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보내야 했던 편지
<벌새> 김보라
글 차한비 사진 소동성 / Interview / 2019-08-23

벌새는 새 중에서 가장 작다. 날개를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데, 운동량이 워낙 많기에 꽃의 꿀처럼 영양분이 높은 먹을거리를 찾아다닌다. 꿀을 먹을 때는 공중에 정지한 상태가 된다. 날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쉼 없이 날갯짓을 하면서, 마치 멈춘 것처럼 보이는 자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때 벌새의 날갯짓에서는 크고 웅장한 소리가 난다. 김보라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벌새>(2019)는 정교하게 쌓아 올린 건축물 같다. 땅을 다지고 기둥을 세운다. 벽에는 햇살이 깃드는 창을 낸다. 그 안에 사람이 산다. 오래전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듯 익숙한 얼굴이다. 김보라 감독은 집을 짓듯, 글을 짓고 영화를 지었다. <벌새>의 영어 제목은 ‘House of Hummingbird’다. 벌새의 집. 그곳은 영화 속 은희(박지후)의 집이자, 한때 우리가 살던 집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오늘과 내일을 이어 붙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곳이며, 그때 그 시간을 무심코 흘려보내지 않고 멈춰서 들여다본 눈길이 남아있는 장소다. 작고 부지런한 몸짓들이 모여 완성한 벌새의 집에서, 이제 막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드디어 개봉한다. 요즘 마음은 어떤가.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다 보니 매니징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시기이다. 곧 <벌새>의 시나리오와 다른 작가들의 에세이가 담긴 책도 출간된다. 다음 작품과 관련한 준비나 미팅도 이어지고 있어서 바쁜 것 같기는 하다. 바쁘다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쨌거나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첫 상영이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였으니, 개봉까지 약 10개월 정도 걸린 셈이다. 그동안 국내외 영화제에서 작품상, 촬영상, 연기상 등을 휩쓸었다.

개봉 시기는 배급사에서 괜찮다고 판단한 시기인데, 다행히 영화의 계절과 맞아서 좋은 것 같다. 작은 영화이다 보니 홍보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일부러 개봉 전에 영화제를 많이 갔다. 개봉이 좀 늦어졌지만, 영화제를 통해 미리 화제가 되어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벌새>는 보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성수대교 붕괴와 김일성 사망 등 대한민국에 일어난 특정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해외 관객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자국 역사에 비춰서 생각보다 빠르게 영화를 이해하더라. 영화에는 1994년 한국의 구체적인 상황이 드러나는데, 말하자면 그와 비슷한 경험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탈리아 관객은 최근 제노바 다리가 무너졌던 사건을 떠올리고, 일본 관객은 쓰나미와 지진 등 자연재해를 언급했다. 뉴욕 트라이베카에 갔을 때는 자연스레 911테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공동의 트라우마처럼 남은 기억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성수대교 사건을 모른다고 해도, 은희의 감정에 접속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그 감정은 유년기의 어떤 원형적 감정이기도 하니까. 무엇보다 한 인간이 세상과 만나는 과정으로 영화를 읽어줄 때 감사하더라. 페미니즘 저널인 ‘어나더 게이즈’에서는 <벌새>를 성장영화로 분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 평이 마음에 와 닿았다. 성장영화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용어가 지닌 한계로 가둘 수 없는 영화라는 뜻이었다.

ⓒ소동성

제작과정을 먼저 듣고 싶다. 전작 <리코더 시험>(2011)은 우드스탁필름페스티벌 대상, 미국영화감독조합 학생영화상,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등을 수상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후 첫 장편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리코더 시험>을 마친 다음 여러 대학교와 영상미디어센터에서 강사로 근무했다. 일을 병행하며 2013년에 <벌새>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2014년부터 제작지원에 참여했다. 서울영상위원회, 성남문화재단, 영화진흥위원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의 피칭을 거치며 차곡차곡 돈을 모아나갔다. 애초 시나리오가 길었다. 회차 등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할 때, 돈이 더 많이 모여야 시작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상업영화를 투자하는 회사도 여덟 군데 정도 찾아갔다. 그나마 한 곳이 판권을 먼저 살 수 있다고 해서, 그 돈과 합쳐서 2017년에 촬영에 들어갔다. 후반작업 중에 부족했던 자금은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와 SUNDANCE INSTITUTE를 통해서, 인적 네트워킹 부분은 미국의 독립영화협회(IFP) 등을 통해 조달하기도 했다. 다양한 제작지원의 결과물인 셈이고, 과정 중에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었다.

