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보았다
SIFF 2018 <공사의 희로애락> 장윤미 감독
글 손시내 사진 소동성 / Festival / 2018-12-07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나이든 남성 노동자가 있다. 그는 곧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에게 일이란 무엇인지, 일을 하면서 기쁘거나 화가 났던 기억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 카메라 뒤에서 그것을 묻는 이는 영화의 감독이자 나이든 노동자의 딸이다. <공사의 희로애락>은 한 사람의 평생의 노동과 거기 얽혀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다. 카메라는 다양한 공사 현장과 건물들의 외관을 오가고, 노동의 경험과 감정에 대해 말하는 목소리를 그 모습 위에 겹쳐둔다. 그렇게 공사의 희로애락이 쌓여간다. 영화를 만든 장윤미 감독을 만나 공사 그리고 희로애락에 대해 물었다.

 

2017년 가을에 아버지와 노동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작업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촬영을 하고 있던 건가.

그때는 촬영을 하고 있을 때였고 12월부터 편집을 시작했다.

 

이 주제를 처음 떠올린 계기는. 영화를 만들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맨 처음엔 건물과 건설 노동자를 찍으려 했다. 건설 노동자들의 기억을 건물과 결합시키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건설 노동자인 아버지를 한 명의 인터뷰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 전에는 우리 사이에 별로 관계나 대화가 없었다. 그런데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시작하니까 한 호흡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바로 나오고 또 계속 이어지는 것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본인이 어떻게 열심히 살았는지, 회사가 이윤이 나면 그게 본인에게도 어떻게 좋은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데 내가 과연 잘 살았나 하는 이야기로 바로 이어지더라. 열심히 살았던 한국의 가장이자 남성 노동자가 뒤를 돌아보는 컨셉이 떠올랐고, 그때 그렇게 생각도 많이 하고 돌아보는 시기에 있는 아버지의 상태를 놓치지 않고 드러내고 싶었다.

 

이전에 만든 단편 <콘크리트의 불안>은 철거 직전의 아파트를 찍은 영화이기도 했다. 건물이나 건설 현장에 마음이 가고 그것을 찍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있나.

아버지가 건설 노동자, 육체 노동자여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노동에 마음이 가는 게 있는 것 같다. 공사 현장을 보면 또 짓는구나, 또 재개발 하는구나 싶어서 싫은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그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각나기도 한다. 거리에서 작업복을 입고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좋고 그런 게 있다. 건축 다큐에서는 보통 건축가들이 많이 조명되지 않나. 난 건물을 직접 만드는 사람들이 머릿속에 생각난다. 내가 사는 집에서 재개발 공사 현장이 많이 보이는데 새벽 다섯 시만 되면 노동자들이 그 앞 공터에서 옷을 갈아입고 공사를 준비한다. 그런 것들을 연결해 나가면서 계속 영화를 찍게 된 것 같다.

 

인터뷰 도중에 아버지가 사진에 찍힌 자신의 모습이 늙어 보이더라는 부정적인 말씀을 하시는데, 의외로 카메라는 불편해하시지 않는 것 같더라. 카메라에 찍힌 모습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시던가.

인터뷰 하는 중간에 좀 뻘쭘해 하시긴 했다. 처음에 컴퓨터로 영화를 보여드렸을 때는 재미없어 하시는 게 느껴졌다. 끝까지 아무 말도 안하셨는데 나도 아버지랑 편한 건 아니라서 나중에 문자로 어땠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시간이 지나보면 알겠지’라고만 하셨다. 그런데 이번에 대구 오오극장에서 상영할 때 보시고는 기분이 좋으셨던 것 같다. 본인 얼굴을 이렇게 많이 본 건 처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도 ‘내가 저 사람 얼굴을 이렇게 많이 본 건 처음’이라고 하셨다. (웃음)

영화의 초반부에 아버지가 일하시는 작업장이 나온다. 불꽃도 많이 튀고 사람들의 그림자도 사방으로 많이 생기고, 휴게 공간에 작업복들과 안전모 같은 것들이 걸려있어서 작업장이 일종의 무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카메라는 그곳을 견학 온 것처럼 두리번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 공간과 사람들이 노동하는 모습이 어떻게 느껴졌는지 궁금하다.

아버지가 일하는 걸 본 건 나도 처음이었다. 아버지는 공사의 구분이 굉장히 명확한 분이고 집에서는 일 얘기를 아예 하지 않으셨다. 구체적인 것에 대해선 나도 몰랐고 어머니조차도 거의 몰랐으니까. 그래서 좀 설레는 게 있었다. 이번 기회로 아버지가 40년 넘게 해온 일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작업장은 거의 대부분이 예순을 넘긴, 평생을 건설 노동을 해서 베테랑이지만 나이가 들어 일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여전히 일을 하고 싶고 돈을 벌어야 하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고 굉장히 능숙한 분들이 모여서 능숙하게 일하는 곳이라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철근을 만드는 현장이었는데, 철근은 건물을 짓고 나면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지 않나. 그래서 재미있었던 점도 있었다.

