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마치고 남궁선 감독에게 밸런스 게임을 제안했다. “20년 동안 준비해서 단 한 편의 걸작 남기기 VS 걸작은 아니지만 쉼 없이 20편 마음대로 찍기” 예상한 대로 감독은 후자를 택했다. 걸작을 남기겠다는 야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의 욕망이 시시각각 변모해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영화 제작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던 때도, 실은 피 튀기는 살인 미스터리 영화를 준비하던 와중이었다. “나를 계속해서 다른 방향으로 데려가는” 알 수 없는 힘이 <힘을 낼 시간>의 시작이었던 셈. 본인은 이를 두고 대책이 없었노라 평하지만, 그만큼 남궁선은 유연하고 대담하다. 결국 그가 도착한 곳은 “피 칠갑보다 더 무시무시한 피 땀 눈물”의 세계다. <힘을 낼 시간>은 공항에서 출발한다. 전직 아이돌 수민(최성은), 태희(현우석), 사랑(하서윤)이 제주로 뒤늦은 수학여행을 떠난다. 수중에 돈은 고작 98만 원. 명색이 아이돌인데 셋이 합해 100만 원도 없다는 점이 의아하다면, 영화에서 그 배경과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남궁선 감독은 겁도 없이 아이돌 산업의 흑막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상상을 뛰어넘는 현실에 놀라면서도 발을 빼지 않은 것은, 배짱이 대단해서라기보단 책임감 때문이었다. “내가 봤는데, 내가 들었는데 어떻게 모른 척해요.” 그 단호하고도 무른 마음에 동의한 배우들과 제작진 역시 힘을 실었다. 애초 감독이 원했던 길은 아니었으나, <힘을 낼 시간>은 그렇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작품이 됐다. 20편을 마음껏 찍는다면, 남궁선의 영화는 계속해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자라날 거다. 아쉽고 부끄럽고 이따금 ‘이게 진짜 맞나?’ 중얼거리면서도 저만의 ‘뉴웨이브’를 끊임없이 불러오는 길이다.
데뷔작 <십개월의 미래>(2021)는 팬데믹 한복판에, <힘을 낼 시간>은 대통령 탄핵 시국에 개봉한다. 매번 상황이 고약한데 요즘 마음은 어떤가.
늘 그래 왔듯 괜찮아야지, 별수 있나. 당연히 불편한 건 불편한 거고 화나는 건 화나는 건데 우리가 힘을 내려면 편안해져야 하니까. 뭐 상황이 얄궂긴 하지만, 그건 항상 그렇지 않을까?
넷플릭스 영화 <고백의 역사>를 촬영 중이라고.
3개월 찍고 이제 막 크랭크업했다. 되게 실없는 영화인데 나름 좋더라. 실없어서 웃음이 난다.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공개된 스틸 속 주인공의 잔뜩 부푼 곱슬머리를 보면서 <미쓰 홍당무>(이경미, 2008)가 떠오르기도 하던데.
<미쓰 홍당무>보다 더 실없다. 기본적으로 밝고 좀 떠 있는 작품이고, 시나리오 작가가 따로 있다. 처음 연출을 제안받고선 사양했다. 죄송한데 못할 것 같다고. 근데 막상 작업하다 보니 그런 실없는 즐거움이 나쁘지 않더라. 어이없어서 웃음이 터지는 분위기 같은 거. 기분 좋게 작업했다. 몸은 군데군데 안 좋아졌지만. 특히 촬영 막바지에는 <힘을 낼 시간> 개봉 일정이 겹치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계속 촬영하다가 쉬는 날 되면 바로 개봉 준비하고.
몸이 하나로는 부족했겠다. 그러고 보면 <십개월의 미래>와 <힘을 낼 시간> 사이에는 단편 <얼굴 보니 좋네>(2022)도 있다. 난데없이 아주 미니멀한 영화를 선보였는데.
