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할 텐데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다. 비정규직 웹디자이너이자 웹툰 작가인 <은빛살구>의 정서는 묘하게 사람 속을 긁는다. 알아서 잘하는가 싶더니 끙끙 앓고, 무턱대고 곰살맞지 않아서 마음 놓았더니 저 자신보다 남에게 훨씬 무르다.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밝은 미래를 운운하며 엄마 돈을 빌려오라는 애인에게도, 평생 고생하는 걸 빤히 지켜본 엄마에게도 정서는 끝내 아쉬운 소리를 못 한다. 결국 정서는 묵호항으로 향한다. 바람 나서 새살림을 꾸린 아빠의 거처이자 정서의 고향. 아빠가 오래전 엄마에게 차용증 내고 받아 간 돈을 대신 받아서 아파트 계약을 성사할 작정이다. 눈길 닿는 동네 곳곳마다 익숙한데 집안 풍경은 사뭇 낯설다. 아빠는 새로운 아내와 딸 곁에서 행복해 보이고, 정서는 제게 없거나 빼앗긴 추억을 목격할 때마다 어딘가 욱신거린다. 과연 정서는 무사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그래서 뷰 좋은 아파트에 입성하면 외로움도 죄책감도 사라지게 되는 걸까?
정서를 연기하는 나애진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어른거린다.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아서 자신도 만만해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 썼는데, 불쑥 밀려드는 공포를 감추긴 어렵다. 깊게 잠들지도 못한다. 정서는 꿈속에서 뱀파이어로 변신한 가족들이 서로 물고 뜯으며 고혈을 빨아먹는 모습을 본다. 이 지극한 현실과 엉뚱한 상상을 오가며 나애진은 저만의 여정을 완성해야 했다. 주연을 맡은 첫 장편이었으나, 이는 새로운 막을 펼치기보다는 지난 10년을 망라하는 작업에 가까웠다. 가족을 구성하고 해체하는 인물에 한참 골몰했던 그는 <은빛살구>로 한 단락을 마무하고, 이제 사랑과 용기라는 주제로 넘어가고자 한다. 용기 내어 결핍을 마주하는 시간, 결코 하나일 수 없는 타인의 무게를 순순히 또 대담하게 받아들이는 일. “한 인간의 성장 과정이 그러하듯” 가족의 울타리를 정비했으니 진정한 홀로서기를 시작할 때다. 또 다른 길목에 당도한 나애진에게 새해 마음가짐을 물었다.
시사회에서 많이 웃더라.
‘이게 정말 되네?’ 하며 시사회를 지켜봤다. 내게 <은빛살구>는 여러모로 처음인 작품이다. 우왕좌왕하고 떨었는데, 애초 즐기자는 생각으로 시사회장을 찾았다. 걱정이나 불안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단순하게 보면 그냥 신나는 날이니까 그 시간을 놓치진 말자는 생각이었다. 이제야 첫 장편을 선보인다는 것이 남들보다 늦다고 할 수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참 소중한 기회 아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자리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경험은 기억에 남는다. 내가 어떻게 기억할지 선택함에 따라 그 경험은 다르게 새겨질 테고. 나중에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랐다.
생각 많은 사람이 도출한 결론으로 들린다. 2022년 10월~11월 촬영했더라.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개봉하는데 ‘지난날의 나’를 스크린으로 마주하는 기분은 어떤가.
떠나보내는 느낌이었다. ‘네가 드디어 가는구나.’ (웃음) 이미 영화를 몇 차례 봤다. 감독님이 편집본을 보여주지는 않아서 전부 영화관에서만. 근데 이번에야 비로소 객체로, 나 아닌 인물 김정서로 보이더라.
거의 모든 장면에 정서가 출연한다. 두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내내 본인을 봐야 하니 연기뿐만 아니라, 표정, 걸음걸이, 목소리 등 세부 하나하나를 재고 따지듯 보게 됐을 것 같다.
23회차 중 23회차 출연했다. (웃음)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들통나는 느낌에 가까웠다. 다 틀린 시험지를 엄마한테 내미는 기분? 아무한테도 보여준 적이 없고 말 그대로 개봉하면서 뚜껑이 열리는 거니까. 사실 영화를 촬영하는 중간에는 정확히 뭘 만들고 있는지 나도 파악할 수 없다. 어떤 테이크가 쓰일지도 모르고, 그 순간 내가 어떻게 연기하고 또 그것이 어떻게 담겼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작품과 나를 서서히 분리했던 것 같다. 최근에 관람하면서는 정서라는 사람이 통과한 시간을 바라보는 듯했다.


그간 모녀, 자매 등 가족 얘기를 주로 했더라. <은빛살구>는 그런 면에서 새로운 장으로 넘어간다기보다는 한 시절을 끝마치는 기분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 생각을 언제 했나? 난 오늘 했다. 여기까지 차 타고 오면서 시나리오의 첫인상이 어땠는지 떠올려 봤다. 그간은 작품에서 주로 엄마와의 갈등을 표현했고, 실제 내 삶과 맞닿는 인물을 만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언젠가 작업을 쭉 돌이켜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이 부분이 안 풀려서, 이걸 해소하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했나 보다. 그래서 계속 영화 작업을 하나 보다.’ 그맘때쯤 혼자서 독백 대본을 만들어 촬영해 보기도 했다. 내 출연작을 모아 엄마에게 보여주는 상황을 설정하고, 그간 못했던 이야기를 하는 식이었다. <은빛살구>는 엄마에서 아빠로 대상을 옮긴 느낌이었다. 나랑 다른 인물을 제대로 만나는 듯했고, 그와 동시에 ‘대상만 아빠로 바뀐다’는 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나는 엄마에게 결핍이 많거든. 아빠에게는 오히려 좋은 감정이 대부분이고.
장만민 감독을 처음 만난 날, 시나리오도 없이 미팅에 가서 혼자 실컷 떠들었다고. 어떤 마음이었나.
