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신작 <강변호텔>(2018)의 개봉에 맞춰 배우 권해효에게 만남을 청했다. <강변호텔>에서 권해효는 시인 고영환(기주봉)의 아들 경수로 등장한다. 어느 겨울날 경수는 동생 병수(유준상)와 함께 격조했던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강변의 한 호텔로 간다. 영환은 두 아들을 앞에 두고 자신이 꼭 죽을 것만 같다며 유언과도 같은 말을 전하는데 아버지의 말이 언젠가 천상의 시가 될지도 모를 지상의 아름다운 말인 것만 같다. 권해효는 <다른나라에서>(2012)를 시작으로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5),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6), <그 후>(2017)를 거쳐 <강변호텔>에 이르기까지 홍상수 감독의 근작에 꾸준히 함께하는 배우다. 특히 <그 후>는 <진짜 사나이>(1996) 이후 권해효가 오랜만에 영화 전체를 온전히 감당하는 역할이었다는 점에서 그에게도 남다른 작품이었으리라 짐작한다. 홍상수 감독과 작업한 배우들의 많은 경우가 연기의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한 걸 기억하기에 만약 권해효에게도 그런 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지 물어보고 싶었다. 배우의 습속, 촬영 당시 배우의 상황과 상태가 영화의 방향과 색깔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게 홍상수 감독의 작업이라면 권해효의 경험과 말을 빌려 그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권해효에 관해서라면 배우로서뿐 아니라 그가 오랫동안 독립영화와 맺어온 인연과 시민단체 활동 역시 말해야 한다.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18년째 맡아왔고 특히 지난해에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신인 배우를 발굴하는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 제안해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재일본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인 모임인 시민단체 ‘몽당연필’의 대표이기도 하다. ‘몽당연필’에서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우리 학교>(2006)의 김명준 감독은 “일반 회원들에게 누구보다 가까운 대표로서, 스케줄만 허락된다면 크고 작은 일에 절대 빠지지 않는다. 이 분의 활동 스펙트럼이 어디까지일지 나조차 궁금하다”고 말한다. 2002년부터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홍보대사로, 2004년부터는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시민단체 ‘겨레하나’의 홍보대사로도 연대해왔다. “이름만 올려두는 건 적성에 맞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할 뿐이다.” 권해효는 담담히 말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정확히 알고 꾸준히 해나간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1990년 연극 <사천의 착한 여자>로 데뷔한 이후 지금껏 권해효가 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해나갈 그 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해 들어보려 한다.
<강변호텔>은 개봉하고 처음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극장에서 보기 전까지 작은 모니터로 편집 본을 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 후>(2017)도 2017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봤고요. 지난해 3월부터 4월 초 보름여 간 찍은 장률 감독의 <후쿠오카>(2019)도 현장편집 본을 안 봤어요. 편집실에서 전화가 와 한번 보겠느냐고 해도 됐다고 하고 후시녹음 하러 갔을 때도 끝까지 안 봤죠. 같이 출연한 (윤)제문이가 (성대모사를 하며) “아니, 형은 왜 안 봐?”라고 물을 정도였어요. (웃음)
완성된 <강변호텔>을 보니 어떠셨습니까.
홍상수 감독 영화의 제작 방식이 언제나 그렇듯 현장에 가서야 내가 맡은 역할이 뭔지 알게 되죠. 다행히 내가 현장에 간 날이 첫 촬영일이라 대략적인 틀은 알았어요. 그런데도 송선미, 김민희 씨(영화에 이들이 맡은 배역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크레딧에는 연주와 상희다)가 나오는 부분은 거의 모르고 찍었죠. (기)주봉이 형과 (유)준상이와 내가 나오는 장면 중심으로만 알고 찍었고 그 앞뒤는 상황은 모르고 진행했어요. 그러다 마지막 장면의 대본을 받았는데 사실 좀 충격적이었어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룬 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이후 처음 아닌가요. ‘홍상수 감독도 나이 들어가나?’ 싶더라고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생각했죠. 기주봉이라는 60대 중반의 배우를 중심에 두고 감독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고 또 뭘 보여줄 수 있었을까. 자연스레 죽음을 떠올렸을 거예요. 홍상수 감독은 함께하는 배우의 상태에서 출발하니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야기는 아닌 거죠.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이후,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의 작은 변화들이 내게는 크게 느껴져요.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6)를 보다가도 정말 깜짝 놀랐어요. 아름다워서요. <강변호텔>을 두 번째 볼 때 미세하게 흔들리는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죠. 홍 감독이 촬영 때마다 하는 말이 있어요. “카메라는 늘 땅에 뿌리를 박고 있어야한다.” 이번에도 고정 카메라이긴 하지만 어깨에 걸고 찍어서 생기는 미세한 떨림이 있죠. 이번엔 왠지 그게 강하게 느껴져요. 내레이션 아닌 내레이션도 그렇고요. 의도된 것인지, 제작 환경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면에서 새로웠어요.