 

창작자로서 재료를 모으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시나리오 집필은 어땠나.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는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쌓아 나갔는지 듣고 싶다.

감독으로서는 시나리오 길이만큼 영화가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시나리오에 훨씬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까. 지금도 살을 도려낸 것처럼 마음이 아픈데, 내려놓으려고 노력 중이다. (웃음) 초고를 쓸 당시에는 정말 공무원처럼 살았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집 근처 카페로 출근했다. 하루에 적어도 3-5장은 쓰겠다고 마음먹었고, 한 달 반 정도 걸려서 완성했다. 성격이 게으른데도 당시에는 일정표대로 움직였다. 할당량을 쓰고 나면, 보상하듯 맛있는 밥을 먹고 운동을 했다. 원래 운동을 해본 적도 없고 필요성도 못 느끼는 편이었다. 근데 영화를 만들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지난하지 않나. 미치지 않고 제정신을 유지하려면 뭘 해야 하나 싶더라.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했다. 여태 그때만큼 건강하고 에너지가 많았던 적이 없다. (웃음) 초고를 완성했을 때, 카페에서 고개 숙이고 울었다.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온 마음을 다해 썼기 때문에 만족했다. 남의 인정과 상관없이, 내가 이 이야기를 깊이 사랑한다는 걸 느꼈다. 이후 수정이 굉장히 어려웠다. 초고는 최대한 뚱뚱하게 써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검열 없이 써 내려갔는데, 퇴고하며 다이어트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더라. 거의 강박적으로 시나리오 코멘트를 받았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왜 저러나 싶었을 거다. 서울영상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일반인 대상 코멘터리 프로그램까지 포함해서 총 40여 명에게 코멘트를 요청했다. 친구들한테는 정말 엎드려서 절해야 할 정도다. 거의 고마다 읽어주었다. (웃음)

 

강박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코멘트에 집중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완벽주의 기질이랄까,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몸에 익은 태도이기도 한데, 어떤 업무를 잘 수행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과도하리만치 느꼈던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아마도 이 이유가 제일 중요할 텐데,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공동의 서사로 환원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했다. 성별, 국가, 나이, 직업 등 최대한 범주를 넓혀 다양한 분들에게 코멘트를 받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관객 각자 좋아하는 지점이 다르고, 생각보다 아주 작은 디테일에 마음을 열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점이 무척 좋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더한 믿음을 갖기 위해 계속 코멘트를 요청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는 반성을 한다. 당시에는 확신과 불확신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수집한 코멘트가 쌓이고 제작지원에 합격하면서부터는 ‘이제 좀 안심해도 되겠구나’라고 느꼈다. 돌이켜보니, 나 자신에게 모질 정도로 완성도에 집착했더라. 꼭 나만 겪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여성 연출자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한편으로는 이러한 태도가 작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결국 기준은 자기만족 아닌가. 끝까지 내가 만족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점이 제일 중요했다. 기본적인 자세를 유지하되, 지나치게 몰아붙이지 않도록 건강한 정도의 자기 규율을 찾아내고 싶다.

<리코더 시험>
<벌새>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까지 4년 정도가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당시 확보된 자금에 맞춰 영화의 사이즈를 줄이거나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방안도 고민했을 것 같다.

