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는 생의 초입에서 분주히 주변을 탐색한다. 우주에서 하나뿐인 그 존재를 들여다보던 카메라는 어느새 여러 관문을 지나쳐 생의 막바지에 다다른다. ‘최고령 현역 연예인’ 송해의 일대기를 담은 <송해 1927>로 4년 전 관객을 찾았던 윤재호 감독은 그렇게 <숨>으로 죽음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다. 장례지도사와 유품정리사, 그리고 파지를 주워 생활하는 노인이 이번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서로 연이 없으나, 카메라가 위치를 옮기며 담아낸 그들 삶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세 인물은 모두 죽음과 밀접하다. 장례를 치르고, 망자의 흔적을 정리하며, 노쇠해 가는 육신을 돌본다. 생명이 떠난 몸과 미처 치우지 못한 집과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제 손으로 어루만지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세 인물 사이를 오간 끝에 감독은 이러한 통찰을 얻는다. “삶과 죽음은 시곗바늘과도 같다. 삶과 죽음은 멈추지 않는다.” 유한한 생의 무한 반복을 지켜본 시간은 감독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친다”고 말하는 감독의 목소리로 영화가 시작한다. 뒤이어 걸음마 하는 어린아이를 찍은 홈비디오 영상이 나온다. <숨>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여러 인물을 조명하지만, 결국 감독 본인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2017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당시 노르웨이 감독 마르테 볼과 <레터스>를 공동 연출하고 제작하던 중이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며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을 경험했다. 사촌 동생이 부산의 상조회사에서 장례지도사로 일한다. 어머니 장례를 그곳에서 진행했는데, 장례 절차를 지켜보면서 궁금한 점들이 생겼다. 장례를 전문적으로 지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거든. 그러다 하루는 새벽에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는데, 한 어르신이 파지를 줍고 계시더라. 그 모습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후 시간이 흐르며 <송해 1927>(2021)과 <파이터>(2021) 등을 만들고 다른 일도 했지만, 그때의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죽은 사람에게 더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산 사람에게는 생존의 수단이 되는 아이러니가 마음에 남았고, 장례지도사와 넝마꾼이라는 두 직업을 연결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해 1927>을 마친 후, 제작사 빈스로드의 정윤재 대표를 만나 이런 얘기를 했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이번 기획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원래 사촌 동생을 섭외할 계획이었는데 잘 안됐고, 파지를 줍는 어르신도 다른 분을 섭외했다가 그분 가족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마음은 계속 향하는데 번번이 막히는 프로젝트였다.
결국 정윤재 대표가 <숨>의 총괄 프로듀서로 협력했다. <송해 1927>에 이어 두 번째 협업인데 어땠나.
정윤재 대표, 이기남 피디와 함께 <송해 1927>을 작업했고, 당시 호흡이 잘 맞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같이 작업하지 않겠느냐고 둘에게 제안했다. 마침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받은 기획개발비가 있었기에, 그 기금으로 일단 시작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윤재 대표가 자신과 친분이 있는 유재철 장례지도사를 소개해 줬고, 정 대표의 도움으로 파지 줍는 일을 하는 문인산 님도 만나게 됐다. 정 대표가 사는 동네의 사회복지센터에서 관리하는 이웃 어르신 중 한 분이었는데, 다행히 참여 의사를 밝혀 주셨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다는 말처럼 등장인물 모두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왔더라. 인물을 찾는 것부터 출연을 설득하기까지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을 텐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출연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이 길게 이어졌다. 2017년에 처음 기획하고 앞서 말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개발 지원을 받은 후, 실제 촬영은 2021년에 시작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느 정도 프로젝트가 정리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기획부터 촬영 개시까지 약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데다, 이렇게 영화를 개봉하기까지도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인물들과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상을 담는 과정에서 시신과 흔적이 영화에 노출되기도 한다. 출연진과 유족의 동의를 얻어야 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다가갔나.