심플하게 시작했다. 당시 영화진흥위원회가 창작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극복 특별지원 사업 공고를 냈거든. 유이든 배우를 포함해 <십개월의 미래>를 같이 했던 친구들과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고생한 만큼 뭘 얻어 가지는 못했으니까. 이번엔 편하게 작업하고 임금을 받아보자며 우리끼리 작당모의 했던 거다. (웃음) 근데 다들 하면 또 제대로 해야 하는 성격이라 결국엔 받은 만큼 일한 것 같다. 팬데믹 3년 차에 접어들며 굉장히 힘들 때였고, 그 마음을 영화에 꾹꾹 눌러 담고 싶었다. 날은 덥고, 밖을 돌아다니기도 어렵고, 줌이나 전화로만 대화하는 상황. 사람과 사람이 실제로 만나서 해야 하는 별것 아닌 일들이 있는데, 그걸 못하게 막는 장애물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차기작을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얼굴 보니 좋네>를 보며 괜한 걱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적은 제작비와 제한된 세팅에서도 잘 찍는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알려지면 어쩌나 싶어서.
근데 또 그렇게 됐다. <힘을 낼 시간>도 제작비 규모가 아주 넉넉하지는 않았거든. 넷플릭스 영화도 급하게 들어갔다. 두 달쯤 준비했으려나. 편집도 내년 초까지 끝내야 하는 상황이다. 가을에 공개할 예정이라 시간이 얼마 없다.
겨울 내내 편집실에 있겠네. 척추 건강 챙겨야겠다.
안 그대로 요즘 목이 아파서 MRI를 찍었는데 완전히 일자더라. 거북목도 살짝 있고. 큰일이다. 한시라도 젊을 때 열심히 해야지. (웃음)
열심히 하는데, 그 경로가 좀 독특하다. 본래 ‘피 칠갑 영화’를 준비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인권영화 프로젝트를 제안받은 후 <힘을 낼 시간>을 구상했다고. 전작 <십개월의 미래> 또한 기존에 진행하던 작업에서 방향을 틀어 만들었던 작품이다.
뭔가가 나를 계속 다른 방향으로 데려간다고 해야 하나. 모르겠다. 어릴 적에 생각했던 영화는 훨씬 날카로운 성질이었다. 푹 찌르고 한 바퀴 돌려서 확인 사살까지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 근데 <힘을 낼 시간> 하면서는 더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지고, 조심스러워졌다. 어떤 팬들은 아쉬워하더라. ‘이렇게 따뜻하게 영화를 끝낸다고?’ 나로서는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격한 섬세함이 영화를 감싸고 있다. 이상한 참을성이 엿보여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자세히 듣고 싶었다.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엄청나게 성장한 느낌이긴 하다. 항상 갈림길에 서지 않나. 예를 들어 <십개월의 미래>는 ‘무조건 재밌게 만들자’고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이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한편, <힘을 낼 시간>에서는 ‘실제 이를 경험한 사람들을 보호한다. 해치지 않는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영화를 만든다.’가 가이드였다. 물론 나도 날카로운 영화 만들고 싶지. 현실을 탁 찔러서 보여주는 영화가 갖는 힘이 있다는 걸 알고, 그걸 연출하고 싶은 욕망도 강하다. 그런데도 <힘을 낼 시간>에서는 그렇게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하나씩 내려놓아야 했다. 가짜가 아닌 해피엔딩을 주고 싶어서 고민했고, 어느 정도의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지 많이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결국 뭔가를 더 보여주기보다는 영화가 지녀야 할 태도와 시선, 마음을 우선하기로 했다. 겉보기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놓치는 디테일도 많았는데 그것보다 이 원칙이 우선순위에 있다고 봤다.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보호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려 했다.
왜 이렇게 어른스러운가.