맞다. 주변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시대 배경을 1990년대가 아닌 현재로 바꾸라든가, 중심인물인 은희를 고등학생으로 변경하고 소위 이름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라는 식이었다. 상황이 힘들 때는 그런 조언이 일견 옳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리코더 시험>을 만든 경험이 없었다면, 그만큼 확신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리코더 시험>은 1988년을 배경으로 했고, 5인 가족 중 9살 아이가 주인공이다. 심지어는 필름으로 찍었다. 제정신이냐는 질타도 많이 받았다. (웃음) 학교 수업에서도 주인공을 외동딸로 변경해서 이야기를 집중시켜야 한다는 말부터, 시대극을 완성도 있게 만들기 어렵다는 압박까지 고루 들었다. 결국 학기 중간에 나왔다. 담당 교수님이 학교에서 굉장히 높은 위치에 계신 분이었는데, 그 사건으로 내가 교내 전설이 되었더라. 말로는 한국에서 제작진들이 기다려서 가겠다고 했지만, 다들 진짜 이유를 알았던 거다. (웃음)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이런저런 조언이 쏟아진다. 막상 그 후에 영화를 완성하자 ‘왜 하필'이라는 질문 대신, 1988년 서울 올림픽과 9살 은희의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보여준 구성이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금은 교수님과도 원만하게 사이를 풀었다. (웃음) 올해 뉴욕에 갔을 때, 학교로 초대해서 <벌새>를 상영하고 학생들과 대화하는 자리도 마련해주셨다. <벌새> 제작과정에도 비슷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씀드렸더니, “사람들은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조언을 주지만, 그걸 전부 취할 필요는 없다. 잘 거르고 새겨들어야 한다.”고 하시더라. 선생님 입장에서는 서운하신 점도 있을 텐데, 그렇게 포용해주시니 감사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고집만 내세워서는 안 될 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어떤 조언은 그 사람에게는 적절해 보일지 몰라도, 나와 내 영화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직감적으로 구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벌새>를 만들면서 제일 어려웠던 점이기도 하다. 나는 아는데 상대는 모르겠다고 할 때, 이해시키기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앞으로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언어를 강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받아들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조언도 있다. 실은 등장인물이 두세 명 더 있었는데, 줄이지 않았다면 ‘대환장파티’가 됐을지도 모른다. (웃음)

 

조언을 변별한다는 것은 연출자에게 꼭 필요한 능력 같다. 온갖 만류에도 저예산으로 시대극을 만들었다. <리코더 시험>과 마찬가지로 미술에 공을 들였다는 인상을 받았다.

데이터가 없었다면 흔들렸을 것이다. <리코더 시험>은 일종의 테스트로써 유용했다. 적은 예산으로도 충분히 룩을 구현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자료조사를 정말 많이 했고, 로케이션 헌팅도 고심했다. 나뿐만 아니라 연출부와 미술팀도 열심이었고, 그만큼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 결국 룩을 만들어내는 필수조건은 막대한 돈이 아니라, 제대로 된 장소와 철저한 미술 계획, 그리고 시대를 드러내는 소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컨대 <벌새>에서는 은희가 멘 노란색 베네통 가방이라든가, 거실 소파에 놓인 흰 자수 천과 같은 디테일이 중요했다. 1990년대를 관통하는 이미지로써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복기하고, 그 이미지를 어떻게 재현해나갈지 꼼꼼하게 계획했기에 가능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집과 병원은 1994년을 통째로 옮겨온 듯하다. <리코더 시험>을 스카이아파트에서 촬영한 것으로 안다. 이번에는 어디였고, 촬영 허가는 어떻게 구했나.