유재철 선생님의 경우는 송해 선생님을 섭외할 때와 비슷하게 술을 마시는 것으로 시작했다. 선생님이 막걸리를 좋아하시기에 막걸리를 마시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믿음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마음을 완전히 결정하지 못한 채 반신반의하셨던 것 같다. “왜 나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냐?”고 물으셨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야기부터 내 고민까지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제야 선생님께서 “천천히 알아 가보자” 하셨고,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뒤에도 쉽지만은 않았다. 말한 대로 가장 큰 어려움은 유족들의 동의를 구하는 일이었다. 촬영을 준비해 놓고 유족들이 반대해 무산된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다. 대부분은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2021년 설날 무렵의 일이다. 당시 명절을 전후로 일주일 넘게 스탠바이 상태로 지냈다. 영화에 등장한 고(故) 성천스님이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유재철 선생님이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니 일단 기다리라고 하셨다. 촬영에 필요한 카메라를 2주가량 빌려놓고 거의 일주일간 고향에도 못 간 채 대기했다. 기다리면서도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러다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새벽에 연락이 와서 급히 촬영하러 갔다. 영화 속 주요 장면들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촬영됐다.
살고 죽는 일이니 그야말로 감독이 뭔가를 계획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아이의 탄생을 예로 들면 계획하고 예측할 수는 있지만, 정확한 생시를 내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지 않나. 죽음도 마찬가지다. 사고사나 자살과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자연적인 죽음은 시기를 선택할 수 없으니 무조건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오는 초조함과 심리적 부담이 매우 컸다. 특히 그 경험을 하고 나니 계속해야 할지 망설여지는 순간도 있었다. 김새별 유품정리사를 촬영하는 것도 어려웠다. 사망자의 집에 들어가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니까.
기획 당시 아이디어를 들어보면 장례지도사와 넝마꾼의 이미지적, 서사적 대비와 연결성에 집중했던 것 같은데, 완성된 영화에는 유품정리사라는 인물을 새로 추가했다. 세 사람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고,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어떻게 엮어내고자 했나.
촬영하는 과정에서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유품정리사는 원래 기획에 포함되지 않은 인물이었는데, 남희령 작가님이 우리 프로젝트에 관해 듣더니 한 번 만나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줄 것 같다고. 김새별 유품정리사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일터에 동행할 수 있도록 부탁드렸다. 한번 그분을 따라가 본 후에 섭외를 결정했다. 내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 분명한 연결성을 지닌 업이더라. 유품정리사는 망자가 남기고 간 물건을 정리하는 사람이고, 파지를 줍는 할머니는 누군가가 버린 것을 치우는 사람이며, 장례지도사는 시신을 모시고 정돈하는 사람이다. 이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연결 지점이 있다고 봤다. 굳이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영화를 보면 관객들 또한 그걸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김새별 님의 경우, 단순히 일의 내용뿐 아니라 그분 이야기 자체에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내가 던지는 질문에 폭넓고 깊이 있는 답변을 해 주었고, 그 덕분에 삶과 죽음의 의미를 더 많이 고민하게 됐다.


그만큼 감정적으로 힘든 순간도 많았을 듯하다.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도 긴장되는데, 현장에서 카메라를 든 감독은 오죽했을까 싶더라. 촬영 중 어떤 감정적 경험을 했는지 듣고 싶다.
