맴도는 마음, 마주한 질문
인디그라운드 2024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이강희·장주은·김건희·김로사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Feature / 2024-12-16

영화를 만들게 하는 동력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오래 맴도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누군가는 새로 마주한 질문을 나누고 싶어서, 누군가는 타인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어서 카메라를 든다. 저마다의 이유로 출발한 창작자들은 각자의 고비를 넘기며 나름의 답을 찾아가지만, 그 발걸음 사이에 남는 고민을 한데 모으면 우리의 지도가 그려지기도 한다. 문득, 오늘날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소재와 형식 면에서 눈에 띄는 공통점이 없더라도 이들의 경로를 겹쳐보면 우리의 한 시기를 기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고 완성하며 관객을 만나기까지, 이들이 겪어낸 과정에는 어떤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이 있을까? 인디그라운드에서 진행하는 ‘2024 독립영화 라이브러리’에 선정된 네 명의 감독을 한 자리에 초대했다. <여공의 밤>의 김건희, <모든 가족은 퀴어하다>의 이강희 감독은 각자의 관심사인 공간과 가족을 주제로 첫 번째 장편을 만들었다. <천사와 드라이브>의 김로사, <남쪽 항구에는 여전히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의 장주은 감독은 영화과에 다니며 극영화 작업을 하다 졸업 영화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시작한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 속에는 각자가 마주한 세상을 대면하려는 결심과 나만의 방법을 찾으려는 진심이 함께 일렁인다.

 

 

인디그라운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는 작품의 유통, 배급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각자 찾은 선정의 의미가 있을 텐데.

김로사_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늘 있으니까, 그런 계기가 생긴 게 기쁘다.

이강희_ 나도 영화를 공개할 수 있는 창구가 정해져 있다는 것 때문에 힘들었다. 영화에 담긴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으니까. 어쨌거나 하나의 문이 열렸다고 생각한다. 유통지원금이 있는 것도 좋았다. 다른 일을 하며 영화를 만들다 보니, 제작비를 알아서 충당해야 했고 내 인건비도 책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는 조언을 들었다.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만든 건 아니지만, 계속하기 위해서는 금전적인 부분도 중요하다. 이번 계기로 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됐다.

김건희_ 이전 단편 작업을 했을 땐 영화제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장편을 해보니까 되게 개봉하고 싶더라. 그러려면 이것저것 해야 할 게 많은데, 너무 지쳐있었고 엄두가 안 나서 마음을 접었다. <여공의 밤>은 작년 10월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를 한 이후 1년 정도 상영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영화를 어디서 다시 볼 수 있냐는 거였다. 심지어 지인마저도 영화제 상영 시간을 맞추지 못해 영화를 보기 어려웠다. 이번에 선정되면서 의미가 있었던 건 온라인으로 볼 수 있게 됐다는 거였다.

장주은_ 독립영화 라이브러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다. 또 상영하는 줄 알고 영화에 등장하는 유가족 부모님들한테 언제 말씀드리는 게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영화제 상영을 하며 계속 동행했는데, 멀리서 시간을 내어 오시는 게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잖나. 물론 그분들은 영화가 계속 상영되는 게 좋다고 말씀해 주신다. 일반 관객들과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고. 이번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그런 말씀을 해주셔서 안심했다.

 

기억에 남는 상영 경험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김건희_ 영화제마다 반응이 다른데, 해외에서 상영했을 때의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독일 쾰른 여성영화제에서 상영했다. 한국 관객들은 장면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어 하는 경향이 큰데, 해외에서는 감상을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감독의 의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더라. 공포 영화 같다는 얘기도 들었다. (웃음) 영화가 매우 지역적이라 해외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공통된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강희_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말이 질문 형태로 나오는 게 아닐까? 나도 왜 그럴까 궁금했다. (웃음) 그래도 여성영화제 상영이나 공동체 상영을 하면서, 주제에 관심이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분들이 솔직하게 자기 얘기를 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김로사_ 어쩌면 소감을 말하는 게 쑥스러워서 질문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제주여성영화제에 갔던 경험이 좋게 남아있다. 어떻게든 더 잘 대해주시려는 게 보이더라. 아픈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라서 GV 할 때 계속 울게 되는데, 진행해 주신 분이 같이 울먹이셨다. 그 정도로 영화에 집중해 주신다는 느낌이 들고 애정이 느껴져서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마이크를 직접 들고 말씀하신 관객은 많지 않았지만, 질문이 적힌 포스트잇을 많이 받았다. 나와 아버지의 안녕에 대해 묻거나, 손재주 좋은 아버지가 주로 생활하는 침대 주변에 본인 맞춤형 물건들을 둔 모습을 보고 “아버지만의 나라에서 사는 거대한 거인 같다”라고 평해주신 메모들이 참 좋았다. 아버지한테 보여드리려고 다 가지고 왔다.

