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2017)와 나란히 놓인다.
|
Choice | |
아직 저 멀리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노르웨이 출신 영화감독 요아킴 트리에의 신작이자, 그의 데뷔작인 <리프라이즈>(2006)와 <오슬로, 8월 31일>(2011)을 잇는 오슬로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다. 방황하고 표류하는 청년들의 근거지였던 오슬로는 30대에 접어들고도 여전히 흔들리는 한 여성이 열성적으로 사랑하고 걷고 후회하는 무대로 영화 속에 담겼다. 잔뜩 찡그린 청년들을 비추던 무심한 빛은 조금 더 따스해졌고, 화면의 채도 역시 높아졌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분류에 걸맞게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럽다.
|
Choice | |
폭풍 속으로
<풀타임> 겨우 안도한 사람처럼 쥘리(로르 칼라미)는 어둠 속에서 나지막이 숨을 뱉는다. 카메라는 잠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살결과 눈꺼풀의 미세한 떨림을 그대로 비춘다. 이때뿐이다. 기상 알람은 ‘풀타임’ 노동을 알리는 스타팅 신호와 같다. 순식간에 고요가 깨지고, 짤막한 휴식도 끝나버린다. 동이 트지 않은 새벽, 쥘리는 이불에서 나오자마자 두 아이가 잠든 침실로 향한다.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부엌으로 들어가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욕조에 물을 받으러 가는 동안, 거실 곳곳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정리한다. 보일러는 오늘도 말썽이고, 아이는 엄마의 말에 고분고분하게 따라주지 않는다. TV 뉴스는 며칠째 이어지는 파리 시위 소식을 전하고 있다.
|
Choice | |
갱생의 길
<멋진 세계> 한 남자가 교도소 밖으로 나온다. 꼬박 13년 만이다. 새 출발을 축복하듯 흰 눈이 펑펑 쏟아지고, 교도원은 어린애를 달래는 투로 두 번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라고 당부한다. 남자의 이름은 미카미 마사오(야쿠쇼 코지), 뒷세계를 주름잡던 시절에는 ‘싸움꾼 마짱’이라 불렸다. 애초 순탄하게 흘러갈 삶은 아니었다. 게이샤로 일했던 엄마는 네 살배기 아들을 보육원에 맡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카미는 제 발로 시설을 뛰쳐나왔다.
|
Choice | |
문득 시작한 대화, 결국 뒤엉킨 시간
<모퉁이>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와 작별 인사도 없이 영영 헤어져 버린 일을 안타까워하는 이라면, <모퉁이>가 그려내는 이야기에 절로 마음이 움직일지도 모르겠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하면서, 마지막이 될 순간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쳐버리는 경험은 제법 보편적일 것이다. <모퉁이>는 그 순간을 잠시 붙들고 찬찬히 들여다보려는 안간힘이다. 혹은 이미 지나와 버린 시점으로 되돌아가 미완의 대화를 끝맺어보려는 바람이다.
|
Choice | |
그 섬에 가고 싶다
<베르히만 아일랜드> 스웨덴 출신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이 태어나고, 말년을 보냈으며, 죽어서 묻힌 섬 포뢰.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크리스(빅키 크리엡스)와 토니(팀 로스)가 이곳을 방문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영화감독 커플인 이들은 섬에 머물며 각자의 새로운 시나리오를 집필하기로 하는데, 순조롭게 여백을 채워나가는 토니와 달리 크리스는 좀처럼 방향을 찾지 못한다.
|
Choice | |
불타오르네!
<보일링 포인트> 고집불통 폭군일까. 영혼의 치유자일까. <보일링 포인트>를 이끄는 헤드 셰프 앤디(스티븐 그레이엄)는 어느 편일까. 위기를 거듭하며 아찔하게 내달린다는 점에서 <보일링 포인트>는 ‘키친 서스펜스’라는 수식에 걸맞다. 인물과 상황은 개별적이면서도 퍼즐 조각처럼 연결되어 있다. 자극하고 반응하면서 그들은 서로 도화선 역할을 하고, 크리스마스 저녁은 끝내 최악의 하루로 치닫는다.
|
Choice | |
끔찍한 X, 무력한 Y
<배드 럭 뱅잉> “소설이나 이야기와 달리 역사와 인생에는 피상적인 삶의 환희가 주는 교훈이나 행복을 담은 진의나 의의 따윈 없다. 역사를 들여다볼수록 인류에 대한 경멸과 암울한 세계관만 더 생겨날 수 있다.”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인 <배드 럭 뱅잉>의 2부는 ‘일화, 기호, 경이에 관한 소사전’으로 구성돼있다. ‘어린이’를 ‘부모들의 정치적 불모’라고 풀이할 정도로 냉소와 빈정거림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이 챕터에서, ‘역사’에 관한 기술은 더욱 어둡다. 교훈도 의의도 찾을 수 없고, 볼수록 경멸스럽고 암울해질 뿐이라니. 계속해서 지난 세기 루마니아의 궤적을 소재로 작업해온 감독에게 역사는 무궁무진한 비밀 이야기의 창고도, 삶의 지침을 깨닫게 하는 나침반도 아니다.
|
Choice | |
장악된 삶
<초록밤> 영화가 시작되면 녹색 타이틀이 화면을 한가득 채운다. 강렬한 오프닝 이후, 영화는 곧장 비우기를 택한다. 거대한 글자가 사라진 화면에서 즉각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무와 가로등이 빚어내는 기묘한 초록빛이다. 아마도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들 무렵인 듯하다. 나무는 푸른 잎사귀를 맞대며 우거지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는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
Choice | |
맨발의 청춘
<썸머 필름을 타고!>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의 교정, 소녀와 소년은 풋풋한 사랑을 무럭무럭 키워간다. 상대의 마음을 알지 못해 낙담하고 좌절할 때도 있지만 이들은 끊임없이 외친다. “사랑해!” <썸머 필름을 타고!>는 고등학교 영화 동아리 멤버들이 피땀 흘려 만든 화사한 로맨틱 코미디의 한 장면으로 문을 연다. 배우, 스태프 할 것 없이 모두가 만족하는 눈치다. 하지만 부원 맨발(이토 마리카)은 혼자 뿔이 나 있다. 시대극의 열렬한 팬이자, 10대 사무라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맨발에겐 이게 도통 진정한 영화로 안 보여서다.
|
Choice | |
우리라는 우리
<아이를 위한 아이> <아이를 위한 아이>는 <거인>(김태용, 2014) 연출팀과 <좋은 사람>(정욱, 2020) 조감독을 거쳐 데뷔한 이승환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선 인물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담아내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 양육자 없는 아이들을 향한 편견부터 보호종료아동이 마주한 곤경까지 다양한 사회 문제를 짚어내려는 노력 또한 엿보인다. 넷플릭스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2019) <보건교사 안은영>(2020) 등으로 눈도장을 찍은 현우석과 <경관의 피>(이규만, 2021) <그것만이 내 세상>(최성현, 2017) 등 다수 작품에서 아역으로 출연했던 박상훈이 호흡을 맞춘다.
|
Choice | |
서사와 감정을 제하고
<군다> ‘군다’는 영화 주인공인 돼지의 이름이다. 그러나 이 이름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떤 방식으로든 등장하지 않는다. <군다>는 인간의 언어가 배제된 동물 다큐멘터리다. 자막, 인터뷰, 보이스오버 내레이션 대신 영화를 채우는 건 자연의 소리와 자태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작은 축사에 누워있는 돼지 한 마리가 보인다. 지금 출산 중이다. 갓 태어난 새끼 돼지들은 곧 기운을 차리고 삐악거리며 젖을 빨고, 축사 밖에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돼지 가족의 모습이 주로 등장하지만, 닭과 소도 각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다.
|
Choice | |
착하지, 우리 딸
<로스트 도터> <로스트 도터>는 <나의 작은 시인에게>(사라 코랑켈로, 2019) <프랭크>(레니 에이브 러햄슨, 2014) <다크 나이트>(크리스토퍼 놀란, 2008) 등에 출연한 매기 질렌할이 배우로 경력을 쌓은 지 20여 년 만에 선보이는 감독 데뷔작이다. 소설 <나의 눈부신 친구>(2011)로 평단과 독자의 지지를 고루 얻은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동명 소설이 원작. 주연을 맡은 올리비아 콜맨은 인터뷰에서 원작을 “우리가 사회적으로 어떤 특정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 합의를 깨버린” 작품이라 평했다.
|
Choice | |
눈앞이 캄캄할 때
<컴온 컴온> 마이크 밀스는 <비기너스>(2011)와 <우리의 20세기>(2017)에서 부모를 최선을 다하는 어른으로 그렸다. 양육과 보호의 책임에서 물러서지 않으며, 어떻게든 가장 좋은 길을 찾아내려는 존재. 동시에 부모는 저마다 결함을 지닌 개인이자, 완벽하게 알기가 영영 불가능한 타인이기도 했다. 부모와 자식이 얼마나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관계인지 두루 파헤치면서, 밀스는 가족 공동체에서 발견하고 배운 것을 영화에 펼쳐놓았다. <컴온 컴온>은 그러한 여정 끝에 획득한 통찰 내지는 또 다른 다짐처럼 보인다.
|
Choice | |
안개가 불러낸 사랑
<헤어질 결심>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이 최초로 공개됐을 때, 박찬욱 감독에게 영화의 수위에 관한 질문이 날아들었다. 전작들과 달리 이번 영화에 강도 높은 폭력과 성적 묘사가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이었다. 감독은 왜 유독 본인에게만 그런 질문을 하냐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헤어질 결심>을 두고 어른들을 위한, 어른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엄청난 섹스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성숙한 인물들의 복잡한 심경을 다루는 감정의 영화라는 뜻이다. <헤어질 결심>은 자극적이고 강렬한 표현이 아니라 은근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차곡차곡 쌓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
Choice | |
내가 거울입니다
<니얼굴> <니얼굴>은 ‘성인이 되어서도 갈 곳도 할 일도 없었’던 27살 은혜 씨가 4천 명 넘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린 캐리커처 작가가 되는 과정을 담는다. 만화가 엄마의 화실에서 잡지 사진을 따라 그린 게 발단이 됐다. 엄마인 장차현실 작가는 은혜 씨의 그림에서 “내가 따라 하기 힘든 선, 가르칠 수 없는 선”을 발견했고, 은혜 씨는 매달 북한강을 따라 열리는 프리마켓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는 캐리커처 작가가 됐다. 카메라는 은혜 씨의 일상을 묵묵히 따라간다.
|
Choice | |
그랑 쥬떼!
<모어> “아니, 이천 원이 웬 말이야.” 검은색 튜튜를 입은 모어가 백스테이지에 들어서자마자 관객들을 흉본다. 가슴팍에서 지폐 두 장을 꺼내 내던지고, 등에 멘 날개도 미련 없이 벗는다. 하지만 잠시 후, 모어는 테이블에 나뒹구는 이천 원을 주워서 가방 속에 야무지게 챙겨 넣는다. 입에서는 지겹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무례한 관객은 어김없이 나타나며, 한바탕 쇼가 끝난 자리엔 구질구질한 삶이 남아 있다.
|
Choice | |
분노와 자책이 아니라면
<경아의 딸> <경아의 딸>은 미묘한 영상통화 장면으로 문을 연다. 연수(하윤경)는 최근 엄마를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경아(김정영)는 연수가 아기자기하게 꾸민 방을 보며 함께 웃음 짓다가도, 혼자 살게 된 딸이 걱정돼 잔소리를 시작한다. 특별한 것 없는 대화가 오가는 중, “근데 너 진짜 혼자 있는 거 맞지?” 하는 경아의 말이 순식간에 영화의 공기를 무겁게 끌어 내린다. 연수가 현관문까지 열어 옆에 아무도 없다는 걸 보여주고 나서야 영상통화는 평화롭게 마무리된다. 디지털 화면을 응용한 영화의 오프닝은 경아와 연수의 관계를 복합적으로 드러낸다.
|
Choice | |
누굴 찾는 거니?
<실종> <실종>은 핑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수평으로 마주 본 두 사람은 쉴 새 없이 공수를 반복한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랠리가 숨 가쁘게 이어지는 동안, 어느 편이 승리를 차지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구기 중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공을 사용하는 탁구. 1초에 평균 100회를 회전하는 이 빠른 공은 어디로 튈지 모르기에 무시무시하고, 손에 쥐면 금세 모습을 감추기에 의뭉스럽다. <실종>의 인물들은 맨몸에 라켓 하나 쥐고서 경기에 오른 선수와 같다.
|
Choice | |
못말리는 골육상전
<윤시내가 사라졌다> ‘모녀 관계’란 참으로 희한하다. 가족이 대개 그렇지만, 구성원 간에 형성되는 여러 조합 중에서 모녀는 특히 더 복잡한 감정으로 뒤엉킨 사이다. 엄마와 딸은 서로 미워하면서 사랑하고, 상대를 불편해하면서도 안락하게 여긴다. 서로에게서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보며, 상대의 행복과 불행에 무모하게 자기를 내맡기기도 한다. 왜인지 질문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
Choice | |
판도라의 역설
<브로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3년 만에 신작 <브로커>를 선보인다. 전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2019) 이후 일본 외 국가에서 제작한 두 번째 장편이자, 첫 한국 영화다. <환상의 빛>(1995)으로 데뷔한 이래, 30여 년간 부지런히 재능을 입증해온 거장의 새로운 도전. 여기에 송강호, 배두나, 강동원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합류하면서 <브로커>는 일찌감치 이목을 끌었다.
|
Choice | |
안드로이드 다이어리
<애프터 양> <애프터 양>을 관람하는 건 중고 장터에서 구입한 오래된 카메라를 열어보는 경험과 비슷하다. 이 우연한 조우를 카메라의 편에서 설명해보면 아마도 이럴 것이다. 현상되지 않은 필름 혹은 낡은 메모리 카드가 들어있는 무심한 광학 장치는 여러 소유자를 거치고 무수한 여행을 하며 인간 삶의 편린을 담는다. 사진이나 영상엔 셔터를 누른 이들의 시선이 반영돼있지만, 동시에 인간이 미처 알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한 수많은 요소 또한 들어있다. 기계는 그렇게 제 안에 누군가의 시간을 간직한 채로 세상을 떠돌다 또 다른 이를 만난다.
|
Choice | |
망각의 강 너머
<카시오페아> “저기 카시오페아. 제일 밝은 별. 저걸 찾으면 북극성도 찾아. 북극성을 찾으면 방향을 알 수 있어.” 지나(주예림)는 누구에게 별 보는 법을 배웠을까. 수진(서현진)은 그런 딸이 기특하다는 듯 웃는다. 지나 말대로 북두칠성이 지평선 가까이 내려갈 무렵이면, 하늘 높은 곳에서 ‘W’ 모양의 카시오페아 별자리가 형형히 빛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카시오페아 왕비의 일생은 파란만장하다. 남 부러울 것 없이 살던 그녀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딸 안드로메다를 제물로 바쳐야 할 위기에 처한다.
|
Choice | |
응답 없는 기도
<플레이그라운드>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운동장은 마냥 평화로운 놀이와 배움의 장이 아니다. 이들이 경험하는 운동장은 폭력이 난무하는 투쟁의 영토이자, 불평등을 미리 체감하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아이들이 가족 없이 사회와 접촉하는 첫 번째 장소 중 하나”인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벨기에 감독 로라 완델의 장편 데뷔작인 영화의 원제는 세계(Un Monde). 유년 시절 별다른 준비도 못 하고 맞닥뜨렸던 냉혹한 생태계가 그 자체로 얼마나 공고하고 거대한 하나의 세계다.
|
Choice | |
끝까지 살아남아
<오마주> 이마를 살짝 덮는 앞머리와 대충 손질한 단발, 그리고 뿔테 안경. <오마주> 속 지완(이정은)은 감독 신수원과 꼭 빼닮은 모습이다. 지완 또한 감독이다. 끈질기게 영화를 찍긴 했지만, 흥행에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피디 세영(고서희)은 부러움 섞인 눈길로 ‘천만 영화’를 가리키는데, 지완은 기가 죽기는커녕 심드렁한 눈치다. 지완에게 천만이라는 숫자는 비현실이다.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서, 욕심조차 나지 않는다.
|
Choice | |
그 누가 십자가를
<매스> <매스>는 별다른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부부를, 동그란 탁자에 둘러앉은 네 사람을 하나로 묶어버린 과거의 어느 참혹한 사건을 이야기 중심에 두고 있다. 계속되는 사소한 대화를 지나 어느 시점에 이르면 마침내 이들의 관계가 드러난다. 창문으로 온화한 햇살이 쏟아지고 벽 한가운데 커다란 십자가가 걸린 이 작은 방은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 부모의 대화를 위해 마련된 공간인 것이다.
|
Choice | |
목련 보러 살구 따러
<봉명주공> 2020년 봄,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에서 철거 공사가 시작된다. 내년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 듯 목련은 유난히 탐스럽고, 주민들은 새 보금자리를 찾아 하나둘씩 떠나간다. <봉명주공>은 어수선하면서도 한적한 분위기가 감도는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는 동시에, 그곳에 찾아온 방문객의 뒤를 조용히 따른다. 카메라를 든 두 사람은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지난 계절을 떠올린다.
|
Choice | |
사랑을 믿나요?
<파리, 13구> 자크 오디아르가 10년 전에 선보인 <러스트 앤 본>은 한 남자의 고백으로 끝난다. “사랑해.” 남자로서는 최초의 고백을 감행한 순간이지만, 이는 타인의 고백에 시차를 두고 전하는 응답이기도 하다. 10년이 지난 후, 자크 오디아르는 <파리, 13구>에서 다시 한번 같은 결말을 연출한다. 인터폰 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여자가 안 들린다며 장난스레 되묻자, 남자는 크게 소리친다. “사랑해!”
|
Choice | |
퇴로는 없다
<크로스 더 라인> 이토록 운 나쁜 날이 또 있을까? <크로스 더 라인>에 담긴 다니(마리오 카사스)의 하룻밤은 그야말로 악몽과 같다. 낯선 사람과의 돌연한 만남은 그저 시작에 불과할 뿐, 그는 단 하루 만에 폭행, 살인, 도주로 점철된 잔인한 여정의 주인공이 된다. 계속해서 위기의 발생과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다니는 언뜻 게임의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듯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가능성을 밀어붙이는 대신, 다니에게 크고 작은 서사를 부여해 관객의 정서적 이입을 꾀한다.
|
Choice | |
수레바퀴 아래서
<우연과 상상> <우연과 상상>은 긴 호흡의 작품을 주로 만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이례적으로 시도한 옴니버스 영화다. 영화는 총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장은 서로 다른 배우들이 출연하는 독립된 이야기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드라이브 마이 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에서 채집한 몇 가지 이야기 조각을 느슨하게 환기하는 장편이라면, <우연과 상상>의 개별 이야기들은 하나의 세계로 연결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온다.
|
Choice | |
왜 이런지 모르겠다
<평평남녀> <평평남녀>는 <이매진>(2011) <파란 입이 달린 얼굴>(2018)을 연출한 김수정 감독의 신작. 그간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계급적 갈등을 들여다본 감독의 새로운 시도다. 한층 빠른 호흡으로 극을 전개하며 곳곳에 유머도 심어놓았다. 남녀의 연애를 화두로 삼아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 규칙을 활용하면서도,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그만의 예민한 시각은 여전하다. 캐릭터를 강조하는 영화에서 배우들은 단연 빛을 발하는 존재다.
|
Choice | |
기지와 미지
<소설가의 영화> <소설가의 영화>는 소설 쓰기를 멈춘 소설가의 시간과 그가 만든 영화로 이뤄져 있다. 홍상수의 근작들이 그런 것처럼, 이 영화의 생김새 역시 단출하다. 눈에 띄는 시공간의 뒤틀림이나 구조의 복잡함은 여기 없다. 영화는 인물과 대화만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한없이 투명해 보이는 이 간단한 형식에도 어김없이 틈이 있다. 뭔가 궁금해지고 어딘지 이상한 게 있다고 느끼게 된다는 뜻이다. 불일치, 어긋남, 변화, 자리바꿈, 우리가 뭐라고 부르든 간에, 세계의 낯선 모습을 감각하게 하는 일련의 원리는 홍상수 영화의 확연한 특징이다.