영화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되게 많았다. 심지어 스토리보드도 촬영 2년 전에 미리 완성해두었다. 그때는 내 인생이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려나, 하면서 무작정 돌아다니곤 했다. (웃음) 어느 날 우연히 망원동에 갔다가 ‘새서울의원’을 발견했다. 간판부터 범상치 않기에 들어갔더니, 옛날에 지어놓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인테리어부터 커튼 재질과 창으로 드는 햇빛까지 전부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원장 선생님이 예전에 그 병원에서 다른 영화도 촬영한 적이 있다며 자랑스러워하시더라. 속으로 영화인들 정말 귀신같다고 생각했지. (웃음) 아파트는 발품을 많이 팔았다. 대치동과 개포동에 재개발이 들어오지 않아서, 여전히 90년대 풍경을 간직한 곳이 몇 군데 있다. 부자 동네라고는 하지만 외양은 허름한, 이상한 아이러니를 지닌 곳이다. 혼자 그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미도아파트, 주공아파트, 은마아파트 등을 살펴봤다. 미도아파트 뒷길에 햇빛이 잘 드는 숲 같은 공간이 있다. 실제로도 대만 청춘영화 같은 느낌이 난다. 그러고 나서 스태프들이 온 후로 헌팅에 속도가 붙었다. 전체 팀을 꾸리기 전에 소수 연출부와 함께 로케이션 스카우팅을 먼저 진행했는데, 그 친구들이 워낙 연출의도를 잘 이해했기 때문인지 척척 찾아오더라. 서예학원도 스태프들이 찾아낸 곳이다. 왠지 느낌이 괜찮아서 올라가 봤더니 있더란다. (웃음) 다만 아파트 섭외가 쉽지는 않았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는 복도식 아파트 아닌가. 비슷한 느낌의 아파트는 꽤 있는데 복도식이 아닌 경우도 있어서, 두 가지 조건을 맞춰야 했다. 방학 동안 제작부에 합류해서 아파트 헌팅을 전담했던 친구가 있다. 아마 그 친구가 서울에 위치한 모든 아파트를 다 가봤을 거다. 한 달쯤 지나서 보니까 팔이 새까맣게 탔더라. 원래 은마아파트에서 촬영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기적처럼 촬영 기간에 허가가 났다. 나중에 영화 보면서 그 친구가 굉장히 뿌듯해했다. 자신의 그해 한여름을 오롯이 바친 영화이니까.

ⓒ소동성

현장에서는 어떤 연출자였다고 생각하나. 단편과는 규모가 다르기도 하고, 촬영 기간도 훨씬 길어졌다. 연출자로서 항상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얼마만큼 힘을 갖고 어디까지 요구할지 고민했을 듯하다. 본인만의 원칙이 있었다면.

독립영화 중에 아주 우아하고 아름답게 끝난 현장이 있을까. (웃음) 나 역시 괴롭고 고민이 많았다. 현장에서 자기비판도 정말 많이 하게 된다. 그럼에도 ‘아닌데 오케이 하지는 말자'는 원칙은 지켰던 것 같다. 내가 오케이하면, 그 순간 모두가 편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는 영화가 된다.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테이크를 갈수록 다들 힘들어지는 것도 안다. 날은 덥고 체력이 떨어지다 보면, 당연히 감독이 밉게 느껴지기도 할 테다. 나 역시 지켜보면서 힘들었지만, 아닌 걸 옳다고 할 수는 없었다.

 

오프닝이 흥미롭다. 은희는 아파트 1002호에 사는데, 902호 앞에서 문을 두드리며 엄마를 찾는다. 이때 카메라는 아파트 전경을 조망하고, 화면에는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가 지닌 특유의 느낌이 묻어난다. 실내도 실외도 아닌 중간지대이자,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면에서 오히려 새것보다 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은희가 엄마에게 갖는 불안감과 묘하게 연결되는 장면이다.

오프닝을 삭제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웃음) 생뚱맞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내게는 그 낯선 느낌이 중요했다. 은희의 근원적인 공포나 외로움이 엄마와의 관계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은근하게 말하고 싶었다.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엄마가 떠날지도 모른다거나 엄마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은 유년 시절에 공통으로 갖는 트라우마라고 생각한다. 그런 느낌이 영화의 전반적인 기운으로 작용하기를 바랐다. 그 장면을 찍으려고 제작부가 맞은편 아파트까지 갔다. (웃음) 남의 집에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서 줌렌즈로 촬영했다. 그 허락을 받은 것도 기적이었다. 안 될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제작에 들어가자 신기하게 성사된 경우가 더러 있었다.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했나. 가족 구성은 <리코더 시험>과 동일하고 겹치는 배우도 있지만, 영지 선생님과 친구들처럼 새로운 인물도 여럿 추가되었다. 연출에서 보여준 꼼꼼한 면이 배우를 만나고 소통할 때도 발휘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시간이 많다 보니, 오랫동안 여러 배우를 지켜볼 수 있었다. (웃음) 역할 크기와 상관없이, 그 인물과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가 누구일지 고민했다. 예를 들어 서예 학원 원장선생님으로 나온 김미향 배우는 <밀양>(이창동, 2007)과 <밍크코트>(신아가·이상철, 2012)에서 보고 기억해두었던 배우이다. 엄마 역의 이승연 배우와 언니 수희 역의 박수연 배우 역시 여러 작품으로 먼저 만났다. 함께 해주었으면 했던 배우들이 흔쾌히 참여를 결정해주었다. 연출부 의 도움도 컸다. 스태프들 전부 단편을 연출해본 경험이 있기도 해서, 기본적으로 배우를 보는 눈이 밝았다. 몇몇 배우들은 연출부에서 1차 오디션을 진행한 후 후보를 전달받았는데, 좋은 배우들을 잘 추천해주었다. 주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과는 사전에 시나리오를 읽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시나리오 자체가 소설적이어선지, 읽고 나서 자기 캐릭터에 관해서만 말하는 배우가 없었다. 결국 영화로 출발해서 삶을 나누게 되더라. 그때 그 시절을 각자 어떻게 기억하는지, 이 작품이 현재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떠올리게 하는지 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마음이 느껴졌다.

