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올까요?
<미명> 임정은·이원영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6-07-10

남편이 오랜만에 영화를 찍는다. 촬영지는 계절마다 창 너머에 넉넉한 풍경을 펼쳐놓는 우리 집이다. 봄은 화사하고 여름은 울창하고 가을은 화려한 그곳, 집을 두르고 있는 숲에 오늘은 흰 눈이 소복하게 쌓이고 있다. 자그마한 아파트 한쪽에서 남편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른다. “연출부 이리로 와주세요.” “촬영팀은 저기 체크해 보세요.” “피디님, 어제 말씀드린 소품은요?” “배우님은 저랑 위치를 다시 한번 얘기할게요.” 사정을 모르는 이가 듣는다면 시끌벅적한 촬영장을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우리 둘만의 농담, 실은 모두 한 사람을 향해 건네는 말들이다. 남편의 둘도 없는 동료이자 하나뿐인 아내는 집안 곳곳을 돌며 촬영 준비를 이어 간다. 

<미명>은 이렇게 둘이서 만든 영화다. 이원영은 각본, 연출, 촬영, 편집, 조명, 음악, 미술을 맡고 직접 주연으로 출연했다. 임정은은 프로듀서이자 배우로, 때로는 촬영 보조이자 유일한 스태프로 현장을 지켰다. 영화는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라는 충격에서 출발해, 아내를 잃고 목소리마저 잃은 남자가 아내의 혼령과 다시 대화하기 위해 사라진 목소리를 찾아가는 시간을 그린다. 세계의 흔들림과 사적 상실을 한 집 안으로 불러들이는 영화의 형식은, 실제 삶의 공간에서 서로 역할을 바꿔가며 영화를 완성한 두 사람의 작업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얼떨결에 만든 제작사 ‘화목한영화사’는 어느덧 영화 만들기를 가능하게 하는 작은 울타리가 되었고, 그 안에서 두 감독은 기꺼이 상대의 응원단장이 되기로 했다. 부부에게 영화와 삶을 나란히 만들어 가는 시간에 관해 물었다.

 

 

‘화목한영화사’의 작업을 보면 제작사라기보다 창작 공동체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는다. 처음부터 이런 방식의 영화 만들기를 구상했나, 아니면 작품을 하나씩 통과하며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방식인가.

이원영_ 처음엔 특별한 결의 같은 건 없었다. 임정은 감독이 <아워 미드나잇>(2021)을 준비하던 당시, 경기콘텐츠진흥원 제작지원을 받으려면 제작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면 이 김에 하나 만들자” 해서 별생각 없이 시작했다.

임정은_ 아직 결혼 전이고 연인일 때였는데, 그렇게 제작사를 만들고 난 뒤에 오빠 인감부터 각종 서류를 다 털어 썼다. (웃음) 사실 순서를 따지면 <아워 미드나잇>보다 <희망의 요소>(이원영, 2022)가 먼저다. 촬영은 더 일찍 했는데, 어쩌다 보니 개봉 순서가 뒤바뀌었다. 이원영 감독은 <검은 여름>(2019) 이후, 카메라에 마이크를 달아서 거의 혼자 영화를 찍는 방식으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감독이 카메라를 잡기에 롤이 돌아가는 동안 옆에서 보조할 스태프 한 명만 있으면 현장이 움직이는 구조였다. <희망의 요소>에도 내가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는데, 실은 그 역할을 했던 거다. 이런 방식을 경험하고 보니 제작사나 외부의 특별한 도움 없이도 우리 둘이서 무언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후 <절망의 요소>(2023), <미명>까지 연이어 함께 작업하게 됐고, 현재 후반 작업 중인 내 연출작도 ‘화목한영화사’에서 하고 있다.

 

서로의 영화에서 감독, 배우, 프로듀서, 촬영, 편집, 현장의 유일한 스태프 같은 역할을 오가며 작업해 왔다. 지금의 둘에게 “함께 영화를 만든다”라는 말은 단순히 같은 현장에 있다는 뜻을 넘어 어떤 의미인가.

임정은_ 곧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화목한영화사 기획전’이 열린다. 프로그램 설명에 “비슷한 영화 미학을 공유하는 두 감독”이라고 써주셨더라. 근데 사실 우리는 너무 다르다. 작품은 ‘화목한영화사’로 묶여 있고, 이제 결혼해서 가족이기도 하지만, 이원영과 임정은 각자는 너무 다르다. 그래서 작업하며 무언가를 계속 주고받고 합의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쪽에 가깝다. 이원영 감독이 영화를 찍으면 나는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내가 영화를 찍으면 이원영 감독이 내 길을 무조건 응원한다. 서로의 응원단장이나 마찬가지다.

 

치어리더를 고용하는 거네.

