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자유, 불안한 세계
<광장> 김보솔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6-01-15

한 편의 영화는 언제나 한 감독의 현재를 증언한다. 김보솔 감독의 데뷔작 <광장>은 특히 그렇다. 이 작품엔 한 개인이 오랜 시간 품어온 질문과 망설임, 고집과 윤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왜 지금 북한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재현이 불가능한 세계를 그릴 때 창작자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은 어디까지 현실을 밀어붙일 수 있는가. <광장>은 정치적 해석보다 앞서 정서적 선택으로 시작된 영화다. 평양의 광장에서 홀로 원을 돌며 자전거를 타는 한 외국인의 이미지에서 출발해, 불안과 외로움, 자유라는 감각을 인물의 몸을 통해 더듬는다. 스웨덴에서 온 1등 서기관 보리와 평양의 교통 보안원 복주의 금지된 사랑이 작품의 겉면을 감싸고 있으나, 이 영화가 끝내 도달하는 곳은 사랑의 성취가 아니라 감시와 불안의 세계 속에서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한 인간의 얼굴이다. 밀실과 광장을 오가며 사람됨의 조건과 의미를 사유하려는 이 작업은, 어느새 단절된 대화를 다시 잇고자 하는 동시대의 조심스러운 시도이기도 하다. 김보솔 감독은 <광장>과 더불어 통과해 온 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얼마 전 시사회를 마쳤다. 개봉을 실감하고 있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영화제로 처음 상영했을 때와 비교하면 그리 긴장하진 않았다. 그땐 떨렸기보다는 당황했다. 전석 매진이었는데 절반이 노쇼였거든. 인사하러 들어갔는데 객석이 반쯤 비어 있더라.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다 잊어버리고 어버버하다가 그냥 나왔던 기억이 난다. 함께 작업한 오유진 감독과 “우리 망했다”라고 했는데, 그나마 위안이 됐던 건 아카데미 선생님 중 내가 신뢰하는 최주영 촬영감독님의 코멘트였다. 잘 봤다고, 본인이 1억을 투자해서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면 직접 배급하고 싶다고 해주셔서 큰 힘이 됐다.

 

칭찬을 화끈하게 해주시는 편인가 보다.

아니다. 원래 그런 분이 아니라서 더 감사했다. 그 말을 듣고 ‘어쩌면 우리 영화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영화제에 참석한 김봉석 평론가님이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써주신 것도 힘이 됐다. 말한 대로 최근에 시사회를 열었는데, 극장에서 영화를 다시 보니 솔직히 좀 힘들더라.


과거에 단편 <홈>(2019) 첫 상영을 마치고 아쉬움에 울었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광장>과는 다른 의미로 아쉬웠다. 물론 완성도 면에서 내가 생각했던 퀄리티가 아니긴 했지만, 그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랬다. 원래 <광장>을 단편으로 만들고 싶었다. 현재 영화보다 압축된, 북한에서 외교관으로 살아가는 보리에게 초점을 맞춘 이야기였다. 당시 멘토링 해주신 선생님들이 많이 걱정하셨다. 아직 우리 사회가 소화할 수 없는 이야기이고, 무겁고 민감한 주제라 섣불리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단편 <광장>을 접고, 급하게 ‘할 만한 이야기’를 찾다가 <홈>을 시작했다. 우연히 유기견 관련 기사를 읽고 거기서 출발해, 반려 로봇이라는 설정을 가져왔다. 그런데 완성하고 보니 <홈>에는 내가 없더라. 나라는 사람이 안 보였다. 지금 <광장>을 보면 내가 보이거든. <홈> 상영 마치고 그 점이 가장 속상했다. ‘나중에 필모그래피를 보면서 <홈>을 내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내 작업 여정에 발판이 되어준 작품이긴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그 불만과 갈증이 결국 <광장>으로 가는 계기가 된 건가.

무조건 <광장>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내 뜻을 더 밀고 나가지 못한 걸 후회했고, 그래서 <광장>할 때는 엄청나게 고집을 부렸다. 그야말로 주변에서 하지 말라는 것만 했던 것 같다. 북한 이야기는 하지 마라, 도청 소재는 빼라, 보리와 복주의 로맨틱 코미디로 가야 한다 등등.

 

조언과는 반대로 가는 길만 선택했네.

처음부터 우려 섞인 목소리가 많이 들렸다. 트리트먼트를 공개했을 때 “자칫 잘못하면 앞으로 네 발목 잡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라는 코멘트를 받았다. 그 정도까지 이야기가 나오면 겁이 날 법도 한데,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오더라. 나 홀로 음소거 모드였다. (웃음)

<광장>
<광장>

그렇게까지 ‘북한’이라는 고집한 이유는 뭐였나. 

