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김푸름은 배우이자 뮤지션이다. 어릴 적부터 카메라와 무대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했고, <생명의 은인>에서는 자립을 앞둔 청소년 세정으로 관객을 만난다. 노래하듯 연기하고, 연기하듯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불안과 믿음, 그리고 아직 명확히 이름 붙이지 못한 색이 묻어 있다. 인터뷰 내내 김푸름은 확신보다는 탐색의 언어로 말했다. 딱 떨어지는 색이 아니라 제 이름을 딴 ‘푸르스름’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어떻게 번져 나갈지 모르는 그 색은 성장과 변화를 암시하며 때마다 조금씩 농도를 달리해 간다. <생명의 은인>의 세정처럼, 김푸름 역시 눈앞에 놓인 것을 때로는 믿고 때로는 의심한다. “어른인 척은 많이 해봤지만, 진짜 어른이 되진 못했다”라는 고백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 대부분 해결된다”라는 깨달음도 그 과정에서 마주한 것들이다. 영화는 세정이 자신만의 집을 찾는 여정을 다룬다. 그 끝에 세정은 모로 누운 채 곤히 잠들어 있다. 잠에서 깬 후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지금보다 조금 더 밝고, 단단하고, 여전히 푸르스름한 얼굴일 것이다.
시사회에서 “세정의 성격이 나랑 닮았다”라고 했다. 어떤 면이 비슷한가.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온 장면이나 대사가 있나.
<생명의 은인> 오디션 볼 때, 시나리오에서 발췌한 신을 몇 개 읽으며 맞춰봤다. 대본 리딩이라기보다는 편안한 대화 자리에 가까웠다. 감독님과 사담을 더 많이 나눴던 기억이 난다. 세정이 어떤 사람처럼 보이는지, 실제 나와 닮은 점이 있는지 등을 물어보셨다. 당시 대본을 읽으면서 ‘이건 내 이야기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사나 상황은 다르지만 캐릭터의 성격이 나와 비슷했다. 어른 같기도 아이 같기도 한, 순진하고 잘 속는 면이 그렇다. 원래 대본에서 세정은 더 성실하고 계획적인, 철두철미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배역이 정해지고 대본이 수정되면서 내 성격이 더 반영된 듯했다. 엉뚱하고 덜렁거리지만, 어떤 면에서는 어른스럽기도 한, 근데 잘 살펴보면 ‘아직 아이구나’ 싶은 복합적인 모습이 드러났다. 예를 들면 세정은 고데기에 손을 데어 상처가 났는데도 사람들한테 말을 못 한다. 그런 행동이 당시 내 모습과 닮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티를 낼 텐데, 난 아프거나 다쳐도 그냥 혼자 넘기는 편이거든.
촬영한 지는 꽤 됐다고 들었다.
2023년 11월부터 준비해서 다음 해 1월쯤 크랭크인 했다. 그때 내가 열여덟 살이었으니 세정과 나이도 엇비슷했다. 감독님은 영화에 사계절을 담고 싶어 했고, 자연스레 몇 개월씩 간격을 두고 촬영했다. 해를 넘겨 올해 1~2월쯤 추가 촬영까지 진행했다.
그간 신비로운 소녀나 정체 모를 방랑자처럼 판타지가 섞인 인물을 주로 연기했는데, 이번에는 생활감이 묻어나는 현실적 캐릭터를 맡았다. 연기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한동안 장르물을 찍다가 오랜만에 성장 드라마를 만났다. <생명의 은인> 참여하면서 힐링이 많이 됐다. 본래 어렵고 험한 장면을 찍으면 현장 분위기가 날카로워지기 마련이다. 특히 저예산 영화는 다들 시간을 쪼개 쓰는 상황이라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번 영화에는 그런 기운이 전혀 없었다. 방미리 감독님이 워낙 서글서글하고 여유로운 성격을 지닌 덕분인지, 아니면 현장에 운이 따른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촬영장이 늘 평화롭고 따뜻했기에, 배우로서 연기에 집중하기도 훨씬 수월했다.


세정과 닮았다고 느끼는 동시에,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한 부분도 있었을까? 지나치게 일치되지 않으려 애쓴 점이 있다든지.
그런 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세정의 우울한 분위기, 멜랑콜리하고 외로워 보이는 모습, 그걸 무마하고자 일부러 웃어 보이는 표현까지 전부 내 안의 감정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따로 숨기거나 만들어 낼 필요가 없었다. 세정의 자아와 나의 자아가 거의 같은 결로 공유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열여덟의 나를 그대로 보는 기분일 것 같다.
연기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그때 내 모습 자체였다. 영화를 찍고 나서 2년이 흘렀는데, 그 사이에 많이 변했다. 촬영 기간이 거의 1년이었기에 영화를 찍으면서도 성장했고, 그 이후로도 스스로 더 밝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세정이 은숙을 만나 점점 밝아지는 것처럼, 나도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지금은 말도 많아지고 훨씬 명랑해졌다.