임정은_ 그렇지, 감독이 자기 세계를 구현해 가는 과정을 응원단장으로서 지켜본다. 이원영 감독이 연출할 때, 내가 작품의 방향이나 스타일을 고민하지는 않는다. 작가적 색깔은 온전히 감독 본인 몫이고, 파트너는 현장 운용에 필요한 실무를 돕는다. 물론 의견을 묻기도 하고, 살짝 위험할 때는 한마디씩 하지만. (웃음) 나는 이원영 감독이 자기만의 고유한 색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이 사람만 할 수 있는 영화가 있다고 본다. 비단 우리 둘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연출자가 마찬가지다. 이 사람이 하려는 영화는 이 사람만 할 수 있는 영화니까, 거기에 내 색깔을 더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뭔가 고민될 때 서로 의견이야 묻는다고 해도, 답이 채택되든 안 되든 상처받지는 않는다.

<아워 미드나잇>
<희망의 요소>

이원영 감독님도 이런 방식에 동의하나. 조금 더 적극적이고 결속력 있는 협업을 바랄 수도 있지 않나.

이원영_ 내 생각에는 임정은 감독이 나를 배려해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최대한 마음대로 할 수 있게끔 해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화목한영화사’의 방향성 같은 것도 생기고. ‘이건 아니다’ 싶으면 당연히 개입한다. <미명>을 만들 때도 그런 순간이 있었고, 임정은 감독이 지금 후반작업 중인 영화도 내 의견을 강하게 피력해서 편집을 갈아엎은 적이 있다. 다만 그런 몇 번의 순간을 제외하면, 나도 정은 감독의 자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게 해주자는 생각이다.

 

창작자로든 가족으로든 상대를 향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방식 같다. 100% 신뢰한다는 뜻이니까.

임정은_ 지금 만들고 있는 영화를 직접 편집했는데, 처음엔 순서대로 붙여보니 거의 90분 가까이 나왔다. 어떻게 건드려야 할지 모르겠더라. 컷을 많이 나누지 않았기에, 편집한다면 아예 신을 덜어내야 했거든. 일단 내 편집본을 저장해두고, 오빠에게 당신이 감독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냐며 마음껏 편집해 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정말 삽시간에 60분대로 만들어 놓았다. 20분 이상 덜어낸 거다. 솔직히 처음 딱 봤을 때는 기분이 상했다. 그 20분이 쓸데없다는 말 아닌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낫다고 본 거니까. 근데 내가 작업한 기존 편집본과 그걸 비교하면서 생각하게 됐다. ‘왜 이 부분을 삭제했지? 왜 필요 없다고 판단했지? 반대로 나는 왜 이 장면이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고민하다 보니 편집 방향이 정해졌고, 러닝 타임도 75분 정도로 적정한 선에서 정리가 됐다. 이런 작업 방식이 우리에게는 아주 자연스럽다.

 

반대로 <미명> 편집 과정에서는 임정은 감독이 조언했을 텐데.

임정은_ <미명>은 특별하긴 했다. 우리가 직접 연기했고, 실제 거주하는 집에서 찍었으니까. 결혼사진도 그대로 나오고. 주변 사람들에게 영화 보러 오라는 말 대신 “랜선 집들이 오라” 장난쳤다. (웃음) 거의 사흘 정도 밖에 안 나가고 집에서만 촬영했는데, 찍고 보니 이미지들이 너무나 익숙하게 다가왔다. 오빠가 자기 방식대로 밀고 나가는 건 좋지만, 그 안에서 어떤 영화적인 키 이미지를 살려보면 어떨까 싶더라. 오빠에게 말했더니 본인이 생각하고 있던 이미지들을 보여줬고, 그렇게 의견을 공유하며 현재 버전으로 완성됐다.

 

둘에게는 집이 곧 촬영장이자 편집실인 셈이다. 일상과 영화를 가르는 경계선도 때마다 달라지겠다.

이원영_ 그건 <미명> 뿐만 아니라, <희망의 요소>나 <절망의 요소>를 만들 때도 그랬다. 우리가 평소와 다름없이 살고 있으면, 배우들이 잠깐 방문해 촬영하는 식이다. 배우들도 아는 사람 집에 놀러 온 손님처럼 우리 집에서 같이 먹고 일상을 보내며 작업했다. 생활의 연장으로서의 영화 만들기, 그런 느낌이었다. 

임정은_ <미명>에 내가 자이언티의 ‘눈’을 흥얼거리는 장면이 나오지 않나. 실은 <희망의 요소> 작업할 때 그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오빠가 테스트 촬영하려고 카메라를 만지작거릴 때였다. 밥 먹고 식탁에 앉아 있다가 나도 모르게 그 노래를 허밍으로 불렀는데, 노래를 멈췄더니 오빠가 “아, 조금만 더 부르지” 하더라. 나는 찍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 장면이 오빠한테는 계속 남아 있었나 보다. <미명> 작업하는데 ‘눈’을 다시 불러보라고 하는 거다. 2021년쯤 우연히 부른 노래가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영화에 삽입됐다. 이런 부분을 하나하나 떠올리면 신기하다. 신혼여행에서 찍은 영상이라든지 연애 시절에 남긴 사진도 들어가 있거든. 오빠한테 나 혹시 <트루먼 쇼> 주인공이냐고 물어봤다. 언제부터 어디까지 계획된 거냐고. (웃음) 

<미명>
<미명>

<미명>을 위해서 얼마나 긴 시간을 준비했는지! 

