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 대왕 vs 집요 마녀
<THE 자연인><3학년 2학기> 이란희·신운섭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5-09-02

이란희와 신운섭은 한마디로 종잡기 힘든 조합이다. 감독과 피디로 두 편의 장편영화를 같이 만들어 놓고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이라며 서로 핀잔하는 파트너, 스크린 안으로 나란히 뛰어 들어가서 뻔뻔하게 대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료 배우,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 기분과 건강을 살뜰히 챙기는 부부. 연출과 제작을 맡은 <3학년 2학기>와 오랜만에 연기를 선보인 <THE 자연인>(노영석, 2025)이 보름 간격으로 개봉하는 지금, 두 사람은 여러 역할을 동시에 소화하며 어디든 함께한다. 붙어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둘의 리듬은 아직도 어긋난다. 신운섭은 “객석을 못 채우면 어떡하지?”라며 발을 동동 구르지만, 이란희는 속으로 ‘굳이 다 채울 필요가 있나?’ 갸웃한다. 그들은 늘 다르게 움직이면서도 끝내 같은 자리에 도달한다. 이란희는 문제를 붙잡아 질문을 던진다. 사회 구조를 해부하고, 불합리의 사례를 채집하며, 보통 사람들의 얼굴을 오래 응시한다. 한편, 신운섭은 걷고 부딪히고 먼저 말을 거는 쪽이다. 지역 모임에 나가고, 우연한 인연을 확장하며, 배우와 관객을 연결하는 자리를 꾸린다. 이란희가 깊이 판다면, 신운섭은 넓게 엮는다. 집요함과 호기심, 그토록 다른 리듬이 모여 영화의 호흡을 만든다. 삶과 마찬가지로 영화 또한 충돌과 합의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들도 싸우고 설득하며 이어진다. 이제는 “척하면 척”이라서 주파수를 맞추기도 전에 다음 교신을 준비한다. 둘이서 만들어 갈 세계를 의미의 축으로 끌어당기고, 재미의 결로 밀어 올리면서. 



개봉을 앞두고 얼마 전 <3학년 2학기> 시사회를 치렀다. 무대에 거의 한 반이 통째로 올라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배우가 참여했는데. 

신운섭_ <3학년 2학기>는 떼로 움직인다. 말하자면 ‘떼신’이다. 주조연뿐만 아니라, 극 중 잠깐 등장했던 배우들도 무대에 함께 올랐다. 소개하는데 “여고생 1로 출연했습니다. 10초 나오는데 찾아봐 주세요!”라고 하는 식이었다. (웃음) 객석에 어떤 분을 모실지도 많이 고민했다. 우리 영화가 사회초년생 이야기 아닌가. 제일 먼저 떠오른 건 <3학년 2학기> 오디션에 참가했던 배우들이다. 나도 오디션에서 떨어져 본 적이 있기에 그분들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미안하기도 하고. 배우들 입장에서는 속상하고 불편한 면도 있을 텐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시사회 초대에 반갑게 응해줬다. 그간 우리 영화를 선보였던 영화제의 자원활동가도 초대했다. 서울독립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춘천영화제 등에서 만났던 많은 분이 참석했다. 자원활동가는 영화제에서 누구보다 애정을 갖고 활동하는 존재이고, 어디서든 우리를 가장 환대해줬던 분들이기도 하다. 아쉽지만 부산국제영화제 자원활동가 분들에겐 연락을 못 했다. 인원이 너무 많다 보니 당일 상영관에서 감당을 못할 것 같더라. (웃음) 


공교롭게도 배우로 출연한 <THE 자연인>과 개봉 시기가 맞물린다. 어제는 <3학년 2학기> 시사회를 진행하고 오늘은 <THE 자연인> GV에 참석하는 식인데 힘에 부치진 않나. 각자 배우와 감독, 배우와 프로듀서로 역할도 번번이 달라진다.

신운섭_ 일부러 동시 개봉한 것은 아니다. <THE 자연인>은 여름에 어울리고 <3학년 2학기>는 ‘2학기’에 맞추다 보니 자연스레 시기가 맞아떨어졌다. 내 입장에서 말하면 <THE 자연인> 행사는 편하다. <3학년 2학기>는 챙길 게 많아서 머리가 좀 아프고. (웃음) 

이란희_ 나도 <THE 자연인>으로 가는 건 마음이 훨씬 편안하다. 어려운 질문이 하나도 없으니까. 보통 촬영할 때 어땠는지, 어떤 생각으로 연기했는지 정도를 묻는다.