딱 10년 전인 2015년, 대학교 3학년 무렵에 우연히 기사 한 편을 읽었다. 북에서 근무한 스웨덴 외교관에 관한 내용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노란 머리 외국인이 넓은 광장에서 혼자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실은 북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 자체는 십 대 시절부터 조금씩 쌓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리영희 기자를 소개해 주셨는데, 그때만 해도 ‘그런 분이 있구나’ 정도였다. 그러다 대학교 진학 후 한창 책에 빠져 있던 시기에 『대화』, 『전환 시대의 논리』 등을 접하게 됐다. 솔직히 책 내용이 어렵기도 하고 지금은 잘 기억도 안 나지만, 그럼에도 리영희 기자의 태도는 인상 깊게 남았다. 언론에서 ‘북괴’라는 말을 사용하던 시기에 처음으로 ‘북한’이라 지칭하신 걸로 안다. 북한을 옹호해서가 아니라, 지성인으로서 한 주제와 대상을 다각도로 바라보려는 노력이었다. 긴장이 극심했던 냉전 시기에 그렇듯 시각의 확장을 제안했다는 점이 놀랍게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대학에서 미술사와 미학을 공부하며 자연스레 마르크스주의를 접했다. 마르크스주의를 전혀 모르면 해석하기 어려운 작품이 많기에, 수박 겉 핥기 식이라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개념을 이해해야 했다. 게다가 내가 영화과에 다닐 때는 슬라보예 지젝이 한창 유행했다. 지젝의 철학을 이루는 근간은 마르크스주의라고 해서, 관련 서적도 읽고 친구들과 인문학 스터디도 하고 그랬다. 그 과정에서 차츰 생각이 축적된 것 같다. 군대의 영향도 있고. 지금 북한은 제대로 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체제가 아니라 왜곡된 형태, 즉 독재 체제 아닌가. 여러 고민과 궁금증이 쌓이던 중에 그 스웨덴 외교관 기사가 일종의 트리거처럼 작동했다. ‘텅 빈 광장에서 혼자 자전거를 타는 외국인’ 이미지 한 장이 ‘북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오래 생각했다 해도 느슨한 관심이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만만치 않았을 텐데.

잘 모르는 세계였으니까. 기존 미디어에서 다루는 방식처럼 북한을 그리고 싶진 않았다. 정치적 레이어를 최대한 걷어내자, 이데올로기적인 이야기를 줄이자는 생각이 강했다. 물론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과정에서 ‘도청’이라는 키워드가 나를 괴롭혔다. 아카데미에서 “도청 소재를 빼고 로맨틱 코미디로 가라” 조언을 들었을 때는 흔들리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고민하던 시기에 공교롭게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tvN, 2019)이 나왔다.


북한 배경의 로맨틱 코미디로는 이길 수 없는 작품인데. (웃음)

그렇기도 하고, 그 드라마가 북한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생각보다 되게 과감하더라. 나는 드라마의 내용 자체보다 사람들의 반응에 주목했다. 아무도 그걸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수용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 또한 조금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도청을 영화적 장치로 선택한 후엔 자연스레 <타인의 삶>(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2007)을 염두에 뒀다. 레퍼런스로 삼기는 했으나, 독일과 북한을 동일시할 수는 없었다. 결국 자료 조사를 통해 검증된 사실만 영화에 넣기로 했다. 다만, 부정적인 묘사에 치우치지 않도록 긍정적인 부분도 함께 담으려고 했다.


균형을 계속 고민한 셈이다. 북한이 아니면 성립하지 않는 감정이나 관계가 있었나. 처음엔 정치적 맥락이 중요했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서적 선택이 먼저였던 것 같다.

중요한 포인트다. 정서가 먼저였다. 앞서 언급한 외교관 기사를 읽으며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덕분에 ‘이거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던 듯하다. 영화에 필요한 정치적 내용은 이후 공부하면서 채웠고. 주로 논문과 서적을 찾아봤고, 탈북자 인터뷰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편견이 깨진 지점도 있다. ‘북한에서는 새벽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나? 말 한 번 잘못하면 총살당하는 건가?’ 막연한 공포였다. 근데 아니더라.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생각보다 실수에 관대했다. 새벽에 돌아다니고, 우리처럼 연애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더라.

 

스웨덴 외교관 보리와 북한의 교통보안원 복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눈길을 끌지만, 영화를 볼수록 명준이 주인공처럼 다가온다. 주요 인물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했나.

<광장>을 장편으로 기획하는 단계에서 보리와 복주는 이미 확실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자료 조사를 하던 중, 북한을 여행하는 외국인이 현지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곧이어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어디선가 나타나 그들을 떨어뜨려 놓는다. 보위부 직원인 거지. 그걸 보면서 ‘외국인과 만나면 안 되는 공간이구나’ 생각했고, ‘그런 조건에서 사랑이 싹트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그렇게 보리에 이어 복주라는 캐릭터가 떠올랐다. 명준도 비슷한 시기에 만들었다. 남북에 관한 이야기로 영화가 확장되면서, 보리와 대비되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봤다. 보리가 남한을 상징한다면, 명준은 북한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김보솔 ⓒ이영진

보리와 복주는 정통 멜로드라마의 결을 지닌다. 로맨틱 코미디 제안도 받았다고 했는데, 그 방향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나.