임정은_ 나도 이번에 내 영화를 찍으면서 남편이 했던 말을 대사로 활용했다. 우리가 요새 가능하면 매일 산책하려고 하는데, 어느 날 오빠가 불쑥 뒤로 걸어보라고 하더라. 뒤로 걷기가 몸에 좋다며 어쩌고저쩌고 설명하면서. 그게 문득 생각나서 내 영화에 비슷한 장면을 넣었다. 오빠가 시나리오 읽더니 이건 자신에게 저작권이 있는 대사라며 고소하겠다고 하더라. (웃음)

 

상황이 역전됐네.

임정은_ 우리 관계가, 삶과 영화가 그렇게 섞이고 이어진다. 그렇다고 우리가 삶을 영화처럼 산다는 뜻은 않는다. 오히려 일상에 발을 딱 붙이고, 하루하루 밥 지어 먹으며 생활인으로서 산다. 그런데 또 그런 삶이 영화와 연결되는 게 재미있다. <미명> 개봉 과정에서도 신기한 순간을 경험한다. 배급사에서 굿즈로 만들 거라며 배지 시안을 보내줬는데, 영화에 나오는 무드 등 모양이었다. 그 조명은 영화 미술을 위해 따로 마련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집에서 쓰는 물건이다. 친구가 우리 결혼사진을 활용해 등을 만들어 선물해 줬다. 근데 그걸 굿즈로 선보인다니 기분이 이상하더라. 마치 우리 얼굴이 돌아다니는 느낌이랄까. 배우들은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기도 하고.

 

일상이 모여 영화가 되는 순간을 누구보다 자주 체험하는 듯하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원영 감독이 평소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방식이 궁금해지는데. 

이원영_ 따로 메모해 두는 노트가 있고, 머릿속에 여러 기억이 수많은 파편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새로운 작업에 들어갈 때 그것들을 조합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 같다. <미명>의 경우, 영화 자체가 우리 집에서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실제 우리 둘과 관련한 파편이 아주 많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영화제 상영하러 가면 힘들더라. GV를 하긴 해야 하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서 있기가 힘들었다. 개봉하고 나서도 조금 걱정된다.

 

주연 배우마저 감독이니 피할 곳도 없겠다. (웃음) 근데 몇 해 전 임정은 감독이 불렀던 ‘눈’이 왜 하필 그때 다시 떠올랐던 것 같나.

이원영_ 이 영화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사운드였다. 보통 영화를 볼 때 시각에 의지하는데, <미명>에서는 소리를 주된 지각 요소로 삼아서 청각이 견인하는 영화를 만들어 보려 했다. 그래서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구성했다. 앞서 얘기가 나온 대로 정은 감독이 “키 이미지가 필요하다”라는 조언을 해줬는데, 그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정말 섬광처럼 ‘눈’을 흥얼거리는 그때 그 장면이 번쩍하고 떠올랐다. 메모리카드를 엄청나게 뒤져서 찾아냈다. 그러면서 이미지도 정리됐다. 영화에 유령이 등장하는 순간, 어떤 초현실적인 일이 벌어질 때는 어차피 어느 정도 규칙을 설정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유령은 베란다 창에 반사된 이미지로만 보여주는 걸로 해야겠다 싶더라.

 

영화를 구성하는 이미지를 일부러 모호하게 프레이밍했다고 했다. 그 모호함은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가 어긋난다는 뜻인가, 아니면 이미지가 타깃하는 지점이 명확하지 않다는 뜻인다.

이원영_ 후자에 가깝다. 타깃이 명확하지 않은 이미지가 길게 지속되는 동시에, 프레임 밖에서는 소리가 계속 나온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관객은 그 구성을 따라간다고 봤다. 영화에서 몽골로 떠난 남자의 영상 편지 장면이 하나의 예다. 그때 남자는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고, 화면에는 오직 풍경과 목소리만 등장할 뿐이다. 하지만 관객은 지금껏 영화를 따라왔기에, 그 장면을 이상하거나 어색하게 느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영상 편지의 이미지로 존재하지 않지만, 관객은 마치 그가 존재했던 것처럼 받아들이는 거다.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켜 보고 싶었다.

이원영 ⓒ이영진

제시하는 이미지에 따라 화면 비율도 달라지는데.

이원영_ 동시대의 감각을 영화로 드러내고 싶었다. 줌(zoom)으로 회의하는 장면이나 영상 통화 장면, 카카오톡 메시지 화면 등을 의도적으로 가져 왔다. 캠코더, 컴퓨터, 스마트폰 등 각 디바이스의 표준 비율을 그대로 사용하려 했다. 

 

작업 과정에서 “아니다 싶을 때는 강하게 어필하기도 한다”라고 했는데, 어디까지 개입하고 물러날지 그 선은 어떻게 알아차리나. 감독인지, 배우인지, 혹은 배우자로서 말하는지 헷갈릴 법도 한데.

이원영_ 연애 시절까지 합하면 꽤 오래 함께한 사이이기에, 이제는 어느 정도 직감적으로 아는 것 같다.

