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ice
그 누가 십자가를
<매스>
손시내 / 2022-05-20
<매스>는 별다른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부부를, 동그란 탁자에 둘러앉은 네 사람을 하나로 묶어버린 과거의 어느 참혹한 사건을 이야기 중심에 두고 있다. 계속되는 사소한 대화를 지나 어느 시점에 이르면 마침내 이들의 관계가 드러난다. 창문으로 온화한 햇살이 쏟아지고 벽 한가운데 커다란 십자가가 걸린 이 작은 방은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 부모의 대화를 위해 마련된 공간인 것이다.
Choice
목련 보러 살구 따러
<봉명주공>
차한비 / 2022-05-20
2020년 봄,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에서 철거 공사가 시작된다. 내년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 듯 목련은 유난히 탐스럽고, 주민들은 새 보금자리를 찾아 하나둘씩 떠나간다. <봉명주공>은 어수선하면서도 한적한 분위기가 감도는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는 동시에, 그곳에 찾아온 방문객의 뒤를 조용히 따른다. 카메라를 든 두 사람은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지난 계절을 떠올린다.
Choice
사랑을 믿나요?
<파리, 13구>
차한비 / 2022-05-13
자크 오디아르가 10년 전에 선보인 <러스트 앤 본>은 한 남자의 고백으로 끝난다. “사랑해.” 남자로서는 최초의 고백을 감행한 순간이지만, 이는 타인의 고백에 시차를 두고 전하는 응답이기도 하다. 10년이 지난 후, 자크 오디아르는 <파리, 13구>에서 다시 한번 같은 결말을 연출한다. 인터폰 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여자가 안 들린다며 장난스레 되묻자, 남자는 크게 소리친다. “사랑해!”
Choice
퇴로는 없다
<크로스 더 라인>
손시내 / 2022-05-13
이토록 운 나쁜 날이 또 있을까? <크로스 더 라인>에 담긴 다니(마리오 카사스)의 하룻밤은 그야말로 악몽과 같다. 낯선 사람과의 돌연한 만남은 그저 시작에 불과할 뿐, 그는 단 하루 만에 폭행, 살인, 도주로 점철된 잔인한 여정의 주인공이 된다. 계속해서 위기의 발생과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다니는 언뜻 게임의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듯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가능성을 밀어붙이는 대신, 다니에게 크고 작은 서사를 부여해 관객의 정서적 이입을 꾀한다.
Choice
수레바퀴 아래서
<우연과 상상>
김소희 / 2022-05-06
<우연과 상상>은 긴 호흡의 작품을 주로 만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이례적으로 시도한 옴니버스 영화다. 영화는 총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장은 서로 다른 배우들이 출연하는 독립된 이야기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드라이브 마이 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에서 채집한 몇 가지 이야기 조각을 느슨하게 환기하는 장편이라면, <우연과 상상>의 개별 이야기들은 하나의 세계로 연결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온다.
Choice
왜 이런지 모르겠다
<평평남녀>
차한비 / 2022-04-27
<평평남녀>는 <이매진>(2011) <파란 입이 달린 얼굴>(2018)을 연출한 김수정 감독의 신작. 그간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계급적 갈등을 들여다본 감독의 새로운 시도다. 한층 빠른 호흡으로 극을 전개하며 곳곳에 유머도 심어놓았다. 남녀의 연애를 화두로 삼아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 규칙을 활용하면서도,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그만의 예민한 시각은 여전하다. 캐릭터를 강조하는 영화에서 배우들은 단연 빛을 발하는 존재다.
Choice
기지와 미지
<소설가의 영화>
손시내 / 2022-04-23
<소설가의 영화>는 소설 쓰기를 멈춘 소설가의 시간과 그가 만든 영화로 이뤄져 있다. 홍상수의 근작들이 그런 것처럼, 이 영화의 생김새 역시 단출하다. 눈에 띄는 시공간의 뒤틀림이나 구조의 복잡함은 여기 없다. 영화는 인물과 대화만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한없이 투명해 보이는 이 간단한 형식에도 어김없이 틈이 있다. 뭔가 궁금해지고 어딘지 이상한 게 있다고 느끼게 된다는 뜻이다. 불일치, 어긋남, 변화, 자리바꿈, 우리가 뭐라고 부르든 간에, 세계의 낯선 모습을 감각하게 하는 일련의 원리는 홍상수 영화의 확연한 특징이다.
Choice
글의 집, 삶의 터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차한비 / 2022-04-23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는 기획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출판의 전 과정을 소화하는 파주출판도시의 역사를 다룬다.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출판계는 불온한 사상을 전파하는 그룹으로 치부됐고, 출판은 산업으로도 예술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영역에 머물렀다. 자연스레 출판인들은 검열에서 벗어나 출판의 자유를 획득하는 동시에, 출판이 새로운 문화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구조적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Choice
다락방 민달팽이
<태어나길 잘했어>
차한비 / 2022-04-18
춘희(강진아)의 팔자는 시작부터 좀 꼬였다. 부모님은 춘희를 봄(春)에 태어난 기쁨(喜)이라 부르려 했지만, 출생 신고 담당 공무원은 서류에 기쁨 대신 계집(姬)이라 써넣었다. 그 탓에 운명이 살짝 어그러진 것일까. 춘희에겐 웃을 일보다 울 일이 훨씬 많았다. 중학생이 된 1997년, 불행이 본격적으로 밀어닥쳤다. IMF 경제 위기로 온 나라가 휘청였고, 춘희 가족도 끝내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이듬해 2월, 춘희는 부모와 집을 한꺼번에 잃는다. 영화는 구체적 내막을 일러주지 않지만 춘희를 일종의 생존자로 표현한다.
Choice
재기의 딜레마
<복지식당>
손시내 / 2022-04-18
재기(조민상)는 ‘초보 장애인’이다. 심각한 교통사고로 수술한 그는 이전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눈을 뜬다. 다리를 심하게 다쳐 휠체어가 없으면 이동이 어려운 데다, 왼팔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이건 일시적 부상이 아니라 영구적 장애다. 현실은 가혹하지만, 재기는 어떻게든 적응하고 새 삶을 꾸려나가려는 의지의 청년이다. 새로 취직해서 돈도 벌고 싶고, 여태껏 고생한 누나의 짐도 덜어주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복지식당>은 “하루아침에 장애를 얻게 되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물음에 지극히 현실적으로 답한다.
Choice
비밀과 거짓말
<나의 집은 어디인가>
손시내 / 2022-04-08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냈고, 무자헤딘이 고국을 장악하자 목숨을 걸고 도망쳤다. 가족은 모두 죽었으며, 홀로 미성년 난민 신분으로 덴마크에 정착했다. 동급생들 사이에선 그가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걸어서 탈출한 거라는 소문도 돌았다. 최대한 말을 아끼고 살아왔다는 그의 이름은 아민, <나의 집은 어디인가>의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덴마크 출신 영화감독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이 그의 오랜 친구 아민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과 기록 영상으로 재구성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
Choice
이것만 기억해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차한비 / 2022-04-08
영속적 사랑, 절대적 사랑. 루이스 웨인(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사랑’은 불가능하지 않다. 아내 에밀리 리처드슨(클레어 포이)은 그의 삶을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단박에 바꿔놓았다. 나날이 새롭고 더없이 근사한 사랑의 행로에 취한 루이스에게 에밀리는 세상이란 본래 아름다운 것이라 답한다. “이것만 기억해. 아무리 인생이 고되게 느껴져도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영화의 원제는 <The Electrical Life of Louis Wain>, 루이스 웨인의 전기적 삶이다.
Choice
콜트-콜텍 4464
<재춘언니>
차한비 / 2022-04-01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남자가 진지하게 대사를 읊는다. 엄숙한 분위기가 감도는 무대, 마침 그 뒤편에서 다른 이가 엉거주춤 걸어 나온다. 머리에는 화관을 썼고, 몸에는 흰 드레스를 걸쳤다. 불룩한 배 앞에 두 손을 공손히 모은 그에게 햄릿이 말한다. “오, 사랑스러운 오필리어로구나!” 일순 객석에서 못 참겠다는 듯 웃음이 터진다. 오필리어를 연기하는 남자의 이름은 임재춘.
Choice
어머니의 모든 것
<패러렐 마더스>
손시내 / 2022-04-01
<페인 앤 글로리>(2019)에서 유년의 기억을 더듬으며 한 인간의 내밀한 이야기를 펼쳐놓았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고통과 영광을 양손에 쥐고 내면의 여행을 했던 그가 다음 행선지로 정한 곳은 ‘엄마들’의 집이다. 이번 여정은 개인을 넘어서는 사회와 역사의 탐구이자, 거친 세상에 얼굴을 맞대고 자식을 키워낸 여자들에 관한 소고다. 알모도바르의 영화답게 이야기는 멜로드라마의 줄기 위에 꾸려진다.
Choice
밑바닥 개싸움
<뜨거운 피>
손시내 / 2022-03-25
<뜨거운 피>는 『고래』(2004)와 『고령화 가족』(2010)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천명관의 감독 데뷔작이다. 동료작가 김언수의 동명 소설을 감독이 직접 각색했으며, 가상의 지명인 구암을 포함해 거의 대부분의 설정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사회와 역사의 가장자리에서 생계를 위해 분투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뜨거운 피>는 천명관의 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2012),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2016) 등과 궤를 함께 한다. 한편, 건달을 앞세운 느와르는 천명관이 영화 연출을 준비하며 줄곧 몰두해온 소재이기도 하다.
Choice
폐허가 묻다
<고양이들의 아파트>
차한비 / 2022-03-22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아파트 재건축이라는 또 다른 재난을 기록한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로 데뷔한 후, <말하는 건축가>(2012) <말하는 건축 시티: 홀>(2014) <아파트 생태계>(2017)로 ‘건축 3부작’ 다큐멘터리를 선보인 정재은 감독의 신작.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도시와 공간에 밀도 높은 관심을 표현했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한때 아시아 최대 대단지였다는 자부심”을 간직한 둔촌주공아파트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Choice
궁정에서 온 편지
<스펜서>
손시내 / 2022-03-16
영국 왕가가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는 샌드링엄 별장은 갖가지 규칙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몸무게를 재야하고, 난방 없이 담요만으로 추위를 피해야 한다. 모든 식사와 행사에는 정해진 의복을 입고 참석해야 하며, 여왕보다 늦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의문은 부드럽게 묵살당한다. 그런 것들을 왜 지켜야 하느냐고 묻는 건 여기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건 유구한 전통이고, 전통에는 예외가 없으니까. 이것만으로도 이미 버거운 왕세자비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겐 하나의 규칙이 더 적용된다.
Choice
체험된 몸
<레벤느망>
손시내 / 2022-03-11
“그저 사건이 내게 닥쳤기에, 나는 그것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황금사자상을 받은 오드리 디완의 <레벤느망>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놀라운 에세이 『사건』(2000)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여기서 사건이란 작가의 임신 중단 경험을 일컫는다. 중절 수술의 당사자는 물론이고 의사와 조력자까지 강력하게 처벌되던 1960년대의 프랑스, 원치 않는 임신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롭게 분투했던 작가의 내면이 차갑고 선명한 문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Choice
아무도 몰랐던
<소피의 세계>
차한비 / 2022-03-04
‘소피의 세계’를 여는 것은 수영(김새벽)의 목소리다. 창밖으로 희끄무레하게 눈이 쌓인 인왕산이 내다보이는 어느 겨울날, 수영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소피(아나 루지에로)의 블로그를 발견한다. 여행한 나라별로 사진과 글을 정리해놓은 블로그에는 소피가 서울에서 나흘간 머물렀던 재작년 가을의 기록도 담겨 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녀가 뭐라고 썼는지 궁금해서 하나씩 읽어보기로 했다.” 당황과 설렘이 동시에 묻어나는 수영의 목소리가 잦아들면, 영화는 2020년 10월 23일로 돌아간다. 이제 창문 저편에 보이는 인왕산에는 흰 눈이 쌓이는 대신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고, 테이블에 턱을 괸 채 노트북을 들여다보던 수영의 자리엔 소피가 앉아 있다.
Choice
머라캐도 내 이름은
<보드랍게>
손시내 / 2022-02-24
‘피해자의 말하기’는 숨겨진 폭력을 드러내고 그것에 맞서는 강력한 저항 수단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부터 미투 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은 다양한 피해가 가시화되고 공론화될 수 있던 것도 모두 그러한 증언 덕분이었다. 생존자들의 목소리에는 역사가 배제하고 누락한 세부를 살려내는 힘이 있다. 우리는 그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의 의뢰로 제작된 박문칠 감독의 <보드랍게>는 김순악의 말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면서 그러한 질문을 함께 던지는 다큐멘터리다.
Choice
로맨틱 펀치 드렁크
<리코리쉬 피자>
김소희 / 2022-02-17
<리코리쉬 피자>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 세계에서 다소 이질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이런저런 영화에 아역배우로 활동하는 15세 소년 개리(쿠퍼 호프만)와 이런저런 임시직을 전전하며 장래에 관해 별다른 생각이 없는 25살 알라나(알라나 하임)는 폴 토마스 앤더슨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청춘과 성장, 사랑이라는 평범하고 긍정적인 키워드를 감독의 영화 세계 속에 유쾌하게 안착시킨다.
Choice
오래 생각한 끝
<온 세상이 하얗다>
손시내 / 2022-02-10
“죽어야지. 오늘은 죽어야지.” 모인(강길우)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죽기를 다짐하고, 그것을 잊은 채 잠자리에 드는 남자다. 기억을 잃는 이유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다. 생의 흔적이 말라붙은 그의 집엔 소주병과 밧줄만 가득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화림(박가영)도 종일 술을 마신다. 슈퍼에 들러 술을 사고, 방에 앉아 명상하고, 가끔 이유 없이 눈물 한줄기 흘리는 게 일과다. 화림은 모인처럼 기억을 잃진 않으나 거짓말을 한다. 매번 이름과 직업을 새로 꾸며낸다. 어느 날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후로 둘은 같이 술을 마신다. 모인은 종종 화림을 잊어버리지만, 가까운 사이라는 화림의 말을 그럭저럭 믿는다. 그러더니 둘은 죽기 위해 함께 길을 떠나기로 한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Choice
바쿠스의 잠언
<어나더 라운드>
손시내 / 2022-01-22
<어나더 라운드>의 원제는 ‘Druk’, 덴마크어로 음주라는 뜻이다. ‘어나더 라운드’ 역시 술 한 잔씩 더 돌린다는 의미로 쓰이는 관용어구다. 제목은 이처럼 영화의 주제가 술이라는 걸 선연히 드러내고 있지만, <어나더 라운드>의 네 남자가 처음부터 술꾼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건 아니다. 주정뱅이와는 거리가 먼 이 중년 남성들은 알코올을 계기로 변화를 경험한다. 뻣뻣한 일상엔 활력이 돌고, 이전엔 미처 욕심내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도 엿본다. 물론 술은 술인지라, 좋은 일만 일어나진 않는다. 쓰고 아픈 사건들에, 돌이킬 수 없는 슬픈 일까지 벌어진다.
Choice
빌어먹을, 액션!
<프랑스>
손시내 / 2022-01-14
<프랑스>의 무대는 진실보다 화제가 중요한 뉴스의 세계이고, 영화의 주인공은 그 세계의 흥행을 책임지는 스타 기자다. 프랑스 드 뫼르(레아 세두)는 스튜디오에 정치인을 초대해 토론하고, 분쟁지역에 나가 직접 취재하며, 촬영과 편집까지 능숙하게 지휘한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는 말이 딱 맞다. 게다가 어찌나 유명한지 세상 모두가 프랑스를 단번에 알아보고 다짜고짜 사진을 찍으려 든다. 그들에게 언제나 근사한 미소를 선사하는 것 또한 그녀의 일이다. 이처럼 프랑스가 온 세상을 바쁘게 오가는 동안, 영화엔 뉴스 제작의 이면이 담긴다.
Choice
기다려요, 기다려야 해요
<드라이브 마이 카>
김소희 / 2021-12-22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2014년에 발표한 단편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창작된 영화다. ‘드라이브 마이 카’ 외에 ‘셰에라자드’와 ‘기노’ 등 하루키가 쓴 개별적 이야기는 영화의 서사 안에 녹아들어 흥미로운 대화를 나눈다. 이와 함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등의 레퍼런스가 교차하는 영화는 이야기 자체에 관한 생각으로 이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이야기는 우리 안에 어떤 방식으로 잠재되는가. 잠재된 이야기는 언제 깨어나고 언제 죽는가.
Choice
영속하는 풍경
<끝없음에 관하여>
손시내 / 2021-12-15
부둥켜안은 연인이 잿빛 구름 위를 떠다닌다. 둘의 얼굴은 비감에 잠겼으나, 화면 전체엔 초월적 분위기가 짙다. 묘사할 순 있지만 해설하긴 까다롭다. 샤갈의 그림을 똑 닮은 이 기묘한 오프닝은 <끝없음에 관하여>를 근사하게 요약한다. 회색빛 황량한 배경과 울상지은 인물이 끝없이 나열되는 영화는 우선 세속의 풍경에 가까이 닿아있다. 그러나 그 광경을 멀찍이서 미동 없이 바라보는 카메라와 화면 외부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는 여기에 영속의 감각을 부여한다
Choice
그분은 포기하지 않았다
<해피 아워>
손시내 / 2021-12-08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하마구치 류스케는 센다이에 머물며 다큐멘터리 연작을 만들었다. <파도의 소리>(2011), <파도의 목소리: 신치마치>(2013), <파도의 목소리: 게센누마>(2013), <노래하는 사람>(2013)은 감독이 재난 이후를 살아가는 도호쿠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한 기록이다. 이후 그는 다음 영화 제작을 위해 고베에서 즉흥연기 워크숍을 열었고, 그곳에서 만난 네 여성에게 영감을 얻어 ‘신부들(Brides)’이라는 가제를 단 각본을 썼다. 일본 사회를 살아가는 30대 후반 여성들의 일상과 삶의 곤란을 담은 이 이야기는 워크숍에 참여한 비전문 배우들과의 협업을 통해 317분짜리 영화로 완성됐다. 2015년 제68회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네 명의 주연배우 모두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해피 아워>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Choice
이종 변태 광시곡
<티탄>
차한비 / 2021-12-07
데뷔작 <로우>(2016)에서 극도의 식인 욕망을 다루며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 쥘리아 뒤쿠르노의 두 번째 영화. 올해 영화제 상영 당시, <티탄>은 연일 화제에 올랐다. 적지 않은 관객이 관람을 중도 포기했고, 심지어 기절하여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기사도 나왔다. 경악과 찬사가 팽팽하게 맞붙은 끝에, 쥘리아 뒤쿠르노는 제인 캠피온에 이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두 번째 여성 감독이 됐다.