명준이 중요했으니까. 시나리오 집필 기간이 총 8개월인데, 반년쯤 지났을 때 박소혜 피디에게 부탁했다. 인터뷰해야겠으니 평양에 계셨던 분을 섭외해 달라고. 질문을 정리했더니 A4 네 장 분량이 나오더라. 낯선 세계를 다루는 과정에서 궁금한 점이 그만큼 쌓였던 거다. 북한 보위부에서 활동하셨던 오진아 감독님을 그렇게 뵙게 됐다. 한 번은 대화를 마치고 짐 정리하다가 내가 여쭤봤다. “북한에 계실 때 외로우셨던 적은 없으세요?” 오 감독님이 잠시 생각하더니 “외로웠던 적은 없습니다. 불안했으니까.”라고 답하셨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나리오를 명준 중심으로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이는 셰익스피어로 알려져 있는데, 사회적으로 통용된 시점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라고 한다. 사람이 자신의 쓸모와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외로움이 찾아온다는 거다. 보리는 북한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반면, 명준은 이전까지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명준이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과연 언제일까? 명준이 외로운 순간은 어쩌면 자유를 느끼는 순간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물론 외로움과 자유에 다다르는 길은 멀고, 그를 둘러싼 세계에는 불안의 장막이 두껍게 끼어 있다. 명준이 보리를 바라보고 뒤쫓으며 그 장막을 하나씩 통과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가 불안을 뚫고 자유를 느끼는 순간, 보리의 외로움이 그에게 전이되는 순간을 클라이맥스로 삼았다. 영화를 그 지점으로 달리게 만들고 관객에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면 <광장>은 나쁘지 않은 결과를 낼 거라 믿었다. 인터뷰하고 나서 남은 2개월간 시나리오가 정말 빠르게 풀렸다. 감자 캐는 느낌이었다. 줄기 하나 뽑았더니 알맹이들이 와르르 딸려오는 거다. 그전까지 모아 놓은 아이디어가 하나로 엮이면서 이야기가 단숨에 완성됐다.


정보량은 가장 적지만, 낭만화와 도식화의 위험에서 벗어난 점이 인상적이다. 명준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목표로 한 지점이 있었나.

인물 자체는 금세 만들었다. ‘보리가 대사관에서 근무하니까 그를 수행하는 통역관이 필요하겠다. 그런데 북한 정부가 통역관 역할만 하게 두지는 않겠지? 통역관인 척 곁에 있지만 실은 정보 탈취를 목적으로 보리를 감시하는 보위부면 어떨까. 그 상황에서 복주와 보리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명준이 알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순서였다. 그러다 명준이 주인공이라는 설계는 시나리오 최종고에서 확정됐다. 관객이 명준에게 동화되는 것이 목표였다. 보리와 복주의 로맨스는 일종의 포장지다. 상자를 열어보면 그 안에 명준이 있다. 명준 대사 중 “외로워서 그런가 봅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말 속에 “나는 자유를 느껴봤다”라는 고백이 숨어 있다고 봤다. 관객이 그걸 이해한다면 작품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명준의 롤모델은 딱히 없는데, 자문에 응해주신 오진아 감독님을 이따금 떠올렸다. 스마트하시거든. 딱 봐도 엘리트라는 느낌이다. 보위부가 되려면 일단 대학에서만 7년을 공부해야 한다. 감독님 머릿속에는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 역시 지도로 정리돼 있고, 영화 속 복주의 고향도 감독님께 도움을 구했다. 실제 평양에서 편도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으로 설정해달라고 요청해서 주소를 받았거든. 한편으로는 오진아 감독님을 포함해 여러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분들이 탈북 전에 느낀 혼란에 마음이 갔다. ‘북한에서 이야기하는 남한이 진짜 남한일까? 내가 교육받은 내용이 진실일까?’ 그런 혼란스러운 상태를 명준에게 투영한 것 같다.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쩔 도리 없는, 거짓된 사회에서 충성을 연기해야 하는 괴로움.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은 그런 괴로움, 혹은 외로움을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었나.

남북한을 다루는 이야기인 만큼 통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언가가 바뀌는 시점을 떠올렸을 때, 한국 정서로는 1월 1일이 대표적이라고 봤다. 한 해가 끝나고 새해로 넘어가는 시간을 기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 좋을 듯했다. 그러니까 겨울이라는 계절보다는 ‘전환과 어울리는 시기는 언제일까?’라는 질문이 먼저였고, 그 답이 1월 1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크리스마스가 등장하고, 연말과 연시로 흐름이 이어지고, 우리가 광화문에서 새해맞이 행사를 열듯 평양 시민도 신년에 김일성광장에서 공연을 즐긴다는 사실을 자료 조사로 알게 되고, 영화에 불꽃놀이 장면이 들어오고… 이런 식으로 하나씩 맞물려 갔다. 그와 동시에 눈과 입김 등 겨울을 드러내는 요소 또한 영화에 포함됐다. 말한 대로 겨울은 외로움이라는 정서와 맞닿는 계절이기에 배경으로서 잘 어울렸다. 한편, 눈은 내게 정화와 해소의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했다. 극 전개상 갈등이 피어나거나 고조되는 순간에 눈을 내리게 했다. 갈등을 무마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우선 갈등을 드러내야 나중에 해소나 정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

 

신년은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시기인데, 영화에서는 그 기점을 지나 이별이 등장한다. 엔딩을 찾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 마지막 장면을 먼저 떠올리고 글을 쓰는 감독들도 있지 않나.