영화 시작과 함께 홍상수 감독이 직접 본인 음성으로 이 영화의 촬영 시기와 출연 배우 등을 언급하는 것도 한 예가 될 수 있겠네요.
영화 후기를 쓴 블로그나 댓글을 보니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주봉이 형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홍상수 감독의 육성을 들어본 적 없는 관객이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재밌던데요. ‘자, 지금부터 옛날얘기 하나 해줄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고 우화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 후> 땐 홍상수 감독이 전화를 걸어와 “너하고 작품을 하고 싶어”라고 말해서 큰 역할이구나 짐작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전화를 받으셨습니까.
“시간 있니?” (웃음) 준상이야 극 중에서 영화감독이라고 나오니까 자신이 뭘 하는 사람인 지 알고 연기했지만 나는 뭐 하는 사람인지조차 안 나와요. 나도 감독에게 묻지 않았고요. 내 스케줄 문제는 없었어요. 다만 세 번째 촬영을 앞둔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사이 상당히 많은 눈이 온 거예요. 당일 오전까지 내렸어요. (김)민희가 머물던 호텔 방 신을 다 찍은 다음 날이었어요. 이걸 어떻게 하려나 했더니 완성된 영화처럼 그렇게 돼 있었어요.
이번에는 분량이나 대사가 많은 역할이기보다는 영환의 말을 듣고 반응하는 위주입니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갔어요. (웃음) 배역에 대해선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요. 그렇다고 홍상수 감독의 현장에서 배우가 신을 만들어갈 때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에요. 이번 촬영에선 테이크가 여러 번 가는 경우가 많았고 한 신을 찍는 데 4시간씩 걸리기도 했죠. 영환과 경수는 오랫동안 떨어져 산 부자잖아요. 경수는 부자지간이니까 아버지에게 신경을 써야 해, 라는 책임감은 있을지 몰라도 아버지에게 살가울 수는 없는 아들이에요. 그 정도 거리를 유지했죠. 무엇보다 기주봉 선배 대사가 많다 보니 나와 준상이가 그 신을 함께 맞춰가는 게 급선무였어요. 주봉 형이 원래 대사를 잘 외우는 편이 아니거든요. (웃음) 평소 같으면 각자가 생각하는 자기 리듬이 있어 그걸 고민했을 텐데 이번에는 온전히 주봉이 형에게 집중해야 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게 좋더라고요. 주봉이 형이 정말 ‘열심히’ 대사를 생각해 한 마디씩 던지면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걸 받았죠. (웃음) 어느 날 아버지가 뜬금없이 아들들을 불러서 뭔가 화두처럼 한마디 한마디를 던지는 극중 상황과도 비슷했죠. 중심 사건을 두고 그 흐름을 쫓는 식이면 대사 외우기는 편할지 모르지만 이 영화는 그런 식이 아니니까요.
기주봉, 유준상 배우와의 인연은 언제부터였습니까.
주봉이 형과는 1980년대 후반부터 알고 지냈고 내 영화 데뷔작인 이장호 감독의 <명자 아끼코 소냐>(1992)에도 함께 출연했어요. 당시 사할린에서 40여 일간 함께 머물며 촬영했죠. 그 이후 가끔 드라마에서 만나긴 했지만, 대사를 주고받을 일은 많지 않았고요. <그 후> 때도 형이 택시 기사로 목소리 출연만 했으니까요. 주봉이 형과 내가 10살 차이인데 생활이나 말, 생각의 템포로 보면 정서적 차이는 20여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부자지간인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요. 준상이 하고는 <다른나라에서>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 이어 세 편을 같이 했네요. 누가 그러던데요? 둘이 닮았다고. (웃음) 근데 정작 홍 감독은 우리가 안 닮았다고 생각하는지 이번 영화에서 병수가 그러죠. “형하고 나하고 참 안 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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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유준상과 친구 사이로 나왔는데 이번엔 형제지간입니다.
