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길
<불어라 검풍아> 이민지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1-04-14

어느 인물이든 제 옷처럼 입는 것이 배우의 능력이라면, 이민지는 확실히 유능한 배우다. 정작 본인은 “운 좋게 타율 좋은 감독을 만났다”고 손을 내저었지만, 특유의 말간 얼굴은 매번 이물감 없이 영화에 스며들었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계일수록, 자극적인 이야기일수록 이민지의 싱거움은 빛을 발했다. <애드벌룬>에서는 입안에 밥을 욱여넣는 단발머리 고등학생 효정이었고, <짐승의 끝>에서는 악몽 같은 하루를 온몸으로 돌파하는 임산부 순영이었다. <현기증>에서 협박을 일삼는 일진으로 등장했을 때는 지독해 보였고, <꿈의 제인>에서 입을 꾹 다문 가출 청소년이 되었을 때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우울에 빠져 있었다. 무수하게 변신을 거듭한 이민지는 스스로 ‘무채색 인간’이라고 칭했다. 뚜렷한 특징이나 내세울 만한 개성이 없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는데, 자신감마저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이민지에게 연기는 어렵지만 재밌고, 하면 할수록 욕심 나는 일이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완성하지 못할 인물, 이민지는 어딘가에 그런 작품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성공이나 실패라는 결과와는 무관하게 새로움이 늘 자신을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서다. 최근 개봉한 <불어라 검풍아>에서는 판타지 무협에 뛰어들었다. 과거도 현재도 아닌 평행세계에서 이민지는 별다른 소품도 없이 청재킷 한 벌만 입고 마을 당주를 연기한다. 순진무구하면서도 강단 있는 인상은 여기서도 제 몫을 해내며 화면에 생동감과 설득력을 부여한다. <좀비크러쉬: 헤이리> <1승> <공조2: 인터내셔날>까지 숨 가쁘게 달린 후, 모처럼 여유를 만끽하는 중이라는 이민지를 만났다. 소탈하게 웃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모습에서 연기 비결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이민지는 지금까지 그려낸 영화 속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고, 그래서 보여줄 것이 여전히 많다. 

 

 

<불어라 검풍아>(조바른, 2021)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재밌게 찍었다. 저예산 영화다 보니 확실히 시간에 쫓기듯 바쁘게 진행했고,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결정해야 하는 것도 많았다. 배우로서는 안타까운 작품 중 하나다. 애초 구상한 그림과 이야기를 전부 실현하기엔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나는 평행세계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을 지키는 기둥 같은 캐릭터다.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지나가 수동적인 역할에 그쳐서 아쉽다. 스포일러가 될 테니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본래 시나리오에서 지나는 성장하고 변화하는 인물이었다. 아버지에게 자결용으로 받은 단검이 계기가 되어 이후 진정한 당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요한 장면을 찍기로 한 날이 하필이면 크랭크업이었다. 시간은 부족한데 찍어야 할 것은 너무 많이 남았고, 결국 방향을 수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도 무척 미안해했다.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정말 제작 여건상 어려웠던 거니까. 그날은 나뿐만 아니라 안지혜, 박태산 배우도 현장에서 급히 변경된 액션을 소화하느라 많이 힘들었을 거다. 오랫동안 합을 맞추며 액션신을 준비했는데, 새로 짠 액션을 다시 몸에 익혀야 했거든.

 

작년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좀비크러쉬: 헤이리>(장현상, 2020)를 선보였다. 연이어 무협과 좀비라는 이색적인 장르물을 선택했는데, 색다른 장르여서 관심이 갔나.

꼭 그렇지는 않은데, <불어라 검풍아>에서 못한 액션을 <좀비크러쉬: 헤이리>에서 해볼 수 있을까 싶기는 했다. 근데 <좀비크러쉬: 헤이리>도 액션 영화라기보다는 ‘병맛’에 가까워서. (웃음) 그러다가 얼마 전에 <1승>(신연식, 2021)을 만났다. 몸 쓰는 역할로는 끝판왕이었지.

 

어떤 인물인지 소개해달라. 