Choice
전쟁 없는 세상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
변성찬 / 2021-12-07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은 김환태 감독의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 연작의 세 번째 작품이다. 이 영화는 2000년대 초반부터 등장한 청년들의 양심적 거부 선언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담고 있지만, 그 사건적 행위들이 있을 때마다 불거지는 명사 또는 전문가들의 찬반양론을 소개하는 저널리즘과는 다른 위치에서 그것을 다루고 있으며, 그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부각하며 그들에게 피해자 또는 희생자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데도 관심이 없다.
Choice
채찍, 신이 허락한 도구
<베네데타>
김소희 / 2021-11-30
<베네데타>는 실존 인물의 서사를 바탕으로 한 실화 영화다. 17세기 초에 일어난 실제 사건 기록에 바탕을 둔 주디스 브라운의 저서 『수녀원 스캔들 :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1987)이 원작이다. 어느 모로 보나 자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는 폴 버호벤이라는 제 주인을 만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방점은 적나라한 성적 묘사에만 있지 않다. <베네데타>는 버호벤의 영화가 육체의 쾌락과 고통을 드러내는 것만큼이나 정신의 쾌락과 고통을 건드려왔음을 인식하게 한다.
Choice
하늘이 무너져도
<왕십리 김종분>
손시내 / 2021-11-12
‘왕십리 김종분.’ 왠지 거리의 실세를 이르는 것 같은 호칭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80대 노인, 왕십리역 11번 출구 앞에서 50년 넘게 장사 중인 한 노점상인이다. 영화는 그가 1939년생이라는 정보 정도만 자막으로 간단히 제시한 뒤, 말없이 그의 일상을 뒤따른다.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떼와 노점 문을 열면 어느새 오후. 느지막이 천막을 걷고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는 건 김종분의 오랜 습관이다. 오래된 나무 밑동처럼 대로변에 뿌리내린 그의 노점은 온갖 삶의 표정이 고스란히 담긴 소우주다. 고추, 호박, 가지 같은 반찬거리는 물론이고, 잠시 허기를 채워줄 찐 옥수수와 연탄불에 구운 가래떡까지 별걸 다 판다.
Choice
와일드 스위트 오리건
<퍼스트 카우>
손시내 / 2021-11-06
<퍼스트 카우>의 숲은 성공과 정착을 꿈꾸는 이들의 임시 거처다. 영화에 담긴 1820년대 미국 오리건은 기회를 찾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이들로 점차 북적대기 시작하는 땅이다. 서부 개척과 시장 경제가 막 움트는 시기, 아직 집마다 울타리가 다 쳐지지 않은 이곳에서 두 남자가 만난다. 어려서부터 홀로 떠돌았다는 유대인 쿠키(존 마가로)와 아홉 살에 교역선을 처음 탔다는 중국인 킹 루(오리온 리). 한밤의 숲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몇 년 뒤 재회해 작은 오두막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변화의 물살을 바라보는 둘 역시 남들처럼 이곳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미래를 꿈꾸지만, 원체 가진 게 없어 출발선에 서기조차 어렵다. 그런 그들에게 ‘첫 번째 소’가 찾아온다.
Choice
아직은 헤어지지 않기로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차한비 / 2021-10-30
서울은 어지럽다. 자동차는 앞을 다투며 도로를 꽉 메우고, 사람들은 뭐가 그리 분한지 자꾸 화를 낸다. 택시 기사가 날 선 목소리로 불만을 터뜨리자, 츠요시(이케마츠 소스케)는 아들 마나부에게 안심하라는 듯 일러준다. “언제나 서로 이해하는 게 중요해.” 부자는 이 잿빛 도시에서 새 삶을 시작해볼 요량이다. 츠요시는 늘 이곳저곳을 떠도는 형 토오루(오다기리 죠)가 못미덥지만, 한국에서 사업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형의 말에 속는 셈 치고 서울로 건너왔다.
Choice
환멸의 도시
<사상>
조지훈 / 2021-10-20
1980년대 후반까지 부산의 최대 공업지대였던 ‘사상’. 공장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대표적 노후 도심이 되었지만, 10여 년 전부터 갖가지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 시작되면서 현재의 사상은 과거와는 또다시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사실 낡고 더러운 지역을 정비, 개선하겠다며 진행하는 이런 사업은 오랜 시간을 버텨온 건물을 모조리 부수고, 그곳에 살던 원주민을 전부 쫓아내고서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데, 우리는 자주 이런 사실을 잊어버린다. 10년 전 동료들과 설립한 오지필름을 기반으로 한국 사회의 소외되고 첨예한 대립의 현장을 묵묵히 기록해온 박배일 감독의 아홉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사상>은 개발이 낳은 황폐한 풍경을 비추면서, 그로 인해 삶의 향방을 놓쳐버린 두 사람에 주목한다.
Choice
벼랑 끝에서 유영
<당신 얼굴 앞에서>
남다은 / 2021-10-20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거두고 지금, 자기 얼굴 앞의 실체만을 제대로 보려는 영화는 어떤 형태로 존립할 수 있을까. 영화를 성립시키는 수많은 장치들을 최소화하고, 영화의 전제인 환영의 기교와 싸우며, 빈약한 사각의 틀 위에 ‘존재’ 자체만을 전면화해 남겨둘 수 있을까. 한 발자국만 더 떼면 ‘영화’의 영토가 아닐 벼랑 끝에서 영화 바깥이 아닌, 영화 안을 다시 새롭게 응시할 수도 있을까. 최근 홍상수 영화를 지탱하는 단출함과 투명함은 이 절박한 물음들에 닿아있다.
Choice
다 끝난 거 아니야?
<휴가>
김소희 / 2021-10-20
<휴가>에서 카메라는 내내 주인공 재복(이봉하)의 움직임을 쫓는다. 영화는 오직 그로 인해 존재하는 것 같다. 선인가구 해고 노동자 재복은 몇 안 남은 동지들과 기나긴 천막 농성 투쟁을 이어왔다. 5년에 걸친 이들의 싸움은 재판 패배라는 결과를 얻은 참이다. 농성장에 남은 세 사람은 짧은 휴가를 갖기로 한다. 재복은 서울을 떠나 두 딸이 사는 집으로 돌아온다. 농성장에서 사람들의 식사를 책임져왔던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가 없는 동안 방치되어 온 부엌이다. 그렇게 그는 부엌에서 부엌으로 이동한다.
Choice
지금이라는 선물
<종착역>
조지훈 / 2021-09-22
어릴 땐 모든 것이 모험이다. 약간의 돈과 얼마의 시간만 있으면 생각보다 훨씬 더 먼 곳까지 쉽게 갈 수 있지만, 늘 오가던 일상 공간을 벗어나는 일은, 그것도 부모의 허락이 없다면, 생각보다 훨씬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14살 소녀들이 집, 학교, 학원 다시 집으로 이어지는 뻔한 동선을 벗어날 용기를 낸 건 순전히 사진반 선생님이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나누어 주면서 내준 방학 숙제 때문이었다. “세상의 끝을 주제로 한 사진 공모전에 참여해 보자. 여름 방학 동안 세상의 끝을 찍어와 봐!” 세상의 끝이라니. 뭐 이런 숙제를 내준다니? 그냥 하지 말자. 안 하면 벌점 받을 거야. 뭘 찍어야 하지?
Choice
선의 끝, 악의 시작
<좋은 사람>
조지훈 / 2021-09-13
어느 고등학교 교실에서 지갑 하나가 사라진다. 담임인 경석(김태훈)은 CCTV를 확인한 후 세익(이효제)을 의심하지만, 자신의 반 아이들의 불신과 불화를 막기 위해 범인 찾는 걸 멈추고 사비를 털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급우 동국이 세익을 도둑으로 지목하자 경식은 세익을 불러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문을 쓸 것을 요구한다. 한편, 이혼한 경석은 갑작스레 전처 지현과 함께 사는 딸 윤희를 며칠 맡게 된다.
Choice
사랑은 왜 끝나나
<박강아름 결혼하다>
차한비 / 2021-08-19
결혼은 미친 짓이다. 부부는 의리로 산다. 계약과 의무에 충실하다 보면 낭만적 사랑쯤이야 금세 후순위로 밀려나기 일쑤다. 적지 않은 이가 의심하고 경고하는 결혼, 한데 아름은 결혼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다. 아름은 오래 꿈꿔온 ‘결혼 프로젝트’에 겁 없이 뛰어든다. ‘박강아름 결혼하다’라는 영화 제목은 이 프로젝트의 주최자를 정확히 명시한다. 연애와 동거를 결정할 때 그랬듯, 아름은 이번에도 성만보다 한발 먼저 나선다. 비혼주의자였던 성만이 느닷없는 변화를 수긍하는 동안 아름은 재빨리 다음 목표를 정하고 추진한다.
Choice
뫼비우스 술래잡기
<우리, 둘>
차한비 / 2021-07-29
노년의 사랑은 흔히 정열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그려진다. 머리가 허옇게 센 연인은 강렬한 끌림 대신 오랜 세월 이어 온 유순한 애정을 귀중히 여기며, 생의 끄트머리에 찾아온 이별을 원숙한 태도로 받아들인다. 그들의 사랑에는 모험이 끼어들 기미가 더는 없고, 이러한 미지근한 온도야말로 관계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작용한다. 70대 레즈비언 커플 니나(바바라 수코바)와 마고(마틴 슈발리에)의 가을을 뒤쫓는 영화 <우리, 둘>은 이와 같은 전형에 반기를 든다.
Choice
불가피한, 불가능한
<피닉스>
손시내 / 2021-07-23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여자는 삶을 포기할 수 없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가까스로 생환한 가수 넬리(니나 호스). 친구 레네(니나 쿤젠도르프)의 도움으로 베를린에 거처를 마련한 그녀는 총상으로 참혹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수술하고, 자취를 감춘 남편 조니(로날트 제어펠트)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레네의 말처럼 조니는 배신자일까. 넬리는 조니와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Choice
비탈에 서다
<강호아녀>
김준 / 2021-06-12
멀리 화산이 보이는 너른 들판, 두 남녀가 총 한 자루를 놓고 다툰다. 불법 무기를 빨리 없애라고 채근하는 여자에게 남자는 “이 바닥에서는 죽이지 않으면 죽어”라고 답한다. 남자가 말하는 바닥은 강호다. 여자가 “난 그 바닥 사람이 아니”라고, “영화를 너무 많이 봤네, 강호는 무슨. 지금이 무슨 옛날인 줄 알아?”라고 쏘아붙이자, 남자는 “사람이 있는 곳은 다 강호”라며 여자에게 방아쇠 당기는 법을 직접 알려준다.
Choice
난 정말 이해가 안 돼!
<까치발>
김준 / 2021-06-01
<까치발>은 뇌성마비 징후가 보이는 딸을 거울삼아 감독이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다큐멘터리다. 권우정 감독은 전작 <땅의 여자>에서와 달리 카메라가 인물과 상황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개입하도록 놓아둔다. 이는 장애 자녀를 둔 여성/엄마(들)와 가족을 다루는 극명하게 상반된 태도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가족과 자신을 바라보는 감독의 복잡한 내면의 요동이 (감독 자신의 시점을 표상하는) 카메라를 통해 가감 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Choice
비우고 껴안기
<인트로덕션>
손시내 / 2021-05-25
<인트로덕션>은 투박하다. 홍상수의 앞선 영화들이 줄곧 시간적, 공간적, 존재적 모호함으로 관객을 곤경에 빠뜨렸다면, 촬영과 편집까지 직접 도맡은 그의 스물다섯 번째 장편은 너무 투명해서 곤란을 안긴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이후, 「버라이어티」는 영화의 “복잡하지 않은 연대기”적 시간 구조를 짚었고, 「인디 와이어」는 “기본적으로 세 번의 포옹에 관한 이야기”로 <인트로덕션>을 요약했다. 여기엔 시공간을 나누고 비트는 형식적 실험도, 인물의 지위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의 변주도 없다.
Choice
교착과 만곡
<혼자 사는 사람들>
차한비 / 2021-05-18
진아는 변화를 거부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직장에 출근한다.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며 하루에도 수백 통씩 전화를 받지만, 어떤 통화에서도 진짜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감정쯤이야 일찌감치 지웠다는 투로 그저 정해진 매뉴얼을 따를 뿐이다. 웃지도 울지도 않고 친절을 가장하며 “고객님”을 응대하는 진아의 태도는 기계적이다. 집주인은 정 없다는 타박을 쏟아냈지만, 회사에서 진아는 능숙하고 실적 높은 ‘에이스’로 박수 받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아는 무미건조한 표정을 유지한다.
Choice
폭력의 전이
<어른들은 몰라요>
손시내 / 2021-04-15
<박화영>(이환, 2018)의 ‘엄마’ 집은 가출한 10대들의 거처로서, 폭력적이고 잔혹한 집단의 질서를 한없이 흡수하는 곳이다. 아이들이 모여들어 담배 피우고 서로를 때리며 욕설을 주고받는 이곳은 외부와 단절된 그들만의 사회이자, 언젠가는 그들의 기억에서 잊힐 신기루 같은 공간이다. 이환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어른들은 몰라요>는 그 집에 불쑥 찾아들었다가 일순간 퇴장해버린 세진(이유미)의 다른 이야기를 상상한다.
Choice
아직 말하지 못한
<비밀의 정원>
손시내 / 2021-04-09
<비밀의 정원>에서 ‘비밀’은 서사의 굴곡을 만드는 설정이나 감정의 요동을 만드는 장치와 거리가 멀다. 비밀의 내용은 진지하게 다뤄지나, 비밀 그 자체가 극에 드리우는 명암은 그리 크지 않다. 그래서 이야기의 밀도가 종종 느슨하게 느껴지지만, 오히려 여기엔 인물이 깊게 호흡하고 충분히 생각에 잠길 여유로운 틈이 있다. 그 열린 틈이야말로 <비밀의 정원>이 비밀을 경유해 주시하려는 특별하고 고유한 지점이다.
Choice
끊임없이 반짝이는
<더스트맨>
차한비 / 2021-04-09
<더스트맨>은 타인과의 소통이 자신을 지키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말하는 동시에, 예술이 품은 위로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설득한다. 그리고 나누는 행위와 더불어 태산(우지현)은 세상으로 한 발짝 걸어 들어가고, 모아(심달기)는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단편 <내 차례>(2017) <대리시험>(2019) 등을 연출한 김나경 감독의 첫 장편으로,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세밀하게 표현하는 우지현과 싱그러운 에너지를 내뿜으며 빛나는 심달기의 연기가 조화롭다.
Choice
세상이 열린다
<자산어보>
정지혜 / 2021-04-06
시대의 질서에 맞서는 결기의 단독자, 다른 세상을 열망하는 집념의 공상가. 그들을 향한 이준익의 애정은 열네 번째 장편 <자산어보>에서도 여전하다. 때는 1801년,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즉위하자 신유박해가 시작된다. 사학(邪學)을 믿는 자들은 “인륜을 위협하는 금수와도 같다”는 조정의 하교에 따라 천주교 신자들은 내쫓기고 참수된다. 정약전(설경구)이 머나먼 흑산도로 유배를 떠난 사정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의 끝’에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Choice
내 싸움입니다
<당신의 사월>
손시내 / 2021-04-05
세월호 참사에 관해 발언하는 다큐멘터리는 대체로 사고 정황을 되짚으면서 사건 진상을 규명하는 데 집중해왔다.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피해자와 유가족의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은 전 국민의 애도로 확산했고, 이 과정에서 의무를 방기한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러한 추세나 경향은 불가피한 선택처럼 보였다. <다이빙벨>(이상호, 안해룡, 2014), <그날, 바다>(김지영, 2018)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이 참사의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원인 규명에는 미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유가족 대 국가, 피해자 대 가해자라는 대립 구도가 반복적으로 부각되는 동안, 모두가 겪은 아픔에는 ‘다른 말’이 끼어들 기회나 여지가 없었다. <당신의 사월>은 바로 그 '다른 말'을 뒤늦게 새겨듣는 다큐멘터리다. 여기엔 전문적인 항로 분석이나 답답한 청문회의 광경이 아니라, ‘세월호’와 함께 지나온 우리 삶의 여러 기억들이 있다.
Choice
가끔 빛이 필요한 까닭
<아무도 없는 곳>
차한비 / 2021-04-02
허무에 잠식되지 않으려면 적정한 장소가 필요하다. 삶이 무의미한 돌림노래처럼 느껴질 때 달아날 곳, 집과 일터 외에 옷자락을 걸어두고 잠시 머물 곳.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곳을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이라고 칭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등장하는 소설가 창석(연우진) 역시 이러한 장소를 찾아다닌다. 슬픔과 불안, 무엇보다 허무에 가로막힌 그는 편안하게 잠들지 못한 채 빛을 찾아 어둠 속을 배회한다. 그가 커피나 술을 마시는 몇몇 공간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주고받는 대화 또한 “약간의 깨끗함과 질서”를 유지하며 창석이 삶을 견딜 수 있도록 돕는다.
Choice
그녀의 진짜 이름은
<스파이의 아내>
박동수 / 2021-03-28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인 1940년. 일본 정부는 물자 비축, 출판 검열 등 강력한 통제 정책을 실시한다. 식민지에서 자행한 감시와 수탈은 이제 본토에서도 당연한 처사. 외국인 사업가는 긴급 체포되고, 도열한 군인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사람들은 양복 대신 국민복을 착용해야 한다. 모두가 전쟁 준비에 혈안이지만,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와 사토코(아오이 유우)만은 예외다.
Choice
맨몸으로, 온몸으로
<파이터>
정지혜 / 2021-03-23
윤재호 감독이 또 한 편의 강인한 탈북 여성 서사를 완성했다. 괴물 같은 생명력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중년 여성에 관한 다큐멘터리 <마담B>(2018), 역사적 비극이 낳은 가족의 복잡한 정체성을 캐묻는 극영화 <뷰티풀 데이즈>(2018)를 내놓은 윤재호 감독은 <파이터>에서 한층 더 건강한 기운으로 삶을 일구고 사랑을 탐색하는 여성을 앞세운다.