어떻게 보면 다 연결된 거 같아요. 이혼한 경수는 <그 후>의 봉완의 그 후 같고, <풀잎들>(2017)에서 잘 곳을 찾아 헤매던 남자는 <강변호텔>의 고영환 시인이 돼 강변의 한 호텔에 머물지만 여기서도 곧 떠나야 하는 처지죠. 홍상수 감독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한때 (김)의성이랑 그런 얘기도 했죠. “저 양반 사무실 책상 밑에는 숨겨둔 계획표가 있을 거야!”
홍상수 감독은 배우의 평소 습(習)이나 특성, 촬영 당시의 상태나 상황을 얼마간 영화에 반영하는 듯 보입니다. 그만큼 어떤 배우와 작업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색깔이 달라지는 것 같고요. 권해효가 연기한 경수는 어떤가요.
경수, 병수는 홍 감독이 배우 자체에서 뭔가를 가져왔다기보다는 감독이 딱 영화에 던져놓은 캐릭터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편하게 연기한 면도 있어요. 경수가 견지하는 태도는 있겠죠. ‘난 엄마 아빠를 다 알아, 다 징글징글한 것들이야’ 같은. 반면 병수는 어린 나이에 엄마의 양육을 받고 자라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마음이 있을 거고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병수와 결혼 후 이혼한 경수가 아버지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나 이해의 폭도 다를 거예요. 홍상수 감독 영화의 출발에는 배우가 있어요. 배우에 따라서 영화의 톤이 바뀌죠. 같은 지질남이라도 (이)선균, (정)재영, 준상이가 연기하는 지질남이 다르고 영화 전체의 느낌까지 달라져요. 물론 그에 따른 영화적 장치도 변하겠지만요.
그렇다면 본인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어떤 유형인가요.
다른 인물들보다는 덜 지질하달까요. 하하하. 질문을 받으니까 생각해보는 건데요, 홍 감독 영화에서 남성들은 집단이나 조직에서 튕겨 나온 사람들 같아요. 물로 교수 직함을 가진 인물도 있지만요. 거리를 헤매는 인물들로 자신만의 시간은 많은데 그 시간이 생산적인지는 모르겠는 거죠. 그에 비해 내가 해온 역할은 사회성이 여전히 있는, 일상과 사회에 발 한쪽을 담그고 있는 사람, 그곳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는 않은 인물 같아요. <그 후>에서의 인물도 출판사 사장으로서 끝없이 책을 만드는 일을 하잖아요.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는 건 누군가와 관계 맺고 소통해야 하는 인물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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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호텔>에서 영환은 두 아들과 마주 앉아 자신이 지은 두 아들의 이름 풀이를 한참 합니다. 권해효라는 이름의 뜻이 궁금해졌습니다.
(만년필을 꺼내 직접 한자를 적어가며) 해(海)에 성낼 소리 효(虓)입니다. 아버지께서 지어주셨어요. ‘효’자를 보면 아홉 구에 범 호가 있어요. 바닷가에 아홉 마리 호랑이가 있으니 소리가 꽤 크겠지요. 우리 형제가 2남 2녀인데 해자 돌림으로 기, 욱, 랑, 효에요. 이름만 들었을 때 성별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게 좋아요. 발음하기 어려워 형제들이 어릴 땐 이름에 콤플렉스가 있긴 했죠. 그래서 다들 자식을 낳으면 이름을 쉽게 짓자 했어요. 내 첫째가 유진, 둘째가 지인이에요.
<그 후>에서 아내이자 배우 조윤희 씨가 극 중 아내로 등장해 봉완을 “유진 아빠”라고 부르던 게 생각납니다.
장인 장모와 함께 사는데 아내가 아버지를 할아버지라고 하고, 나를 아빠라고 불러요. 내가 항상 묻죠. “아니 왜 내가 당신 아빠야?” 아내가 아이들 기준으로 그렇게 부르는데…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권해효 배우가 많이 취하는 포즈가 있어요.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푹 찔러 넣고 서 있는 모습이에요. 귀찮다는 듯 상황을 관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본인은 상황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듯한 몸짓이에요. 실은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했는데도.