그건 아직 비밀. 대신 하나는 말할 수 있다. <1승> 시나리오를 읽고 깜짝 놀랐다. 이전까지 신연식 감독님의 전작을 거의 못 본 상태였고, 가장 최근에 본 작품이 <로마서 8:37>(2016)였다. ‘그렇게 진지한 영화를 찍은 감독님이 이렇게 재밌는 코미디를 썼다고?’ 싶을 정도로 내게는 극과 극처럼 다가왔다. 현재 촬영은 모두 마쳤고 편집하는 중이라고 들었다.

<불어라 검풍아>
<좀비크러쉬: 헤이리>

<불어라 검풍아>에서는 두 종류의 세계관이 동시에 작동한다. 의외로 코미디 요소는 거의 없고, 지나와 연희(안지혜)의 관계는 매우 진지하게 그려진다. 

연기할 때도 일부러 웃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평행세계에 등장하는 인물마다 워낙 개성이 뚜렷하잖아. B급으로 갈 때는 정말 작정했다는 듯이 가고. ‘와, 갈 데까지 가는구나’ 할 만큼 어이없는 설정이 난무하는데, 액션 자체는 아주 진지하고 멋지다. 영화도 그런 부분에서 힘을 받는 것 같더라. 

 

본격적으로 액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시나리오 받기 전부터 당연히 액션을 하는 줄 알았다. 액션 영화라고 해서! (웃음) 드디어 나도 검술에 도전해보는 건가 하며 기대했는데, 시나리오에 ‘단검’이라고 나오는 거다.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그래도 이것보다는 긴 칼이지 않을까 했다. 나중에 소품을 받았는데, 심지어 상자는 또 컸다. 열어보니 정말 조그만 단검이 나오더라. “나도 긴 검 들고 싶어요!” 그랬다. (웃음) 욕심은 너무 많이 났지. 친구들이 연습하는 과정도 엄청 진지했고, 현장에서 모니터 볼 때는 다들 미쳤다고 할 정도였다. 누구나 한 번쯤 저런 액션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거다. 

 

운동을 무척 좋아하지 않나. 어릴 적에 수영을 오래 배웠다고 들었다. 인스타그램에 캐치볼 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고, 프리다이빙 자격증도 취득했더라.

좋아하는데 꾸준히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집순이거든. 마음먹고 나가면 이것저것 하면서 돌아다니는데, 안 나갈 때는 정말 아무 데도 안 간다. 집에만 있어도 전혀 갑갑하지 않다. 그러다 나가면 최대한 늦게 돌아오고.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져서 답답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별로. 종일 유튜브랑 넷플릭스를 보면서 지낸다. 절대 소파에서 나오지 않지. 가족이랑 친구한테 연락 오면 “집세 아까워서 여길 비울 수가 없어”라고 한다. (웃음) 

ⓒ이영진 

인스타그램에 영화 계정을 만들었더라. 개인 계정보다 게시글이 4배쯤 많은데, 이렇다 할 감상도 없이 영화 제목만 적는다.

누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물어보면, 딱 떠오르지 않더라. 내가 다이어리를 쓰는 사람도 아니고, 어딘가에 따로 적어두는 성격도 아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기록용으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일 년에 몇 편이나 보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보는 사람마다 ‘나도 이 영화 봤는데’ 또는 ‘난 이건 안 봤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재밌겠더라. 감상평을 남기기엔 깜냥이 안 된다. 영화라는 게 그렇지 않나. 각자 기준이 다르다 보니 나한테는 좋은 작품이어도 누군가한테는 별로일 수 있다. 한 마디 적었다가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의 감상에 영향을 줄까 봐 마음에만 간직한다. 

 

뭔가 하나에 꽂히면 깊게 파고드는 성격이 아닐까 짐작했다. 하루 사이에 ‘비포’ 시리즈를 연달아 보는가 하면, 며칠 동안 주성치 영화만 올리기도 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조지 밀러, 2015) <올드 가드>(지나 프린스-바이스우드, 2020)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제이 로치, 2020) 등 샤를리즈 테론의 최근작을 섭렵하기도 했고.

맞다, 뭘 봐야겠다 싶으면 쭉 이어서 본다. 아무래도 감독보다는 배우에 집중해서 보는 경우가 많다. ‘어쩜 이렇게 연기를 잘할까’ 감탄하느라 정신없지. 특히 외국 배우를 많이 찾아보는데, 확실히 감정을 표현하는 스펙트럼이 넓어서 연기에 도움이 된다. 요즘에는 한국 영화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해외영화를 볼 때 작품 규모라든지 역할과 이야기의 다양성에 자주 놀란다. 지켜보면서 부러울 때가 많다. 저런 작품에 참여하면 진짜 행복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최근에 그런 부러움을 느낀 작품은 뭔가.