당시 단편 <국물은 공짜가 아니다>(강민아, 2022)로 서울여성독립영화제에 참가한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작품이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감독님의 권유로 내가 수상소감을 전했다. 어쩌다 보니 전날 GV 게스트에서 내가 누락되는 바람에, 감독님이나 다른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서지 못했거든. 감사한 기회로 여기며 폐막 무대에 참석할 준비를 했다. 근데 왠지 이상하게 위축되는 기분이 들더라. 좋은 일인데, 분명히 기쁜데, 왜 덜 신날까. 친한 배우랑 이 주제로 한참 얘기했다. 어떤 마음인지 솔직하게 터놓으면서 알게 됐다. 굳이 비교하면 서울여성독립영화제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예를 들어 서울국제여성영화제보다 소규모다. 그런 눈에 보이는 크고 작음에 내가 영향을 받는 듯했다. 이 정도에서 좋아해도 되나? 그러면 대체 언제 즐거운 거야? 서울독립영화제 초청받으면 신날까? 그때 되면 청룡영화상을 바라보지 않을까? 청룡영화제 가면? 골든글로브 정도는 돼야 즐거워도 괜찮은 걸까? 답 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대화 끝에 친구랑 나는 ‘지금 당장 신나자!’ 마음먹었다. 폐막식에서 수상소감도 기쁘게 발표했다. 여성 영화인과 한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앞으로도 당신들과 계속 영화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그러고 무대에서 내려온 후, 김세인 감독님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장만민 감독님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며 연락처를 줄 수 있겠냐고 묻더라.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2)를 연출한 김세인 감독?
당시엔 몰랐지만 그 분이었다. 두 감독님 모두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이고, 세인 감독님은 <은빛살구> 연출팀 스태프였다. 어쨌든 내 입장에서는 장만민이라는 이름도, ‘색소폰’이라는 작품 가제도 생소했다. 남성 감독과 작업한 경험도 드물었던 때다. 시나리오를 먼저 받고 미팅을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장만민 감독님은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는 쪽이었다. 평소라면 알게 모르게 경계심이 생겼을 거다. 근데 말했다시피 당시 나는 ‘지금 당장 신나자!’고 결심한 오픈 마인드 상태였다. 뭐가 됐든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이니 좋은 마음으로 만나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니까. 상대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들어보고, 사는 얘기도 나누면 좋겠더라.
타이밍이 잘 맞았네.
의도치 않게 그랬다. 본래 나라면 30%만 얘기할 질문에 70% 정도로 답했다. 내가 열려 있기도 했지만, 그만큼 감독님이 진심으로 나를 궁금해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서로 어떤 시간을 거쳤는지 나누면서 현재 삶과 영화에 관한 생각을 나눴던 것 같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원래는 내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니다. 사람들 만나면 주로 질문하는 쪽이다. 감독님들한테도 시나리오를 보고 느낀 점이나 궁금한 점, 감독님 의견 등을 충분히 여쭤보려고 한다.


미팅하고 얼마 만에 캐스팅이 확정됐나.
일주일쯤 걸렸다. 이 시기는 정확히 기억한다. 처음 만난 날, 감독님이랑 한참 얘기하다가 밥까지 먹고 헤어졌다. 인사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가는데 기분이 묘하더라. 오늘 처음 만난 사람한테 내 모든 걸 까발린 것만 같았다. 근데 시나리오를 주는 건지 마는 건지, 캐스팅할 건지 말 건지 뚜렷한 결과는 없고. (웃음) 신경 쓰지 말자, 뭔가 의도하지 말고 순수하게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마음이 오락가락하긴 해서 길을 서성이다가 앞에 보이는 ‘따릉이’를 타고 영화관에 갔다. 혼자 <탑건: 매버릭>(토니 스콧, 2022)을 봤다. 연기적 자극이 있는 작품인데 좀처럼 집중하기가 쉽지 않더라. 괜히 마음이 허해졌다. 그 탓에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결국 얼마 후 코로나19에 걸렸다. 앓아누운지 사흘쯤 됐을 무렵, 감독님한테 다시 연락이 와서 <은빛살구> 대본을 받았다.
병 주고 약 주는 느낌으로. (웃음)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 준비할 시간은 넉넉했고?
석 달 후에 촬영했으니 시간은 넉넉했던 편이다. 7월에 감독님과 만났고, 10월 중순부터 찍기 시작했거든. 근데 워낙 준비할 부분이 많았다.
단편 작업과는 접근 방식이 전혀 달랐나?
일단 영화 호흡 자체가 다르니 시나리오 읽는 것만 해도 시간이 꽤 걸렸다. 파악할 정보도 많고. 무엇보다 시나리오에서는 정서의 감정 변화가 현재 영화에 표현된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전체 흐름을 돌아보기도 쉽지 않고, 내 것으로 소화하기까지 고민이 필요하더라. 감정 베리에이션이 많을 뿐만 아니라, 정서가 무얼 원하는지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그러나 충분히 매력적인 시나리오였다. 한마디로 안 할 이유가 없는 영화. ‘내가 정서를 연기할 수 있을까?’ 하며 정서의 기질, 성향, 결핍, 욕구 등을 살펴봤다. 나와 맞닿는 지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과정이었다. 단편은 어느 정도 글을 읽으면 ‘나 이거 무슨 마음인지 알아!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알아!’ 확신이 생기는데, 정서는 아니었다. 확신보다는 호기심을 품고 ‘우리는 어떤 부분이 닮았을까?’ 관찰하는 식이었다. 동시에 감독님과 흔히 말하는 ‘신 바이 신’을 했다. 장면별로 A에서는 정서가 어떤 감정인지, B는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장면인지 분석했다. 기존에 단편 작업할 때와는 달리, 약간 학구적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회를 뜬다든지 보드 타기처럼 실질적으로 익혀야 할 것도 있어서 계획표를 만들고 할 일을 실천하려고 했다.
정서에게서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부분은 뭐였나. 가장 나애진답지 않은 구석.
애인 경현(강봉성)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는 것, 동생 정해(김진영)에게 정색하거나 화를 내는 것. 후자는 촬영하면서도 계속 고민했던 부분이다. 정서가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토록 날카롭게 반응한다는 건 뭔가 결핍된 상태라는 뜻인데 그게 무엇인지 파악해야 했다. 자존심이 상했나? 어릴 적 생각에 울컥했나? 정서가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과 세상에 느끼는 결핍은 마음에 와닿았는데, 내 감정이 그런 식으로 치닫지 않다 보니 정해를 대하는 날 선 태도를 받아들이기엔 어려웠다.