|
Choice | |
글의 집, 삶의 터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는 기획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출판의 전 과정을 소화하는 파주출판도시의 역사를 다룬다.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출판계는 불온한 사상을 전파하는 그룹으로 치부됐고, 출판은 산업으로도 예술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영역에 머물렀다. 자연스레 출판인들은 검열에서 벗어나 출판의 자유를 획득하는 동시에, 출판이 새로운 문화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구조적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
Choice | |
다락방 민달팽이
<태어나길 잘했어> 춘희(강진아)의 팔자는 시작부터 좀 꼬였다. 부모님은 춘희를 봄(春)에 태어난 기쁨(喜)이라 부르려 했지만, 출생 신고 담당 공무원은 서류에 기쁨 대신 계집(姬)이라 써넣었다. 그 탓에 운명이 살짝 어그러진 것일까. 춘희에겐 웃을 일보다 울 일이 훨씬 많았다. 중학생이 된 1997년, 불행이 본격적으로 밀어닥쳤다. IMF 경제 위기로 온 나라가 휘청였고, 춘희 가족도 끝내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이듬해 2월, 춘희는 부모와 집을 한꺼번에 잃는다. 영화는 구체적 내막을 일러주지 않지만 춘희를 일종의 생존자로 표현한다.
|
Choice | |
재기의 딜레마
<복지식당> 재기(조민상)는 ‘초보 장애인’이다. 심각한 교통사고로 수술한 그는 이전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눈을 뜬다. 다리를 심하게 다쳐 휠체어가 없으면 이동이 어려운 데다, 왼팔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이건 일시적 부상이 아니라 영구적 장애다. 현실은 가혹하지만, 재기는 어떻게든 적응하고 새 삶을 꾸려나가려는 의지의 청년이다. 새로 취직해서 돈도 벌고 싶고, 여태껏 고생한 누나의 짐도 덜어주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복지식당>은 “하루아침에 장애를 얻게 되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물음에 지극히 현실적으로 답한다.
|
Choice | |
비밀과 거짓말
<나의 집은 어디인가>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냈고, 무자헤딘이 고국을 장악하자 목숨을 걸고 도망쳤다. 가족은 모두 죽었으며, 홀로 미성년 난민 신분으로 덴마크에 정착했다. 동급생들 사이에선 그가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걸어서 탈출한 거라는 소문도 돌았다. 최대한 말을 아끼고 살아왔다는 그의 이름은 아민, <나의 집은 어디인가>의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덴마크 출신 영화감독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이 그의 오랜 친구 아민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과 기록 영상으로 재구성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
|
Choice | |
이것만 기억해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영속적 사랑, 절대적 사랑. 루이스 웨인(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사랑’은 불가능하지 않다. 아내 에밀리 리처드슨(클레어 포이)은 그의 삶을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단박에 바꿔놓았다. 나날이 새롭고 더없이 근사한 사랑의 행로에 취한 루이스에게 에밀리는 세상이란 본래 아름다운 것이라 답한다. “이것만 기억해. 아무리 인생이 고되게 느껴져도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영화의 원제는 <The Electrical Life of Louis Wain>, 루이스 웨인의 전기적 삶이다.
|
Choice | |
콜트-콜텍 4464
<재춘언니>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남자가 진지하게 대사를 읊는다. 엄숙한 분위기가 감도는 무대, 마침 그 뒤편에서 다른 이가 엉거주춤 걸어 나온다. 머리에는 화관을 썼고, 몸에는 흰 드레스를 걸쳤다. 불룩한 배 앞에 두 손을 공손히 모은 그에게 햄릿이 말한다. “오, 사랑스러운 오필리어로구나!” 일순 객석에서 못 참겠다는 듯 웃음이 터진다. 오필리어를 연기하는 남자의 이름은 임재춘.
|
Choice | |
어머니의 모든 것
<패러렐 마더스> <페인 앤 글로리>(2019)에서 유년의 기억을 더듬으며 한 인간의 내밀한 이야기를 펼쳐놓았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고통과 영광을 양손에 쥐고 내면의 여행을 했던 그가 다음 행선지로 정한 곳은 ‘엄마들’의 집이다. 이번 여정은 개인을 넘어서는 사회와 역사의 탐구이자, 거친 세상에 얼굴을 맞대고 자식을 키워낸 여자들에 관한 소고다. 알모도바르의 영화답게 이야기는 멜로드라마의 줄기 위에 꾸려진다.
|
Choice | |
밑바닥 개싸움
<뜨거운 피> <뜨거운 피>는 『고래』(2004)와 『고령화 가족』(2010)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천명관의 감독 데뷔작이다. 동료작가 김언수의 동명 소설을 감독이 직접 각색했으며, 가상의 지명인 구암을 포함해 거의 대부분의 설정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사회와 역사의 가장자리에서 생계를 위해 분투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뜨거운 피>는 천명관의 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2012),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2016) 등과 궤를 함께 한다. 한편, 건달을 앞세운 느와르는 천명관이 영화 연출을 준비하며 줄곧 몰두해온 소재이기도 하다.
|
Choice | |
폐허가 묻다
<고양이들의 아파트>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아파트 재건축이라는 또 다른 재난을 기록한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로 데뷔한 후, <말하는 건축가>(2012) <말하는 건축 시티: 홀>(2014) <아파트 생태계>(2017)로 ‘건축 3부작’ 다큐멘터리를 선보인 정재은 감독의 신작.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도시와 공간에 밀도 높은 관심을 표현했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한때 아시아 최대 대단지였다는 자부심”을 간직한 둔촌주공아파트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
Choice | |
궁정에서 온 편지
<스펜서> 영국 왕가가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는 샌드링엄 별장은 갖가지 규칙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몸무게를 재야하고, 난방 없이 담요만으로 추위를 피해야 한다. 모든 식사와 행사에는 정해진 의복을 입고 참석해야 하며, 여왕보다 늦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의문은 부드럽게 묵살당한다. 그런 것들을 왜 지켜야 하느냐고 묻는 건 여기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건 유구한 전통이고, 전통에는 예외가 없으니까. 이것만으로도 이미 버거운 왕세자비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겐 하나의 규칙이 더 적용된다.
|
Choice | |
체험된 몸
<레벤느망> “그저 사건이 내게 닥쳤기에, 나는 그것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황금사자상을 받은 오드리 디완의 <레벤느망>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놀라운 에세이 『사건』(2000)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여기서 사건이란 작가의 임신 중단 경험을 일컫는다. 중절 수술의 당사자는 물론이고 의사와 조력자까지 강력하게 처벌되던 1960년대의 프랑스, 원치 않는 임신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롭게 분투했던 작가의 내면이 차갑고 선명한 문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
Choice | |
아무도 몰랐던
<소피의 세계> ‘소피의 세계’를 여는 것은 수영(김새벽)의 목소리다. 창밖으로 희끄무레하게 눈이 쌓인 인왕산이 내다보이는 어느 겨울날, 수영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소피(아나 루지에로)의 블로그를 발견한다. 여행한 나라별로 사진과 글을 정리해놓은 블로그에는 소피가 서울에서 나흘간 머물렀던 재작년 가을의 기록도 담겨 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녀가 뭐라고 썼는지 궁금해서 하나씩 읽어보기로 했다.” 당황과 설렘이 동시에 묻어나는 수영의 목소리가 잦아들면, 영화는 2020년 10월 23일로 돌아간다. 이제 창문 저편에 보이는 인왕산에는 흰 눈이 쌓이는 대신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고, 테이블에 턱을 괸 채 노트북을 들여다보던 수영의 자리엔 소피가 앉아 있다.
|
Choice | |
머라캐도 내 이름은
<보드랍게> ‘피해자의 말하기’는 숨겨진 폭력을 드러내고 그것에 맞서는 강력한 저항 수단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부터 미투 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은 다양한 피해가 가시화되고 공론화될 수 있던 것도 모두 그러한 증언 덕분이었다. 생존자들의 목소리에는 역사가 배제하고 누락한 세부를 살려내는 힘이 있다. 우리는 그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의 의뢰로 제작된 박문칠 감독의 <보드랍게>는 김순악의 말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면서 그러한 질문을 함께 던지는 다큐멘터리다.
|
Choice | |
로맨틱 펀치 드렁크
<리코리쉬 피자> <리코리쉬 피자>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 세계에서 다소 이질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이런저런 영화에 아역배우로 활동하는 15세 소년 개리(쿠퍼 호프만)와 이런저런 임시직을 전전하며 장래에 관해 별다른 생각이 없는 25살 알라나(알라나 하임)는 폴 토마스 앤더슨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청춘과 성장, 사랑이라는 평범하고 긍정적인 키워드를 감독의 영화 세계 속에 유쾌하게 안착시킨다.
|
Choice | |
오래 생각한 끝
<온 세상이 하얗다> “죽어야지. 오늘은 죽어야지.” 모인(강길우)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죽기를 다짐하고, 그것을 잊은 채 잠자리에 드는 남자다. 기억을 잃는 이유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다. 생의 흔적이 말라붙은 그의 집엔 소주병과 밧줄만 가득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화림(박가영)도 종일 술을 마신다. 슈퍼에 들러 술을 사고, 방에 앉아 명상하고, 가끔 이유 없이 눈물 한줄기 흘리는 게 일과다. 화림은 모인처럼 기억을 잃진 않으나 거짓말을 한다. 매번 이름과 직업을 새로 꾸며낸다. 어느 날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후로 둘은 같이 술을 마신다. 모인은 종종 화림을 잊어버리지만, 가까운 사이라는 화림의 말을 그럭저럭 믿는다. 그러더니 둘은 죽기 위해 함께 길을 떠나기로 한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
Choice | |
바쿠스의 잠언
<어나더 라운드> <어나더 라운드>의 원제는 ‘Druk’, 덴마크어로 음주라는 뜻이다. ‘어나더 라운드’ 역시 술 한 잔씩 더 돌린다는 의미로 쓰이는 관용어구다. 제목은 이처럼 영화의 주제가 술이라는 걸 선연히 드러내고 있지만, <어나더 라운드>의 네 남자가 처음부터 술꾼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건 아니다. 주정뱅이와는 거리가 먼 이 중년 남성들은 알코올을 계기로 변화를 경험한다. 뻣뻣한 일상엔 활력이 돌고, 이전엔 미처 욕심내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도 엿본다. 물론 술은 술인지라, 좋은 일만 일어나진 않는다. 쓰고 아픈 사건들에, 돌이킬 수 없는 슬픈 일까지 벌어진다.
|
Choice | |
빌어먹을, 액션!
<프랑스> <프랑스>의 무대는 진실보다 화제가 중요한 뉴스의 세계이고, 영화의 주인공은 그 세계의 흥행을 책임지는 스타 기자다. 프랑스 드 뫼르(레아 세두)는 스튜디오에 정치인을 초대해 토론하고, 분쟁지역에 나가 직접 취재하며, 촬영과 편집까지 능숙하게 지휘한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는 말이 딱 맞다. 게다가 어찌나 유명한지 세상 모두가 프랑스를 단번에 알아보고 다짜고짜 사진을 찍으려 든다. 그들에게 언제나 근사한 미소를 선사하는 것 또한 그녀의 일이다. 이처럼 프랑스가 온 세상을 바쁘게 오가는 동안, 영화엔 뉴스 제작의 이면이 담긴다.
|
Choice | |
기다려요, 기다려야 해요
<드라이브 마이 카>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2014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창작된 영화다. ‘드라이브 마이 카’ 외에 ‘셰에라자드’와 ‘기노’ 등 하루키가 쓴 개별적 이야기는 영화의 서사 안에 녹아들어 흥미로운 대화를 나눈다. 이와 함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등의 레퍼런스가 교차하는 영화는 이야기 자체에 관한 생각으로 이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이야기는 우리 안에 어떤 방식으로 잠재되는가. 잠재된 이야기는 언제 깨어나고 언제 죽는가.
|
Choice | |
영속하는 풍경
<끝없음에 관하여> 부둥켜안은 연인이 잿빛 구름 위를 떠다닌다. 둘의 얼굴은 비감에 잠겼으나, 화면 전체엔 초월적 분위기가 짙다. 묘사할 순 있지만 해설하긴 까다롭다. 샤갈의 그림을 똑 닮은 이 기묘한 오프닝은 <끝없음에 관하여>를 근사하게 요약한다. 회색빛 황량한 배경과 울상지은 인물이 끝없이 나열되는 영화는 우선 세속의 풍경에 가까이 닿아있다. 그러나 그 광경을 멀찍이서 미동 없이 바라보는 카메라와 화면 외부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는 여기에 영속의 감각을 부여한다
|
Choice | |
그분은 포기하지 않았다
<해피 아워>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하마구치 류스케는 센다이에 머물며 다큐멘터리 연작을 만들었다. <파도의 소리>(2011), <파도의 목소리: 신치마치>(2013), <파도의 목소리: 게센누마>(2013), <노래하는 사람>(2013)은 감독이 재난 이후를 살아가는 도호쿠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한 기록이다. 이후 그는 다음 영화 제작을 위해 고베에서 즉흥연기 워크숍을 열었고, 그곳에서 만난 네 여성에게 영감을 얻어 ‘신부들(Brides)’이라는 가제를 단 각본을 썼다. 일본 사회를 살아가는 30대 후반 여성들의 일상과 삶의 곤란을 담은 이 이야기는 워크숍에 참여한 비전문 배우들과의 협업을 통해 317분짜리 영화로 완성됐다. 2015년 제68회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네 명의 주연배우 모두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해피 아워>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
Choice | |
이종 변태 광시곡
<티탄> 데뷔작 <로우>(2016)에서 극도의 식인 욕망을 다루며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 쥘리아 뒤쿠르노의 두 번째 영화. 올해 영화제 상영 당시, <티탄>은 연일 화제에 올랐다. 적지 않은 관객이 관람을 중도 포기했고, 심지어 기절하여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기사도 나왔다. 경악과 찬사가 팽팽하게 맞붙은 끝에, 쥘리아 뒤쿠르노는 제인 캠피온에 이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두 번째 여성 감독이 됐다.
|
Choice | |
전쟁 없는 세상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은 김환태 감독의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 연작의 세 번째 작품이다.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부터 등장한 청년들의 양심적 거부 선언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그 사건적 행위들이 있을 때마다 불거지는 명사 또는 전문가들의 찬반양론을 소개하는 저널리즘과는 다른 위치에서 그것을 다루고 있으며, 그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부각하며 그들에게 피해자 또는 희생자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데도 관심이 없다.
|
Choice | |
채찍, 신이 허락한 도구
<베네데타> <베네데타>는 실존 인물의 서사를 바탕으로 한 실화 영화다. 17세기 초에 일어난 실제 사건 기록에 바탕을 둔 주디스 브라운의 저서 『수녀원 스캔들 :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1987)이 원작이다. 어느 모로 보나 자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는 폴 버호벤이라는 제 주인을 만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방점은 적나라한 성적 묘사에만 있지 않다. <베네데타>는 버호벤의 영화가 육체의 쾌락과 고통을 드러내는 것만큼이나 정신의 쾌락과 고통을 건드려왔음을 인식하게 한다.
|
Choice | |
하늘이 무너져도
<왕십리 김종분> ‘왕십리 김종분.’ 왠지 거리의 실세를 이르는 것 같은 호칭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80대 노인, 왕십리역 11번 출구 앞에서 50년 넘게 장사 중인 한 노점상인이다. 영화는 그가 1939년생이라는 정보 정도만 자막으로 간단히 제시한 뒤, 말없이 그의 일상을 뒤따른다.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떼와 노점 문을 열면 어느새 오후. 느지막이 천막을 걷고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는 건 김종분의 오랜 습관이다. 오래된 나무 밑동처럼 대로변에 뿌리내린 그의 노점은 온갖 삶의 표정이 고스란히 담긴 소우주다. 고추, 호박, 가지 같은 반찬거리는 물론이고, 잠시 허기를 채워줄 찐 옥수수와 연탄불에 구운 가래떡까지 별걸 다 판다.
|
Choice | |
와일드 스위트 오리건
<퍼스트 카우> <퍼스트 카우>의 숲은 성공과 정착을 꿈꾸는 이들의 임시 거처다. 영화에 담긴 1820년대 미국 오리건은 기회를 찾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이들로 점차 북적대기 시작하는 땅이다. 서부 개척과 시장 경제가 막 움트는 시기, 아직 집마다 울타리가 다 쳐지지 않은 이곳에서 두 남자가 만난다. 어려서부터 홀로 떠돌았다는 유대인 쿠키(존 마가로)와 아홉 살에 교역선을 처음 탔다는 중국인 킹 루(오리온 리). 한밤의 숲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몇 년 뒤 재회해 작은 오두막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변화의 물살을 바라보는 둘 역시 남들처럼 이곳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미래를 꿈꾸지만, 원체 가진 게 없어 출발선에 서기조차 어렵다. 그런 그들에게 ‘첫 번째 소’가 찾아온다.
|
Choice | |
아직은 헤어지지 않기로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서울은 어지럽다. 자동차는 앞을 다투며 도로를 꽉 메우고, 사람들은 뭐가 그리 분한지 자꾸 화를 낸다. 택시 기사가 날 선 목소리로 불만을 터뜨리자, 츠요시(이케마츠 소스케)는 아들 마나부에게 안심하라는 듯 일러준다. “언제나 서로 이해하는 게 중요해.” 부자는 이 잿빛 도시에서 새 삶을 시작해볼 요량이다. 츠요시는 늘 이곳저곳을 떠도는 형 토오루(오다기리 죠)가 못미덥지만, 한국에서 사업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형의 말에 속는 셈 치고 서울로 건너왔다.
|
Choice | |
환멸의 도시
<사상> 1980년대 후반까지 부산의 최대 공업지대였던 ‘사상’. 공장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대표적 노후 도심이 되었지만, 10여 년 전부터 갖가지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 시작되면서 현재의 사상은 과거와는 또다시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사실 낡고 더러운 지역을 정비, 개선하겠다며 진행하는 이런 사업은 오랜 시간을 버텨온 건물을 모조리 부수고, 그곳에 살던 원주민을 전부 쫓아내고서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데, 우리는 자주 이런 사실을 잊어버린다. 10년 전 동료들과 설립한 오지필름을 기반으로 한국 사회의 소외되고 첨예한 대립의 현장을 묵묵히 기록해온 박배일 감독의 아홉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사상>은 개발이 낳은 황폐한 풍경을 비추면서, 그로 인해 삶의 향방을 놓쳐버린 두 사람에 주목한다.
|
Choice | |
벼랑 끝에서 유영
<당신 얼굴 앞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거두고 지금, 자기 얼굴 앞의 실체만을 제대로 보려는 영화는 어떤 형태로 존립할 수 있을까. 영화를 성립시키는 수많은 장치들을 최소화하고, 영화의 전제인 환영의 기교와 싸우며, 빈약한 사각의 틀 위에 ‘존재’ 자체만을 전면화해 남겨둘 수 있을까. 한 발자국만 더 떼면 ‘영화’의 영토가 아닐 벼랑 끝에서 영화 바깥이 아닌, 영화 안을 다시 새롭게 응시할 수도 있을까. 최근 홍상수 영화를 지탱하는 단출함과 투명함은 이 절박한 물음들에 닿아있다.
|
Choice | |
다 끝난 거 아니야?