Choice
꿈에도 몰랐던
<정말 먼 곳>
손시내 / 2021-03-23
박근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 <한강에게>(2018)처럼 <정말 먼 곳> 또한 특정 장소로부터 시작된 영화다. 이국적인 풍경과 다채로운 자연이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 이곳은 강원도 화천. 감독의 경험과 인연이 매개가 됐다는 점은 같지만, <정말 먼 곳>에 드러나는 공간의 양상은 <한강에게>와는 사뭇 다르다. 전작의 한강은 인물들의 추억이 곳곳에서 떠오르는 고유한 공간이자, 관객들 또한 사적 정감을 투사할 수 있는 강력한 현실적 특성을 지닌 장소였다. 반면 화천, 그중에서도 영화에 주로 담긴 산과 숲, 강과 호수 등은 현실과의 매듭이 거의 풀려버린 꿈의 자락이다.
Choice
사랑의 단층
<암모나이트>
손시내 / 2021-03-17
역사 속에 묻힌 인물을 스크린에 불러오면서, 영화는 메리의 반복적 노동과 고독한 일상에 우선 눈길을 둔다. 거센 바람과 세찬 파도가 휘몰아치는 해안가 절벽에서 암석을 발견하고, 굴러떨어질 위험을 감수하며 그것을 채집한 다음, 세밀한 작업으로 화석의 표본을 만드는 것까지 전부 그의 일이다. 메리는 이 모든 과정을 다른 누군가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홀로 해낸다. 그의 손톱엔 언제나 때가 묻어있고, 집엔 불안한 얼굴로 연신 기침을 해대는 나이 든 어머니뿐이다. 메리의 삶은 주변의 풍광만큼이나 척박하고 황량해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여기엔 긍지가 있다.
Choice
불안과 충동의 무한 격발
<포제서>
손시내 / 2021-03-11
<포제서>는 신체 강탈이라는 SF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범죄 스릴러물이다. 비밀조직 ‘포제서’는 타깃 주변인의 몸에 요원의 의식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암살을 실행한다. 피가 낭자한 영화의 오프닝은 조직의 뛰어난 요원 타샤 보스(안드레아 라이즈버러)의 임무 수행과 복귀 과정을 보여준다. 거듭되는 임무와 폭력의 난장에도 불구하고, <포제서>는 팝콘을 들고 즐길만한 매끈한 액션 영화가 아니다. 어지러운 환각과 끈적한 신체 변형에 몰두해온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아들이자, 유명인의 질환을 몸에 주입한다는 아이디어로 주목받은 <항생제>(2012)의 연출자답게 브랜든 크로넨버그는 불안정하고 거추장스러운 육신에 주의를 기울인다.
Choice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
차한비 / 2021-03-08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한적한 도로 위, 운전대를 잡은 모니카(한예리) 뒤로 어린 남매가 보인다. 금세 책읽기에 빠져든 앤(노엘 케이트 조)과 달리 연신 창밖을 내다보는 데이빗(앨런 김)은 얼떨떨한 표정. 이들 가족은 이제 막 두 번째 이주를 감행한 참이다. 새로운 모험을 주장한 제이콥(스티븐 연)은 길잡이를 자처하며 앞서 트럭을 몰고 있다. 해안을 등지고 내륙 깊숙이 들어가는 제이콥과 모니카 가족, 미국에서 가장 기름진 땅이라는 아칸소는 이들 가족을 반겨줄 풍요의 대지인가.
Choice
상처의 그림자
<밤빛>
차한비 / 2021-03-07
<밤빛>은 오래전 요절한 가수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어제는 두 사람이 걷던 이 길을 이 밤에 나 혼자서 걸어가는데”로 운을 뗀 노랫말은 사실상 영화를 요약하는 문장과도 같은데, <밤빛>은 이를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 듯 계속해서 노래를 이어간다. 나직한 음성이 멈추는 순간, 카메라는 노래 속 주인공처럼 홀로 걷는 남자를 비춘다.
Choice
저는 아직 당신을
<라스트 레터>
손시내 / 2021-03-02
편지는 때로 받는 이가 아니라 보내는 이를 위해 쓰인다.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었던 사연이나 오래도록 홀로 간직했던 진심을 편지에 실어 보내는 행위만으로, 엉켜있던 마음 한구석이 슬쩍 풀어지기도 하지 않던가. 중국과 캐나다 등지로 활동 무대를 넓힌 이와이 슌지 감독이 다시 일본에서 내놓은 근작 <라스트 레터>의 편지들도 그렇다.
Choice
진실의 움막, 사라진 애도
<빛과 철>
손시내 / 2021-02-20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진실의 담화들은 종종 상충하고 모순된다. 낯선 실재의 흔적들이 끊임없이 출몰해 진실을 위협하면 담화의 주체들은 이를 외면하고 회피할뿐더러, 자신이 임의로 선택한 불완전한 진실에 더더욱 매달린다. 희주(김시은)와 영남(염혜란)은 어떠한가. 희주와 영남의 우연한 만남 이후 과거의 편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만, 두 여자는 사태의 전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사건을 파헤치는 희주와 사건을 감추려는 영남 모두 비극의 전모가 낱낱이 드러나길 바라지 않는다.
Choice
침묵하고, 부정하고
<살아남은 사람들>
차한비 / 2021-02-10
“영화에서는 모든 게 너무 간단해.” 극장을 빠져나온 클라라(아비겔 소크)는 불평한다. 유년의 대부분을 전쟁의 그늘에서 보낸 유대인 소녀가 영화만을 트집 잡는 건 아니다. 클라라의 눈엔 온 세상이 가짜 천지고 거짓투성이다. 레몬 없는 레몬차를 홀짝이며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 자신의 부모를 이미 죽은 자 취급하는 사람들, 클라라는 그들을 주저 없이 바보라 부른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정말 가짜에 만족하고 거짓에 놀아나는 바보일까.
Choice
난쟁이 선언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손시내 / 2021-01-29
“영화를 공개할 시점을 고려했을 때, 언제든 적절한 시기인 거다. 불행히도.”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을 앞두고 이태겸 감독은 한국 사회의 노동 환경을 비관한 바 있다. 민영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효율성은 지고지순한 가치라는 세상의 아우성. 그 속에서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지를 영화는 묘사하는 동시에 이러한 비극이 예외 상황이 아님을 강조한다.
Choice
바보도 죄인도 아닙니다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정지혜 / 2021-01-28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민규(은해성)는 연일 궁핍에 시달린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선배의 연락을 피하기 일쑤. 밀린 공과금은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었고, 그런 사정에도 아랑곳없이 집주인은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성화다. 한때 피겨 스케이팅 선수를 꿈꿨던 한나(오하늬)는 무슨 이유에선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으나 한 달도 못 버티고 그만둔다. 보름치 일당을 어서 내놓으라고 점주 앞에서 으르렁 댈 때는 호기롭지만 그래봤자 별반 소득이 없다.
Choice
요즘 뭐해?
<요요현상>
김선명 / 2021-01-15
일찍이 10대에 한국 챔피언이었다. 그토록 바랐던 세계 대회도 출전했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면 TV에 출연한 ‘내’가 식탁의 화제였다. 그러나 거기까지, 그 뿐이었다. 화려한 이력으로 촉망받던 요요 선수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스포츠 스타로 올라설 순 없었다. 지름 3m의 공간에서 무한한 우주를 꿈꿨던 그는 지금 또래와 마찬가지로 불안한 선택의 기로 앞에 서 있다.
Choice
동토의 비밀
<미스터 존스>
정지혜 / 2021-01-10
아그네츠카 홀란드에게 나치즘과 전체주의는 언제든 출몰할 수 있는 불멸의 망령이다. 야만의 20세기를 몸소 겪으며 폴란드에서 체코로, 다시 프랑스로 거처를 옮겼던 아그네츠카 홀란드는 예술이야말로 망각의 위기에 처한 역사와 미처 드러나지 않은 비극을 소환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켜왔다. <미스터 존스>(2019) 역시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으로 대표되는 1930년대 체제와 이데올로기 아래서 개인이 직면한 실존적 고민과 자각, 분투를 그린다.
Choice
온전히 발끝으로
<걸>
차한비 / 2021-01-05
벨기에의 젊은 감독인 루카스 돈트는 첫 장편영화 <걸>로 제7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 카메라상, 주목할 만한 시선 남우주연상(빅터 폴스터), 국제비평가협회상, 퀴어 종려상까지 4관왕을 달성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현재 독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무용수 노라 몽세쿠흐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 발레리나를 꿈꾸는 10대 트랜스젠더 여성 라라(빅터 폴스터)가 통과하는 치열한 시간을 그려낸다.
Choice
영원히 사는 거 아니잖아
<썸머 85>
김선명 / 2020-12-27
6주간의 짧고 강렬한 여름, 거절할 수 없었던 얼빠진 맹세. 두 소년의 사랑과 죽음을 다룬 프랑수아 오종의 <썸머 85>는 에이단 체임버스의 소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1982)가 원작이다. <썸머 85>에서 발견되는 장르의 클리셰와 전작들의 요소는 짐작과 다르게 유머와 긴장을 고조하는 효과적 장치다. 수많은 게임이 작동하는 <썸머 85>는 프랑수아 오종의 팬들에게도, 그해 여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갈 영화다.
Choice
내가 곧 운명
<운디네>
차한비 / 2020-12-24
영화는 베를린의 한 야외 카페에 앉아 어딘가를 응시하는 운디네(파울라 베어)의 얼굴로 시작한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일그러진 입술에는 초조함이 묻어나고, 눈동자는 예민하게 주위를 살핀다. 이윽고 카메라는 방향을 바꿔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비춘다. 이별을 통보하는 요하네스(야코프 마첸츠)의 목소리에는 애정이나 연민 대신 조바심만 가득하다. 운디네는 무너진 기색이 완연한 얼굴로, 하지만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서 말한다. “날 떠나면 당신을 죽여야 해. 알잖아.”
Choice
투명한 시간, 기묘한 리듬
<겨울밤에>
손시내 / 2020-12-10
중년 부부가 춘천에 놀러 왔다가 예정에 없던 하룻밤을 보낸다. 어디선가 잃어버린 아내의 핸드폰을 찾기 위해서다. 춘천을 떠나려던 이들은 택시를 돌리고 마지막 유람선에 올라 다시 청평사로 향하는데, 어느덧 해가 지고 매표소의 불도 꺼져 사방이 캄캄하다. 대신 이곳의 기기묘묘한 밤이 켜진다. 장우진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자 춘천 사계절 연작의 두 번째 작품인 <겨울밤에>는 인물들이 청평사에서 함께 혹은 각자 겪는 한밤의 풍경들로 채워진 영화다.
Choice
이대론 안 되겠다
<내언니전지현과 나>
김선명 / 2020-12-06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독립 다큐멘터리를 위한 영화제에 각종 응원 도구를 구비한 관객들이 몰려든 것이다. 박윤진 감독의 첫 장편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유명 배우를 향한 팬덤 못지않은 열기로 영화제 분위기를 달궜고, 열띤 분위기는 이후 열린 다른 영화제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놀랍고 생경한 풍경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1999년 서비스를 시작한 넥슨의 세 번째 출시작 일랜시아의 유저들. 일랜시아는 2008년 마지막 업데이트를 끝으로 개발진과 운영자마저 방치한 게임이지만, 이들 유저에게 일랜시아는 과거의 문이 아니라 미래의 창이었다.
Choice
여전히 세상은
<담쟁이>
손시내 / 2020-11-02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여전히 첨예한 주제다.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다양한 삶의 형태에 주의를 기울여온 많은 창작자들이 이 긴급한 현실을 세밀히 담아왔다. 한제이 감독의 장편 데뷔작 <담쟁이>는 그중에서도 현재 한국의 결혼제도 바깥에서 가족을 구성해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Choice
굴레와 고리
<웰컴 투 X-월드>
차한비 / 2020-10-31
<웰컴 투 X-월드>는 “엄마는 왜”라는 질문으로 출발한다. 엄마는 “내 인생 후회해”라며 눈물을 보이다가도 할아버지가 부르면 벌떡 일어나 라면을 끓이러 가고, “난 결혼부터 잘못됐어”라고 자조하면서도 결혼은 꼭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한태의 감독은 돋보기 대신 카메라를 들고 엄마 최미경을 관찰한다.
Choice
블랙홀의 그림자로
<도망친 여자>
남다은 / 2020-09-15
홍상수의 스물세 번째 영화 <강변호텔>의 과격한 결말 앞에서 그의 오랜 팬들은 충격에 빠져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이례적으로 강력한 죽음의 엔딩은 그의 세계가 맞이하게 될 변화를 예고하는가. 홍상수의 다음 영화는 이제 어디로 향하게 될 것인가. 얼마간 호들갑스럽던 우리의 호기심이 무색하게도 홍상수의 스물네 번째 영화인 <도망친 여자>에서는 <강변호텔>의 결말을 채우던, 어느 생의 갑작스러운 소멸을 향한 흐느낌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Choice
기도(企圖)와 기도(祈禱)
<나를 구하지 마세요>
차한비 / 2020-09-09
가족끼리 자주 놀러 가던 강촌 선착장에서 아빠가 세상을 등진 그날, 열두 살 선유(조서연)는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장소를 동시에 잃었다. 나희(양소민)는 갑작스러운 이별에 제대로 슬퍼할 겨를도 없이, 남편이 남기고 간 큰 빚더미를 떠안았다. 모녀는 도망치듯 낯선 도시로 이사한다. 과거로부터 달아나고자 일부러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을 택한다. 살얼음판을 딛는 것처럼 매일 불안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보려고 애쓴다.
Choice
실없는 유희, 끝없는 배회
<후쿠오카>
손시내 / 2020-08-27
한국의 경주, 서울, 군산 등에서 차례로 영화를 찍은 장률 감독은 그다음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일본 규슈의 후쿠오카로 갔다. <후쿠오카>는 인물들이 도착해 거니는 여행지의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하며 도시의 특정한 풍경을 담는다는 점에서 <경주>(2013),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과 닮았고, 한 명의 여자와 남자들이 하릴없이 이야기 나누며 이곳저곳을 배회한다는 점에서는 <춘몽>(2016)을 떠올리게 한다.
Choice
언제든 돌아갈
<남매의 여름밤>
손시내 / 2020-08-23
영화는 아빠와 옥주, 동주로 이뤄진 세 가족이 작은 봉고차에 타 할아버지(김상동)의 집으로 향하는 길을 오래도록 비추며 시작한다. 아빠가 하는 일이 잘 안 돼 가족은 거처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더위 때문에 기운이 쇠해 힘들어하는 할아버지는 곁에서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한 참이다. 할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달려왔던 고모도 아예 짐을 싸서 집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한집에 모인 할아버지와 두 쌍의 남매는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생활을 공유하며 여름 한때를 같이 보낸다.
Choice
제국의 심장을 폭파하라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김선명 / 2020-08-21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자국 기업에 전쟁과 식민지배의 책임을 물으며 폭탄을 던졌던 이들의 궤적을 좇는 다큐멘터리다. 김미례 감독은 일용직 건설노동자였던 아버지에 관한 다큐를 만들던 2004년, 일제의 식민지배 시절부터 공사판에서 인부들을 부르던 속칭 ‘노가다’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일본 오사카의 가마가사키에 가게 됐다. 가마가사키 일용직 건설노동자의 환경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열악했고, 그 안에서 자본과 싸우는 사람들을 담아 <노가다>(2005)를 완성했다.
Choice
말과 삶
<69세>
차한비 / 2020-08-21
<69세>는 성폭행을 자극적인 소재로 취하는 대신, 한 인물의 삶에 등장한 문제로 껴안는다. 사건 이후 효정은 불면과 구토에 시달리고,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을 신은 채 돌아다닌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가 하면, 타인과의 접촉에 소스라치듯 놀라서 주저앉기도 한다. 그렇게 일상이 무너지는 동안 효정의 자리는 점차 줄어든다. 비좁은 곳에서 효정을 에워싸는 것은 온갖 말이다.
Choice
여기는 절망 1호, 응답하라
<루비>
손시내 / 2020-08-06
<루비>는 주어진 현실을 환기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동명의 희곡이 영화의 원작인데, 박한진 감독은 영화화 과정에서 캐릭터나 대사와 같은 요소들은 물론이고 희곡 자체의 특징 또한 적극적으로 들여왔다. 군데군데 지문(地文)을 삽입하고, 다양한 심상의 표현과 발화의 공간으로서 무대를 마련해 활용한다. 영화가 흘러가는 방식은 일상생활을 하다가 문득 상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경험과 비슷하다.
Choice
신의 뜻대로
<소년 아메드>
김선명 / 2020-07-31
<소년 아메드>는 작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다르덴 형제의 신작이다. 그들의 영화 속 인물들은 아무 정보 없이 뚝 떨어지곤 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아무 준비 없이 내던져진다 할 것이다. 의지할 거라곤 줄곧 인물을 가까이서 뒤따르는 핸드헬드 카메라가 전부다. 조금씩 주어지는 정보들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수동성에 경제적인 편집이 생략한 서사적 공백이 더해진다.
Choice
꿈의 나라에서
<블루 아워>
차한비 / 2020-07-23
<블루아워>는 감독 하코타 유코의 데뷔작이자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 긴 시간 경력을 쌓아온 두 주연 배우의 호흡이 돋보이며, 특히 심은경은 성장통을 앓는 인물 옆에서 실제와 환상을 넘나들며 매력적인 거리감을 만들어 낸다.
Choice
죽기 전까지 가위바위보
<팡파레>
손시내 / 2020-07-10
“여기서 살아서 나가는 사람, 나 말고 아무도 없어.” 왁자지껄한 핼러윈 파티가 끝난 늦은 밤, 손님이 모두 돌아간 한적한 바는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살벌한 생존 게임의 장으로 변모한다. 이상한 관계로 얽혀버린 <팡파레>의 인물들이 이곳에서 벌이는 난투극은 마치 선혈이 낭자한 가위바위보 같다.
Choice
때가 됐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차한비 / 2020-07-09
“제가 마음에 안 들어도 상관없어요. 절 믿어주기만 한다면요.”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은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분명히 말한다. 방송인이 나아갈 유일한 길은 시청자의 호감을 사는 것이라고 못 박는 로저 아일스(존 리스고)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폭스뉴스 최고 경영자인 로저는 얼굴과 몸매가 ‘착한’ 여자를 쇼에 끼워 넣고 짧은 치마를 입혀서 내보냈다. 카메라는 여성의 다리를 집요하게 잡았고 시청률은 해마다 뛰어올랐다. 언론인으로서 신뢰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여성들은 공공연하게 눈요깃감으로 전락했다. 질 좋은 뉴스와 공정한 보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할머니를 겁먹게, 할아버지를 열 받게” 하는 이야기가 폭스 뉴스였고, 닉슨부터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정치권력과도 긴밀하게 결탁했다. 폭스가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케이블 채널이라는 명성을 얻는 동안, 로저는 무소불위한 군주로 자리매김했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바로 그 ‘권력 위의 권력’에 대항하여 세상에 진실을 펼쳐 보인 여성들을 조명한다.
