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하는 방법
반짝다큐페스티발 이은혜·민다홍·조이예환·문창현·이인섭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Feature / 2025-05-18

내년을 기약할 수 있을까? 2023년,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품고 첫 발을 내딛었던 반짝다큐페스티발이 어느덧 3회를 맞이한다. ‘국내 유일 비경쟁 중단편 다큐멘터리 영화제’라는 수식어를 달고, 지금 이곳에서 제작되고 있는 독립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며 그 의미를 서로 나누는 장이다. 세 번째 영화제를 꾸리는 운영위원은 다섯. 상영작 선정부터 행사 운영까지 전부 직접 하기에 손발이 부족하지만,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공간을 함께 만든다는 마음이 맨 앞에 선다. 이들과의 대화는 그래서 영화와 영화제 양쪽을 오가며 끝없는 질문과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어떤 작업을 하고, 또 어떤 공간에서 서로를 만나야 할까? 부지런히 영화제를 준비하는 다섯 운영위원을 잠시 불러 세웠다.

부산의 독립 다큐멘터리 공동체 오지필름에서 활동하며 <기프실>(2018)을 만든 문창현 감독은 지난해부터 2년째 운영위원으로 함께 하는 중이다. <불빛 아래서>(2019)를 연출한 조이예환 감독은 1회에는 운영위원으로, 2회에는 상영작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2023)의 연출자로 영화제와 호흡을 맞췄다. 여기에 지난해 <My First Funeral>(2023)과 <같이 살기>(2023)를 상영하며 각각 영화제를 방문했던 이은혜, 민다홍 감독과 반짝다큐페스티발의 열렬한 관객이었던 이인섭 감독이 새로운 운영위원으로 합류했다. 여름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세 번째 ‘반다페’의 이야기를 전한다. (반짝다큐페스티발은 5월 30일부터 인디스페이스에서 3일간 개최된다. 5월 23일부터 29일까지 인디그라운드에서는 ‘다시 만난 반짝’ 기획전을 통해 역대 상영작 중 26편을 온라인으로 상영한다.)

 

 

1, 2회 운영위원, 지난 상영작 감독, 처음 합류하는 멤버 등 다양한 인원으로 3회 운영위원을 꾸렸다. 어떻게 모였나.

조이예환_ 2회 반짝다큐페스티발이 끝나고 운영위원들한테 의사를 전했다. 3회를 하겠다고.

문창현_ 조이가 다시 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많이 보여줬다. 그래서 제안을 했고,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됐다.

조이예환_ 2회 운영위원을 했던 허철녕 감독과 비슷한 마음이었다. 둘 다 반다페를 했던 기억이 너무 좋아서, 한 회 더 해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다만 기존 멤버가 많은 건 별로인 것 같아 둘 중에서는 내가 하기로 했다. 1회 운영위원을 할 때 정말 재밌었다. 2회 때는 상영으로 참여했는데, 물론 재밌었지만 1회 때보다는 조금 덜 놀았다. 그때처럼 더 놀고 싶다.

문창현_ 기대되는데. (웃음) 나도 2회 운영위원을 마치고 더 이어가고 싶은 의지가 있었다. 한해 더 해서 좀 더 의미 있는 활동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다. 운영위원은 이전 기수에서 한두 명 정도 남아 다리 역할을 하되, 새로운 인원이 많이 합류하는 형태로 합의했다. 1, 2회를 연달아 했던 최종호 운영위원의 역할을 지금은 내가 하고 있는 셈이다.

 

2회에 운영위원으로 합류한 계기는?

문창현_ 1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소식을 들었을 때, 지역에서도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열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역에도 단편영화제나 국제영화제가 있지만 다큐멘터리 영화제는 거의 수도권 중심이니까. 1회 반다페 뒤풀이 때 그런 얘기를 했는데, 운영위원이었던 수목 감독님이 솔깃하셨는지 2회를 같이 해줄 수 있겠냐고 하시더라. 지역에서도 영화제가 열릴 수 있으면 좋으니 좀 멀리 보고 합류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작년에는 ‘반짝다큐페스티발 in 부산’이라고 영화제 이후에 부산에서 전 작품을 다시 상영했다. 다른 얘기지만 올해 오지필름이 부산에서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열게 됐는데,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열악하다는 건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지속할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사월의 마지막 날들>
<병풍을 찢고서>

민다홍, 이은혜 감독은 지난해 상영작 연출자로 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다.