습관이에요. 내겐 아주 편한 행동이고요. 나도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우리 사회의 위계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인지 나보다 나이가 좀 있다거나 무슨 자리다 싶으면 어릴 때부터 일부러 더 그랬어요. 영화제에서 사회를 볼 때도 주머니에 손을 넣곤 하죠. 정말 존경하는 분이 아닌 이상 고개 숙여 악수하지 않습니다. 습관적으로 얼굴도 자주 만져요. 어쩌면 홍상수 감독도 나에게 익숙해지고 나도 홍 감독에게 익숙해진 걸 수 있는데요. 홍 감독과 처음 작업할 때만 해도 이런 내 습관을 보고 감독이 인위적인 느낌이 든다, 연기의 클리셰 같다는 얘기를 한 적도 있어요. 나 역시 그 당시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렇게 한 것도 있을 거예요.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의 자연스러움이란 특별한 의미가 없는데 말이죠. 관객들이 아무 사건도 없는 개인 간의 사적 대화를 열심히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건 뭘까요. 관객들이 영화에서 자연스러움이나 일상을 기대하진 않겠지만 반대로 그런 게 드러나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게 우리의 삶인걸요. 많은 영화가 예측 가능한 말과 행동을 하며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하죠. 그런데 홍 감독 영화는 다음 장면에서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어요. 일상도 그렇잖아요. 당장 이 문밖을 나서도 뭐가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배우는 그 신에서 그저 집중하는 게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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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홍상수 감독을 두고 연기의 핵심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감독이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배우가 그와의 작업에서 정말 진실한 연기를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장담할 수 없어요. 다만 홍 감독의 제작 환경에서 배우는 딴짓 할 여지가 없어요. 상대 배우의 말을 듣고 본인의 것을 정확하게 해내는 데만 집중해야 하죠. 그러다 보면 자연인 권해효가 됐든 극 중의 경수가 됐든 바로 그 상태로서의 내가 그곳에 있게 됩니다. 홍 감독은 배우에게 그 집중을 요구하고 배우가 자기 앞에 주어진 것을 열심히 수행하길 바라죠. 그런 면에서 홍 감독과의 작업은 내가 뭘 해냈다는 의미의 즐거움보다는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 데서 오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 본 연기 중 인상적인 경우가 있었나요.
연기 전공자들끼리도 서로의 연기를 두고 얘기를 잘 안 해요. 아무리 친해도 상대 연기의 잘못된 지점을 얘기해야 할 때가 오니까요. 대신 좋은 연기를 볼 때의 기쁨은 적극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어느 가족>(2018)의 안도 사쿠라의 연기가 감동적이었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서 배우의 힘을 느낀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안도 사쿠라의 연기는 정말 최고였어요. 영화 후반으로 갔을 땐 그녀가 정말 아름답게 보이고 감동이 오더라고요.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순간도 자기 처지를 과장하지 않았고 또 그걸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도 느껴지지 않아요. 많은 배우가 관객에게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려 하고 관객이 느껴야 할 감정을 배우 혼자 먼저 느껴요. 좋은 연기는 목표를 수행하는 거라고 봐요. 만약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설득을 열심히 하면 되는 일이죠. 그런데 어떤 연기는 화부터 내고 상대와 감정적으로 부딪히려고만 해요. 나쁜 연기가 되죠. 배우는 감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수행해야 할 목표를 달성해야 하고 그럴 때 좋은 연기가 나와요. 예를 들어 “야, 너 나가”라는 대사가 있다고 하면 겁을 주거나 화를 내며 감정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여기서 나게끔 하는 게 연기의 목표가 돼야 해요. 안도 사쿠라의 연기는 보면서 정화되는 듯했어요. 다르게 말하면 그건 감독이 잘 찍었다는 말이에요. 영화에서 배우가 연기를 못하는 건 다 감독 책임입니다. (웃음)
지난해 봄은 영화 작업으로 즐거웠을 거 같습니다. <강변호텔>을 마치고 3월부터 4월까지는 장률 감독의 신작 <후쿠오카>를 촬영했어요. 장률 감독과의 첫 작업입니다.