어른이라니. 안 그래도 그거 말하려고 했다. <힘을 낼 시간>으로 인터뷰하면서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라는 질문을 많이 받거든. 나를 어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알지 않나.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은 아니다. 애 같은 어른이 있는가 하면,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도 있다. 케이팝 종사자의 경우, 아주 어른스러운 젊은이들이다. 내가 그들에 비해 어른이라고 느낀 적은 없다.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기에 그 표현에 관해 한 번쯤 짚고 싶었다. 나로서는 어른과 아이, 혹은 세대로 나눠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불편하다. 다 같은 사람인데 나이로 경계를 짓는 일 자체가 바람직한가 싶기도 하고. 결론을 말하자면 난 어른스럽지 않다. 매우 어른스럽지 못하다. (웃음)


어른스럽다는 말의 속뜻은 이렇다.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아직 감독이 대차게 활개 치는 걸 못 봤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쯤 저 욕망을 속 시원하게 터뜨릴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안다. 나도 그걸 하고 싶고. 결국 장르물 안에서 해야 한다고 보는데, 여성 감독이 그 영역으로 진입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실은 이렇게까지 어른스러워야만 하는 현실로부터 조금 벗어난 픽션을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긴 하다. 욕망은 항상 그랬다. 근데 과제처럼 해야 할 일이 계속 주어지는 느낌이다. 내가 봤는데, 내가 들었는데 어떻게 안 만들 수 있겠나. 나도 최선을 다해서 책임지려고 하는 거다.
<십개월의 미래>의 경우, 개인적 경험이 작업의 동기가 됐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반면 <힘을 낼 시간>은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모르겠더라. 원래 작업 노트에 있던 아이템이었나.
그렇진 않은데 한 10년 전쯤에 메모해 둔 적은 있다. 길을 걷다가 너무 우울한 기운에 놀라서 돌아봤는데, 유명한 아이돌이었던 경우가 있거든. 얼마 후 지인이 비슷한 얘기를 했다. 검은 그림자처럼 우울한 기운을 잔뜩 풍기는 사람이 지나가서 봤더니 당시 유명했던 누구더라 하는 얘기였는데, 감상이 비슷해서 신기했다. ‘저 삶은 어떤 걸까?’ 하며 노트에 적어놓았지. 그걸 잊고 살다가 이번에 새삼 떠올렸다. 어쨌든 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항상 하고 싶었고, 인권영화라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청년 단체의 이야기를 접했다. 탈진할 정도로 다들 열심히 사는데, 뭔가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아이돌이 떠올랐다. 일단 그 숫자가 많지 않나. 배우 중에도 아이돌 출신이 많고. 아주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하는 직업인 데다,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로 돌아가는 세계다.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면 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엔 쉽게 생각했던 거다. 체제 안에 존재하는 감정들을 보려고 했던 건데, 막상 취재를 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어두운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노동 착취, 미성년자 인권 등 다양한 문제를 마주하게 됐다. 그러고 나니 안 만들 수가 없었다. 영화가 막 직진으로 가지도 못하고. 결국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친구처럼 지켜봐 주는 영화를 만들게 돼버렸다. 그래야 말할 수 있었다. 말할 수 없는,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은 대부분 모르지 않나. 그만큼 이들은 말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다. 이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거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취재를 성실히 했구나 싶더라. 영화에 등장하는 사례가 매우 구체적이기도 하지만, 실존하는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태도가 내내 느껴졌다.
배우들에게 인물을 피해자로 그리지 말자고 얘기했다. “너희는 너희 삶을 사는 사람으로 그냥 있어 주면 돼.” 배우들이 연기 레퍼런스를 묻는데, 대답을 못하다 전쟁영화를 언급했다. 특히 전쟁 이후,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을 담은 영화가 생각나더라. 취재로 만난 친구들 대부분 이십 대였는데, 얘기를 듣다 보면 꼭 전쟁을 경험한 오십 대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양가감정이 있는 거지. 참전 자체에 프라이드도 있고, 그러면서도 상실감을 느끼고, ‘이게 다 무슨 의미였나?’ 계속 곱씹고, 주변에 사상자도 있고.
별걸 다 겪고 돌아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래서 정말로 험한 것들은 영화에 담지 않았다. 나도 힘들더라. 사회가, 또 우리가 이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매 순간 어려웠다.
한편으로는 주인공 세 명을 통해 보편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가상의 인물이라는 걸 아는데도 이들이 어떤 느낌의 그룹이었을지, 각자 어떤 포지션을 맡았을지 한눈에 딱 그려지더라.