경현과 정해는 정서의 애정관, 사랑을 주고 또 받고 싶은 갈망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이를테면 경현은 자꾸 선을 넘는데, 정서는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계속 기회를 준다. 한편, 정해와의 관계는 둘이 마지막으로 한집에 살던 청소년기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독점적이고 조금 비장하기까지 한 우정이다.
정서는 사랑받고자 하는 사람이다. 근데 자기를 갉아먹으면서도 기회를 준다. 그건 사랑을 어떻게 주고 또 받아야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유년기에 충족하지 못했던 부분을 채우고 싶고, 살면서 사랑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어떻게 하면 잘 사랑할 수 있는지 알아본 적이 없는 거다. 정해를 대하는 미숙한 모습도 마찬가지다. 사람이든 관계든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단단해지지 않나. 근데 정서와 정해에겐 그 기회가 없었다. 자매라는 형태만 남아 있지,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른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 특히 동생뻘인 이들에게는 뭔가를 자꾸 주고 싶어진다. 내가 과거 어른에게 받아서 좋았던 것을 되새기며 그들에게 건네는 식이다. 정서도 비슷하다. 정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지만, 그조차 뜻처럼 되지 않으니 답답한 거다.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고. 사랑할 줄 모르기에 어린애처럼 표현하는 면이 있다. 근데 이건 그 시절의 나랑 또 닮아 있는 부분이라 정서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근데 어쩌다 정서에게 ‘아기 곰치’라는 애칭이 붙은 건가. 영주가 거금 들여 샀다는 정서의 졸업 작품도 곰치 연작이고.
그것도 어려웠던 지점 중 하나인데. 동해 곰치가 유명하다는 사실을 아나? 난 몰랐거든. 근데 희한하게도 영화 찍기 전에 동해에서 곰치국을 먹었던 일이 있다. 겨울이었으니 장만민 감독님과 만나기 몇 달 전이다. 오빠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고, 나는 아빠랑 둘이서 속초로 조문하러 갔다. 장례식장 다녀오는 길에 아빠가 뜬금없이 물곰치 먹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 결국 식당을 수소문해 찾아갔고 난생처음 곰치국을 먹어봤다. 아빠는 입버릇처럼 이걸 왜 모르냐, 그럴 리가 없다, 너 어릴 적에 분명히 먹어봤다 했지만. (웃음) 마침 아빠랑 그런 시간을 보낸 터라 영화에 곰치가 나오는 걸 보며 신기했다. 사실 감독님의 설명은 단순했다. 뿌리 찾기 여정을 다루는 작품이니, 정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만한 뭔가가 등장했으면 싶었다고. 근데 일전에 영화제에서 한 관객분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셨다. 곰치가 깊은 바다에 사는 심해어라고 하더라. 빛이 부족한 환경에 살다 보니 곰치의 시야는 특정 영역에 제한된다. 그 관객분은 “자기가 볼 수 있는 만큼만 보는” 곰치의 특성에 빗대어 인물을 설명한 것으로 해석하셨다.
반대로 가장 나애진다운 구석은 뭐였나. 영화 보며 ‘저건 어쩔 수 없는 내 것’이라고 느낀 부분이 있다면.
모든 장면이 그렇긴 한데 캠코더 신의 여운이 유독 짙다. 캠코더를 통해 영주(안석환), 주희(최정현), 정해 세 식구의 단란한 일상을 바라보는 신이 있다. 그 순간 정서는 아무 말도 안 하지만, 속으로는 동경, 질투, 원망, 아쉬움 등 온갖 감정을 느낀다. 남의 것을 구경하는, 훔쳐보는 느낌으로 찍었다. 촬영할 때도 울컥했는데 아직도 그 장면을 보면 마음이 그렇다. 그게 다른 사람들 눈에도 보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 부분이 ‘어쩔 수 없는 나구나’ 싶은 장면이다. 아빠한테 트럭에서 틱틱대는 정서도 나 같다. 부모님께 살갑지 못한 나.
그간 나애진 배우의 작품을 보면서 마음에 남았던 느낌이다. 대개 시원시원하고 의연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걸 극대화하면 무심하거나 시니컬한 인상이 되고. 어쨌거나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은 대체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근데 그 초연함이 여유를 반영한다기보다는 늘 뭔가를 참는 상태로 다가왔다. 캠코더 장면에서도 감정을 삼키더라.
인상이 차갑다거나 첫인상이 무섭다는 얘기는 곧잘 듣는데, 그러고 보면 영화에는 참 숨을 구석이 없는 것 같다.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면 한 사람을 알게 되는 느낌도 들고. 연기라는 작업 특성상 배우들은 어느 정도 인물과 동화되는 면이 있다 보니, 작품에서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하는 것 같다. 좋아 보인다고 해주니 다행인데, 사실 그 참는 기질 때문에 오래 고생했다. 그건 기질인 동시에 어떤 상황에 적응하려는 나름의 노력이기도 했거든. 세상에서 잘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다 보니 어릴 적부터 참는 버릇이 생겼다. 그 과정에서 운동을 오래했고, 지금은 아니지만 청소년기엔 소위 감투 쓰는 걸 즐기기도 했다. 긴장과 불안을 혼자 추스르는 법을 익히며 성인이 된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물론 성취감도 느꼈고.
감투라면 반장, 회장처럼 리더 역할을 도맡았다는 뜻?
책임감이 큰 편이라 직책이 생기면 열심히 했다. 그래야 관심과 사랑을 받는 듯했고, 도움이 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10대 시절,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자주 생각했다. 학교 생활하면서 뿌듯했다. 집에서는 칭찬받기가 어렵지 않나. 근데 학교에서 뭘 잘해 오면 집에서도 칭찬을 해주더라. 잘하면 기분 좋구나, 잘해야 하는 거구나, 잘해야겠다, 더 잘하고 싶다. 그런 생각으로 이것저것을 경험했다. 그 바람에 못하는 일을 마주하면 한 걸음도 떼지 못하는 불안 많은 어른이 된 면도 있지만.