장률 감독과는 오며 가며 한두 번 인사만 나눴나? 그것도 정확치 않아요.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때였죠. 어느 날 저녁에 (윤)제문이가 전화를 해와 (성대모사를 하며) “누가 좀 바꿔 달래”라고 해요. 받아보니 (역시 성대모사를 하며) “장률입니다. 우리 한 번 만나요”라고 해요. 영화제 끝나고 서울 와서 술 한잔했어요. 장률 감독도 다른 사람 영화를 거의 안 보는 거로 아는데요. 내가 나온 영화를 본 적 없을 거예요. 그건 홍상수 감독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같이 술 한 번 먹고 영화 하자고 해 지난해 12월인가 올해 1월에 장률 감독과 제문이 나 이렇게 셋이 다시 만났죠. 그러게요, 왜 갑자기 나를 보자고 했을까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 개봉 때 <REVERSE> 인터뷰로 장률 감독을 만났습니다. 당시 <후쿠오카>를 두고 “완전한 멜로영화”, “윤제문, 권해효가 나오니 관객들이 모두 멜로영화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웃음)
이거 멜로영화였어요? 나랑 제문이가 죽자고 싸우기만 했는데? (웃음) <후쿠오카>도 장률 감독의 전작들과 결이 다르지 않을 겁니다. 부유하는 인간,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내가 그간 ‘몽당연필’로 재일동포 사회, 조선학교를 만나왔듯이 장률 감독에게는 재중동포, 조선족으로 산다는 게 화두잖아요. <후쿠오카>의 스토리는 단순해요. 나와 제문이 극 중에서 대학 연극반 선후배 사이로 친하게 지내다가 한 여자 때문에 20여 년 동안 서로 꼴을 안 봐요. 나는 후쿠오카에서 술집을 하고 제문은 어느 대학 앞에서 중고 책방을 하고. 내가 후쿠오카에서 술집을 하는 건 그때 좋아했던 그 여자가 후쿠오카 출신이기 때문이고, 제문이 책방을 하는 건 그 여자가 즐겨가던 책방이기 때문이죠. 그러던 어느 날 묘령의 한 여자가 나타나 제문에게 후쿠오카로 놀러가자고 합니다. 귀신에게 홀리듯 후쿠오카에 온 이들이 찾아간 곳이 내가 하는 술집이에요. 징글징글한 인연이죠. 그렇게 재회한 이들이 후쿠오카 거리를 계속 돌아다닙니다. 재밌게 찍었어요. 내가 평소에 집 밖을 거의 안 나가는 사람이에요. 후쿠오카 촬영 차 열흘 넘게 집을 떠나 있었죠. 우리 부부가 그렇게 떨어져 지낸 게 결혼 만 24년 만에 처음이에요. 제작비가 여의치 않아서 다들 뿔뿔이 흩어져 에어비앤비에 묵었죠. 매일 아침 전날 장 봐온 걸로 밥해 먹고 현장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또 술과 먹을거리를 사 와서 혼자 해 먹었어요. 진짜 외딴 곳에 떨어진 느낌이더라고요. 게다가 날씨가 정말 좋아서 눈 뜨면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었어요.
현장에서의 장률 감독은 어떠셨나요.
사람이 나이 들수록 무뎌지고 자기 고집만 부리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쉽잖아요. 계산한 대로 실수 없이 해내려는 욕구도 더 커지고요. 그런데 장률 감독은 현장의 예기치 못한 변화를 재밌는 놀이처럼 받아들여요. 그걸 보니 좋더라고요.
우연의 일치일까요. <강변호텔>에서 경수가 얼어붙은 겨울의 강과 그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두만강 같다’고 하고 ‘다큐멘터리 같은 데서 봤다’고 해요. 사회 운동에 관심 많은 권해효 배우의 일면이 겹쳐지는 순간이기도 하고 장률 감독의 <두만강>(2009)도 생각났습니다.
나도 연기하면서 참 뜬금없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또 창문 너머의 강이 얼어 붙어있고 짓다 만 콘크리트 건물들을 보니 영화 속 대사처럼 두만강에는 가본 적 없지만, 그 분위기는 충분히 알 것 같더라고요. 장담하건대 장률, 홍상수 감독 모두 서로의 영화를 단 한 편도 본 적 없을 거예요. 둘 다 참 희한하죠. 남들이 본 것, 남들의 눈으로 만들어진 걸 두 사람 다 믿지 않아요. 그게 공통점 같아요.
<선물>(2001) 이후였던 거로 알아요. <다른나라에서>에 출연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 영화 작업을 하지 않았어요.
