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영화제에서 장요훈을 만나지 않기란 어려웠다. 제5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시지프스의 공전주기>(김채현)와 <스포일리아>(이세형)을 포함해 <졸음쉼터>(정혜윤) <블랙홀을 여행하는 메탈밴드를 위한 안내서>(전아현) 등 그가 출연한 단편영화 여러 개가 전국 곳곳을 돌며 관객과 마주했다. 장요훈은 밉상과 지고지순을 오가는 애인이었다가 비밀을 찾아 먼 우주를 헤매는 탐구자로 나타났고, 어느 날엔 메탈의 신에게 계시를 받는가 하면, 밤잠을 쫓으려는 운전수 앞에서 쉼 없이 춤을 추기도 했다. 서로 다른 주제를 내걸어 아우성치는 영화 속에서 장요훈은 재주도 좋다 싶을 만큼 자유롭게 움직인다. 장르의 톤에 밀리지 않고 자기 결을 선보이며, 부조리한 세계를 파고들고 쓴맛과 단맛이 뒤엉킨 관계를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인터뷰에서 그는 이름을 자주 언급했다. 친구, 선배, 동료, 선생, 우상. 그 이름들이 곧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고, 지금껏 수많은 우연을 필연으로 다져왔기 때문이다. 삶이 그러하듯 현장에는 크고 작은 혼란이 가득하지만, 장요훈은 그 속에서 길을 잃기보다 에너지를 얻는 것처럼 보인다. 부딪히고 뒹굴며 미지의 시공간을 몸소 탐험 중인 그와 잠시 동행했다.
공연 <19호실> 준비로 요새 바쁘다고 들었다. 데뷔도 연극으로 했던데.
극단 걸판의 연극 <늙은 소년들의 왕국>을 보고 연기를 시작했다. 왕국을 잃은 리어와 왕국을 찾아 떠도는 돈키호테가 서울역 광장에서 만나는 이야기다. 둘 다 노숙자로 지내던 중에 버림받은 한 소년을 발견하고, 그를 위해 박스로 왕국을 세운다. 깔깔 웃다가 끝내 마음이 먹먹해지는 작품이었다. 객석에서 초연을 봤던 해가 2014년이다. 극단 선배 중 한 분이 단원고 연극부 교사였는데, 연극부 아이들 여덟 명 모두 세월호 참사로 희생됐다고 하더라. 본래 코미디 색이 좀 더 짙은 공연이었으나, 참사 이후 방향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고 들었다. 극에 담긴 감정 자체가 자연스럽게 변화했고,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연습을 며칠씩 쉬기도 했다고. 그 공연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작품과 현실이 묘하게 겹쳐 보였고, ‘이런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구나. 나도 이 집단에 함께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꽤 늦은 나이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했겠다.
극단을 나와서 스물다섯에 17학번으로 입학했다. 이미 졸업은 했는데, 동기와 후배들이 불러줘서 한예종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특히 18학번에 대단한 친구들이 많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스포일리아>의 이세형 감독부터 <성적표의 김민영>(2022) <헨젤: 두 개의 교복치마>(2024) 등을 연출한 임지선 감독, <성덕>(2022) <이상현상>(2025)을 만든 오세연 감독 등 각자 매력이 달라서 재밌다. 최근에도 지해일 감독의 졸업작품 <탐>을 함께했다. 자신도 다른 동기들처럼 영화제 가서 GV 할 거라며 기합을 넣더라. 같이 이를 갈며 찍었다. (웃음)
원래 전공은 물리학이라고.
어릴 적부터 과학을 좋아했다. ‘상대성 이론 키즈’거든. 2005년이 특수상대성이론 발표 100주년이었는데, 당시 내가 중학교 1학년이었다. 어머니 따라서 상대성이론 특별전에 갔다가 과학에 매료됐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읽고 네이버 지식인 들락날락하면서 질문하고 답하고. 좋아하니까 잘했던 것 같다. 그러다 운 좋게 대학에 갔는데 막상 학기 시작하니 적응을 못 하겠더라. 내가 생각한 커리큘럼이 아니었고, 성적이 떨어지면서 스트레스도 심해졌다. 결국 동아리 활동에만 매진하고 수업은 거의 안 나갔다.