<휴가> <휴가>에서 카메라는 내내 주인공 재복(이봉하)의 움직임을 쫓는다. 영화는 오직 그로 인해 존재하는 것 같다. 선인가구 해고 노동자 재복은 몇 안 남은 동지들과 기나긴 천막 농성 투쟁을 이어왔다. 5년에 걸친 이들의 싸움은 재판 패배라는 결과를 얻은 참이다. 농성장에 남은 세 사람은 짧은 휴가를 갖기로 한다. 재복은 서울을 떠나 두 딸이 사는 집으로 돌아온다. 농성장에서 사람들의 식사를 책임져왔던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가 없는 동안 방치되어 온 부엌이다. 그렇게 그는 부엌에서 부엌으로 이동한다.
|
Choice | |
지금이라는 선물
<종착역> 어릴 땐 모든 것이 모험이다. 약간의 돈과 얼마의 시간만 있으면 생각보다 훨씬 더 먼 곳까지 쉽게 갈 수 있지만, 늘 오가던 일상 공간을 벗어나는 일은, 그것도 부모의 허락이 없다면, 생각보다 훨씬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14살 소녀들이 집, 학교, 학원 다시 집으로 이어지는 뻔한 동선을 벗어날 용기를 낸 건 순전히 사진반 선생님이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나누어 주면서 내준 방학 숙제 때문이었다. “세상의 끝을 주제로 한 사진 공모전에 참여해 보자. 여름 방학 동안 세상의 끝을 찍어와 봐!” 세상의 끝이라니. 뭐 이런 숙제를 내준다니? 그냥 하지 말자. 안 하면 벌점 받을 거야. 뭘 찍어야 하지?
|
Choice | |
선의 끝, 악의 시작
<좋은 사람> 어느 고등학교 교실에서 지갑 하나가 사라진다. 담임인 경석(김태훈)은 CCTV를 확인한 후 세익(이효제)을 의심하지만, 자신의 반 아이들의 불신과 불화를 막기 위해 범인 찾는 걸 멈추고 사비를 털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급우 동국이 세익을 도둑으로 지목하자 경식은 세익을 불러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문을 쓸 것을 요구한다. 한편, 이혼한 경석은 갑작스레 전처 지현과 함께 사는 딸 윤희를 며칠 맡게 된다.
|
Choice | |
사랑은 왜 끝나나
<박강아름 결혼하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부부는 의리로 산다. 계약과 의무에 충실하다 보면 낭만적 사랑쯤이야 금세 후순위로 밀려나기 일쑤다. 적지 않은 이가 의심하고 경고하는 결혼, 한데 아름은 결혼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다. 아름은 오래 꿈꿔온 ‘결혼 프로젝트’에 겁 없이 뛰어든다. ‘박강아름 결혼하다’라는 영화 제목은 이 프로젝트의 주최자를 정확히 명시한다. 연애와 동거를 결정할 때 그랬듯, 아름은 이번에도 성만보다 한발 먼저 나선다. 비혼주의자였던 성만이 느닷없는 변화를 수긍하는 동안 아름은 재빨리 다음 목표를 정하고 추진한다.
|
Choice | |
뫼비우스 술래잡기
<우리, 둘> 노년의 사랑은 흔히 정열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그려진다. 머리가 허옇게 센 연인은 강렬한 끌림 대신 오랜 세월 이어 온 유순한 애정을 귀중히 여기며, 생의 끄트머리에 찾아온 이별을 원숙한 태도로 받아들인다. 그들의 사랑에는 모험이 끼어들 기미가 더는 없고, 이러한 미지근한 온도야말로 관계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작용한다. 70대 레즈비언 커플 니나(바바라 수코바)와 마고(마틴 슈발리에)의 가을을 뒤쫓는 영화 <우리, 둘>은 이와 같은 전형에 반기를 든다.
|
Choice | |
불가피한, 불가능한
<피닉스>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여자는 삶을 포기할 수 없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가까스로 생환한 가수 넬리(니나 호스). 친구 레네(니나 쿤젠도르프)의 도움으로 베를린에 거처를 마련한 그녀는 총상으로 참혹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수술하고, 자취를 감춘 남편 조니(로날트 제어펠트)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레네의 말처럼 조니는 배신자일까. 넬리는 조니와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
Choice | |
비탈에 서다
<강호아녀> 멀리 화산이 보이는 너른 들판, 두 남녀가 총 한 자루를 놓고 다툰다. 불법 무기를 빨리 없애라고 채근하는 여자에게 남자는 “이 바닥에서는 죽이지 않으면 죽어”라고 답한다. 남자가 말하는 바닥은 강호다. 여자가 “난 그 바닥 사람이 아니”라고, “영화를 너무 많이 봤네, 강호는 무슨. 지금이 무슨 옛날인 줄 알아?”라고 쏘아붙이자, 남자는 “사람이 있는 곳은 다 강호”라며 여자에게 방아쇠 당기는 법을 직접 알려준다.
|
Choice | |
난 정말 이해가 안 돼!
<까치발> <까치발>은 뇌성마비 징후가 보이는 딸을 거울삼아 감독이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다큐멘터리다. 권우정 감독은 전작 <땅의 여자>에서와 달리 카메라가 인물과 상황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개입하도록 놓아둔다. 이는 장애 자녀를 둔 여성/엄마(들)와 가족을 다루는 극명하게 상반된 태도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가족과 자신을 바라보는 감독의 복잡한 내면의 요동이 (감독 자신의 시점을 표상하는) 카메라를 통해 가감 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
Choice | |
비우고 껴안기
<인트로덕션> <인트로덕션>은 투박하다. 홍상수의 앞선 영화들이 줄곧 시간적, 공간적, 존재적 모호함으로 관객을 곤경에 빠뜨렸다면, 촬영과 편집까지 직접 도맡은 그의 스물다섯 번째 장편은 너무 투명해서 곤란을 안긴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이후, 「버라이어티」는 영화의 “복잡하지 않은 연대기”적 시간 구조를 짚었고, 「인디 와이어」는 “기본적으로 세 번의 포옹에 관한 이야기”로 <인트로덕션>을 요약했다. 여기엔 시공간을 나누고 비트는 형식적 실험도, 인물의 지위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의 변주도 없다.
|
Choice | |
교착과 만곡
<혼자 사는 사람들> 진아는 변화를 거부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직장에 출근한다.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며 하루에도 수백 통씩 전화를 받지만, 어떤 통화에서도 진짜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감정쯤이야 일찌감치 지웠다는 투로 그저 정해진 매뉴얼을 따를 뿐이다. 웃지도 울지도 않고 친절을 가장하며 “고객님”을 응대하는 진아의 태도는 기계적이다. 집주인은 정 없다는 타박을 쏟아냈지만, 회사에서 진아는 능숙하고 실적 높은 ‘에이스’로 박수 받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아는 무미건조한 표정을 유지한다.
|
Choice | |
폭력의 전이
<어른들은 몰라요> <박화영>(이환, 2018)의 ‘엄마’ 집은 가출한 10대들의 거처로서, 폭력적이고 잔혹한 집단의 질서를 한없이 흡수하는 곳이다. 아이들이 모여들어 담배 피우고 서로를 때리며 욕설을 주고받는 이곳은 외부와 단절된 그들만의 사회이자, 언젠가는 그들의 기억에서 잊힐 신기루 같은 공간이다. 이환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어른들은 몰라요>는 그 집에 불쑥 찾아들었다가 일순간 퇴장해버린 세진(이유미)의 다른 이야기를 상상한다.
|
Choice | |
아직 말하지 못한
<비밀의 정원> <비밀의 정원>에서 ‘비밀’은 서사의 굴곡을 만드는 설정이나 감정의 요동을 만드는 장치와 거리가 멀다. 비밀의 내용은 진지하게 다뤄지나, 비밀 그 자체가 극에 드리우는 명암은 그리 크지 않다. 그래서 이야기의 밀도가 종종 느슨하게 느껴지지만, 오히려 여기엔 인물이 깊게 호흡하고 충분히 생각에 잠길 여유로운 틈이 있다. 그 열린 틈이야말로 <비밀의 정원>이 비밀을 경유해 주시하려는 특별하고 고유한 지점이다.
|
Choice | |
끊임없이 반짝이는
<더스트맨> <더스트맨>은 타인과의 소통이 자신을 지키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말하는 동시에, 예술이 품은 위로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설득한다. 그리고 나누는 행위와 더불어 태산(우지현)은 세상으로 한 발짝 걸어 들어가고, 모아(심달기)는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단편 <내 차례>(2017) <대리시험>(2019) 등을 연출한 김나경 감독의 첫 장편으로,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세밀하게 표현하는 우지현과 싱그러운 에너지를 내뿜으며 빛나는 심달기의 연기가 조화롭다.
|
Choice | |
세상이 열린다
<자산어보> 시대의 질서에 맞서는 결기의 단독자, 다른 세상을 열망하는 집념의 공상가. 그들을 향한 이준익의 애정은 열네 번째 장편 <자산어보>에서도 여전하다. 때는 1801년,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즉위하자 신유박해가 시작된다. 사학(邪學)을 믿는 자들은 “인륜을 위협하는 금수와도 같다”는 조정의 하교에 따라 천주교 신자들은 내쫓기고 참수된다. 정약전(설경구)이 머나먼 흑산도로 유배를 떠난 사정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의 끝’에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
Choice | |
내 싸움입니다
<당신의 사월> 세월호 참사에 관해 발언하는 다큐멘터리는 대체로 사고 정황을 되짚으면서 사건 진상을 규명하는 데 집중해왔다.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피해자와 유가족의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은 전 국민의 애도로 확산했고, 이 과정에서 의무를 방기한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러한 추세나 경향은 불가피한 선택처럼 보였다. <다이빙벨>(이상호, 안해룡, 2014), <그날, 바다>(김지영, 2018)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이 참사의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원인 규명에는 미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유가족 대 국가, 피해자 대 가해자라는 대립 구도가 반복적으로 부각되는 동안, 모두가 겪은 아픔에는 ‘다른 말’이 끼어들 기회나 여지가 없었다. <당신의 사월>은 바로 그 '다른 말'을 뒤늦게 새겨듣는 다큐멘터리다. 여기엔 전문적인 항로 분석이나 답답한 청문회의 광경이 아니라, ‘세월호’와 함께 지나온 우리 삶의 여러 기억들이 있다.
|
Choice | |
가끔 빛이 필요한 까닭
<아무도 없는 곳> 허무에 잠식되지 않으려면 적정한 장소가 필요하다. 삶이 무의미한 돌림노래처럼 느껴질 때 달아날 곳, 집과 일터 외에 옷자락을 걸어두고 잠시 머물 곳.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곳을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이라고 칭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등장하는 소설가 창석(연우진) 역시 이러한 장소를 찾아다닌다. 슬픔과 불안, 무엇보다 허무에 가로막힌 그는 편안하게 잠들지 못한 채 빛을 찾아 어둠 속을 배회한다. 그가 커피나 술을 마시는 몇몇 공간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주고받는 대화 또한 “약간의 깨끗함과 질서”를 유지하며 창석이 삶을 견딜 수 있도록 돕는다.
|
Choice | |
그녀의 진짜 이름은
<스파이의 아내>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인 1940년. 일본 정부는 물자 비축, 출판 검열 등 강력한 통제 정책을 실시한다. 식민지에서 자행한 감시와 수탈은 이제 본토에서도 당연한 처사. 외국인 사업가는 긴급 체포되고, 도열한 군인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사람들은 양복 대신 국민복을 착용해야 한다. 모두가 전쟁 준비에 혈안이지만,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와 사토코(아오이 유우)만은 예외다.
|
Choice | |
맨몸으로, 온몸으로
<파이터> 윤재호 감독이 또 한 편의 강인한 탈북 여성 서사를 완성했다. 괴물 같은 생명력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중년 여성에 관한 다큐멘터리 <마담B>(2018), 역사적 비극이 낳은 가족의 복잡한 정체성을 캐묻는 극영화 <뷰티풀 데이즈>(2018)를 내놓은 윤재호 감독은 <파이터>에서 한층 더 건강한 기운으로 삶을 일구고 사랑을 탐색하는 여성을 앞세운다.
|
Choice | |
꿈에도 몰랐던
<정말 먼 곳> 박근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 <한강에게>(2018)처럼 <정말 먼 곳> 또한 특정 장소로부터 시작된 영화다. 이국적인 풍경과 다채로운 자연이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 이곳은 강원도 화천. 감독의 경험과 인연이 매개가 됐다는 점은 같지만, <정말 먼 곳>에 드러나는 공간의 양상은 <한강에게>와는 사뭇 다르다. 전작의 한강은 인물들의 추억이 곳곳에서 떠오르는 고유한 공간이자, 관객들 또한 사적 정감을 투사할 수 있는 강력한 현실적 특성을 지닌 장소였다. 반면 화천, 그중에서도 영화에 주로 담긴 산과 숲, 강과 호수 등은 현실과의 매듭이 거의 풀려버린 꿈의 자락이다.
|
Choice | |
사랑의 단층
<암모나이트> 역사 속에 묻힌 인물을 스크린에 불러오면서, 영화는 메리의 반복적 노동과 고독한 일상에 우선 눈길을 둔다. 거센 바람과 세찬 파도가 휘몰아치는 해안가 절벽에서 암석을 발견하고, 굴러떨어질 위험을 감수하며 그것을 채집한 다음, 세밀한 작업으로 화석의 표본을 만드는 것까지 전부 그의 일이다. 메리는 이 모든 과정을 다른 누군가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홀로 해낸다. 그의 손톱엔 언제나 때가 묻어있고, 집엔 불안한 얼굴로 연신 기침을 해대는 나이 든 어머니뿐이다. 메리의 삶은 주변의 풍광만큼이나 척박하고 황량해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여기엔 긍지가 있다.
|
Choice | |
불안과 충동의 무한 격발
<포제서> <포제서>는 신체 강탈이라는 SF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범죄 스릴러물이다. 비밀조직 ‘포제서’는 타깃 주변인의 몸에 요원의 의식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암살을 실행한다. 피가 낭자한 영화의 오프닝은 조직의 뛰어난 요원 타샤 보스(안드레아 라이즈버러)의 임무 수행과 복귀 과정을 보여준다. 거듭되는 임무와 폭력의 난장에도 불구하고, <포제서>는 팝콘을 들고 즐길만한 매끈한 액션 영화가 아니다. 어지러운 환각과 끈적한 신체 변형에 몰두해온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아들이자, 유명인의 질환을 몸에 주입한다는 아이디어로 주목받은 <항생제>(2012)의 연출자답게 브랜든 크로넨버그는 불안정하고 거추장스러운 육신에 주의를 기울인다.
|
Choice | |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한적한 도로 위, 운전대를 잡은 모니카(한예리) 뒤로 어린 남매가 보인다. 금세 책읽기에 빠져든 앤(노엘 케이트 조)과 달리 연신 창밖을 내다보는 데이빗(앨런 김)은 얼떨떨한 표정. 이들 가족은 이제 막 두 번째 이주를 감행한 참이다. 새로운 모험을 주장한 제이콥(스티븐 연)은 길잡이를 자처하며 앞서 트럭을 몰고 있다. 해안을 등지고 내륙 깊숙이 들어가는 제이콥과 모니카 가족, 미국에서 가장 기름진 땅이라는 아칸소는 이들 가족을 반겨줄 풍요의 대지인가.
|
Choice | |
상처의 그림자
<밤빛> <밤빛>은 오래전 요절한 가수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어제는 두 사람이 걷던 이 길을 이 밤에 나 혼자서 걸어가는데”로 운을 뗀 노랫말은 사실상 영화를 요약하는 문장과도 같은데, <밤빛>은 이를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 듯 계속해서 노래를 이어간다. 나직한 음성이 멈추는 순간, 카메라는 노래 속 주인공처럼 홀로 걷는 남자를 비춘다.
|
Choice | |
저는 아직 당신을
<라스트 레터> 편지는 때로 받는 이가 아니라 보내는 이를 위해 쓰인다.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었던 사연이나 오래도록 홀로 간직했던 진심을 편지에 실어 보내는 행위만으로, 엉켜있던 마음 한구석이 슬쩍 풀어지기도 하지 않던가. 중국과 캐나다 등지로 활동 무대를 넓힌 이와이 슌지 감독이 다시 일본에서 내놓은 근작 <라스트 레터>의 편지들도 그렇다.
|
Choice | |
진실의 움막, 사라진 애도
<빛과 철>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진실의 담화들은 종종 상충하고 모순된다. 낯선 실재의 흔적들이 끊임없이 출몰해 진실을 위협하면 담화의 주체들은 이를 외면하고 회피할뿐더러, 자신이 임의로 선택한 불완전한 진실에 더더욱 매달린다. 희주(김시은)와 영남(염혜란)은 어떠한가. 희주와 영남의 우연한 만남 이후 과거의 편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만, 두 여자는 사태의 전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사건을 파헤치는 희주와 사건을 감추려는 영남 모두 비극의 전모가 낱낱이 드러나길 바라지 않는다.
|
Choice | |
침묵하고, 부정하고
<살아남은 사람들> “영화에서는 모든 게 너무 간단해.” 극장을 빠져나온 클라라(아비겔 소크)는 불평한다. 유년의 대부분을 전쟁의 그늘에서 보낸 유대인 소녀가 영화만을 트집 잡는 건 아니다. 클라라의 눈엔 온 세상이 가짜 천지고 거짓투성이다. 레몬 없는 레몬차를 홀짝이며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 자신의 부모를 이미 죽은 자 취급하는 사람들, 클라라는 그들을 주저 없이 바보라 부른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정말 가짜에 만족하고 거짓에 놀아나는 바보일까.
|
Choice | |
난쟁이 선언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영화를 공개할 시점을 고려했을 때, 언제든 적절한 시기인 거다. 불행히도.”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을 앞두고 이태겸 감독은 한국 사회의 노동 환경을 비관한 바 있다. 민영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효율성은 지고지순한 가치라는 세상의 아우성. 그 속에서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지를 영화는 묘사하는 동시에 이러한 비극이 예외 상황이 아님을 강조한다.
|
Choice | |
바보도 죄인도 아닙니다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민규(은해성)는 연일 궁핍에 시달린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선배의 연락을 피하기 일쑤. 밀린 공과금은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었고, 그런 사정에도 아랑곳없이 집주인은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성화다. 한때 피겨 스케이팅 선수를 꿈꿨던 한나(오하늬)는 무슨 이유에선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으나 한 달도 못 버티고 그만둔다. 보름치 일당을 어서 내놓으라고 점주 앞에서 으르렁 댈 때는 호기롭지만 그래봤자 별반 소득이 없다.
|
Choice | |
요즘 뭐해?