민다홍_ 영화를 상영하고 많은 동료 감독님을 만나면서 반다페의 존재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창작자로서 앞으로 어떻게 다큐멘터리 작업을 이어갈 것인가를 많이 고민하던 시기에 좋은 경험을 했다. 반다페가 앞으로도 좋은 방향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 운영위원을 할지 말지 엄청나게 고민했다. “같이 하실래요?” 늘 지나가듯 물어보시거든. 그러다가 어느 날 덥석 물었다. (웃음)

이은혜_ 작년 상영이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인디다큐페스티발을 보러 서울에 자주 왔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꼭 인다페에서 틀고 싶었는데 대학생이 되니까 영화제가 사라졌더라. 그러다 졸업할 즈음 반짝다큐페스티발이 열렸다. 꼭 상영하고 싶었던 영화제의 의미를 이어가는 곳에서 내 작품을 상영한다는 게 정말 뜻깊었다. 부산 상영도 좋았다. GV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어쨌든 뒤풀이 자리에서 운영위원을 하기로 했던 기억이 난다. 책임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지. (웃음)

민다홍_ 난 2016년쯤 인다페에 처음 가봤다. 어릴 때부터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었는데, 그거로는 먹고살기 힘드니 직장에 다녔다. 케이블 채널이나 브랜드 마케팅팀에서 영상 만드는 일을 계속하다가 부산으로 가서 첫 작품을 만들게 됐다. 당시 멘토가 창현이다. 울주산악영화제에서 제작 지원을 받아 작업했다. 그걸 가지고 서울까지 왔다는 게 의미가 컸다. 다큐멘터리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상영한다는 것도 좋았고. 반다페를 통해 얻은 경험과 인연이 귀해서, 그런 자리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은혜_ 나 역시 공간에 대한 의미를 찾았던 것 같다. 영화제가 지속돼야 다큐를 만들 수 있는 힘도 더 나고,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면 즐거움과 재미가 같이 오니까. 앞으로 내가 창작 활동을 하려면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도 같이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라지지 않아야 하니까 열심히 해야지, 그런 마음이라고 할까.

 

이인섭 감독은 새로운 얼굴이다. 푸른영상 소속이라고.

이인섭_ 운영위원 중 가장 늦게 합류했다. 반다페에서 상영한 적은 없지만, 1회 반짝다큐페스티발을 3일 내내 즐겼던 관객 중 한 명이다. 그즈음 미디액트에서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들었고, 인연이 되어 다큐멘터리 관련 일을 하다가 푸른영상에 들어가게 됐다. 그러다 조이한테 운영위원 제안을 받았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부담 없이 해도 된다고 해주어서 기쁜 마음으로 합류했다.

조이예환_ 푸른영상에 새 멤버가 들어왔다는 게 특별하게 느껴졌다. 충격이기도 했고. 전통이 있는 단체의 새 멤버가 반다페 운영위원을 하면 의미 있을 것 같아 제안하게 됐다. 그때는 관객이었는지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됐지.

문창현_ 나한테는 소속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인섭을 통해 반짝다큐페스티발의 성격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소속이나 일을 떠나서 누구나 영화제를 만들 수 있다는 정신이 우리 영화제에 내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디액트 수업은 어떻게 듣게 됐나.

이인섭_ 그전에는 다큐멘터리 만든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해봤다. 친구가 같이 수업을 듣자고 했는데, 결국 그 친구는 수강을 안 했다. (웃음) 그런데 수업이 너무 재밌더라.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것도,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밌었다. 강사였던 문정현 감독님이 여성 농민과 기후 위기에 관한 옴니버스 중 한 파트를 만들고 있었고, 촬영을 도우며 인연이 닿아 푸른영상에 들어가게 됐다.

조이예환 ⓒ이영진
문창현 ⓒ이영진

창작자가 영화제 운영의 중심인 게 반짝다큐페스티발의 정체성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를 찍는 사람이 영화제를 만든다는 데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나.

조이예환_ 어쩌다 보니 정체성이 된 거 아닐까. 감독들이 모여서 영화제를 만들자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모이다 보니까 감독들이 모여서 의미 창출이 된 거지. 내년에 또 누군가가 운영위원을 하게 된다면 그게 감독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를 하는 이유에 대해 요새 고민을 많이 한다. 비전이 없고, 돈이 안 되고, 비싼 취미 활동에 가까운 것 같고. 그럼 엄청난 재미가 있어야 계속할 수 있지 않겠나. 영화제를 하면 그 기간에는 극도로 재밌다.