눈에 선하지. 포지션과 성격이 함께 가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거기에 배우 특성이 더해지면서 좀 더 생동감 있는 인물이 된 것 같다. 배우 캐스팅은 항상 세트로 간다고 생각한다. 따로따로 구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어떤 사람이 들어오는지에 따라 전체적인 에너지도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성은 배우와의 두 번째 작업은 어땠나. 생각보다 훨씬 더 진중하고 인내심 있는, 깊은 호수 같은 배우라는 인상을 받았다. 배우의 기질이 반영된 결과겠지만, 감독과 합의안을 찾아가는 과정도 있었을 듯한데.
우리가 대화를 많이 안 나누는 편일 수도 있는데, 영화 콘셉트 자체가 그랬다. 단편 <최악의 친구들>(2009)에서 배우에게 어느 정도 즉흥성을 열어주는 작업을 해봤는데, 그걸 장편에서 꼭 해보고 싶었다. 김선혁 촬영감독과도 얘기가 통했다. <여담들>(2019) 찍으면서도 “우리 다음에 이렇게 또 영화 하나 만들자” 했는데 시간이 금세 흘러버리더라. 내가 이런 얘기를 하니 성은 배우가 시나리오에 관심을 보였다. 어떤 영화를 만들지 궁금했다더라. 얼마 지나지 않아 출연을 확정했다. 서로에게 믿음이 있는 상태인 데다, 때도 잘 맞았다. 성은 배우는 그간 연기하며 노하우를 쌓았고, 우리는 상업 작품이나 꽉 짜인 틀에서 발산하기는 어려운 그만의 에너지를 찾아내려고 했다. 일부러 빗장을 열어준 거다. “여기서는 네 마음대로 해. 카메라가 너 따라갈 거야.” 그럼 성은 배우는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해본다. 한밤중에 트랙을 뛰는 장면에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네트를 이용해서 뭔가 해볼까 싶어요”라고 하더라. 그런 식으로 대충 흐름만 공유했다. 성은 배우는 열어주면 열어줄수록 괴력을 드러내는 배우다. ‘어떻게 열어주지? 어디를 열면 이 사람의 새로운 면이 또 나올까?’ 작업하면서 나도 무척 즐거웠다. 확실히 깊이가 있다. 그 친구야말로 나보다 더 어른스럽다.
현우석 배우와 하서윤 배우가 각각 하이톤과 로우톤을 연기하는데, 최성은 배우가 중간을 다 채운다. 그러다 보니 다른 두 배우도 시간이 지날수록 위아래를 편히 오가며 연기하더라.
배우를 얼마나 믿고 자유를 주느냐. 그게 핵심이라고 본다. 성은 배우는 워낙 테크닉이 좋다. 우석 배우는 처음에는 긴장을 많이 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무슨 실수를 해도 우리는 최상의 것들만 만들어 줄 테니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라고 말해줬다. 그렇게 배우를 풀어주고 서로 신뢰하는 상태에서 작업하는 것이 좋다. 스태프들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믿고 원하는 거 다 해.” 이런 느낌을 공유할 수 있던 것이 이번 작업에서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다.
그 믿음은 어떻게 가능한가. 긴 시간 함께한 이들로 스태프를 꾸리나?
<힘을 낼 시간>은 그런 면도 있다. 음악을 맡은 모임 별, 촬영감독으로 온 김선혁 등 10년 넘게 같이 작업하기를 바랐던, 근데 서로 타임라인이 맞지 않아 기회가 없던 사람들과 작업했거든. 무엇보다 전통적인 영화 스태프 구성과는 좀 다르다. 요즘 친구들은 촬영, 편집, 연출, 조명 다 한다. 그런 ‘올라운더’들이 쫙 들어온 거다. 미술이나 의상으로 결합했지만 각자 영상을 찍는 감독들이었다. 스태프가 적다 보니 힘들긴 했어도, 굉장히 유연하게 또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다음 세대에 영화를 만드는 팀은 다 이런 형태이지 않을까. 현장에서 후반작업까지 아우르는 사람들을 모아 만들었다. 그에 자부심이 있다. 보여주고 싶었거든. ‘적은 예산으로도 우리는 할 수 있다. 돈은 없지만 힘은 있다.’ 뭐 얼마나 보여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꽤 행복했다. 여태 만든 영화 중에서 이렇게 자주 다시 보고 싶은 작품도 없는 것 같다.