<THE 자연인>
<THE 자연인>

어떤 생각으로 연기했나. 극 중 자연인이 1막을 이끈다면, 란희는 그에 못지 않은 기이함으로 2막을 연다. 관객으로서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연기하는 거야?’ 싶던데. (웃음)  

이란희_ <낮술>(2009)의 란희에 비하면, <THE 자연인>의 란희는 덜 이상하다. 적어도 분명한 의도가 있고 그에 따른 계획대로 움직이는 인물이다. <낮술>이야말로 “저 여자는 왜 저러나?”라는 말이 나오지. 2020년에 <휴가> 완성하고 나서 코로나19 시기에 <THE 자연인>을 찍었다. 발성 장애도 있고 연기할 때 집중력이 약해져서 처음엔 배역을 맡기가 좀 부담스러웠는데, ‘노영석이 같이 하자고 하니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대사도 잘 못 외워서 걱정하다가 예전에 가수 이소라 씨가 가사 외우는 법을 얘기했던 게 떠올랐다. 실수하면 안 되니까 오래된 히트곡도 공연 전에 가사를 쭉 써본다고 하더라. 나도 대사를 한 줄씩 쓰면서 외웠다. 실제로 효과가 있더라. 현장이 편안해선지 발성도 괜찮았다. 노영석이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목소리가 꿀렁꿀렁하는 것도 그때는 심하지 않았다. 라면 먹는 장면이 첫 촬영이었다. (*란희는 코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며 시범을 보인다.) 연기하는 건 하나도 안 힘들었는데, 아마도 감독은 편집하면서 힘들었을 거다.

 

노영석 감독은 그 장면에서 테이크를 여러 번 갔다고 하던데.

이란희_ 편집 포인트를 잡으려고 그랬을 거다. 나는 그냥 시늉만 하면 됐다. 실제로 코로 라면을 먹지도 않았고, 코를 특이하게 쓸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 외에는 전부 특이했다. 갑자기 흰 소복 차림으로 등장하지를 않나, 머리엔 누가 봐도 티가 나는 가발을 쓰고. “란희예요, 괜찮아요?”라는 첫 대사 톤까지 묘했다.

신운섭_ 아, 나는 그 의상 보고 속상했다. 이란희가 딱 입었는데 왠지 세월이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이 사람이 나이를 먹긴 했구나 싶더라. 이미지랑 분위기로는 노영석이 어떤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지가 바로 파악됐고. (웃음)

이란희_ 근데 관객들이 그 첫 대사를 좋아하더라. 나는 란희가 당황한 인공(변재신)에게 대뜸 외치는 대사가 재밌었다. “저를 좋아한다고요?” (웃음) 제일 힘들었던 대사는 “인공 씨는 참 순수한 사람 같아요”였다. 뜬금없이 왜 그런 말을 하나 싶었다. 노영석은 대사를 진짜 이상하게 쓴다. 머릿속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의 모든 작품에 출연한 배우다. 그런데도 아직 속을 모르겠나.

이란희_ 실은 알지. 낯가림도 심하고 내색을 별로 안 하는 친구인데, 알고 보면 속으로 엄청나게 고민하고 계산하는 스타일이다. 사람들을 어떻게 웃길까. 어떻게 놀라게 할까. 나를 캐릭터로 쓴 시나리오를 보면 저 혼자 얼마나 킥킥거렸을지도 짐작이 간다.

신운섭  ⓒ이영진

한겨레영화학교에 다니면서 처음 만났다고 들었다. 그게 언제쯤인가. 

이란희_ 2005년이었다. 벌써 20년 전이다. 신운섭도 노영석과 그때부터 알고 지냈다. 

신운섭_ ‘란희 누나 남편’으로 알았지. 이미 우리는 애도 있었을 때고. 

이란희_ 당시 노영석이 ‘밤의 반장’을 맡았다. 영화학교 수업 반장이 낮의 반장이라면, 노영석은 비공식 반장, 그러니까 뒤풀이를 주도하던 멤버였다. 사람들이 수업 마치고 나와서 문 앞에 어색하게 서 있다가, 누가 “술 한잔할까요?” 하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다들 친해지고 싶으니까. 그때는 돈이 없어서 3천 원씩 걷어서 술을 먹었다. 신촌 순댓국집에서 순댓국 한 그릇 시켜놓고 밤새 소주를 마시는 거다. 서강대학교 농구장, 옛 신촌 놀이터, 한강 고수부지에서도 그렇게 노숙하면서 술을 마셨다. 당시 담임 강사였던 박찬옥 감독님이 한강에 오셨던 기억이 난다. 신운섭도 놀러오고. 

신운섭_ 이 사람이 서울로 수업만 갔다 하면 외박을 하니까. 

이란희_ 거의 1박 2일로 강의를 다녔지. 수업은 세 시간이었고 나머지는 술자리였다. 

신운섭_ 아이가 너댓살쯤 됐던 무렵이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마스를 몰고 신촌까지 찾아간 적도 있다.  