영화에 김새별 유품정리사를 따라서 사망자의 집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분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장영실상 훈장을 발견한다. 그 일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훈장을 받을 만큼 대단했던 사람이 결국 이렇게 홀로 떠났구나.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한 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 사람은 저마다 다른 목적과 역할을 가지고 발버둥 치며 살아가지만, 결국 마지막엔 자신이 살던 작은 공간조차 정리하지 못하고 떠난다. 스스로 정리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구나 싶었다.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남겨질 아이들과 가족들 생각도 났다. 그 모든 것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현장에서 여러 고민과 생각에 잠겼다. 특히 나는 죽음을 다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현장에 늘 특유의 냄새가 맴돌았다.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는, 우리가 평소 경험할 수 없는 냄새다. 차갑게 표현하자면 ‘죽음의 냄새’인데, 오히려 그런 냄새가 나를 계속 끌어당겼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냄새가 취재를 끈질기게 이어 간 원동력이기도 했다. ‘왜 우리는 이런 냄새를 남기고 떠날까?’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거든. 어찌 보면 물질뿐만 아니라 몸 자체도 하나의 흔적이 되는구나 싶더라.
죽음의 냄새가 삶의 증거인 셈이다. 어떻게든 하나는 남기고 떠난다 싶고.
옛말에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사실 인간이 남기는 건 냄새였다. 그렇듯 누구나 무언가를 남기고 떠나는데, ‘나는 과연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남겨야 할까?’ 거듭 질문하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무거운 주제겠지만, 작업을 하면서는 끊임없이 그런 지점을 살피게 되더라.
인터뷰 장면에서 질문하는 목소리를 그대로 삽입한다. 감독의 존재를 굳이 숨기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는 편이다. 한편, 관찰 장면에서는 거리감을 유지하며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려는 듯하다. 미화하거나 상상의 여지를 두기보다는 ‘이게 현실’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어떤 의도로 연출과 편집 방향을 선택했나?
오랜 시간 그분들을 관찰하다 보니 현장에서 떠오르는 질문이 많았다. 촬영 중에는 기다렸다가 나중에 따로 대화할 수도 있지만, 현장에서 내가 본 장면과 당시의 대화를 그대로 담고 싶었다. 가능한 한 보이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고,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꾸며내지는 않았다. 동시에 그분들의 일터를 최대한 담담히 보여주려고 했다. 죽음을 정리하는 현장이기에 지나치게 가까이 가는 것도, 그렇다고 너무 멀리서 지켜보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고, 중간중간 궁금한 것이 생기면 물어봤다. 내가 관찰자로서 바라본 것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다. 피할 수야 있었지만, 일부러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유재철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일이다. 내게 어머니의 죽음은 굉장히 거대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마치 꿈꾸는 듯했다. 해가 뜨는 풍경을 바라보는데 전부 가짜 같더라. 현실감이 급격히 흔들리는 경험이었다. 스크린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이런 죽음을 마주하면 어떤 느낌을 받을지 궁금했다. 내가 겪은, 그 믿기 어려운 감정이 과연 전달될까. 이미 경험했거나 언젠가는 경험하게 될 그 감정에 관해 나름의 견해를 가질 수 있을까. 아주 나중에 죽음을 겪고 또 맞이할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다른 태도를 갖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여러 생각이 섞여 있었다. 다만, 영화를 통해 특별히 무언가를 깨우치게 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본 것과 느낀 것을 전하고 싶었다.
장례지도사와 유품정리사는 죽음을 일상으로, 직업적으로 다룬다는 면에서 독특한 점이 있다. 이들 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삶과 죽음을 대하는 감독의 태도 또한 점차 변화했을 듯한데.
유재철 선생님이 팔 수술을 받으셨던 일이 기억난다. ‘대통령의 염장이’로 알려질 만큼 유명한 분이기에, 처음엔 선생님을 막연히 특별한 사람으로 느꼈다. 막걸리를 함께 마시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을 때만 해도, 그분이 언젠가 팔에 문제가 생겨 일을 못 하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술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일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망자의 몸을 돌보고 정리하는 일도 결국 사람의 일이구나. 그 일을 하는 사람도 나이가 들어 몸에 무리가 오고 인대가 끊어지는구나. 선생님 또한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를 정리해 주겠구나. 그런 생각이 쭉 이어졌다. 처음 어머니 장례식에서 장례지도사를 보았을 때는 그들이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정신없이 슬픔에 빠져 있었던 탓인지,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존재처럼 보였다. 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조차 이해할 수 없고 마냥 낯설었다. 근데 선생님을 지켜보면서 알게 됐다. 탄생과 마찬가지로 죽음 역시 사람이 맡아야 하는 일이며,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책임이자 노동이라는 사실을.