결과부터 말하자면, 엔딩은 끝까지 고민했다. 원래는 다른 엔딩을 계획했고, 예전 스토리보드를 보면 ‘내가 저런 엔딩을 생각했던가?’ 싶다. 초고 단계에선 조형적 일치를 중요하게 여겼다. 중심 이미지는 원이었다. 자전거가 광장에서 원을 그리며 돌고, CDP와 도청기, 계란 등 원형의 사물이 등장하고, 복주가 근무를 서는 자리도 흰색 페인트로 원을 그려 표시한다. 본래 보리와 복주가 그 원 안에 서 있다가 보리가 복주의 팔을 잡고 원 밖으로 뛰쳐나가는, 그때 두 사람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익스트림 롱숏으로 엔딩을 생각했다. 그 후 보리가 아닌 명준을 주인공으로 정하며 엔딩을 새로 쓰게 됐다. 무조건 명준으로 마무리하고 싶었고, ‘아직 숙제가 남아 있다’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앞서 말했듯 보리는 남한, 명준은 북한을 상징한다.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주체탑과 김일성광장이 마주 보는 평양 풍경처럼, 그들 사이에도 미해결 과제가 강처럼 놓여 있는 결말이 맞겠다고 생각했다. 엔딩에서 명준은 광장에서 자전거를 탄다. 보리가 그러했듯  혼자 하염없이 원을 그리면서. 보리의 외로움이 명준에게 전이된 것처럼 보이길 바랐다. 동시에 프레임 아웃 없이 계속 그 장면을 비추는 것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흔히 떠올리는 애니메이션의 화려함이나 귀여움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화면은 무채색에 가깝고 컷의 전환도 빠르지 않다. 더하기보단 덜어낸 것이 많아 보이는 가운데, 초고 단계에서 중요하게 여겼다는 원형 이미지의 조형성과 감시의 시선이 반복되는 구도가 눈에 들어온다. 

제작비와 맞물린 선택이기도 했다. 장면 움직임이 많아지면 그만큼 시간이 소요되니까. 물론 이건 부차적 이유고, 북한을 다룬다는 조심성이 시나리오 단계부터 형식의 구현까지 반영된 것 같다. 크리틱 과정에서 오성윤 감독님이 “나도 절제해서 쓰는 편이지만, 너는 좀 심하다”라고 하시더라. 

<광장>
<광장>

경직되어 있다는 뜻인가?

맞다, 박헌수 감독님은 “인물들이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느낌”이라고 피드백을 주시기도 했다.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다 보니, 한동안 인물들을 제한했던 것 같다. 나가야 할 때는 나가야 하는데 선뜻 결정하지를 못했다. 그 와중에 <사랑의 불시착>을 보면서 계속 밸런스를 고민했다. 주어진 제작 환경에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드라마를 전달하는 방법, 정적인 이야기 안에서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 결과로 중요해진 요소들이 눈, 입김, 담배 연기, 그리고 볼터치였다. 이 네 가지는 신경을 많이  썼다. 특히 인물들의 붉게 튼 볼은 오유진 감독의 판단을 전적으로 따랐다. 우리가 돈이 없다 보니 화면 안에서 뎁스를 표현할 길을 다각도로 궁리했거든. 최소한의 작업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방안을 찾았다. 볼의 텍스처 살리기, 그림자의 윤곽선을 없애고 노이즈 걸기, 그리고 배경에 켄트지 같은 질감 넣기.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인데, 간단한 공정으로도 스틸 이미지에 깊이를 줄 수 있었다.

 

작은 규모인 만큼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겠다. 

파이널 룩을 빨리 정했다. “스크린에 상영될 <광장>의 최종 이미지는 이거”라고 미리 확정했다는 뜻이다.  그건 최대치가 아니라 최소치다. 최소한 여기까지는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목표치의 이미지를 정해두고, 앞으로 작업할 모든 컷을 그 퀄리티에 맞추는 방식이다. 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테스트 샷을 두세 컷 정도 만들었다. 굉장히 중요한 과정인데, 생각보다 이걸 건너뛰는 경우가 많더라. 비단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실사 촬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촬영감독은 아예 색보정까지 직접 해서 테스트 샷을 만들어 본다고 하더라. 결국 미니멈을 무엇으로 정하는지에 따라 이후 작업에도 기준이 생기니까.

 

전작에서 고집을 부리지 못해 후회했다고 했다. <광장>에서는 미학, 제작 방식, 서사 등 어떤 영역에서 가장 고집을 부렸다고 보나. 