세정은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계속 시험에 든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믿을지 말지 끊임없이 고민하는데, 대개는 믿는 쪽을 선택한다. 캐릭터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안타까웠다. ‘믿을까? 말까?’ 갈팡질팡하며 망설이는 도중에 사기를 당해서 선택지 자체가 없어져버리기도 하니까. 세정에게 믿음이란 최악과 차악 중에서 차악을 택한 결과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믿는다’는 말에는 어쩐지 긍정적인 어감이 있지 않나. 희망이나 의지 같은 것. 세정은 아직 어리고,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기보다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지는 게 자연스럽다. 상대를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을 떠나서, 일단은 상대에게 기대고 싶고 안기고 싶은 마음이 크다. 세정의 선택은 바로 그러한 무의식에서 나온 어린 마음, 미성숙하지만 순한 본능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서기를 반복하면서 세정의 감정도 고조된다. 이를 두고 감독과는 어떤 논의를 했는지, 서로 의견이 엇갈린 순간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캐릭터보다는 연기 스타일에 관해 대화를 많이 나눴다. 세정은 기본적으로 조용하고 침착한 인물이라, 처음에는 그 분위기에 맞춰서 좀 더 가라앉은 연기를 생각했다. 그런데 송선미 배우님이나 허정도 배우님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내 톤이 너무 낮으면 그 사이에서 캐릭터가 붕괴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중간 지점을 찾으려 했다. 촬영 당시엔 모니터링하면서도 내심 걱정했는데, 간극이 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대비가 오히려 세정의 캐릭터를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고 느꼈다.

본인은 어떤 편인가. 후회하더라도 일단 믿는 쪽인가.
예전 같았으면 그랬을 것 같다. 사실 지금도 그런 편이다.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걸 크게 믿는 것이 내 단점이자 장점이거든. 돌려서 말했지만 결국 내가 ‘호구’라는 뜻이다. (웃음) 매번 상대의 좋은 면을 먼저 보고 단점을 뒤늦게 인식한다. 그의 단점을 깨달을 때쯤엔 이미 상처를 받은 뒤다. 미워하려고 해도 미워할 수가 없다. ‘그래도 장점이 있잖아, 원래 좋은 사람이잖아’ 하는 마음이 앞서서 잘 내치지도 못하고. 내가 이래저래 미련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사랑이 많아서 상처도 많은 걸까?
나도 은인이 많았으면 좋겠다. 많이 믿다 보면 나타나겠지. 믿어도 괜찮은 진짜 은인.
관객 입장에서 가장 불안했던 장면은, 자신을 은숙의 전 애인이라고 소개한 현식(허정도)의 차에 세정이 올라타는 순간이었다. 세정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대체 무엇을 믿고 낯선 사람과 동행하기를 택했을까.
정착지원금 500만 원도 사라지고 은숙마저 자취를 감춘 상태이지 않나. 어차피 망한 거, 은숙을 찾아내서 무슨 꿍꿍이인지 말이라도 들어보자는 심정이었다. ‘은숙에게 남자친구가 있었어? 나한테 왜 말 안 했지?’ 하는 궁금증도 있었고, 현식이라면 은숙의 행방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사람이 망연자실하면 뭐라도 붙잡고 싶지 않나. 세정도 마찬가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힘들고 지쳐서 미간을 찌푸리는 와중에도 일단은 현식의 말을 듣기로 한 거다. 어쨌거나 이제 더 잃을 것도 없으니까.
또래의 청소년 연기자부터 송선미, 허정도 등 베테랑까지 다양한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현장을 이끄는 주연 배우로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세정은 외로움을 감추려 하지만 결국 드러나는 인물이다. 그 결핍 때문에 은숙을 믿고 싶어지고,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 마음을 포기하지 못한다. 나는 세정의 가장 큰 친구를 ‘외로움’이라고 생각했다. 극을 전개하는 데 동력이 되는 감정 또한 그 외로움이고. 어릴 적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나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연기를 시작할 무렵부터 외로움이 늘 따라다녔고, 그래서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안다. 외로움을 일부러 강조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했다. 그런 태도가 세정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고, 현장에서 중심을 잡게 해줬다. 한편, 데뷔 이후 줄곧 선배님들과 함께하는 현장에 익숙해진 터라, 그 부분에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내가 ‘애늙은이’ 같은 면이 좀 있다. 연기도 눈치 보면서 배웠고, 어떻게든 사회에 빨리 적응하려 애썼거든. 다만, 송선미 배우님이 워낙 대선배이다 보니 초반에는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세정으로서 선배님을 은숙으로 대해야 하는데, 자꾸 ‘송선미 배우’로 느껴지는 거다. 원래 대사에 없던 높임말까지 나오더라.
한 번은 그 벽을 깨야 했는데, 어떤 계기로 송선미 배우는 은숙이 됐나.
은숙과 세정이 사기꾼을 찾아내서 따지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는 굉장히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영화 속 계절은 가을이라 얇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현장에 대기실이 따로 없었는데, 송선미 배우님이 자기 차에 잠깐 들어가서 몸을 녹이자고 하셨다.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졌다. 평소엔 안 하던 말씀도 많이 하셨고 딸 이야기를 꺼내며 “어떻게 하면 푸름이 같은 딸을 키울 수 있어?” 묻기도 하셨다. (웃음) 그렇게 수다를 떨다 보니 선미 배우님에게서 우리 엄마랑 닮은 점이 보였다. 말투나 분위기도 그렇고, 실제 나이도 엄마와 동갑이시거든. 그때부터 배우님이 은숙처럼 느껴졌다. ‘이래서 세정이 은숙에게 쉽게 마음을 열었겠구나’ 싶기도 했다. 은숙의 환한 미소 한 번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다 넘어가는지 알겠더라. 내가 세정과 닮은 만큼 은숙도 선미 배우님과 맞닿는 부분이 많아서 감독님이 정말 캐스팅을 잘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립준비청년을 둘러싼 지원과 복지 문제는 비교적 최근 들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번 작품에 참여하면서 관련 조사나 인터뷰 등을 진행하기도 했나.