주성치 영화를 다시 보면서 새삼 놀랐다. 어떻게 저런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나 싶더라. 누군가를 웃기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이잖아. 나는 울리는 것보다 웃기는 게 훨씬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개그 코드는 천차만별이니까. 그 와중에 주성치는 광범위한 팬층을 가질 정도로 보편적 유머를 구사해냈다. 어찌 보면 되게 유치한데, 시간이 지나도 계속 찾을 만큼 매력 있다. 주성치 영화를 보는 동안, 그런 힘에 관해서 많이 생각하고 배운다.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 

소위 말하는 격정 멜로나 신파극, 공포 영화는 잘 못 본다. 그 외에는 특별한 기준을 세우지 않고 두루 접하려고 노력한다. 시놉시스가 재밌다거나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 작품 위주로 챙겨보는데, ‘이건 무조건 봐야 해’라고 생각하는 편도 아니다.

 

그 계정에 처음 올린 사진은 <리버스 엣지>(유키사다 이사오, 2018) 관람 표인데 일본 극장에서 찍었더라. 여행하는 중에 영화를 봤던 건가.

맞다, 여행하다가 김소이 배우를 만났다. 언니도 마침 여행 중이어서 자연스럽게 동행했는데, 일본 프로듀서인 지인에게 초청받았다면서 시사회에 같이 가겠느냐고 묻더라.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일본 영화를 일본 극장에서 관람한다니. 대사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분위기만으로도 좋았다.

ⓒ이영진 

여행 좋아하나. 

너무 좋아하지. 한 작품을 마칠 때마다 떠나고 싶어지는데, 요즘에는 통 갈 수 없으니 아쉽다. 다만, <1승> 촬영하면서 하도 돌아다닌 바람에 ‘당분간 국내 여행은 안 가도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웃음) 

 

여행으로 작품을 털어내는 건가.

음,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으니 쉬는 시간을 갖자는 마음에 좀 더 가깝다. 다음 일을 기다리는 동안 압박을 좀 덜고 싶기도 하고. 차기작이 정해졌을 때와 아닐 때 완전히 다른 느낌이긴 하다. 작품이 없을 때는 잠깐이라도 모든 걸 잊고 ‘멍’ 때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가고, 차기작이 확정된 다음이면 ‘플렉스 좀 해도 되겠지?’ 하며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다. (웃음)

 

제일 멀리 가본 여행지는 어디인가.

유럽. 단편 <부서진 밤>(양효주, 2010)과 <애드벌룬>(이우정, 2011)이 각각 제61회, 62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 영화제 참석을 겸해서 한 달씩 여행했다. 생각해보면 진짜 어렸을 때다. 지금은 그렇게 여행할 수 없을 것 같다. 혼자 돌아다니기가 무섭기도 하고, 그때처럼 안 먹고 버티기도 어렵다. (웃음) <불어라 검풍아>가 브뤼셀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받았는데, 다들 못 가서 아쉬워했다. 코로나19만 아니라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따라갔을 텐데. 영화제를 핑계로 해외에 놀러 가는 것도 재밌지만, 영화제라는 행사 자체를 누릴 수 없는 상황이라 속상했다. 북적북적한 곳에서 같이 영화 얘기하고 맛있는 거 먹고, 그런 즐거움이 드물어졌으니까.

 

활동 초반부터 출연작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부서진 밤>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기도 했고. 

솔직히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사실 <짐승의 끝>(조성희, 2010)을 찍을 때까지도 연기에 관해 깊이 생각하거나 자신감을 갖기가 어려웠다. 연극을 하고 싶어서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는데, 대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도 계속 뒤처지는 느낌을 받았다. ‘연기가 재밌다는 이유만으로 나서도 될까? 이걸 직업으로 삼았을 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며 막막했다. 다른 진로를 찾아야 하나 싶어서 휴학했는데, 그때 우연히 제안받은 작품이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제작하는 <이십일세기 십구세>(최아름, 2009)였다. 어떤 기대도 각오도 없었다. 그냥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편영화라는 걸 찍어보자는 가벼운 마음이었지.