서사다. 어쨌든 내가 만들고 싶었던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영화가 아닌 글의 상태일 때는 읽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 상상하는 이미지도 다르고, 이야기에서 장점으로 보는 지점도 다르다. 근데 그 글이 어떻게 영화화될지는 감독만 안다. 제일 중요한 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거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으로 무장한 이들을 당장은 설득하기 어렵지만, 감독은 그만의 직관이 있거든. 물론 나도 꽤 많이 두드려 맞았다. (웃음) 그래도 논리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걸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흔들릴 때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면, 적어도 나랑 비슷한 사람은 내 영화를 좋아해준다”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광장>에 내가 들어 있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인물과 이야기에 나다운 결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년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콩트르샹 부문 심사위원특별상을 차지하며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 받았다. 말하자면 감독과 작품에 국제적 위치가 생긴 셈인데, 그런 경험이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에 대한 시선이나 전망을 바꿔놓기도 했을까.

그걸 체감할 정도로 해외영화제 관계자나 외국 친구들과 대화한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다. 다만 <광장>을 통해 스스로 변화했다고 느끼는 지점은 분명히 있다.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나는 줄곧 애니메이션을 대하는 타 영화인의 시선이 불편했다. ‘뭐 그건 애니메이션이니까’ 하듯 쉽게 넘기는 태도, 실사의 하위 장르처럼 보는 시선 말이다. 굉장히 자존심 상했다. 나나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2023)을 연출한 박재범 감독이나 다들 열받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실사 영화도 해봤으니까. 근데 작품을 보면 연출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전투력이 얼마나 되는지 사실 측정이 되거든. 내 눈에 보이니까 더 화가 난다. 앞으로 내가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태도는 이거다. ‘애니메이션으로 실사를 다 때려잡는다.’ 실사 영화를 하는 건 그 후에, 애니메이션으로 실사를 이긴 다음에 결정할 일이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정체화하고 있나.

연출자라고 생각한다.


그럼 언제 ‘아, 내가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끼나.

현실에 보이는 어떤 논리와 현상을 24분의 1로 쪼개서, 그것을 다시 평면 위에 펼쳐놓을 때.


그 작업을 즐기는 편인가.

즐긴다기보다는 그냥 해야 하니까 한다. 작업 대부분은 힘들고 고단하다. 시나리오를 스토리보드로 옮길 때만 유일하게 재미있다고 느낀다. 머릿속에 이미지가 꽉 차 있는 상태에서 쏟아내듯 그리거든. <광장>의 경우, 파이널 스토리보드가 762장인데 첫 스토리보드가 692장이었다. 그 사이 수정을 거듭하며 거의 여덟 번을 고쳤다. 다시 그리고 또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물론 그 속에도 순간순간 재미가 있지만, 말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나는 스토리보드 작업 자체보다도 그걸 완성할 때의 개운함을 좋아하는 것 같다.

<홈>
<홈>

퀄리티도 퀄리티지만 장편 애니메이션의 작업량을 소화하려면 손발 맞는 동료가 필수적이다. 현재 팀으로 작업하고 있나.

현재로서는 오유진 감독을 제외하면 팀원이 따로 없다. 유진과는 <홈>부터 함께하고 있다. <홈>에서는 유진이 배경을 도와줬고, <유니크 타임>(오유진, 2023)에서는 내가 조연출과 컴포지션 등을 맡았다. <광장>의 경우, 프로젝트 기간 내내 유진이 프로덕션 디자인과 조연출을 담당했다. 동화(動畵, In-between)는 한희정 선배님이 오랫동안 도와주셨고, 배경은 Creative SUMM과 작업했다. 사실 팀을 꾸리기가 어렵다. 실사 영화는 기술 스태프들이 한 작품 끝나면 다음 작품으로 이동하면서 산업 구조가 유지되는데, 애니메이션은 그렇지 않다. 고정된 팀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제작사가 있긴 하지만 퀄리티 편차가 크고, 같은 레벨의 스태프들을 모은다고 해도 작화 감독에 따라서 아웃풋이 완전히 달라진다. 결국 누가 컨트롤하느냐의 문제다. 다음 작업부터는 팀을 이뤄서 가고 싶다는 바람은 있다.


어느 정도까지 스태프를 꾸리면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을까.

원화 스태프. 거기까지 가는 것도 무척 힘들다. 2D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숙제가 ‘한 사람이 그린 것처럼 보이는 그림’을 만드는 거라고 하지 않나. 선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기에 거친 선을 다듬는 클리너가 있고, 원화와 원화 사이를 채우는 동화가 있다. 이 동화가 서로 손이 맞았을 때 원화로 가야 하는 거다. 작업자들이 같은 그림체를 구사하는 데만 최소 6개월은 걸린다고 본다. 팀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다. 결국 도제 시스템이 가장 안정적으로 아웃풋을 낼 수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모든 스태프를 같은 그림체로 훈련시키는 것도 그래서다. 개성을 지운다는 비판을 받지만, 장편 애니메이션을 기준으로 본다면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광장> 만들면서도 유진 감독과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


힌트를 준 사례가 있다면. 