동아리는 어떤 걸 했나.
연극 동아리랑 통기타 동아리. 그러다 연극 동아리만 계속했다. 대학은 한 학기만 다녔는데 연극 동아리는 몇 년을 했지. (웃음) 오동민 배우, 오정민 감독 등도 그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들이다.
발이 넓겠다. 올해 영화제에 초청받은 작품이 워낙 많아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뛰어다니는 듯했는데, 서독제에서도 한바탕 만남의 장을 열겠구나 싶다. 단편 두 편을 상영하게 됐는데.
실은 <지느러미>(박세영)와 <극장의 시간들>(이종필, 윤가은, 장건재)에도 출연한다. 다 합하면 네 편이다. (웃음) <극장의 시간들>의 경우, 이종필 감독님과 <탈주>(2024) 이후 <침팬지>로 두 번째 작업을 함께했다. 돌이켜보면 참 감사한 한 해다. 촬영이 많지는 않았지만 영화제에 초대받는 일이 계속 이어졌고,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에서 처음으로 에피소드 인물을 맡아 세 달 동안 촬영하기도 했다. 상반기에는 <블랙홀을 여행하는 메탈밴드를 위한 안내서>가 슬램댄스영화제에 초청돼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왔다. 출연한 배우들 모두 동갑내기거든. 처음엔 “갈까, 말까?” 하다가 항공권 찾아보고 바로 결제했다. “왕복 45만 원이면 가야지!” 영화제에는 이틀 정도 머무르고, 나머지 시간엔 여행했다. 그랜드캐니언도 가보고.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다시 시위에 나갔다. 그러네, 이렇게 말하니 유난히 시간이 빨리 흐른 해 같다.


작년 서독제 기간에 계엄이 선포됐으니까. 벌써 1년이 지났네.
그날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긴 오디션을 보는 중이었는데, 같이 참가했던 친구들과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뉴스 속보를 보고 잠깐 고민했다. 내가 삼겹살을 사겠다고 애들 불러놓은 상황인데, 이걸 어쩌지 하고. 전날에 세형 감독이랑 <이처럼 사소한 것들>(팀 밀란츠, 2024)을 봤다. 영화와 현실이 공명하면서 더 화가 올라오더라. 때마침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절대 국회로 가지 마라” 하시더라. 어머니가 광주 사람이거든. 본인이 보고 겪은 바가 있으니 많이 걱정하셨던 것 같다. 그날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그 다음 주부터는 거의 매주 집회에 나갔다. 이렇게 말하면 우습지만 정기 모임하는 기분이었다. “오늘 시위 가요?”, “어디서 만날까?”, “끝나고 밥 먹자” 이런 식이었다. (웃음)
고생한 한 해였다. 거리에서든 극장에서든 사람 만날 일이 잦았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을까.
조치원필름로맨스 영화제 폐막식에서 처음으로 사회라는 걸 맡았다. 작은 영화제 특유의 다정하고 친밀한 공기가 좋았고, 운 좋게도 출연작 두 편이 관객상을 받아서 더 뜻깊었다. 어쨌든 올해 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작품들이 연기상을 받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스포일리아>는 기술적 완성도라든지 세계관 자체로 주목받는 영화이고, 다른 작품들 또한 연기만 놓고 봤을 때는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 그래도 사람들이 좋아해주니까 힘이 났다.
배우가 본인 연기에 만족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렇긴 한데, 나는 내 연기를 자주 보는 편이다. 계속 봐야 뭐가 보이는 것 같다.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알레프(ALEPH)의 ‘아무도 그대를 바라지 않는’ 뮤직비디오. 대사가 없어서 더 좋은가 보다. 사람들이 내 목소리와 대화를 상상하면서 보게 되지 않나. 영상도 예쁘게 나왔고, 유튜브에서 좋은 댓글을 보면 기분도 좋아진다. 영화 중에서는 아무래도 <스포일리아>를 제일 많이 봤다. 영화제를 여러 곳 가다 보니 자연스레 접할 일이 많다.