<벌새>
<벌새>

그 가운데에서 박지후 배우가 중심을 잡았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장편 연기는 처음인데도, 캐릭터를 이해하며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차분한 기품이 느껴지기도 했다.

고전적이면서도 우아한 느낌이 있다. 1990년대에 살았다고 해도 어울릴 법한 청소년 같더라. 박지후 배우에게는 캐릭터의 정서와 동기를 이해시키기 위해 질문을 자주 던졌다. 시나리오 순서대로 영화를 찍을 수 없으니, 이전 장면을 되짚어주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 장면 직전에는 어떤 상황이었니? 이 장면에서 은희가 원하는 것은 뭘까? 어떤 연기를 하든지, 이 두 질문은 꼭 했다. 특히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인물에게 자기 욕구와 목표가 있으면, 거기에 따라서 움직이니까.

 

듣고 보니 박지후 배우와 나누었다는 대화는, 극 중 영지 선생님과 은희가 나눈 대화와 닮았다. 영지 선생님은 은희에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고, 왜 좋아하는지 묻는다. 아이, 미성년, 학생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 대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

실제로 내가 중학생 시절에 다닌 한문 학원에 비슷한 선생님이 계셨다. 우롱차를 마시고, 목소리도 저음이었다. 내 생각엔 당연히 운동권이었고, 무엇보다 학생을 아이 취급하지 않았다. 일전에 잡지에서 “고양이를 정말로 사랑하고 존중하게 되면, 더는 고양이를 귀여워하지 않게 된다"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동의한다. 진정 사랑한다면 대상화하지 않을 테니까. 떠올려 보니 그 선생님이 그랬다. 우리를 별로 예뻐하지도 않았다. (웃음) 딱히 친절한 분도 아니었는데,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가 느껴졌기에 좋아했다. 그 경험이 영지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사실 시나리오를 쓸 당시에는 내가 영지라고 생각하며 감정을 이입하기도 했는데, 영화를 만들면서는 영지처럼 멋있기가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웃음) 내 안에 여전히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 은희의 모습을 더 많이 발견했던 것 같다.

 

살다 보면 드물게 그런 사람을 만난다. 아주 짧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살 이야기를 남겨주는 사람. 은희가 선생님에게 쓴 편지 마지막에 “은희 올림”이라고 적는데, 내 눈에는 “벌새 올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안부 인사 같기도 하고, 여기에 없는 사람을 위한 헌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확히 보신 것 같다. 몇 해 전, 영화제 피칭 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서 잠 못 드는 밤을 보냈던 사람들에게 쓰는 편지"라고.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편지 같다고 생각했고, 영화를 통해 그런 느낌이 전달된다면 좋을 것 같다. 내가 손편지를 굉장히 좋아해서, 영화에서도 그 이미지를 편집하지 않고 다 보여주려고 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나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게 되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나 또한 살면서 영지 같은 사람을 계속 만나왔던 것 같다. 그 만남이 길든 짧든, 그가 떠났든 여전히 곁에 있든 영지의 모습을 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를 찾아와주었고, 때로는 내가 영지이기도 했다. 그런 만남, 그리고 그 만남이 주는 행복한 감정이 영화에 반영되더라. 영화를 본 관객들이 영지라는 인물을 좋아할 때, 정말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영지가 비현실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다른 캐릭터들은 나름 리얼하게 그려졌는데, 영지만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는 거다. 지금의 평가는 당연히 김새벽 배우가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고, 한편으로는 정말 사랑이 넘치고 막힘없이 소통하는 관계는 본래 비현실적인 느낌을 지닌다는 생각도 든다. 도망치고 싶어질 정도로 아름다운 관계가 있지 않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이 관계가 이상에 가까울수록 불안이 찾아오는 것 같다. 끝날까 봐, 깨질까 봐, 떠날까 봐 달아나버리고 싶은 그런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중이고, 비현실적이라고 할 만큼 완벽하게 아름다운 사랑을 현실에서 느꼈기 때문에 영화에 반영할 수 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내 삶에서 만난 영지의 얼굴을 한 모든 사람에게 바치는 편지이기도 하다.