2002년부터 2015년까지 13년 6개월간 KNN이 제작하는 영화 프로그램 <시네포트>를 진행했어요. 영화에 관한 코멘트와 평을 하는 코너가 있었죠. 내가 뱉어둔 말이 많은데 플레이어로 뛴다는 게 좀 이상하더라고요. 또 <친구>가 개봉한 2001년은 한국영화계에 코믹 조폭물이 막 나오던 때에요. 역할이라는 게 한정되고 정상적인 시나리오를 찾기 어려웠죠. 누가 욕 잘하고 애드리브 잘하나를 경쟁하듯 보여줘야 했어요. 이건 아니다 싶어 거절하다 보니 어느 순간 영화와 멀어졌죠. 30대 후반에서 40대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는데 그렇게 슥 가버렸어요. 물론 그전에도 영화를 많이 하지는 않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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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사회적, 정치적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며 시민 단체 활동을 해옵니다. (1998년 안티조선 운동 당시 배우 직능 대표로 선언문을 낭독했고 2002년 호주제 폐지 운동에 참여하고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하는 ‘3‧8 세계여성의 날’ 행사 사회를 본다. 그해 ‘남북 청년학생 통일대회’로 금강산으로 가 그곳에서 도쿄 조선대학교 학생들과 만난다. 그때의 강렬한 만남이 이후 ‘몽당연필’이라는 활동으로 이어진다. 권해효의 공저 『곁에 서다-불행한 시대 이상한 나라에 사는 우리의 자세』 참고.) 특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한 지난 10년간 연기 활동에 제약을 받지는 않았습니까.
정권의 압박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기보다는 눈치 빠른 놈들이 하도 많았으니까요. 이럴 때일수록 할 수만 있다면 더 열심히 방송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방송국의 몇몇 감독들이 힘을 많이 실어 줬죠. 자신이 불이익을 떠안으면서까지 나를 돕곤 했으니까요.
그러던 차에 만난 <그 후>가 배우로서 작업하는 기쁨과 큰 에너지를 줬을 것 같습니다.
그럼요. 주‧조연의 문제를 떠나서 21년 만에 영화 속에서 온전히 서사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는 게 조금 흥분됐고 되게 재밌었죠. 아주 즐겁게, 열심히 촬영했습니다. 함께 출연한 아내(배우 조윤희)도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부부 사이에도 활력이 돼줬죠. 아내 역시 더는 배우로서의 활동을 생각지 않고 있었는데 <그 후> 이후로 조금씩 다시 연기하고 있습니다. (조윤희는 이명세 감독의 <첫사랑>(1993) 이후 영화 출연이 처음이다.)
혹시 두 분이 또 한 번 한 작품에서 만날 일도 있을까요.
아니요, 아니요. 그런 일은 잘 모르겠어요. 하하하.
제작이나 연출에도 관심이 있나요.
제작은 전혀 생각이 없어요. 배우라면 연출은 한 번쯤 생각해봤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욕심만 앞세워 연출하는 건 안 될 일이예요. 그간 대학로에서 연극 연출 제안은 많았어요. 하지만 연출을 하려면 온전히 자기 시간을 다 갖다 부어야 하는데 솔직히 그럴 자신도 없고요. 생활인으로서 일을 접을 수는 없는데, 다른 일을 하다가 중간에 남는 시간을 쪼개서 연출한다? 현실적으로 녹록치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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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의 전신인 한국독립단편영화제 시절부터 지난해까지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18년째 맡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조윤희 씨와 함께 ‘서울독립영화제2018 배우프로젝트-60초 독백 페스티벌’을 직접 기획해 영화제 기간에 진행해 신인 배우들을 발굴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1Minute Monologue Contest & Celebration>를 즐겨봤어요. 말 그대로 제한된 공간에서 60초 안에 연기하는 경연이에요. 연기를 가르치고 있는 아내도 느끼던 바고 나도 주변을 보며 생각했던 게 배우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경력을 만들려 해도 정작 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 없더라고요. 드라마 제작사 입구에 가보면 배우 프로필이 산처럼 쌓여 있죠. 후배들에게 조금은 다른 방법을 보여줄 수 없을까. 독립영화의 많은 경우 영화 아카데미나 각 대학의 연극영화과의 졸업 작품으로 제작되는데 그때 배우 캐스팅은 내부적으로 많이 진행되죠. 동기들끼리 배우를 추천하고 소개받고. 배우 역시 학교 출신이 아니면 출발 자체가 막막해요. 그래서 장을 한번 만들어본 거예요.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한 감독들을 불러 관객 심사단으로 참여하게끔 했고, 본선에 오른 배우들 프로필도 만들어 오신 분들께 돌렸어요. 오늘 아침에도 본선에 오른 한 배우가 그때 만난 독립영화 감독과 영화 한 편을 찍었다며 영상을 보내왔더라고요. 본선 심사위원이기도 했던 변영주 감독도 본인 신작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배우들을 작은 역할로라도 캐스팅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사례가 만들어지면 배우의 길을 가려는 이들에게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요.