비주얼이 훌륭하다. 촬영, 색감, 조도 등이 감각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이 영화 내용과 인물이 놓인 상황을 든든히 뒷받침한다. 실은 예산이 소규모일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가 증명하고 싶었던 거다. 돈 없다고 못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걸 할 수 있는 능력도 있고, 구현할 만한 장비도 갖고 있다. 결국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다. 카메라도 후진 거거든. 렌즈도 스틸 렌즈고, 색 보정도 우리가 직접 했다. 말 그대로 인디다운 인디 영화. 이렇게 해도 우리 영화의 매력은 충분히 드러날 거라고 봤다. 감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끼리는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이다”라면서 했거든. (웃음) 예산이 모자라니 힘들긴 했다. 그래도 잘했지. 지금 아니면 못한다는 마음으로, 같이 여행 가는 느낌으로 작업했다.


제주라는 공간도 적절한 선택이었다. 비행기를 타긴 하는데 해외는 아니고, 도시-육지와는 떨어져 있다. 인물들의 애매한 상황에 대한 비유 같다. 계절과 시간대가 모호한 섬 풍경은 인물들을 자유로운 방랑자보다는 고립을 자처하는 은둔자로 묘사하기도 한다. 근데 영화를 본격적으로 기획하기도 전에 제주를 촬영지로 정했다고. 굉장한 우연으로 이해해야 할까?
우연이라기보다는 영화가 그렇다. 결국 조건들의 모음이라고 본다. 당시 김선혁 촬영감독이 제주에서 1년간 쉬고 있었다. 올해 아니면 같이 뭘 찍을 수가 없겠다 싶어 일단 제주 배경으로 독립영화를 한 편 찍자고 얘기해 둔 차였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받은 과제, 제주에 있는 친구, 영화를 찍어야 하는 시기. 그런 것들 속에서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 처음엔 아무 대책도 없이 계획을 짰는데, 때마침 국가인권위원회 제안이 들어온 거다. ‘좋아, 그럼 제주 배경으로 뭘 하지? 아이돌 친구 셋이 제주로 여행을 가면 되겠네!’ (웃음) 참 로맨틱하지 않은 설명인데, 날 여기로 데려온 길이 그렇다.
“영화는 조건들의 모음”이고, 감독은 그중 무엇을 모을지 선택하는 역할이니까.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다. 당시 상업영화 제안도 있었는데 도저히 못 하겠더라. 로맨스 판타지 장르였거든. 내가 즐기는 장르가 아니다 보니 선뜻 마음이 안 갔다. 지금이라면 모르겠다. <고백의 역사>를 만들며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마음이 열렸거든. 또 <힘을 낼 시간> 덕분에 케이팝 문화에 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이면에 자리한 부정적인 풍경도 목격했지만, 그와 동시에 긍정적인 요소도 많이 발견했다. 로맨스, 사랑, 즐거움. 여기에 큰 힘이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다. ‘결국 남는 것은 이 친구들, 이렇게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것이 우리의 힘이다.’ 작업하며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어서 너무너무 좋다. 누가 오래 가나 보자고.
지난 12월 14일,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가 열린 광장에서 불쑥 <힘을 낼 시간>이 떠오르더라. 수많은 응원봉 사이에 수민, 사랑, 태희를 응원하는 불빛도 있었으면 싶고. 영화는 의도하지 않은 순간일 텐데, 문득 영화와 현실이 맞닿는 것을 느꼈다.
시사회를 12월 3일에 진행했다. 하필 그날 비상계엄령이 선포됐고, 솔직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근데 시간이 지나며 또 다른 의미를 찾게 됐다. 우리도 그냥 뭐 없이, 우리를 믿고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나. 현재 광장에도 비슷한 데가 있다고 본다. 그간 무력하다고 여겨지던 이들이 실은 무력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 현장 아닌가. 묘한 연결을 느낀다. 지금은 그저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이다. 영화 보러 많이들 극장에 와주시면 좋겠다.
<힘을 낼 시간>이라는 제목이 좀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때다.
난 실제 힘이라는 의미로 썼거든. 파워. 사람들이 처음엔 경악했지. 무슨 강연 제목이냐고.