준비 단계에서 감독님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정착지원금이 왜 필요한지, 어째서 500만 원인지, 그 제도가 자립준비청년 당사자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솔직히 그에 관해 공부할수록 ‘자립준비청년’이라는 말이 참 모순적으로 다가왔다. 실제로는 청년도 아닌 청소년이지 않나. 청소년은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덜 된 사람을 가리키는데, 사회는 그들에게 ‘지금부터는 스스로 살아야 한다’고 한다. 나이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이 맞나 싶다. 그가 만약 사회로 나설 준비가 안 됐다면, 어른이 되는 데 필요한 최소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나이가 몇 살이든 ‘청소년’으로 불릴 수 있다고 본다. 청춘이라는 말이 그러하듯이. 근데 이제 막 미성년을 벗어난 친구들에게 500만 원을 주며 “알아서 살아라” 하는 건 너무 잔혹하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봤다. 누가 당장 나한테 500만 원 들고 집을 나가라고 한다면? 막막하더라. 바로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고, 월세와 보증금을 감당하기에도 역부족이다. 물론 정부가 지원해야 할 대상이 한두 명은 아니니 한계는 있겠으나, 단지 나이가 찼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자립을 준비하라고 요구하는 사회가 어떤 면에선 융통성이 없다고 느꼈다.
실제 당사자들이 이 영화를 볼 거라는 생각도 했을 텐데, 세정을 연기하며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이렇게 보여야겠다’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드러날까’를 고민했다. 외로움이란 감정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겉보기에 밝은 사람도 외로움을 느끼면 결국 티가 나거든. 어느 순간부터 세정의 말과 행동에서 알게 모르게 외로움이 엿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앞서 언급한 장면을 예로 들면, 다쳤는데도 말하지 못한다는 건 그런 걱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뜻이지 않나. 주변에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 상황 자체가 곧 외로움으로 직결된다고 느꼈다. 감정을 과하게 표출하는 대신, 장면이 이어지는 가운데 자연스레 드러나기를 바랐다.
세정이라는 인물이 완성됐다고 느낀 장면이 있나.
예고편에도 나오는 장면이다. 세정이 은숙과 함께 이불을 고르러 가는 신. 은숙이 어떤 이불을 갖고 싶냐고 묻자, 세정은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 뭐랄까, 세정이 처음으로 진심을 이야기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세정은 항상 웃음으로 무마하거나 돌려 말하며 자신의 감정을 숨겨왔는데, ‘좋아하는 게 없다’는 말만큼은 돌려서 할 수 없는 말이니까.
세정이 거의 유일하게 직설적으로 마음을 드러내는 대사다.
정직하게 감정을 표현한 적이 없는 애라서 그 순간 은숙의 마음도, 관객의 마음도 동시에 철렁했을 거다.
액션 신도 제법 있었는데 체력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어려운 장면은 없었나.
감정 표현이 어려운 장면은 딱히 없었다. 현장에서도 힘들긴 했지만, ‘어렵다’고 느낄 만한 순간은 없었다. 오히려 수월하게 찍은 장면이 더 기억에 남는다. 엔딩에서 세정은 은숙이 마련한 집으로 간다. 은숙이 그간 써왔던 일기장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도 그걸 촬영 막바지에 찍었다. 세정으로서 앞선 모든 일을 겪고 난 뒤라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터져 나왔다. 현장에 은숙이 없으니 보고 싶은 마음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간 같이 촬영하면서 쌓인 정과 내 안에 저장된 여러 기억이나 감정이 무너져 내리듯 흘러나왔다. 모텔에서 찍은 액션 신의 경우, 늦은 시간에 촬영하다 보니 피곤하긴 했지만 별 문제 없었다. 게다가 다른 배우님들도 함께했기에 티를 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열심히 했다.

평소 어려운 일에 부닥쳤을 때도 혼자 감당하고 정리하는 편인가.
참는 걸 즐긴다는 뜻은 아니지만, 대개는 그렇다. 왜냐면 내가 힘을 내야 일이 빨리 끝나고, 빨리 퇴근하고, 다 같이 쉴 수 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그게 제일 좋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나란히 공개한 <클리어>(심형준, 2025)보다 먼저 촬영했다. 장편 주연작으로는 첫 작품이었는데 그에 관한 부담은 없었나.
시기로 따지면 박세영 감독의 <지느러미>(2025)를 가장 먼저 찍었다. 해외 영화제를 통해 공개됐는데, 곧 서울독립영화제를 포함해 국내에서도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지느러미>는 제78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배우도 직접 방문했나.