장주은_ 나도 감독님처럼 GV 할 때마다 너무 많이 운다. 근데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안 울었다. (웃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했는데, 질문이 많지는 않았다. 질문하더라도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세월호 참사가 주제라서 그랬을 거다. 그런데 한 분이 울면서 소감을 말씀해 주셨다. 본인 언니가 희생자분들과 나이가 같다면서, 언니 생각이 많이 나고 그때 언니가 힘들어했던 것도 기억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말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여공의 밤>
<천사와 드라이브>

관객을 만난다는 건 영화를 통해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일이라는 걸 새삼 생각하게 된다. 이강희 감독은 결혼 제도와 가족의 의미를 탐색하는 <모든 가족은 퀴어하다>를 만들었다. 나눌 이야기가 끝도 없을 주제다.

이강희_ 당시 삶의 가장 큰 화두가 결혼이었는데, 우연히 주변 친구들도 그랬다. 어떤 친구들은 헤테로 결혼을 해서 정말 제도 안으로 들어갔고, 어떤 친구들은 나처럼 결혼에 실패했다고 느꼈다. 어쩌다보니 다양한 상황에 놓인 친구가 많았던 거다. 그런데 하고 있는 고민을 들여다보니 다들 비슷한 물음에서 시작하더라. 결혼이 뭘까? 왜 할까? 그런데 그에 대한 답이 다 다른 게 너무 신기했다. 친구들 각자의 개인사도 재밌었고. 그래서 결혼으로 인해 생겨나는 가족에 대해 더 다뤄보게 됐고, 그러다 나의 원가족 이야기도 담게 됐다.

 

질문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대면하고, 이사를 앞두고 다음 거주지의 형태와 입주 방식을 고민하는 모습도 담았다. 삶의 중요한 시기를 영화와 함께 넘어가 보려는 마음이 느껴진다.

이강희_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중요한 고민이 한꺼번에 닥쳤던 시기였던 것 같다. 원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이라든지,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이라든지. 한편으로는 그런 질문들이 하나하나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 연결돼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한꺼번에 다 같이 생각해야 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 안에서도 막 뒤섞였던 게 아닐까.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강이승이랑이 삼양동 집>(2022)을 연출하기도 했는데, 어떻게 영화를 만들게 됐나.

이강희_ 대학생 때 이것저것 관심이 많았는데, 영화 좋아하는 동기가 영화 동아리를 하자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 그 동기는 지금 영화 일을 한다. 나는 항상 나를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매체를 활용할 수 있을지 많이 탐구했다. 글도 있고 사진도 있는데, 영화도 그중 하나였다. <강이승이랑이 삼양동 집>은 좋아했던 집에서 이사하게 되면서 그곳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만든 실험 다큐멘터리처럼 짧게 만들었던 영화다. 집을 정리하는 시간을 담았다.

장주은_ 어디서 볼 수 있나.

이강희_ 홈페이지에 올려두었다.

장주은_ 진짜 뭘 많이 하신다. (웃음)

 

홈페이지에는 또 어떤 게 있나.

이강희_ 글과 사진.

 

영화에는 ‘퀴어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을 포함해, 다양한 언어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삶의 지향을 그려나가는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영화를 무척 풍성하게 만든다.

이강희_ 일상에서 자주 봤던 친구들의 모습이 많이 담겼다. 항상 해오던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서도 해준 거다. 그게 신기했다. 앞에 카메라가 있고, 이걸로 영화를 만든다고 했으면 분명 떨리는 순간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평소랑 똑같았을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감독이 떨었나보다.