ⓒ소동성

엔딩에도 편지가 등장한다. 영지가 쓴 편지와 수학여행을 떠나는 은희의 모습이 교차하는데, 어떻게 영화를 맺을지도 많이 고민했을 것 같다.

은희라는 개인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그룹에 속한 인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자기 안의 고통에 빠진 아이가 자신과 거리를 두며, 세상과 만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편지는 너무 감상적인가 싶어서 넣을지 말지 고민했다. 하지만 영화가 전반적으로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다 보니, 한 번쯤은 감상적이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새벽 배우가 건조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로 읽어준 덕분에 좋은 장면을 완성할 수 있었다. 직접 쓴 대사인데도, 나 역시 볼 때마다 마음이 움직인다. 힘들 때면 편지의 어느 구절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김새벽 배우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박수연 배우는 그 편지를 갈무리해서 가지고 다닌다고 하더라. 왜인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 고마웠다. 스크립터를 했던 친구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 함께 갔을 때 “영지 선생님이 편지에 쓴 것처럼 정말 기쁜 일 힘든 일 다 있던 작품인데, 지금 여기에 있으니 참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서로 붙들고 운 시간이 떠오르면서 ‘와, 정말이네’ 싶더라.

 

은희와 영지를 포함해서 모든 캐릭터에 빛과 그늘이 공존한다. 부모는 사랑에 여력이 없거나 무능하고, 아이들에게 관심은 동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은희는 남자친구와 단짝에게 배신을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 각자 힘들고 외롭다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분량 때문에 수희가 등장하는 신을 많이 걷어냈고, 아빠와 오빠 이야기도 축소되었다. 아플 정도로 아쉬움이 남지만, 그나마 가능한 러닝 타임 안에서 캐릭터의 빛과 그늘을 다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어떤 인물이 한없이 나쁘게 보이지는 않기를 바랐다. 예를 들어 아빠가 혼자 춤을 연습하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운 동시에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엄마는 대개 무관심하고 우울해 보이지만, 일할 때는 손님에게 친절하고 이후 은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감지해내기도 한다. 신마다 캐릭터들이 각자 몫을 다하는지, 입체적으로 그려지는지 확인했다. 캐릭터 성격과 감정을 그래프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시나리오 작업 시 인덱스 카드를 만들어서 장면 배열을 바꿔보기도 했다.

 

아빠와 오빠는 남성 권력을 대표한다. 영화는 그들을 통해 가부장제의 폭력성과 더불어, 가부장제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 또한 드러낸다. 인물을 단죄하기보다는 구조를 보여주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자칫하면 폭력을 희석한다거나 가해자에게 핑계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부분이라, 표현에 관해서는 고심했으리라 짐작한다.

물론 고민이 많았다. 궁극적으로 가부장제 내에서 그 누구도 승자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남성 역시 피해자라는 이야기를 교과서적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합리화나 가해자 편들기처럼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남성을 보듬으려고 했다기보다는, 모든 캐릭터를 한 인간으로서 바라보았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내가 만든 인물이기에, 나부터 그들을 사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내 가족으로부터 출발한 영화이고, 내가 가족들을 이해하고 깊이 사랑하게 된 후에 쓴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던 것 같다. 개인적인 서사와 맥락을 녹여 냈다 보니, 인물을 단선적으로 그릴 수가 없더라. 물론 가부장제 이슈에 집중해서 영화를 만든다면, 톤이 달라지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벌새>는 일정 부분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해하는 맥락을 지우지 않고 가야 했다.