기대했던 것만큼 좋더라. 누가 유럽 국가 중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으면 항상 스위스를 말했다. 국기부터 예뻐서 마음에 든다. 근데 생각처럼 쉽게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더라. 거리도 멀고 물가도 비싸고. 고민하다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아쉽겠다 싶어서 다녀왔다. 혼자 갈 수는 없으니 엄마도 동행했다. 실은 아빠가 내년에 유럽으로 가족 여행을 가자고 했는데, 내가 못 참고 먼저 스위스에 가버린 셈이 됐다. 자신만 빼놓고 엄마랑 둘이 스위스 가니 좋았냐며 아빠가 되게 아쉬워 하셨다. (웃음)
자작곡 ‘마마걸’이 <생명의 은인> 엔딩곡으로 삽입됐다. 곡 발매 시기는 개봉 1년 전쯤인데, 영화를 위해 만들었던 노래인가.
원래는 새 곡을 만들려고 했는데, 감독님이 들으시더니 “이건 너무 세다” 하셨다. 그래서 이미 만들어 놓은 곡 중에서 찾다가 ‘마마걸’을 떠올렸다. 어쿠스틱 버전과 리믹스 버전이 있는데, 각각 노랫말에 담은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영화에 삽입된 곡은 2024년 12월 발매된 〈푸르스름 언플러그드〉 앨범에 수록된 어쿠스틱 버전이다. 가사는 ‘엄마가 곁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왜 나를 혼자 두고 떠났을까?’ 하는 내용이다. 나도 그저 애처럼 굴고 싶은 철부지일 뿐이라고, 나를 8살짜리 어린애처럼 봐줬으면 좋겠다고, 근데 이 사회는 나를 그렇게 봐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노래라서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감독님도 마음에 들어 하셔서 최종적으로 ‘마마걸’을 넣게 됐다.
‘마마걸’의 가사 중 ‘treat me like I’m 8’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왜 하필 8살인가. 발음이 ‘애’와 비슷해서?
‘마마걸’은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초등학교 8살까지는 엄마가 나를 아직 ‘애’로 봐줬다. 근데 연기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주변으로부터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그 사회에서 인정받으려면 겉모습, 그러니까 이미지만 아이이고 성격은 아이 같으면 안 된다는 느낌이었다.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어른들이 날 좋아해줄 거라는 인식이 생기기도 했고. 돌이켜보니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했던 시기 같다. 사실 그전까지는 까불까불한 성격에 가까웠거든. 자유롭고 천진한 마음을 상징하는 나이로 8살을 골랐다.
드라마 <나쁜엄마>, <대행사>, <놀아주는 여자> OST를 불렀고, 영화 <클리어>를 포함해 출연작에서 음악을 맡는 경우도 더러 있다. 개인 음악 작업할 때와는 차이가 있을 듯한데,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끼나.
나는 오히려 영화 음악처럼 가이드라인이 있는 작업이 잘 맞는다. 처음엔 막막해 보여도, 후반으로 갈수록 방향이 또렷해지고 잘 썼다는 확신이 든다. 속으로 ‘내가 이쪽에 재능이 있나?’ 싶기도 하고. (웃음) 최근 참여한 작품에서는 대부분 곡 작업을 병행했다. <클리어>도 그렇고, <세븐 데이즈 세븐 피플즈>라는 음악 영화도 직접 음악을 만들었다. <지느러미>가 예외였다. 그 작품은 내가 낄래야 낄 수 없는 장르더라.


뮤지션으로 활동하다가 비교적 최근에 연기를 시작한 것으로 이해하는 관객도 많은 듯하다. 실은 배우로 데뷔한 것이 벌써 10년 전이다.
나한테 연기는 정말 애증이다. ‘운칠기삼’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배우가 연기를 아무리 잘해도 배역이 맞지 않으면 캐스팅이 안 되는 게 현실이다. 그게 늘 속상했다. 계속 연기를 하려고 노력 중이고 10년째 연기를 해왔는데, 의외로 중간에 시작한 음악이 더 잘되더라. 뜻밖의 상황에 우울하기도 했고, 엄마에게 “연기를 그만두는 게 맞을까?”라고 고민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 노력에 비해 연기 활동은 지지부진한데, 음악 쪽은 잘 풀리니 초조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애초 음악을 시작한 계기 역시 연기와 맞닿는다. 중학교 2학년쯤 화가 나서 “캐스팅 안 해주면 내가 설 무대를 직접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작곡을 시작했거든. 결과적으로는 그게 잘 돼서 참 아이러니하다. 여전히 조금 슬프기도 하고. 왜냐면 음악은 비교적 다음 스텝이 명확히 보이고, 피드백도 바로 오는 작업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상하게 연기를 못 놓겠다.
데뷔작 <오빠 생각>(이한, 2016) 이후 상업 조단역, <니나내나>(이동은, 2019), <털보>(강물결, 2019) 등 독립 장편과 단편까지 다양한 현장을 오가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 부지런한 기록이 연기를 향한 진심을 보여준다.