 

아버지의 인터뷰 중에는 젊은 시절에 다른 노동자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집에 가면 뭘 할까. 재밌게 살까?” 라는 생각을 했다는 내용이 있다.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 위에 보이스 오버로 겹쳐지는 내용이라, 마치 아버지가 스스로를 보며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버스 운전기사, 공사장 노동자, 사무 노동자들처럼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익명의 노동자들에게 그 질문이 확장되는 것 같기도 하다.

고속버스를 타면 운전기사 분들이 계속 보였다. 너무 과로를 해서 사고를 낸다던지 하는 기사들도 나올 때여서 그런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나름 촬영 노동을 하러 다니면서 밤늦게 계속 일하고 있는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건물들을 찍을 때도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예쁘게 찍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새롭게 찍지도 못하겠고 막막했다. 그래서 그런 건물을 찍으러 갔을 때 일단 보이는 건물과 거기서 일하시는 분들을 찍자는 최소한의 생각을 했다. 건물 안의 사무 노동자들도 계속 야근을 하고 있더라. 바깥에서 그걸 보는데 야근이 끝나질 않았다.

 

아까 공사의 구분에 대해 잠깐 이야기했다. <공사의 희로애락>이라는 제목은 공사(工事)와 공사(公私)를 모두 이르는 뜻을 담고 있나.

맞다. 제목 자체를 그렇게 지었다. 공사 현장과 공사 구분. 말했듯이 아버지는 공사 구분이 분명한 사람인데 난 그건 되게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분법들이 매우 폭력적일 수 있지 않나. 가정에서와 회사에서의 모습이 굉장히 분리되어 있고, 실제로 그런 발언들을 많이 하기도 하셨다. 내가 집에서는 소리치지만 회사에서는 동료들과 잘 지내야 하기 때문에 안 그런다던지 하는. 나는 그런 것들이 옳지 못하다고 느끼지만 동시에 그건 이 사람을 그대로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차라리 내가 아버지랑 그 문제를 가지고 대놓고 얘기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나 싶기도 했다. 나름 소심하게 내린 결론은, 아버지의 공적인 얘기와 사적인 느낌에 대한 얘기를 섞는 방식으로 편집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감정에 대한 질문을 주로 던진다. 말 그대로 희로애락을 묻고 있는 것이다. 공사장의 희로애락이면서 공적이고 사적인 삶의 희로애락이기도 하다는 제목의 뜻을 말해주었는데, 제목은 언제 정해졌나.

제목은 초반에 구성하면서 정했다.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제목은 아니라서 고민했는데, 제목을 짓고 나니까 어떤 식으로 전개하면 될지가 잡혀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영어 제목은 공사 중(Under construction)이다. 공사현장도 공사를 하는 중인데 이 분의 마음도 어쩌면 지금 공사 중인 상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지었다. 제목을 지으면 작업이 잘 풀리는 편이다.

 

이동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보통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고속버스이지만 아버지의 차나 기차로도 이동하고, 이동할 때 보이는 바깥 풍경을 많이 찍었다.

고속도로 자체나 고속도로의 표지판을 계속 구경하고 찍고 싶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삶, 사회에서의 생활 같은 것도 떠올렸다. 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단 한 번 궤도에 오르면 멈추지 않고 계속 일해야 하니까 그런 게 고속도로랑 비슷하다고 느꼈다. 주변 사람들의 얘길 들으면 운전을 하면 도로에서 느끼는 체감이 훨씬 다르다고 하더라. 나는 운전을 못하는데, 운전하는 세계는 치열하다고 운전을 못하면 사회생활 안 해본 취급을 하기도 하고. 아버지가 말을 하고나면 그것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주고 싶어서, 나름의 여백을 만들고 싶어서 이동 장면들을 찍은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 이동들은 내가 하는 이동인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를 부각시키고 싶기도 했다. 터널 같은 경우는 이야기가 과거로 넘어가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도로에 있는 표지판도 그렇지만 공사현장에 있는 표지판, 표어들도 흥미롭다. 국가가 노동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도 보이는 것 같고.

바르게 살자 같은 것. 거제도에서는 새마을 깃발도 찍었는데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아서 쓰지 않았다. (웃음) 경상도가 유독 그런 게 심하다. 구미에도 새마을 깃발이 많이 있고 지역은 태극기도 서울보다 더 많다. 머릿속에는 표현하고 싶었던 그런 것들이 계속 있었던 것 같다. 내 시선이 조금 보이는 정도로 표지판을 썼다. 고속도로에서 ‘제발 쉬어가세요’ 같은 표지판은 아버지가 말씀 해주셔서 찍은 것이기도 하고.