이젠 덜 참나?
아마도 전보다는.
덜 참고 난 후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덜 참아도 괜찮다는, 별일 안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은 이미 알고 있던 건데 이제야 체화한 것 같다. 나도 김정서를 통과하면서 성장했다고 본다. 실제로 사랑을 어려워했다. 받으면 고맙고 부담스러워서 더 큰 것을 주려고 하다가 어긋났고, 관계에 정성을 들이는 일이 벅차서 엄두를 못 내기도 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처럼 살았다. 꼭 그렇게 멋지고 잘하고 괜찮은 모습만 보여줄 필요는 없는데, 때로는 부끄럽고 수줍고 어설픈 모습이어도 되는데. 밖에 부족한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면 수치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이제 부끄러워지는 순간도 좀 마주하려고 한다. 막상 해보니 별것 아니다 싶고. 그냥 마음껏 신나고 기뻐도 괜찮겠더라.

좋은 사람들을 만났나 보네. 혼자서는 영영 모르는 것 아닌가.
그래도 괜찮다는 걸 실질적으로 느끼게 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새로 만나기도 하고, 이미 내 곁에 있었는데 못 알아보다가 새삼 깨닫기도 했다. 누군가는 얼핏 던졌는데 내가 덥석 잡아버리기도 하고.
가족에게 <은빛살구>를 보여줬나.
작년 전주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다 같이 봤다. 어머니와 오빠는 평소 나 같다는 반응이었다. “저건 내가 아니야”라고 말했지만, 두 사람 눈에는 닮았나 보더라. 무심하고 냉소적인 내 모습 그대로라고. MBTI로 얘기하면 둘 다 굉장한 T다. 아버지랑 나는 대문자 F. (웃음) 아버지는 별말 없었다. 원래 과묵한 편이기도 하고, 자기 딸이라서 객관적으로 보기는 어려운 듯했다. 고생했겠다는 말 정도가 전부였다. 개봉하면 한 번 더 보시기로 했는데, 이번엔 어땠는지 다시 물어봐야겠다.
정서의 많은 부분은 가족을 통해 설명되고, 각 관계는 집이라는 공간을 다르게 경험한다. 결혼을 앞두고 함께 살 집을 구하는 애인 경현, 현재 한집에 사는 엄마 미영(박현숙), 오래전 엄마와 자신을 집에서 내친 아빠 영주, 그 집에 새로 들어와 사는 ‘가짜’ 엄마 주희와 동생 정해. 여러 인물 사이를 왕래하며 극의 전개를 이끄는 입장에서 관계마다 성격과 역사 등을 정리해야 했을 텐데.
전체적으로 마인드맵을 그렸다. 만나는 인물이 많은 데다, 말한 대로 정서는 그 사이를 계속 오간다. 실제 촬영하면서도 이 사람 저 사람, 이 집 저 집을 왔다 갔다 하는 식이었다. 관계도를 착 펼쳐서 그려놓은 후, 혼자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처음에는 ‘나는 A를 어떻게 생각할까? B에게는 어떤 감정을 느낄까? C와 나는 예전엔 얼마나 친했고, 지금은 또 어느 정도일까?’ 생각하다가 그 다음엔 구체적 상황을 더해 나갔다. ‘D랑 한 식탁에서 밥 먹는 분위기가 어떨까?’ 중간에 잘 모르겠는 감정이 나타나면 주변에 도움을 받았다. 비슷한 상황을 겪은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라든지 여러 간접 경험을 통해 감정을 빌려오는 거다. 그렇게 상황, 감정, 관계를 엮어 나갔다. 평소와 달랐던 점은 정서를 열어뒀다는 거다. 연기하다 보면 “이 인물은 안 그럴 것 같은데?”라고 말할 때가 종종 있다. 근데 정서는 그럴 수가 없더라. 워낙 다양한 인물을 만나고 다양한 공간에 가니까. 사람은 만나는 대상에 따라 태도와 모습 등 여러 부분이 달라지는데, 그렇게 보면 정서는 어떤 모습이든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인가. 그것은 영화 속 가족과 얼마나 닮았는지, 혹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공통점은 ‘어쨌든 가족도 개인’이라는 명제다. 그게 정서의 집안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생각 같다. 우리 집도 그렇거든. 개인보다 가족을 우선으로 여기는 분도 있다는 걸 안다. 가족 행사를 항상 첫째로 챙기고, 집안 식구 모두 만족하는 방향을 선택하는 분들. 그와 비교하면 우리 집이든 정서 집이든 개인에게 더 초점을 맞춘다. 차이라면 정서 집이 좀 더 살갑다는 것? 정서와 미영은 대화하는 관계다.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나누고, 함께 사는 공간에서 애정의 말을 건넨다. 모녀의 식사 장면을 보면 온기가 느껴지더라. 아쉽고 미운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둘은 결국 서로 존중해주는 사이 같다.
안석환, 박현숙 등 경험 많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건 어떤 경험이었나.
어릴 적부터 어른들을 대하는 경우가 많았던 터라, 선배님들을 그리 어려워하지 않는 타입이다. 두 분 모두 나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만나셨고 지금까지 오랜 시간 연기해 오셨다. 나는 그저 두 분을 믿고 가면 됐다. 뭘 더 애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과 어떤 걸 던져도 잘 받아주실 거라는 믿음이 공존했다. 덕분에 나로서, 나대로 현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위축되는 마음도 전혀 없었고. 오히려 내가 친밀감을 고민했던 배우들은 정해와 고향 친구들이었다. 우리가 가깝게 지냈던 시간이 화면에 자연스럽게 묻어나야 하지 않나. 난 고향 친구들 만날 때 그렇거든. 오래 못 보다가도 딱 만나면 어제 만났던 사람들처럼 인사한다. 초반에는 배우들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러서 그 부분을 편안하게 돌보려고 했다. 다 <은빛살구>로 처음 만났거든. 나도 친구이자 동료인 김사월 음악감독 말고는 친분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웃음)


고향은 어디인가.