이란희_ 결국 애를 고수부지에 재워놓고 같이 술을 마셨다. 박찬옥 감독님이 아이 보면서 예뻐하고. (웃음) 우리 집이 인천이다. 심지어 서울에서 인천으로 왔다가 다시 서울 간 적도 있다. 어린이집에서 애를 데려올 사람이 없으면 내가 하원시키고 애랑 같이 전철을 타는 거다.

신운섭_ 둘 다 30대였던 시절이다. 먹고 사느라 힘든 시기였고, 작업도 마음처럼 안 됐다. 근데 이란희가 어느 날 김곡, 김선이랑 영화를 한 편 찍더니 재밌더라면서 갑자기 무슨 수업을 듣겠다는 거다. 당시엔 그냥 별 생각 없이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매주 외박할 줄은 모르고. (웃음)

 

<뇌절개술>(김곡·김선, 2005) 촬영하면서 영화에 관심이 생겼나. 

이란희_ 연출이 재밌어 보여서 한겨레영화학교를 갔던 거다. 그전에는 극단 한강에서 활동했고 운동권 문화에 익숙했다. 그러다 <웰컴 투 동막골>(배종, 2005)로 상업영화 분위기를 잠깐 맛봤고, <뇌절개술> 하면서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영화를 만드는지 알게 됐다. 그러다 한겨레문화센터에 갔는데, 거기엔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대부분 나랑 열 살 이상 어린, 80년대 초·중반생이었다. 그들의 문화가 또 재미있었다. 일본 만화 좋아하는 애들부터 시작해서 관심사가 다양했거든. 나는 71년생이고, 노영석은 나보다 다섯 살이 어리다. 나이로 치면 우리 반에서 중간이었지.


자연스레 다리 역할을 했겠다. 밤의 반장을 할 만했네. 

이란희_ 노영석은 나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어린 친구들과도 가까웠다. 수업도 수업인데, 그들 사이에서 어울려 노는 게 즐거웠다. 내가 몰랐던 새로운 문화와 이야기가 사방에서 막 들어오니까.

신운섭_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30대가 많은 나이도 아닌데, 다른 학생들 입장에서는 애 엄마가 와서 자기들과 놀고 있으니 특이하게 느껴졌을 거다.

<낮술>
<낮술>

노영석 감독과는 처음부터 잘 맞았나.

이란희_ 긴 시간을 지켜본 사이다. 사실 다른 점이 더 많다. 영화 취향도, 영화를 바라보는 가치관도 분명히 다른데, 서로 “너는 왜 나처럼 안 만드니?” 같은 얘기는 하지 않는다. 


편하게 말할 법도 한데 왜?

이란희_ 어차피 다 성인이고, 각자 생각이 있으니까. 걔가 무슨 한나라당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지 않나. (웃음)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THE 자연인>에서 스태프 규모는 더 단출해졌다. 1인 제작 체제에 가까웠는데, ‘원맨쇼’하는 노영석 감독을 어떻게 바라봤나.

신운섭_ 배우로서는 재미있었다. 현장 얘기 들으면 다들 힘들었겠다고 하는데, 뭐 내가 힘든가. 노영석이 힘들지. 배우들은 주연이 아닌 이상 보통은 자기 분량만 찍고 현장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면서 과정 전체를 지켜볼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촬영을 혼자 하겠다는 건가 싶었는데, 첫날 가보니 한쪽 방에 뭘 잔뜩 쌓아놨더라. 촬영 장비, 마네킹 같은 소품, 온갖 종류의 컵밥까지. 그거 보는데 웃겼다.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구나 싶고. 영화 현장은 리허설이 거의 없다. 촬영 전에 세팅하면서 감독이 잠깐 확인하는 정도이고, 주연이 아니면 배우끼리 같이 맞춰볼 기회도 거의 없다. <THE 자연인>에서는 원 없이 했다. 어차피 다른 배우들과 같이 먹고 자고 하는 데다, 따로 할 일도 없고. 젊은 친구들은 사실 좀 피곤했을 거다.

 

연습을 주도했나.

신운섭_ 하루 촬영 분량이 10분밖에 안 됐다. 무대로 치면 10분짜리 연극을 한 편 하는 셈이다.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니 계속 맞췄다. 그러다 보면 대본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재미있는 것이 불쑥 나올 때가 있다. 노영석은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거 좋네요” 혹은 “그건 아닌 것 같아요” 하고. 연기는 일종의 토론이라고 생각한다. 말로 뭔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마다 자기 해석과 의견을 연기로 표현한다. 감독은 거기서 방향을 잡고. ‘꼰대’ 짓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맘껏 리허설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서 즐거웠다. 노영석도 대단했다. 첫날 계곡 장면을 찍었는데, 도와주려고 했더니 괜찮다며 말리더라. 저쪽에 트라이포드 세워놓고 컷 하나 하나 찍었다. 저녁 되면 날짜별로 사운드 데이터 분류하고. 배우들이야 뭐 촬영 끝나면 노영석한테 카드 받아서 밥 먹으러 갔지. 그래도 소고기는 안 먹었다. (웃음)


직접 영화를 연출하고 제작하는 입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부분도 있나.