Choice
여태껏 없었던
<욕창>
차한비 / 2020-07-04
모든 집에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겉으로는 부족함 없이 화목해 보여도 안을 들춰 보면 해묵은 갈등과 애써 감춘 근심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지수(김도영)는 아슬아슬하게 유지해온 표면이라도 어떻게든 지켜보려고 애쓴다. 남편의 외도를 모른 척하고 딸과 싸우기를 포기한 채 혼자 화를 삭이는 식이다. 엄마 길순(전국향)이 뇌출혈로 쓰러진 다음부터 지수의 어깨는 갑절로 무거워진다.
Choice
전쟁 같은
<인비저블 라이프>
김선명 / 2020-06-28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 초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다. 귀다(줄리아 스토클러)와 에우리디스는 누구보다 서로에게 의지하는 자매다. 외모와 성격은 딴판이지만, 강압적인 아버지와 무기력한 어머니 밑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예술적 소질을 살려 오스트리아의 음악당에 지원하려고 애쓰는 에우리디스와 그리스 선원 요르고스(니콜라스 안투네스)와의 연애를 통해 대서양 저편을 꿈꾸는 귀다. 자유를 꾀하는 이들 자매의 소원은 그러나 쉽사리 좌절된다.
Choice
지옥에 끌려간 소년
<부력>
손시내 / 2020-06-26
2014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탐사보도로 태국 어선의 강제노동 실태가 알려진다. 전 세계 식탁에 오르는 태국산 수산물이 캄보디아,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들을 납치하고 착취한 결과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뜨렸다. <부력>은 이러한 실상을 고스란히 반영한 영화다. 로드 라스젠 감독은 약 60명의 피해 생존자들을 인터뷰했고,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다. <부력>은 죽음의 바다로 내몰린 14살 캄보디아 소년 차크라(삼 행)의 위험한 여정을 뒤따르면서, 부당하고 끔찍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동자들을 주시한다.
Choice
욕망을 던지면
<야구소녀>
김선명 / 2020-06-18
“중학교 때까지 내가 더 컸는데. 키도 더 컸고. 야구도 더 잘했었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주수인(이주영)은 어려서부터 같이 운동한 이정호(곽동연)의 손에 제 손을 갖다 대며 이렇게 말한다. 3년 전 처음 생긴 백송고등학교 야구부의 유일한 여자 선수 수인. 134km의 강속구를 던지는 이 ‘천재 야구소녀’는 20년 만에 탄생한 고등학교 여자 야구선수라는 타이틀로 전국적 관심을 끌지만, 결국 백송고등학교 야구부가 3년 만에 이뤄낸 프로선수 배출의 주인공은 수인이 아닌 정호의 몫이다.
Choice
달리 보면 행복할까
<환상의 마로나>
손시내 / 2020-06-11
날개 모양 귀와 구름 같은 꼬리,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큼직한 하트 무늬 코를 가진 마로나(리지 브로체르). 안타깝게도 영화의 시작에 마로나는 사고를 당해 쓰러져 있다. 죽음을 예감한 마로나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 제 삶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Choice
재난의 삶, 구원의 기억
<프랑스여자>
차한비 / 2020-06-10
<프랑스여자>에는 생과 사, 프랑스와 한국, 과거와 현재처럼 여러 차원의 경계가 등장한다. 시간 순서대로 사건을 전개해나가는 대신 현실인지 환상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장면이 연속한다. 미라(김호정)는 다층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며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데, 한참 헤매다가 이상한 곳에 도착하기도 하고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생생한 통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미라의 행보는 오천 년 전 나일강을 건너며 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갔다는 망자를 떠올리게 한다.
Choice
언약과 학대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
차한비 / 2020-06-06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은 개인의 정체성과 욕망까지 심판하려는 종교적 억압을 드러내면서, 동성애 치료 센터에 입소한 10대 여성 카메론(클로이 모레츠)를 통해 청소년 성소수자가 어떤 고통에 직면하는지를 섬세하게 다룬다.
Choice
낙인과 상징
<안녕, 미누>
차한비 / 2020-05-28
“폭발적인 가창력의 소유자”로 소개받은 남자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무대에 오른다. 전주가 끝나자 입가에는 웃음 대신 애잔한 기운이 묻어난다. 관객의 박수에 맞춰 구성지게 부르는 노래는 <목포의 눈물>이라는 오래된 곡이다. 네팔 출신 문화운동가 미노드 목탄, 한국 이름은 미누. 그는 이 노래를 목포에서 상경한 중년 여성으로부터 배웠다. 두 사람은 같은 식당에서 일했는데 말하자면 “국적은 달라도 비슷한 처지였”던 셈이다.
Choice
안 들리게 해주세요
<나는보리>
손시내 / 2020-05-22
듣지 못하게 되면 가족들과 같아지지 않을까? 그러면 더 이상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 같은 보리는 매일 소리를 잃고 싶다는 소원을 열심히 빈다. 물질을 많이 한 탓에 귀가 잘 안 들린다는 해녀를 텔레비전에서 보고는 바다에 훌쩍 뛰어들기까지 한다. 온 가족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그 날 이후 보리는 안 들리는 척 행동하는데, 그로인해 그간 체감하지 못했던 일들을 가까이 느끼게 된다.
Choice
하나씩, 하나씩
<파도를 걷는 소년>
차한비 / 2020-05-12
한낮 해변에서 담배를 피우는 김수(곽민규)는 아니꼽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몇 차례 팔을 휘저어보고는 이내 성큼성큼 바다를 향해 걷는다. 옆구리에 낀 보드는 전날 쓰레기장에서 주운 파손품이다. 서퍼 해나(김해나)는 바다에서 연거푸 넘어지는 수를 초조하게 바라본다. 해나가 다가가서 “초짜가 강습도 안 받고 타시면 안 돼요”라고 지적하자, 수는 퉁명스레 쏘아 붙인다. “여기가 당신들 바다예요?”
Choice
사막의 혈투
<리벤지>
손시내 / 2020-05-08
제목이 일러주듯, <리벤지>는 전형적인 복수극이다. 젠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사방이 붉게 물든다. 끊임없이 거듭되는 추격전과 총격전으로 인해 인물들은 온통 피칠갑이 되고, 카메라는 이들의 훼손된 신체를 여과 없이 클로즈업한다. 법이 부재하는 사막이라는 공간 또한 감독이 마음껏 상상을 펼치는 적절한 장으로 기능한다.
Choice
밤을 기억하라
<호텔 레이크>
차한비 / 2020-05-01
해변에서 두 여자가 껴안은 채 춤을 춘다. 달빛은 저 멀리 수평선까지 환히 비추고 여자들은 서로 어깨에 얼굴을 파묻을 정도로 가깝다. 한 여자는 바다를 향해 몸을 돌렸기에 표정을 확인할 수 없지만, 다른 여자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바닷바람에 흰색 원피스 밑단이 파도치듯 펄럭이고 여자들의 손끝은 부드럽게 맞닿는다. 화가 윈슬로 호머가 1890년에 완성한 《여름밤》이다.
Choice
언젠가 돌아갈
<바람의 언덕>
김선명 / 2020-04-27
<바람의 언덕>은 과거를 잃어버린 한희와 과거를 잊어버린 영분을 우연 아닌 우연으로 불러내 마주보게 한다. 한희에게 과거는 끝없이 회귀하는 그리움이고, 영분에게 과거는 어떻든 감춰야 할 비밀이다. 필라테스 학원에서 선생님과 수강생으로 만났으나 금세 서로에게 이끌리는 한희와 영분. 홀로 살아온 이들에게 그리움과 비밀은 이제껏 생의 계기였고, 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둘은 그리움과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사코 애쓴다.
Choice
여름 이야기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손시내 / 2020-04-16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세 사람이 함께 보내는 젊은 날의 여름, 그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은 영화다. 햇살이 환하게 쏟아지는 낮과 가랑비가 세상을 적신 고요한 밤, 그 공기를 가르는 밝고 흥겨운 웃음소리, 사람 없는 항만 도로를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니거나 술과 음악에 나른하게 취해 자유로이 춤추는 인물들. 이러한 상태와 시간이 중대한 위협이나 뚜렷한 국면의 전환 대신 이야기를 끌어간다.
Choice
주저 말고 스퍼트!
<라라걸>
차한비 / 2020-04-14
<라라걸>은 원제 ‘RIDE LIKE A GIRL’을 줄여 쓴 제목이다. 영화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거친 경주로 손꼽는 경마 대회인 멜버른 컵에 출전한 여성 기수 미셸 페인(테레사 팔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감독 레이첼 그리피스는 2015년 당시 텔레비전을 통해 경기를 지켜보았는데, 처음에는 선수 중에 여성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고백했다. 멜버른 컵 역사상 여성 참가자는 단 4명뿐이었고 미셸은 155년 만에 처음으로 수상을 거머쥔 여성 기수였다.
Choice
아주 가끔, 이제 그만
<사랑이 뭘까>
차한비 / 2020-04-09
<사랑이 뭘까>가 이토록 오랫동안 관객을 만날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얼핏 평범한 멜로영화처럼 시작한다. 사랑에 몰두하는 여자 야마다 테루코(키시이 유키노)와 사랑을 주저하는 남자 타나카 마모루(나리타 료)가 등장하고, 둘은 언제 연애를 시작한다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처럼 친밀해 보인다. 다만 무게 중심은 확실히 기울어져 있다.
Choice
'그것'의 처소
<온다>
정지혜 / 2020-04-07
예언은 이미 도래했다. 어린 시절, 히데키(쓰마부키 사토시)는 “언젠가 너도 ‘그것’에 불리게 될 것”이라는 찜찜하고 뜻 모를 말을 들은 적 있다. 시간이 흘러 제과회사의 우수사원이 된 히데키. 그는 카나(구로키 하루)와 결혼해 딸 치사까지 얻은, 누구나 부러워 할 인생의 주인공이다. 기쁨과 충만의 시간은 그러나 오래지 않는다. 이름 모르는 여자의 방문 뒤에 갑자기 히데키의 동료가 사망하고, 히데키 또한 “(어딘가로) 가자”는 의문의 전화에 시달린다.
Choice
악몽이 아니라면
<더 터닝>
손시내 / 2020-04-03
이야기는 호수와 숲으로 둘러싸인 저택에 케이트(맥켄지 데이비스)가 입주 가정교사로 고용되면서 시작된다. 저택의 주인은 일찍이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플로라(브루클린 프린스)와 마일스(핀 울프하드) 남매. 이들을 나이든 가정부 그로스 부인(바바라 미튼)이 돌보고 있다. 새로운 생활에 들뜬 것도 잠시, 케이트는 첫날부터 기이한 일을 겪는다. 젊은 여자의 환영을 보는가 하면 남녀가 다투는 환청을 듣기도 하고 기분 나쁜 악몽에 밤잠을 설친다.
Choice
변함없이, 어김없이
<펠리칸 베이커리>
차한비 / 2020-04-03
<펠리칸 베이커리>에 등장하는 빵집 ‘펠리칸’ 또한 1942년 도쿄 아사쿠사에서 개업하여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영업 중인 시니세 중 하나다. 영화는 펠리칸을 자주 찾는 손님인 나카무라 노무루의 입을 통해 시작하는데, 그는 일본에 매료되어 이주한 캐나다인이자 전통 악기인 샤미센 연주자이기도 하다. 나카무라는 샤미센과 기모노처럼 일상적이고 오래된 것조차 대단한 경지에 올려놓는 일본의 장인 정신에 찬사를 보내며, 펠리칸의 빵은 “꺼낼 때부터 먹을 때까지 감동적”이라고 치켜세운다.
Choice
메두사의 선택
<그 누구도 아닌>
정지혜 / 2020-03-26
르네(아델 에넬)를 이해하려면 과거를 헤집어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닌>(2016)이 선택한 방식이다. 과감하고 무모한 플래시백은 르네의 지난날을 산산이 분절하고 새롭게 결합한다. 산만한 전개인가, 다층적 구성인가. 이 시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뉠 것이다.
Choice
우주가 퐁당
<모리의 정원>
차한비 / 2020-03-26
오프닝에 등장한 미술관과 작업실, 정원은 전부 모리가 속한 공간이다. 그는 존경받는 화가이자 오랜 시간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은둔하는 ‘초야의 인물’로 소문난 유명인사. 세상과 담을 쌓고 고립을 자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리와 아내 히데코(키키 키린)가 사는 집은 쉴 새 없이 찾아오는 방문객으로 늘 북적인다.
Choice
부권 말소 프로젝트
<이장>
김선명 / 2020-03-25
흩어져 살던 다섯 남매가 아버지 묘 이장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정승오 감독은 앞서 단편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2016)에서 어머니 병문안을 위해 모이는 네 자매의 반나절을 그린 바 있다. 네 자매의 부모가 죽은 뒤를 문득 상상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그의 첫 장편인 <이장>은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과 인물과 사건을 일정 부분 공유한다.
Choice
오버 더 레인보우
<주디>
손시내 / 2020-03-25
제92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르네 젤위거의 연기는 기대와 관심을 충족한다. 평생 타인의 관심과 사랑 속에 살아온 스타의 능숙한 몸짓을 보여주면서, 그 모든 것이 거품이고 허상임을 잘 알고 있는 인간의 피로와 권태를 과장 없이 표현한다. 특히 보형물을 덧댄 코는 눈썹과 입술의 미묘한 움직임과 조화를 이루며 실존 인물의 독특한 분위기를 한껏 부풀린다.
Choice
매수된 세계, 박탈된 육체
<다크 워터스>
손시내 / 2020-03-17
토드 헤인즈의 신작 <다크 워터스>는 2016년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탐사보도 기사를 바탕으로 한다. 유독한 화학 합성물 ‘PFOA’를 불법 사용하고 무단 폐기해온 거대 글로벌 기업 듀폰과 끈질긴 싸움을 이어온 변호사 롭 빌럿(마크 러팔로)이 주인공이다. 영화는 듀폰사가 사들인 매립지 인근에서 소를 키우던 농장주 윌버 테넌트(빌 캠프)가 롭에게 도움을 요청한 1998년 이후 20여년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데, 유출된 물질의 허가 여부를 골자로 하는 단순한 재산 분쟁 소송으로 시작된 사건은 듀폰사가 감춰온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하고 합당한 책임을 묻는 데까지 확장된다.
Choice
그대가 주인, 어디든 진리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선명 / 2020-03-07
찬실(강말금)은 “유일무이한 예술영화” 감독으로 불리는 지감독(서상원)의 프로듀서다. 신작 <뒷산에 살리라> 촬영 전 고사를 지내는 날, 지감독이 술자리에서 돌연사하고 찬실은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피디가 없어도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는 영화” 현장에서, “주구장창 지 감독하고만 일”했던 찬실을 찾는 이는 아무도 없다.
Choice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링고>
차한비 / 2020-03-05
짧고 긴박한 통화가 끝나면 영화는 이틀 전 시카고로 돌아가서 인물의 관계와 상황을 재구성한다. 하지만 1분 남짓한 오프닝에 세 주인공의 성격과 위치, 사건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이미 담겨 있다. 리처드는 제약회사를 운영하는 성공한 사업가지만 그리 존경할 만한 인물은 아니다. 일레인은 그의 동업자이자 섹스 파트너인데, 실질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일을 진척하는 건 그녀의 몫이다. 돈이라는 목표로 묶인 둘에게 해럴드는 한때 유용한 중간관리자였지만, 점점 거북한 대상으로 밀려나는 중이다.
Choice
내가 어렸을 때
<기억의 전쟁>
김선명 / 2020-02-28
한국인이 즐겨 찾는 베트남의 대표적 휴양지 다낭. 다낭이 위치한 베트남 중부는 베트남 전쟁 당시 파월 한국군이 주둔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한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병력인 32만여 명을 베트남에 파병했다. 이길보라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은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둘러싼 기억의 전쟁을 다룬다.
Choice
뻔하다고? 미쳤다고? 글쎄~
<하트>
차한비 / 2020-02-27
가영(정가영) 앞에 위험한 상대가 등장한다. 그는 마감에 시달리는 영화 기자이며, 가영이 여태 만나본 사람 중에 제일 섹시하고, 태어난 지 백 일이 된 아이가 있는 유부남이다. 가영은 어쩔 수 없이 한 발 뒤로 물러선다. 취하면 보고 싶어질까 봐 좋아하는 술도 입에 안 댈 정도다. 아픈 사랑에 괴로워하며 가영은 또 다른 유부남 성범(이석형)을 찾아간다.
Choice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도하는 남자>
김선명 / 2020-02-20
태욱(박혁권)은 목사다. 성도가 다섯 뿐인, 이름 없는 개척교회 목사다. 지하의 좁은 예배당조차 재개발로 인해 철거 위기에 처해 있다. 수중에 몇십만 원이 없어 밤새 대리운전을 하는 태욱에게 아내 정인(류현경)은 엄마(남기애)의 간이식 수술비로 5천만 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시련과 고난을 하나님의 뜻이라 여기며 믿음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태욱은 “우리를 항상 불안과 방황의 길로 유혹하는” 부정한 시대와 혹독한 세상을 견뎌낼 수 있을까.
Choice
오직 예술만이
<작가 미상>
차한비 / 2020-02-19
데뷔작 <타인의 삶>(2006)으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고 <투어리스트>(2010)를 연출했던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신작이다. <작가 미상>은 분단과 이념 갈등, 파시즘의 영향 아래 놓인 독일 현대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전작 <타인의 삶>과 궤를 함께하면서도, 그보다 앞선 시기이자 30년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시대를 그리며 사랑, 정치, 예술을 둘러싼 역사 드라마를 완성해낸다. 주인공 쿠르트(톰 쉴링)는 현대 미술가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모티브로 삼으며, 실제 동독에서 태어나 전쟁을 겪고 서독으로 탈출하여 작품 활동을 이어간 리히터의 삶과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
Choice
말로 하자니까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
손시내 / 2020-02-19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 아내가 원하는 게 정확히 뭔지 어딜 향해 가고 싶은 건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2010년 여름, 일본 웹사이트에 올라온 한 질문이 순식간에 세간의 관심을 불러 모으며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 블로그 연재 글로, 인기를 끈 노래로, 책으로도 만들어진 이 사연은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영화화의 과정을 밟았고, 연출은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2008), <신은 발리에 있다>(2014)의 리 토시오 감독이 맡았다.