임정은_ 동료와 배우자의 영역을 명확히 분리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다만, “이 선은 밟으면 안 된다”라는 느낌은 확실히 있다. 수년간 관계를 이어오며 이 사람의 상태나 시그널에 대한 정보가 쌓이지 않나. 지금은 말을 꺼내면 안 될 것 같다든지, 이 타이밍이라면 슬쩍 던져볼 수 있다든지 하는 눈치가 생겼다. 무엇보다 내 의견을 물었을 때, 혹은 정말 위험할 것 같을 때만 말한다. 단순히 ‘재미없다, 별로다’ 하는 감상 차원이 아니라, “이런 대사는 오해의 여지가 있겠다” 싶으면 보태는 식이다. 한편, 오빠는 많이 묻지 않을뿐더러 내 작업에도 거의 말을 얹지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그런 스타일이다. 나는 작업이 막히면,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편이다. 영화적으로 잘 맞거나 혹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 반면에 오빠는 내가 물어볼 때도 답하기를 조심스러워한다.

이원영_ 임정은 감독이 물어보는 건 대개 진짜로 중요한 지점이거든. 본인이 노리는 바가 분명히 있기에 질문하는 거다. 내가 어떤 말을 했다가 그 핵심이 훼손될까 봐 조심스러운 것 같다.

 

작업 방식의 차이가 피드백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는 말로 들린다. 그런 면에서 이원영 감독은 작품을 거듭할수록 형식 실험을 강화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각본, 연출, 촬영, 연기, 편집 등 거의 모든 역할을 홀로 감당하는 방식은 현실적 조건을 고려한 결과라기보다는, 감독이 원하는 영화 감각을 마련하기 위한 미학적 선택에 가까운 듯하다.

이원영_ 기억하기로는 <희망의 요소>부터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 영화에서 하고 싶은 바에 대한 강력한 욕망이 생겼던 것 같다. 그전에는 그냥 상상만 했다. <희망의 요소>를 기점으로 그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세팅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점차 현재의 방식을 취하게 됐다. 어쨌든 <희망의 요소>나 <절망의 요소>도 그렇고, 그 시기에 만든 몇 편의 단편영화도 최소한의 이야기 위에 인물을 세워놓는 방식이었다. 거기서 인물들의 신체를 어디서 어떻게 절단하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합쳐야 새로운 무언가가 나올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와 같은 작업에 스태프가 여럿 필요하다고 보지 않았다. 그 방식을 처음 시도했을 당시엔, 영화의 표면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할 것인가에 온정신을 쏟고 있었다.

 

어디까지 줄일 수 있나 실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스태프도 줄이고, 장비도 줄이고, 공간도 줄이고, 심지어 이번엔 화면 속 얼굴과 목소리까지 줄어든다. 이렇듯 미니멀하게 가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감독의 영화를 성립하게 하는 최소한의 요소.

이원영_ 나는 뒤라스도 되게 좋아한다. <대서양의 남자>(1981) 같은 영화를 보면 검은 화면이 아주 길게 나오고 소리만 존재하는데, 그래도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가 성립되지 않나. 결국 어떤 형태가 됐든 영화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결합이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합쳐지는지 고민하는 것이 영화의 최소 요건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요즘은 미술 작가들도 영상 작업을 많이 한다. 그렇다면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더더욱 소리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하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그 질문이 <미명>으로 이어졌던 걸까. 

이원영_ 실은 더는 영화를 찍지 않으려고 했다. 영화를 관두고, 그냥 돈을 열심히 벌고 싶었다.

임정은_ 내가 느끼기에는, 한순간에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우리는 영화과 대학원 동기로 만났다. 오빠가 여러 시간을 거쳐 영화적으로 자신이 명확하게 지향하는 지점을 발견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근데 그렇게 만든 영화들이 오빠로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임정은 ⓒ이영진

사람들에게 가닿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는 뜻인가.

임정은_ 단순히 인정받지 못한다는 괴로움은 아니다. <희망의 요소>는 기대했던 영화제에서 최종 심사까지 갔다가 떨어졌고,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그 무렵 오빠는 고민에 빠졌던 것 같다. ‘영화적으로 구현하고 싶은 바가 있는데, 난 그걸 발견했고 계속 가보고 싶은데, 과연 내 욕구를 고집해도 되는 걸까. 그게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응원하는 입장이었다. 그래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오빠의 스타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작품이 흥미로웠거든. 한동안 옆에서 “찍어봐라, 찍어봐라” 하며 부추겼다.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각본이든 편집이든 워낙 빠르게 작업하는 사람이라서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근데 <미명> 전까지 꽤 오래 버텼다. 한 4~5년 정도를 안 찍겠다고 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사부작사부작 카메라를 꺼내더라.

 

마음이 왜 바뀌었나.