<요요현상> 일찍이 10대에 한국 챔피언이었다. 그토록 바랐던 세계 대회도 출전했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TV에 출연한 ‘내’가 식탁의 화제였다. 그러나 거기까지, 그 뿐이었다. 화려한 이력으로 촉망받던 요요 선수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스포츠 스타로 올라설 순 없었다. 지름 3m의 공간에서 무한한 우주를 꿈꿨던 그는 지금 또래와 마찬가지로 불안한 선택의 기로 앞에 서 있다.
|
Choice | |
동토의 비밀
<미스터 존스> 아그네츠카 홀란드에게 나치즘과 전체주의는 언제든 출몰할 수 있는 불멸의 망령이다. 야만의 20세기를 몸소 겪으며 폴란드에서 체코로, 다시 프랑스로 거처를 옮겼던 아그네츠카 홀란드는 예술이야말로 망각의 위기에 처한 역사와 미처 드러나지 않은 비극을 소환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켜왔다. <미스터 존스>(2019) 역시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으로 대표되는 1930년대 체제와 이데올로기 아래서 개인이 직면한 실존적 고민과 자각, 분투를 그린다.
|
Choice | |
온전히 발끝으로
<걸> 벨기에의 젊은 감독인 루카스 돈트는 첫 장편영화 <걸>로 제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 주목할 만한 시선 남우주연상(빅터 폴스터), 국제비평가협회상, 퀴어 종려상까지 4관왕을 달성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현재 독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무용수 노라 몽세쿠흐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 발레리나를 꿈꾸는 10대 트랜스젠더 여성 라라(빅터 폴스터)가 통과하는 치열한 시간을 그려낸다.
|
Choice | |
영원히 사는 거 아니잖아
<썸머 85> 6주간의 짧고 강렬한 여름, 거절할 수 없었던 얼빠진 맹세. 두 소년의 사랑과 죽음을 다룬 프랑수아 오종의 <썸머 85>는 에이단 체임버스의 소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1982)가 원작이다. <썸머 85>에서 발견되는 장르의 클리셰와 전작들의 요소는 짐작과 다르게 유머와 긴장을 고조하는 효과적 장치다. 수많은 게임이 작동하는 <썸머 85>는 프랑수아 오종의 팬들에게도, 그해 여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갈 영화다.
|
Choice | |
내가 곧 운명
<운디네> 영화는 베를린의 한 야외 카페에 앉아 어딘가를 응시하는 운디네(파울라 베어)의 얼굴로 시작한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일그러진 입술에는 초조함이 묻어나고, 눈동자는 예민하게 주위를 살핀다. 이윽고 카메라는 방향을 바꿔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비춘다. 이별을 통보하는 요하네스(야코프 마첸츠)의 목소리에는 애정이나 연민 대신 조바심만 가득하다. 운디네는 무너진 기색이 완연한 얼굴로, 하지만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서 말한다. “날 떠나면 당신을 죽여야 해. 알잖아.”
|
Choice | |
투명한 시간, 기묘한 리듬
<겨울밤에> 중년 부부가 춘천에 놀러 왔다가 예정에 없던 하룻밤을 보낸다. 어디선가 잃어버린 아내의 핸드폰을 찾기 위해서다. 춘천을 떠나려던 이들은 택시를 돌리고 마지막 유람선에 올라 다시 청평사로 향하는데, 어느덧 해가 지고 매표소의 불도 꺼져 사방이 캄캄하다. 대신 이곳의 기기묘묘한 밤이 켜진다. 장우진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자 춘천 사계절 연작의 두 번째 작품인 <겨울밤에>는 인물들이 청평사에서 함께 혹은 각자 겪는 한밤의 풍경들로 채워진 영화다.
|
Choice | |
이대론 안 되겠다
<내언니전지현과 나>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독립 다큐멘터리를 위한 영화제에 각종 응원 도구를 구비한 관객들이 몰려든 것이다. 박윤진 감독의 첫 장편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유명 배우를 향한 팬덤 못지않은 열기로 영화제 분위기를 달궜고, 열띤 분위기는 이후 열린 다른 영화제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놀랍고 생경한 풍경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1999년 서비스를 시작한 넥슨의 세 번째 출시작 일랜시아의 유저들. 일랜시아는 2008년 마지막 업데이트를 끝으로 개발진과 운영자마저 방치한 게임이지만, 이들 유저에게 일랜시아는 과거의 문이 아니라 미래의 창이었다.
|
Choice | |
여전히 세상은
<담쟁이>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여전히 첨예한 주제다.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다양한 삶의 형태에 주의를 기울여온 많은 창작자들이 이 긴급한 현실을 세밀히 담아왔다. 한제이 감독의 장편 데뷔작 <담쟁이>는 그중에서도 현재 한국의 결혼제도 바깥에서 가족을 구성해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
Choice | |
굴레와 고리
<웰컴 투 X-월드> <웰컴 투 X-월드>는 “엄마는 왜”라는 질문으로 출발한다. 엄마는 “내 인생 후회해”라며 눈물을 보이다가도 할아버지가 부르면 벌떡 일어나 라면을 끓이러 가고, “난 결혼부터 잘못됐어”라고 자조하면서도 결혼은 꼭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한태의 감독은 돋보기 대신 카메라를 들고 엄마 최미경을 관찰한다.
|
Choice | |
블랙홀의 그림자로
<도망친 여자> 홍상수의 스물세 번째 영화 <강변호텔>의 과격한 결말 앞에서 그의 오랜 팬들은 충격에 빠져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이례적으로 강력한 죽음의 엔딩은 그의 세계가 맞이하게 될 변화를 예고하는가. 홍상수의 다음 영화는 이제 어디로 향하게 될 것인가. 얼마간 호들갑스럽던 우리의 호기심이 무색하게도 홍상수의 스물네 번째 영화인 <도망친 여자>에서는 <강변호텔>의 결말을 채우던, 어느 생의 갑작스러운 소멸을 향한 흐느낌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
Choice | |
기도(企圖)와 기도(祈禱)
<나를 구하지 마세요> 가족끼리 자주 놀러 가던 강촌 선착장에서 아빠가 세상을 등진 그날, 열두 살 선유(조서연)는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장소를 동시에 잃었다. 나희(양소민)는 갑작스러운 이별에 제대로 슬퍼할 겨를도 없이, 남편이 남기고 간 큰 빚더미를 떠안았다. 모녀는 도망치듯 낯선 도시로 이사한다. 과거로부터 달아나고자 일부러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을 택한다. 살얼음판을 딛는 것처럼 매일 불안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보려고 애쓴다.
|
Choice | |
실없는 유희, 끝없는 배회
<후쿠오카> 한국의 경주, 서울, 군산 등에서 차례로 영화를 찍은 장률 감독은 그다음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일본 규슈의 후쿠오카로 갔다. <후쿠오카>는 인물들이 도착해 거니는 여행지의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하며 도시의 특정한 풍경을 담는다는 점에서 <경주>(2013),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과 닮았고, 한 명의 여자와 남자들이 하릴없이 이야기 나누며 이곳저곳을 배회한다는 점에서는 <춘몽>(2016)을 떠올리게 한다.
|
Choice | |
언제든 돌아갈
<남매의 여름밤> 영화는 아빠와 옥주, 동주로 이뤄진 세 가족이 작은 봉고차에 타 할아버지(김상동)의 집으로 향하는 길을 오래도록 비추며 시작한다. 아빠가 하는 일이 잘 안 돼 가족은 거처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더위 때문에 기운이 쇠해 힘들어하는 할아버지는 곁에서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한 참이다. 할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달려왔던 고모도 아예 짐을 싸서 집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한집에 모인 할아버지와 두 쌍의 남매는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생활을 공유하며 여름 한때를 같이 보낸다.
|
Choice | |
제국의 심장을 폭파하라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자국 기업에 전쟁과 식민지배의 책임을 물으며 폭탄을 던졌던 이들의 궤적을 좇는 다큐멘터리다. 김미례 감독은 일용직 건설노동자였던 아버지에 관한 다큐를 만들던 2004년, 일제의 식민지배 시절부터 공사판에서 인부들을 부르던 속칭 ‘노가다’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일본 오사카의 가마가사키에 가게 됐다. 가마가사키 일용직 건설노동자의 환경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열악했고, 그 안에서 자본과 싸우는 사람들을 담아 <노가다>(2005)를 완성했다.
|
Choice | |
말과 삶
<69세> <69세>는 성폭행을 자극적인 소재로 취하는 대신, 한 인물의 삶에 등장한 문제로 껴안는다. 사건 이후 효정은 불면과 구토에 시달리고,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을 신은 채 돌아다닌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가 하면, 타인과의 접촉에 소스라치듯 놀라서 주저앉기도 한다. 그렇게 일상이 무너지는 동안 효정의 자리는 점차 줄어든다. 비좁은 곳에서 효정을 에워싸는 것은 온갖 말이다.
|
Choice | |
여기는 절망 1호, 응답하라
<루비> <루비>는 주어진 현실을 환기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동명의 희곡이 영화의 원작인데, 박한진 감독은 영화화 과정에서 캐릭터나 대사와 같은 요소들은 물론이고 희곡 자체의 특징 또한 적극적으로 들여왔다. 군데군데 지문(地文)을 삽입하고, 다양한 심상의 표현과 발화의 공간으로서 무대를 마련해 활용한다. 영화가 흘러가는 방식은 일상생활을 하다가 문득 상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경험과 비슷하다.
|
Choice | |
신의 뜻대로
<소년 아메드> <소년 아메드>는 작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다르덴 형제의 신작이다. 그들의 영화 속 인물들은 아무 정보 없이 뚝 떨어지곤 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아무 준비 없이 내던져진다 할 것이다. 의지할 거라곤 줄곧 인물을 가까이서 뒤따르는 핸드헬드 카메라가 전부다. 조금씩 주어지는 정보들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수동성에 경제적인 편집이 생략한 서사적 공백이 더해진다.
|
Choice | |
꿈의 나라에서
<블루 아워> <블루아워>는 감독 하코타 유코의 데뷔작이자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긴 시간 경력을 쌓아온 두 주연 배우의 호흡이 돋보이며, 특히 심은경은 성장통을 앓는 인물 옆에서 실제와 환상을 넘나들며 매력적인 거리감을 만들어 낸다.
|
Choice | |
죽기 전까지 가위바위보
<팡파레> “여기서 살아서 나가는 사람, 나 말고 아무도 없어.” 왁자지껄한 핼러윈 파티가 끝난 늦은 밤, 손님이 모두 돌아간 한적한 바는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살벌한 생존 게임의 장으로 변모한다. 이상한 관계로 얽혀버린 <팡파레>의 인물들이 이곳에서 벌이는 난투극은 마치 선혈이 낭자한 가위바위보 같다.
|
Choice | |
때가 됐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제가 마음에 안 들어도 상관없어요. 절 믿어주기만 한다면요.”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은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분명히 말한다. 방송인이 나아갈 유일한 길은 시청자의 호감을 사는 것이라고 못 박는 로저 아일스(존 리스고)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폭스뉴스 최고 경영자인 로저는 얼굴과 몸매가 ‘착한’ 여자를 쇼에 끼워 넣고 짧은 치마를 입혀서 내보냈다. 카메라는 여성의 다리를 집요하게 잡았고 시청률은 해마다 뛰어올랐다. 언론인으로서 신뢰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여성들은 공공연하게 눈요깃감으로 전락했다. 질 좋은 뉴스와 공정한 보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할머니를 겁먹게, 할아버지를 열 받게” 하는 이야기가 폭스 뉴스였고, 닉슨부터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정치권력과도 긴밀하게 결탁했다. 폭스가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케이블 채널이라는 명성을 얻는 동안, 로저는 무소불위한 군주로 자리매김했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바로 그 ‘권력 위의 권력’에 대항하여 세상에 진실을 펼쳐 보인 여성들을 조명한다.
|
Choice | |
여태껏 없었던
<욕창> 모든 집에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겉으로는 부족함 없이 화목해 보여도 안을 들춰 보면 해묵은 갈등과 애써 감춘 근심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지수(김도영)는 아슬아슬하게 유지해온 표면이라도 어떻게든 지켜보려고 애쓴다. 남편의 외도를 모른 척하고 딸과 싸우기를 포기한 채 혼자 화를 삭이는 식이다. 엄마 길순(전국향)이 뇌출혈로 쓰러진 다음부터 지수의 어깨는 갑절로 무거워진다.
|
Choice | |
전쟁 같은
<인비저블 라이프>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 초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다. 귀다(줄리아 스토클러)와 에우리디스는 누구보다 서로에게 의지하는 자매다. 외모와 성격은 딴판이지만, 강압적인 아버지와 무기력한 어머니 밑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예술적 소질을 살려 오스트리아의 음악당에 지원하려고 애쓰는 에우리디스와 그리스 선원 요르고스(니콜라스 안투네스)와의 연애를 통해 대서양 저편을 꿈꾸는 귀다. 자유를 꾀하는 이들 자매의 소원은 그러나 쉽사리 좌절된다.
|
Choice | |
지옥에 끌려간 소년
<부력> 2014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탐사보도로 태국 어선의 강제노동 실태가 알려진다. 전 세계 식탁에 오르는 태국산 수산물이 캄보디아,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납치하고 착취한 결과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뜨렸다. <부력>은 이러한 실상을 고스란히 반영한 영화다. 로드 라스젠 감독은 약 60명의 피해 생존자들을 인터뷰했고,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다. <부력>은 죽음의 바다로 내몰린 14살 캄보디아 소년 차크라(삼 행)의 위험한 여정을 뒤따르면서, 부당하고 끔찍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동자들을 주시한다.
|
Choice | |
욕망을 던지면
<야구소녀> “중학교 때까지 내가 더 컸는데. 키도 더 컸고. 야구도 더 잘했었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주수인(이주영)은 어려서부터 같이 운동한 이정호(곽동연)의 손에 제 손을 갖다 대며 이렇게 말한다. 3년 전 처음 생긴 백송고등학교 야구부의 유일한 여자 선수 수인. 134km의 강속구를 던지는 이 ‘천재 야구소녀’는 20년 만에 탄생한 고등학교 여자 야구선수라는 타이틀로 전국적 관심을 끌지만, 결국 백송고등학교 야구부가 3년 만에 이뤄낸 프로선수 배출의 주인공은 수인이 아닌 정호의 몫이다.
|
Choice | |
달리 보면 행복할까
<환상의 마로나> 날개 모양 귀와 구름 같은 꼬리,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큼직한 하트 무늬 코를 가진 마로나(리지 브로체르). 안타깝게도 영화의 시작에 마로나는 사고를 당해 쓰러져 있다. 죽음을 예감한 마로나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 제 삶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
Choice | |
재난의 삶, 구원의 기억
<프랑스여자> <프랑스여자>에는 생과 사, 프랑스와 한국, 과거와 현재처럼 여러 차원의 경계가 등장한다. 시간 순서대로 사건을 전개해나가는 대신 현실인지 환상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장면이 연속한다. 미라(김호정)는 다층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며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데, 한참 헤매다가 이상한 곳에 도착하기도 하고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생생한 통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미라의 행보는 오천 년 전 나일강을 건너며 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갔다는 망자를 떠올리게 한다.
|
Choice | |
언약과 학대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은 개인의 정체성과 욕망까지 심판하려는 종교적 억압을 드러내면서, 동성애 치료 센터에 입소한 10대 여성 카메론(클로이 모레츠)를 통해 청소년 성소수자가 어떤 고통에 직면하는지를 섬세하게 다룬다.
|
Choice | |
낙인과 상징
<안녕, 미누> “폭발적인 가창력의 소유자”로 소개받은 남자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무대에 오른다. 전주가 끝나자 입가에는 웃음 대신 애잔한 기운이 묻어난다. 관객의 박수에 맞춰 구성지게 부르는 노래는 <목포의 눈물>이라는 오래된 곡이다. 네팔 출신 문화운동가 미노드 목탄, 한국 이름은 미누. 그는 이 노래를 목포에서 상경한 중년 여성으로부터 배웠다. 두 사람은 같은 식당에서 일했는데 말하자면 “국적은 달라도 비슷한 처지였”던 셈이다.
|
Choice | |
안 들리게 해주세요
<나는보리> 듣지 못하게 되면 가족들과 같아지지 않을까? 그러면 더 이상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 같은 보리는 매일 소리를 잃고 싶다는 소원을 열심히 빈다. 물질을 많이 한 탓에 귀가 잘 안 들린다는 해녀를 텔레비전에서 보고는 바다에 훌쩍 뛰어들기까지 한다. 온 가족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그 날 이후 보리는 안 들리는 척 행동하는데, 그로인해 그간 체감하지 못했던 일들을 가까이 느끼게 된다.
|
Choice | |
하나씩, 하나씩
<파도를 걷는 소년> 한낮 해변에서 담배를 피우는 김수(곽민규)는 아니꼽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몇 차례 팔을 휘저어보고는 이내 성큼성큼 바다를 향해 걷는다. 옆구리에 낀 보드는 전날 쓰레기장에서 주운 파손품이다. 서퍼 해나(김해나)는 바다에서 연거푸 넘어지는 수를 초조하게 바라본다. 해나가 다가가서 “초짜가 강습도 안 받고 타시면 안 돼요”라고 지적하자, 수는 퉁명스레 쏘아 붙인다. “여기가 당신들 바다예요?”
|
Choice | |
사막의 혈투
<리벤지> 제목이 일러주듯, <리벤지>는 전형적인 복수극이다. 젠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사방이 붉게 물든다. 끊임없이 거듭되는 추격전과 총격전으로 인해 인물들은 온통 피칠갑이 되고, 카메라는 이들의 훼손된 신체를 여과 없이 클로즈업한다. 법이 부재하는 사막이라는 공간 또한 감독이 마음껏 상상을 펼치는 적절한 장으로 기능한다.
|
Choice | |
밤을 기억하라
<호텔 레이크> 해변에서 두 여자가 껴안은 채 춤을 춘다. 달빛은 저 멀리 수평선까지 환히 비추고 여자들은 서로 어깨에 얼굴을 파묻을 정도로 가깝다. 한 여자는 바다를 향해 몸을 돌렸기에 표정을 확인할 수 없지만, 다른 여자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바닷바람에 흰색 원피스 밑단이 파도치듯 펄럭이고 여자들의 손끝은 부드럽게 맞닿는다. 화가 윈슬로 호머가 1890년에 완성한 《여름밤》이다.
|
Choice | |
언젠가 돌아갈
<바람의 언덕> <바람의 언덕>은 과거를 잃어버린 한희와 과거를 잊어버린 영분을 우연 아닌 우연으로 불러내 마주보게 한다. 한희에게 과거는 끝없이 회귀하는 그리움이고, 영분에게 과거는 어떻든 감춰야 할 비밀이다. 필라테스 학원에서 선생님과 수강생으로 만났으나 금세 서로에게 이끌리는 한희와 영분. 홀로 살아온 이들에게 그리움과 비밀은 이제껏 생의 계기였고, 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둘은 그리움과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사코 애쓴다.
|
Choice | |
여름 이야기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세 사람이 함께 보내는 젊은 날의 여름, 그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은 영화다. 햇살이 환하게 쏟아지는 낮과 가랑비가 세상을 적신 고요한 밤, 그 공기를 가르는 밝고 흥겨운 웃음소리, 사람 없는 항만 도로를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니거나 술과 음악에 나른하게 취해 자유로이 춤추는 인물들. 이러한 상태와 시간이 중대한 위협이나 뚜렷한 국면의 전환 대신 이야기를 끌어간다.
|
Choice | |
주저 말고 스퍼트!
<라라걸> <라라걸>은 원제 ‘RIDE LIKE A GIRL’을 줄여 쓴 제목이다. 영화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거친 경주로 손꼽는 경마 대회인 멜버른 컵에 출전한 여성 기수 미셸 페인(테레사 팔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감독 레이첼 그리피스는 2015년 당시 텔레비전을 통해 경기를 지켜보았는데, 처음에는 선수 중에 여성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고백했다. 멜버른 컵 역사상 여성 참가자는 단 4명뿐이었고 미셸은 155년 만에 처음으로 수상을 거머쥔 여성 기수였다.
|
Choice | |
아주 가끔, 이제 그만
<사랑이 뭘까> <사랑이 뭘까>가 이토록 오랫동안 관객을 만날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얼핏 평범한 멜로영화처럼 시작한다. 사랑에 몰두하는 여자 야마다 테루코(키시이 유키노)와 사랑을 주저하는 남자 타나카 마모루(나리타 료)가 등장하고, 둘은 언제 연애를 시작한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처럼 친밀해 보인다. 다만 무게 중심은 확실히 기울어져 있다.
|
Choice | |
'그것'의 처소
<온다> 예언은 이미 도래했다. 어린 시절, 히데키(쓰마부키 사토시)는 “언젠가 너도 ‘그것’에 불리게 될 것”이라는 찜찜하고 뜻 모를 말을 들은 적 있다. 시간이 흘러 제과회사의 우수사원이 된 히데키. 그는 카나(구로키 하루)와 결혼해 딸 치사까지 얻은, 누구나 부러워 할 인생의 주인공이다. 기쁨과 충만의 시간은 그러나 오래지 않는다. 이름 모르는 여자의 방문 뒤에 갑자기 히데키의 동료가 사망하고, 히데키 또한 “(어딘가로) 가자”는 의문의 전화에 시달린다.
|
Choice | |
악몽이 아니라면
<더 터닝> 이야기는 호수와 숲으로 둘러싸인 저택에 케이트(맥켄지 데이비스)가 입주 가정교사로 고용되면서 시작된다. 저택의 주인은 일찍이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플로라(브루클린 프린스)와 마일스(핀 울프하드) 남매. 이들을 나이든 가정부 그로스 부인(바바라 미튼)이 돌보고 있다. 새로운 생활에 들뜬 것도 잠시, 케이트는 첫날부터 기이한 일을 겪는다. 젊은 여자의 환영을 보는가 하면 남녀가 다투는 환청을 듣기도 하고 기분 나쁜 악몽에 밤잠을 설친다.
|
Choice | |
변함없이, 어김없이
<펠리칸 베이커리> <펠리칸 베이커리>에 등장하는 빵집 ‘펠리칸’ 또한 1942년 도쿄 아사쿠사에서 개업하여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영업 중인 시니세 중 하나다. 영화는 펠리칸을 자주 찾는 손님인 나카무라 노무루의 입을 통해 시작하는데, 그는 일본에 매료되어 이주한 캐나다인이자 전통 악기인 샤미센 연주자이기도 하다. 나카무라는 샤미센과 기모노처럼 일상적이고 오래된 것조차 대단한 경지에 올려놓는 일본의 장인 정신에 찬사를 보내며, 펠리칸의 빵은 “꺼낼 때부터 먹을 때까지 감동적”이라고 치켜세운다.