Choice
내가 불러낸 우연
<페인 앤 글로리>
손시내 / 2020-02-06
<페인 앤 글로리>는 감독인 알모도바르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그가 실제로 허리 수술을 받은 후 느낀 창작에 대한 두려움과 열정이 이 영화를 완성하게 한 것이다. 살바도르의 집 장면이 현재 알모도바르가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촬영되었으며, 감독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 등이 소품으로 두루 쓰였다는 점이 흥미를 더하지만, 영화의 모든 요소를 감독의 삶에 비추어 꿰맞출 필요는 없다. 오히려 참조점이 되는 건 알모도바르의 지난 영화들이다.
Choice
걷잡을 수 없는
<성혜의 나라>
차한비 / 2020-01-30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스물아홉에는 으레 두려움과 조바심이 껴든다. 내세울 만한 성과도 기반도 없는데 내년이면 서른. “꿈도 사랑도 청춘도 다 끝”이라는 생각에 막막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꿈이나 사랑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진다. 어떤 스물아홉은 그저 평범한 미래를 바란다. <성혜의 나라>(연출 정형석) 속 성혜(송지인)가 그렇다.
Choice
알레포에서 온 편지
<사마에게>
김선명 / 2020-01-27
21세기 최악의 비극이라 불리는 시리아 내전. 2011년 내전 발발 이후 시리아에서는 현재까지 약 40만 명이 사망 및 실종됐고, 1200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발생했다. ‘아랍의 봄’ 물결에 힘입어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에 대항한 시민들의 승리 드라마는 잊힌지 오래다. 러시아라는 오랜 우방이 위기에 처한 알아사드 정권의 버팀목이던 상황에서 무기 지원에 목말랐던 반군은 그들에게 다가온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와 손잡았다. 덕분에 파죽지세로 점령지를 넓혀갈 수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성장한 무장단체는 반군과 갈라서며 전 세계에 악명을 떨치는 IS(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Choice
점멸하는 시간
<작은 빛>
손시내 / 2020-01-23
빛을 저장하는 장치로써 카메라는 자연스레 흔적과 기록, 기억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흔적’은 ‘어떤 현상이나 실체가 없어졌거나 지나간 뒤에 남은 자국이나 자취’이고, ‘기록’은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이며, ‘기억’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이다. 시간의 흐름을 전제하기에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이 단어들은 모두 <작은 빛>의 주인공 진무(곽진무)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Choice
사랑을 넘어선 사랑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정지혜 / 2020-01-13
사랑의 불꽃은 어떻게 사그라지지 않고 계속해 생명을 얻는가. <워터 릴리즈>(2007), <톰보이>(2011), <걸후드>(2014)에서 소녀들의 사랑과 정체성을 탐구해온 감독 셀린 시아마는 지난 5년간 사랑의 역학에 대해 질문하며 시나리오 쓰기를 거듭했고, 마침내 완성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을 차지했다. 작고하기 직전의 아녜스 바르다가 더 많이 주목받아야 할 여성 감독으로 가장 먼저 손꼽았던 셀린 시아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사랑의 지속을 창작의 과정과 결합한 아름답고도 격조 있는 멜로드라마다.
Choice
대지의 심판
<신의 은총으로>
차한비 / 2020-01-10
프랑수아 오종의 관심사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듯 보인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금기시된 욕망을 탐구해온 그는 <프란츠>(2016)로 클래식한 멜로드라마를 선보였고, 직후에 공개한 <두 개의 사랑>(2017)에서는 쌍둥이 형제와 사랑을 나누는 주인공을 통해 다시금 대담한 상상력과 화려한 미장센을 자랑했다.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은 <신의 은총으로>(2019)는 오종이 연출한 첫 번째 실화 영화로, 프랑스 리옹 교구 성직자인 프레나 신부의 아동 성폭행을 공론화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Choice
진짜 동물 같은? 진짜 사람 같은!
<해치지않아>
차한비 / 2020-01-10
<달콤, 살벌한 연인>(2006), <이층의 악당>(2010)을 연출한 손재곤 감독이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범죄를 둘러싼 서스펜스에 유머와 로맨스를 결합하여 독특한 코미디를 만들어냈던 과거 작품과 비교하면 <해치지않아>는 훨씬 덜 위협적이다. 여기에는 불안이 감도는 ‘살벌’한 순간도,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악당’도 등장하지 않는다. <해치지않아>라는 제목이 알려주듯, 영화는 가급적 무해한 웃음을 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Choice
영화는 무엇을 원하는가
<백두 번째 구름>
정지혜 / 2019-12-30
영화를 맞이하기까지 임권택의 시간은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감독 임권택이 102번째 영화 <화장>(2014)을 기다리는 시간을 <녹차의 중력>(2018)에 고스란히 담은 정성일은 <백두 번째 구름>에서 임권택 영화가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찬찬히 지켜본다. 영화는 ‘지난 이야기’라는 자막으로 임권택이 <달빛 길어올리기>(2010) 이후 5년이 지나서야 <화장>을 시작하게 된 연유를 짧게 전하는데, 이 때 임권택의 기다림은 감독 정성일의 그것이기도 하다.
Choice
오지 않는 내일
<와일드라이프>
손시내 / 2019-12-30
1960년 미국 북서부 몬태나의 작은 마을. 제리(제이크 질렌할)와 자넷(캐리 멀리건)은 14살 아들 조(에드 옥슨볼드)와 함께 이곳에 새 둥지를 마련한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세 가족은 제리가 골프클럽에서 해고당하면서 휘청대기 시작한다. 당장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제리는 자존심만 세우며 무기력에 빠지고, 자넷과 조가 대신 수영장과 사진관에 일자리를 구한다.
Choice
노예의 선택
<미안해요, 리키>
정지혜 / 2019-12-21
여든을 넘긴 지고지순한 사회주의자 켄 로치는 다시 한 번 이 세계의 부조리와 모순을 적나라하게 꼬집으며 영화로서 세계와 맞선다.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의 푸드 뱅크 신을 촬영하다가 그곳을 찾은 많은 이들이 무직이 아니라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강한 문제의식을 느꼈고, 그게 이번 영화의 출발이 돼줬다고 그는 말한 바 있다. 일하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고 심지어 일할수록 더욱 가난해지는 악화 일로의 구조를 향한 회의와 일침이다.
Choice
모두가 뒤뚝뒤뚝
<기억할 만한 지나침>
차한비 / 2019-12-18
<그저 그런 여배우와 단신 대머리남의 연애>(공동연출 김정민우, 2015),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2016)을 만들며 존재와 진실에 관해 거듭 탐구해온 박영임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이자 첫 개봉작이다.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부문, 인디포럼2018 신작전 부문 등에서 소개했다.
Choice
성좌의 본질
<영화로운 나날>
차한비 / 2019-12-18
영화(조현철)는 배우다. 영화에게 영화란 하고 싶고 닿고 싶은 꿈이자 언제나 그에 못 미치는 현실이기도 하다. 영화가 일이 될 때 영화는 더는 영화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GV에 오지 않은 감독과 이상한 질문을 던진 관객을 불평하고, 시나리오를 보여주겠다는 형과 아쉽지만 이번 작품은 함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조감독 사이에 둘러싸인다. 꽉 막힌 도로에서 발이 묶인 운전자처럼 영화는 답답하고 불안해진다.
Choice
당신의 극장입니다
<라스트 씬>
정지혜 / 2019-12-16
2018년 1월 31일,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해온 부산의 국도예술관이 휴관에 들어갔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폐관이라고 말했다.) <잔인한 계절>(2010), <깨어난 침묵>(2016)으로 환경미화원과 생탁 노동자 이야기를, <밀양전>(2013), <밀양 아리랑>(2014), <소성리>(2018)로 밀양 송전탑과 사드 배치 반대 투쟁에 나선 여성들을 주목해온 감독 박배일은 국도예술관의 열정적인 관객이었다. 그는 특별한 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어떤 긴급함과 다급함을 느낀 듯하다.
Choice
비극은 멀지 않았다
<10년>
손시내 / 2019-12-11
미래를 그리는 영화가 대개 그러하듯, 이 영화들 또한 현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로부터 출발한다. 군사주의, 검열과 통제, 환경오염이나 저출산 등 현재의 문제들이 가속화되고 심화된 근미래는 퍽 어두운 색채를 띠지만, 작고 희미한 희망 또한 영화의 곳곳에 묻어 있다. 이번에 국내에서 개봉하는 <10년>(2018)은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0년: 일본>이라는 제목으로 최초 공개되었던 작품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으며 총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Choice
왜 그렇게 사냐고?
<속물들>
차한비 / 2019-12-11
간단명료한 제목답게 영화는 대책 없이 낯 두꺼운 인물로 가득하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계급을 인지하며, 어떻게든 사다리 꼭대기에 오르기를 원한다. 속고 속이는 게임에서 선우정(유다인)은 져줄 마음이 없다. 미술 작가인 그는 재능이 없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느끼지만, 타인의 창작물을 베끼다시피 한 그림에 <표절>이라는 제목을 붙여 ‘차용 미술’이라고 포장한다. 우정이 보기에 이 세계는 어차피 반쯤 고장 났다. 작품보다 작가 얼굴에 관심이 많고, 논란이 불거질수록 작품 가격은 뛰어오른다. 우정은 이용당하기보다는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Choice
나쁜 엄마, 성가신 딸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손시내 / 2019-12-09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노년의 배우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가 집필한 회고록의 제목이다. (정확한 원제는 ‘La vérité’로 ‘진실’ 정도의 뜻이다.) 그는 오랜 세월을 프랑스의 대표적인 배우로 살며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다수의 상을 받았는데, 회고록엔 연기 인생과 더불어 사적인 이야기들도 한데 실려 있다. 배우로서 커리어를 빈틈없이 유지하면서도 시간을 내어 어린 딸과 단란한 한 때를 보냈던 어머니로서의 일화 등이 적혀있는 것이다. 그러나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가 보기에 그 회고록은 진실은커녕 거짓부렁이고 누락투성이다. 그것이 뤼미르의 심사를 건드린다.
Choice
이번 정류장은
<이태원>
차한비 / 2019-12-07
서울 용산의 이태원은 외국인 거주지이자 외래문화 집결지로서 초국가적 성격을 띠지만, 들여다보면 그만큼 국가주의에 복무하는 지역도 드물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군사기지였던 용산은 해방 후에는 미군 주둔지로 이용됐고, 이 과정에서 이태원은 기지촌의 대명사가 되었다. 1970년대부터 미군을 상대하는 유흥업소가 대규모로 들어섰으며, 이때 형성된 ‘후커힐’은 이태원의 중심 상권으로 자리 잡게 된다. 외화를 벌어들이며 호황을 누리던 이태원의 명성은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급속히 힘을 잃는다.
Choice
각성과 응답
<녹차의 중력>
정지혜 / 2019-12-05
영화평론가와 영화감독의 일이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정성일에게 이 두 가지는 동일한 목적과 욕망을 지녔다. 정성일이 지금까지 만든 다큐멘터리 <녹차의 중력>(2018), <백 두 번째 구름>(2018), <천당의 밤과 안개>(2017)에서만큼은 그러하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세 편 모두 영화감독에 관한 영화이고,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한 영화다. 앞의 두 편은 1934년생인 한국의 영화감독 임권택의 영화를, 뒤의 영화는 1967년생인 중국의 영화감독 왕빙의 영화를 다룬다.
Choice
한낮의 어둠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김선명 / 2019-12-03
산은 경계를 모른다. 지리산은 경상남도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과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에 걸쳐 있으며, 한라산은 저지대의 난대성식물에서부터 고지대의 고산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물을 품고 있다. 전작 <려행>에서 안양의 삼성산을 일종의 매개물로 삼아 과거와 현재를, 남한과 북한을, 이승과 저승을 이었던 것처럼 신작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서 임흥순은 다시 한 번 산이 가진 역량에 기대 경계를 흐트러뜨린다. 다만, <려행>에서 산에 떠오른 두 개의 달이 우리를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 설화의 세계로 초대했다면 이번엔 개기일식이라는 강력한 어둠이 산의 낮을 밤으로 물들인다.
Choice
꿈꿀 수 있다면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차한비 / 2019-11-25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는 중국 만주에 위치한 소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중 플롯 드라마다. “현대 사회의 일상과 일상 사이에 선 개인들”을 보여주고자 했던 후보 감독은 이 공간에서 철저하게 빛을 차단한다. 새벽부터 해 질 녘까지 이어지는 영화 속 하루라는 시간 동안, 네 명의 주인공은 시종일관 어둡고 삭막한 거리를 헤맨다. 안전과 애정 대신 폭력과 이기가 들어찬 곳에서 인물들은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드러낸다. 각 세대를 대표하듯 영화에는 소년과 소녀, 청년과 노인이 등장하는데, 4시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은 인물 각자가 마주한 벽을 비추며 그들이 처한 위기를 하나로 엮어내는 데 충실하게 쓰인다.
Choice
격정의 분화구
<시빌>
손시내 / 2019-11-25
영화는 마고(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의 다급한 상담 요청을 받아들인 시빌이 그녀의 삶에 점차 개입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마고는 유명한 남자 배우인 이고르(가스파르 울리엘)와 사귀고 있고 임신까지 했지만 이를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다. 이고르가 영화감독인 미카(산드라 휠러)와 공식 커플이기 때문이다.
Choice
인류애로 공동선을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정지혜 / 2019-11-22
<도쿄가>(1985)로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세계를, <피나>(2011)로 무용수 피나 바우쉬의 작품을,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2014)으로 사진가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실천적 삶을 조망했던 빔 벤더스. 그의 다큐멘터리적 관심은 줄곧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거장의 방대한 예술적 자취를 쫓는 야심차고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닌데, 조금은 색다른 선택이다. 주인공은 바로 로마 교황청의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에 관한 첫 번째 다큐멘터리인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는 로마 교황청이 직접 빔 벤더스에게 영화 제작을 의뢰하며 시작됐고 교황청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 첫 번째 사례다.
Choice
너를 다시 만나면
<윤희에게>
손시내 / 2019-11-18
간결한 제목이 넌지시 일러주듯, <윤희에게>를 작동시키는 건 한 통의 편지다. 안부를 묻고 그리움을 전하는 그 편지는 어느 날 문득 도착해 윤희(김희애)의 마음을 가만히 두드린다. 보내지 못한 채 탁자 위에 올려두었던 편지가 다른 이에 의해 전달되면, 꺼내 보이지 못한 채 묻어두었던 마음도 조금씩 흐르기 시작한다. 서로에게 가닿지 못했던 말들, 오랜 세월을 견디고 나서야 다시금 마주하게 된 사랑과 상실의 감정이 차분하고 고요한 리듬 속에 새겨진다. 각자의 외로움을 품은 생각 많은 사람들이 종종 홀로 걷고, 서로에게 눈길을 던지며, 함께일 때도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이따금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품을 내어준다. 그건 대개 조용하고 느린 활동이지만, 그렇게 전달되는 정서는 영화의 장면들 사이에, 말과 말 사이 침묵을 통해 깊고 묵직하게 퍼진다. 그 잔잔한 파동이 <윤희에게>를 천천히 채워나간다.
Choice
달아나고 싶지만
<영하의 바람>
차한비 / 2019-11-14
영하는 기억한다. 열다섯 영하는 엄마와 헤어지고 아빠에게 보내졌다가 결국 빈 집 앞에 홀로 남았던 열두 살을 잊지 못한다. 집으로 들어가는 익숙한 골목에는 여전히 그날 저녁이 숨어 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린 기분에 무릎을 끌어안고 울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르면, 영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열아홉이 된 영하(권한솔)는 열다섯에 겪은 이별을 되새긴다. 동갑내기 친구이자 이종사촌인 미진(옥수분)은 부모와 할머니를 잃고 먼 친척에게 떠넘겨진다. 영하는 이따금 말없이 교실 창밖으로 운동장을 내다보며 몇 해 전 학교를 떠나가던 미진의 뒷모습을 곱씹는다.
Choice
그녀에게 남은 것
<심판>
손시내 / 2019-11-14
이민자에 대한 독일 사회의 차별과 편견을 다루는 <심판>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카메라가 전경화하는 공간과 인물은 각 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1부 ‘가족’은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수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경찰은 물론 가족으로부터도 의심과 원망의 목소리를 들으며 무너지는 카티아의 모습을 담는다.
Choice
카메라를 들어야 했다
<졸업>
차한비 / 2019-11-10
강원도 원주대학교가 ‘상지’라는 이름을 갖게 된 1970년대부터 학생들은 학교 재단이 저지르는 비리와 맞서 싸워왔다. 상지대학교가 감내한 오랜 투쟁의 중심에는 김문기 전 이사장이 있다. 가족과 친인척을 요직에 앉히며 족벌 사학 체제를 구축했던 그는 결국 1993년 교육부 감사에서 부정입학 정황이 포착되어 구속됐다. 이후 안정을 갖추던 학교는 한 차례 퇴출되었던 김문기의 복귀 시도가 수면 위로 떠오른 2009년부터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Choice
차마 보낼 수 없는
<오늘, 우리>
차한비 / 2019-11-02
네 편의 단편영화가 모여 <오늘, 우리>라는 장편 옴니버스로 개봉한다. 오늘과 우리라는 일상어의 조합은 영화의 첫인상을 다소 밋밋하게 만들지만, 작품을 보고 나면 이 단어가 단순한 수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이 2-30대 여성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네 작품에서 마땅한 공통점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상황과 입장이 다른 인물에게는 저마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고, 단숨에 해소하기 어려운 고민도 있다. 영화는 청춘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그들 각자가 지닌 무게를 오늘, 우리라는 넉넉한 둘레로 감싸 안는다.
Choice
사랑을 삼킨 후에
<경계선>
손시내 / 2019-10-28
<경계선>은 땅과 바다의 경계에 선 누군가의 뒷모습을 비추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주기적으로 여객선이 들어오는 이곳은 국가와 국가의 경계를 가르는 출입국 사무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풀과 벌레를 가만히 만지던 이는 세관 직원으로 일하는 티나(에바 멜란데르). 그는 배에서 내려 땅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불법적인 물건을 소지하고 있는지 단속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 조금 독특하다. 심사대를 통과하는 이들을 가만히 노려보며 코를 킁킁대다가 한 명씩 문제의 인물을 잡아내는 식이다.
Choice
감각의 질주
<아워 바디>
차한비 / 2019-09-28
계속 뛰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이 가벼워지며,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을 것만 같은 상태에 돌입한다. 누군가는 순간 이동 같다고 표현하고, 누군가는 오르가슴에 비교하기도 한다. 이를 ‘러너스 하이’라고 부른다. <아워 바디>(한가람, 2019)는 마치 언젠가 만끽할 러너스 하이에 당도하려는 듯 내내 달리고 또 달린다.