신운섭_ 괜찮은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영화를 이런 방식으로 찍어도 좋겠는데?’ 소규모여도 충분히 좋은 환경이었다. 배우들이 같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여지도 있고. 

이란희_ 어떻게든 영화를 찍어 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신운섭_ 근래 비슷한 사례가 꽤 있다.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했던 <바얌섬>(김유민)은 최소 인원이 실제 무인도로 들어가서 촬영했고, <봄밤>(강미자, 2025)도 스태프가 총 6명이라고 들었다. 이하람, 이종수, 박송열 등 여러 감독이 소규모 제작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란희_ 나는 혼자서는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사람이다. 기계치라 촬영도 못하고, 운전도 못한다. 노영석은 진짜 혼자 다 했다. 당시 현장에 사나흘간 머물렀는데, 연기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안 도와줬다. 돕겠다고 생색내는 것보다는 그냥 그 친구가 하고 싶은 대로, 본인이 구상한 바를 실천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도리에 맞다고 봤다. 위대함을 느꼈던 순간은 후반 작업하면서다. 후시 녹음하러 오라고 해서 작업실에 갔는데, 역시나 동료는 한 명도 없었다. 편집에 CG며 후반 믹싱까지 혼자서, 다른 일하는 와중에 틈틈이 시간을 내서 하고 있더라. 그때 알았다. 이건 열심히만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구나. 영화를 왜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만들겠나. 분야마다 다른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니 집단으로 작업하는 거다. 근데 노영석은 혼자 해냈다. 외로움은 둘째치고, 모든 공정을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니 별거 아니라며 “누나, 유튜브 찾아보면 다 나와”라고 하더라. 할 말이 없었다. (웃음)

ⓒ이영진

감독도 애초 자신감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방식을 선택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이란희_ <낮술>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탔을 때, 스태프들이 농담처럼 노영석을 천재라고 불렀다. 몇 년간 “영화 천재”라면서 놀렸는데, 이제 보니 진짜 천재인가 싶다. 

신운섭_ 노영석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자기 방식대로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다. 현장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눈앞에 닥친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면서 감정을 조절하더라.

 

부부이자 동료로서 둘의 작업 방식은 어떤가. 이란희 감독이 연출을 시작한 이래, 전 작품의 제작을 신운섭 프로듀서가 맡고 있는데.

신운섭_ 솔직히 나는 피디라고 불리면 조금 창피하다. 사람들은 장편 두 개나 해봤으면서 무슨 소리냐고 하는데, 산업 시스템에서 전통적으로 그리는 피디의 상은 따로 있는 것 같거든. 나는 그것과는 거리가 있고. 아까 내가 <THE 자연인> 리허설을 많이 해서 좋았다고 하지 않았나. 연극을 했던 사람으로서 내게 그러한 작업 방식은 대단히 새롭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비효율적이라고 하겠으나, 그것이 영화에 필요하다면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이란희_ <3학년 2학기>의 경우, 촬영 전에 스태프들과 학교, 집, 공장 등에 미리 가서 리허설하는 과정을 거쳤다. 본 촬영 들어가기 전에 해당 공간에 직접 가보자고 했더니 오히려 스태프들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말리더라. 사전 리허설을 촬영지에서 하려면 근무일을 추가해야 하고, 공장의 경우에는 휴무일에 일정을 맞춰야 하니 심지어 주말 근무를 하게 된다. 그러면 제작비에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 스태프들이 그걸 아니까 고개를 저었던 거다. 하지만 신운섭과 나는 그 경험이 꼭 필요하다고 봤고, 일정을 조정해서 사전 현장 리허설을 강행했다. 막상 촬영 공간에서 리허설하고 나서는 스태프들 모두 좋아했다. 촬영에 필요한 많은 것이 한꺼번에 체크가 되니까.

신운섭_ 근데 산업 시스템에 속한 피디들과 얘기해 보면, 그들 입장에선 이런 부분을 전혀 상상할 수 없다는 거지. 내 기준에서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인데, 우리 정도 규모에서는 계획을 잘 세워서 진행하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작업인데 말이다.