더 어릴 적엔 키즈 모델이었다. 엄마 말로는 유치가 빠지면 모델을 관둔다고 하더라. 앞니가 없어서. (웃음) 주변에서 다른 학부모들이 배우나 아이돌을 시켜보라고 권유했다는데, 엄마는 내가 아이돌을 하기엔 평범하게 생겼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 정도로 예쁘지는 않다는 의미였다. (웃음) 그러다 배우 해보면 좋겠다고 추천을 받아 연기 학원에 보내주셨다. 처음엔 취미로 반 년 정도 연기를 배우려고 했는데, 당시 다녔던 학원이 에이전시를 겸하고 있어서 프로필이 제작사에 들어갔나 보더라. 우연히 오디션이 잡혔고, 운 좋게 합격까지 했다. 그 작품이 <오빠 생각>이다. 초반에는 알음알음 연기할 기회가 생겼는데,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자 작품이 확 줄어들었다. 오디션은 계속 보러 다녔지만 합격률이 낮았고, 부모님도 나도 그 상황에 좀 지쳤다. 결국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고 안 되면 제주에 내려가서 살자고 하셨다. 그곳에서 학교 다니며 공부하라고. 실제로 제주에 집까지 마련했다. 당시 준비하던 오디션에 분명 떨어질 거라고 예상했거든. 근데 합격했다. 그게 <보금자리>(임필성, 2017)였고 그때부터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일했다. 오디션을 열심히 봤다. 필름메이커스에서 공고를 찾아보고, 엄마랑 손잡고 돌아다니면서 “안녕하세요” 일일이 인사드리고 프로필을 돌렸다. 막상 하는 일의 양은 적었지만 참 바빴다. 포기하려 하면 다시 일이 들어오고, 단념하면 또 기회가 생기고. 그렇게 10년째 ‘희망 고문’을 달고 산다. 배우라면 다들 그렇겠지. 요즘은 영화 산업이 어려워서 희망이 더 줄어든 것 같지만.
<오빠 생각>을 찍을 때는 아홉 살이었다. 그때 자신이 배우라는 걸 인식하고 있었나.
그냥 까불이였다. 오죽하면 PD님이 붙잡고 말릴 정도로 산만하고 정신 없는 아이였다. 부모님이 “아들 키우는 것 같다”고 하신 적도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세상에는 나보다 잘난 배우가 많구나’, ‘배역에 어울리는 사람은 따로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던 시기다. 희망 고문이라는 말을 쓴 이유가 있다. 내가 최종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징크스가 있거든. 오디션은 여러 절차로 이뤄지지만, 결국 합격자는 한 명뿐이다. 2등이란 게 없는 세계이고, 1차에서 떨어지든 3차에서 떨어지든 불합격은 불합격이다. 떨어지면 그냥 떨어지는 거다.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내 딴에는 힘들었다. 최종까지 갔다가 탈락하는 일이 반복되니 말할 수도 없고, 그게 늘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세정에게 동질감을 느꼈다고 말한 데는 그런 이유도 있겠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연기와 음악을 병행하며 일찍이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까.
세정의 감정이 낯설지 않았다. 아직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지는 않았지만, 그간 내 영역에서 자립하고자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으니까. 어른스러운 태도를 고민하다가 한동안 말을 줄였다. 해야 할 말만 딱 전하고 과묵함을 유지했다. 두서 없이 말하다가는 산만함이 노출되고, 결국 또 “어리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서. 그 정도로 조심스러웠는데, 요즘은 좀 달라졌다. 때로는 아무렇게나 말해도 괜찮다고, 그런 나를 이해해주고 좋아해주는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아티스트로서 세정처럼 늘 선택의 기로에 서고,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살면서 가장 고민했던 선택의 순간은 언제였나.
중학생 시절 음악을 시작했던 것. 이미 유튜브에 커버곡을 올리고 있었는데, 아빠가 음악 하는 걸 완강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아빠도 음악인이다 보니 그랬을 거다. 워낙 많은 경우를 지켜봤고, 그중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분들도 있다. 게다가 가수로서 잘 됐을 때와 안 됐을 때의 간극이 너무 컸다. 중간에 포기할 거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씀하셨고, 내가 예술가가 아닌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으면 하셨다. 근데 사춘기 특유의 반항심이 올라와서 그 말에 반박하듯 학교 가요제에 몰래 참가 신청서를 냈다. 아빠가 그 공연을 직접 보셨고, 그날 이후로 태도를 완전히 바꾸셨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라. 지원해주겠다.” 내 인생의 첫 번째 큰 선택이었다. 그때 용기를 낸 덕분에 지금 내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안 했다면 내가 연기하는 줄 아무도 몰랐을 거고, 그러면 영화에 출연하지 못했을 거고, 지금까지 연기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나.


가요제에서 무슨 노래 불렀나.
라디오헤드의 ‘Creep’. 복면 쓰고 나가서 혼자 기타 치며 불렀다. 다른 친구들은 팀을 만들어서 랩하고 춤추는데, 나는 혼자서 노래만 했다. 그리고 1등을 했지. (웃음)
아버지가 마음 바꾸실 만했다. 그 후 2022년은 김푸름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해였다. 첫 EP <16>을 발매했고 케이팝 서바이벌 프로그램 <청춘스타>에서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단편 <굿>(최이다)과 <양궁소녀>(김수림)로 영화제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정말 폭발적인 한 해였는데.
샤머니즘 같긴 한데, 진짜 대운이 들어왔던 해였다. (웃음) 나중에 엄마랑 사주를 봤는데, 내 나이가 6으로 끝나는 해를 기준으로 10년마다 운이 바뀐다고 하더라. 여섯 살에 안 좋았다가 열여섯 살에 운이 들어오고. 그러다 스물여섯 살에 한 번 망하고 다시 서른 여섯 살에 잘 되고. 그래서 2022년에 뭐든 잘 됐나 보다. 안 그래도 엄마랑 “그때 로또라도 살 걸” 농담하기도 했다.