결국 인간은 혼자서는 죽지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태어나는 일에도, 죽는 일에도 인간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
촬영을 직접 했다. 드론 촬영, 슬로 모션 등 다양한 장치를 사용했는데 카메라워크나 미장센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뭐였나. 시각적으로 정서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구현하고 싶었던 바가 있다면.
영화를 시작할 당시에는 현재처럼 가벼운 카메라가 없어서 무거운 카메라를 사용했다. <송해 1927>도 처음에는 내가 큰 카메라 두 대를 들고 촬영했다. 장비가 무겁다 보니 체력적으로 어려웠고, 결국 중간에 촬영감독을 섭외했다. 근데 이번 작품은 현실적으로 촬영감독을 섭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갑자기 새벽에 연락을 받고 즉시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이었거든. 누구에게 부탁하기 어려웠고, 그 상황을 감내할 만큼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예산 규모도 아니었다. 언제든 현장에 바로 뛰어나갈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인 거다. 초반에는 무거운 카메라를 사용하다 보니 촬영 방식이 일정치 않았는데, 촬영의 30퍼센트쯤 지나고 나서부터는 안정을 찾았다. 더 유연하게 촬영할 수 있는 가벼운 카메라를 찾았거든. 촬영을 책임질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에 촬영 방식도 다각도로 고민했다. 한 컷 한 컷을 가능한 한 영화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담을 수도 있지만, 나는 좀 더 영화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소재 자체가 무겁고 현실적이다 보니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영화적인 화법으로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중요한 대목마다 영화의 사운드 디자인과 음악이 감정 전달에 큰 역할을 했다. 김인영 음악감독과는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고민했나?
내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음악감독이 그에 따르는 방식은 아니었다. 김인영 음악감독과는 <송해 1927> 때부터 함께했고, 그 외에도 몇 작품을 같이하면서 서로 잘 이해하는 관계가 되었다. 비결이라면 촬영본을 아주 많이 전달하는 것이다. 뭐든 자유롭게 상상해도 좋다고 믿음을 주려 했다. 이제 상대의 작업 방식에 익숙해진 데다, 김인영 음악감독이 워낙 영화의 감정선을 잘 파악했다. 너무 과장되거나 격정적인 음악을 넣기보다는,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담담하게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숨>을 보며 작년 영화제에서 공개한 단편 <갈 곳 없는>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중간에 있는 작품이자, 고령화된 마을을 배경으로 빈곤한 노인과 피로에 시달리는 사회복지사가 등장하는 일종의 르포 드라마였다. <숨>은 여기에 더해 가족관계 증명, 무연고 사망, 연명 의료 등 제도의 사각지대를 더욱 촘촘하게 드러낸다.
유사한 부분이 있다. 비슷한 관심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갈 곳 없는>과 <숨>을 만들게 됐거든. <갈 곳 없는>은 부산 영도에서 촬영했고 실제로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인터뷰를 영화에 담았다. 당시 팬데믹 시기였다. <숨>의 촬영을 잠시 쉬던 기간에 주말마다 부산에 가서 촬영했다. 나는 본래 ‘버려지는 것’에 관심이 많다. 쓰레기, 빈집, 폐허가 된 공간. 결국 우리 삶과 연결되는 것들이지 않나. 그렇게 관심 분야를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사회복지센터와 인연이 닿아 협업했고, 이후 <갈 곳 없는>을 만들었다. 이는 파지 줍는 노인에 대한 내 호기심과도 맞닿는 작업이었다.


사회적 소외를 겪거나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을 꾸준히 조명해 왔다. 스스로 되짚어 보면 <숨>에서 이러한 관심이 어떻게 확장 혹은 변주되었다고 보나?