문창현_ 고정된 정체성이 없는 영화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매번 바뀔 수 있다. 4회 때는 감독님들이 아예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제 종사자가 제대로 한번 꾸려보고 싶어서 뛰어들 수도 있고. 그럼 또 다른 의미를 만들 수도 있을 거다.

이인섭_ 반다페에 관객으로 참여하면서 다큐멘터리의 매력을 내 안에서 정립한 것 같다. 깊이 경청하는 태도, 거기서 오는 연결감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많이 느꼈다. 이래서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구나 싶더라. 언젠가 나도 작업을 하게 될 텐데, 은혜가 말했듯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또 하나 큰 메리트는 공모작을 다 볼 수 있었다는 거다. (웃음)

조이예환_ 그 얘기를 계속하더라.

이인섭_ 어떤 다큐멘터리들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영화제에 가서 선정된 영화를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올해 126편의 출품작이 모였다. 각자의 기준을 다시 발견하고,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을 텐데.

조이예환_ 1회 때보다 작품 수가 조금 줄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봤다. 소위 만듦새도 많이 다듬어졌다는 인상이고. 사람들이 영상 매체를 다루는 데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한다. 선정의 변에도 선정되지 않은 작품을 언급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재미있는 영화가 많았다.

이인섭_ 환경, 장애 등 다큐멘터리의 소재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진지한 태도로 다가가려는 작품을 재밌게 봤다. 선정 과정에서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눴던 것도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이은혜_ 내게 큰 기준이 됐던 건 지금 이 이야기가 사람들한테 필요한가였다.

민다홍_ 많은 공부가 됐다. 소재도,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굉장히 다양하더라. 다른 분들의 작품을 보며 내 작업의 실마리를 얻기도 했다.

문창현_ ‘실험, 발굴, 호흡’이라는 영화제의 슬로건을 지킬 수 있는 영화들을 선정하려고 했다. 불특정 다수의 관객이 극장에서 함께 봤을 때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상상도 해보고.

 

슬로건은 어떻게 정했나.

문창현_ 2회 때 정한 슬로건이다. 영화제 소개를 하는데 계속 인다페를 불러오게 되더라. 그 정신을 가지고 온 건 맞지만, 반짝다큐페스티발은 완전히 다른 영화제 아닌가. 계속 그럴 수는 없어서 슬로건부터 다시 만들자고 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을 감독만의 시선으로 잘 발굴한 영화, 감독의 실험적인 색깔을 드러내고 동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찾자는 취지였다.

<아빠는 경마꾼>
<중년구직분투기>

소개하고 싶은 추천작이 있다면.

조이예환_ 깔깔거리며 웃느라고 중간에 멈췄을 정도로 재밌게 봤던 작품이 있다. <박멸의 공존>(김아람)이라고, 뉴트리아에 대한 이야기인데 하여튼 진짜 재밌다.

문창현_ 재미라는 건 주관적인 거라서. (웃음) 감독의 집요함, 그 고집이 재밌는 거지 영화는 진짜 진지하다.

조이예환_ 블랙코미디 같기도 하고,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다 웃기다. 어디까지 스포해도 되나 고민인데, 설명만으로는 상상이 안 되겠지만 정말 재밌다.

이은혜_ <병풍을 찢고서>(배웅진)는 지금 나에게 너무 필요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었다. 눈물이 날 만한 내용이 아닌데도 울 뻔했다.

문창현_ 내용도 조금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웃음) <병풍을 찢고서>는 늘 병풍처럼 서 있는 소수자들의 존재를 다시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내게도 인상 깊었던 영화다. 출품작의 경향이 있다면, 현장 다큐가 없는 대신 장애 인권, 소수자 인권에 관한 작품이 많았다는 점이다. 난 <뼈와 살을 가진 유령>(박명훈)을 말하고 싶다. 시놉시스에 ‘나는 죽은 적이 있다.’고 쓰여 있다. 지금 한국 사회가 격변의 시간을 겪고 있는데, 영화는 광장에서도 설 자리를 찾지 못한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감독님 이야기도 듣고, 관객들과도 이야기 나누고 싶은 작품이다.