지난 여름에 한지원 감독님을 만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이 별에 필요한>(2025)이 공개된 직후였다. ‘팀 운영’은 모든 2D 애니메이터의 숙제이기에 자세히 물어봤다. 한 감독님은 국내 최고 수준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레드독컬처하우스와 작업했는데, 두 팀을 동시 운영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하더라. 제작사에 기본 팀을 마련하되, 감독님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거나 난이도가 높은 컷은 별도로 구성한 팀에서 직접 처리했던 거다. 당연히 그 팀은 각 파트에서 실력이 검증된 분들을 모아 구성했고. 그렇다고 레드독을 소홀히 대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인상 깊었다. 보통은 감독이 오퍼를 주고 결과물을 받는 구조인데, 한지원 감독님은 중간에 검수 절차를 두 번 정도 더 추가했다고 하더라. 본인이 만족할 만한 작화 스타일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다음 팀을 꾸릴 때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선례라고 느꼈다.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으로 작업하는 스페셜리스트를 모아서 팀을 구성하는 방식도 가능하겠구나 싶었고.


요즘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애니메이션 작품이나 감독이 있다면.

국내에서는 한지원 감독님이 가장 궁금하다. 다음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제작 파이프라인을 어떻게 설계할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할지 관심 있게 보고 있다. 해외의 경우, <내 몸이 사라졌다>(2019)를 만든 제레미 클라핀 감독, 안시에서 만난 우파마뉴 바타차리야 감독을 언급하고 싶다. 우파마뉴 감독과 잠깐 대화를 나눴는데 ‘이 사람 천재구나!’ 했다. 차기작으로 바느질하는 인도 여성 노동자에 관한 장편을 준비 중이라고 하더라. 감독의 할머니가 그 일을 하셨다고. 인도 전역의 바느질 노동자들에게 한 프레임씩 손수건에 바느질을 맡겨서, 그 결과물을 스톱모션으로 사용하는 프로젝트라고 한다. 그 서사와 형식이 어떻게 완성될지 정말 궁금하다.


감독 역시 더 큰 플랫폼이나 해외 제작사와의 결합도 고민할 것 같다. 

모든 가능성에 완전히 열려 있다. 길게 보면 해외 쪽을 하고 싶다. 다음 작품은 어렵겠지만, 다다음 작품은 글로벌 프로젝트로 진행했으면 한다. 일단 4월까지 차기작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게 목표다. 글이 완성되면 지원과 투자를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녀야 하겠지. 영화제를 통해 해외의 다양한 펀딩 시스템을 접했다. 국내는 규모가 작기도 하고, 불공정한 시스템도 많다. 일례로 국내에서 계약을 하면 시나리오 저작권은 물론이고 IP 판권까지 다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게 치명적이다. 신진 창작자의 가능성을 꺾어버리는 구조인데, 사실상 창작자에게 유리한 계약을 찾아보기 힘들다. 계약금도 너무 적고. 그래서 요즘 영어 공부 열심히 한다. 좋은 시스템을 보니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적인 이야기를 하더라도 밖에서 만들고 싶다.

 

규모가 커지면 감독이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도 넓어질 텐데. 

직접 겪어봐야 알겠지만, 웬만하면 양보는 가능할 것 같다.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대화를 통해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김보솔 ⓒ이영진

선택의 기로에 설 때, 망설임이나 의심을 누그러뜨려주는 존재가 있나.

우리 스태프들. 오유진 감독뿐만 아니라, 이도현 촬영감독까지 우리 세 사람은 벌써 세 작품째 함께하고 있다. 이도현 촬영감독은 스토리보드와 색보정, DCP까지 도와줬다. 촬영도 촬영인데, 시나리오를 정말 잘 본다. 이런 말하면 싫어하려나. (웃음) 셋이라는 숫자가 딱 좋다. 미안한 얘기지만 내가 유진 말을 잘 안 듣거든. 유진이 뭐라고 하면 혼자 고집을 부리다가도, 유진과 도현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면 ‘내가 잘못 생각했나?’ 다시 보게 된다. 유진이 뭔가를 지적하면, 도현은 그걸 논리적으로 설명해주는 식이다. 한편, <광장> 작업을 놓고 보면, 시나리오를 쓸 때 최윤구 선생님은 뵌 것이 기억에 남는다. 2019년 10월,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문화토크: 최인훈의 『광장』을 이야기하다’라는 특강이 열렸다. 이틀 뒤에 아카데미에 시나리오를 제출해야 했는데, 도무지 해결이 안 되던 시기였다. 집이 김포라서 과천을 다녀오면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왠지 그 기회를 놓치면 안 될 듯해서 집을 나섰다. 최인훈 작가의 장남이자 음악 칼럼니스트인 최윤구 선생님이 아버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그때 『광장』 초판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셨다. “한 시대를 풍문 속에 사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최윤구 선생님은 “아버지가 5~60년대 분단의 비극을 직접 겪은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슬퍼하는 마음에서 이 소설을 토해내듯 쓴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시나리오를 쓰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고, 내가 북한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큰 영향을 줬다. <광장> GV에서 “북한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객관성을 유지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다소 공격적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최윤구 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를 꺼냈다. 맞다, 뭔가를 재현하는 순간부터 객관성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중요한 건 창작자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태도가 남는다. 내가 다루는 주제와 인물에 대해 진심으로 공부하고, 다각도로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앞으로 작업하면서 계속 붙들고 갈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스튜디오 이름이 ‘밀실광장’이더라. 팀명에 담긴 의미가 있나.