이란희_ 시작점을 돌이켜보면, 내가 첫 단편을 연출하던 무렵에는 피디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니까 옆에서 지켜보던 신운섭이 내 작업을 돕는 개념으로 피디 일을 시작했던 거다. 하지만 장편은 더 오랜 기간을 투자해야 했고, 취재나 로케이션 등 지역 기반의 만남이 꾸준히 필요했다. 신운섭이 그런 자리에 자연스레 함께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공동 작업처럼 되어 버렸다. 단편보다 장편에서, <휴가>보다는 <3학년 2학기>에서 더 그랬다.뭐 동료로서 어려운 점을 한 가지 말한다면, 이분이 자꾸 안 될 것 같은 일을 벌인다는 것이다.

 

상상의 폭이 크다는 뜻인가.

이란희_ 기획 면에서 그렇다. 실현이 어려워 보이는 아이디어를 계속 제안하는데, 그 일을 같이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선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떤 청사진을 그리는지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인 판단으로 일을 진행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일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동료로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웃음) 다른 문제는 동료이자 같이 사는 가족이라는 점이다. 집에 방이 세 개다. 딸 방, 내 방, 신운섭 방. 우리는 각자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식탁에서 잠깐 모이고 흩어진다. 여기까지는 이상적인데 문제는 신운섭이 일하다가 의논할 부분이 생기면 나를 계속 부른다는 거다. 우리 집이 넓지 않거든? 자기 방에서 내 방까지 끽해야 열 걸음이다. 그런데도 사장실에서 경리 부르듯 “야! 이란희!” 하루에 대여섯 번을 그렇게 불러대면 짜증이 난다. 


부르는 입장에서 할 말은 없나. (웃음) 

신운섭_ 나만 부르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건 아니다.

이란희_ 물론 나도 신운섭을 부른다. 내 모니터로 뭔가를 봐야 할 때만. 

<3학년 2학기>
<3학년 2학기>

말은 이렇게 해도 일과 생활이 섞이면서 생기는 긍정적 효과가 없다면 지속하지 않았을 텐데.  

이란희_ 좋은 점은 우리가 같은 경험을 하면서 쭉 살아왔다는 거다. 성향이나 기질 차이는 있어도 거의 비슷한 경험이 쌓이다 보니까 척하면 척이고, 구태여 맥락을 설명하지 않아도 왜 저런 소리를 하는지 알게 된다. 일하면서 만나는 타인에게 내가 무엇을 겪으며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게 됐는지 일일이 설명하기란 어렵지 않나. 흔히 코드 맞는 사람을 찾으라고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고 서로 맞추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신운섭_ 작업 과정에서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단편 <파마>, <결혼전야> PD를 할 때는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한 슬림하게 만드는 게 목표였다. 워낙 작은 작품인데다 내가 극단에서 무대 감독을 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이야기를 기사로 접하면서 <천막>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부평에서 문화제가 열린다고 해서 가봤고, 이란희한테도 같이 가자고 했다.

이란희_ 나는 원래 밖을 잘 안 돌아다니는 편이다.

신운섭_ 자연스레 대외 접촉은 내 몫이 됐다. 나는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며 주기적으로 교류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소에는 걷기 모임, 등산 모임 같은 데 가서 사람들을 만난다. 이게 쓸모 없는 짓이 아니다. 예를 들어 <3학년 2학기>에서 공장을 섭외해야 했다. 몇 개월 전부터 곳곳에 얘기를 해두었더니 한 분이 “우리 남편이 공장 이사예요”라면서 소개해줬다. 그런 식으로 내 역할이 굴러간다. 한편, 이란희를 작가이자 연출자로서 존경한다. 작업에 돌입하면 관련 도서를 찾아보고, 철학적·인문학적 바탕을 쌓고, 실제 사례를 인터뷰하면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이란희_ 얘기를 듣다 보니 우리 특성이 보인다. 너는 호기심, 나는 집요함. 그래서 내가 집요하게 뭘 하는 와중에 네가 또 다른 호기심을 얘기하면, 그게 잘 안 들리나 보다.


작업하면서 서로 낯설게 느꼈던 적은 없나. 이 사람에게 이런 면이 있나 싶었던 순간.

이란희_ 이번에 자체 배급하면서 신운섭이 스트레스를 꽤 받은 것 같다. 본인도 처음 해보는 일이니까. 집에서 계속 씩씩대며 다니더라. 나랑 스타일이 다르다. 나는 감정을 밖으로 안 드러내는데, 이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감정을 소리 내서 말한다. 옆방에서 그걸 들으며 나도 스트레스가 쌓였다. ‘저렇게까지 욕심 안 내도 되지 않나?’ 싶고. 예를 들면 나는 시사회 객석을 꽉 채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신운섭은 “어떻게 하지? 어떻게 다 채우지?” 그러면서 힘들다, 피곤하다 그런다. 무슨 고3 아들 키우는 느낌이었다. 과일 썰어다 갖다 주고. (웃음) 그런데 시사회 끝나고 뒤풀이에서 보니까 완전 신나 있더라. 그걸 보면서 알았다. 저 사람이 좋아서 그랬던 거구나. 억지로 일하는 게 아니라, 그 일을 정말 좋아해서. 나는 속으로 ‘저러다 뇌 터지겠다’ 걱정했거든. 근데 알고 보니 자기 머릿속에 그려온 장면이 있어서, 그걸 실현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되니 힘들었던 거다.