그만큼 본인이 바쁘게 움직였다는 뜻이지 않나. 기억 속에 남은 열여섯의 명장면이 있다면.
운동장을 열 바퀴 돌아도 쌩쌩하던 시절이다. 체력도 좋았고, 그냥 에너지가 넘쳤다. 최이다 감독님과 <굿>을 찍고 난 뒤 인연이 이어져서 좋은 친구가 됐다. 감독님이 <16> 앨범 자켓 사진과 타이틀곡 ‘검은색 하얀색’ 뮤직비디오를 찍어주셨다. 난방도 안 되는 지하실에서 찍었는데 엄청 추웠던 기억이 난다. 장비가 부족해서 접이식 런닝머신을 직접 가져오고, 진짜 발로 뛰며 만든 뮤직비디오다. 촬영 소품으로 썼던 파티 용품을 감독님이 선물로 줬다. 기념품처럼 간직하고 있고, 요새도 가끔 보면서 뮤직비디오 촬영하던 날을 떠올린다. 큰일이 많은 한 해였는데, 그날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는 걸 보면 참 재밌게 찍었구나 싶다. 날은 추웠어도 따뜻한 경험으로 남았다. 이다 감독님이 내게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고.
<굿>에서는 70년대 록밴드에 빠진 중학생을 연기했다. 감독과 배우 모두 즐겁게 만든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최이다 감독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이지 않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 나도 항상 그런 말을 듣는 아이였다.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나 같은 인간이 세상에 또 존재한다니!” 하며 놀랐다. 서로 통하는 면이 많다. 예술가적 기질이 비슷하고, 생각하는 방향도 닮았다. 지금도 종종 만나서 편하게 대화하는 사이다. 내가 감독님한테 “당신, 저랑 친구 합시다” 했거든.
둘이서 또 재밌는 영화를 한 편 찍으면 좋겠다.
로맨스 찍고 싶다고 말했다. 주로 장르 영화를 찍어온 데다, 어느 순간부터 ‘고아 전문 배우’처럼 인식되는 것 같다. <보금자리>도 그렇고, <생명의 은인>에서도 부모님이 없는 인물을 맡지 않았나. 내가 좀 그런 이미지인가? 가족들도 속상한지 “이제 다른 역할 하면 안 되냐”고 할 정도다. 이다 감독님한테 차기작은 로맨스 어떠냐고 물어봤다. 나도 사랑 이야기 하고 싶은데 좀 끼워달라고. 감독님 반응은 마뜩치 않았지만. (웃음)
로맨스도 평범하진 않을 듯하다. 전작의 영향도 있겠으나, 배우가 지닌 외로움의 조각들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 아닐까.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마마걸’과 같은 앨범에 수록된 ‘빛’은 세정에게 푸름이 불러주는 노래처럼 들렸다. “있잖아, 세상은 말이야. 간절한 사람을 싫어해. 네가 두 손 모아 기도한 일들만 어떻게 알고 망쳐버리는지 몰라. 그래도 난 네가 일어서길 바래”, “네가 원하지도 않는 길을 혹시나 싶어서 달려보는 건 그만둬. 모든 걸 잘하고 싶은 사람은 모든 걸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된대.” 같은 가사가 특히 인상적이다.
‘빛’은 사실 ‘소라게’라는 곡의 스핀오프다. ‘소라게’는 빛을 사랑하는 존재의 이야기다. 물속에 사는 소라게는 늘 빛을 동경한다.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결국 수면 위로 올라가 빛을 보려 하지만, 그 순간 눈이 멀어버린다. 그리고 다시는 상처받지 않으려 껍질 속으로 숨어버린다. ‘빛’은 그 소라게가 왜 그렇게 빛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담은 곡이다. 동시에 소라게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노래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세정이 소라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간절한 사람을 싫어해”라는 가사는 내가 간절한 사람이었기에 쓸 수 있었다. 너무 간절하면 도리어 멀어지더라. 연기도 그랬다. 간절히 매달린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그냥 한번 해보자’ 했던 음악이 오히려 잘됐다. 아직은 모를 일이지만. 하나씩 잘 해나가고 싶다.

연기와 음악의 프로세스가 맞닿는 지점이 있을까. 호흡, 리듬, 프레이징 같은 음악적 감각이 연기에 스며들기도 하는지 궁금하다.
연기와 음악은 결국 같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는 점에서 같다. 노래는 리듬과 가사로, 연기는 몸과 표정으로 이야기를 전할 뿐이다. 세정의 이야기를 연기로 표현할 수도 있고, 노래로 부를 수도 있다. 결국 같은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연출하는 일이다. 그래서 두 작업을 별개로 보지 않고, 관객과 청중을 대하는 방식에도 큰 차이를 두지 않는다. 연기하든 노래하든, 나는 결국 내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상대가 스크린 앞이든 무대 아래든, 그 마음을 움직이려는 진심은 같다.
현장에서 감정을 세팅할 때 음악을 듣는 배우들도 많은데, 본인도 그런 편인가.