Choice
믿음과 불신의 변증법
<메기>
박인호 / 2019-09-28
이옥섭 감독의 첫 장편영화 <메기>는 마리아 사랑병원의 간호사로 일하는 윤영(이주영)과 주변 인물들이 우스꽝스럽고도 민망한 사진을 본 후에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소동을 다루면서, 한 장의 X-레이 사진으로 시작된 의혹이 폭력으로까지 전이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메기>는 보는 즉시 우리를 사로잡을 만큼 개성이 또렷한 영화다.
Choice
보이지 않는 세상
<동물,원>
차한비 / 2019-09-07
때로는 그저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질문이 시작된다. <동물, 원>(왕민철, 2019)은 가능한 한 여러 위치에서 물음표를 띄우면서도 답을 찾는 일에 서두르지 않는 다큐멘터리다. 무언가를 선언하거나 고발하는 극적인 순간은 없지만, 영화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고민으로 가득 차 있으며 분주하고도 안정적인 속도를 유지한다. 이러한 리듬은 영화에 담긴 ‘일상’의 힘 덕분이다. <동물, 원>은 동물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하루를 따라감으로써 동물원이라는 공간을 다층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Choice
너 돈 많아? 나 흥 많아!
<불빛 아래서>
김보년 / 2019-09-04
조이예환 감독의 장편 데뷔작 <불빛 아래서>는 록밴드 ‘로큰롤 라디오’, ‘웨이스티드 쟈니스’, ‘더 루스터스’의 활동과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밴드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목표를 세우고, 감독은 “풀타임 밴드”로 자리 잡기 위한 뮤지션들의 노력을 거의 6년에 걸친 긴 시간 동안 보여준다.
Choice
세상이 일러주지 않은 사랑
<벌새>
차한비 / 2019-08-29
<벌새>는 성장영화라기보다는 사랑영화다. 열다섯 은희가 통과하는 1994년은 사랑에 관한 질문과 응답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 안에는 가족, 학교, 사회라는 집단이 있고, 그보다 많은 관계와 역할이 있다. 방앗간집 막내딸 은희에게 가족의 사랑은 늘 부족하다. 일로 바쁜 엄마는 무뚝뚝하고, 아빠는 식탁에서 종종 욕설을 내뱉는다. 집안의 기대와 관심은 장남인 오빠에게 쏠려 있고, 언니는 부모의 눈을 피해 집 밖으로 나가기 일쑤다. 엄마와 아빠가 싸운 어느 밤에 언니는 말한다. “우리 가족은 다 따로 살아야 돼.”
Choice
내가 지킬 거야
<우리집>
정지혜 / 2019-08-25
<우리집>(2019)은 <우리들>(2015)로 주목받은 윤가은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두 작품의 제목에 연이어 등장하는 말, ‘우리’는 감독이 주목하는 세계이자 그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아이들이 상상하는 또래집단으로서의 ‘우리’, 자신이 속한 집단을 향해 친밀함을 표현하는 ‘우리.’ 하지만 그 ‘우리’의 세계가 언제나 포근하고, 안온했던가.
Choice
시간의 집을 찾아서
<이타미 준의 바다>
김보년 / 2019-08-20
정다운 감독이 연출한 <이타미 준의 바다>는 이타미 준의 생애와 작업을 풍부한 시각 자료와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형식상의 특징은 단순한 연대기적 구성을 따르지 않고 여러 소주제에 맞춰 현재와 과거, 한국과 일본을 자유롭게 오가는 구성을 취했다는 점이다.
Choice
내 목소리 들리니?
<밤의 문이 열린다>
차한비 / 2019-08-17
유은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밤의 문이 열린다>는 한국독립영화에서 보기 드문 장르 영화로,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영화제를 통해 주목받았다. 유은정 감독은 단편 <밀실>(2016), <캐치볼>(2015) 등에서 보여주듯 동시대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관계 맺기에 관해 꾸준히 탐구해왔으며,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미스터리, 스릴러, 공포, 판타지와 같은 장르적 실험을 지속해왔다.
Choice
이상한 콤플렉스, 끔찍한 스캔들
<앨리스 죽이기>
정지혜 / 2019-08-14
<앨리스 죽이기>(2017)는 2014년 말에 발생한 한 사건을 통해 당대의 파상을 헤집으려고 시도한다. 김상규 감독이 주목하는 건 기세등등한 ‘종북몰이’이다. 재미교포 신은미는 남편 정태일과 함께 미국 시민권자로서 북한 관광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신은미는 책도 내고 미국 한인 타운에서 북 콘서트도 열었다.
Choice
분명 여기에 유령이 있다
<려행>
조지훈 / 2019-08-12
미술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임흥순은 말하자면 유령을 찾아내어 영혼을 위로하고 제사를 지내는 무당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주변부를 오랜 시간 부유해온 유령과 같은 존재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채집하고, 그것들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담아낸 다음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조합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형체가 없던 유령에게 진짜 모습과 본래의 이름을 돌려준다. 임흥순의 영화, 또는 그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로 사회적 유령을 위한 애도와 위로의 제사라고 할 수 있다.
Choice
갔다, 꼭 올게
<김복동>
손시내 / 2019-08-09
뉴스타파의 세 번째 작품인 송원근 감독의 <김복동>은 간결한 제목처럼 한 인물의 삶과 투쟁의 기억을 성실히 모아 담은 영화다. 주인공은 1992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뒤 남은 생을 여성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로 살았던 김복동. 1926년 5월에 태어난 그는 지난 2019년 1월 세상을 떠났다.
Choice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주전장>
김선명 / 2019-07-25
미키 데자키는 아시아계 이민자 2세로 미국에서 자란 경험을 통해 인종차별을 직접 겪은 바 있다. 이런 문제가 주류 미디어에서 말해지지 않을 때 피해자들의 고통이 두 배가 된다는 점 역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의 첫 질문이 피해자의 목소리를 억압하려는 이들에게 곧장 향하는 것도 그래서다.
Choice
정말, 괜찮은 걸까
<한낮의 피크닉>
손시내 / 2019-07-06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의 개막작이자 <잠시 쉬어가도 좋아>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바 있는 이 작품은, 신진 작가들에게 차기작의 기회를 제공하고 개봉과 배급을 함께 고민하는 취지의 ‘인디트라이앵글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된 장편 옴니버스 영화다.
Choice
봉인된 비극
<해피엔드>
손시내 / 2019-06-24
<해피엔드>에는 처음부터 목격의 감각이 배어있다. 물론 그 두 화면을 다 볼 수 있는 목격자는 관객이다. 그런데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가 종종 그랬듯이 ‘누가 그랬는지’ 혹은 ‘왜 그랬는지’의 여부가 영화의 중심에 위치하거나, 이 목격이 불편함을 감내하며 풀어가야 하는 관객의 퍼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신 여기서 보게 될 것은 한 부르주아 가족의 적나라한 초상이다.
Choice
저주받은 성자
<행복한 라짜로>
차한비 / 2019-06-24
영화는 시대 배경을 가늠하기 어려운 이탈리아의 작은 산골마을 인비올라타에서 시작한다. 공동으로 거주하는 오십 여명 남짓한 주민들은 데 루나 후작부인(니콜레타 브라스키) 아래서 소작농으로 살고 있다. 여전히 봉건제가 유지되는 마을에서, 라짜로는 최하위 계급에 위치한 사람이다.
Choice
그렇게 한 뼘씩
<보희와 녹양>
차한비 / 2019-06-02
<보희와 녹양>(연출 안주영)은 10대 청소년 보희(안지호)와 녹양(김주아)의 성장기이자 모험담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안주영 감독은 전작 단편 <옆 구르기>(2014), <할머니와 돼지머리>(2016) 등에서 일관되게 보여주었던 청소년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첫 장편영화인 <보희와 녹양>에도 다채롭게 옮겼다. 밝고 싱그러운 화면 위로 두 주연배우의 ‘찰떡케미’가 유쾌하게 녹아든다.
Choice
마지막 수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박인호 / 2019-06-02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2019)는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유언장과 같은 영화다. 이미 <아녜스의 해변>을 받아보았지만, 그녀는 사진과 필름영화와 디지털영화와 비주얼아트에 이르는 60여 년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Choice
꿈꾸는 사랑
<우리 지금 만나>
손시내 / 2019-05-31
김서윤 감독의 <기사선생>, 강이관 감독의 <우리 잘 살 수 있을까?>, 부지영 감독의 <여보세요>로 이뤄진 이 작품에는 새롭게 변화하는 남북의 상황이나 오래된 분단 현실에 나름대로 적응해 온 개인들의 모습 뿐만 아니라 그를 기반으로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와 감정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Choice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김군>
김선명 / 2019-05-28
당시 광주 항쟁에 참여했던 이들 중 복면을 쓰고 무장한 시민군을 두고 이들이 북한군이라는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지만원이 ‘제1광수’라고 지목한 사진 속 인물 또한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매서운 눈빛을 드러내고 있다. 강상우 감독의 영화 <김군>은 지만원과 극우세력의 주장에 맞서 그들이 말하는 제1광수를 탐문하는 과정을 큰 줄거리로 삼는다.
Choice
상상의 평원으로 진격!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김보년 / 2019-05-25
<브라질>(1985), <12 몽키즈>(1995) 등을 연출했던 테리 길리엄 감독은 오래전부터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그 프로젝트가 바로 ‘돈키호테’의 영화화였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9년에 처음 작업을 시작했지만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후 계속된 노력 끝에 실제로 촬영에 들어갔으나 결국 완성에는 실패했다. 이 실패의 역사가 <로스트 인 라 만차>(2002)라는 다큐멘터리로 따로 만들어질 정도였으니(이 작품에서 당시 주인공이었던 조니 뎁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테리 길리엄은 결국 지난해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완성했고, 개봉을 앞두고 가진 한 인터뷰에서 “뇌종양이 사라진 것 같다”는 솔직한 소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Choice
패배의 기록, 유령의 역사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김선명 / 2019-05-08
영화학자이자 영화감독으로서 이산(離散)과 여성이라는 주제에 그 누구보다 깊고 꾸준한 관심을 보여 왔던 그녀는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지워지고 잃어버렸던 파편들을 이어 새로운 성좌를 그려내고 있다. <김 알렉스의 식당 : 안산-타슈켄트>(2014)를 확장한 <눈의 마음 :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2014)을 시작으로 그녀가 ‘망명 3부작’이라고 이름붙인 작품들의 마지막 영화가 바로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이다.
Choice
당신들은 자격이 없어요
<러브리스>
차한비 / 2019-04-22
아이가 사라진다. 이름은 알료샤, 나이는 12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간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제냐(마리아나 스피바크)와 보리스(알렉세이 로진)는 이혼을 앞둔 부부이다. 그들에게 결혼생활이란 삭제하고 싶은 과거이며, 가정에는 적대와 불신만이 가득하다. 부모에게 자신이 거추장스러운 짐짝임을 알게 된 알료샤가 홀로 집을 떠나는 그 시간에도 제냐와 보리스는 각자의 연인과 새로운 사랑을 꿈꾸느라 여념이 없다. 부부는 아들이 이틀 동안 학교에 결석했다는 선생의 전화를 받고서야 심각한 상황을 뒤늦게 깨닫는다.
Choice
영원히 흐르지 않는
<한강에게>
김선명 / 2019-04-08
진아(강진아)는 첫 시집의 출간을 앞두고 있는 시인이다. 친한 이들과 함께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고 수다를 떠는 시간을 즐기는 그녀에게 한강은 언제나 곁에 머물러 있을 것 같은 존재다. 그런데 십년 가까이 만난 남자친구 길우(강길우)가 얼마 전 바로 그 한강에서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한강에게>는 상실의 아픔과 죄책감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진아의 이야기다.
Choice
아무도 모르게 리셋
박영주 감독의 <선희와 슬기>
차한비 / 2019-04-02
지금 선희(정다은)는 인생을 ‘리셋’하고 싶은 심정이다. 암흑 속에서 두꺼비집을 내렸다가 올리듯, 버스를 타고 낯선 곳을 향해 떠난다. 불이 들어오고 주위가 밝아지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태연하게 연기해볼 작정이다. 유별난 욕구는 아니다. 성장도 극복도 불가능할 때,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는 대신 상처와 죄책감만 남아서 버거울 때, 누구나 한 번쯤 인생을 초기화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이야 평범하지만, 선희의 행보는 어딘가 부적절해 보인다. 이름을 바꾸고 배경을 지운 채 새로운 사연을 뒤집어쓰는 일은 온통 거짓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선희는 스스로 꾸며낸 리셋 버튼을 누른다.
Choice
진짜 철의 여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김선명 / 2019-04-02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미국 역사상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연방 대법관에 오른 인물이며 현재 최고령(1933년생) 대법관이기도 하다. 미 연방 대법원은 한국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성격을 모두 갖는 기관이다. 그곳의 판결은 미국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며, 종신직인 연방 대법관은 법조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다. 다른 사회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대법관은 오랜 동안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던 자리였다. 긴즈버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는 오프닝 시퀀스를 워싱턴의 연방 대법원 건물과 주변 동상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카메라가 전부 남성으로 이루어진 동상들을 차례로 비추는 동안 여러 남성들의 발언이 보이스 오버로 깔린다. 모두 긴즈버그를 마녀, 좀비, 대법원의 수치 등으로 비난하는 목소리들이다.
Choice
시간의 전도, 세계의 변곡
<강변호텔>
남다은 / 2019-03-28
홍상수의 23번째 작품인 <강변호텔>은 그간 그가 창조해온 세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주는 영화다. 홍상수가 ‘극적인 사건으로서의 변화’를 불신하는 감독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이 영화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과격한 변화의 운동을 부정하긴 어렵다. <강변호텔>에 새겨진 무서운 비약과 가차 없는 단절, 낯선 온기와 깊은 비애를 경험하는 동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한 세계의 시작과 다른 세계의 끝을 동시에 활성화하는 것만 같은, 전에 없이 독보적인 이 지평은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Choice
환상에서 실재로
<아사코>
강소원 / 2019-03-19
4년 전 <해피 아워>로 차세대 일본 영화계를 이끌어갈 선두주자로 주목받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시바사키 도모카의 원작을 바탕으로 신작을 내놓았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아사코>는 비전문 배우의 자연주의적인 연기로 격찬 받은 전작에 비해 보다 정형화된 연기에 다소 관습적인 멜로의 세계를 도입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문득문득 타고난 직관과 감각으로 힘들이지 않고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행해가는 신묘한 영화다.
Choice
포기하지 않는, 포기할 수 없는
<히치하이크>
차한비 / 2019-03-18
정애(노정의)는 줄곧 가난했을 것이다. 태어나서 열여섯이 될 때까지 추운 날에는 한기를, 더운 날에는 열기를 그대로 감내하며 살아온 듯하다. 소녀의 눈은 여간해선 흔들리지 않는다. 크고 진한 눈망울은 담담하게 열려 있고, 울음을 터뜨릴 법한 순간에도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가만히 응시한다. 오래 단련된 고요함이 깃든 탓인지, 앳된 얼굴을 바라보면서도 종종 열여섯이라는 나이를 잊고 만다. 정애가 그나마 제 나이답게 보이는 순간은 엄마를 상상할 때다. 떠올릴 기억이 거의 없는 엄마를, 정애는 가장 무모한 방법으로 찾아 나선다.
Choice
요즘 애들 아나?
<내가 사는 세상>
차한비 / 2019-03-09
<내가 사는 세상>은 ‘요즘 애들’이라고 불리는 청년들의 이야기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를 쓰지만, 현실은 번번이 그들의 꿈을 값싸거나 무지하거나 무례한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고군분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젊음이 얼마나 쉽게 빈곤에 처하며 열정이 어떻게 그토록 간단히 착취당하는지 알게 된다.
Choice
왕의 손, 탐욕의 반지
<그때 그들>
김선명 / 2019-03-09
베를루스코니가 총선에서 근소한 차이로 패한 뒤 자신의 별장에서 재기를 노리던 2006년에서 시작해 2008년 총리 복귀와 2009년 라퀼라 대지진을 거쳐 2010년까지의 시기를 다루는 <그때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원래 2부작으로 개봉됐다.
Choice
내 나이 88, 내 마음 팔팔
<칠곡 가시나들>
손시내 / 2019-03-01
뒤늦게 한글 공부를 시작한 ‘할매’들, 이 학생들의 평균 나이는 86세다. 1930년대에 출생한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성장하고 농촌에서 한평생 일하면서 읽고 쓰는 법을 공부하기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이제 “글자를 아니까 사는 게 더 재밌”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카메라는 그 곁에서 그들의 주름진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느린 걸음을 천천히 따라간다. <칠곡 가시나들>은 함께 공부하고 놀고 글을 쓰는 이 평화롭고도 열정적인 공동체의 모습에 대한 애정 어린 기록이다.
Choice
그러니까, 누구세요?
<국경의 왕>
차한비 / 2019-02-26
희망과 달리 여행에선 종종 잃는다. 길을 헤매고, 물건을 잃어버리고, 적절한 때와 기회를 놓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그리고 특별한 순간과 특별한 만남을 기대하며 멀리 떠나보지만, 낯선 도시에 머무르다 보면 여행이 얼마나 별 볼 일 없는지 알게 된다. 국경을 넘는 흥분도 잠시뿐, 떠나온 곳이나 떠나간 곳이나 단조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실수로 잃어버린 것과 일부러 두고 온 것을 제하면, 여행이란 확실히 득보다 실이 많은 경험이다.
Choice
그녀가 없다고 상상해봐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송효정 / 2019-02-25
여왕의 침실을 차지한 자가 권력을 얻는다.<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는 권력을 둘러싼 왕실풍 퀴어 잔혹극으로 전개된다. 비만과 통풍을 수반한 육체와 우울증이 만성화된 정신의 소유자인 여왕 앤(올리비아 콜먼), 여왕의 오랜 친구이자 권력 실세인 멀버리 공작부인(레이첼 와이즈), 공작부인의 먼 친척이자 노골적으로 신분 상승을 탐하는 애비게일 힐(엠마 스톤) 등 개성과 욕망이 뚜렷한 세 여성이 형성하는 권력 무게추의 이동이 사뭇 흥미롭다.
Choice
어릿광대, 미치광이, 혹은 악마
<살인마 잭의 집>
김선명 / 2019-02-23
<살인마 잭의 집>의 구성은 감독의 전작 <님포매니악>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그것이다. 연쇄살인마 잭은‘버지(Verge)’라는 남자를 따라 지옥의 맨 밑으로 내려가는데, 그동안 잭은 버지에게 자신이 12년 간 저지른 살인 중 결정적인 다섯 개의 사건을 들려준다.