강화도. 태어나서 열아홉까지 강화에서 살았다.
정서에게 고향은 다양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몸에 밴 노동과 놀이를 재개하고, 집앞 골목에서 낯선 기운을 감지하고, 아빠가 속한 단란한 풍경을 보며 눈물을 글썽인다. 그런가 하면 꿈속에서 가족들이 뱀파이어로 등장해 고향을 무법천지로 만들기도 한다. 배우에게는 고향이 어떤 감각을 불러오는 공간인가.
스무 살 이후로는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그간 강화에 종종 다녀왔다. 본가뿐만 아니라 졸업한 학교라든지 예전에 살던 빌라 등을 찾아갔다. 과거의 공간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강화를 여행했던 거다. 근데 <은빛살구> 프리 단계에서 감독님이 그걸 제안하셨다. 옛날에 살던 곳에 한 번 가보시면 어떻겠냐고. 안 그래도 몇 년 전에 방문했던 적이 있다고, 지금 가면 느낌이 또 어떨지 궁금하다고 말씀드렸다. 예전 빌라에 가서 옥상에도 올라가고, 유년 시절을 되짚어 보고, 그날 풍경을 사진으로 담기도 했다. 떠오르는 장면과 감정을 인지하고 기억하면서 그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음, 정서와 마찬가지로 나도 고향에서 익숙함을 느낀다. 김포에서 강화로 넘어가는 다리가 있다. 거기를 지나서 양옆에 갯벌이 펼쳐지는 순간 ‘아아, 강화다!’라는 안도감이 밀려든다. 서울과 달리 강화에서는 익명이 불가능하다. 완전히 지역사회거든. 시골은 참견이 많다. 걷다 보면 “쟤 누구 딸이네, 누구 동생이네” 하는 말이 나온다. 게다가 어딜 가든 아는 장소다. 시골은 잘 안 변하니까 동네가 눈에 훤히 들어온다. 정서 또한 저 집에 누가 사는지, 어느 쪽 골목이 지름길인지 금세 떠올랐겠지. 친구들 만나는 정서의 모습도 내 안에 축적된 경험으로 만든 것 같다. 고향에 사는, 혹은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강화로 돌아온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면 참 편안하고 여전하구나 싶거든. 그런 관계와 느낌 모두 정서를 표현하는 단서가 됐다.
만화적 순간이라고 부를 만한 꿈 장면은 어떻게 받아들였나. 영화에 어떤 효과를 내는지, 정서와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배우로서도 궁금증을 가졌을 법한데.
평소에 꿈을 자주 꾼다. 그중 인상 깊은 것은 일어나자마자 메모해 놓는다. 꿈속에서 내가 상상조차 못할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무의식에서 기인한 풍경이 꿈으로 펼쳐진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불안 거리라든지 회피했던 문제를 꿈에서 돌연 마주하게 되지 않나. 영화 속 뱀파이어 꿈도 그런 식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장면이 영화에 착 달라붙겠다고 확신하지는 못했다. 다만, 정서가 꿈꿀 수는 있겠다고 봤다. 오래 외면했던, 찝찝하게 남아 있는 뭔가를 꿈에서 볼 수도 있겠다고.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감정이 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엔 어렴풋했지만 정서가 가족 사이에서 느끼는 위기감, 정해를 향한 동질감 등을 토대로 흐름을 정리했다. 해당 장면의 기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뱀파이어 신을 찍을 때만큼은 철저하게 감독님을 믿었다. 특히 오프닝 시퀀스가 희한했다. 만화적 연기를 소화해야 했다. 인물의 의도나 정서를 생각하는 대신에, 감각에 의지해서 적절한 톤을 찾아 나갔다. 주변에서 쳐다보니 좀 부끄럽기도 했는데 촬영 자체는 재밌었다. 촬영 기법, 분장, 연기 다 새롭고.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다. 감독님이 무슨 느낌을 원하는지는 알겠는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연기라서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 자신 없는 생각이 들수록 ‘과감하게 해보자!’며 다독였다.
사진, 꿈 일기, 혼자 떠난 고향 여행… 얘기를 듣다 보니 정성스럽게 사는 사람이구나 싶다. 때마다 자신을 잘 기록해 두려 하고.
애쓰면서 살긴 했다. 그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그러니까 정서를 통과하는 기간도 애쓰면서 보냈다. 기록에 욕심을 냈다. 사진 찍는 것도 좋아했고. 어린 시절 앨범을 즐겨 봤는데, 내 사진이 별로 없더라. 오빠 사진은 훨씬 많다. 첫째 아이인 데다, IMF 터지기 전이라 경제 상황도 나았을 때다. 나는 사진이 적을 뿐만 아니라, 관심 자체가 덜했다. 부모님이 내 사진을 못 찾더라. 어딘가에 있을 텐데 위치를 모르겠다고. 서럽지. 결국 이사 준비하다가 내가 스스로 찾아냈다. (웃음) 어릴 적부터 혼자 시간을 보냈던 이유와 이어진다. 내가 5살쯤 됐을 때부터 오빠가 아팠다. 부모님은 일과 간병을 병행했고, 내 사진을 남길 기회는 자연히 줄었다. 그렇게 혼자 남겨지다 보니, 앞서 얘기한 것처럼 학교생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람단도 하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몇몇 단체 사진이 그나마 나를 보여주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중학교 몇 학년이었나, 하루는 문득 그 기록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한테 뭘 사달라고 부탁한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카메라가 생겼다. 혼자 기록하는 행위를 즐겼던 것 같다. 사진도 좋아하고 일기도 계속 쓴다.
일기는 아침에 쓰나, 밤에 쓰나?
때에 따라 다르다. 속이 시끄러운 날은 일어나자마자 쓰고, 큰일이 있던 날은 오늘 경험과 느낌을 정리하고 싶어서 밤에 쓴다.