이인섭_ 가족에 관한 인상 깊은 이야기가 많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고, 대학에 가서도 자취하다가 졸업하고 작년에 다시 본가로 들어갔다. 나름의 성장과 경험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서 익숙하지만 낯선 느낌을 받았다. 가장 친밀한 관계지만 할 수 없는 얘기들이 있기도 하고. 그런 개인적인 지점 때문인지 가족을 진지하게 알아가려고 시도하는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아빠는 경마꾼>(조혜진)이나 <중년구직분투기>(이한별) 같은 작품들이 그렇다.

조이예환_ <웰컴 투 마이홈>(박슬희)도 있다.

이은혜_ <아빠는 경마꾼>과 <웰컴 투 마이홈>을 보며, 카메라를 들고 가족을 찍는 감독의 기개를 느꼈다.

조이예환_ 가족들끼리는 되게 친밀해 보이던데.

이은혜_ 그래서 더 힘들었을 것 같더라.

이인섭_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를 들었을 수도 있다. 그래야 뭔가를 더 하게 되고, 소통하게 되니까.

민다홍_ <맹꽁가>(남해든)를 이야기하고 싶다. 버려진 늪지가 개발되면서 아파트가 올라가는데, 거기 보호종인 맹꽁이가 살고 있다. 환경 단체의 활동과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작품이다. 얼마 전까지 부산에서 비슷한 촬영을 하고 있어서 내 작업에 대해 다시 들여다볼 기회가 됐다.

문창현_ 개발 이슈에 머물지 않고 주제가 확장된다. 발굴이라는 키워드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다들 영업을 너무 잘하는데.

조이예환_ 그렇게 느꼈다면 성공이다. (웃음) 가장 논쟁작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을 말하자면 <위드코리아>(강채연)다. 극우 집회를 찍은 작품이다. 참가자 중 한 명이 주인공이다.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그간 3월에 개최됐던 반짝다큐페스티발은 ‘봄을 여는 영화제’로 불렸다. 올해는 봄을 보내며 영화제를 열게 됐다. 계엄, 탄핵 등으로 정신없었던 시국을 생각하면 오히려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문창현_ 운영위 꾸리는 과정이 좀 오래 걸렸던 게 큰 이유다. 인디스페이스와 논의해서 시기를 정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시대가 이렇게 격변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작년 9월, 10월쯤 논의된 일정이거든. 영화제가 잘 되려나 보다. (웃음)

조이예환_ 계엄이 담긴 작품도 꽤 있었다.

문창현_ 그 짧은 시간에! 다큐멘터리 감독님들 정말 대단하다.

 

출품작 상영 외에도 매년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1회 때는 신나리 감독과 ‘다큐인’의 작품을 초청작으로 상영했고, 지난해에는 참사의 서사에 관한 포럼을 진행했다. 올해는 어떤 자리가 마련돼 있나.

조이예환_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해외 작품을 상영했던 기억이 좋게 남아서, 우리도 그런 걸 해 보고 싶었다. 특히 전 세계적인 대혼란의 상황에서 상징적으로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이슈를 다룰 수 있는 작품 정도는 소개하고 싶었고, 이런저런 일 때문에 유럽을 오가면서 그런 영화들을 상영할 기회가 생겼다. 개막작으로 세 편을 상영한다.

문창현_ 출품 경향을 살펴보며 현장 다큐멘터리가 부재하다는 걸 알게 됐다. 노동 현장, 투쟁 현장의 이야기가 없더라.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같은 지원 사업도 있고 우리가 아는 현장만 해도 몇 군데가 있는데, 지금 영화로는 만날 수 없다는 부분을 확인해서 그걸 포럼의 영역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우리가 아직 만나지는 못했지만 지금 제작 중인 영화가 있다면 감독님들을 초청해서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반다페의 역할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그래서 전반적으로 잘 꾸려진 프로그램이라고 자부한다. 개막작을 통해 연대의 의미를 나눠보고, 영화제 기간에는 동시대 다큐멘터리를 만나고, 마지막에는 포럼까지. (웃음)

민다홍 ⓒ이영진
이은혜 ⓒ이영진

올해 포스터 디자인은 이은혜 감독이 했다고.

이은혜_ 직관적으로 만들었다. 포스터를 봤을 때 내가 포함된 요소가 하나라도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인물을 많이 넣었다. 나와 맞닿은 부분을 보면 동요하게 되니까.