<벌새>
<벌새>

<벌새>는 국가 위기나 사회 이슈를 뉴스에 대서특필된 사건으로 정리하는 대신, 개인의 삶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보여준다. 영화를 구성하며 어떤 부분에 집중했나.

시나리오 수정 단계에서 구조를 촘촘히 만드는 과정을 거쳤고, 어느 타이밍에 어떤 뉴스를 배치할지도 고민했다. 실제 타임라인과 극의 흐름이 일치해야 했기에 관련 조사도 철저하게 진행했다. 서스펜스를 위해 병원 등 시퀀스를 추가하기도 했다. 병원에는 몇 번 가고, 언제 큰 병원에 갈지 시나리오적으로 계산을 거친 부분이다. 등장인물도 워낙 여럿이기에 각각 언제 등장하고 퇴장할지도 정리해야 했다. 어떤 이들은 ‘영화가 너무 잔잔해서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나름 굉장히 밀도 높은 계산과 고민을 거친 결과이다. (웃음) 수학적인 과정을 통해 시퀀스를 배치하고 편집해나갔다.

 

현재 영화 러닝 타임은 2시간 18분이다. 처음 편집했을 당시에는 어느 정도였나.

첫 가편집본이 3시간 30분 정도였다. 총 편집 기간은 9-10개월 정도이다. 최초 작업은 15분 편집하고, 함께 리뷰하고, 오케이 컷 고르는 일이었다. 나와 편집 기사, 그리고 편집 어시스턴트까지 셋이서 오케이 컷을 골라냈는데, 그것만도 거의 두 달 가까이 소요됐다. 컷을 구별한 다음, 토론하는 시간도 길게 가졌다. 영화가 단조롭지 않도록 최대한 괜찮은 테이크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어떤 장면은 앞과 뒤를 다른 테이크에서 잘라 와서 이어 붙이기도 했다. 거의 프랑켄슈타인 같았다. (웃음) 신이 많다 보니 표로 정리해보기도 하고, 신마다 사진을 출력해서 보드에 붙인 다음 배치를 변경해보기도 했다. 컷의 연결이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했던 것 같다. 현재 신에서 다음 신으로 넘어갈 때 추동력이 있어야 하지 않나. 계속 약하게만 붙으면 재미가 없으니, 리듬을 만들어내야 했다. 여러 번 돌려보면서 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정말 더는 못 보겠다 싶을 때, 편집을 끝냈다. 끝냈다기보다는 멈췄다고 표현해야 맞다. 볼 수 있는 에너지를 다 써버렸더라.

 

서사가 갖는 힘이 큰데, 그에 못지않게 촬영도 눈에 들어온다.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애정을 담은 시선이 느껴진다. 촬영감독과는 어떻게 작업을 결정하게 되었나.

<줄탁동시>(김경묵, 2012)에서 강국현 감독의 촬영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외국인처럼 타자의 시선으로 서울을 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벌새> 역시 서울을 낯설게 들여다보기 때문에, 잘해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서는 기사마다 촬영이 훌륭했다는 이야기를 빠짐없이 언급한다. 프리 프로덕션이 짧았음에도, 촬영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잘 이해하셔서 진행이 수월했다. 속으로 ‘정말 될까?' 했던 샷도 어김없이 만들어주시더라. 공간 여건상 각도가 나오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촬영 감독님이 카메라를 놓은 위치에서 확인하니 괜찮은 앵글이 잡혀서 놀랐다. 나는 기본적으로 픽스를 선호하고 무브먼트를 주지 않는 편인데, 이번 영화에서는 촬영 감독님이 무빙샷을 많이 제안해주시기도 했다. 은희와 영지가 학원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도, 본래 픽스를 계획했던 장면이다. 촬영 감독님 말대로 무빙을 해보니, 로맨틱한 느낌이 더해지면서 훨씬 좋더라. 감독님이 촬영하며 조명까지 직접 다루셨다. 덕분에 가능한 한 자연광을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은희가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춤추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박지후 배우의 연기뿐만 아니라, 카메라 앵글부터 베란다에 놓인 식물 위치까지 조화롭다.