ⓒ이영진 

원대한 시작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원대했지. (웃음) 심지어 부산 로케이션에 필름 영화였다. 당시에는 필름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NG를 내도 별 부담 없이 다시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날 지켜보는 감독님과 촬영 감독님은 얼마나 속이 탔겠나. 나중에 필름 값이 어마어마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더라.  

 

카메라 연기도 처음이었나.

연기는 물론이고, 현장 경험 자체가 처음이었다.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단편 실습이라고 해도 대개 DSLR로 찍고 하루 만에 완성하는 게 보통이었거든. 운이 좋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작부터 일종의 장벽이 뚫렸던 셈이니까.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을 보면서 충격받았다. 다들 영화에 너무 진심인 거다. 휴학해서 번 돈으로 작품을 찍고, 그걸 다음 학기에 반복하는 사람들. <이십일세기 십구세>를 시작으로 <부서진 밤> <애드벌룬> <세이프>(문병곤, 2013)등 단편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정말 큰 기회였다. 그때 <이십일세기 십구세>를 만나지 못했다면 과연 지금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까 싶거든. 연기하는 내내 즐거웠고, 조현철 배우와 정혁기 감독도 그 현장에서 처음 만났다. 

 

영화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휴학생이었는데, 어떤 경로로 캐스팅 제안까지 들어온 건가.

웃긴 사연이 있지. 당시 필름메이커스 같은 캐스팅 사이트에 사진을 올려뒀다. 사실 나는 완전히 까먹고 있었는데, 어느 날 최아름 감독님한테 문자 메시지가 왔다. 이민지 씨 연락처를 보려고 그 사이트에서 결제까지 했으니, 민지 씨가 맞든 아니든 꼭 답장해줬으면 좋겠다고. (웃음) <짐승의 끝> 캐스팅도 비슷한 식이었다. 그때 난 조성희 감독님이 누구인지, 전작 <남매의 집>(2008)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몰랐다. 프로필도 없어서 디카로 찍은 사진을 보냈을 정도였다. 나중에 감독님이 그러더라. 무슨 자신감으로 디카 사진을 보냈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촌스러움이 마음에 들었다고. 결국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계속한다. 나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학생이었거든.

 

그만큼 연기를 잘했으니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영화제에 가고 또 상을 받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내가 잘해서라기보다는 타율이 좋은 감독님들을 만난 덕분이다. 

 

시나리오를 잘 고른 건 아닌가. 

사실 고른 적이 없다. 들어오는 작품을 웬만하면 다 했다. 물론 그중에는 빛을 못 본 작품도 있지만, 비율로 따지고 보면 확실히 운이 좋았다.

<이십일세기 십구세>
<짐승의 끝>

하지만 <짐승의 끝> 같은 작품을 “아무 생각 없이” 선택했다는 말은 못 믿겠다.

시나리오가 진짜 재밌었다. 언제 또 이런 걸 해볼까 싶어서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남자 주인공이 박해일 선배님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는 ‘아, 위험한데? 발을 빼야 하나?’ 그랬지. (웃음) 처음 리딩하던 날이 생생하다. 위층에서 조감독님이랑 밥을 먹고 있었는데, 선배님이 도착했다고 전화가 오더라. 그때부터 손이 덜덜 떨렸다. 사실 영화를 찍는 동안 너무 신났다. 내가 박해일 선배님과 영화를 찍다니! 평생의 운을 몰아서 쓴 기분이더라. 오죽하면 감독님이 특명을 내렸다. “민지야, 웃지 마. 들뜨면 안 돼.” (웃음) 그 정도로 재밌는 현장이었다. 지금까지도 여러 생각이 드는 작품이고, 다시 찍을 수 있다면 진짜 욕심내서 찍고 싶은 작품 중 하나다. 당시에는 카메라에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도 몰랐고, 영화라는 매체에도 익숙하지 않은 상태였다. 말 그대로 날 것이었지. 한편으로는 아무 생각이 없던 때라 그렇게 연기할 수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그럼 연기와 배우라는 직업을 진지하게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나.