문창현_ 영화제를 준비하며 처음 했던 일이 우리의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다양성이 반영되는 이미지가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포스터 시안이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민다홍_ 손이 진짜 빠르다. 디자인 회의 끝나면 바로 결과물이 나와 있었다. (웃음)

 

공적 지원 없이 영화제를 꾸려가고 있다. 지속 가능한 영화제에 관한 고민은 어떤 식으로 이어지고 있나.

문창현_ 공적 지원이 영화제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누군가는 영화제가 끝나도 계속 실무를 해야 하고, 구성원을 자유롭게 꾸리는 데에도 한계가 생길 거라고 본다. 다른 영화제들처럼 사무국도 만들어야 할 테고. 개인적으로는 반다페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만들어지는 형태의 영화제가 되길 바란다. 물론 공적 지원 없이 영화제를 꾸린다는 건 힘들 수밖에 없는 일이다.

민다홍_ 후원이 필요하다.

조이예환_ 올해 카탈로그에서 1, 2회 때 볼 수 없었던 후원 및 협찬사를 꽤 볼 수 있을 거다. 다홍의 역할이 컸다.

민다홍_ 처음에 후원, 협찬 관련 제안서 만드는 작업에 집중했다. 영화제에 오시는 분들한테 드릴 수 있는 게 많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고, 생각보다 꽤 구색을 갖춘 형태로 현물 협찬이 들어왔다. 은혜가 디자인을 예쁘게 잘 해주어서 또 좋은 성과가 있었던 것 같다. 난 메일로 소통하는 게 편해서 메일 업무를 주로 했다면, 창현은 전화에 능하다. (웃음) 각자 장기를 잘 발휘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현금 후원이 없다는 거다.

문창현_ 후원 규모가 계속 줄고 있다. 이번에 유의미한 성과들을 만들었지만, 내년에 또 보장되리라는 법이 없으니 불안이 공존한다. 만약 내년에 영화제를 열지 못한다면 한해 쉬면서 다음을 준비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어려운 대로 버티고, 힘을 만들고, 그렇게라도 영화제가 지속되면 좋겠다. 잠깐 멈추더라도 말이다. 멈추면 어쨌든 다시 갈 수 있으니까.

조이예환_ 정지가 아니라 일시 정지를 눌러야 하는 거지.

이인섭_ 후원 요청 전화를 돌리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아시다시피 올해는 좀 많이 힘들어서요.”였다. 그 어려운 상황에 후원해 주신 분들한테 더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 창현이 말한 것처럼 잘 버텨야 할 것 같다.

 

1회 때부터 출품작에 한글 자막을 요청했고, GV에서는 매년 문자 통역과 수어 통역을 제공하고 있다. 작년부터는 상영작으로 선정되면 배리어프리 한글 자막 작업이 필수가 됐다. 반짝다큐페스티발이 고민하는 접근성을 들려준다면.

문창현_ 운영위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던 부분이다. 기존에 시도했던 것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새로운 고민을 해보는 거다. 문자 통역과 수어 통역의 경우, 상영 내내 하는 게 아니라 GV에서만 하다 보니 반쪽짜리 접근성이 아닌가 하는 고민도 했다. 올해는 문자 통역을 전문의 영역에 맡기고 싶었는데 비용의 한계가 너무 크더라. 예전처럼 자원활동가 분들이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조이예환_ 그래서 후원이 더 필요하다. 우리 안에서는 당연히 문자 통역을 전문가가 하는 게 맞다는 합의가 있었지만, 추가 예산을 배정하는 게 어려웠다. 의미 있는 시도를 추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문창현_ 누구든 영화를 볼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게 정말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정도를 지켜내고, 그 의미를 관객들과 나누고자 한다.

조이예환_ 배리어프리 한글 자막은 1회 때부터 이야기했던 부분이다. 오재형 감독이 처음 이야기했고, 다들 동의했지만 현실적으로 배리어프리 자막을 제작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대사 자막이라도 넣는 것으로 타협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1회만 상영하기 때문에 꼭 배리어프리 자막까지 넣어야 하나 고민스럽긴 했다. 감독의 의도가 바뀌게 되는 표현이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창현 말처럼 이미 시작한 걸 퇴보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번에 초청작 자막을 직접 만들면서 고민스럽긴 했다. 좀 어렵더라. 아무래도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까.