유품정리사, 파지 줍는 노인, 장례지도사 모두 ‘남겨진 것’을 다루는 인물이자, ‘남겨진 것’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자연스레 ‘나는 무엇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던졌다. 남기는 것은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쓰레기를 남길 수도, 아주 지저분한 개념을 남길 수도 있다. 누군가는 땅이나 건물 같은 화폐 가치를 지닌 재산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 예시를 떠올리며 계속 곱씹는 거다. 특히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고민이 더 깊어진다. 삶의 끝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남길지.
지금은 어떻게 생각을 정리했나.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하게 남길 수 있는 것은 ‘기억’이니까. 물론 물질적 형태로 무언가를 줄 수도 있지만, 내게 더 중요하게 다가온 것은 기억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지언정 한 사람의 내면에 그만큼 깊이 존재하는 것도 없지 않나.
<파이터> 인터뷰 당시 이제 막 태어난 아이 얘기를 했는데.
그 애가 내년에 초등학생이 된다. 시간 참 빠르지. (웃음)
기억을 누군가의 내면에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발생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하면, 결국 영화도 기억을 남기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했는데, 훈장을 집안에 둔 채 돌아가신 그분이 이번 작업하며 유독 마음에 남았다. 그분을 아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기억할까. 그런 생각에 씁쓸했다. 죽은 사람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분이 행복하게 떠났는지, 슬프게 떠났는지, 할 일을 다 마쳤는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는 거다. 사람은 누구나 생의 이유와 목적이 있다고들 하는데, 그분은 무엇을 남기려 태어나셨을까. 쓰레기장처럼 보이는 원룸에서 뭔가를 증명할 수 있는 건 훈장 딱 하나였는데, 그러면 그분은 훈장을 남기기 위해 살았던 걸까.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의 문제다. 유재철 선생님도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그래서 ‘무엇을 남길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죽음에 관해 물으면 자연히 삶에 관한 질문으로 돌아오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돌고 돌면서 항상 맞물리는 것 같다.

<숨>은 아마 앞으로의 작업에도 주제와 정서 면에서 많은 영향을 미칠 듯하다. 차기작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이미 제작한 작품 중에는 중국 동포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이 하나 있고, 장편도 배급을 준비하는 중이다. 그 외에 칸 국제영화제 레지던시에 선정됐던 <아버지의 비밀>이 남아 있다. 내가 처음으로 쓴 장편이자, <뷰티풀 데이즈>(2018)와 <파이터>에 이은 가족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다. 최초 구상했던 시점은 2012년이니 제작까지 13년 이상 걸린 셈이다. 투자만 결정되면 본격적으로 촬영에 돌입할 예정이다.
요즘 작업하는 마음은 어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감독이 자신을 더 알아가듯, 외부에서도 감독에 대한 데이터와 평가가 쌓이기 마련이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기대를 받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원하는 만큼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도 할 텐데.