 

감독님과 아버지 사이에는 서울과 구미라는 물리적인 거리가 상시적으로 존재하고, 또 딸과 아버지라는 관계에도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녹음한 통화내용을 많이 사용했는데, 그런 거리가 느껴지면서 동시에 좁혀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통화를 더 쓰고 싶었던 건, 마주보는 카메라로 찍는 건 굉장히 공적인데 전화는 좀 더 사적인 느낌이 나서 그런 차이를 생각하면서 섞어보고 싶어서였다. 처음 구미에서 인터뷰를 한 이후에 아버지랑 조금 관계가 생겼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계속 우울해하시니까 무슨 일이 생길까봐 신경이 쓰여서 전화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관계를 맺고 나니까 아무래도 더 따뜻하게 대하게 되더라. 아버지가 먼저 그렇게 대해주시기도 했고. 그 전에는 정말 한 번도 전화통화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게 본인에게 후회가 되셨나보더라.

 

영화를 만들면서 그런 계기가 생겼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나. 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계속 몰랐을 수도 있는데.

전혀 몰랐을 것이고 지금도 전화통화 한 번 안했겠지. 하지만 마음에 계속 맺혀 있었을 것 같긴 하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게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내게도 큰 사건이었고. 할아버지가 아프셔서 일을 못하셨기 때문에 할머니가 집의 가장이셨고 평생을 고된 노동을 하며 사셨다. 그리고 말년에는 기억도 잃으셨는데 아버지가 거기에 너무 한이 맺히셨던 것 같다. 그래서 할머니의 삶이 비참하다고 얘기도 하는데 나는 그 말에 동의는 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삶을 비참하다고 결론 내린다는 것이, 그리고 아버지가 자기 삶도 비참하다고 생각해서 두려워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 대화하는 전화통화를 넣고 싶었던 것도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건설 현장이나 조선소의 풍경들을 보면, 공사 현장은 너무 크고 사람은 너무 작다. 정말 위험해 보인다. 졸음운전에 대한 표지판도 그렇고, 아버지가 일하면서 화났던 기억에 대해 말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노동환경, 안전문제와 연결이 되는 부분이 많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메시지 같은 거다. 산재에도 관심이 되게 많다. 건설현장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정말 많지 않나. 이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다른데서 할 수 있는 작업이겠지만, 어쨌든 아버지가 그 노동을 계속 해오신거니까. 그런 말을 하시는 것 자체만으로도 노동 환경이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걸 비판하는 방식까진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다.

 

노동환경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과, 그때 굉장히 화가 났다고 말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화가 났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더라.

그 인터뷰도 생각하면 되게 신기하다. 처음에는 본인에게 화가 났다고 하다가 오너에게 화가 났다고 하는 게 너무 극적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말이 강하게 다가왔다. 아버지에게는 그런 생각이 사실 노동조합의 문제, 자기 권리의 문제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오너에게 화가 났다는 데서 더 나아가진 않지만 그래도 거기까지 이야기를 한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원래 노조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하시고 나와는 정치적인 지향도 다른 분이라서.

후반부에 아버지와 함께 할머니가 사셨던 집과 산소에 가는 장면이 나온다. 꽃잎이 날리면서 아름답기도 하고 쓸쓸하고 슬프기도 한, 여러 감정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할머니가 습관처럼 계속 풀을 베고 잡초를 뽑는 게 가슴 아프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이제 그 일을 아버지 본인이 하고 있기도 하다.

그날따라 아버지가 기분이 되게 좋으셨다. 딱히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그냥 같이 가보자고 해서 갔던 거다. 그런데 정말 맞다. 할머니나 아버지나 똑같다. 일 그만두면 큰일난다. 일 중독이시고. 그런데 나도 그런 것을 닮은 면이 있는 것 같다. 계속 일을 하고, 물건을 오래 쓰고 고장이 나도 버리지 않고 쌓아놓는다. 며칠 전에 아버지 차가 고장이 나서 견인되었다는데 절대 안 바꾸신단다. (웃음)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은 인터뷰를 위해 카메라 세팅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핸드폰으로 그런 감독님의 모습을 찍어주는 장면이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경계가 흐려지고 친밀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장면이다.

그 순간을 꼭 마지막에 쓰고 싶었다. 그 전에 아버지가 좋은 추억이 없다고 얘기하시기도 했고 나도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 어릴 때의 기억밖에 없다고 했던 그런 감정들이 영화에 쌓여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는 카메라를 세팅하는 순간이 신기하셨던 건지 그때 어떤 감정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을 사진에 담고 싶어 하는, 좋은 추억으로 남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을 마지막에 주고 싶었다.

 

구미공단을 촬영 중이라고 들었다.

구미공단에 있는 케이씨라는 사업장에 대해 찍고 있다. 애초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곳의 노동조합이 민주노조인데도 불구하고 3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지회장이 나왔다고 해서, 그리고 남녀 임금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서였다. 그런 문제가 이제야 드러났고 노동자의 성비도 비슷한 사업장인데 여성 지회장이 이제야 나왔다는 것에 꽂혀서 갔는데 찍다보니 꼭 그런 문제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민주노조라는 게 무엇인가라는 고민으로 확장이 됐다.

ⓒ소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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