|
Choice | |
메두사의 선택
<그 누구도 아닌> 르네(아델 에넬)를 이해하려면 과거를 헤집어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닌>(2016)이 선택한 방식이다. 과감하고 무모한 플래시백은 르네의 지난날을 산산이 분절하고 새롭게 결합한다. 산만한 전개인가, 다층적 구성인가. 이 시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뉠 것이다.
|
Choice | |
우주가 퐁당
<모리의 정원> 오프닝에 등장한 미술관과 작업실, 정원은 전부 모리가 속한 공간이다. 그는 존경받는 화가이자 오랜 시간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은둔하는 ‘초야의 인물’로 소문난 유명인사. 세상과 담을 쌓고 고립을 자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리와 아내 히데코(키키 키린)가 사는 집은 쉴 새 없이 찾아오는 방문객으로 늘 북적인다.
|
Choice | |
부권 말소 프로젝트
<이장> 흩어져 살던 다섯 남매가 아버지 묘 이장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정승오 감독은 앞서 단편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2016)에서 어머니 병문안을 위해 모이는 네 자매의 반나절을 그린 바 있다. 네 자매의 부모가 죽은 뒤를 문득 상상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그의 첫 장편인 <이장>은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과 인물과 사건을 일정 부분 공유한다.
|
Choice | |
오버 더 레인보우
<주디> 제92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르네 젤위거의 연기는 기대와 관심을 충족한다. 평생 타인의 관심과 사랑 속에 살아온 스타의 능숙한 몸짓을 보여주면서, 그 모든 것이 거품이고 허상임을 잘 알고 있는 인간의 피로와 권태를 과장 없이 표현한다. 특히 보형물을 덧댄 코는 눈썹과 입술의 미묘한 움직임과 조화를 이루며 실존 인물의 독특한 분위기를 한껏 부풀린다.
|
Choice | |
매수된 세계, 박탈된 육체
<다크 워터스> 토드 헤인즈의 신작 <다크 워터스>는 2016년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탐사보도 기사를 바탕으로 한다. 유독한 화학 합성물 ‘PFOA’를 불법 사용하고 무단 폐기해온 거대 글로벌 기업 듀폰과 끈질긴 싸움을 이어온 변호사 롭 빌럿(마크 러팔로)이 주인공이다. 영화는 듀폰사가 사들인 매립지 인근에서 소를 키우던 농장주 윌버 테넌트(빌 캠프)가 롭에게 도움을 요청한 1998년 이후 20여년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데, 유출된 물질의 허가 여부를 골자로 하는 단순한 재산 분쟁 소송으로 시작된 사건은 듀폰사가 감춰온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하고 합당한 책임을 묻는 데까지 확장된다.
|
Choice | |
그대가 주인, 어디든 진리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강말금)은 “유일무이한 예술영화” 감독으로 불리는 지감독(서상원)의 프로듀서다. 신작 <뒷산에 살리라> 촬영 전 고사를 지내는 날, 지감독이 술자리에서 돌연사하고 찬실은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피디가 없어도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는 영화” 현장에서, “주구장창 지 감독하고만 일”했던 찬실을 찾는 이는 아무도 없다.
|
Choice | |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링고> 짧고 긴박한 통화가 끝나면 영화는 이틀 전 시카고로 돌아가서 인물의 관계와 상황을 재구성한다. 하지만 1분 남짓한 오프닝에 세 주인공의 성격과 위치, 사건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이미 담겨 있다. 리처드는 제약회사를 운영하는 성공한 사업가지만 그리 존경할 만한 인물은 아니다. 일레인은 그의 동업자이자 섹스 파트너인데, 실질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일을 진척하는 건 그녀의 몫이다. 돈이라는 목표로 묶인 둘에게 해럴드는 한때 유용한 중간관리자였지만, 점점 거북한 대상으로 밀려나는 중이다.
|
Choice | |
내가 어렸을 때
<기억의 전쟁> 한국인이 즐겨 찾는 베트남의 대표적 휴양지 다낭. 다낭이 위치한 베트남 중부는 베트남 전쟁 당시 파월 한국군이 주둔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한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병력인 32만여 명을 베트남에 파병했다. 이길보라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은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둘러싼 기억의 전쟁을 다룬다.
|
Choice | |
뻔하다고? 미쳤다고? 글쎄~
<하트> 가영(정가영) 앞에 위험한 상대가 등장한다. 그는 마감에 시달리는 영화 기자이며, 가영이 여태 만나본 사람 중에 제일 섹시하고, 태어난 지 백 일이 된 아이가 있는 유부남이다. 가영은 어쩔 수 없이 한 발 뒤로 물러선다. 취하면 보고 싶어질까 봐 좋아하는 술도 입에 안 댈 정도다. 아픈 사랑에 괴로워하며 가영은 또 다른 유부남 성범(이석형)을 찾아간다.
|
Choice | |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도하는 남자> 태욱(박혁권)은 목사다. 성도가 다섯 뿐인, 이름 없는 개척교회 목사다. 지하의 좁은 예배당조차 재개발로 인해 철거 위기에 처해 있다. 수중에 몇십만 원이 없어 밤새 대리운전을 하는 태욱에게 아내 정인(류현경)은 엄마(남기애)의 간이식 수술비로 5천만 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시련과 고난을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며 믿음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태욱은 “우리를 항상 불안과 방황의 길로 유혹하는” 부정한 시대와 혹독한 세상을 견뎌낼 수 있을까.
|
Choice | |
오직 예술만이
<작가 미상> 데뷔작 <타인의 삶>(2006)으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투어리스트>(2010)를 연출했던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신작이다. <작가 미상>은 분단과 이념 갈등, 파시즘의 영향 아래 놓인 독일 현대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전작 <타인의 삶>과 궤를 함께하면서도, 그보다 앞선 시기이자 30년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시대를 그리며 사랑, 정치, 예술을 둘러싼 역사 드라마를 완성해낸다. 주인공 쿠르트(톰 쉴링)는 현대 미술가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모티브로 삼으며, 실제 동독에서 태어나 전쟁을 겪고 서독으로 탈출하여 작품 활동을 이어간 리히터의 삶과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
|
Choice | |
말로 하자니까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 아내가 원하는 게 정확히 뭔지 어딜 향해 가고 싶은 건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2010년 여름, 일본 웹사이트에 올라온 한 질문이 순식간에 세간의 관심을 불러 모으며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 블로그 연재 글로, 인기를 끈 노래로, 책으로도 만들어진 이 사연은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영화화의 과정을 밟았고, 연출은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2008), <신은 발리에 있다>(2014)의 리 토시오 감독이 맡았다.
|
Choice | |
내가 불러낸 우연
<페인 앤 글로리> <페인 앤 글로리>는 감독인 알모도바르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그가 실제로 허리 수술을 받은 후 느낀 창작에 대한 두려움과 열정이 이 영화를 완성하게 한 것이다. 살바도르의 집 장면이 현재 알모도바르가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촬영되었으며, 감독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 등이 소품으로 두루 쓰였다는 점이 흥미를 더하지만, 영화의 모든 요소를 감독의 삶에 비추어 꿰맞출 필요는 없다. 오히려 참조점이 되는 건 알모도바르의 지난 영화들이다.
|
Choice | |
걷잡을 수 없는
<성혜의 나라>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스물아홉에는 으레 두려움과 조바심이 껴든다. 내세울 만한 성과도 기반도 없는데 내년이면 서른. “꿈도 사랑도 청춘도 다 끝”이라는 생각에 막막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꿈이나 사랑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진다. 어떤 스물아홉은 그저 평범한 미래를 바란다. <성혜의 나라>(연출 정형석) 속 성혜(송지인)가 그렇다.
|
Choice | |
알레포에서 온 편지
<사마에게> 21세기 최악의 비극이라 불리는 시리아 내전. 2011년 내전 발발 이후 시리아에서는 현재까지 약 40만 명이 사망 및 실종됐고, 1200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발생했다. ‘아랍의 봄’ 물결에 힘입어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에 대항한 시민들의 승리 드라마는 잊힌지 오래다. 러시아라는 오랜 우방이 위기에 처한 알아사드 정권의 버팀목이던 상황에서 무기 지원에 목말랐던 반군은 그들에게 다가온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와 손잡았다. 덕분에 파죽지세로 점령지를 넓혀갈 수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성장한 무장단체는 반군과 갈라서며 전 세계에 악명을 떨치는 IS(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
Choice | |
점멸하는 시간
<작은 빛> 빛을 저장하는 장치로써 카메라는 자연스레 흔적과 기록, 기억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흔적’은 ‘어떤 현상이나 실체가 없어졌거나 지나간 뒤에 남은 자국이나 자취’이고, ‘기록’은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이며, ‘기억’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이다. 시간의 흐름을 전제하기에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이 단어들은 모두 <작은 빛>의 주인공 진무(곽진무)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
Choice | |
사랑을 넘어선 사랑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사랑의 불꽃은 어떻게 사그라지지 않고 계속해 생명을 얻는가. <워터 릴리즈>(2007), <톰보이>(2011), <걸후드>(2014)에서 소녀들의 사랑과 정체성을 탐구해온 감독 셀린 시아마는 지난 5년간 사랑의 역학에 대해 질문하며 시나리오 쓰기를 거듭했고, 마침내 완성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을 차지했다. 작고하기 직전의 아녜스 바르다가 더 많이 주목받아야 할 여성 감독으로 가장 먼저 손꼽았던 셀린 시아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사랑의 지속을 창작의 과정과 결합한 아름답고도 격조 있는 멜로드라마다.
|
Choice | |
대지의 심판
<신의 은총으로> 프랑수아 오종의 관심사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듯 보인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금기시된 욕망을 탐구해온 그는 <프란츠>(2016)로 클래식한 멜로드라마를 선보였고, 직후에 공개한 <두 개의 사랑>(2017)에서는 쌍둥이 형제와 사랑을 나누는 주인공을 통해 다시금 대담한 상상력과 화려한 미장센을 자랑했다.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은 <신의 은총으로>(2019)는 오종이 연출한 첫 번째 실화 영화로, 프랑스 리옹 교구 성직자인 프레나 신부의 아동 성폭행을 공론화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
Choice | |
진짜 동물 같은? 진짜 사람 같은!
<해치지않아> <달콤, 살벌한 연인>(2006), <이층의 악당>(2010)을 연출한 손재곤 감독이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범죄를 둘러싼 서스펜스에 유머와 로맨스를 결합하여 독특한 코미디를 만들어냈던 과거 작품과 비교하면 <해치지않아>는 훨씬 덜 위협적이다. 여기에는 불안이 감도는 ‘살벌’한 순간도,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악당’도 등장하지 않는다. <해치지않아>라는 제목이 알려주듯, 영화는 가급적 무해한 웃음을 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
Choice | |
영화는 무엇을 원하는가
<백두 번째 구름> 영화를 맞이하기까지 임권택의 시간은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감독 임권택이 102번째 영화 <화장>(2014)을 기다리는 시간을 <녹차의 중력>(2018)에 고스란히 담은 정성일은 <백두 번째 구름>에서 임권택 영화가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찬찬히 지켜본다. 영화는 ‘지난 이야기’라는 자막으로 임권택이 <달빛 길어올리기>(2010) 이후 5년이 지나서야 <화장>을 시작하게 된 연유를 짧게 전하는데, 이 때 임권택의 기다림은 감독 정성일의 그것이기도 하다.
|
Choice | |
오지 않는 내일
<와일드라이프> 1960년 미국 북서부 몬태나의 작은 마을. 제리(제이크 질렌할)와 자넷(캐리 멀리건)은 14살 아들 조(에드 옥슨볼드)와 함께 이곳에 새 둥지를 마련한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세 가족은 제리가 골프클럽에서 해고당하면서 휘청대기 시작한다. 당장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제리는 자존심만 세우며 무기력에 빠지고, 자넷과 조가 대신 수영장과 사진관에 일자리를 구한다.
|
Choice | |
노예의 선택
<미안해요, 리키> 여든을 넘긴 지고지순한 사회주의자 켄 로치는 다시 한 번 이 세계의 부조리와 모순을 적나라하게 꼬집으며 영화로서 세계와 맞선다.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의 푸드 뱅크 신을 촬영하다가 그곳을 찾은 많은 이들이 무직이 아니라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강한 문제의식을 느꼈고, 그게 이번 영화의 출발이 돼줬다고 그는 말한 바 있다. 일하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고 심지어 일할수록 더욱 가난해지는 악화 일로의 구조를 향한 회의와 일침이다.
|
Choice | |
모두가 뒤뚝뒤뚝
<기억할 만한 지나침> <그저 그런 여배우와 단신 대머리남의 연애>(공동연출 김정민우, 2015),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2016)을 만들며 존재와 진실에 관해 거듭 탐구해온 박영임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이자 첫 개봉작이다.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부문, 인디포럼2018 신작전 부문 등에서 소개했다.
|
Choice | |
성좌의 본질
<영화로운 나날> 영화(조현철)는 배우다. 영화에게 영화란 하고 싶고 닿고 싶은 꿈이자 언제나 그에 못 미치는 현실이기도 하다. 영화가 일이 될 때 영화는 더는 영화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GV에 오지 않은 감독과 이상한 질문을 던진 관객을 불평하고, 시나리오를 보여주겠다는 형과 아쉽지만 이번 작품은 함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조감독 사이에 둘러싸인다. 꽉 막힌 도로에서 발이 묶인 운전자처럼 영화는 답답하고 불안해진다.
|
Choice | |
당신의 극장입니다
<라스트 씬> 2018년 1월 31일,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해온 부산의 국도예술관이 휴관에 들어갔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폐관이라고 말했다.) <잔인한 계절>(2010), <깨어난 침묵>(2016)으로 환경미화원과 생탁 노동자 이야기를, <밀양전>(2013), <밀양 아리랑>(2014), <소성리>(2018)로 밀양 송전탑과 사드 배치 반대 투쟁에 나선 여성들을 주목해온 감독 박배일은 국도예술관의 열정적인 관객이었다. 그는 특별한 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어떤 긴급함과 다급함을 느낀 듯하다.
|
Choice | |
비극은 멀지 않았다
<10년> 미래를 그리는 영화가 대개 그러하듯, 이 영화들 또한 현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로부터 출발한다. 군사주의, 검열과 통제, 환경오염이나 저출산 등 현재의 문제들이 가속화되고 심화된 근미래는 퍽 어두운 색채를 띠지만, 작고 희미한 희망 또한 영화의 곳곳에 묻어 있다. 이번에 국내에서 개봉하는 <10년>(2018)은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0년: 일본>이라는 제목으로 최초 공개되었던 작품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으며 총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
Choice | |
왜 그렇게 사냐고?
<속물들> 간단명료한 제목답게 영화는 대책 없이 낯 두꺼운 인물로 가득하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계급을 인지하며, 어떻게든 사다리 꼭대기에 오르기를 원한다. 속고 속이는 게임에서 선우정(유다인)은 져줄 마음이 없다. 미술 작가인 그는 재능이 없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느끼지만, 타인의 창작물을 베끼다시피 한 그림에 <표절>이라는 제목을 붙여 ‘차용 미술’이라고 포장한다. 우정이 보기에 이 세계는 어차피 반쯤 고장 났다. 작품보다 작가 얼굴에 관심이 많고, 논란이 불거질수록 작품 가격은 뛰어오른다. 우정은 이용당하기보다는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
Choice | |
나쁜 엄마, 성가신 딸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노년의 배우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가 집필한 회고록의 제목이다. (정확한 원제는 ‘La vérité’로 ‘진실’ 정도의 뜻이다.) 그는 오랜 세월을 프랑스의 대표적인 배우로 살며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다수의 상을 받았는데, 회고록엔 연기 인생과 더불어 사적인 이야기들도 한데 실려 있다. 배우로서 커리어를 빈틈없이 유지하면서도 시간을 내어 어린 딸과 단란한 한 때를 보냈던 어머니로서의 일화 등이 적혀있는 것이다. 그러나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가 보기에 그 회고록은 진실은커녕 거짓부렁이고 누락투성이다. 그것이 뤼미르의 심사를 건드린다.
|
Choice | |
이번 정류장은
<이태원> 서울 용산의 이태원은 외국인 거주지이자 외래문화 집결지로서 초국가적 성격을 띠지만, 들여다보면 그만큼 국가주의에 복무하는 지역도 드물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군사기지였던 용산은 해방 후에는 미군 주둔지로 이용됐고, 이 과정에서 이태원은 기지촌의 대명사가 되었다. 1970년대부터 미군을 상대하는 유흥업소가 대규모로 들어섰으며, 이때 형성된 ‘후커힐’은 이태원의 중심 상권으로 자리 잡게 된다. 외화를 벌어들이며 호황을 누리던 이태원의 명성은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급속히 힘을 잃는다.
|
Choice | |
각성과 응답
<녹차의 중력> 영화평론가와 영화감독의 일이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정성일에게 이 두 가지는 동일한 목적과 욕망을 지녔다. 정성일이 지금까지 만든 다큐멘터리 <녹차의 중력>(2018), <백 두 번째 구름>(2018), <천당의 밤과 안개>(2017)에서만큼은 그러하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세 편 모두 영화감독에 관한 영화이고,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한 영화다. 앞의 두 편은 1934년생인 한국의 영화감독 임권택의 영화를, 뒤의 영화는 1967년생인 중국의 영화감독 왕빙의 영화를 다룬다.
|
Choice | |
한낮의 어둠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산은 경계를 모른다. 지리산은 경상남도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과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에 걸쳐 있으며, 한라산은 저지대의 난대성식물에서부터 고지대의 고산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물을 품고 있다. 전작 <려행>에서 안양의 삼성산을 일종의 매개물로 삼아 과거와 현재를, 남한과 북한을, 이승과 저승을 이었던 것처럼 신작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 임흥순은 다시 한 번 산이 가진 역량에 기대 경계를 흐트러뜨린다. 다만, <려행>에서 산에 떠오른 두 개의 달이 우리를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 설화의 세계로 초대했다면 이번엔 개기일식이라는 강력한 어둠이 산의 낮을 밤으로 물들인다.
|
Choice | |
꿈꿀 수 있다면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는 중국 만주에 위치한 소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중 플롯 드라마다. “현대 사회의 일상과 일상 사이에 선 개인들”을 보여주고자 했던 후보 감독은 이 공간에서 철저하게 빛을 차단한다. 새벽부터 해 질 녘까지 이어지는 영화 속 하루라는 시간 동안, 네 명의 주인공은 시종일관 어둡고 삭막한 거리를 헤맨다. 안전과 애정 대신 폭력과 이기가 들어찬 곳에서 인물들은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드러낸다. 각 세대를 대표하듯 영화에는 소년과 소녀, 청년과 노인이 등장하는데, 4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은 인물 각자가 마주한 벽을 비추며 그들이 처한 위기를 하나로 엮어내는 데 충실하게 쓰인다.
|
Choice | |
격정의 분화구
<시빌> 영화는 마고(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의 다급한 상담 요청을 받아들인 시빌이 그녀의 삶에 점차 개입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마고는 유명한 남자 배우인 이고르(가스파르 울리엘)와 사귀고 있고 임신까지 했지만 이를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다. 이고르가 영화감독인 미카(산드라 휠러)와 공식 커플이기 때문이다.
|
Choice | |
인류애로 공동선을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도쿄가>(1985)로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세계를, <피나>(2011)로 무용수 피나 바우쉬의 작품을,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2014)으로 사진가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실천적 삶을 조망했던 빔 벤더스. 그의 다큐멘터리적 관심은 줄곧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거장의 방대한 예술적 자취를 쫓는 야심차고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닌데, 조금은 색다른 선택이다. 주인공은 바로 로마 교황청의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에 관한 첫 번째 다큐멘터리인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는 로마 교황청이 직접 빔 벤더스에게 영화 제작을 의뢰하며 시작됐고 교황청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 첫 번째 사례다.
|
Choice | |
너를 다시 만나면
<윤희에게> 간결한 제목이 넌지시 일러주듯, <윤희에게>를 작동시키는 건 한 통의 편지다. 안부를 묻고 그리움을 전하는 그 편지는 어느 날 문득 도착해 윤희(김희애)의 마음을 가만히 두드린다. 보내지 못한 채 탁자 위에 올려두었던 편지가 다른 이에 의해 전달되면, 꺼내 보이지 못한 채 묻어두었던 마음도 조금씩 흐르기 시작한다. 서로에게 가닿지 못했던 말들, 오랜 세월을 견디고 나서야 다시금 마주하게 된 사랑과 상실의 감정이 차분하고 고요한 리듬 속에 새겨진다. 각자의 외로움을 품은 생각 많은 사람들이 종종 홀로 걷고, 서로에게 눈길을 던지며, 함께일 때도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이따금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품을 내어준다. 그건 대개 조용하고 느린 활동이지만, 그렇게 전달되는 정서는 영화의 장면들 사이에, 말과 말 사이 침묵을 통해 깊고 묵직하게 퍼진다. 그 잔잔한 파동이 <윤희에게>를 천천히 채워나간다.