얼마 안 됐다. <응답하라 1988>(tvN, 2015) 끝날 무렵,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왔구나’ 싶더라. 마냥 재미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배우로서 얻는 것도 있지만, 포기해야 하는 것도 생기니까. 일례로 <응답하라 1988>에 출연한 후로는 이전처럼 편하게 수영장이나 목욕탕에 다닐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수영 마치고 샤워하는데, 누가 다가와서 “맞지? 맞잖아?” 하며 아는 척을 하더라. 너무 민망했다. “네,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맞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고 도망치듯 탈의실로 갔다. 근데 거기서도 어떤 아주머니가 “어머, 그 정봉이!”라고 외치며 반가워하시는 거다. (웃음)

 

아니, 이름이라도 제대로 불러주시든가. (웃음) 

그러니까. 영화에 출연할 때는 거의 없던 일이다. <응답하라 1988>을 찍기 전까지는 계속 아르바이트를 병행했고, 두산아트센터에서 하우스어셔로 일했던 적도 있다. 한 번은 커튼콜 끝나고 퇴장 안내하는데, 어떤 관객이 “이민지 배우님 맞으시죠?”라고 묻더라. 그때도 정말 난감했다. 사람들이 전부 쳐다보고. (웃음) 그래도 당시에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한 정도였는데, 드라마는 확실히 파급력이 다르더라. 우습지만 그 수영장 사건 이후로 책임감이란 게 생겼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진짜 연기로만 돈을 벌어야 하는구나 싶었거든. 지금은 좀 뻔뻔해졌는데, 한동안 수영장이나 목욕탕은 아예 못 갔다.

 

<응답하라 1988>을 포함해서 그간 10대 역할을 자주 맡았다. 어려 보이는 이미지 때문에 고민한 적은 없었나. 

처음에는 교복 좀 그만 입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는 입을 수 있을 때 입어야지 싶더라. (웃음) 다행히 같은 학생이라고 해도, 영화마다 주제와 상황이 달라서 고착화 되는 느낌은 없었다.

<세이프>
<꿈의 제인>

그러고 보면 이민지가 영화에서 그려낸 청소년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 괴롭히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말하자면 고약한 상황에 부닥친 인물이 많았다. 

맞다. <현기증>(이돈구, 2014)은 때리는 애가 아니라, 맞는 애로 오디션을 봤다. 일진 역할을 해달라고 연락이 와서 엄청나게 당황했다. “제가요? 누가 봐도 맞는 애처럼 생겼는데요?”라고 하니, 감독님이 “맞게 생긴 애가 때리면 반전이잖아요”라고 하시더라. (웃음) 고마운 작품이다. 내가 머릿속에 그려놓은 나의 이미지를 깨주기도 했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일부러 교복도 안 줄이고 더 모범생처럼 보이려고 했다. 그래야 뒤에서 나쁜 짓 하는 모습이 두드러질 테니까. 

 

실제 이민지의 10대는 어땠나.

성적도 성격도 무난했다. 지금보다 훨씬 내성적이었다. 체육 시간 외에는 존재감이 없는 애였지. 체육을 워낙 좋아했고 체육 선생님도 많이 예뻐해 주셨다. 구기 종목을 특히 좋아해서 피구할 때만 존재감이 생겼다. 애들 사이에서 이름 대신 피구로 통했다. “아, 걔 피구?” 그런 거 있잖아. (웃음) 

 

고등학생 때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연기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중학교 졸업하기 전에 단체 관람으로 연극을 보러 갔다. 커튼콜에서 핀 조명을 받는 배우들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푹 빠졌다.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서서 연기하는 것도 너무 멋있어 보였고. 숫기 없는 성격도 바꿀 겸 고등학생이 되면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리라 마음먹었는데, 우리 학교에 연극 동아리가 없었다. 공부와 관련 없는 동아리는 만들 수 없다고 해서 결국 영어 신문반에 가야 했지. (웃음)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연극열전 포스터를 봤다. 장영남, 김영민 선배님이 출연하는 <햄릿>이 눈에 확 들어왔다. ‘와! 나도 저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더라. 찾아보니 두 배우는 각각 극단 목화와 골목길에 소속된 상태였는데, 극단들은 성인만 단원으로 받았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열심히 검색했다. 그러다가 김영민 선배님이 청소년 극단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엄청난 열정이다.