이원영_ 물론 정은 감독이 말한 이유도 없지는 않지만, 어쨌든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가장으로서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는 감정적으로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그게 싫어서 영화를 관두기로 했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생활을 일구려 했다. 그런데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그날 지방에서 강의를 마치고 서울로 운전해서 올라오는 중이었다. 평소와 비슷한 시간대였는데, 기이하리만치 도로가 텅 비어 있었다. 차가 안 막혀서 좋다기보다, 되게 기분 나쁘고 두렵고 불길한 느낌이 올라왔다. 집에 돌아와 아내랑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샤워하고 나왔을 때, 그 일이 딱 벌어졌다. 자려고 누웠는데도 이상한 감각이 계속 사라지지 않았다. 좋고 싫음, 유쾌와 불쾌 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아, 이거 어떡하지? 영화로 찍어야 할 것 같은데.’ 하며 잠이 들었고, 아마 다음 날 임정은 감독에게 곧장 말했던 것 같다. “내가 어제 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걸 영화로 찍어보고 싶어.”

 

4~5년간 묵혀둔 욕구가 터져 나왔던 거네.

이원영_ 그날부터 바로 영화를 준비했다. 최근에 캘린더를 다시 확인했다. 계엄 이튿날인 2024년 12월 4일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2025년 1월 10일에 마지막 촬영을 했더라.

 

정치 상황이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심지어 탄핵이 인용되기도 전에 촬영을 마쳤다. 

이원영_ 시나리오 쓰고 촬영 마무리까지 한 달 정도 소요됐다. 어떻게든 지금 빨리 찍지 않으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 감각과 감정을 가진 상태로 직접 촬영하면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임정은_ 오빠가 처음 얘기했을 때부터 나는 무조건 찍으라고 했다. 그전부터 계속 바랐던 일이고, 어쨌든 오빠가 다시 영화를 찍겠다고 하니 반갑고 좋았다. 근데 나도 출연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서부터는 걱정이 앞섰다. 연기는 동료 감독들 영화에 보조 출연하거나, 학교에서 실습할 때 잠깐 해본 게 전부거든. 카메라 앞에 서면 숨만 쉬어도 어색한데, 이걸 어쩌나 했다.

게다가 ‘유령’이라니 진짜 어려운 연기 아닌가. 

임정은_ 그래서 “얼굴 잘라줘야 연기할 수 있다”라고 했더니 잘라주겠다고 하더라. 그 약속 받고 출연을 결정했다. (웃음)

<미명>
<미명>

대통령의 계엄 선포 다음 날 아내를 잃고 실어증에 걸린 남자가, 아내의 혼령과 대화하기 위해 목소리를 되찾으려는 이야기다. 12.3 내란이라는 동시대의 충격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되, 영화는 상실을 다루는 멜로드라마로 나아간다. 세상이 무너지는 공포와 아내의 죽음을 연결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이원영_ 시나리오를 처음 쓸 때부터 그날 느낀 생경한 감각을 곱씹었다. 그건 결국 세상과 내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었다. 물론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런 연결성에 관해 고민하게 됐다. 큰 틀에서는 정말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사람이 애타게 애도하다가, 얼굴조차 모르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끝내 그의 흔적마저 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구조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그 상실이 주인공에게는 단순한 슬픔을 넘어, 자기 존재의 절반이 뜯길 정도로 비극적이고 강력한 무엇이어야 했다. 존재가 찢겨 나간 만큼 세상을 덜 감각하게 되는 상태. 그걸 상상하며 글을 썼고, 자연스레 아내의 죽음을 떠올렸다. 결국 지금의 나에게 대입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계엄이라는 정치적 사건을 영화 안으로 가져오면서도, 직접 설명하거나 재현하기보다 한 사람의 몸에 남은 충격으로 보여주는 면이 인상적이다. 사회적 재난이나 국가 폭력이 개인의 일상에 침투하는 방식을 어떻게 영화화하고 싶었나.

이원영_ 앞서 말했듯 가장 중요한 미적 결정은 모호한 이미지와 프레임 밖의 소리를 동시에 가져가는 것이었다. 기계로 만들어 내는 목소리와 ‘흐미’를 대비하고, 그와 더불어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들이 프레임 밖에서 지속적으로 유입된다. 하지만 주인공이 그 모든 소리를 듣고 있는지, 제대로 감각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 정도의 원칙을 세워두었다. 언급해준 대로 이 영화는 어떤 사건이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해 다루고 있고,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지점을 많이 고민했다. 특히 이러한 충격적인 외부 사건을 영화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픽션과 논픽션을 결합하려고 시도할 때, 현시점에서 내가 판단하기로는 그것을 주인공의 감각과 결부해 표현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뉴스 앵커의 목소리, 카카오톡 입력음, 생활 소음, 몽골의 전통 가창법 ‘흐미’, AI 보이스 등 다양한 층위의 소리가 등장한다. 어떤 기준으로 사운드를 선별하고 설계했나.

이원영_ 어느 정도 기본 원칙을 정해놓고 나면, 그 순간부터는 촬영할 때나 편집할 때나 직관에 의존하는 편이다. 직접 촬영하는 걸 선호하는 이유도 그와 관련이 있다. 물론 사전에 콘티를 준비하지만, <희망의 요소> 때부터 거의 모든 영화를 장면 순서대로 찍어 왔다. 카메라를 삼각대에 올리고, 삼각대 다리 높이를 조절하고, 렌즈를 바꾸고, 프레이밍을 하면서 내 몸으로 찍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원래 콘티대로 카메라를 잡았더라도 ‘지금 이 장면은 이렇게 찍으면 안 된다’라는 걸 몸이 알려준다고 해야 할까.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서는 촬영과 편집 단계에서 조금 더 직관을 따르게 됐다. 사운드도 마찬가지다.