‘세바시’에 출연해서 강연도 하지 않았나. (웃음)
아, 그런 느낌이 싫은 거다. 자꾸 어른 얘기하는 것도 그렇고. 글쎄, 자기부정일 수도 있지만, 어른이라는 위치에서 청춘에게 위로한다? 일단 거기서부터 잘못된 느낌이다. (웃음) 무슨 소리인가. 동시대에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데.

그러고 보면 감독의 작품에는 언제나 젊은이가 등장하고 성장과 고통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성장통’으로 칭하는 순간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성장을 위한 당연한 고통이 되는 것 같아서.
나도 성장통이라는 말 싫어한다. 어쩔 수 없이 성장이나 청춘이라는 태그를 붙여 마케팅하고 있긴 하지만, 거기에 뭔가를 가두고 싶진 않다.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는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쓰고 싶어졌다. 작업하며 마음이 바뀌었다는 걸 느꼈다. 그게 성장이라고 본다. 어릴 적 내가 이 영화를 봤다면 ‘저렇게 물러터져서 어떡해?’ 생각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나의 변화가 좋다.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이 좋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있구나 싶다. 이전에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응원봉도 하나 갖고 싶어지고. (웃음)
일전에 “영화적으로 조금 놀아야 남는 게 있다”고 얘기했는데, <힘을 낼 시간>에서는 어떻게 놀았나. 실험적으로 시도한 부분이 있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즉흥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연기뿐만 아니라, 날씨처럼 통제가 불가능한 요소도 전면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바람 불면 일부러 바람 맞으러 나가는 식이었다. 자연적 요소에 기동성을 바탕으로 한 촬영, 거기서 배우들이 이뤄내는 시너지 등은 확실히 얻었다고 본다. 내레이션의 경우, 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말을 많이 하는 인물들이 아니기에, 그저 보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좀 더 확확 넘어가는 구조를 짜고 싶긴 했다. 본래 훨씬 과감한 누벨바그식 영화를 만들려고 했거든. 결과적으로는 주제를 고려해 톤다운하고, 인물을 계속 지켜봐 주는 영화로 완성했다. 이제 더 놀아야지.
노는 방식도 앞으로 좀 달라질 것 같다. 그간 감독을 튀어 오르고 어긋나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힘을 낼 시간>에서는 껴안고 버텨주는 사람이 됐더라.
그렇게 돼버렸다. 나 튀어 오르고 싶거든? 근데 그것보다 빠른 속도로 껴안는 사람이 돼서 아쉽긴 하다. 마음이 안 좋다는 건 아니고, 더 어렸을 때만 가능한 어떤 도발들을 일찍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그럼 나중에 창피하긴 했겠지만. 뭐, 말은 이렇게 해도 모를 일이다. 계속 새로운 곳으로 가겠지.
수민과 사랑이 속한 걸그룹 러브앤리즈가 섹시 콘셉트로 발표한 노래 ‘시크릿 러버’를 직접 쓰기도 했다. 음악감독과 스태프를 부끄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인터뷰한 걸 봤는데, 사실 중독성이 굉장한 후크송이다.
내가 곡을 썼다기보다는 부른 거다. 모임 별이 자꾸 복잡하고 세련된 음악을 만들어 주더라. ‘안 되겠다. 이거는 내가 나서야겠다. 내 영역이다.’ 생각하고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가사도 최대한 직관적으로 붙였다. 나름 랩 파트도 있고 구조는 갖췄다. 어쨌든 차트에 진입했을 것 같은 노래, 그 설득력이 필요했다. “우~예 우~예” 하는 파트도 모임 별은 되게 싫어했다. 꼭 이렇게 해야겠냐고. (웃음)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박자도 정박으로 넣어달라, 그런 식으로 곡을 만들어 갔다. 가이드만 있고 음원은 없는데, 영화 본 분들이 귀에서 맴돈다며 종종 그 노래를 얘기하더라. 실은 현장에서 이미 감이 왔다. 스태프들이 막 따라 불렀거든. 이 정도면 진짜 대중적으로 괜찮은 거 아닌가 싶더라. 작곡가가 돼야 했었나. (웃음) 음원 공개 여부는 미정이다. 나도 멜로디는 좋아하는데 가사를 즐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거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관객 몇 명 달성할 때마다 한 소절씩 공개할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영화가 가진 맥락 안에서 즐겨주시면 좋겠다.