올해도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나요.
올해도 합니다. 예심 통과자들과의 오리엔테이션을 보완해 본심에서 각자 할 연기를 리허설해 보는 시간으로 가보려고요. 각자에게 보다 잘 어울리는 역할, 방향을 사전에 조율해 정제된 상태로 본심에 가는 거죠. 또 영화인 중 한 명을 그해 호스트로 정해서 함께해보고 싶어요. 배우 프로젝트에 1천명(최종 14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원했어요. ‘왜 이렇게까지 몰렸을까’를 두고 변영주 감독과도 얘기한 적 있어요. 우리 사회 전반의 불공정성이 문제인데 어쩌면 배우는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 그 자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장 공정한 룰이 통하는 일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연기를 잘한다, 못한다의 차이는 뭘까요. 음악이나 미술은 최소한의 기본 스킬이 요구되죠. 반면 연기는 그렇게 평가하기 힘들어요. 어떤 배우는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 사람이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살아온 것만으로도 가장 훌륭한 순간을 만들 때가 있어요. 좋은 배우는 자기가 지나온 세월을 잘 견뎌낸 사람 같아요. 그게 자기 몸과 얼굴에 잘 담기면 좋겠고요.
독립영화에 직접 출연도 하지만 영화제 심사를 하거나 개봉작 응원도 하며 다방면으로 힘을 보태왔습니다.
<초행> 개봉 때 모더레이터를 했죠. <이월>도 하고 싶었는데 스케줄 문제로 못해 아쉬웠어요. 재주 많은 이옥섭, 구교환의 <메기>도 같이 작업하고. 그런데 최근의 독립영화들을 보면서 만듦새는 좋은데 보고 나면 우울해지더라고요. 홈리스, 아이들의 비극, 죽음 등 비슷한 문제의식과 개연성이 읽힌다는 게 내게 문제의식을 갖게 해요. 영화가 동시대의 공기를 담는 건 중요하지만 결국 영화는 자기 취향을 보여주는 것이잖아요. 그런 와중에 정가영 감독의 <밤치기>(2017)를 보니 환기가 되더라고요. 이 와중에도 자기 취향을 확실히 드러내는 감독이 있구나! 같은 맥락에서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2017)도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힘들지만 ‘그래, 내가 다 받아내 보겠다!’는 태도로 자신이 좋아하는 담배하고 위스키만은 포기하지 않죠.
혹시 <소공녀>의 미소(이솜)처럼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나요.
술? 혼자 있는 거? (웃음)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 만들어진 ‘몽당연필’(2012년 가을 비영리 시민단체로 출범했다)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올해 ‘몽당연필’ 활동에 조금 더 희망적인 분위기가 느껴져요. 지난 2월 3‧1절 100주년 기획의 일환으로 JTBC <뉴스룸>에 출연해 몽당연필 이야기를 했어요. 당일 몽당연필 홈페이지가 다운되고 회원 가입자 수도 늘었죠. 물론 이런 열기가 잦아들면 공격도 꽤 있답니다. “저, 빨갱이 새끼!”와 같은. (웃음) ‘몽당연필’의 실무를 진행하는 김명준 감독과 ‘몽당연필’의 자체적인 아카이빙 시스템과 영화제를 만들어보자는 얘기도 해왔어요. 재일본 동포 사회를 알릴 때 영화가 좋은 방편이죠. <우리 학교>를 본 일본 전역의 조선학교 학생들, 부모들, 관계자들의 반응이 정말 뜨거웠거든요.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 우리를 기억해주고 있다’는 마음이었죠. 사실 재일 동포사회에서 재일조선인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꽤 만들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재일동포를 그린 영화라고 해서 재일동포들이 다 좋아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아직은 시기상조인 면이 있어요. 평양에서의 삶을 다룬 <디어 평양>(2006), <가족의 나라>(2012) 등은 재일조선인 단체에서는 상영하기 어렵죠. <피와 뼈>(2004)처럼 재일 동포들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영화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현재로서는 조선학교 그 자체에 매료돼 그걸 영화화한 경우가 많아요. 언젠가는 다 열어두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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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 이사이자 올해 8월 16일 개막하는 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 집행위원이기도 합니다.