Choice
언제나 떠돌다가 이따끔 마주치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손시내 / 2019-02-19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는 현대 도쿄의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청년세대의 모습을 그리는 영화다. 늘 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그 어느 것도 특별한 사건이 되진 않는 곳, 의미 없는 말들만이 넘쳐나는 이곳에 미카(이시바시 시즈카)와 신지(이케마츠 소스케)가 있다.
Choice
암흑 시대의 사랑
<콜드 워>
정지혜 / 2019-02-08
눈먼 자의 구슬픈 악기 연주, 그리고 이어지는 이름 모를 이들의 노래. 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의 <콜드 워>는 1949년 전후 폴란드에서 불리던 노래를 첫머리에 들려준다. 누군가는 “조악하고 원시적”이며 “주정뱅이의 노래”라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노래야말로 폴란드 민족의 원초적인 힘이며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Choice
냉소로 겨울을 버틸 수 있을까
<이월>
손시내 / 2019-01-31
삶을 지속하는 동안 민경의 얼굴에 스치는 건, 생에 대한 의지나 미래를 향해 품는 희망 같은 것이 아니다. 냉소, 뻔뻔함, 싸늘함 등이 대개 무표정인 민경의 얼굴에 불현듯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호의를 보이는 이들을 곤란하게 하며 섬뜩한 웃음을 보이기도 한다. 어딘지 복잡함보다는 불가해함에 더 닿아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민경은 단순하게 이해되기를 거부하는 인물이다.
Choice
공백의 파동
<얼굴들>
강소원 / 2019-01-29
이강현 감독의 첫 번째 극영화 <얼굴들>은 제목에서 짐작되는 것과는 달리 극적인 얼굴들을 담은 클로즈업의 영화는 아니다. 그의 다큐멘터리 <파산의 기술>(2006)과 <보라>(2011)를 이미 본 관객이라면 그런 예상은 하지 않겠지만. <얼굴들>에는 대체로 롱 쇼트로 포착된 ‘잘 읽히지 않는’ 얼굴들이 있다.
Choice
연민과 재현의 딜레마
<가버나움>
정지혜 / 2019-01-23
나딘 라바키는 사회, 종교적 금기와 차별에 맞선 레바논 여성들의 이야기를 멜로와 코미디 장르로 완곡하게 풀었던 전작 <카라멜>(2007), <웨어 두 위 고 나우?(Where Do We Go Now?)>(2011)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선명한 목소리로 <가버나움> 속 세상의 폭력을 보라고 말한다.
Choice
관조와 음미
<일일시호일>
송효정 / 2019-01-17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라는 의미의 <일일시호일>은 일상의 정취를 전하는 ‘차 한 잔의 마법’ 같은 영화다. 스무살 대학생 노리코(쿠로키 하루)는 자신과 다르게 무엇이든 똑 부러지게 해내는 동갑내기 사촌 미치코(타베 마카코)와 함께 우연히 마을의 다도수업에 참석한다. 다도를 통해 사시사철 달라지는 생의 이치를 전달해주는 다도선생 다케타 역은 고(故) 키키 키린이 맡았다.
Choice
진실 뒤에 숨다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
손시내 / 2019-01-16
어리석은 욕망과 행동들이 충돌하고 얽히면서 크고 작은 불행이 만들어진다. 많은 경우 타코우와 나츠하라는 다른 이들에게 불행을 주는 존재였지만, 결국 죽음이라는 자신들의 가장 큰 불행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단편 영화 시절부터 일본 국내외 영화제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이시카와 케이의 장편 데뷔작.
Choice
이렇게 완벽한 날
<레토>
김선명 / 2019-01-03
영화는 첫 공연 장면의 어색한 긴장과 앞서 언급한 화창한 여름날 해변의 생기를 오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당국의 엄격한 통제 아래에서도 젊음의 해방구로 록음악을 선택했던 레닌그라드의 청춘들이 있었고, 이들의 음악을 향한 열정과 방황, 사랑이 영화가 주로 다루고자 했던 바일 것이다. 빅토르 최는 1982년에 데뷔하여 1990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구소련의 전설적인 록스타이지만, 그가 스타가 되기 전 1년 정도의 시간만을 다루는 것도 이런 의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Choice
역사와 기억의 포말
<로마>
송효정 / 2018-12-20
<로마>는 영화음악을 비롯한 화면 밖 소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영화 내 소리들로만 사운드를 구성한 영화다. 번화가에서는 행인의 수다, 유행가, 행상인의 호객행위까지 잡다하게 살려냈고 빈민가에서는 선거유세와 싸구려 흥행쇼의 결정적 순간까지 포착하고, 들려준다.
Choice
살며시 마주보기
<어른이 되면>
차한비 / 2018-12-12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은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혜정과 언니 혜영, 그리고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다.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인권, 페미니즘,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장혜영 감독은 ‘탈시설’ 이후 동생 혜정과의 반년간 동거 생활을 카메라에 담았다. 감독은 애초 뚜렷한 구성안을 갖고 시작한 영화가 아님을 밝히며, 영화의 완성보다 중요한 것은 혜정과 자신이 잘 살아가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 마음을 바탕삼아 제작된 <어른이 되면>은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함께 살기를 희망하는 온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Choice
오직 진심만이
<영주>
손시내 / 2018-11-25
영화는 이들 관계의 진전과 그로 인해 변화하고 갈등하는 영주의 감정을 천천히 그리고 성실하게 따라간다. 영주에게 부모 같은 어른이 필요했듯이, 혼수상태가 된 아들을 둔 상문과 향숙 부부에게도 일상을 나눌 자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들은 점차 서로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어간다.
Choice
조롱에서 비명으로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
김선명 / 2018-11-24
하지만 트럼프라는 현상은 그에게 더는 폭로하고 조롱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떻게 이따위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오히려 시선을 우리 쪽으로 돌려 궁리해야 할 문제에 가까웠을 것이다. 탐욕스럽고 멍청한 저쪽 편에 의해 우리의 시스템이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공고하다고 안심하고 있던 우리의 시스템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야 할 필요성을 트럼프가 던진 것이다.
Choice
모두가 다 같이 풍덩!
<인어전설>
남다은 / 2018-11-16
<인어전설>은 인공적인 아쿠아리움과 바다의 풍광, 수중에서 묘기를 펼치는 여자와 물질하는 여자의 형상을 교차하며 시작된다. 두 시공간, 혹은 두 여자의 초상은 물에서 활동한다는 동일한 조건을 나누며 공명하지만, 둘 사이의 정서적, 물리적 거리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도입부 시퀀스의 이러한 인상은 <인어전설>의 기본적인 구도를 요약한다. 직업도, 나이도, 배경도, 과거도 다르지만, 물의 성질만큼은 누구보다 완벽하게 체득한 두 여자가 오직 물을 인연으로 만났을 때, 둘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가능해질까. 오랜 시간, 그들 일상의 일부였던 ‘물’이라는 세계는 그들의 현실에 변화를 불러오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을까.
Choice
품지 못할 내 것을 찾아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강소원 / 2018-11-11
장률 감독의 열한 번째 영화이자 한국에서 찍은 여섯 번째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이하 <군산>)는 <경주>(2014)와 무척 닮았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는 공간, 계획되지 않은 여행, 일과에서 해방된 무위의 시간, 해프닝 같은 로맨스, 불쑥불쑥 끼어드는 죽음의 모티프, 예측불허의 별난 유머 감각 등이 이 영화를 <경주>의 연작으로 보게 한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의 절반 지점까지는) <군산>은 <경주>보다 더 모호하고 더 꿈같다. 그래서 더 매혹적이다.
Choice
빼앗긴 진혼곡
<1991, 봄>
손시내 / 2018-11-04
유서대필과 자살방조 혐의로 체포되어 3년 동안 옥살이를 한 강기훈은 24년이 흐른 2015년이 되어서야 무죄판결을 받았다. “시시한 진실보다 재밌는 거짓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를 기억할까. 죽음의 벼랑으로 떠밀었다고 오해받았던 그의 손은 이제 기타를 잡고 떨리는 연주를 시작한다.
Choice
비켜, 질문은 내가 한다
<밤치기>
차한비 / 2018-11-01
밤은 깊어가고 취기는 오르지만, 가영은 지칠 줄 모른다. 천하의 공격수답게 대사를 치며 영화를 누빈다. ‘가영’의 질문은 아슬아슬한 수위를 넘나들지만 ‘영화 작업’이라는 방패 덕분에 그럭저럭 능청을 유지한다. 속내가 빤히 드러나는 질문과 희롱에 가까운 태도에도 불구하고 진혁은 대답을 거부하지는 못한다. 어쨌거나 질문의 필요와 불필요, 혹은 적절과 부적절을 판단하는 쪽은 가영이기 때문이다.
Choice
가족이 되는 법
<프리다의 그해 여름>
손시내 / 2018-10-27
<프리다의 그해 여름>이 외숙모 마가와 프리다의 관계를 그리는 방식 또한 섬세하고 흥미롭다. 프리다에게 엄마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인물들은 우선적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모들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은 너무 일찍 엄마와 헤어진 프리다를 늘 가엽게 여기고 프리다가 원하는 만큼의 애정과 친밀함을 준다. 하지만 실제로 프리다와 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것은 마가다. 그녀는 프리다를 병원에 데려가고 신발 끈을 스스로 묶도록 하며 식사 준비를 위해 텃밭에 다녀오는 소일거리를 시킨다. 이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감정적 교류가 일어나진 않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어려워하고 염려하며 가족이 되는 법을 배워간다.
Choice
그림자 골목의 사랑
<풀잎들>
박인호 / 2018-10-26
<풀잎들>은 <오! 수정>(2000), <북촌방향>(2014), <그 후>(2017)를 잇는 홍상수의 네 번째 흑백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차갑게 빛나는 겨울 햇살도, 흥청거리는 취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흑백영화는 겨울이 제격이라고 생각해온 우리들에게 <풀잎들>의 가을은 낯설고 기괴하지만, 은근하고 새롭다. 심지어 이 사람들은 북촌 골목에 숨어 있는 카페에 모여들어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영원히 북촌을 맴돌 운명을 타고 난 자들처럼 카페 앞에 심겨진 고무 대야의 여린 잎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간혹 골목 어딘가로 산책을 떠났다가 자신이 앉았던 테이블로 돌아온다. 카페는 홍상수가 펼쳐놓은 죽음과 사랑에 관한 대화의 장, 귀가 밝고 눈이 매서운 자의 관찰기, 가을밤의 술 한 잔을 예찬하는 쓸쓸하고 헛헛한 사람들의 초상이 된다.
Choice
교묘한 시스템을 응시하라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조선호 / 2018-10-12
브리지워터 정신병원에 대한 다큐멘터리 <티티컷 풍자극>(1967)으로 데뷔해 지속해서 공공기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어온 프레더릭 와이즈먼이 이번에는 뉴욕 공립도서관으로 향한다. 와이즈먼이 도서관을 구성하는 방식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양상들을 최대한 다양하게 보여주는 방식이다.
Choice
우연과 감각의 데칼코마니
<춘천, 춘천>
손시내 / 2018-09-27
<춘천, 춘천>에는 보다 많은 우연이 들어있다. 실제로 춘천이 고향인 장우진 감독이 기차에서 우연히 들은 대화를 통해 세랑과 흥주의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영화에 등장하는 마라톤 대회나 불현 듯 등장하는 사마귀의 존재 같은 것들도 모두 우연을 받아들인 결과다.
Choice
소년은 다시 달린다
<린 온 피트>
강소원 / 2018-09-21
<45년 후>의 감독 앤드루 헤이그의 네 번째 영화 <린 온 피트>는 윌리 블로틴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성장 드라마다. 이 영화의 스토리를 요약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것으로는 영화의 매혹과 따스한 기운이 전해지지 않을 것 같다.
Choice
자꾸만 어긋나는
<체실 비치에서>
손시내 / 2018-09-20
해변 근처에 위치한 어느 호텔 방에 플로렌스(시얼샤 로넌)와 에드워드(빌리 하울)가 마주 앉아있다. 이들은 막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다. 저녁 식사가 예상보다 이르게 준비되어 당황스러운 이들 사이에 엷은 긴장이 감돈다.
Choice
내게 돌을 던져라
<죄 많은 소녀>
송효정 / 2018-09-14
<죄 많은 소녀>는 원한과 죄책감을 파고드는 영화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이자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6) 연출부를 지낸 김의석 감독의 첫 장편영화로, 2017년 부산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 및 올해의 배우상(전여빈)을 받았다. 제목에서 특정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은 어느 장면, 어떤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 가는가에 따라 달리 보일 법한 영화다.
Choice
애도와 위로
<봄이가도>
강소원 / 2018-09-13
<봄이가도>는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영화다. 그날 아침 딸과 다투고 여행 떠나는 딸아이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어머니, 선창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한 여학생을 구하지 못한 구조대원, 아내를 잃은 뒤 일상이 무너진 남자의 이야기가 차례로 펼쳐진다.
Choice
비밀의 문, 망각의 탑
<더 블랙>
조지훈 / 2018-09-13
‘국가정보원의 비밀요원’을 의미하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더 블랙>은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경찰의 수사 과정과, 채동욱 검찰총장이 옷을 벗고 윤석열 팀장이 좌천되는 검찰 초유의 사건을 겪으며 진행되었던 검찰 특별수사팀의 수사 과정을 따라가며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사건’을 재구성한다. 재구성의 주된 재료는 제작진이 입수한 2013년 국정조사 당시 경찰이 제출했던 서울시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분석실 내부 CCTV 영상과 국정원 직원의 핸드폰 문자, 경찰의 내부감찰보고서와 제작진이 전직 검사의 증언을 토대로 구성한 배우의 재연 장면이다.
Choice
기적을 만드는 법
심찬양 감독의 <어둔 밤>
조선호 / 2018-09-09
<어둔 밤>은 영화동아리 ‘리그 오브 쉐도우’의 좌충우돌 영화제작 과정을 담은 페이크다큐멘터리다. 덕후들로 구성된 동아리 멤버들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광팬이고, 마블과 DC 영화들에도 심취해있다. 여느 날처럼 안감독(송의성), 심피디(심정용), 요한(이요셉), 조빙(조병훈)은 골방에 모여앉아 각종 히어로 레고를 가지고 노는데, 안감독이 문득 오랫동안 써온 히어로물 시나리오가 있다며 함께 영화를 찍자고 제안한다. 예비군이 주인공인 한국적인 히어로물이다.
Choice
배팅의 규칙
<몰리스 게임>
이후경 / 2018-09-06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소킨만의 미덕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전문직 주인공과 그의 직업적 환경에 내재한 리듬, 그 프로페셔널리즘 드라마를 떠받치는 주인공만의 윤리가 그것이다.
Choice
마고는 어디로?
<서치>
김보년 / 2018-09-05
아니시 샤간티 감독은 인터넷 매체와 SNS 문화에 녹아 있는 익명성과 공격성을 스릴러의 중요한 동력으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연출 방법이 단순한 트릭이 아닌, 필연적인 서사적 장치임을 입증한다.
Choice
다시 노래할 수 있을까
<대관람차>
손시내 / 2018-08-30
백재호, 이희섭 두 감독이 공동연출한 영화 <대관람차>는 서툴고 실수투성이인 우주의 발걸음을 천천히 따라가며 그를 지켜본다. 대정과 우주는 모두 음악에 대한 애정과 꿈을 접어두고 회사에 다니며 현실을 살아가고 있던 인물들이다.
Choice
끝내 살아남은 것은
<살아남은 아이>
손시내 / 2018-08-29
성철과 미숙 앞에 ‘살아남은 아이’ 기현(성유빈)이 나타난다. 죽은 아들이 자신의 목숨 대신 구했다는 아이. 기현의 존재는 부부에게 복잡한 감정을, 아들의 죽음 이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불러일으킨다. 아들이 그의 목숨을 구했으니 성철은 기현의 미래를 지켜보고 도움을 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미숙은 아들의 죽음을 떠오르게 하고 그 죽음의 이유처럼 여겨지는 기현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Choice
빛나는 그림자
<휘트니>
강소원 / 2018-08-27
돌이켜보면, 크레딧 타이틀이 제시되는 동안 휘트니 휴스턴이 들려준 자신의 악몽은 이 거대한 드라마의 전조였다. 엄청난 몸집의 거인에게 늘 쫓긴다는 이야기. 엄마는 그게 휘트니의 영혼을 차지하려는 악마라고 했다.
Choice
진짜 영화는 지금부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김보년 / 2018-08-27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연출작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7)는 좀비와 영화 제작이라는 두 가지 소재를 절묘하게 결합한 코미디다. 이 영화는 다양한 관점에서 보기를 요구하는데, 먼저 좀비물이라는 장르를 중심으로 보면 좀비와 인간의 사투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장르적 즐거움이 도드라진다.
Choice
어른들만 몰라요
<어른도감>
송효정 / 2018-08-27
<어른도감>은 속 깊은 조카와 철부지 삼촌이 펼치는 버디무비다. 과하지 않은 사기극 코미디에 유사가족 드라마가 얹혔지만, 악의 없이 끝내 건강하고 산뜻하다. 가족영화라기보다 고독한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감내해 가는 과정을 응원하는 성장영화라 함이 적절하다.
Choice
거부한 운명, 마주한 운명
<델마>
송효정 / 2018-08-18
오프닝부터 영화는 서늘한 긴장감으로 보는 이의 정서를 강하게 빨아들인다. 어린 델마와 그녀의 아버지가 박빙의 호수 위를 걷고 있다. 수면 아래 헤엄치는 물고기가 보일 정도로 살짝 언 빙판이다. 호수 건너편에 도달한 부녀는 어린 사슴 사냥에 나서고, 의도인지 우연인지 모를 실로 질식할 순간이 지나간다. 호수와 물이 등장하는 영화의 오프닝은 앞으로 전개될 영화의 정서에 대한 암시가 될 것이다.
Choice
종말이 시작됐다
<산책하는 침략자>
김보년 / 2018-08-17
눈길을 끄는 건 공동체의 파국을 그리는 데 있어 누구보다 독특한 상상력과 염세적인 전망을 보여 온 구로사와 기요시가 외계인이 등장하는 본격 지구 종말 서사를 다룬다는 점이다. 유령, 사이코패스, 정신병자 등 일상 속 ‘정상성’의 경계를 뒤흔드는 존재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미래를 서늘하게 묘사했던 기요시의 전작을 봐왔던 관객이라면 그가 지구 종말과 외계인이라는 소재를 택했다는 것만으로 큰 기대를 할 것이다.