이강희_ 맞다. 처음에는 혼자 인터뷰와 촬영을 했다. 그러다 인터뷰에 집중이 안 돼서 촬영 감독님을 섭외했다. 근데 촬영 감독님 앞에서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려니까 너무 부끄럽더라. 감독님한테 저쪽에 가 계시라고 했다. (웃음) 영화를 기획하면서 모든 인물한테 비슷한 내용을 보여줬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거라고. 그런데 그 안에서 각자 하고 싶어 했던 말이 다 달랐다. 어떤 친구는 남편과 아들이 있는 가족에 대해서, 결혼해서 뭐가 좋은지 얘기하고 싶어 했고, 어떤 친구는 가족 제도에 대해 평소 품었던 의문을 들려줬다. 영화에서는 그들의 한 면만 꺼내 보여줬지만, 가족 제도를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웨딩드레스 입고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 공존하는 것처럼 그 친구들도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이강희 ⓒ이영진

<천사와 드라이브>는 다큐멘터리로 완성됐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김로사_ 영화과에 진학하고도 항상 그 마음은 가지고 있었다. 장애인, 사회적 소수자를 대변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당시에는 어렵게 느껴졌다. 조금 더 공부하고 나이도 먹고 중년쯤 됐을 때 좋은 영화 한 편 만들어서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막상 영화과에 입학하니까 영화의 재미에 빠지기도 했고. 그런데 졸업 영화를 찍을 때가 되니까 혼자 해보고 싶더라.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아버지가 독립하고 싶다는 폭탄선언을 하신 것도 계기였다. 지금 해야겠다, 마냥 미루는 것도 핑계일 수 있겠다 싶었다.

 

아버지의 모습을 기록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였을까? 아버지를 바라보는 감독의 모습도 종종 등장한다.

김로사_ 엔딩 크레딧에서 아버지한테 쓴 편지를 낭독한다. 거기도 있는 말이지만, 아버지는 내게 풀고 풀어도 풀리지 않는 이야기다. 정말 잘 모르겠다.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한데, 그렇게 바라보는 것도 싫다. 멋진 분이니까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내가 아버지를 동정하나 싶어서 죄책감도 있었다. 그런 감정을 정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머리가 조금 컸을 때부터 내내 해왔다. 에세이든 소설이든 뭔가를 쓰려고 하면 항상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면서 내가 이걸 계속 풀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던 것 같다. 그걸 정리하고 싶었고, 그에 대해 기록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카메라에 담긴 가족의 모습이 밝고 유쾌하다. 서로를 다정하게 대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감독이 전면에 등장하는 <모든 가족은 퀴어하다>도 흥겨운 분위기가 깔린다. 가까운 사람들을 촬영할 때 고민했던 지점도 있었을 텐데.

김로사_ 처음부터 너무 진지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 가족의 스토리를 몇 문장으로 정리하면 안타깝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마냥 그런 시선을 바랐던 건 아니다. 집안 분위기가 워낙 유쾌하기도 하다. 장난기도 많고. 남들이 영화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낄지 잘 모르겠더라. 어쨌거나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우당탕탕 귀엽게 잘 살고 있다, 나름대로 희망을 좇으며 살고 있으니, 재밌게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다큐멘터리 작업하는 모든 감독님이 타자를 어떤 시선으로 담아야 하는지 고민하실 거다. 내 일방적인 시선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아버지를 담는 만큼 그런 고민은 계속됐다. 촬영에 진입하기에 앞서 내린 결론은 모든 촬영본을 아버지한테 말씀드리고 편집할 때 수시로 허락을 받는 거였다. 그런데 병원 다녀와서 아버지한테 거짓말했던 상황에 대해서만큼은 말씀드리기 어렵더라. 나중에 구구절절 설명했다.