나도 그 장면을 되게 좋아한다. 미술감독님이 아파트를 돌아다니면서 식물을 공수해오셨다. (웃음) 1990년대 아파트를 떠올려 보면, 베란다를 가득 채운 화분들이 떠오른다고 하시더라. 그곳이 사실 빈집이고 베란다도 없었는데, 미술팀이 힘을 모아서 베란다를 만들어냈다. 미술 감독님이 본가뿐만 아니라, 우리 집까지 찾아가서 액자 등 소품을 챙겨 오시기도 했다.

<벌새>
<벌새>

영화감독이라는 호칭이 어색하다고 말한 적이 있더라. 첫 장편 개봉을 앞둔 지금은 어떤가. 사실 영화를 늦게 시작한 편은 아니다. 동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0대 때부터 영화감독을 어렴풋하게나마 꿈꾸었다는 뜻인데.

계원예고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당시 어떤 포부나 계획을 갖고 선택했다기보다는, 인문계로 진학하기가 너무 싫었다. (웃음) 덕분에 10대 때 형편없을지언정 시나리오를 써보았고, 기초적인 연기를 배우기도 했다. 대학에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영화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때 배운 것들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한다. 그러길 바라고. (웃음) 왜 영화감독이라는 호칭이 어색했는지 생각해보니, 작업이 내게는 일종의 테라피였다는 느낌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감독으로서 혹은 감독이 되려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내 삶의 지향과 맞지 않는 듯하다. 앞으로 계속 만들어나가다 보면, 그 호칭이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싶다.

 

유학을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애초 한국에서 대학원을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한 군데 응시하긴 했는데 다행히 불합격했다. (웃음) 유학은 여러 가지 면에서 스스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었더라면, <벌새>를 만들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물리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에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영향을 준다. 먼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한국과 그곳에 머무는 기억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 점이 작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감독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흔히 잘 모르는 타자를 신비화하거나 악마화하며, 어떤 전형성에 빠지기 쉽지 않나. 실제로 만나고 관계를 맺으면서, 내 안에 있던 편견과 오해가 와장창 부서지는 과정을 거쳤다. 인종, 출신국가, 성 정체성 등 전부 다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으로서 공통된 욕망을 지녔더라. 일반화는 위험하지만, 적어도 어떤 원형적인 감정은 공유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거 인터뷰에서 여성 연출자로서 지향할 롤모델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제 본인이 그런 선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계 내 미투가 시작된 후, 성평등한 영화 현장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현장에서는 어떤 것을 체감하나.

그런가, 약간 억울하기도 하다. 롤모델을 가질 기회도 없이, 이제 겨우 첫 영화를 만들었다. (웃음) 실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무척 감사하면서도 민망해진다. 아직 롤모델까지는 아닌 것 같다. 다만 내가 느끼기에도 혁명적인 시기를 통과하는 중이라는 건 분명하다. 많은 영화제에서 여성 감독이 만든 작품이 절반을 차지했고, 영화제도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며 기사화했다. 궁극적으로는 기사조차 필요 없는 시대가 와야 하지만, 제도적으로 노력하고 갖춰나가는 것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물론 성별로만 이야기할 수 없는 면도 있다. 그럼에도 심사위원 구성이 달라질 때, 상영하는 작품에도 차이가 생겨나는 것은 사실이다. 변화하는 시기에 첫 영화를 공개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리코더 시험>부터 <벌새>까지 꼬박 10년이 지나갔다. 차기작은 어떻게 준비 중인가. 한동안 유년을 다루는 작품을 만들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우선 내가 쓴 작품을 연출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감사하게도 <벌새>를 완성한 후에 시나리오를 여러 편 제안 받았다. 그중에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 작품이 나에게 온다면, 삶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기적이 될 것 같다. 다시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간이다. 동시에 일단 지금은 개봉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문득 모든 일이 끝나고 쉬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는데, 아쉬움이 없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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