창작자는 어떤 작품이든 늘 백지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매번 처음부터 돌아가야 하기에 어렵다. 그런 어려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문제다. 다행히 나는 창작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고 즐겁다. 창작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기도 하고,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느낀다. 명확한 정답을 찾으려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질문과 답을 주고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만의 방향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의미 있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재밌고 가벼운 이야기는 잘 안 나온다. 내가 던지는 화두들이 항상 좀 묵직하긴 하다. (웃음)
어떻게 봐도 대중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 <숨>도 그렇다. 심지어 죽음은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 흔히 터부시하는 주제다. 다들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이야 하지만, 정작 죽음 자체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꺼리곤 한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남들은 모를 괴로움이 있을 텐데 어떻게 감당하나.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쉬운 일은 아닌데, 내 질문과 시선을 누군가는 반드시 보고 생각할 거라고 믿었다. 그게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사람이라도 내 작업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면 그 한 명을 위해서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00명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그저 단 한 명의 인생에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내 영화를 본 사람이 먼 훗날 무언가를 실천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해도 작업 초기 단계에는 믿음보다 의심이 훨씬 크지 않나. ‘과연 내 작품이 한 명에게라도 가 닿을 수 있을까?’라는 압박감은 어떻게 소화하는 편인가.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관객의 반응을 우선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그보다는 내가 제시하는 질문과 화두가 올바른 방향인지 고민한다. 질문이 맞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관객을 생각할 수 있다. 처음부터 관객을 염두에 두면 방향성을 잃기 쉽거든. 결국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좋은 질문이라는 확신이 들면 그다음은 방향을 찾고,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작품이 만들어진다. 관객을 완전히 외면한 채 영화를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최소한 내가 내 질문에 확신을 가져야 작품을 완성한 후에 ‘내가 대체 뭘 만든 거지?’ 하며 혼란스러워지지 않는다. 내가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스스로 거리를 두고 판단하려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맞나?’라는 질문은 ‘이 작품이 세상에 이로운가? 도움이 되는가?’라는 뜻인가.
그렇기도 하고, 어떤 위험을 예방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해 잘못된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러면 관객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거나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왜곡될 수도 있다. ‘이 질문을 던지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 내 생각을 정리해 나가는 편이다. 창작자가 항상 답을 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질문 자체를 영화에 잘 녹여서 관객과 더불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남겨질까?’ 고민하면서 영화를 만드는 거다.
<숨>은 어떻게 남겨지기를 기대하나.
사람들이 그간 잘 알지 못했던 영역을 한 번쯤 봐주었으면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으로도 어딘가에는 분명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당장 답을 제시하는 영화는 아니니까.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무언가를 기억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죽음과 삶에 관해 고민할 수 있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또 스스로 찾아 나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유재철 선생님 부부를 보며 나도 가족들과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부간 안식년이라든지 연명 치료 동의/비동의 같은 문제들 말이다. 죽고 사는 일이 때로는 별거 아닌 듯한데, 또 어느 날엔 무척 중요하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어쨌거나 떠날 때 떠나더라도 죽은 이는 반드시 뭔가를 남기고, 그 후에도 삶은 계속 이어진다. 동시에 죽음은 공평하게 끝을 맺는다.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사람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도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태우고 나면 모두 한 줌의 재가 된다. 그렇게 떠난 사람들, 그 잿가루를 보면서 생각했다. 잘 살아야지. 열심히 살아야지. 가루가 될 때까지 적어도 후회는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사람이 죽으면 한 줌 재가 된다’는 표현을 관용구처럼 쓰지만, 체험하기 전까지는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화장하면서 절실히 느꼈다. 태우고 남은 뼛조각 몇 개를 빗자루로 쓸어 담는 모습을 보는데 충격적이더라. 엄마가 남긴 것이 이것인가. 이것이 다인가. 믿을 수 없는 동시에, 죽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김새별 유품정리사가 방바닥에 들러붙은 시신의 부패액을 긁어내는 모습을 볼 때도 비슷했다. 그러니까 끈적끈적한 액체든 잿가루든 결국 우리 인간이 남기는 것은 그만큼인 것이다. 죽음이 의미하는 끝은 그토록 분명했다. 이런 고민과 생각이 영화를 만드는 내내 머릿속에서 끊이지 않았다. 덕분에 삶에 더욱 충실히 임하게 된 것 같다.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구나 싶거든.
그렇다면 요즘 감독에게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인가. 감독이 생각하는 의미 있는 삶과 기억이란?
제일 소중한 것은 가족이고, 관계에서는 시간만큼 중요한 것이 또 없는 듯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정해진 시간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 사람마다 주어진 시간의 길이가 다를 뿐이지, 모두에게 유한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하는 것, 그 시간을 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시간 동안,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기억을 심어주고 싶다. 내 유일한 소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