<위드코리아>
<뼈와 살을 가진 유령>

개막을 앞두고 인디그라운드에서 온라인 상영을 진행한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조이예환_ 인디그라운드에서 먼저 제안해 줬고, 나와 창현이 미팅을 했다. 작년, 재작년에 보았던 좋은 단편 다큐멘터리들이 다 반다페에서 틀었던 작품이었다고 하더라. 마침 인디그라운드에서 단편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 고민 중이라, 반다페 상영작 중에서 온라인 상영을 기획하면 좋겠다고 전해주셨다. 모든 작품을 다 틀 수는 없으니 1, 2회 운영위원들이 각자 회의를 거쳐 작품을 추렸다. 이번에 그 작품들을 온라인으로 상영한다.

 

영화제를 마무리하면 각자의 활동으로 돌아가 하반기를 보내겠다. 다들 어떤 동력과 질문을 가지고 작업하는지 궁금하다.

민다홍_ 늘 내 내면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고, 그래서 지금 나한테 필요한 소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장편을 생각하며 여성 혹은 치유 쪽에 스토리가 있는 분들을 촬영하고 있다. 나에 대한 이야기도 준비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 어떤 표현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다. 반다페 운영위원으로 많은 작품을 보며 공부할 필요성을 느꼈다. 내년에는 상영작 감독으로 참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어쨌든 다큐멘터리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문창현_ 세상이나 사회와 연결되는 지점을 내 안에서 찾으려는 작업을 계속 해왔던 것 같다. 특정한 이슈나 키워드를 가지고 고민하기보다는 내가 놓인 상황 속에서 보이는 것들을 찾아왔던 거다. 그렇게 지역의 여성 예술인들을 만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10년 넘게 찾아뵙는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경남 지역에 계신 할머니들이 3~4년 전에 다 돌아가셨다. 그 기록들을 단편 작업으로 녹여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또 7년 넘게 나를 옥죄고 있는 작업이 있다. (웃음) 구미라는 공간과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다. 올해 안에는 무조건 잘 만들어서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 현실을 마주하며 우울해졌다가, 이걸 어떻게 돌파할지 고민하다가,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이은혜_ <My First Funeral>을 찍고 그 해에 『레즈비언의 산부인과』라는 책을 만들었다. 짧은 시간에 두 작업을 끝내고 번아웃이 너무 세게 왔다. 2년 동안 아무것도 못 했다. 자괴감도 많이 들고, 아무것도 안 되더라. 이제 회복하고 새로운 작업을 하려고 한다. 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사람들한테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매체가 뭐가 되든 상관없다. 다만 내게는 내 정체성이 고유한 키워드다. 여성과 성소수자.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런 얘기를 할 것 같다. 레즈비언의 인권, 여성 인권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공격받기 좋은 위치고, 자료도 현저히 부족한데, 그렇다면 내가 만들겠다는 마음이다. 영상 작업을 하다가 완성하지 못한 게 하나 있다. 레즈비언 청소년이 가는 오프라인 카페가 있었는데 작년에 사라졌다. 그곳을 기록하고 인터뷰한 자료들이 외장하드에 남아있다. 이걸 꼭 마무리하고 싶다. 번아웃을 겪는 2년 동안 정치적으로도 여성과 성소수자를 지우는 과정이 너무나 폭력적이라고 느꼈다. 되게 암울했다. 그러다 계엄 이후 시위 현장에 레즈비언 깃발을 들고 나갔는데, 광장의 풍경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그동안 내가 계속 숨고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 다 모였다는 생각이 들더라.

조이예환_ 오랫동안 프로듀싱하고 있는 작업이 있어서 그걸 끝내야 한다. 그래서 애가 타고 있는 상황이다. 요새 제일 많이 고민하는 건 내가 이걸 왜 계속하고 있느냐다. 내 정체성이 프로듀서인지 감독인지도 잘 모르겠고. 하지만 다홍이 말한 것처럼 다큐멘터리를 계속 붙잡고 싶은 마음은 있다. 살면서 겪은 재미있는 경험을 다 다큐멘터리 덕분에 했다고 생각하거든.

이인섭_ 경청하는 태도와 그로 인한 깊은 연결감을 전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작년에 탈시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분들과 작년에 인연이 되어 촬영했고, 지금 편집을 하고 있다.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작년에 환경영화제에서 에코크리에이터 사업을 통해 작업을 하나 했다. 아버지가 하셨던 옥상 텃밭을 내가 이어받는 내용인데, 그때와 또 다른 성찰과 고민이 생겨서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가족을 이해해 가는 과정을 남겨보려고 한다.

이인섭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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