확실히 뭔가에 꽂히면 파는 기질이 있나 보다. (웃음) 당시 부천에 살았는데 3년 동안 출퇴근하듯 명동 YMCA 극단을 오갔다. 김영민 선배님과 장영남 선배님을 실제로 만났을 때 너무 행복했다. 두 분을 보고 연기를 시작했는데, 이제 배우로서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됐으니까. ‘성덕’이 된 기분이더라. 앞으로 이렇게 도장 깨기하듯 좋아하는 배우를 한 명씩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계속 기회를 엿봐야지.  

ⓒ이영진 

내성적이라고 했는데, 무대에 오른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나 보다. 

연기가 의외로 재밌더라. 근데 무대에서 대사를 한 번 잊어버린 다음부터는 용기가 안 났다. 입시 준비할 때는 안면 마비 증상으로 고생하기도 했고. 아까 말한 것처럼 대학 가서도 힘들었다. 일부러 말이 많은 역할에 도전했는데, 결국 또 한 번 대사를 까먹었거든. 난 진짜 무대 체질이 아니구나 싶었다. 솔직히 후회했다. ‘잘하고 예쁜 애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난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지?’ 체대에 갔으면 적어도 자괴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더라. 학교에서 얼마나 존재감이 없었냐면, 단편영화로 상을 받은 다음에도 알아보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학기 중에 영화제에 갈 일이 생겨서 교수님들께 양해를 구했을 때도 모든 분이 “자네가 연출한 작품인가?”라고 물어보셨다. 내가 연기한다고 생각하지를 못하신 거다. 연기 전공인데! 심지어 입시 시험에서 날 보신 교수님마저! (웃음) <부서진 밤>과 <애드벌룬>으로 상을 받은 후에 복학했는데, 한 후배가 수업에서 그 작품을 틀었다고 알려줬다. 후배가 “거기 나오는 배우가 이 학교에 다니는 07학번 이민지 선배예요”라고 말하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다고 하더라. 교수님도, 학생도.

 

일전에 스스로 ‘무채색 인간’이라고 표현했더라. 존재감이 없다는 말과 연결되는 건가.

딱히 개성 있는 외모는 아닌 것 같다. 홍대 앞에 캐리커쳐 그려주는 곳이 있잖아. 거기 들어가면 다들 나를 그리기 어려워한다. (웃음) 특징이라고 할 게 없거든. 뚜렷한 색깔 없이 밋밋하다는 건데, 어떤 각도에서 보면 장점이라는 생각도 든다. 

 

양면성이 공존하는 얼굴이다. 상처가 있으면서도 단단하고, 무뚝뚝하면서도 여리다. 유난히 스릴러와 잘 어울리는 이유 아닐까.

이 일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봐주는 사람도 없었을 거다. 좋게 말하면 해석할 여지가 많은 얼굴인데, 사실 친구들한테는 우스갯소리로 “나야말로 국정원 요원에 딱 맞는 얼굴이야”라고 한다. 진짜 기억에 안 남고, 아무도 모르게 거사를 벌일 수 있는데! (웃음) 스릴러 좋아한다. 공포 영화도 보는 건 무서운데, 연기하는 건 좋다.

 

신파극이나 격정 멜로도?

신파는 꺼이꺼이 우는 내 모습을 보기가 싫은 거다. “울어라” 하는 타이밍에 눈물이 나면 뭔가 굴복하는 느낌이잖아. (웃음) 멜로도 너무 격하면 오그라드는데,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는 즐겨 본다.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가 <남자사용설명서>(이원석, 2012)다. 시대를 앞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걸 본 계기도 웃기다.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더티혜리>(이요섭, 2012)를 상영했을 때, 이원석 감독님한테 먼저 연락이 왔다. 차기작으로 B급을 넘어선 C급 영화를 준비하는 중인데, 나랑 딱 맞을 캐릭터가 있다면서 한번 만나자고 하는 거다. 미팅하기 전에 부랴부랴 <남자사용설명서>를 봤다. 이후에 실제로 <상의원>(2014) 오디션 기회를 주셨는데 떨어졌다. 내가 생각해도 그날은 연기를 참 못했다. 이렇게 이원석 감독님과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겠구나 싶었지. (웃음) 

 