|
Choice | |
달아나고 싶지만
<영하의 바람> 영하는 기억한다. 열다섯 영하는 엄마와 헤어지고 아빠에게 보내졌다가 결국 빈 집 앞에 홀로 남았던 열두 살을 잊지 못한다. 집으로 들어가는 익숙한 골목에는 여전히 그날 저녁이 숨어 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린 기분에 무릎을 끌어안고 울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르면, 영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열아홉이 된 영하(권한솔)는 열다섯에 겪은 이별을 되새긴다. 동갑내기 친구이자 이종사촌인 미진(옥수분)은 부모와 할머니를 잃고 먼 친척에게 떠넘겨진다. 영하는 이따금 말없이 교실 창밖으로 운동장을 내다보며 몇 해 전 학교를 떠나가던 미진의 뒷모습을 곱씹는다.
|
Choice | |
그녀에게 남은 것
<심판> 이민자에 대한 독일 사회의 차별과 편견을 다루는 <심판>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카메라가 전경화하는 공간과 인물은 각 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1부 ‘가족’은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수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경찰은 물론 가족으로부터도 의심과 원망의 목소리를 들으며 무너지는 카티아의 모습을 담는다.
|
Choice | |
카메라를 들어야 했다
<졸업> 강원도 원주대학교가 ‘상지’라는 이름을 갖게 된 1970년대부터 학생들은 학교 재단이 저지르는 비리와 맞서 싸워왔다. 상지대학교가 감내한 오랜 투쟁의 중심에는 김문기 전 이사장이 있다. 가족과 친인척을 요직에 앉히며 족벌 사학 체제를 구축했던 그는 결국 1993년 교육부 감사에서 부정입학 정황이 포착되어 구속됐다. 이후 안정을 갖추던 학교는 한 차례 퇴출되었던 김문기의 복귀 시도가 수면 위로 떠오른 2009년부터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
Choice | |
차마 보낼 수 없는
<오늘, 우리> 네 편의 단편영화가 모여 <오늘, 우리>라는 장편 옴니버스로 개봉한다. 오늘과 우리라는 일상어의 조합은 영화의 첫인상을 다소 밋밋하게 만들지만, 작품을 보고 나면 이 단어가 단순한 수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이 2-30대 여성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네 작품에서 마땅한 공통점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상황과 입장이 다른 인물에게는 저마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고, 단숨에 해소하기 어려운 고민도 있다. 영화는 청춘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그들 각자가 지닌 무게를 오늘, 우리라는 넉넉한 둘레로 감싸 안는다.
|
Choice | |
사랑을 삼킨 후에
<경계선> <경계선>은 땅과 바다의 경계에 선 누군가의 뒷모습을 비추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주기적으로 여객선이 들어오는 이곳은 국가와 국가의 경계를 가르는 출입국 사무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풀과 벌레를 가만히 만지던 이는 세관 직원으로 일하는 티나(에바 멜란데르). 그는 배에서 내려 땅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불법적인 물건을 소지하고 있는지 단속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 조금 독특하다. 심사대를 통과하는 이들을 가만히 노려보며 코를 킁킁대다가 한 명씩 문제의 인물을 잡아내는 식이다.
|
Choice | |
감각의 질주
<아워 바디> 계속 뛰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이 가벼워지며,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을 것만 같은 상태에 돌입한다. 누군가는 순간 이동 같다고 표현하고, 누군가는 오르가슴에 비교하기도 한다. 이를 ‘러너스 하이’라고 부른다. <아워 바디>(한가람, 2019)는 마치 언젠가 만끽할 러너스 하이에 당도하려는 듯 내내 달리고 또 달린다.
|
Choice | |
믿음과 불신의 변증법
<메기> 이옥섭 감독의 첫 장편영화 <메기>는 마리아 사랑병원의 간호사로 일하는 윤영(이주영)과 주변 인물들이 우스꽝스럽고도 민망한 사진을 본 후에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소동을 다루면서, 한 장의 X-레이 사진으로 시작된 의혹이 폭력으로까지 전이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메기>는 보는 즉시 우리를 사로잡을 만큼 개성이 또렷한 영화다.
|
Choice | |
보이지 않는 세상
<동물,원> 때로는 그저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질문이 시작된다. <동물, 원>(왕민철, 2019)은 가능한 한 여러 위치에서 물음표를 띄우면서도 답을 찾는 일에 서두르지 않는 다큐멘터리다. 무언가를 선언하거나 고발하는 극적인 순간은 없지만, 영화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고민으로 가득 차 있으며 분주하고도 안정적인 속도를 유지한다. 이러한 리듬은 영화에 담긴 ‘일상’의 힘 덕분이다. <동물, 원>은 동물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하루를 따라감으로써 동물원이라는 공간을 다층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
Choice | |
너 돈 많아? 나 흥 많아!
<불빛 아래서> 조이예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불빛 아래서>는 록밴드 ‘로큰롤 라디오’, ‘웨이스티드 쟈니스’, ‘더 루스터스’의 활동과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밴드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목표를 세우고, 감독은 “풀타임 밴드”로 자리 잡기 위한 뮤지션들의 노력을 거의 6년에 걸친 긴 시간 동안 보여준다.
|
Choice | |
세상이 일러주지 않은 사랑
<벌새> <벌새>는 성장영화라기보다는 사랑영화다. 열다섯 은희가 통과하는 1994년은 사랑에 관한 질문과 응답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 안에는 가족, 학교, 사회라는 집단이 있고, 그보다 많은 관계와 역할이 있다. 방앗간집 막내딸 은희에게 가족의 사랑은 늘 부족하다. 일로 바쁜 엄마는 무뚝뚝하고, 아빠는 식탁에서 종종 욕설을 내뱉는다. 집안의 기대와 관심은 장남인 오빠에게 쏠려 있고, 언니는 부모의 눈을 피해 집 밖으로 나가기 일쑤다. 엄마와 아빠가 싸운 어느 밤에 언니는 말한다. “우리 가족은 다 따로 살아야 돼.”
|
Choice | |
내가 지킬 거야
<우리집> <우리집>(2019)은 <우리들>(2015)로 주목받은 윤가은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두 작품의 제목에 연이어 등장하는 말, ‘우리’는 감독이 주목하는 세계이자 그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아이들이 상상하는 또래집단으로서의 ‘우리’, 자신이 속한 집단을 향해 친밀함을 표현하는 ‘우리.’ 하지만 그 ‘우리’의 세계가 언제나 포근하고, 안온했던가.
|
Choice | |
시간의 집을 찾아서
<이타미 준의 바다> 정다운 감독이 연출한 <이타미 준의 바다>는 이타미 준의 생애와 작업을 풍부한 시각 자료와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형식상의 특징은 단순한 연대기적 구성을 따르지 않고 여러 소주제에 맞춰 현재와 과거, 한국과 일본을 자유롭게 오가는 구성을 취했다는 점이다.
|
Choice | |
내 목소리 들리니?
<밤의 문이 열린다> 유은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밤의 문이 열린다>는 한국독립영화에서 보기 드문 장르 영화로,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영화제를 통해 주목받았다. 유은정 감독은 단편 <밀실>(2016), <캐치볼>(2015) 등에서 보여주듯 동시대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관계 맺기에 관해 꾸준히 탐구해왔으며,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 판타지와 같은 장르적 실험을 지속해왔다.
|
Choice | |
이상한 콤플렉스, 끔찍한 스캔들
<앨리스 죽이기> <앨리스 죽이기>(2017)는 2014년 말에 발생한 한 사건을 통해 당대의 파상을 헤집으려고 시도한다. 김상규 감독이 주목하는 건 기세등등한 ‘종북몰이’이다. 재미교포 신은미는 남편 정태일과 함께 미국 시민권자로서 북한 관광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신은미는 책도 내고 미국 한인 타운에서 북 콘서트도 열었다.
|
Choice | |
분명 여기에 유령이 있다
<려행> 미술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임흥순은 말하자면 유령을 찾아내어 영혼을 위로하고 제사를 지내는 무당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주변부를 오랜 시간 부유해온 유령과 같은 존재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채집하고, 그것들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담아낸 다음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조합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형체가 없던 유령에게 진짜 모습과 본래의 이름을 돌려준다. 임흥순의 영화, 또는 그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로 사회적 유령을 위한 애도와 위로의 제사라고 할 수 있다.
|
Choice | |
갔다, 꼭 올게
<김복동> 뉴스타파의 세 번째 작품인 송원근 감독의 <김복동>은 간결한 제목처럼 한 인물의 삶과 투쟁의 기억을 성실히 모아 담은 영화다. 주인공은 1992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뒤 남은 생을 여성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로 살았던 김복동. 1926년 5월에 태어난 그는 지난 2019년 1월 세상을 떠났다.
|
Choice | |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주전장> 미키 데자키는 아시아계 이민자 2세로 미국에서 자란 경험을 통해 인종차별을 직접 겪은 바 있다. 이런 문제가 주류 미디어에서 말해지지 않을 때 피해자들의 고통이 두 배가 된다는 점 역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의 첫 질문이 피해자의 목소리를 억압하려는 이들에게 곧장 향하는 것도 그래서다.
|
Choice | |
정말, 괜찮은 걸까
<한낮의 피크닉>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의 개막작이자 <잠시 쉬어가도 좋아>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바 있는 이 작품은, 신진 작가들에게 차기작의 기회를 제공하고 개봉과 배급을 함께 고민하는 취지의 ‘인디트라이앵글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된 장편 옴니버스 영화다.
|
Choice | |
봉인된 비극
<해피엔드> <해피엔드>에는 처음부터 목격의 감각이 배어있다. 물론 그 두 화면을 다 볼 수 있는 목격자는 관객이다. 그런데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가 종종 그랬듯이 ‘누가 그랬는지’ 혹은 ‘왜 그랬는지’의 여부가 영화의 중심에 위치하거나, 이 목격이 불편함을 감내하며 풀어가야 하는 관객의 퍼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신 여기서 보게 될 것은 한 부르주아 가족의 적나라한 초상이다.
|
Choice | |
저주받은 성자
<행복한 라짜로> 영화는 시대 배경을 가늠하기 어려운 이탈리아의 작은 산골마을 인비올라타에서 시작한다. 공동으로 거주하는 오십 여명 남짓한 주민들은 데 루나 후작부인(니콜레타 브라스키) 아래서 소작농으로 살고 있다. 여전히 봉건제가 유지되는 마을에서, 라짜로는 최하위 계급에 위치한 사람이다.
|
Choice | |
그렇게 한 뼘씩
<보희와 녹양> <보희와 녹양>(연출 안주영)은 10대 청소년 보희(안지호)와 녹양(김주아)의 성장기이자 모험담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안주영 감독은 전작 단편 <옆 구르기>(2014), <할머니와 돼지머리>(2016) 등에서 일관되게 보여주었던 청소년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첫 장편영화인 <보희와 녹양>에도 다채롭게 옮겼다. 밝고 싱그러운 화면 위로 두 주연배우의 ‘찰떡케미’가 유쾌하게 녹아든다.
|
Choice | |
마지막 수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2019)는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유언장과 같은 영화다. 이미 <아녜스의 해변>을 받아보았지만, 그녀는 사진과 필름영화와 디지털영화와 비주얼아트에 이르는 60여 년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Choice | |
꿈꾸는 사랑
<우리 지금 만나> 김서윤 감독의 <기사선생>, 강이관 감독의 <우리 잘 살 수 있을까?>, 부지영 감독의 <여보세요>로 이뤄진 이 작품에는 새롭게 변화하는 남북의 상황이나 오래된 분단 현실에 나름대로 적응해 온 개인들의 모습 뿐만 아니라 그를 기반으로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와 감정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
Choice | |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김군> 당시 광주 항쟁에 참여했던 이들 중 복면을 쓰고 무장한 시민군을 두고 이들이 북한군이라는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지만원이 ‘제1광수’라고 지목한 사진 속 인물 또한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매서운 눈빛을 드러내고 있다. 강상우 감독의 영화 <김군>은 지만원과 극우세력의 주장에 맞서 그들이 말하는 제1광수를 탐문하는 과정을 큰 줄거리로 삼는다.
|
Choice | |
상상의 평원으로 진격!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브라질>(1985), <12 몽키즈>(1995) 등을 연출했던 테리 길리엄 감독은 오래전부터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그 프로젝트가 바로 ‘돈키호테’의 영화화였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9년에 처음 작업을 시작했지만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후 계속된 노력 끝에 실제로 촬영에 들어갔으나 결국 완성에는 실패했다. 이 실패의 역사가 <로스트 인 라 만차>(2002)라는 다큐멘터리로 따로 만들어질 정도였으니(이 작품에서 당시 주인공이었던 조니 뎁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테리 길리엄은 결국 지난해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완성했고, 개봉을 앞두고 가진 한 인터뷰에서 “뇌종양이 사라진 것 같다”는 솔직한 소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
Choice | |
패배의 기록, 유령의 역사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영화학자이자 영화감독으로서 이산(離散)과 여성이라는 주제에 그 누구보다 깊고 꾸준한 관심을 보여 왔던 그녀는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지워지고 잃어버렸던 파편들을 이어 새로운 성좌를 그려내고 있다. <김 알렉스의 식당 : 안산-타슈켄트>(2014)를 확장한 <눈의 마음 :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2014)을 시작으로 그녀가 ‘망명 3부작’이라고 이름붙인 작품들의 마지막 영화가 바로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이다.
|
Choice | |
당신들은 자격이 없어요
<러브리스> 아이가 사라진다. 이름은 알료샤, 나이는 12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간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제냐(마리아나 스피바크)와 보리스(알렉세이 로진)는 이혼을 앞둔 부부이다. 그들에게 결혼생활이란 삭제하고 싶은 과거이며, 가정에는 적대와 불신만이 가득하다. 부모에게 자신이 거추장스러운 짐짝임을 알게 된 알료샤가 홀로 집을 떠나는 그 시간에도 제냐와 보리스는 각자의 연인과 새로운 사랑을 꿈꾸느라 여념이 없다. 부부는 아들이 이틀 동안 학교에 결석했다는 선생의 전화를 받고서야 심각한 상황을 뒤늦게 깨닫는다.
|
Choice | |
영원히 흐르지 않는
<한강에게> 진아(강진아)는 첫 시집의 출간을 앞두고 있는 시인이다. 친한 이들과 함께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고 수다를 떠는 시간을 즐기는 그녀에게 한강은 언제나 곁에 머물러 있을 것 같은 존재다. 그런데 십년 가까이 만난 남자친구 길우(강길우)가 얼마 전 바로 그 한강에서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한강에게>는 상실의 아픔과 죄책감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진아의 이야기다.
|
Choice | |
아무도 모르게 리셋
박영주 감독의 <선희와 슬기> 지금 선희(정다은)는 인생을 ‘리셋’하고 싶은 심정이다. 암흑 속에서 두꺼비집을 내렸다가 올리듯, 버스를 타고 낯선 곳을 향해 떠난다. 불이 들어오고 주위가 밝아지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태연하게 연기해볼 작정이다. 유별난 욕구는 아니다. 성장도 극복도 불가능할 때,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는 대신 상처와 죄책감만 남아서 버거울 때, 누구나 한 번쯤 인생을 초기화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이야 평범하지만, 선희의 행보는 어딘가 부적절해 보인다. 이름을 바꾸고 배경을 지운 채 새로운 사연을 뒤집어쓰는 일은 온통 거짓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선희는 스스로 꾸며낸 리셋 버튼을 누른다.
|
Choice | |
진짜 철의 여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미국 역사상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연방 대법관에 오른 인물이며 현재 최고령(1933년생) 대법관이기도 하다. 미 연방 대법원은 한국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성격을 모두 갖는 기관이다. 그곳의 판결은 미국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며, 종신직인 연방 대법관은 법조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다. 다른 사회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대법관은 오랜 동안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던 자리였다. 긴즈버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는 오프닝 시퀀스를 워싱턴의 연방 대법원 건물과 주변 동상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카메라가 전부 남성으로 이루어진 동상들을 차례로 비추는 동안 여러 남성들의 발언이 보이스 오버로 깔린다. 모두 긴즈버그를 마녀, 좀비, 대법원의 수치 등으로 비난하는 목소리들이다.
|
Choice | |
시간의 전도, 세계의 변곡
<강변호텔> 홍상수의 23번째 작품인 <강변호텔>은 그간 그가 창조해온 세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주는 영화다. 홍상수가 ‘극적인 사건으로서의 변화’를 불신하는 감독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이 영화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과격한 변화의 운동을 부정하긴 어렵다. <강변호텔>에 새겨진 무서운 비약과 가차 없는 단절, 낯선 온기와 깊은 비애를 경험하는 동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한 세계의 시작과 다른 세계의 끝을 동시에 활성화하는 것만 같은, 전에 없이 독보적인 이 지평은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Choice | |
환상에서 실재로
<아사코> 4년 전 <해피 아워>로 차세대 일본 영화계를 이끌어갈 선두주자로 주목받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시바사키 도모카의 원작을 바탕으로 신작을 내놓았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아사코>는 비전문 배우의 자연주의적인 연기로 격찬 받은 전작에 비해 보다 정형화된 연기에 다소 관습적인 멜로의 세계를 도입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문득문득 타고난 직관과 감각으로 힘들이지 않고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행해가는 신묘한 영화다.
|
Choice | |
포기하지 않는, 포기할 수 없는
<히치하이크> 정애(노정의)는 줄곧 가난했을 것이다. 태어나서 열여섯이 될 때까지 추운 날에는 한기를, 더운 날에는 열기를 그대로 감내하며 살아온 듯하다. 소녀의 눈은 여간해선 흔들리지 않는다. 크고 진한 눈망울은 담담하게 열려 있고, 울음을 터뜨릴 법한 순간에도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가만히 응시한다. 오래 단련된 고요함이 깃든 탓인지, 앳된 얼굴을 바라보면서도 종종 열여섯이라는 나이를 잊고 만다. 정애가 그나마 제 나이답게 보이는 순간은 엄마를 상상할 때다. 떠올릴 기억이 거의 없는 엄마를, 정애는 가장 무모한 방법으로 찾아 나선다.
|
Choice | |
요즘 애들 아나?
<내가 사는 세상> <내가 사는 세상>은 ‘요즘 애들’이라고 불리는 청년들의 이야기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를 쓰지만, 현실은 번번이 그들의 꿈을 값싸거나 무지하거나 무례한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고군분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젊음이 얼마나 쉽게 빈곤에 처하며 열정이 어떻게 그토록 간단히 착취당하는지 알게 된다.
|
Choice | |
왕의 손, 탐욕의 반지
<그때 그들> 베를루스코니가 총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패한 뒤 자신의 별장에서 재기를 노리던 2006년에서 시작해 2008년 총리 복귀와 2009년 라퀼라 대지진을 거쳐 2010년까지의 시기를 다루는 <그때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원래 2부작으로 개봉됐다.
|
Choice | |
내 나이 88, 내 마음 팔팔
<칠곡 가시나들> 뒤늦게 한글 공부를 시작한 ‘할매’들, 이 학생들의 평균 나이는 86세다. 1930년대에 출생한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성장하고 농촌에서 한평생 일하면서 읽고 쓰는 법을 공부하기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이제 “글자를 아니까 사는 게 더 재밌”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카메라는 그 곁에서 그들의 주름진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느린 걸음을 천천히 따라간다. <칠곡 가시나들>은 함께 공부하고 놀고 글을 쓰는 이 평화롭고도 열정적인 공동체의 모습에 대한 애정 어린 기록이다.
|
Choice | |
그러니까, 누구세요?