<은빛살구> 엔딩 장면이 떠오른다. 정서의 내레이션은 짤막한 일기처럼 들린다. 아파트를 단념하는 선택, 이에 덧붙이는 담담한 소회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속 시원하고 당찬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일기 같은 내레이션을 보니 정서가 어떻게든 스스로 소화하려 하는구나 싶더라. 회피하는 대신에 합리화하려고, 자신을 납득시키려고 하는구나. 본래는 그 장면을 좀 더 서정적으로 상상하기도 했다. 시나리오에 ‘그때 정서의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식으로 적혀 있었거든. 이 친구의 결정을 영화가 위로하는 것처럼 보였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 선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정서는 자신을 위한 선택을 했더라. 적어도 그 선택만큼은 자기가 책임질 수 있거든. 더는 제 것도 아닌 것에 붙들리거나 잘 모르는 것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정서가 드디어 땅에 두 발 딛고 섰네!’ 가진 건 없지만 얽매이지는 않겠다는 선택이 참 용감하게 다가왔다. 나라면 아파트는 포기 못 할 텐데 정서는 다르구나. (웃음) 지금쯤 정서는 웹툰을 그릴 것 같다. 실은 정서가 엄마랑 티격태격하는 그 순간부터 그런 미래를 상상했다. 개인적으로 정영롱 작가의 웹툰 <남남>을 좋아하는데, 그 작품처럼 못나고 이상한 제 삶을 세상에 꺼내 보였을 듯하다. 이제 마주하는 용기가 생겼을 테니까.
영화에도 사진이 몇 차례 등장한다. 초반부에 정서는 빛바랜 가족사진을 보다가 그 표면을 긁어 맛을 본다. 무엇을 맛본다고 여겼나.
나도 앨범과 사진을 자주 꺼내보는 편이라 장면 자체는 익숙했는데, 맛을 보는 건 정말 감독님스러운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웃음) 먼지 맛 정도로 말할 수 있겠지. 근데 옛날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먼지 아닌 뭔가가 묻어 있기는 하다. 끈적이는 것도 있고, 까끌까끌한 것도 있다. 나라면 사진 보관을 위해 그걸 떼어 내고 말았을 텐데, 감독님은 맛을 본다고 쓰셨더라. 무슨 행동인지 여쭤보니 일단 감독님은 정서가 평범하지 않은, 예민하고 까다롭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하셨다. 감각을 세밀하게 가져가는 인물로 보였으면 해서 그 장면을 넣었다고. 나는 정서의 상태를 호기심으로 바라보며 연기했다. 그게 궁금했구나. 왠지 아무도 안 보니까 할 수 있는 행동 같기도 하고.
어떤 맛이 났을 거라고 상상했나.
짠맛. 맛소금처럼?
고향, 가족, 기억에 맛이 있다면 역시 짠맛이겠다. 어린 시절 이야기 중에 운동했다는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다. 태권도를 오래 했다고. 어떻게 시작했고 왜 끝냈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바깥으로 돌았다. 동네 언니 오빠들이 뭐 하는지 보고 따라했다. 부모님은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시는 편이었다. 자전거 타고 싶다고 했더니 바로 사주셨지. 근데 타는 법은 혼자 터득해야 했다. 눈치껏 따라하고 길에 넘어지고 하면서. 어쨌거나 몸을 움직이며 놀았던 기억이 많다. 친구들 모아서 우리끼리 빌라 운동회도 열고, 달리기 시합도 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진학한 다음 전 학년이 참가하는 계주 경기가 열렸는데, 처음으로 온 관심이 내게 쏠리는 걸 경험했다. 꼴찌로 뛰다가 전부 따라잡고 1등 했거든. 그때 처음으로 운동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막상 태권도를 시작한 계기는 엉뚱했다. 어느 날 전학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본래 학교 근처에 살았는데 이사하면 집이 좀 멀어지는 상황이었다. 근데 한 친구가 차를 타고 통학하기에 물어봤지. 너는 무슨 차 타고 학교에 왔냐고. 그게 태권도장 차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부모님한테 태권도장 다니겠다고 했다. 그렇게 10살에 태권도를 시작했다. 낯설었지만 도복을 갈아입는 일부터 떠듬떠듬 해나갔다. 어쨌든 나는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내야 하는 아이였기에 이미 여러 학원에 다녔는데, 태권도에 재미를 느끼고 나서는 태권도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한 차례 수업이 끝나면 조금 쉬었다가 다음 수업 듣고, 또 듣고. 그렇게 태권도장에 오래 있는 애가 되면서 부모한테 받을 관심과 사랑을 관장님한테 받은 것 같다.
태권도의 어떤 점에 재미를 느꼈나.
낙법, 아크로바틱 등 다양하게 배웠다. 연습할 차례가 돌아오고 다음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속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다가 내 순서가 되면 공중에서 확 도는 거다. 그게 재밌더라. 승급 과정에서도 성취감을 꾸준히 느꼈다. 무엇보다 애들이 다니는 학원이다 보니 태권도뿐만 아니라 격투기며 공수도, 합기도 등 이것저것을 가르쳤다. 나로선 계속해서 새로운 퀘스트를 받아 드는 셈이었는데, 하나씩 깨가면서 나름대로 태권도 꿈나무가 됐다. 강화 지역 스포츠로 양궁과 태권도가 유명하다. 고학년이 되자 큰 태권도장에서 일종의 스카우트 제안이 왔다. 본래 다니던 도장에 애착을 느꼈기에 한 차례 거절했는데,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도장을 옮겼다. 태권도부가 있는 학교였거든. 부담 갖지 말고 편히 시작해 보라는 조언에 부 생활과 새로운 도장 생활을 시작했다. 근데 양쪽 다 즐겁지 않았다. 특히 새로운 태권도장은 선수 육성을 목표하는 곳이기에 놀이보다 훈련에 열중하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대련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당시 운동을 오래 했던 상황이고 키도 또래에 비해 큰 편이었다. 근데 나보다 체격이 작은 친구랑 바로 대련을 시키더라. 훈련하면서 알았다. 나는 때리는 걸 못하는구나, 점수 내는 것이 즐겁지가 않구나. 결국 한 달만에 관뒀다. 뭐랄까, 당시엔 잘 몰랐는데 태권도를 직업으로 삼고 싶지는 않던 것 같다. 그저 운동이 즐거워서 했을 뿐. 그만두겠다고 하니 체육 선생님이 “공부도 못하는 애가 운동 안 하면 뭘 할 수 있겠냐?”라고 하더라. 반발심이 들었다. ‘당신이 뭔데 나를 그렇게 판단해?’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동시에 운동도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꾸준히 하긴 했다. 예전 도장으로 돌아가서 성인부랑 격투기를 했다.