나도 듣는다. 다만 내 노래는 절대 듣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티스트가 자기 노래를 잘 못 듣는 것처럼 나도 그렇다. 대신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찾아다닌다.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모아서 앨범을 만들고 ‘레퍼런스’라고 이름을 붙였다. 댓글에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써놓잖나. 짧은 문장, 시, 혹은 고백 같은 글들. 그런 걸 읽으며 노래를 들으면 감정이 자연스럽게 열린다. 그 글들이 내 연기의 레퍼런스가 된다. 슬픈 감정을 꺼내야 할 때면 그에 걸맞는 플레이리스트를 열고, 그 안의 댓글들을 읽으며 음악을 듣는다. 별별 사연이 다 있다. 그렇게 익명으로 쓴 글들이 오히려 이입을 진하게 돕는다.
음악보다 음악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영감을 받는 듯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감정을 빌려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 감정만으로 연기하면 결국 어떤 인물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나’가 되어버리니까. 인물에 녹아들기 위해,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누군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새로운 곡을 만들 때는 어떤 지점에 가장 흥미를 느끼나. 음악적 실험, 메시지 전달, 이야기 창작 등 여러 목표가 있을 텐데.
가사에 가장 큰 의미를 둔다. 나는 항상 시처럼 짧은 글을 먼저 쓴다. 한 편의 시를 완성해두고, 그걸 풀어서 가사를 만든다. 평소에도 시집을 자주 읽는다. 시의 운율과 함축적인 언어를 좋아한다. 시를 노래로 만든 경우도 좋아하고. 예를 들어 정밀아 님의 노래 ‘꽃’은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인용한 곡인데, 내가 부른 버전이 드라마 <돼지의 왕> OST에 실리기도 했다. 시가 노래가 되고, 노래가 이야기가 되는 걸 좋아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원체 많다 보니, 시처럼 함축하지 않으면 감당이 안 된다.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다 부르려면 랩을 해야할 거다. 실은 ‘바보가 되었다’로 한 번 시도해 봤는데 내 길은 아니더라. (웃음)
결국 노래든 연기든 자기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이다. 연출 욕심은 없나.
말한 대로 주된 목적은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연출 방식을 때마다 다르게 할 뿐이다. 형태는 변해도 이야기가 계속된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당연히 언젠가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그러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지금은 연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거든. 나중에 공부를 많이 해서 준비가 됐다고 느낄 때 꼭 한 편 찍어보고 싶다. 음악 영화로.

이미 글 작업은 해봤을 것 같은데.
단편 시나리오를 하나 써뒀다. <매미>라고 첫 연출작으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다.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소녀가 주인공인데, 매미 소리가 그 아이의 트리거다. 실제로 내가 큰 소리를 잘 못 듣는다. 귀가 예민한 편이라 작은 소리를 잘 듣는 대신, 큰 소리에는 몸이 위축된다. 그걸 캐릭터로 입체화해봤다. 이 소녀는 여름마다 매미 소리를 피하려고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다닌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공연 공포증이 있어 무대에 서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 날, 꼭 서고 싶은 무대가 생긴다. 수학여행 공연. 열심히 준비해서 무대에 서는데,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 순간 마이크를 떨어뜨리면서 큰 소리가 난다. 소녀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만다. 근처에 있던 선생님이 곧장 아이에게 헤드폰을 씌우고 병원으로 데려간다. 깨어난 아이가 울면서 선생님을 원망한다. 그냥 흔들어 깨워서 어떻게든 공연하게 해주지, 왜 데리고 왔냐고. 선생님은 꾸짖지 않고 말없이 웃는다. 그러고는 병원 공원에 있던 피아노를 가리키며 저기서 노래하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둘은 함께 피아노 앞에 앉는다. 소녀가 노래를 시작하자 선생님이 뒤에서 화음을 넣는다. 공연을 마치자 병원 사람들 모두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돌아보니 선생님이 없다. 사실 선생님은 미래의 소녀 자신이거든. 소녀가 커서 음악 교사가 되었고, 과거의 자신을 위로하러 온 것이다. 마지막에는 매미 소리가 들리며 끝난다.
어른이 된 내가 어린 나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이야기다. 시나리오를 완성했으니 찍기만 하면 되겠는걸.
배운 것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으니 나한테는 아직 무리다. 촬영진을 꾸리는 일부터가 큰일이다. 차근차근 준비해서 언젠가 찍겠다.
연출하면 연기를 보는 시야도 달라질 테니 앞으로가 기대된다. 연기와 음악에서 충분히 시너지를 내는 것처럼 보인다.
두 가지 다 열심히 끌고 나가볼 생각이다. 솔직히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고 하면 못 고를 것 같다.
포기하지 마라.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이다. (웃음) 뮤지션 김푸름과 배우 김푸름이 서로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뭐라고 생각하나.
연기와 음악, 둘 다 할 수 있다는 환경 자체가 이미 큰 선물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고, 그 시간을 전부 창작에 쏟았다. 그 덕분에 두 작업을 병행할 수 있었고, 지원과 인정을 아끼지 않은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내 노래는 평범한지도 모른다. 화려한 기교를 넣거나 고음을 뽐내는 노래가 아니거든. 근데 듣는 분들이 “이상하게 마음이 동요된다”고 말해준다. 아마도 연기에서 비롯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연기를 먼저 했기에 감정을 노래에 섞고 또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음악은 연기할 기회를 기다리는 동안 나를 지탱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아직 연기만으로는 밥벌이를 할 수 없고, 작품이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상황도 아니다. 음악은 그런 나에게 하나의 쉘터이자 퇴로가 되어준다. 작품이 없을 때는 잠시 퇴각해서 곡을 쓰고, 일이 생기면 바로 촬영장으로 달려간다. 그 순환이 나를 버티게 한다.