Choice
우리는 하나면 돼
<소성리>
정지혜 / 2018-08-17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소성리>를 보기 시작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의 농민, 그 가운데서도 여성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작과 함께 영화는 한동안 여성 농민들이 농사일을 하고 마을회관에 모여 소일거리하며 보내는 일상의 풍경을 보여주는데 충실하다.
Choice
펄떡이는 단독자의 분노
<카운터스>
남다은 / 2018-08-15
모든 혐오와 차별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 영화의 태도라면, 이 영화가 증명하고 싶어 하는 것은 육체적인 돌파력이며, 이 영화의 거침없는 리듬이 구해내는 것은 이 시대, 마블 영화가 아닌 다른 어디서도 마주할 수 없는 반영웅의 진짜 행로다.
Choice
아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22>
손시내 / 2018-08-15
우리가 ‘위안부’ 문제해결과 관련해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은 아마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표현일 것이다. 대부분 80대에서 90대 정도의 노년여성인 피해 생존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보기
Choice
그 누가 십자가를
<매스>
손시내
2022-05-20
Choice
목련 보러 살구 따러
<봉명주공>
차한비
2022-05-20
Choice
사랑을 믿나요?
<파리, 13구>
차한비
2022-05-13
Choice
퇴로는 없다
<크로스 더 라인>
손시내
2022-05-13
Choice
수레바퀴 아래서
<우연과 상상>
김소희
2022-05-06
Choice
왜 이런지 모르겠다
<평평남녀>
차한비
2022-04-27
Choice
기지와 미지
<소설가의 영화>
손시내
2022-04-23
Choice
글의 집, 삶의 터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차한비
2022-04-23
Choice
다락방 민달팽이
<태어나길 잘했어>
차한비
2022-04-18
Choice
재기의 딜레마
<복지식당>
손시내
2022-04-18
Choice
비밀과 거짓말
<나의 집은 어디인가>
손시내
2022-04-08
Choice
이것만 기억해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차한비
2022-04-08
Choice
콜트-콜텍 4464
<재춘언니>
차한비
2022-04-01
Choice
어머니의 모든 것
<패러렐 마더스>
손시내
2022-04-01
Choice
밑바닥 개싸움
<뜨거운 피>
손시내
2022-03-25
Choice
폐허가 묻다
<고양이들의 아파트>
차한비
2022-03-22
Choice
궁정에서 온 편지
<스펜서>
손시내
2022-03-16
Choice
체험된 몸
<레벤느망>
손시내
2022-03-11
Choice
아무도 몰랐던
<소피의 세계>
차한비
2022-03-04
Choice
머라캐도 내 이름은
<보드랍게>
손시내
2022-02-24
Choice
로맨틱 펀치 드렁크
<리코리쉬 피자>
김소희
2022-02-17
Choice
오래 생각한 끝
<온 세상이 하얗다>
손시내
2022-02-10
Choice
바쿠스의 잠언
<어나더 라운드>
손시내
2022-01-22
Choice
빌어먹을, 액션!
<프랑스>
손시내
2022-01-14
Choice
기다려요, 기다려야 해요
<드라이브 마이 카>
김소희
2021-12-22
Choice
영속하는 풍경
<끝없음에 관하여>
손시내
2021-12-15
Choice
그분은 포기하지 않았다
<해피 아워>
손시내
2021-12-08
Choice
이종 변태 광시곡
<티탄>
차한비
2021-12-07
Choice
전쟁 없는 세상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금기에 도전>
변성찬
2021-12-07
Choice
채찍, 신이 허락한 도구
<베네데타>
김소희
2021-11-30
Choice
하늘이 무너져도
<왕십리 김종분>
손시내
2021-11-12
Choice
와일드 스위트 오리건
<퍼스트 카우>
손시내
2021-11-06
Choice
아직은 헤어지지 않기로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차한비
2021-10-30
Choice
환멸의 도시
<사상>
조지훈
2021-10-20
Choice
벼랑 끝에서 유영
<당신 얼굴 앞에서>
남다은
2021-10-20
Choice
다 끝난 거 아니야?
<휴가>
김소희
2021-10-20
Choice
지금이라는 선물
<종착역>
조지훈
2021-09-22
Choice
선의 끝, 악의 시작
<좋은 사람>
조지훈
2021-09-13
Choice
사랑은 왜 끝나나
<박강아름 결혼하다>
차한비
2021-08-19
Choice
뫼비우스 술래잡기
<우리, 둘>
차한비
2021-07-29
Choice
불가피한, 불가능한
<피닉스>
손시내
2021-07-23
Choice
비탈에 서다
<강호아녀>
김준
2021-06-12
Choice
난 정말 이해가 안 돼!
<까치발>
김준
2021-06-01
Choice
비우고 껴안기
<인트로덕션>
손시내
2021-05-25
Choice
교착과 만곡
<혼자 사는 사람들>
차한비
2021-05-18
Choice
폭력의 전이
<어른들은 몰라요>
손시내
2021-04-15
Choice
아직 말하지 못한
<비밀의 정원>
손시내
2021-04-09
Choice
끊임없이 반짝이는
<더스트맨>
차한비
2021-04-09
Choice
세상이 열린다
<자산어보>
정지혜
2021-04-06
Choice
내 싸움입니다
<당신의 사월>
손시내
2021-04-05
Choice
가끔 빛이 필요한 까닭
<아무도 없는 곳>
차한비
2021-04-02
Choice
그녀의 진짜 이름은
<스파이의 아내>
박동수
2021-03-28
Choice
맨몸으로, 온몸으로
<파이터>
정지혜
2021-03-23
Choice
꿈에도 몰랐던
<정말 먼 곳>
손시내
2021-03-23
Choice
사랑의 단층
<암모나이트>
손시내
2021-03-17
Choice
불안과 충동의 무한 격발
<포제서>
손시내
2021-03-11
Choice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
차한비
2021-03-08
Choice
상처의 그림자
<밤빛>
차한비
2021-03-07
Choice
저는 아직 당신을
<라스트 레터>
손시내
2021-03-02
Choice
진실의 움막, 사라진 애도
<빛과 철>
손시내
2021-02-20
Choice
침묵하고, 부정하고
<살아남은 사람들>
차한비
2021-02-10
Choice
난쟁이 선언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손시내
2021-01-29
Choice
바보도 죄인도 아닙니다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정지혜
2021-01-28
Choice
요즘 뭐해?
<요요현상>
김선명
2021-01-15
Choice
동토의 비밀
<미스터 존스>
정지혜
2021-01-10
Choice
온전히 발끝으로
<걸>
차한비
2021-01-05
Choice
영원히 사는 거 아니잖아
<썸머 85>
김선명
2020-12-27
Choice
내가 곧 운명
<운디네>
차한비
2020-12-24
Choice
투명한 시간, 기묘한 리듬
<겨울밤에>
손시내
2020-12-10
Choice
이대론 안 되겠다
<내언니전지현과 나>
김선명
2020-12-06
Choice
여전히 세상은
<담쟁이>
손시내
2020-11-02
Choice
굴레와 고리
<웰컴 투 X-월드>
차한비
2020-10-31
Choice
블랙홀의 그림자로
<도망친 여자>
남다은
2020-09-15
Choice
기도(企圖)와 기도(祈禱)
<나를 구하지 마세요>
차한비
2020-09-09
Choice
실없는 유희, 끝없는 배회
<후쿠오카>
손시내
2020-08-27
Choice
언제든 돌아갈
<남매의 여름밤>
손시내
2020-08-23
Choice
제국의 심장을 폭파하라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김선명
2020-08-21
Choice
말과 삶
<69세>
차한비
2020-08-21
Choice
여기는 절망 1호, 응답하라
<루비>
손시내
2020-08-06
Choice
신의 뜻대로
<소년 아메드>
김선명
2020-07-31
Choice
꿈의 나라에서
<블루 아워>
차한비
2020-07-23
Choice
죽기 전까지 가위바위보
<팡파레>
손시내
2020-07-10
Choice
때가 됐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차한비
2020-07-09
Choice
여태껏 없었던
<욕창>
차한비
2020-07-04
Choice
전쟁 같은
<인비저블 라이프>
김선명
2020-06-28
Choice
지옥에 끌려간 소년
<부력>
손시내
2020-06-26
Choice
욕망을 던지면
<야구소녀>
김선명
2020-06-18
Choice
달리 보면 행복할까
<환상의 마로나>
손시내
2020-06-11
Choice
재난의 삶, 구원의 기억
<프랑스여자>
차한비
2020-06-10
Choice
언약과 학대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
차한비
2020-06-06
Choice
낙인과 상징
<안녕, 미누>
차한비
2020-05-28
Choice
안 들리게 해주세요
<나는보리>
손시내
2020-05-22
Choice
하나씩, 하나씩
<파도를 걷는 소년>
차한비
2020-05-12
Choice
사막의 혈투
<리벤지>
손시내
2020-05-08
Choice
밤을 기억하라
<호텔 레이크>
차한비
2020-05-01
Choice
언젠가 돌아갈
<바람의 언덕>
김선명
2020-04-27
Choice
여름 이야기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손시내
2020-04-16
Choice
주저 말고 스퍼트!
<라라걸>
차한비
2020-04-14
Choice
아주 가끔, 이제 그만
<사랑이 뭘까>
차한비
2020-04-09
Choice
'그것'의 처소
<온다>
정지혜
2020-04-07
Choice
악몽이 아니라면
<더 터닝>
손시내
2020-04-03
Choice
변함없이, 어김없이
<펠리칸 베이커리>
차한비
2020-04-03
Choice
메두사의 선택
<그 누구도 아닌>
정지혜
2020-03-26
Choice
우주가 퐁당
<모리의 정원>
차한비
2020-03-26
Choice
부권 말소 프로젝트
<이장>
김선명
2020-03-25
Choice
오버 더 레인보우
<주디>
손시내
2020-03-25
Choice
매수된 세계, 박탈된 육체
<다크 워터스>
손시내
2020-03-17
Choice
그대가 주인, 어디든 진리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선명
2020-03-07
Choice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링고>
차한비
2020-03-05
Choice
내가 어렸을 때
<기억의 전쟁>
김선명
2020-02-28
Choice
뻔하다고? 미쳤다고? 글쎄~
<하트>
차한비
2020-02-27
Choice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도하는 남자>
김선명
2020-02-20
Choice
오직 예술만이
<작가 미상>
차한비
2020-02-19
Choice
말로 하자니까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
손시내
2020-02-19
Choice
내가 불러낸 우연
<페인 앤 글로리>
손시내
2020-02-06
Choice
걷잡을 수 없는
<성혜의 나라>
차한비
2020-01-30
Choice
알레포에서 온 편지
<사마에게>
김선명
2020-01-27
Choice
점멸하는 시간
<작은 빛>
손시내
2020-01-23
Choice
사랑을 넘어선 사랑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정지혜
2020-01-13
Choice
대지의 심판
<신의 은총으로>
차한비
2020-01-10
Choice
진짜 동물 같은? 진짜 사람 같은!
<해치지않아>
차한비
2020-01-10
Choice
영화는 무엇을 원하는가
<백두 번째 구름>
정지혜
2019-12-30
Choice
오지 않는 내일
<와일드라이프>
손시내
2019-12-30
Choice
노예의 선택
<미안해요, 리키>
정지혜
2019-12-21
Choice
모두가 뒤뚝뒤뚝
<기억할 만한 지나침>
차한비
2019-12-18
Choice
성좌의 본질
<영화로운 나날>
차한비
2019-12-18
Choice
당신의 극장입니다
<라스트 씬>
정지혜
2019-12-16
Choice
비극은 멀지 않았다
<10년>
손시내
2019-12-11
Choice
왜 그렇게 사냐고?
<속물들>
차한비
2019-12-11
Choice
나쁜 엄마, 성가신 딸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손시내
2019-12-09
Choice
이번 정류장은
<이태원>
차한비
2019-12-07
Choice
각성과 응답
<녹차의 중력>
정지혜
2019-12-05
Choice
한낮의 어둠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김선명
2019-12-03
Choice
꿈꿀 수 있다면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차한비
2019-11-25
Choice
격정의 분화구
<시빌>
손시내
2019-11-25
Choice
인류애로 공동선을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정지혜
2019-11-22
Choice
너를 다시 만나면
<윤희에게>
손시내
2019-11-18
Choice
달아나고 싶지만
<영하의 바람>
차한비
2019-11-14
Choice
그녀에게 남은 것
<심판>
손시내
2019-11-14
Choice
카메라를 들어야 했다
<졸업>
차한비
2019-11-10
Choice
차마 보낼 수 없는
<오늘, 우리>
차한비
2019-11-02
Choice
사랑을 삼킨 후에
<경계선>
손시내
2019-10-28
Choice
감각의 질주
<아워 바디>
차한비
2019-09-28
Choice
믿음과 불신의 변증법
<메기>
박인호
2019-09-28
Choice
보이지 않는 세상
<동물,원>
차한비
2019-09-07
Choice
너 돈 많아? 나 흥 많아!
<불빛 아래서>
김보년
2019-09-04
Choice
세상이 일러주지 않은 사랑
<벌새>
차한비
2019-08-29
Choice
내가 지킬 거야
<우리집>
정지혜
2019-08-25
Choice
시간의 집을 찾아서
<이타미 준의 바다>
김보년
2019-08-20
Choice
내 목소리 들리니?
<밤의 문이 열린다>
차한비
2019-08-17
Choice
이상한 콤플렉스, 끔찍한 스캔들
<앨리스 죽이기>
정지혜
2019-08-14
Choice
분명 여기에 유령이 있다
<려행>
조지훈
2019-08-12
Choice
갔다, 꼭 올게
<김복동>
손시내
2019-08-09
Choice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주전장>
김선명
2019-07-25
Choice
정말, 괜찮은 걸까
<한낮의 피크닉>
손시내
2019-07-06
Choice
봉인된 비극
<해피엔드>
손시내
2019-06-24
Choice
저주받은 성자
<행복한 라짜로>
차한비
2019-06-24
Choice
그렇게 한 뼘씩
<보희와 녹양>
차한비
2019-06-02
Choice
마지막 수다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
박인호
2019-06-02
Choice
꿈꾸는 사랑
<우리 지금 만나>
손시내
2019-05-31
Choice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김군>
김선명
2019-05-28
Choice
상상의 평원으로 진격!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김보년
2019-05-25
Choice
패배의 기록, 유령의 역사
<굿바이 마이 러브NK: 붉은 청춘>
김선명
2019-05-08
Choice
당신들은 자격이 없어요
<러브리스>
차한비
2019-04-22
Choice
영원히 흐르지 않는
<한강에게>
김선명
2019-04-08
Choice
아무도 모르게 리셋
박영주 감독의 <선희와 슬기>
차한비
2019-04-02
Choice
진짜 철의 여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김선명
2019-04-02
Choice
시간의 전도, 세계의 변곡
<강변호텔>
남다은
2019-03-28
Choice
환상에서 실재로
<아사코>
강소원
2019-03-19
Choice
포기하지 않는, 포기할 수 없는
<히치하이크>
차한비
2019-03-18
Choice
요즘 애들 아나?
<내가 사는 세상>
차한비
2019-03-09
Choice
왕의 손, 탐욕의 반지
<그때 그들>
김선명
2019-03-09
Choice
내 나이 88, 내 마음 팔팔
<칠곡 가시나들>
손시내
2019-03-01
Choice
그러니까, 누구세요?
<국경의 왕>
차한비
2019-02-26
Choice
그녀가 없다고 상상해봐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송효정
2019-02-25
Choice
어릿광대, 미치광이, 혹은 악마
<살인마 잭의 집>
김선명
2019-02-23
Choice
언제나 떠돌다가 이따끔 마주치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손시내
2019-02-19
Choice
암흑 시대의 사랑
<콜드 워>
정지혜
2019-02-08
Choice
냉소로 겨울을 버틸 수 있을까
<이월>
손시내
2019-01-31
Choice
공백의 파동
<얼굴들>
강소원
2019-01-29
Choice
연민과 재현의 딜레마
<가버나움>
정지혜
2019-01-23
Choice
관조와 음미
<일일시호일>
송효정
2019-01-17
Choice
진실 뒤에 숨다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
손시내
2019-01-16
Choice
이렇게 완벽한 날
<레토>
김선명
2019-01-03
Choice
역사와 기억의 포말
<로마>
송효정
2018-12-20
Choice
살며시 마주보기
<어른이 되면>
차한비
2018-12-12
Choice
오직 진심만이
<영주>
손시내
2018-11-25
Choice
조롱에서 비명으로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
김선명
2018-11-24
Choice
모두가 다 같이 풍덩!
<인어전설>
남다은
2018-11-16
Choice
품지 못할 내 것을 찾아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강소원
2018-11-11
Choice
빼앗긴 진혼곡
<1991, 봄>
손시내
2018-11-04
Choice
비켜, 질문은 내가 한다
<밤치기>
차한비
2018-11-01
Choice
가족이 되는 법
<프리다의 그해 여름>
손시내
2018-10-27
Choice
그림자 골목의 사랑
<풀잎들>
박인호
2018-10-26
Choice
교묘한 시스템을 응시하라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조선호
2018-10-12
Choice
우연과 감각의 데칼코마니
<춘천, 춘천>
손시내
2018-09-27
Choice
소년은 다시 달린다
<린 온 피트>
강소원
2018-09-21
Choice
자꾸만 어긋나는
<체실 비치에서>
손시내
2018-09-20
Choice
내게 돌을 던져라
<죄 많은 소녀>
송효정
2018-09-14
Choice
애도와 위로
<봄이가도>
강소원
2018-09-13
Choice
비밀의 문, 망각의 탑
<더 블랙>
조지훈
2018-09-13
Choice
기적을 만드는 법
심찬양 감독의 <어둔 밤>
조선호
2018-09-09
Choice
배팅의 규칙
<몰리스 게임>
이후경
2018-09-06
Choice
마고는 어디로?
<서치>
김보년
2018-09-05
Choice
다시 노래할 수 있을까
<대관람차>
손시내
2018-08-30
Choice
끝내 살아남은 것은
<살아남은 아이>
손시내
2018-08-29
Choice
빛나는 그림자
<휘트니>
강소원
2018-08-27
Choice
진짜 영화는 지금부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김보년
2018-08-27
Choice
어른들만 몰라요
<어른도감>
송효정
2018-08-27
Choice
거부한 운명, 마주한 운명
<델마>
송효정
2018-08-18
Choice
종말이 시작됐다
<산책하는 침략자>
김보년
2018-08-17
Choice
우리는 하나면 돼
<소성리>
정지혜
2018-08-17
Choice
펄떡이는 단독자의 분노
<카운터스>
남다은
2018-08-15
Choice
아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22>
손시내
2018-08-15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