그 태권도장에 마음을 많이 준 것 같다. 집안에 아픈 형제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왠지 태권도를 열심히 했다는 사실이 안쓰럽기도 하다. 씩씩하고 튼튼한 아이를 자처한 듯해서.
덕분에 자신감을 마련하기도 했다. 부모님의 적극적인 보살핌이나 지지가 없는 상황에서도 ‘나는 해내는 사람, 도전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개념을 장착하게 됐거든. 이게 좀 안쓰럽다는 것도 20대 중후반까지는 잘 몰랐다. 그 무렵 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받았다. 어린 시절에 혼자 자전거를 배웠던 기억이 선명해서 그 얘기를 했더니, 상담사가 묻더라. “그 아이 어때 보여요?” 나는 기특하고 대단하다는 식으로 답했는데, 상담사는 안쓰러워했다. 그걸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어쨌든 연기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한 걸 보면, 운동을 관둔 후에 진로를 금세 정했나 보다. 배우는 오랜 꿈이었나.
국어 교과서 보면 비문학, 소설, 시가 나오다가 마지막에 희곡이 두 편 정도 수록돼 있다. 희곡을 좋아했다. 문학이나 비문학에 비해 단순하기도 하고 재밌더라. 중학교 2학년 담임이 국어 선생님이었는데 장난기 많은 분이었다. 하루는 교과서에 실린 희곡을 짧게 연기해 보라고 하셨다. 분단별로 학생을 나눠서 역할을 정하고 교탁 앞에 나가서 시연하는 방식이었다. 그날 희곡은 <별주부전>이었는데 난 토끼를 맡았다. 다들 짧은 시간에 대사를 외우다 보니 버벅거리기도 하고 대충 말했는데, 나는 되게 진심으로 했다. 토끼로서 간을 뺏기지 않으려고 굉장히 투철하게 임했다. (웃음) 소위 말하는 애드리브를 섞어 가면서 버텼던 거다. 친구들이 깔깔 웃고, 선생님도 기가 찬다는 반응이었다. 결국 끝끝내 간을 지키는 데 성공했지. 그 기억이 재밌고 선명하게 남았다. 친구들의 웃는 모습과 내가 나로서 말하고 움직이는 시간이 마음에 깊이 들어온 것 같다. 이후 희곡, 대본, 연기라는 단어가 어딘가에서 나오면 들여다보는 정도의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걸 얘기하게 되다니!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알게 모르게 우울감이 쌓였다. 운동 접고 공부하겠다고 한 뒤로 중학교에서는 어느 정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는데, 고등학생이 되자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다. 당시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시티홀>(SBS, 2009)을 강화에서 촬영하고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냉소에 젖어 있는 상태라 처음엔 심드렁하게 반응했는데, 하루는 학원 친구들과 촬영 현장을 같이 구경하게 됐다. 근데 누군가 다가와서 배우들 뒤로 한번 지나가라는 거다. 지금 생각하면 연출부 스태프였던 것 같다. 아무튼 덕분에 김선아 배우님 뒤를 걸어가는 고등학생으로 단역 출연했고, 10대 시절의 설레는 기억으로 남았다.
데뷔의 순간이기도 하고. (웃음)
나중에 한 번 더 출연했다. 그 스태프가 내 번호를 가져갔거든. 연락이 오겠나 싶었는데, 진짜 전화가 와서 친구들 몇 명 데리고 오라더라. 얼마나 재밌는 일인가. 당시엔 공부 안 하면 다 재밌는데. 그렇게 촬영 현장 구경하고 엑스트라 출연하다 드라마에 빠졌다. 처음엔 내가 나오니까 찾아봤는데, 내용 자체가 재밌더라. 작가님 특유의 대사도 귀에 박히는 데다, 그게 또 정치 드라마거든. 아이팟에 드라마를 넣고 공부하는 내내 들었다. 어느새 내가 대사를 줄줄 외우더라. 친구들이 신기해하면서 칠판에 써보라고 했는데, 한 글자도 안 틀리고 쭉 적어 내려갔다. 그즈음 연기라는 세계, 배우라는 직업에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겼다. 특히 배우들 인터뷰를 많이 찾아봤다. 차승원, 송강호, 최민식 배우 등의 인터뷰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삶의 가치관이 담긴 말들이 어떤 지침처럼 다가오더라. 당시 나는 방송을 만드는 피디가 되거나 철학, 연기 등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 모든 걸 아우르는 존재가 배우인 듯했다. 결국 입시를 석 달 정도 남겨 놓고 서울 연기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결과가 아주 좋지는 않았다. 20대 중반까지는 ‘재수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뭐 나름대로 내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20대 전반부랑 후반부가 사뭇 다르게 흘러갔겠다 싶다. 관객에게 이름을 알린 단편 <굿 마더>(이유진, 2020) <오 즐거운 나의 집>(이해지, 2022) 등도 비교적 최근에 공개됐고. 학교 밖에서 영화 작업을 시작한 계기는 뭐였나.