평소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작업실 사용하나.
작업실 있다. 김선혁 감독이랑 같이 쓴다.

그러면 작업실로 매일 출근하나.
아이가 있으니 그렇게는 어렵다. 작업실은 편집해야 하거나 사람들과 뭔가를 같이 해야 할 때 사용한다. 요즘엔 하루가 시작되기 전, 아침 시간을 작업에 활용한다. 한 7시에서 9시 정도. 그때만큼 정신이 맑을 때가 없더라. 일어나자마자 두 시간 정도 딱 잡아놓고 시나리오든 뭐든 미친 듯이 작업한다. 급하게 디벨롭할 일이 계속 생기니 어쩔 수 없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하며 만든 커리큘럼이 있다. 웃긴 얘긴데, 그 커리큘럼을 내게 적용해서 효과를 좀 봤다. 학생에게 과제를 내듯 내가 나한테 할 일을 주니 반강제로 하게 되더라. 한 달 만에 시나리오 쓰려면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하루에 무조건 몇 신을 쓴다’ 목표를 정하는 건가.
신 단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을 먼저 세운다. 테마와 줄거리 등 확실히 전하고자 하는 것부터 고민하고, 그다음에 구조를 짠다. 그 후 캐릭터를 잡고 시나리오를 쓴다. 어차피 글을 쓰는 건 앞서 말한 원칙을 계속 재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주요 테마와 메시지는 무엇인지, 내가 꼭 지켜야 하는 건 무엇인지부터 정리해야 한다. 안 그러면 글이 산으로 가기에, 이 부분만큼은 목숨 걸고 하는 편이다.
감독이 건축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건축과 글짓기가 비슷한 과정처럼 들린다.
다년간 ‘삽질’하며 터득한 방법이다. ‘하루에 몇 신’이라는 목표로 글을 쓰면 엉뚱한 데로 흘러가기 십상이다. 원칙과 구조를 먼저 잡지 않으면, 나의 테마를 계속해서 확인하지 않으면, 방향을 잃게 되더라.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영화가 대체 무엇인지, 그 정체부터 파악해야 한다. 사실 그걸 몰라도 아이디어는 그냥 떠오르기 마련이거든. 눈앞에 놓인 아이디어의 정확한 의미와 쓰임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글쓰기인 것 같다.
작업할 때 곁에 꼭 두는 것이 있다면.
메모장. 온라인에서는 ‘노션’ 프로그램을 쓰고, 오프라인에서는 손으로 뜯어서 쓰는 메모장을 애용한다. 특히 종이에 글씨를 적고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물로 남는 메모가 아니라 수학 문제 풀듯 끄적이는 거다. 그래야 해결되는 뭔가가 있다.
<고백의 역사>를 통해 직접 쓰지 않은 각본으로 연출을 경험해 봤다. 이 또한 나름의 쾌감이 있을 듯한데, 굳이 비교하자면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인가.