영화제에서 다양한 피드백을 접했을 텐데 새로 알게 된, 혹은 확실해진 ‘배우로서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
밝거나 코믹한 결이 많이 보였던 것 같다. 어떤 관객이 “혹시 코미디를 주로 하는 이유가 있나요?” 묻더라. 사실 코미디만 하는 건 아니다. 학교 밖 청소년, 이별을 앞둔 연인 등 아픔이 있는 캐릭터도 맡았다. 다만, 올해 공개된, 그리고 대체로 주목받은 작품들의 특성상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유쾌한 이미지가 생긴 것 같다.
반대로 말하면 컨셉추얼한 작품에서도 배우로서 존재감을 지켜냈다는 뜻 아닐까. 작품의 개성과 나의 욕구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균형을 잡으려고 했나.
그런 작품들, 저만의 세계와 개성이 뚜렷한 감독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올드보이>(박찬욱, 2003), <지구를 지켜라>(장준환, 2003) 좋아하거든. 최근에 <세계의 주인>(윤가은, 2025) 보면서도 가슴이 뛰었다. 특수한 상황에 놓인, 소외된 현실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인물들에 끌리는 것 같다. 세형 감독과는 학교 다닐 때부터 거의 모든 작업을 함께했다. 과제로 만든 첫 단편이 무성영화였는데, 내가 찰리 채플린 같은 역할이었다. 구멍난 잠수함 안에서 물이 들어오는 걸 계속 막는 이야기였다. 그 다음엔 <하부구조의 친구들>(2023)을 찍었고, 올해는 외계를 떠도는 <스포일리아>까지 왔다. 잘 맞는 친구들과 만나서 여러 경험을 함께하고 있다. 예컨대 현실에서는 피하고 싶은 존재일지라도, 그를 역할로 만났을 때는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공감하는 순간이 있다. 몰라서 외면하고 싶은 세계를 영화로 접하면 또 다르게 보이는 거다. 복합적인 감정을 다루는 작품들을 좋아하다 보니, 그런 세계를 만드는 감독들과 자연스레 만나는 듯하다.

단편영화 현장은 배우와 스태프의 경계가 흐려지는 곳이기도 하다. 단편영화만의 매력과 그 안에서 본인이 배우로서 가장 기여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
상업영화 현장은 이미 그려놓은 그림이 분명하기에 내가 의견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아직 내 위치에서는 더 그렇다. 그런데 독립영화는 친구들, 동료들과 작업하다 보니 나 또한 창작자로서 참여하는 느낌이다. <스포일리아> 속 나와 정이주 배우의 긴 독백 장면의 경우, 세형 감독과 초안을 같이 썼다. 본래는 사회적 이야기만 있었는데, “이 세계관이라면 우주적 관점도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학을 공부했던 배경을 살려서 초끈이론, 골디락스 존 등을 아이디어로 냈다. “우주에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항성의 영역을 골디락스 존이라고 하는데…” 설명하면, 감독이 그걸 바탕으로 대본을 만드는 식이었다. 그렇게 시나리오 작업에 가능한 만큼 도움을 주려는 편이다. 어떤 감독은 엔딩크레디트에 ‘아이디어 뱅크’로 내 이름을 올려주기도 한다. (웃음) 작품에 해가 안 되는 선에서 의견을 내고, 가장 좋은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좋다. <지느러미>는 촬영 사흘 전에 상당한 분량의 독백 대사를 받았다. ‘이걸 다 어떻게 외우나’ 싶었는데, 세영 감독이 “편한 말로 바꿔서 해도 된다”고 하더라. 덕분에 재밌게 찍었다. 주인공은 따로 있고 나는 잠깐 나오는 역할인데, 후시 녹음만 세 번 했다. 아마 그 영화에서 내 대사가 가장 길 거다. (웃음) 얼마 전 촬영을 마쳤다고 얘기한 <탐>은 산에서 찍었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각자 장비 하나씩 들고 산을 탔지. 그렇게 연기뿐만 아니라 대본 작업, 촬영 준비 등 여러 영역에서 협업하는 일에 재미를 느낀다. 물론 단점도 있다. 캐릭터와 작품에 자연스레 나의 색깔을 입히다 보니,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순간이 있거든. 가끔은 완전히 다른 걸 입어보고도 싶고. 결국은 이것저것 다 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연기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신체 감각이다. 때로는 말이나 표정보다 움직임과 제스처로 감정을 전달하더라.