 

임정은 감독은 이 직관을 어떻게 이해하나. 말로 듣거나 글로 읽는 단계에서 이원영 감독의 작품을 온전히 파악하기란 어렵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임정은_ 나중에 완성된 영화를 봐야 ‘이런 걸 하려고 했구나’ 아는 것 같다. 다만, 전체 그림을 몰라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순간순간이 무척이나 흥미롭거든. <미명>은 특히나 재미있었다. 나도 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영화를 접하는 편인데, <미명> 편집본 보면서는 정말 새로운 영화가 나왔구나 싶었다. “이 장면 다시 보여줘” “아까 그거 한 번 더 보자” 하면서 몇 번이나 봤다. 촬영 현장에서는 정확히 몰랐다. 예를 들면 영상 편지 장면도 그렇게 만들 줄 몰랐다. 실제로는 몽골이 아니라, 예전에 여행 갔을 때 찍어둔 영상이거든.

 

거기가 어디였나.

이원영_ 중국 신장 위구르의 카슈가르.

임정은_ 그런 풍경과 개가 나오는 장면들이 영화에 들어갔는데, 완성된 걸 보니 너무 신선했다. 내가 진짜 대단하고 이상한 사람이랑 결혼했구나 싶었지. “사람들이 영화 보면 오빠를 ‘또라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 하며 서로 한참 웃었다.

ⓒ이영진

신성한 것과 통속적인 것을 동시에 제시하는 방식이 매력적이다. 몽골 풍경과 흐미의 사운드는 영화에서 표현한 대로 장엄하게 다가온다면, 줌 화면으로 전환해 논문 심사하는 장면은 뻔뻔하다 싶기도 하고. 

이원영_ 처음부터 흐미를 영화에 사용하고 싶었기에, 남자를 몽골 전문가로 설정했다. 한편으론 이 영화의 주인공을 지식인으로 하고 싶었다. 아까 말했던 아이디어 노트에 비단 영화에 관한 생각뿐만 아니라, 평소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며 겪는 문제라든지 여러 고민을 적어둔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그 노트를 찾아보니, ‘소위 지식인이야말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가장 무력해지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내용이 적혀 있더라. 말도 안 되는 일이 눈앞에 뚝 떨어졌으니까.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해석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지식인과 몽골이라는 키워드를 합쳐 몽골 역사 전문가라는 설정이 나왔다. 

 

흐미에는 왜 끌렸나. 한 사람이 부르지만 두 개의 목소리를 내는 듯한 기법이다. 사람의 목소리라기보다 어떤 가죽을 두드려서 내는 소리처럼 묘한 질감을 자아낸다. 

이원영_ 부모님이 몽골을 좋아하셔서 여행도 많이 다니셨는데, 예전에 흐미 명인의 DVD 앨범을 선물해 주신 적이 있다. 아마도 콘서트를 보시고 사 오셨던 것 같다. 그걸 듣고 굉장히 감동해서 그때부터 언젠가 한 번 꼭 영화에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임정은 감독이 연기한 아내, 정확히 말하면 아내의 혼령 또한 ‘지식인’만큼이나 존재 방식이 연약하다. 어떤 감정이나 이미지로 드러나기를 바랐나. 

임정은_ 내가 어떻게 노출되는지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내 물건을 가지고 하는 작업이었으니까. 나는 어떻게 하면 감독이 원하는 바를 더 잘 드러낼 수 있을지만 고민했다. 감독의 뜻을 전부 파악한 상태가 아니다 보니, 오히려 장면마다 필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남자가 아내를 그리워하며 아내 옷을 만지는 장면이 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옷이 그 상황에 가장 어울릴지 고민하는 거다. 이 코트가 나을까? 저 니트가 나을까? 처음에는 장면 흐름과 분위기를 명확하게 몰랐지만, 차츰 익숙해졌다. 사실 영화에서 유령의 등장을 암시하는 센서등 조작도 내가 수동으로 했다. 카메라에 안 잡히는 벽으로 바짝 붙어서 손을 흔드는 거다. (웃음) 오빠는 대부분 첫 테이크에 오케이를 냈다. 정교함이 필요한 몇몇 장면에서만 모니터링하고 인물 위치를 조정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우리 둘밖에 없고, 각자 맡은 일을 하다가 사인 맞춰서 멈추고 움직이기를 반복하는 상황인데도 어느 순간 몰입했다. 이게 진짜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눈물이 나더라. “크리스마스에도 올 거지? 거기 어때? 당신 추위 많이 타잖아.” 그 말을 듣는데 울컥했다. 영화 속 대사이지만, 나를 통과해서 나온 말이기도 하니까. 

 

감정도 개성도 제거된 AI 보이스를 들으면서 눈물이 날 줄 몰랐다. 그 낭랑하고 또렷한 음성에서 절박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놀랍고. 이원영 감독이 직접 연기한 이유가 있구나 싶더라.