<국경의 왕> 희망과 달리 여행에선 종종 잃는다. 길을 헤매고, 물건을 잃어버리고, 적절한 때와 기회를 놓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그리고 특별한 순간과 특별한 만남을 기대하며 멀리 떠나보지만, 낯선 도시에 머무르다 보면 여행이 얼마나 별 볼 일 없는지 알게 된다. 국경을 넘는 흥분도 잠시뿐, 떠나온 곳이나 떠나간 곳이나 단조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실수로 잃어버린 것과 일부러 두고 온 것을 제하면, 여행이란 확실히 득보다 실이 많은 경험이다.
|
Choice | |
그녀가 없다고 상상해봐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여왕의 침실을 차지한 자가 권력을 얻는다.<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는 권력을 둘러싼 왕실풍 퀴어 잔혹극으로 전개된다. 비만과 통풍을 수반한 육체와 우울증이 만성화된 정신의 소유자인 여왕 앤(올리비아 콜먼), 여왕의 오랜 친구이자 권력 실세인 멀버리 공작부인(레이첼 와이즈), 공작부인의 먼 친척이자 노골적으로 신분 상승을 탐하는 애비게일 힐(엠마 스톤) 등 개성과 욕망이 뚜렷한 세 여성이 형성하는 권력 무게추의 이동이 사뭇 흥미롭다.
|
Choice | |
어릿광대, 미치광이, 혹은 악마
<살인마 잭의 집> <살인마 잭의 집>의 구성은 감독의 전작 <님포매니악>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그것이다. 연쇄살인마 잭은‘버지(Verge)’라는 남자를 따라 지옥의 맨 밑으로 내려가는데, 그동안 잭은 버지에게 자신이 12년 간 저지른 살인 중 결정적인 다섯 개의 사건을 들려준다.
|
Choice | |
언제나 떠돌다가 이따끔 마주치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는 현대 도쿄의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청년세대의 모습을 그리는 영화다. 늘 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그 어느 것도 특별한 사건이 되진 않는 곳, 의미 없는 말들만이 넘쳐나는 이곳에 미카(이시바시 시즈카)와 신지(이케마츠 소스케)가 있다.
|
Choice | |
암흑 시대의 사랑
<콜드 워> 눈먼 자의 구슬픈 악기 연주, 그리고 이어지는 이름 모를 이들의 노래.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콜드 워>는 1949년 전후 폴란드에서 불리던 노래를 첫머리에 들려준다. 누군가는 “조악하고 원시적”이며 “주정뱅이의 노래”라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노래야말로 폴란드 민족의 원초적인 힘이며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
Choice | |
냉소로 겨울을 버틸 수 있을까
<이월> 삶을 지속하는 동안 민경의 얼굴에 스치는 건, 생에 대한 의지나 미래를 향해 품는 희망 같은 것이 아니다. 냉소, 뻔뻔함, 싸늘함 등이 대개 무표정인 민경의 얼굴에 불현듯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호의를 보이는 이들을 곤란하게 하며 섬뜩한 웃음을 보이기도 한다. 어딘지 복잡함보다는 불가해함에 더 닿아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민경은 단순하게 이해되기를 거부하는 인물이다.
|
Choice | |
공백의 파동
<얼굴들> 이강현 감독의 첫 번째 극영화 <얼굴들>은 제목에서 짐작되는 것과는 달리 극적인 얼굴들을 담은 클로즈업의 영화는 아니다. 그의 다큐멘터리 <파산의 기술>(2006)과 <보라>(2011)를 이미 본 관객이라면 그런 예상은 하지 않겠지만. <얼굴들>에는 대체로 롱 쇼트로 포착된 ‘잘 읽히지 않는’ 얼굴들이 있다.
|
Choice | |
연민과 재현의 딜레마
<가버나움> 나딘 라바키는 사회, 종교적 금기와 차별에 맞선 레바논 여성들의 이야기를 멜로와 코미디 장르로 완곡하게 풀었던 전작 <카라멜>(2007), <웨어 두 위 고 나우?(Where Do We Go Now?)>(2011)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선명한 목소리로 <가버나움> 속 세상의 폭력을 보라고 말한다.
|
Choice | |
관조와 음미
<일일시호일>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라는 의미의 <일일시호일>은 일상의 정취를 전하는 ‘차 한 잔의 마법’ 같은 영화다. 스무살 대학생 노리코(쿠로키 하루)는 자신과 다르게 무엇이든 똑 부러지게 해내는 동갑내기 사촌 미치코(타베 마카코)와 함께 우연히 마을의 다도수업에 참석한다. 다도를 통해 사시사철 달라지는 생의 이치를 전달해주는 다도선생 다케타 역은 고(故) 키키 키린이 맡았다.
|
Choice | |
진실 뒤에 숨다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 어리석은 욕망과 행동들이 충돌하고 얽히면서 크고 작은 불행이 만들어진다. 많은 경우 타코우와 나츠하라는 다른 이들에게 불행을 주는 존재였지만, 결국 죽음이라는 자신들의 가장 큰 불행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단편 영화 시절부터 일본 국내외 영화제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이시카와 케이의 장편 데뷔작.
|
Choice | |
이렇게 완벽한 날
<레토> 영화는 첫 공연 장면의 어색한 긴장과 앞서 언급한 화창한 여름날 해변의 생기를 오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당국의 엄격한 통제 아래에서도 젊음의 해방구로 록음악을 선택했던 레닌그라드의 청춘들이 있었고, 이들의 음악을 향한 열정과 방황, 사랑이 영화가 주로 다루고자 했던 바일 것이다. 빅토르 최는 1982년에 데뷔하여 1990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구소련의 전설적인 록스타이지만, 그가 스타가 되기 전 1년 정도의 시간만을 다루는 것도 이런 의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Choice | |
역사와 기억의 포말
<로마> <로마>는 영화음악을 비롯한 화면 밖 소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영화 내 소리들로만 사운드를 구성한 영화다. 번화가에서는 행인의 수다, 유행가, 행상인의 호객행위까지 잡다하게 살려냈고 빈민가에서는 선거유세와 싸구려 흥행쇼의 결정적 순간까지 포착하고, 들려준다.
|
Choice | |
살며시 마주보기
<어른이 되면>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은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혜정과 언니 혜영, 그리고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다.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인권, 페미니즘,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장혜영 감독은 ‘탈시설’ 이후 동생 혜정과의 반년간 동거 생활을 카메라에 담았다. 감독은 애초 뚜렷한 구성안을 갖고 시작한 영화가 아님을 밝히며, 영화의 완성보다 중요한 것은 혜정과 자신이 잘 살아가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 마음을 바탕삼아 제작된 <어른이 되면>은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함께 살기를 희망하는 온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
Choice | |
오직 진심만이
<영주> 영화는 이들 관계의 진전과 그로 인해 변화하고 갈등하는 영주의 감정을 천천히 그리고 성실하게 따라간다. 영주에게 부모 같은 어른이 필요했듯이, 혼수상태가 된 아들을 둔 상문과 향숙 부부에게도 일상을 나눌 자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들은 점차 서로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어간다.
|
Choice | |
조롱에서 비명으로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 하지만 트럼프라는 현상은 그에게 더는 폭로하고 조롱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떻게 이따위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오히려 시선을 우리 쪽으로 돌려 궁리해야 할 문제에 가까웠을 것이다. 탐욕스럽고 멍청한 저쪽 편에 의해 우리의 시스템이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공고하다고 안심하고 있던 우리의 시스템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야 할 필요성을 트럼프가 던진 것이다.
|
Choice | |
모두가 다 같이 풍덩!
<인어전설> <인어전설>은 인공적인 아쿠아리움과 바다의 풍광, 수중에서 묘기를 펼치는 여자와 물질하는 여자의 형상을 교차하며 시작된다. 두 시공간, 혹은 두 여자의 초상은 물에서 활동한다는 동일한 조건을 나누며 공명하지만, 둘 사이의 정서적, 물리적 거리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도입부 시퀀스의 이러한 인상은 <인어전설>의 기본적인 구도를 요약한다. 직업도, 나이도, 배경도, 과거도 다르지만, 물의 성질만큼은 누구보다 완벽하게 체득한 두 여자가 오직 물을 인연으로 만났을 때, 둘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가능해질까. 오랜 시간, 그들 일상의 일부였던 ‘물’이라는 세계는 그들의 현실에 변화를 불러오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을까.
|
Choice | |
품지 못할 내 것을 찾아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장률 감독의 열한 번째 영화이자 한국에서 찍은 여섯 번째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이하 <군산>)는 <경주>(2014)와 무척 닮았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는 공간, 계획되지 않은 여행, 일과에서 해방된 무위의 시간, 해프닝 같은 로맨스, 불쑥불쑥 끼어드는 죽음의 모티프, 예측불허의 별난 유머 감각 등이 이 영화를 <경주>의 연작으로 보게 한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의 절반 지점까지는) <군산>은 <경주>보다 더 모호하고 더 꿈같다. 그래서 더 매혹적이다.
|
Choice | |
빼앗긴 진혼곡
<1991, 봄> 유서대필과 자살방조 혐의로 체포되어 3년 동안 옥살이를 한 강기훈은 24년이 흐른 2015년이 되어서야 무죄판결을 받았다. “시시한 진실보다 재밌는 거짓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를 기억할까. 죽음의 벼랑으로 떠밀었다고 오해받았던 그의 손은 이제 기타를 잡고 떨리는 연주를 시작한다.
|
Choice | |
비켜, 질문은 내가 한다
<밤치기> 밤은 깊어가고 취기는 오르지만, 가영은 지칠 줄 모른다. 천하의 공격수답게 대사를 치며 영화를 누빈다. ‘가영’의 질문은 아슬아슬한 수위를 넘나들지만 ‘영화 작업’이라는 방패 덕분에 그럭저럭 능청을 유지한다. 속내가 빤히 드러나는 질문과 희롱에 가까운 태도에도 불구하고 진혁은 대답을 거부하지는 못한다. 어쨌거나 질문의 필요와 불필요, 혹은 적절과 부적절을 판단하는 쪽은 가영이기 때문이다.
|
Choice | |
가족이 되는 법
<프리다의 그해 여름> <프리다의 그해 여름>이 외숙모 마가와 프리다의 관계를 그리는 방식 또한 섬세하고 흥미롭다. 프리다에게 엄마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인물들은 우선적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모들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은 너무 일찍 엄마와 헤어진 프리다를 늘 가엽게 여기고 프리다가 원하는 만큼의 애정과 친밀함을 준다. 하지만 실제로 프리다와 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것은 마가다. 그녀는 프리다를 병원에 데려가고 신발 끈을 스스로 묶도록 하며 식사 준비를 위해 텃밭에 다녀오는 소일거리를 시킨다. 이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감정적 교류가 일어나진 않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어려워하고 염려하며 가족이 되는 법을 배워간다.
|
Choice | |
그림자 골목의 사랑
<풀잎들> <풀잎들>은 <오! 수정>(2000), <북촌방향>(2014), <그 후>(2017)를 잇는 홍상수의 네 번째 흑백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차갑게 빛나는 겨울 햇살도, 흥청거리는 취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흑백영화는 겨울이 제격이라고 생각해온 우리들에게 <풀잎들>의 가을은 낯설고 기괴하지만, 은근하고 새롭다. 심지어 이 사람들은 북촌 골목에 숨어 있는 카페에 모여들어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영원히 북촌을 맴돌 운명을 타고 난 자들처럼 카페 앞에 심겨진 고무 대야의 여린 잎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간혹 골목 어딘가로 산책을 떠났다가 자신이 앉았던 테이블로 돌아온다. 카페는 홍상수가 펼쳐놓은 죽음과 사랑에 관한 대화의 장, 귀가 밝고 눈이 매서운 자의 관찰기, 가을밤의 술 한 잔을 예찬하는 쓸쓸하고 헛헛한 사람들의 초상이 된다.
|
Choice | |
교묘한 시스템을 응시하라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브리지워터 정신병원에 대한 다큐멘터리 <티티컷 풍자극>(1967)으로 데뷔해 지속해서 공공기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어온 프레더릭 와이즈먼이 이번에는 뉴욕 공립도서관으로 향한다. 와이즈먼이 도서관을 구성하는 방식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양상들을 최대한 다양하게 보여주는 방식이다.
|
Choice | |
우연과 감각의 데칼코마니
<춘천, 춘천> <춘천, 춘천>에는 보다 많은 우연이 들어있다. 실제로 춘천이 고향인 장우진 감독이 기차에서 우연히 들은 대화를 통해 세랑과 흥주의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영화에 등장하는 마라톤 대회나 불현 듯 등장하는 사마귀의 존재 같은 것들도 모두 우연을 받아들인 결과다.
|
Choice | |
소년은 다시 달린다
<린 온 피트> <45년 후>의 감독 앤드루 헤이그의 네 번째 영화 <린 온 피트>는 윌리 블로틴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성장 드라마다. 이 영화의 스토리를 요약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것으로는 영화의 매혹과 따스한 기운이 전해지지 않을 것 같다.
|
Choice | |
자꾸만 어긋나는
<체실 비치에서> 해변 근처에 위치한 어느 호텔 방에 플로렌스(시얼샤 로넌)와 에드워드(빌리 하울)가 마주 앉아있다. 이들은 막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다. 저녁 식사가 예상보다 이르게 준비되어 당황스러운 이들 사이에 엷은 긴장이 감돈다.
|
Choice | |
내게 돌을 던져라
<죄 많은 소녀> <죄 많은 소녀>는 원한과 죄책감을 파고드는 영화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이자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6) 연출부를 지낸 김의석 감독의 첫 장편영화로, 2017년 부산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 및 올해의 배우상(전여빈)을 받았다. 제목에서 특정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은 어느 장면, 어떤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 가는가에 따라 달리 보일 법한 영화다.
|
Choice | |
애도와 위로
<봄이가도> <봄이가도>는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영화다. 그날 아침 딸과 다투고 여행 떠나는 딸아이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어머니, 선창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한 여학생을 구하지 못한 구조대원, 아내를 잃은 뒤 일상이 무너진 남자의 이야기가 차례로 펼쳐진다.
|
Choice | |
비밀의 문, 망각의 탑
<더 블랙> ‘국가정보원의 비밀요원’을 의미하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더 블랙>은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경찰의 수사 과정과, 채동욱 검찰총장이 옷을 벗고 윤석열 팀장이 좌천되는 검찰 초유의 사건을 겪으며 진행되었던 검찰 특별수사팀의 수사 과정을 따라가며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사건’을 재구성한다. 재구성의 주된 재료는 제작진이 입수한 2013년 국정조사 당시 경찰이 제출했던 서울시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분석실 내부 CCTV 영상과 국정원 직원의 핸드폰 문자, 경찰의 내부감찰보고서와 제작진이 전직 검사의 증언을 토대로 구성한 배우의 재연 장면이다.
|
Choice | |
기적을 만드는 법
<어둔 밤> <어둔 밤>은 영화동아리 ‘리그 오브 쉐도우’의 좌충우돌 영화제작 과정을 담은 페이크다큐멘터리다. 덕후들로 구성된 동아리 멤버들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광팬이고, 마블과 DC 영화들에도 심취해있다. 여느 날처럼 안감독(송의성), 심피디(심정용), 요한(이요셉), 조빙(조병훈)은 골방에 모여앉아 각종 히어로 레고를 가지고 노는데, 안감독이 문득 오랫동안 써온 히어로물 시나리오가 있다며 함께 영화를 찍자고 제안한다. 예비군이 주인공인 한국적인 히어로물이다.
|
Choice | |
배팅의 규칙
<몰리스 게임>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소킨만의 미덕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전문직 주인공과 그의 직업적 환경에 내재한 리듬, 그 프로페셔널리즘 드라마를 떠받치는 주인공만의 윤리가 그것이다.
|
Choice | |
마고는 어디로?
<서치> 아니시 샤간티 감독은 인터넷 매체와 SNS 문화에 녹아 있는 익명성과 공격성을 스릴러의 중요한 동력으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연출 방법이 단순한 트릭이 아닌, 필연적인 서사적 장치임을 입증한다.
|
Choice | |
다시 노래할 수 있을까
<대관람차> 백재호, 이희섭 두 감독이 공동연출한 영화 <대관람차>는 서툴고 실수투성이인 우주의 발걸음을 천천히 따라가며 그를 지켜본다. 대정과 우주는 모두 음악에 대한 애정과 꿈을 접어두고 회사에 다니며 현실을 살아가고 있던 인물들이다.
|
Choice | |
끝내
<살아남은 아이> 성철과 미숙 앞에 ‘살아남은 아이’ 기현(성유빈)이 나타난다. 죽은 아들이 자신의 목숨 대신 구했다는 아이. 기현의 존재는 부부에게 복잡한 감정을, 아들의 죽음 이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불러일으킨다. 아들이 그의 목숨을 구했으니 성철은 기현의 미래를 지켜보고 도움을 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미숙은 아들의 죽음을 떠오르게 하고 그 죽음의 이유처럼 여겨지는 기현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
Choice | |
빛나는 그림자
<휘트니> 돌이켜보면, 크레딧 타이틀이 제시되는 동안 휘트니 휴스턴이 들려준 자신의 악몽은 이 거대한 드라마의 전조였다. 엄청난 몸집의 거인에게 늘 쫓긴다는 이야기. 엄마는 그게 휘트니의 영혼을 차지하려는 악마라고 했다.
|
Choice | |
진짜 영화는 지금부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7)는 좀비와 영화 제작이라는 두 가지 소재를 절묘하게 결합한 코미디다. 이 영화는 다양한 관점에서 보기를 요구하는데, 먼저 좀비물이라는 장르를 중심으로 보면 좀비와 인간의 사투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장르적 즐거움이 도드라진다.
|
Choice | |
어른들만 몰라요
<어른도감> <어른도감>은 속 깊은 조카와 철부지 삼촌이 펼치는 버디무비다. 과하지 않은 사기극 코미디에 유사가족 드라마가 얹혔지만, 악의 없이 끝내 건강하고 산뜻하다. 가족영화라기보다 고독한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감내해 가는 과정을 응원하는 성장영화라 함이 적절하다.
|
Choice | |
거부한 운명, 마주한 운명
<델마> 오프닝부터 영화는 서늘한 긴장감으로 보는 이의 정서를 강하게 빨아들인다. 어린 델마와 그녀의 아버지가 박빙의 호수 위를 걷고 있다. 수면 아래 헤엄치는 물고기가 보일 정도로 살짝 언 빙판이다. 호수 건너편에 도달한 부녀는 어린 사슴 사냥에 나서고, 의도인지 우연인지 모를 실로 질식할 순간이 지나간다. 호수와 물이 등장하는 영화의 오프닝은 앞으로 전개될 영화의 정서에 대한 암시가 될 것이다.
|
Choice | |
종말이 시작됐다
<산책하는 침략자> 눈길을 끄는 건 공동체의 파국을 그리는 데 있어 누구보다 독특한 상상력과 염세적인 전망을 보여 온 구로사와 기요시가 외계인이 등장하는 본격 지구 종말 서사를 다룬다는 점이다. 유령, 사이코패스, 정신병자 등 일상 속 ‘정상성’의 경계를 뒤흔드는 존재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미래를 서늘하게 묘사했던 기요시의 전작을 봐왔던 관객이라면 그가 지구 종말과 외계인이라는 소재를 택했다는 것만으로 큰 기대를 할 것이다.
|
Choice | |
우리는 하나면 돼
<소성리>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소성리>를 보기 시작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의 농민, 그 가운데서도 여성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작과 함께 영화는 한동안 여성 농민들이 농사일을 하고 마을회관에 모여 소일거리하며 보내는 일상의 풍경을 보여주는데 충실하다.
|
Choice | |
펄떡이는 단독자의 분노
<카운터스> 모든 혐오와 차별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 영화의 태도라면, 이 영화가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것은 육체적인 돌파력이며, 이 영화의 거침없는 리듬이 구해내는 것은 이 시대, 마블 영화가 아닌 다른 어디서도 마주할 수 없는 반영웅의 진짜 행로다.
|
Choice | |
아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22> 우리가 ‘위안부’ 문제해결과 관련해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은 아마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표현일 것이다. 대부분 80대에서 90대 정도의 노년여성인 피해 생존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
더보기
Choice |
언젠가는, 어떻게든
<되살아나는 목소리> |
Choice |
결코 마르지 않는
<열 개의 우물> |
Choice |
악취의 근원
<럭키, 아파트> |
Choice |
훨훨
<공작새> |
Choice |
비상 착륙
<잠자리 구하기> |
Choice |
사람들은 나를 몰라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
Choice |
너와 나, 각자의 싸움
<위국일기> |
Choice |
지금, 우리는
<해야 할 일> |
Choice |
가족의 조건
<장손> |
Choice |
투정이 아니라고
<한국이 싫어서> |
Choice |
거울 없이도
<러브 달바> |
Choice |
일곱번째 나팔소리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
Choice |
머지않았다
<미래의 범죄들> |
Choice |
요동치는 몸과 마음
<러브 라이즈 블리딩> |
Choice |
다시 일어서려면
<더 납작 엎드릴게요> |
Choice |
세상은 말이야
<퍼펙트 데이즈> |
Choice |
슬퍼하지 말고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
Choice |
유일한 해방구
<생츄어리> |
Choice |
아직도 불안한
<다섯 번째 방> |
Choice |
소녀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부터 댄싱퀸> |
Choice |
집착과 방관
<목화솜 피는 날> |
Choice |
새클러의 거짓말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
Choice |
우주의 선물
<미지수> 권잎새·이돈구 |
Choice |
아마도 그곳에
<미지수> |
Choice |
새로운 길
<여행자의 필요> |
Choice |
모든 걸 잃었을지라도
<정순> |
Choice |
지속과 균열
<돌들이 말할 때까지> |
Choice |
굴하지 않는
<바람의 세월> |
Choice |
모두가 외지인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
Choice |
세상 끝 사랑
<세월: 라이프 고즈 온> |
Choice |
팰린드롬
<메이 디셈버> |
Choice |
일기일회(一期一會)
<패스트 라이브즈> |
Choice |
아무도 몰라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
Choice |
꿈꾸는 에도
<오키쿠와 세계> |
Choice |
진기한 마주침
<벗어날 탈 脫> |
Choice |
이게 허구라고?