안 그래도 인터뷰 마치면 집행위원회 첫 회의를 하러 가야 해요. 영화제도 그렇고 한국영상자료원 이사직을 제안 받았을 때 남북 관계가 호전돼 김정일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볼 수 있길 바랐죠. 북의 영화가 체제 선전적인 경우가 많으니 상영에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정치적 상황이 급변해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해봐야죠.
활동의 스펙트럼이 상당합니다. 쉴 때는 주로 뭘 하세요.
진짜 뒹굴어요. 기타 좀 치다가 음악 듣다가 책 좀 뒤적이다가 누워 있다가 배고프면 뭐 만들어 먹고. 온종일 그렇게 보내요. 홀딱 빠진다거나 꽂히는 게 별로 없어요. 하지만 내가 직접 하지는 않아도 두루 다 챙겨는 봐요. 바둑을 안 두는데 바둑 TV는 보고 운동은 일절 안 해도 배구, 야구, 미식축구, 미국 NBA 등의 웬만한 룰이나 역사는 압니다.
자동차에 애정이 큰 거로 아는데요, 오늘도 21년 된 로버 미니를 직접 운전해 오셨어요.
좋아하는데 튜닝은 따로 하지 않고 원 상태 그대로 지금껏 유지했어요.
혹시 <강변호텔>에서 경수가 운전하는 차도 본인의 차인가요?
만 16년 된 내 차에요. 이런 게 영화에 나오는 게 재밌죠. 이런 일도 있었어요. 홍 감독이 현장에서 내게 장갑이 있느냐, 경수가 호텔로 들어가다가 장갑을 흘리면 어떻겠냐고 물었죠. 내가 그건 너무 작위적이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럼 하지 말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영화를 보니 송선미 씨가 내 차에서 장갑을 꺼내는 거로 해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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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과 혹시 다음 작업에 관해 얘기 나눈 게 있으세요.
6월쯤 촬영 계획이 있다고는 들었어요. 시간만 맞으면 나야 같이 하면 좋죠. 고마운 일이죠. 하지만 감독이 구체적인 시기를 못 박지 않았다는 건 영화에 관한 그 어떤 구상도 없다는 의미에요. 시기를 정하고 장소를 정한 뒤 배우를 섭외하니까요. 함께 작업하게 된다면 이번에는 내가 홍 감독의 촬영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두려고요. 어느 순간부터 홍 감독이 제작 형태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잖아요. 스태프를 9명에서 7명, <풀잎들> 땐 5명, <강변호텔>은 그보다도 적은 수로 작업하다 보니 정작 현장 기록이 안 돼 있더라고요. 우리 시대의 중요한 감독의 작업인데 기록 하나 없다는 게 속상해요. 사방에 카메라가 이토록 많은 시대인데 말이죠. 평소에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데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땐 나와 같이 연기하는 신이 있는 (이)유영을 찍기도 했죠. 그런데 정작 (김)주혁이 사진이 없더라고요. 같이 붙는 장면이 없기도 했지만요.
올해는 또 어떤 계획이 있나요.
지난해 영화 작업이 좀 있었어요. <강변호텔> <후쿠오카>를 마치고 작업한 <배심원들>(2018)과 <나의 특별한 형제>(2018)가 5월에 개봉 예정이에요. <나의 특별한 형제>에는 짧고 강렬하게 나오는데요. 연출한 육상효 감독이 요즘 영화처럼 감각적인 스타일의 영화를 찍는 분은 아니지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묘하게 따뜻하고 단단한 힘이 느껴졌어요. 함께 작업한 (이)광수가 되게 머리가 좋은 배우라는 것도 알았죠. 기대됩니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중 하나인 단편 <돌아오는 길엔>(2018)에도 참여했고, 지난 가을부터 올해 2월까지 <타짜: 원 아이드 잭>(2018)를 찍었죠. 요즘은 6월 방송 예정인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2019)를 촬영하며 독립영화 시나리오도 몇 개 읽고 있어요. 가을에는 변영주 감독의 신작 <조명가게>를 찍을 예정입니다. 그러고 보니 무슨 역할인지 모르겠네요. 조명가게 주인인 것 같던데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