2018년에 참여했던 연극에 움직임 장면이 있었다. 한 번도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덜컥 겁이 났다. 근데 같이 공연 준비하던 친구가 “형, 김설진 같다”면서 칭찬을 해줬다. (웃음) 지금 보면 별거 아닌 장면인데, 그때는 칭찬을 들으니 자신감도 생기고 움직임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다. 호기심이 생겨서 무용과 수업을 듣다가 부전공까지 했다. 좋은 동료를 만나서 공연도 몇 번 했고. 전문 무용수처럼은 아니고 연기적 요소가 필요한 작품에 주로 참여했다. 무용수 친구들에게 몸이 유연하다는 말을 들었다. 다리 찢기 같은 테크닉과는 별개로, 몸 자체의 유연함이 있다고. 컨택 무용이라는 걸 했는데, 서로 몸을 맞댄 채 즉흥으로 흐름을 만드는 춤을 배웠다. 전공자들은 이미 테크닉을 갖췄다 보니 단독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나는 상대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선생님과 친구들이 “몸의 반응이 섬세하다”라는 얘기를 해줬다. 남궁호 선생님께 마임을 배우기도 했다. 원래 나는 거리극이나 신체극에 관심이 많았기에 움직임을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거든. 많은 영향을 준 분이고, 선생님이 해외에서 공연하실 때 따라가서 카메오로 출연도 했다. 내 실력이야 마임이스트가 보면 형편 없다고 할 수준이지만.
거리극을 실제로 해본 적도 있나.
영화보다 거리극을 먼저 했다. 친구들과 극단을 만들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공연했는데, 코로나19로 모두 중단되고 말았다. 그 후 영상 작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거리 극단은 한예종 친구들과 함께했던 건가.
한예종 친구들을 중심으로 창작집단을 꾸렸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친구들도 알음알음 들어왔다. 몇 년간 즐겁게 활동했다. 처음엔 ‘돌곶이 유랑단’이었는데 이후 ‘물고기 유랑단’이라는 이름으로 공연했다. 낯선 공간에서 관객과 만나고, 연기뿐만 아니라 작가와 연출 등 다양한 역할을 경험했다. 뭐든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애초 한강공원에서 버스킹으로 무료 공연을 열었는데, 나중에는 거리극 축제나 지방 공연 등 큰 규모의 공연도 여러 차례 진행했다. 직접 대본을 쓴 작품 중에는 단편 영화로 만들고 싶은 것도 있다.
리더십이 있는 편이네.
아니다. 그래서 그만뒀다. (웃음) 제작 과정에서 의견을 내는 건 가능한데, 기획하고 지원서 작성하고 이런 실무에는 영 재능이 없더라. 흥미도 안 생기고. 당시에는 팀의 리더였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했는데, 사실 기획서를 받아보는 쪽에서도 글이 아니라 첨부 영상을 보고 뽑아줬다고 할 정도였다. 게다가 그땐 참여자 모두 학생들이라 품앗이하듯 공연을 다녔다. 지방 공연 가서 300만 원 벌면 n분의 1로 나눠서 각자 10만 원씩 갖는 식이었다. 이젠 그렇게 할 수 없다. 다들 정당하게 페이를 받아야 하고, 내가 그걸 챙기면서 어떤 집단을 이끌 자신은 없다. 지금은 그저 움직임에 계속 관심을 가질 뿐이다. 호기심이 생겨서 배웠고, 몸 쓰는 작품을 만나면서 자신감을 조금씩 키웠다.