신운섭_ 사실 사무실에서 혼자 일할 때는 안 그런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나름대로는 그때 마음을 이란희에게 공유하고 싶고, 돌봄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이란희_ 우리 오늘 부부 심리 상담하러 온 건가? (웃음)

신운섭_ 욕심을 냈던 것은 어떤 장면을 상상해서라기보다는 내 일이니 최대한 잘하고 싶었던 거다. 자체 배급을 결정하면서 힘든 부분도 많지만, 기존 배급사 구조에서 못 하던 걸 해볼 기회라고 받아들이려 한다. 그리고 이란희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은 어떻게 표현할까, 가끔 남처럼 굴 때가 있다.

이란희_ 우리는 원래 남이다. 자식이랑 부모도 남인 걸. 자식이 누구를 만나고 어떤 세계를 경험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부모가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물며 부부는 오죽하겠나.

 

<3학년 2학기>는 어떻게 시작했나.

이란희_ 2020년에 <휴가>로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을 마치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떠 있었다. 그러다 12월 말쯤부터 다음 작품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사회과학 책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마음이 간 건 능력주의, 계급의 세습 같은 주제였다. 자연스럽게 연소 노동자로 분류되는 10대 후반~20대 초반 노동자에게 눈길이 갔다.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창작일지를 보니 이미 2021년 10월 말쯤에 “연소 노동자 이야기를 해야겠다”라고 썼더라. 그 무렵 <휴가> GV에서 ‘산업재해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을 만났다.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 유명을 달리한 김동준이라는 청소년이 있는데, 동준 어머니와 GV를 함께했다. 행사 끝나고 동준 어머니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먹었다. 이 얘기를 해야겠다고.


창우는 언뜻 조용하고 평범한 학생처럼 보이지만 가족, 친구, 동료, 선생 등 관계에 따라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인물의 다면성이 두드러지는데 취재는 어떻게 진행했나.

이란희_ 콜트콜텍 얘기로 <천막>과 <휴가>를 작업하며 편리했던 건, 취재 대상이 항상 같은 곳에 있다는 점이었다. 해고노동자도, 그들의 주변 사람들도 천막에 모여 들었으니까. <3학년 2학기>는 그와 달리, 취재 대상의 아지트가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만났던 청소년 중 직업계고를 다녔던 아이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한 친구를 인터뷰하고 주변에 직업계고 다닌 친구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그 애가 인스타그램에 게시글을 올렸다. 덕분에 몇 명을 만났고, 지인을 통해서도 알음알음 취재 대상을 찾았다. 한편, 창우의 가족 구성에는 내 경험이 반영됐다. 실제로 오빠들과 나이가 6살, 8살 차이 난다. 위에 있는 형제들이 어린 식구에게 갖는 책임감이나 애정을 익히 알고 있다. 엄마가 오빠들에게 의지하며 여러 가지를 의논하기도 했고. 이런 경험이 영화에 자연스레 들어왔던 것 같다.

이란희 ⓒ이영진

현장 실습생을 다룬 기존 영화들이 있는데, 중복이나 재현의 부담은 없었나.

이란희_ 백재호 감독이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유, 돌베개, 2019) 판권을 사고 영화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다음 소희>(정주리, 2023)에 관한 정보는 몰랐는데, 개봉 첫날 보고 나서 걱정할 필요 없겠다고 생각했다. 방향이 완전히 달랐으니까. <젊은이의 양지>(신수원, 2022)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고민한 것은, 현장 실습생 이야기를 하면서 산재로 인한 죽음, 즉 청소년·청년 노동자의 죽음을 다루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다만 그 사건에만 집중하면 관객 입장에서는 죽음만 남을 것 같았다. 어떤 식으로 영화에 죽음을 넣을지 오래 고민했다.

 

시나리오 버전이 여러 개였나.

이란희_ 크게 세 개였다. 첫 번째 버전은 여학생이 용접사가 되는 이야기였다. 두 번째는 남학생이 대기업 하청업체에 들어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싸움에 휘말리는 이야기였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초기에 방향을 틀어 새롭게 구상하길 잘했다고 본다. 

 

영화 안에서든 밖에서든 배우들이 모여서 발산하는 에너지가 유난히 좋다. 현장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둘만의 비결이라도 있나?