이원영_ 가능한 한 빨리 이 영화를 찍어야 했기에 처음부터 배우 섭외를 단념했다. 배우를 만나서 이런저런 세팅을 설명하고 합을 맞추다 보면, 시간이 걸리지 않나. 내가 포착하려 했던 감각이 그사이 증발할 듯했다. 작업하면 스태프로라도 와서 힘을 보태겠다고 해주는 분들이 주변에 계셨지만, 그냥 영화 찍는다는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싶었다. 또 아무도 없어야 나나 임정은 감독도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기로 뭔가를 전달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이미지로 보이는 그 남자의 연기가 영화에 없는 무언가를 전달하는 방식은 아니었으면 했다. 그래서 직접 연기하면서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내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뒤의 장면을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 첫 테이크만에 장면이 나왔다. 아내를 생각하자, 바닥에 눈물이 흥건하게 고일 정도로 눈물이 났다.

<미명>
<미명>

둘뿐이라서 몰입하기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훨씬 자유롭고 안정적인 환경을 누렸던 것 같다. 영화 만들기는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는 시간인가, 아니면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가까운가.

임정은_ 오늘 인터뷰하면서도 새롭게 깨닫는 지점이 있다. 오빠는 영화에 관해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런 걸 원하는구나. 사실 내 욕구는 다른 쪽을 향한다. 나는 오빠처럼 혼자 영화를 만들 때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미명>과 같은 방식을 택할 수도 없다. ‘화목한영화사’의 정체성은 나보다는 이원영 감독의 영화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본다. 나는 <아워 미드나잇>을 적은 인원으로 찍었지만, 그다음에는 상업영화를 준비했다. 무조건 상업영화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아직 안 가본 길에 호기심을 느끼는 쪽이다. 오빠가 자기 영화를 발견하고 그걸 구체적으로 실현해 간다면, 나는 궁금증을 품고 있는 단계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그걸 내 색깔로 만들지. <아워 미드나잇> 이후 오랜 시간 준비하던 작품이 무산됐고, 결국 이번에 ‘화목한영화사’를 기반으로 사비를 들여 새 영화를 찍었다. 이원영 감독과 내가 무엇을 공유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쨌든 나도 영화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가 만나는 접점이 거기에 있다.

 

영화에서만 가능한 것을 탐구하는 영화들 말인가.

임정은_ 영화여야만 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 순간을 마주하면 너무 좋고, 그런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 오빠도 비슷하지 않을까. 둘 다 영화학부를 나오고, 공부해서 각자 석박사 학위를 받고, 강의하고 일하면서 계속 영화를 해왔다. 영화가 너무 어렵거든. 아무리 찍어도 잘 모르겠고, 모르겠으니까 계속하는 것 같다. 친구들에게 “난 영화가 제일 좋아서 하는 거야. 만약 내 삶에 더 즐겁고 재미있는 뭔가가 나타나면, 영화를 관두고 그걸 할 수도 있겠지.”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친구들은 그래도 내가 제일 오래 남아 있을 것 같다고 했고, 실제로 지금 20년 가까이 영화를 하고 있기는 하다. 근데 내 눈에 비친 이원영은 그런 나보다도 훨씬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같다. 나도 영화를 내 삶의 전부처럼 여기는데, 이 사람은 더 그렇다. 그래서 오빠가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했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 사람에게 영화가 어떤 의미인지 아니까.

임정은_ ‘영화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인데, 영화를 관둔다는 게 무슨 뜻이지? 그러면 이 사람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동안 그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니까 나는 영화를 찍으면서 오빠를 더 이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빠가 계속 영화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갑자기 결혼했던 날이 떠오른다. 혼인 서약을 하면서 류시화의 시를 읽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 가슴 안의 시를 듣는 것/ 그 시를 자신의 시처럼 외우는 것/ 그래서 그가 시를 잊었을 때/ 그에게 그 시를 들려주는 것” 이 시구가 내 마음을, 내가 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말해주는 것 같다. 같이 살고 작업하면서 나는 늘 그런 마음이다. 물론 영화를 만들다 보면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외로움, 고독함, 책임감, 무력감 같은 것들. 곁에서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것과 별개로, 혼자 감내해야만 하는 연출자로서의 몫이 있다. 앞으로도 적정한 거리에서 함께하려고 한다.

 

이원영 감독은 표정이 더 고요해졌다.

이원영_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다 싶다. 최근 임정은 감독의 촬영 현장에 갔을 때, 배우들과 대화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이 사람은 이런 걸 하려고 했구나. 정은 감독이 어떤 영화를, 왜 하고 싶은지 다시 한번 느꼈다. 편집본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임정은이라는 사람은 작은 마음이든 큰 마음이든 모두 귀하게 여기는구나. 이 사람한테는 마음을 주고 또 받는 시간이 밥 먹는 것보다 소중한데, 내가 요즘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그걸 외면했구나. 말하다 보니 눈물이 난다.