당연히 직접 쓴 각본을 연출하는 것이 좋다. <고백의 역사>는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순 없다고 생각했다. 주인이 따로 있는 영화라고, 그들이 이 영화를 통해 그리고 싶은 것이 있고 난 그걸 구현해 주는 역할이라고 여겼다.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해하며 최대한 그에 충실하려고 했다. 그래도 그 모양 그대로 똑같을 수는 없는 거더라. 나의 색이라는 게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내 것이 됐다. 나의 추억이 아닌 추억들로 가득 찬 영화인데도 애정이 생기고, 재밌고, 내 것으로 다가왔다. <고백의 역사>도 테마를 일찌감치 잡았다. 행복과 즐거움에 관한 영화, 우리에게 아직 순수성이 있음을 기억하고자 만드는 영화. 그렇게 테마를 잡고 나니 거슬릴 것이 없었다. 예전에는 가벼운 것,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퇴행적이지 않나 싶어서. 근데 이번에 작업하며 필요성을 깨달았다. 오히려 이 즐거움과 행복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요새 혼자서 ‘사랑의 뉴웨이브’라고 부르고 있다. 최근 광장을 채우는 문화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새로운 뭔가가 필요한 시기다. 그건 비릿하고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처럼 즐겁고 순수한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세상이 갈수록 가혹하지 않나. 자꾸 갈라서고 싸운다. 지금은 잔인하고 냉혹한 영화를 보고 싶지 않다. 이미 현실에서 수시로 보고 있으니까. 내 욕망은 되려 반대로 향한다. 즐거움과 사랑의 힘을 보고 싶다. 내게 기회가 오길 바라고 여성이자 창작자로서 틀을 깨고 싶기도 한데, 이렇게 가는 길에 빠져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 휴게소인 줄 알았는데 집이었네?’ 하는 느낌이랄까. 나 로맨스 안 좋아하거든. 그런데도 재미를 알고 나니 욕망이 생긴다. 청춘 로맨스 찍으니까 막 어른 로맨스도 찍고 싶고. (웃음)


차기작에선 또 어디쯤 가 있을지 갈피를 못 잡겠다. 진행 중인 작업이 있다면.
<힘을 낼 시간> 시작하기 전에 시나리오를 얼추 써두었는데, 그새 흥미가 떨어졌다. 그래도 거기에서 어떤 요소는 가져오고 싶다. 추리물인데 똑똑한 애가 하나 나오거든. 천재지만 대필 작가여서 크레디트가 없다. 그 설정은 가져가려고 한다. 똑똑한 애를 보고 싶더라. 작용-반작용처럼 흐름이 있는 것 같다. 멍청한 애 만들면 다음엔 똑똑한 애 하고 싶고, 미숙한 거 하면 다음엔 성숙한 거 하고 싶고. 여자들이 제대로 된 크레디트를 갖기 어렵다는 점에서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추리물이라는 장르에 그런 캐릭터를 붙여놓으면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이야 있지만, 물론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얼핏 들어도 어떤 성장기가 그려진다. ‘우리 사회에서 성장기를 보내는 사람’은 감독이 한동안 이어 갈 테마 중 하나 아닌가 싶기도 하고.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을 인간의 원형처럼 생각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 이후로는 가공된다는 의미로 쓴 표현일까?
그때를 가장 열려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상주의가 남아 있는 상태로 현실에 처음 부딪히는 시기. 평생 품고 가는 고민의 원형이 녹아 있는 시기. 그 시기의 매력은 비겁하지 않다는 거다. 아직 뭔가를 찾아 헤매는 상태거든. 시간이 흐르다 보면 포기하고 합리화하지 않나. 나를 지키기 위해서 어떤 개념들이 만들어진다. 그것과 끊임없이 싸우는 과정이 곧 우리 삶이라고 한다면, 그 원형은 십 대와 이십 대 사이의 시기에 있다고 본다.
감독은 그 시기에 어떤 고민을 했나.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은데 당시엔 경험하느라 바빴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뭘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죽기 전에 가장 아쉬움이 없을지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낯선 영역을 경험하느라 분주했고, 그 과정에서 실수도 많이 했다. 흑역사를 남기며 세상과 부딪혔던 시기 같다. 다양한 배경과 특성을 지닌 사람을 접하며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도 받았다. 마음이라는 게 나이 들수록 닫히기 쉬운 것 같다. 점점 주변에 나와 비슷한 사람만 남지 않나. 그렇게 세계가 좁아지는 것이 싫다.
지금도 새로운 사람들 많이 만나고 있나.
일 대 일로는 어렵지. 현장에서 만나고 배우들을 통해 만난다. 어쨌든 세상이든 사람이든 열린 마음으로 보려고 한다. 사회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도 결국 이와 맞닿지 않을까. 서로 좀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자기들끼리만 만나고 자기들끼리만 얘기한다. 내가 자라날 때보다 대화가 부족한 느낌이다. 실수하고, 사과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일이 늘어나면 좋겠다. 지금은 너무 인색하다. 그 인색함으로는 멀리 갈 수 없다. 결국 사랑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랑의 뉴 웨이브!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