이란희_ 촬영을 마치고 더 가까워졌다. 여러 영화제와 상영회를 거치면서 공통의 경험이 계속 쌓이는 거다. 그걸 본 사람들이 귀엽다, 기운이 좋다 해주니 더 고무돼서 어울려 다니고. 게다가 작품 경험에도 큰 편차가 없었다. 대부분 신인이고, 장편영화 촬영이 처음인 친구들도 있었다. 낯선 경험을 함께하면서 자연스레 친해지더라. 김소완 배우가 소속감을 느껴서 좋다고 한 적이 있다. 무주산골영화제 상영 전날, 우리끼리 펜션 하루 더 빌려서 MT를 했거든. 고기 구워 먹다가 소완 배우가 문득 말을 꺼냈다. 졸업하고 사회에 던져진 시기에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만나서 다행이었다고.

신운섭_ 그 말을 듣는 순간 찌릿했다. 사실 나는 이 청춘들에 관해 잘 모른다. 같이 어울려 지내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돌아서면 또 혼자 있고 싶어 한다. 홀로 감당하기 벅차면 누구랑 좀 같이 해도 되는데, 관계 맺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란희_ 혼자 있으면 고립될까 봐 불안하고, 같이 있으면 뭘 책임져야 할까 봐 부담스러운 거다. 자칫 잘못했다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올지도 모른다는 초조함도 있는 것 같고.

신운섭_ 그런 마음이 보여서 속상하더라. 내가 억지로 그들을 붙여 놓는다고 뭐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느슨하게나마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려 했다.

이란희_ 한편, 친밀감뿐만 아니라 자부심도 중요한 감정 중 하나다. 배우들이 영화제를 거치면서 관객과 만나는 맛을 봤다. 단순히 연기 잘했다거나 영화 재밌다는 칭찬을 듣는 걸 넘어서, 자신이 연기한 인물을 가리키며 관객 스스로 이야기를 막 들려주는데 얼마나 신기했겠나. 어떤 관객이 GV에서 이렇게 말했다. “질문은 아니고요,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다른 분들께는 영화 속 모든 이야기가 생경하시겠지만, 제게는 친구들의 이야기였고 또 저의 이야기였습니다. 영화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분이 그렇게 말할 수 있던 건 영화를 보는 동안 다른 관객들의 반응을 살폈기 때문이다. 자신과 닮은 인물을 다른 이들이 어떻게 바라보는지 확인했기에 용기 내서 얘기한 거다. 배우들도 그 마음을 모르지 않을 거고, 각자 ‘내가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고 있구나’ 자부심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니 모여 있으면 좋은 에너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란희 감독의 비전과는 별개로, 이번 작업에서 신운섭 피디에게는 무엇이 가장 큰 동력이었나.

이란희_ 당신한테는 ‘어른’이 주요 키워드 아닌가?

신운섭_ 성민이가 공장을 방문한 노무사와 대화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그때 노무사가 학생들에게 간식을 건네는데 손이 안 닿는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 배우 체구가 작고 테이블 폭은 넓다 보니 그렇게 됐다. 현장에서 보며 굉장히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만났던 어른들, 교육청이고 학교고 회사고 다들 열심히 한다는데 정작 애들한테는 그 노력이 닿지 않더라. 아이들 옆에, 지금보다는 가까이에 괜찮은 어른들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진행 중인 공동체 상영 프로젝트 ‘전국수학여행’도 그런 마음으로 출발했다. 지역사회에 괜찮은 어른들이 모여 있는 단체나 모임이 있으면 연계하고 싶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창작이고, 아이들 곁에는 그들을 품을 수 있는 어른들이 있기를 바란다. 50대에 접어들면서 실망감이랄까, 화를 종종 느낀다. 우리 세대가 꽤 잘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보니 웬걸. 사회가 너무 부실하다. 엉망이다. 그간 나는 뭐했나 싶다.

이란희_ 신운섭에게는 어른으로서의 책임감과 반성이 큰 원동력인 것 같다. 나는 그런 쪽으로는 눈길이 안 간다. 나의 울분은 사회가 지나치게 사람을 몰아세운다는 데 있다. 한 인간이 현재로 오는 과정에는 수많은 요인이 작용한다. 어느 나라,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부터 시작해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이유가 있다. 그런데 사회는 너무 빠르게 평가한다. 낮은 평가를 받은 사람에게는 “그래도 싼 인생이지”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걸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너 같은 사람은 일하다 다칠 수도 있어, 죽을 수도 있어”까지 간다고 본다. 그게 내 울분이다. 창우를 일부러 드라마틱하게 설정하지 않았다. 창우는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고 공부 성적도 별로다. 경제 상황도 마찬가지다. 프랜차이즈 치킨 한 번 사먹기가 빠듯한 형편이지만, 기초생활수급자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나는 그게 보통 사람들의 삶이라고 본다. 근데 그들이 루저 취급을 받고 산다면 어떻게 되겠나. 공부를 잘해서 과학고에 진학한다고 다를까? 거기서도 루저는 생긴다. 그러면 대체 자긍심을 갖고 사는, “나와 내 삶을 존중해달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나라에 몇이나 될까? 어른들은 이골이 났다고 쳐도, 아이들까지 그걸 감내하며 산다는 건 불합리하다.