임정은_ 이런 얘기는 또 처음 듣네. (웃음)

 

<미명>이 던지는 질문도 그 마음과 맞닿아 있어 보인다. ‘세상은 점점 나빠지기만 하는데, 내가 행복해도 되나? 나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나? 미래를 꿈꾸고 희망하는 마음이 너무 큰 욕심이면 어떡하지?’ 그래도 둘은 영화가 여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은데. 

임정은_ 믿고 싶은 것 같다. 왔다 갔다 하지만.

이원영_ 전에는 누가 봐도 눈부신 영화를 만들어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다. 근데 그 마음이 정말 눈 녹듯이 사라졌다. 물론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지만, 지금 내게 가장 귀중한 것은 우리의 삶이다. 아침에 같이 일어나고, 출근하기 전에 인사하고, 직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같이 저녁을 먹는다. 보름 전부터는 함께 러닝을 시작했다. 매일 나가서 달린다. 현재 나에게는 이 생활을 잘 보살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영화보다 삶이 먼저라고. 과거엔 공감하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삶을 건강하게 살아야 좋은 영화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영화에 몰두하느라 인생을 거의 내팽개치다시피 하는 분들도 있지 않나.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임정은 ⓒ이영진

임정은 감독이 편집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인 영화는 어떤 작품인가. 미리 소개해 준다면.

임정은_ 서툰 어른에 관한 이야기다. 서툰 어른이 인생에서 큰 사건을 만나 흔들리는 이야기. 어릴 적엔 마흔쯤 되면 멋진 어른이 되어 있겠지 생각했다. 근데 아니더라. 그 나이가 되어도 나는 여전히 서툴기만 하고. 어쩌면 다들 이렇게 미숙한 어른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고,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주어진 하루를 묵묵히 사는 것뿐이구나. 예전에는 그 모습이 참 무기력하고 무능하게 느껴졌는데, 나이를 먹고 보니 자기 속도로 걸으며 반복되는 하루를 꾸준히 살아가는 것만큼 큰일도 없더라. 영화를 보는 분들이 그런 위로를 받으면 좋겠다. 서툴지만, 그래도 묵묵히 한 걸음씩 가는 것. 그게 무엇보다 큰 힘이라고, 다들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영화를 만들 당시, 내 무기력함을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영화는 계속 만들고 싶은데 앞이 안 보였다. 하루도 마감을 거른 적 없지만, 작품 공백은 길어지기만 했다. 그 와중에 30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고민도 찾아왔다. 어떤 시기를 넘기면 영영 못 낳을 것 같기도 했고. 나를 둘러싼 여러 생각과 감정을 통과하며 만든 영화다. 편집하고 보니 약간 우울한가 싶기도 하고, 영화에 내가 너무 드러나는 느낌도 있다. 

 

조금 전 이원영 감독의 답변과 임정은 감독의 작품 이야기가 사실상 같은 말처럼 들린다. 두 작품이 어떤 식으로든 관계 맺고 있겠구나 싶기도 하고. 내년쯤엔 볼 수 있나.

임정은_ 목표는 그렇다. 공개가 되어야 할 텐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이원영 감독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다고 들었다. 일은 잘 맞는다고 느끼나.

이원영_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일이라 쉽지는 않다. 안 그래도 학생들 생각하면 조금 걱정된다. 수업에서는 주로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내용을 가르치거든. 예를 들어 1학년 대상의 시나리오 강의라면 가장 전통적인 작법을 가르쳐야 하는 게 맞다. 근데 학생들이 혹시 이 영화를 보면 어떡하지 싶다.

 

“교수님, 제가 <미명> 봤는데요. 다시는 제 영화에 뭐라고 하지 마세요.” (웃음) 감독이 만든 영화를 수업 교재로 활용한 적은 없나.

이원영_ 절대 안 한다. 적어도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는 졸업 이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세계를 일궈야 하고, 그러려면 오히려 학교 생활하는 동안에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바탕을 제대로 쌓아야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으니까. 물론 학생들이 예술영화를 찍고 싶다고 하면 거기에 맞춰서 피드백을 주겠지만, 일반적인 극영화의 경우엔 기획안이나 시나리오를 확인하고 위험하다 싶으면 설득한다. 조금 더 고민해서 나중에 시도해보면 어떻겠냐고. 어쨌든 그 친구들이 <미명>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긴 하다.

 

관객 앞에 나서기가 힘들다고 했는데, 개봉은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나.

이원영_ 원래 개봉을 단념한 상태였는데, 임정은 감독이 옆에서 힘을 준 덕분에 어쩌다 보니 흘러흘러 여기까지 왔다. 개인적인 바람은,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이게 뭐야” 하며 바로 밀어내지는 않으셨으면 하는 거다. 아무래도 낯선 방식으로 흘러가는 영화다 보니 처음엔 갸우뚱할 수 있는데, 조금만 마음을 열어주시면 “이런 영화도 가능하구나” 하며 새로운 것을 경험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미명>을 계기로 감독도 이제 칩거를 끝내면 좋겠다.

이원영_ 뭔가에 꽂히면 금방 또 뚝딱뚝딱 만들지 않을까.

이원영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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