소설의 영향을 받았다. 『광장』은 밀실과 광장이라는 두 공간을 다룬다. 집단을 이루고 사회화를 수행하는 광장, 개인과 개성이 보존되는 밀실. 이러한 두 공간이 유기적으로 순환할 때 건강한 인간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밀실과 광장을 붙여 스튜디오 이름을 지었다. 애초 미술을 전공하다가 영화로 방향을 튼 이유도 인간을 다루는 작업에 집중하자는 마음이었거든. 


리영희를 탐독하던 20대 초반의 감독에게도 ‘풍문 속에 사는 슬픔’을 처음 맛본 순간이 있었을 것 같다. 세상의 불완전함을 목격하기 시작한 시기였을 텐데, 어떤 여정을 거쳐왔나.

나는 무난한 학생이었다. 디자인 학부 안에 영화과가 있는 학교였고, 입학 당시엔 미디어 아트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 그림도 그려볼까 싶어서 서양화과 수업을 들었는데,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해서 실망했다. 한 선배가 예술학과 수업을 한번 들어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그렇게 미학과 철학을 접하면서 확신이 생겼다. 아, 나는 영화를 해야겠구나.


어째서?

미술은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10년이나 흘러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공부할 당시엔 서유럽 미술에 두 가지 커다란 흐름이 있었다. 공공미술과 참여미술. 둘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은 ‘세상을 유토피아로 볼 것인가’ 아니면 ‘유토피아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볼 것인가’였다. 반골 기질이 있어선지 나는 참여미술 쪽에 끌렸다. 근데 2016년 무렵, 과거 국내에서 저항미술이라고 불리던 큰 사조를 조명하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다. 그때 부유층이 그림들을 사가는 모습을 보며 혼란이 왔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미술을 사랑하고, 좋은 작품과 작가를 찾아보는 관객도 있다. 다만, 영화에 비해 미술은 ‘표면적’이 작다고 느꼈다. 난 가능하면 표면적을 늘리고 싶은 쪽이었고. 철학을 공부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다. 철학은 결국 인간 존재에 관해 질문하는 학문인데, 인간을 탐구한다는 의미에서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는 인류가 만들어낸 예술 중에 가장 멋있는 장르이자, 종합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0대 중반쯤, ‘영화 감독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던 것 같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 시절 내가 제일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건 게임이었다. 스타크래프트를 미친 듯이 했지. (웃음) 예술학과에 다닐 때는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학기 시작부터 계절학기 끝날 때까지 하루에 네 시간만 자면서 책 읽고 글 쓰고 그랬다.


공부가 좋아서였나.

좋고 재밌어서 했다. 잘하진 못했다. 처음엔 학점도 C만 받았다. 글을 안 쓰던 사람이 논술로 대학 들어온 친구들이랑 시험을 같이 보니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점차 성적이 올라서 졸업할 때쯤엔 A도 나왔다. 무엇보다 그곳에서는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다. 내 생각의 끝을 부정하고, 새로운 막장에서 다시 한 삽을 뜨는 방식. 그러한 사고 방식은 창작과 많이 닮았다. 한계를 100이라고 생각하지만, 이후 101, 102, 103으로 넘어가는 순간이 있다. 창작은 그때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 애니메이션으로 오게 된 과정에는 또 다른 계기가 있었나.

대학교 영화과 졸업작품이 애니메이션이었다.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대학에서는 ‘연출을 굳이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봤을 때 연출은 결국 커뮤니케이션인 것 같았거든. 그래서 학부 시절에는 연출이 아니라, 최대한 여러 파트를 경험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촬영을 주로 했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스토리보드도 많이 그렸다. 그러다 졸업 시기가 다가왔고 ‘딱 졸업작품만 연출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때 기차 안에서 <묘생> 시나리오를 썼는데, 실사로 찍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아홉 개의 목숨을 가진 고양이가 사람으로 환생하는, 피가 낭자한 내용이거든. (웃음) 일단 주인공이 고양이다 보니 촬영 자체가 어려웠다. 애니메이션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다음부터 독학했다. 그 후 회사에서도 잠시 일했고, 프리랜서 기간도 거쳤다. 인디밴드 ‘이상의날개’와 뮤직비디오를 다섯 편 정도 만들면서 포트폴리오가 쌓였고, 그 작업물을 바탕으로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지원했다. 제대로 한 편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광장>
<광장>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원한 건가.