장요훈 배우를 보고 있으면, 문득 구교환 배우의 <거북이들>(2011) <4학년 보경이>(이옥섭, 2014) 같은 초기작이 떠오르더라. 독특한 목소리 톤과 말투, 어딘가 뒤틀린 몸의 감각이 만화적인 질감을 띠면서도, 바로 옆집에 살 것 같은 현실성을 잃지 않는다.
그렇게 말해 주면 영광이다. <탈주>에서 뵌 적이 있는데, 교환 선배님과 한 번도 같은 장면을 찍지는 못해 아쉬웠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배우다. <남매의 집>(조성희, 2009)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도 생생하고. 롤 모델로 바라보는 배우들은 무척 많다. 특히 내 신체적 조건과 비슷한 배우들을 자주 찾아보는 편이다. ‘저 체격과 목소리로 어떻게 저런 역을 소화했을까?’ 예전에는 목소리가 콤플렉스였다. 톤이 지금보다 훨씬 얇고 높았거든. 청소년 역할을 맡으면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연극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부터는 고민이 컸다. 당시 신하균 선배님의 작품을 보면서 ‘얇고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어떻게 저런 느낌을 내지?’ 연구했다. 악역을 할 때 목소리를 어떻게 다루는지, 어떤 방식으로 무게감을 만드는지. 알 파치노도 좋아한다. <대부>(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73) 때만 해도 굉장히 미성인데 <스카페이스>(브라이언 드 팔마, 1984)부터 점점 목소리가 갈라지더니 <여인의 향기>(마틴 브레스트, 1993) 즈음에는 완전히 중후해진다. 한편, 색깔로서 닮고 싶은 배우는 로빈 윌리엄스다. 위트와 드라마를 동시에 전달하는 지점이 멋있다. 희극성을 바탕으로 한 슬픔과 슬픔에서 튀어나오는 웃음. 내가 그런 것에 자꾸 마음이 가나 보다. 주성치, 짐 캐리, 드니 라방 등 좋아하는 배우들이 많다.

롤 모델을 술술 꼽는 걸 보니 배우로서 본인의 강점과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게 느껴진다.
좀 더 말해 볼까? 우리나라에서는 일단 신하균 선배님이 원픽이고, 오정세 선배님도 참 좋아한다. 봉태규 선배님의 작품도 종종 찾아본다. <눈물>(임상수, 2001)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얼굴이 있지 않나. <광식이 동생 광태>(김현석, 2005)는 1년에 한 번씩 다시 보는 영화다. 볼 때마다 좋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서 연말에 꼭 생각난다. 김주혁 선배님도 너무 멋지고. 봉태규 선배님이 연기한 광태라는 캐릭터가 내게 많이 영향을 준 것 같다. 미움을 살 법한 인물인데, 그 안에 사랑스러움이 있거든. 내 안에도 광식과 광태가 공존하는 듯하다. <시지프스의 공전주기>의 현수를 예로 들면, 마음은 광식에 가깝고 겉모습은 광태 같지 않나. <퐁네프의 연인들>(레오 까락스, 1992)도 이맘때쯤 다시 보게 된다. 또 다른 의미로 크리스마스에 떠오르는 영화다.
그렇게 계속 찾아보는 작품들이 배우에게는 교과서이자 일기장이겠다. 올해 많은 단편을 봤으니 장편도 궁금해진다. 에너지를 긴 호흡으로 펼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상상하면 두렵기도, 기대되기도 한다. 안톤 체호프가 원래 단편소설로 이름을 알렸다가 희곡에서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지 않았나. 나도 그런 배우였으면 좋겠다. 단편에서만 통하는 배우가 아니라, 장편에서 또 다른 결을 보여줄 수 있는.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다. 언젠가는 내게도 그런 작품이 오겠지. 개인적으로 <올드보이>에서 유지태 선배님이 연기한 역할에 끌린다. 물론 선배님처럼 할 수는 없다. 나는 키도 크지 않고, 저음이 깊게 깔리는 목소리도 아니니까. 그래도 사람들이 “저 배우가 저런 역을?” 하고 놀랄 만한, 좀 ‘신기한’ 악역을 해보고 싶다. 구교환 선배님이 <탈주>에서 보여준 캐릭터처럼 전형적이지 않으면서 여러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인물 말이다. 당장은 기다릴 뿐이다. 결국 부름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니까.