<플랜 75> |
Choice |
진실의 크레바스
<추락의 해부> |
Choice |
밀레니엄 맨드라미
<세기말의 사랑> |
Choice |
지옥선 타고
<울산의 별> |
Choice |
희망의 원리
<나의 올드 오크> |
Choice |
거기서 그러지 말고
<이어지는 땅> |
Choice |
헬싱키 사람들
<사랑은 낙엽을 타고> |
Choice |
어서 와, 여기 있다
<홈그라운드> |
Choice |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물비늘> |
Choice |
여기가 끝인가
<빅슬립> |
Choice |
본량(本良)에 관하여
<어른 김장하> |
Choice |
보이지 않는, 잡을 수 없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
Choice |
라면을 끓이며
<우리의 하루> |
Choice |
입술을 깨물고
<믿을 수 있는 사람> |
Choice |
대신 낳아드립니다
<팟 제너레이션> |
Choice |
알다마다
<킴스 비디오> |
Choice |
순전한 기적의 비밀
<어파이어> |
Choice |
깜빡깜빡 SOS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
Choice |
마침내
<어느 멋진 아침> |
Choice |
광화문에서 금남로까지
<피아노 프리즘> |
Choice |
최후의 보루
<강변의 무코리타> |
Choice |
낙원은 없다
<지옥만세> |
Choice |
헤이, 게이
<퀴어 마이 프렌즈> |
Choice |
리빙 데드
<다섯 번째 흉추> |
Choice |
파국이 이르노니
<비닐하우스> |
Choice |
불구의 사랑
<러브 라이프> |
Choice |
니네 아빠, 니네 엄마
<비밀의 언덕> |
Choice |
하염없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
Choice |
어디 계십니까?
<206: 사라지지 않는> |
Choice |
물새의 노래
<수라> |
Choice |
말없이 반짝이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
Choice |
유일무이
<그 여름> |
Choice |
침묵할 기회
<말없는 소녀> |
Choice |
마지막 마츠리
<남은 인생 10년> |
Choice |
환장하겠네
<말이야 바른 말이지> |
Choice |
기적 대신, 마술 대신
<토리와 로키타> |
Choice |
지독한 여름
<클로즈> |
Choice |
사악한 구원자의 재림
<피기> |
Choice |
다음엔 일부러 만날까요?
<튤립 모양> |
Choice |
진공의 공명
<물안에서> |
Choice |
루피 따라 수학여행
<장기자랑> |
Choice |
텅 빈 집
<흐르다> |
Choice |
환상의 전율
<파벨만스> |
Choice |
죽음의 곶(串), 운명의 만(灣)
<이니셰린의 밴시> |
Choice |
무르만스크 서곡
<6번 칸> |
Choice |
찰리의 소파
<더 웨일> |
Choice |
말들의 풍경
<컨버세이션> |
Choice |
사랑하라, 그러나 조심하라
<피터 본 칸트> |
Choice |
비극의 매뉴얼
<다음 소희> |
Choice |
출렁이고 반짝이는
<애프터썬> |
Choice |
혼자서 부를 노래
<라인> |
Choice |
그래도 괜찮을까?
<유랑의 달> |
Choice |
불행도 스펙
<해시태그 시그네> |
Choice |
네버 엔딩 스토리
<3000년의 기다림> |
Choice |
예술 혹은 외설
<크레이지 컴페티션> |
Choice |
황후의 고원
<코르사주> |
Choice |
빛이 있으라
<페르시아어 수업> |
Choice |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만인의 연인> |
Choice |
고요한 게임
<창밖은 겨울> |
Choice |
사랑의 탄원
<파이어버드> |
Choice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
Choice |
이토록 기이한
<탑> |
Choice |
부족한 우리?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
Choice |
오사카, 평양, 그리고 제주
<수프와 이데올로기> |
Choice |
침묵은 당신을
<애프터 미투> |
Choice |
꿈에도 소원은
<2차 송환> |
Choice |
부유하는 주검
<달이 지는 밤> |
Choice |
우리 이제 어디로
<홈리스> |
Choice |
물안경 쓰고 텀블링
<성적표의 김민영> |
Choice |
정말 거기에 있었습니까?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 |
Choice |
아직 저 멀리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Choice |
폭풍 속으로
<풀타임> |
Choice |
갱생의 길
<멋진 세계> |
Choice |
문득 시작한 대화, 결국 뒤엉킨 시간
<모퉁이> |
Choice |
그 섬에 가고 싶다
<베르히만 아일랜드> |
Choice |
불타오르네!
<보일링 포인트> |
Choice |
끔찍한 X, 무력한 Y
<배드 럭 뱅잉> |
Choice |
장악된 삶
<초록밤> |
Choice |
맨발의 청춘
<썸머 필름을 타고!> |
Choice |
우리라는 우리
<아이를 위한 아이> |
Choice |
서사와 감정을 제하고
<군다> |
Choice |
착하지, 우리 딸
<로스트 도터> |
Choice |
눈앞이 캄캄할 때
<컴온 컴온> |
Choice |
안개가 불러낸 사랑
<헤어질 결심> |
Choice |
내가 거울입니다
<니얼굴> |
Choice |
그랑 쥬떼!
<모어> |
Choice |
분노와 자책이 아니라면
<경아의 딸> |
Choice |
누굴 찾는 거니?
<실종> |
Choice |
못말리는 골육상전
<윤시내가 사라졌다> |
Choice |
판도라의 역설
<브로커> |
Choice |
안드로이드 다이어리
<애프터 양> |
Choice |
망각의 강 너머
<카시오페아> |
Choice |
응답 없는 기도
<플레이그라운드> |
Choice |
끝까지 살아남아
<오마주> |
Choice |
그 누가 십자가를
<매스> |
Choice |
목련 보러 살구 따러
<봉명주공> |
Choice |
사랑을 믿나요?
<파리, 13구> |
Choice |
퇴로는 없다
<크로스 더 라인> |
Choice |
수레바퀴 아래서
<우연과 상상> |
Choice |
왜 이런지 모르겠다
<평평남녀> |
Choice |
기지와 미지
<소설가의 영화> |
Choice |
글의 집, 삶의 터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
Choice |
다락방 민달팽이
<태어나길 잘했어> |
Choice |
재기의 딜레마
<복지식당> |
Choice |
비밀과 거짓말
<나의 집은 어디인가> |
Choice |
이것만 기억해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
Choice |
콜트-콜텍 4464
<재춘언니> |
Choice |
어머니의 모든 것
<패러렐 마더스> |
Choice |
밑바닥 개싸움
<뜨거운 피> |
Choice |
폐허가 묻다
<고양이들의 아파트> |
Choice |
궁정에서 온 편지
<스펜서> |
Choice |
체험된 몸
<레벤느망> |
Choice |
아무도 몰랐던
<소피의 세계> |
Choice |
머라캐도 내 이름은
<보드랍게> |
Choice |
로맨틱 펀치 드렁크
<리코리쉬 피자> |
Choice |
오래 생각한 끝
<온 세상이 하얗다> |
Choice |
바쿠스의 잠언
<어나더 라운드> |
Choice |
빌어먹을, 액션!
<프랑스> |
Choice |
기다려요, 기다려야 해요
<드라이브 마이 카> |
Choice |
영속하는 풍경
<끝없음에 관하여> |
Choice |
그분은 포기하지 않았다
<해피 아워> |
Choice |
이종 변태 광시곡
<티탄> |
Choice |
전쟁 없는 세상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 |
Choice |
채찍, 신이 허락한 도구
<베네데타> |
Choice |
하늘이 무너져도
<왕십리 김종분> |
Choice |
와일드 스위트 오리건
<퍼스트 카우> |
Choice |
아직은 헤어지지 않기로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
Choice |
환멸의 도시
<사상> |
Choice |
벼랑 끝에서 유영
<당신 얼굴 앞에서> |
Choice |
다 끝난 거 아니야?
<휴가> |
Choice |
지금이라는 선물
<종착역> |
Choice |
선의 끝, 악의 시작
<좋은 사람> |
Choice |
사랑은 왜 끝나나
<박강아름 결혼하다> |
Choice |
뫼비우스 술래잡기
<우리, 둘> |
Choice |
불가피한, 불가능한
<피닉스> |
Choice |
비탈에 서다
<강호아녀> |
Choice |
난 정말 이해가 안 돼!
<까치발> |
Choice |
비우고 껴안기
<인트로덕션> |
Choice |
교착과 만곡
<혼자 사는 사람들> |
Choice |
폭력의 전이
<어른들은 몰라요> |
Choice |
아직 말하지 못한
<비밀의 정원> |
Choice |
끊임없이 반짝이는
<더스트맨> |
Choice |
세상이 열린다
<자산어보> |
Choice |
내 싸움입니다
<당신의 사월> |
Choice |
가끔 빛이 필요한 까닭
<아무도 없는 곳> |
Choice |
그녀의 진짜 이름은
<스파이의 아내> |
Choice |
맨몸으로, 온몸으로
<파이터> |
Choice |
꿈에도 몰랐던
<정말 먼 곳> |
Choice |
사랑의 단층
<암모나이트> |
Choice |
불안과 충동의 무한 격발
<포제서> |
Choice |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 |
Choice |
상처의 그림자
<밤빛> |
Choice |
저는 아직 당신을
<라스트 레터> |
Choice |
진실의 움막, 사라진 애도
<빛과 철> |
Choice |
침묵하고, 부정하고
<살아남은 사람들> |
Choice |
난쟁이 선언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
Choice |
바보도 죄인도 아닙니다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
Choice |
요즘 뭐해?
<요요현상> |
Choice |
동토의 비밀
<미스터 존스> |
Choice |
온전히 발끝으로
<걸> |
Choice |
영원히 사는 거 아니잖아
<썸머 85> |
Choice |
내가 곧 운명
<운디네> |
Choice |
투명한 시간, 기묘한 리듬
<겨울밤에> |
Choice |
이대론 안 되겠다
<내언니전지현과 나> |
Choice |
여전히 세상은
<담쟁이> |
Choice |
굴레와 고리
<웰컴 투 X-월드> |
Choice |
블랙홀의 그림자로
<도망친 여자> |
Choice |
기도(企圖)와 기도(祈禱)
<나를 구하지 마세요> |
Choice |
실없는 유희, 끝없는 배회
<후쿠오카> |
Choice |
언제든 돌아갈
<남매의 여름밤> |
Choice |
제국의 심장을 폭파하라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
Choice |
말과 삶
<69세> |
Choice |
여기는 절망 1호, 응답하라
<루비> |
Choice |
신의 뜻대로
<소년 아메드> |
Choice |
꿈의 나라에서
<블루 아워> |
Choice |
죽기 전까지 가위바위보
<팡파레> |
Choice |
때가 됐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
Choice |
여태껏 없었던
<욕창> |
Choice |
전쟁 같은
<인비저블 라이프> |
Choice |
지옥에 끌려간 소년
<부력> |
Choice |
욕망을 던지면
<야구소녀> |
Choice |
달리 보면 행복할까
<환상의 마로나> |
Choice |
재난의 삶, 구원의 기억
<프랑스여자> |
Choice |
언약과 학대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 |
Choice |
낙인과 상징
<안녕, 미누> |
Choice |
안 들리게 해주세요
<나는보리> |
Choice |
하나씩, 하나씩
<파도를 걷는 소년> |
Choice |
사막의 혈투
<리벤지> |
Choice |
밤을 기억하라
<호텔 레이크> |
Choice |
언젠가 돌아갈
<바람의 언덕> |
Choice |
여름 이야기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
Choice |
주저 말고 스퍼트!
<라라걸> |
Choice |
아주 가끔, 이제 그만
<사랑이 뭘까> |
Choice |
'그것'의 처소
<온다> |
Choice |
악몽이 아니라면
<더 터닝> |
Choice |
변함없이, 어김없이
<펠리칸 베이커리> |
Choice |
메두사의 선택
<그 누구도 아닌> |
Choice |
우주가 퐁당
<모리의 정원> |
Choice |
부권 말소 프로젝트
<이장> |
Choice |
오버 더 레인보우
<주디> |
Choice |
매수된 세계, 박탈된 육체
<다크 워터스> |
Choice |
그대가 주인, 어디든 진리
<찬실이는 복도 많지> |
Choice |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링고> |
Choice |
내가 어렸을 때
<기억의 전쟁> |
Choice |
뻔하다고? 미쳤다고? 글쎄~
<하트> |
Choice |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도하는 남자> |
Choice |
오직 예술만이
<작가 미상> |
Choice |
말로 하자니까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 |
Choice |
내가 불러낸 우연
<페인 앤 글로리> |
Choice |
걷잡을 수 없는
<성혜의 나라> |
Choice |
알레포에서 온 편지
<사마에게> |
Choice |
점멸하는 시간
<작은 빛> |
Choice |
사랑을 넘어선 사랑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Choice |
대지의 심판
<신의 은총으로> |
Choice |
진짜 동물 같은? 진짜 사람 같은!
<해치지않아> |
Choice |
영화는 무엇을 원하는가
<백두 번째 구름> |
Choice |
오지 않는 내일
<와일드라이프> |
Choice |
노예의 선택
<미안해요, 리키> |
Choice |
모두가 뒤뚝뒤뚝
<기억할 만한 지나침> |
Choice |
성좌의 본질
<영화로운 나날> |
Choice |
당신의 극장입니다
<라스트 씬> |
Choice |
비극은 멀지 않았다
<10년> |
Choice |
왜 그렇게 사냐고?
<속물들> |
Choice |
나쁜 엄마, 성가신 딸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
Choice |
이번 정류장은
<이태원> |
Choice |
각성과 응답
<녹차의 중력> |
Choice |
한낮의 어둠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
Choice |
꿈꿀 수 있다면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
Choice |
격정의 분화구
<시빌> |
Choice |
인류애로 공동선을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
Choice |
너를 다시 만나면
<윤희에게> |
Choice |
달아나고 싶지만
<영하의 바람> |
Choice |
그녀에게 남은 것
<심판> |
Choice |
카메라를 들어야 했다
<졸업> |
Choice |
차마 보낼 수 없는
<오늘, 우리> |
Choice |
사랑을 삼킨 후에
<경계선> |
Choice |
감각의 질주
<아워 바디> |
Choice |
믿음과 불신의 변증법
<메기> |
Choice |
보이지 않는 세상
<동물,원> |
Choice |
너 돈 많아? 나 흥 많아!
<불빛 아래서> |
Choice |
세상이 일러주지 않은 사랑
<벌새> |
Choice |
내가 지킬 거야
<우리집> |
Choice |
시간의 집을 찾아서
<이타미 준의 바다> |
Choice |
내 목소리 들리니?
<밤의 문이 열린다> |
Choice |
이상한 콤플렉스, 끔찍한 스캔들
<앨리스 죽이기> |
Choice |
분명 여기에 유령이 있다
<려행> |
Choice |
갔다, 꼭 올게
<김복동> |
Choice |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주전장> |
Choice |
정말, 괜찮은 걸까
<한낮의 피크닉> |
Choice |
봉인된 비극
<해피엔드> |
Choice |
저주받은 성자
<행복한 라짜로> |
Choice |
그렇게 한 뼘씩
<보희와 녹양> |
Choice |
마지막 수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
Choice |
꿈꾸는 사랑
<우리 지금 만나> |
Choice |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김군> |
Choice |
상상의 평원으로 진격!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
Choice |
패배의 기록, 유령의 역사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
Choice |
당신들은 자격이 없어요
<러브리스> |
Choice |
영원히 흐르지 않는
<한강에게> |
Choice |
아무도 모르게 리셋
박영주 감독의 <선희와 슬기> |
Choice |
진짜 철의 여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
Choice |
시간의 전도, 세계의 변곡
<강변호텔> |
Choice |
환상에서 실재로
<아사코> |
Choice |
포기하지 않는, 포기할 수 없는
<히치하이크> |
Choice |
요즘 애들 아나?
<내가 사는 세상> |
Choice |
왕의 손, 탐욕의 반지
<그때 그들> |
Choice |
내 나이 88, 내 마음 팔팔
<칠곡 가시나들> |
Choice |
그러니까, 누구세요?
<국경의 왕> |
Choice |
그녀가 없다고 상상해봐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
Choice |
어릿광대, 미치광이, 혹은 악마
<살인마 잭의 집> |
Choice |
언제나 떠돌다가 이따끔 마주치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
Choice |
암흑 시대의 사랑
<콜드 워> |
Choice |
냉소로 겨울을 버틸 수 있을까
<이월> |
Choice |
공백의 파동
<얼굴들> |
Choice |
연민과 재현의 딜레마
<가버나움> |
Choice |
관조와 음미
<일일시호일> |
Choice |
진실 뒤에 숨다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 |
Choice |
이렇게 완벽한 날
<레토> |
Choice |
역사와 기억의 포말
<로마> |
Choice |
살며시 마주보기
<어른이 되면> |
Choice |
오직 진심만이
<영주> |
Choice |
조롱에서 비명으로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 |
Choice |
모두가 다 같이 풍덩!
<인어전설> |
Choice |
품지 못할 내 것을 찾아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
Choice |
빼앗긴 진혼곡
<1991, 봄> |
Choice |
비켜, 질문은 내가 한다
<밤치기> |
Choice |
가족이 되는 법
<프리다의 그해 여름> |
Choice |
그림자 골목의 사랑
<풀잎들> |
Choice |
교묘한 시스템을 응시하라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
Choice |
우연과 감각의 데칼코마니
<춘천, 춘천> |
Choice |
소년은 다시 달린다
<린 온 피트> |
Choice |
자꾸만 어긋나는
<체실 비치에서> |
Choice |
내게 돌을 던져라
<죄 많은 소녀> |
Choice |
애도와 위로
<봄이가도> |
Choice |
비밀의 문, 망각의 탑
<더 블랙> |
Choice |
기적을 만드는 법
<어둔 밤> |
Choice |
배팅의 규칙
<몰리스 게임> |
Choice |
마고는 어디로?
<서치> |
Choice |
다시 노래할 수 있을까
<대관람차> |
Choice |
끝내
<살아남은 아이> |
Choice |
빛나는 그림자
<휘트니> |
Choice |
진짜 영화는 지금부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
Choice |
어른들만 몰라요
<어른도감> |
Choice |
거부한 운명, 마주한 운명
<델마> |
Choice |
종말이 시작됐다
<산책하는 침략자> |
Choice |
우리는 하나면 돼
<소성리> |
Choice |
펄떡이는 단독자의 분노
<카운터스> |
Choice |
아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22>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