대학 들어가고 눈이 번쩍했다. 다들 나보다 뛰어나더라. ‘난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학교를 열심히 다녔다. 수업에 집중하고, 외부 공연하고, 방학에도 선배들 따라다니며 연극에 매진했다. 대학로 공연의 무대 감독을 해보라는 제안이 들어와서 갔던 곳이 극단 ‘간다’였다. 전미도, 이희준, 진선규 선배를 가까이 지켜보며 꿈을 키웠다. 배우 캐스팅에 따라 극이 정말 완전히 달라지더라. 서로 다른 능력과 매력에 놀랐고 연기를 더 잘하고 싶어졌다. 전미도 선배님을 롤 모델처럼 생각하면서 노래도 배우고. 그러다 다시 학기가 시작됐는데, 한 교수님 수업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학생에게 지나친 노동을 요구한다는 생각도 들고 건강한 관계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거든. 그 교수님을 마주치지 않기로 했더니, 시간이 많이 남더라. 공연을 안 하니까. 심심하던 차에 우연히 서울독립영화제를 알게 됐다. 동기들한테 같이 가자 했지만 전혀 관심을 안 보였다. 그럴 만한 것이 다들 연극에 빠진 상태였으니까. 결국 압구정 CGV에 혼자 가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제일 빠른 시간대의 영화표를 구입했다. 사전 예매도 몰랐던 때라 맨 앞줄에 한두 개 남은 좌석을 어렵게 구했다. 그날이 시작이었다. 그곳에서 영화를 봤던 경험이 나한테 정말 컸다.
영화는 뭐였나.
<한공주>(이수진, 2014). 이전까지 봤던 영화와 달랐다. 상업영화나 드라마는 멀게 느껴졌다. 나는 갈 수 없는 세계처럼 보였다. 근데 <한공주>는 내 옆에서 일어나는 일 같았다. 한꺼번에 많은 고민이 피어났고, 그런 경험을 선사해준 영화가 크게 다가왔다. 근데 더 흥미로웠던 건 영화제 풍경이었다. GV에 실제로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나와서 얘기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때 속으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첫째는 ‘나도 저기에 끼고 싶다’였고, 두 번째는 ‘저런 게 진짜 영화인가?’였다. 그날부터 계속해서 서독제에 갔다. 기가 막히게 다음 충격이 뒤따랐다. 단편 <콩나물>(윤가은, 2014)을 봤거든. 이토록 사랑스러운, 단숨에 깊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영화가 있다니. 심지어 연기를 저렇게 잘하다니. 그 순간 매료됐다. 독립영화가 뭔지는 몰라도 난 그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제에서 감독, 배우, 스태프 등이 수고했다며 서로 격려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멀게만 보이던 영화가 손에 닿을 듯한 무엇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맨땅에 헤딩을 시작했다.

무작정 어떻게?
방법도 과정도 잘 몰라서 알음알음 물으며 했다. 일단 프로필 사진을 찍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나를 좀 낯선 곳에 던져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어떤 선배를 통해 우연히 모임에 합류했고, 장햇살 배우를 처음 만났다. 거기서 같이 시트콤을 찍어 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필름메이커스의 존재를 알았지만, 당시 프로필을 넣어봤자 연락이 올 리가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경력도 없으니까. 그러다 조금씩 작업이 쌓이면서 한국영화아카데미와 한국예술종합학교도 알게 됐다. 당시만 해도 내 소박한 꿈은 한국영화아카데미 단편을 찍는 거였다. <한공주>가 한국영화아카데미 작품이라 자연스레 마음이 갔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작품으로 장편 데뷔작까지 선보이게 됐으니 목표를 크게 달성한 셈이다. “맨땅에 헤딩을 시작”해서 첫 주연을 맡는 사이 꼬박 10년이 흘렀다. 20대에서 30대가 됐고, 차기작을 고민하게 될 거다. 아무래도 자신의 내적 외적 변화에 대해 여러 각도로 살필 수밖에 없을 듯한데 어떤가.
나를 많이 의심하며 살았던 터라 한동안 시야가 좁아졌던 것 같다. 내가 다가오는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기회인 줄도 모르고, 그저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서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못 봤다. 지금은 내가 해낸 것들이 제법 기특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아직은 아주 편한 마음으로 나를 받아들이지는 못한 것 같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으면 되는데, 나도 날 인정해 주면 좋을 텐데. 잘하고 있다며 다독이지만, 그와 동시에 스스로 참 느리다고 생각한다. 근데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은빛살구> 만나기 전 해 12월 31일에 만난 친구들과 새해 소망을 적었다. 당시 난 감당할 수 있는 일들만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적으며 ‘장편 주인공 한 번 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는데 덜컥 소망이 이루어졌다. 믿는 대로 된다는 걸 처음 실감했다. 요새는 스스로를 그렇게까지 의심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20대 중반까지 내게 동력을 불어넣던 말은 “너를 믿어주는 나를 믿어”였다. 내가 나를 믿는다는 말보다 누군가가 나를 믿는다는 말이 왠지 더 힘을 발휘하는 듯했다. 근데 시간이 갈수록 그게 다가 아니구나 싶다. 결국 나는 나로 존재하고, 내가 날 믿어주지 않으면 무엇도 시작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주 흔들리고 걱정하지만, 최대한 나를 믿으려고 한다.
2025년의 새해 소망은?
올해 모토는 무모한 한 해를 보내자는 거다. 감당할 수 있으려나 싶은 일들도 일어나면 좋겠다. 감당할 수 있는 일들만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결국 책임감 때문인 것 같거든.
실수도 좀 해보고.
계속 감내하고 참으며 살았는데, 올해는 안 해본 것도 하면서 조금 무모하게 지내려 한다. 그래야 다른 길도 열리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더 재밌을 것 같다. 무모함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도 생겼나 보다.
대화 중에 전미도, 차승원 배우 등을 언급했다. 그처럼 배우의 존재감을 의식하게 되는, 욕심이 나는 배역 혹은 작품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며칠 전 인터뷰에서 <서브스턴스>(코랄리 파르쟈, 2025)를 얘기했다. 최근에 본 영화가 가장 많은 영향을 주지 않나. 나도 모르게 <서브스턴스>에 관해 잔뜩 말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그런 작품에 참여할 기회가 생기면 너무 좋겠지만, 지금 내 존재감으로 맡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닌 듯하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나는 상업 드라마나 영화에서 존재감이 있어야만 하는, 그렇게 내가 좀 더 힘을 낼 수 있는 배역을 맡고 싶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인물이어도 좋겠고, 무엇보다 사랑과 용기를 가득 지닌 인물을 만나고 싶다. 그걸 갖고 싶거든. 연기하면서 깨닫고, 배우고, 비로소 내 것이 되는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요즘은 캐릭터로서 활개를 치기보다는 그 감정의 확장을 맛보고 싶은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