혹시 지금까지 맡아 온 인물들을 떠올리면, 스스로 어떤 공통점이 보이나.
흔히 말하는 ‘괴롭힘을 당하는 청소년’ 역할을 여러 번 했다. 연극에서 마이스터고를 다니는 학생 역을 맡은 적이 있다. 현장 실습을 나갔다가 친구가 사고를 당하는데,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인물이었다. <오월의 하루>라는 연극에서는 선생에게 그루밍 성폭력을 당하는 학생을 연기하기도 했다.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가해와 피해를 구분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해자를 옹호하는 인물이었다. 그밖에도 학교 밖 청소년, 학교 폭력의 피해자 등 여러 인물을 연기했다. 알레프 뮤직비디오에서는 퀴어 청소년으로 등장하고. 돌이켜보면 ‘청소년은 이래야지’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인물들을 자주 만났다.
연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수자와 약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왔던 셈이다. 배우가 사회와 소통하는 방식 같기도 한데, 애초에 사회·정치적인 관심이 있어서 그런 작품을 선택한 걸까? 아니면 작품 덕분에 세계를 향한 관심이 더 커진 걸까?
둘 다인 것 같다. 연극을 시작한 계기부터 세월호 참사와 연결돼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동안 관심이 온통 그쪽에 가 있었다. 당시 동아리에서 연출을 맡았는데, 극을 각색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이슈를 넣게 됐다. 투박하긴 했지만, 분노가 너무 커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원래 대본에는 없던 ‘아이를 찾는 아버지’ 역을 만들었고 (오)동민 형에게 카메오 출연을 부탁했었다. 그렇게 작품과 현실을 나란히 고민하던 시절을 거치다 보니, 내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과 만났던 것 같다. 연기하면서 작품이 다루는 세계와 인물을 사랑하게 되고, 그러면 더 알고 싶어지고, 관심이 생긴 후로는 계속 찾아보고. 퀴어 이슈도 마찬가지였다. 한예종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솔직히 큰 관심도 없고 잘 몰랐다. 근데 학교에 들어오니 그런 정체성을 가진 동료들이 주변에 많았다.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고만 여겼는데 아니구나.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구나.’ 친구들 덕분에 편견을 마주했고, 다양한 인물과 주제에 관심을 쏟는 동료들과 작업하면서 내 시야도 넓어졌다.
좋은 발맞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다행이라고 느낀다. <다음 소희>(정주리, 2023)나 <3학년 2학기>(이란희, 2025) 같은 영화 보면, ‘이런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생긴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연기는 자신을 돌아보는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는 작업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아직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고.
배우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얼마 전 이순재 선생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작년에 공연하실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렸던 적이 있다. 이후 배우전을 할 기회가 생겼는데, 당시 GV에서 이순재 선생님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처럼 나도 오래 배우 생활을 하고 싶다고. 최근에 선생님 인터뷰를 읽었는데, TBC 개국 멤버 여섯 분 중 본인이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이라고 하셨더라. 그 여섯 분은 한국 연극과 드라마 역사를 이끌어 온 분들이었고, 이제 마지막 한 분이 떠나신 거다. 여러 생각이 든다. 좋은 배우, 좋은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미투운동을 거치며 내가 존경했던 많은 배우에게 실망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그저 분노했다기보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다’라는 두려움을 느낀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고, 나에게 쓴소리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면, 정신 놓는 순간 괴물이 될 테니까. 시간이 흘러도 남의 말을 흘려듣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주변 사람들한테 때로 욕도 먹고, 혼도 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 아끼는 만큼 혼내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