영화감독을 꿈꿨을 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단편이 없었다. 앞서 말한 ‘표면적’과도 연결된다. 가능한 한 표면적을 늘리고 싶었고, 단편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봤다. 영화를 공부하면서 내가 매료된 지점도 이와 연결된다. 히치콕, 세르지오 레오네, 봉준호 감독처럼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자기 예술을 펼치는 감독들이 멋져 보였다. 투자사도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본인이 원하는 바를 실현하는 방식에 감탄했고, 내 지향점 역시 늘 그쪽에 있었다. 근데 <광장> 개봉이 다가오니 ‘표면적이 넓다’는 것이 무섭기도 하더라. ‘다른 감독님들은 어떻게 이런 공격을 받아내면서 두 편, 세 편씩 계속 만들지?’ 오늘 아침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는데, 피드에 때마침 ‘감독들이 불안을 이기는 방법’에 관한 게시글이 뜨더라. (웃음) 그 중 박찬욱 감독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한다는 건 원래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지금 만들고 있는 이야기와 과정에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한다고 하시더라. 


문학, 철학, 미학을 거쳐 영화를 택했고, 그 이유는 인간을 향한 관심과 탐구심이라고 밝혔다. 인간의 어떤 면에 끌리나. 사람을 좋아하는 편인가.

인간애는 없는데, 인류애는 있다. (웃음) 사람 자체보다는 사람을 둘러싼 여러 주제에 관심이 있다. 영화를 만들 때 “이 이야기가 왜 지금 여기에 필요한가?”를 많이 고민한다. 동시대성을 중요히 여기는 편인 것 같다. 동시대 안에서 얼마나 유의미한 작품을 낼 수 있는지가 내겐 핵심적인 척도다. 내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영화의 목록을 작성해보면 대부분 그렇더라. 이따금 체험으로 다가오는 영화들이 있다. 완성도 이전에 어떤 체험을 남기는 영화들. 그래서 내가 쓴 ‘위대한 영화 리스트’에는 <아키라>(오토모 가츠히로, 1991) 같은 영화가 있다. 나를 애니메이션에 입문하게 한 작품이거든. 영화 공부할 때 사운드 선생님이 “사운드가 훌륭하다”면서 사무실에 DVD 있으니 한번 보라고 하셨는데, 세상에 이런 애니메이션이 있구나 싶었다. 그 뒤에 지브리 작품과 ‘에반게리온’ 등을 접하면서 세계가 확장됐다.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는 <하나 그리고 둘>(에드워드 양, 2000)이다. 한참 부산에서 학교 다니며 힘들던 시기에 영화의전당에서 상영하기에 PD랑 봤다. 극장 나와서 “와 미쳤다, 최고다!” 그랬지. 영화의전당 상영 버전과 기존 OTT 제공 버전의 번역이 살짝 달랐는데, 기억에 남는 대사는 “당신은 사람 소중한 줄 몰라”라는 말이었다.


인류애가 느껴지는 작품이지.

등장인물의 인류애라기보다, 감독의 인류애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말하다 보니 알겠다. 그래서 내가 켄 로치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최근엔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을 보면서도 감탄했다. 정말 대단하더라.


감독이 생각하는 <광장>의 동시대성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성장한, 이곳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더는 북한이나 통일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 시대 아닌가. 예전엔 이산가족이 존재했으니, ‘혈육이 저곳에 살고 있다’라는 감각이 있었다. 그건 진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은 남과 북이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끊겨 있는 상황에 가깝다. 우리 또래가 만든 미디어 콘텐츠에서조차 북한을 과장되게 소비하고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맥이 끊긴 상황에서, <광장>이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는 작품 중 하나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쨌든 북한에서는 이 이야기를 만들 수 없으니까. 남한에 있는 내가 하면 그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나, 합리화하기도 했다. 솔직히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고되다 보니 “우리 영화 의미 있어”라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설득할 수밖에 없다. 그게 필요하다. 외롭고 지치고, 다 포기하고 싶을 때 붙잡을 동아줄 같은 거다.


다음 작업을 생각하면 더 커지고 싶은 것과, 반대로 줄여도 되겠다 싶은 것이 있나.

줄이고 싶은 건 없다. 다 커져야 한다. 규모도, 제작 스태프도, 투자 규모도 더 크게 하고 싶다. <광장>을 끝내고 나서 제대로 임금을 받았으면 얼마였을지 계산해본 적이 있다.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줄 거 다 주고, 최저임금 지키면 대략 8억 9천만 원이었다. <광장>이 10억 미만이라면, 차기작은 30억에서 60억 사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는 돼야 내가 원하는 퀄리티와 속도가 가능하겠구나 싶다. 나 자신도 확장돼야 한다. 부족했던 지점들도 많았다. 고해성사를 하자면, <광장>에서 캐릭터를 나이브하게 다룬 인물들도 있고, 연출적으로 창피한 지점들도 있다. 그림을 그리는 뇌와 연출하는 뇌가 다른데, 스위치 전환이 쉽지 않다.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노동력을 전부 쏟아내야 하고, 그러면 연출 영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계속 방치하다가 시간에 쫓겨 급하게 연출 작업에 들어가면 퀄리티가 떨어진다. 내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태프, 혹은 그걸 가능하게 하는 예산이 마련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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