‘직업인’으로서의 자의식도 남다른 듯하다.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직업인의 기준은 무엇인가. 연기나 음악 모두에서 통하는 원칙이 있을까.
좋은 어른이 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아직 나는 좋은 직업인이라기보다 운 좋게 남들보다 일찍 사회에 나온 ‘작은 후배’에 가깝다. 배워야 할 게 많고, 좋은 어른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다. 주변에 본받고 싶은 어른은 많지만, 그분들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만큼 살면 저절로 그렇게 될 수 있으려나 싶은데, 또 나이가 많다고 해서 다 어른은 아니지 않나.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견뎌왔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올곧은 사람이 부럽다.
많이 흔들리는 편인가.
흔들리지. 항상 어른을 연기하면서 살아왔기에 ‘어른인 척’은 많이 해봤어도, 자신을 진짜 어른이라고 느껴본 적은 없거든. 언제쯤 ‘이제 나도 어른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될까, 그 시점을 아직 모르겠다.


그런 시간을 버티는 과정에서 정서적·체력적으로 자신을 돌보는 루틴이 있다면.
루틴이라기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 대부분 해결된다. 잘하는 일, 해야 하는 일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에너지가 생기고, 평소에 억눌렸던 욕구가 풀리는 느낌이 있다.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데, 엄마가 미술을 전공하셔서 오히려 “미술은 하지 마라”고 하셨다. 어릴 때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미대에 갈 수 없고, 그러면 직업으로 삼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취미로 계속 그린다. 그림 그릴 때면 일상에서 도망쳐 나온 듯 해방감이 느껴지고, 그 시간이 내게는 곧 휴식이기도 하거든. 음악도 평소에 내가 못하는 걸 커버하거나 듣는다. 밴드 음악, 헤비메탈 같은 거. 내 ‘추구미’는 그쪽이거든. (웃음) 그런 노래들 크게 들으면서 런닝머신 뛴다. 고래고래 노래하고.
취미로 그림 그리는 배우들이 꽤 많다. 연기하면 장면마다 감독에게 확인받는 게 일상인데, 그림은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판단해서 완성하는 작업이라 주체성을 회복하는 느낌이라고 하더라.
나도 처음엔 엄마한테 이렇게 그리는 게 맞냐고 묻곤 했다. 인체 비율은 괜찮은지, 색감은 어떤지. 엄마가 그만 좀 물어보라고 하더라. 말한 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창의력도 높아지고 나에게 좀 더 집중하게 된다. 내 손에 온전히 달려 있는 작업이라 좋다. 나는 요새 디지털 아트에 빠져 있다. 누가 보면 웹툰 작가라고 생각할 거다. 전문가용 태블릿까지 야무지게 구입해서 그리고 있거든. 올해 초 ‘가죽’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를 직접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렸다. 엉성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만든 결과물이라 만족스럽고, 그 과정 자체가 무척 즐거웠다. 연기의 의존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나를 되찾는 작업처럼 다가왔다. 어쨌든 음악이나 미술은 혼자서도 시작해볼 수 있으니까.
정말 ‘음미체’ 다 하네.
예체능 인간이다. (웃음)
로맨스 말고 또 기다리는 장르나 캐릭터가 있다면.
액션 영화. 특히 말 타고 달리거나 검을 휘두르는 사극 액션을 해보고 싶다. 어릴 때 무술을 배웠고, 검도를 꽤 오래 했다. 칼을 다루는 게 익숙하고 재미있다. 그런 이미지로 오디션 제안이 잘 안 들어오지만, 언젠가 김태리 배우가 <미스터 션샤인>(tvN, 2018)에서 보여준 것 같은 역할을 꼭 해보고 싶다.
<생명의 은인>은 세정이 집을 찾으며 막을 내린다. 배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집’은 어떤 모습인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곳. 왜냐면 진짜 편한 곳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 마음과 몸이 편안한 곳, 그게 내 집이다. 하와이에 갔을 때 처음으로 ‘여기가 내 집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달 동안 머물렀는데, 아직도 그 집 구조를 기억할 만큼 좋았다.
여행이라는 행위 자체가 결국 ‘내가 어디서 살고 싶은가’를 탐색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하와이 여행 이후로 바다 앞에 집을 사겠다고 마음먹었다. 제주 작업실이 있긴 하지만 작아서, 언젠가는 바다가 보이는 집을 작업실 겸 생활 공간으로 꾸미고 싶다. 내년 초에는 일본으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처음으로 부모님 없이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이다. 친한 작가 언니와 그 동생, 그리고 동생 친구들이 같이 간다. 사실 작가 언니가 동생과 친구들의 보호자 격으로 여행에 가게 됐는데, 내가 그 소식을 듣고 “그러면 저랑 놀까요?” 했다. 후쿠오카나 오키나와 등을 놓고 고민 중이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서 겨울방학을 보내고 싶다. 아침을 함께 먹고 각자 흩어져 돌아다니다가 밤에 만나는, 느긋한 여행이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