<휴가> 촬영 현장
<3학년 2학기> 촬영 현장

생각의 기원은 달라도 두 사람의 이야기는 결국 맞닿는다. 앞서 말한 ‘전국수학여행’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지역 거점을 만들려는 둘의 마음이 전해졌다. 

신운섭_ 어른들이 딴소리 하지 말고 일단 애들 얘기를 좀 들었으면 좋겠다. 이게 내 속마음이다. 지난 5월 금속노조인천지부, 금속노조한국GM지부, 부평공업고등학교가 모여서 상영회를 열었다. 지부장이 말씀을 잘해주셨다. “30년 전에 저도 공고생이었습니다. 이 영화 보니까 여러분은 참 잘하고 계시네요. 근데 저는 옛날에 완전 꼴통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30년이 지났는데도 노동 현장에 여전히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여러분을 위한 준비가 잘 안 되어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도 마음을 열더라.

이란희_ 노조 조끼를 향한 막연한 혐오가 사라지는 거지.

신운섭_ 행사 끝나고도 대화가 이어졌다. 어떤 애는 용접이 잘 안 된다면서 조언도 구하고, 다 같이 사진도 찍고. 그 모습을 보면서 ‘이거야! 이런 순간을 만들어내야 하는 거야!’ 싶었다.

이란희_ 나는 이 영화가 잘 활용되면 좋겠다고는 생각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에 골몰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갈 길이 멀게 느껴져서?

이란희_ 신운섭이랑 맨날 집에서 싸운다. “사람들이 영화를 재미있어서 보러 오는 거지, 영화 관람이 무슨 운동인 줄 알아? 이건 문화생활이야.”

신운섭_ 그러면 나는 이렇게 받아친다. “운동도 좀 하면 안 되냐?” (웃음)

 

결국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공동 작업의 근본적인 목표일 수도 있겠다.

이란희_ 독립예술영화를 즐겨 보는 친구가 그러더라. 사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라 하면 일단 의무감으로 보게 된다고. 그런데 관람 내내 죄책감을 느끼고, 후려 맞은 기분만 남아서 영화를 본 것 같지 않더란다. 보면 고통스러울 것 같은, 영화적 재미가 그다지 기대되지 않는, 의미를 강조하는 영화. 결국 “이 영화를 안 보면 이 이슈에 관심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본다는 얘기였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관객층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구나 싶었고, 그들 입장에서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어쩌면 사람들이 티켓만 사고 영화를 보러 가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일 수 있겠구나 싶다. 죄책감에서 손쉽게 벗어나는 방식이다. 집회에 직접 나가는 것보다 5만 원 후원하는 게 편한 것처럼 말이다. 가끔 팟캐스트나 유튜브에서 “입장료라도 보내세요”라는 식으로 작품을 홍보하는 걸 목격한다. 영화들이 그런 방식으로 어필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안타깝다고 느꼈다. 친구가 “네 영화는 어떻게 풀었는지 궁금하다”며 <3학년 2학기>를 보러 오겠다고 했다. 앞으로 계속 고민해볼 부분이다. 


의미와 재미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생각보다 훨씬 밀접하게 붙어 있는지도 모른다. 둘은 그걸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고. 

이란희_ 지금은 개봉으로 안팎이 시끌시끌한 상태다. 번잡스러운 상황이 정리되면 책도 좀 보면서 천천히 다음 작업을 생각하려 한다. 내년부터는 생계 활동과 예술교육 활동을 어떻게 지속할지도 고민해야 하고.

신운섭_ 그간 ‘노동하는 이웃, 소금꽃’이라는 지역 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각자 삶이 바쁘고 고단하다 보니 타인은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지 않나. 그런데 서로 조금만 알게 되면 남의 인생과 노동에 관해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된다. 

이란희_ 다르덴 형제의 활동에서 모티브를 얻어 시작했다. 소금꽃 작업하며 영화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예를 들면 <3학년 2학기>에 A급이니 폐급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비정규직 노조 활동하는 30대 청년에게 전해 들은 것이다. 아웃소싱으로 초짜들이 들어오면 “걔는 딱 봐도 폐급이지”라는 식으로 대놓고 말한다고 하더라.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도. 그렇게 누군가를 직접 만나고 소통하면서 새로 알게 되는 세상이 있다.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지만, 다음 영화도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준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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