출연작 중에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캐릭터가 나랑 닮았다고 생각한 작품은 <애드벌룬>. <부서진 밤>은 여러모로 새로운 걸 많이 경험해서 기억에 남는다. 스릴러라는 장르도 처음이었고, 특수분장이나 오토바이를 타본 것도 처음이었다. <꿈의 제인> 역시 감정을 극한으로 몰고 가지만, <부서진 밤>은 장르 특성상 극단의 순간이 훨씬 폭발적으로 드러난다. 정인기 선배님과 피 흘리면서 대화하는 엔딩을 너무 재밌게 찍었다. 재밌다는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한데. (웃음) 일상에서는 연기할 때처럼 극과 극으로 치닫는 경우가 별로 없잖아. 작품을 통해 감정을 발산하고 해소하는 것 같다. 실제로 경험해본 적은 없는 상황이지만, 연기하는 동안에는 감정을 백 퍼센트 이상으로 쓰니까. 영화가 아니라면 내가 언제 금고에 갇혀보고, 지구 종말을 맞이한 임산부가 될 수 있겠나.

ⓒ이영진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한다. 어떤 작품을 만났을 때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나. 

직전에 어떤 작품을 했는지에 따라 다르다. 감정적 소모가 많은 작품을 마친 다음에는 가볍고 재밌는 작품에 끌리고, 담담하게 흘러가는 작품 이후에는 극단적이고 강렬한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 배우로서 욕심이 나는 작품도 분명히 있는데, 선택받는 입장이다 보니 늘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정말 원했던 게 어그러지면 좌절감이 들기도 한다. 푹 꺼지는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그런 기회가 자주 찾아오지는 않으니까. 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욕심은 늘어나는 것 같다.

 

좌절감에서는 어떻게 벗어나나.

요즘에는 화나고 아쉬운 마음을 원동력으로 삼는다. 언젠가 하고 만다! (웃음) 음, 오디션이라는 게 그렇잖아. 배우들은 채용 면접을 매번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백 수천 명이 자리 하나를 놓고 달리는데, 누가 결과를 확신할 수 있겠나. 예전에는 많이 자책했는데, 오히려 축축 처지기만 하더라. 이럴 바에는 분노를 동력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한편으로는 내 욕심에 좀 더 솔직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욕심이 없어도 문제 아닐까. 욕심을 부렸는데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욕심조차 내보이지 않으면 아예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까. 현장에서 만난 선배님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1부터 10까지라고 하면, 일단 겁내지 말고 10으로 질러 봐. 이상해도 괜찮아.” 처음부터 1에서 3 정도만 했다가는 10까지 가는 길이 어려워진다는 뜻이었다. 감정도 올리는 게 어렵지, 내리는 일이 큰 문제는 아니거든. 나한테 무척 힘이 되는 말이었다.

 

<이십일세기 십구세>를 데뷔작이라고 치면, 벌써 연기한지 10년이 넘었더라.

데뷔 시점은 사람마다 기준이 좀 다른 것 같다. 나는 <선암여고 탐정단>(JTBC, 2015)을 데뷔작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진 첫 작품이거든. 내가 독립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출연료를 제대로 지급하는 일도 거의 없었고, 차라리 동료들과 함께 필모그래피를 쌓는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성격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선암여고 탐정단>부터다. “이만큼 돈을 주고 당신을 고용할 테니 그에 맞는 연기를 해야 한다”라는 느낌이었다.

 

‘이민지 배우 특별전’을 직접 기획한다면 어떤 영화를 상영하고 싶나. 

<부서진 밤>, <짐승의 끝>, <현기증>.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영화가 없네. ‘멘탈 붕괴’의 현장이겠다. (웃음)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가볍고 발랄한 인물이 많았는데, 영화는 아무래도 이슈를 많이 녹여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올해 공개를 앞둔 신작은?

<좀비크러쉬: 헤이리>가 곧 개봉한다고 들었다. <1승>은 편집 중이고 <공조2: 인터내셔날>(이석훈, 2021)은 한 회차 촬영을 남겨둔 상태다. 남은 한 해 동안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나고 싶다.

ⓒ이영진 
Interview
혼종의 마력
<생츄어리> 왕민철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2024-06-15
Interview
더 늦기 전에
<늦더위> 기진우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4-05-28
Interview
한동안 외로운, 그토록 쓰라린
<정순> 정지혜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4-04-17
Interview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바람의 세월> 문종택·김환태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2024-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