이강희_ 나도 촬영하면서 그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에 엄청 많은 인물이 나오는데, 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다면 내가 더 물어보지 못해서 그렇다. 인터뷰하면서도 이 질문을 해도 되나 여러 번 고민했다. 그런 경우에는 결국 물어보지 않았다. 분명히 답을 해줄 것 같은데 그러면 편집할 때 쓸 것인지 말 것인지 또 고민하게 될 테니까. 나도 그렇고 인터뷰해 준 친구들도 미래나 사회에 대해서 비관하기보다 긍정하는 면이 많아서 영화에 즐거운 분위기가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등장인물들한테 잔인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어떤 부분을 꺼내서 나의 맥락을 만들었잖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했는데, 너무 긴장돼서 토했다. 친구들이 보다가 뛰쳐나갈까 봐. (웃음)

 

무사히 잘 마쳤나.

이강희_ 다들 좋아했다. 영화에 나오는 자기 분량과 모습에 만족하더라.

 

다른 분들은 본인이 왜 다큐멘터리의 방식으로 주제에 접근하고 작품을 완성하게 됐다고 보나.

이강희_ 친구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고, 자기 얼굴을 보여주고 목소리를 내면서 말하는 걸 너무 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나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편집할 때 되게 어려웠다. 말했듯 내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다뤄도 되나 계속 고민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완성했고, 친구들도 다행히 잘 받아들여 줬다.

김건희_ 고등학생 때 이명박 정권이었고 광우병 파동이 있었다. 그런 것을 포함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그게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후에는 학교에 진학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재개발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공간은 집약적인 기억을 담고 있다. 그게 한꺼번에 사라지는 게 계속 마음에 남더라. 내가 나고 자란 영등포를 중심으로, 공간에 대한 영화를 찍어왔다.

장주은_ <여공의 밤>은 그러한 관심사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궁금하다.

김건희_ 영등포 지역에서 식민지 시기에 강제 동원됐던 여성 노무자분들의 이야기, 그들의 삶과 영등포의 변화를 엮었다.

장주은_ 나도 김로사 감독님처럼 다큐멘터리 작업은 처음이다. 이전에는 영화과를 다니며 극영화를 만들었고, 그 시스템에 너무 치이고 지쳐서 영화를 그만하고 싶었다. 그러다 <남쪽 항구에는 여전히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를 만들게 됐다. 나 역시 혼자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김로사 ⓒ이영진

영화에 등장하는 유가족분들과는 어떻게 만났나.

장주은_ 엄마랑 진도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뵀다. 거기 팽목항이 있는 걸 아니까 한번 가본 거다. 기억관 컨테이너가 여전히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때 만난 부모님들과 잠깐 대화했다. 순범 어머님과는 그래도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수연 아버님은 말이 별로 없으셨다. 그런데 대뜸 몇 살이냐고 물어보시더라. 본인 자녀와 같은 나이인 걸 듣고 조용히 다가오셨다. 그런 게 참 마음 아팠다. 당시에는 영화를 찍겠다는 얘기는 안 했고 그냥 번호를 주고받는 정도였다. 그런데 계속 생각났다. 졸업 영화 찍을 때가 되니까, 뭔가 하고 싶어졌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연락드렸더니 가족협의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 준비해서 피칭도 했다.

 

가족분들 입장에서도 조심스러운 일일 테니까.

장주은_ 올해가 10주기라 방송이나 영화 쪽에서 요청이 많았다고 들었다. 그중에는 무리한 부탁도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편지 쓰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계속 슬픈 표정을 짓고 편지를 써달라고 하는 거다. 그런 게 불편해서 웬만하면 안 하려고 하신다고. 아무래도 내가 자녀분들 또래라서 잘 봐주신 게 아닌가 한다.

 

촬영하며 고민이 많았겠다. 다큐멘터리 작업이 처음이기도 했고.

장주은_ 이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지 생각은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학교 커리큘럼에도 다큐멘터리가 없었다. 그래서 포털에 검색해 봤다. (웃음) 이런저런 글을 읽으며 나름대로 질문지를 준비했다. 그런데 막상 부모님들이랑 같이 진도 내려가는 날이 되니까 굳이 뭔가를 질문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대화나 몸짓에 자녀분들에 대한 그리움이나 슬픔이 다 들어있었다. 내가 뭐라고 그 슬픔을 건드리나 싶었다. 현장 취재 형식의 다큐멘터리는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그 자리에서 들었다. 그래서 인터뷰도 하지 않았고, 촬영 버튼도 무음으로 돌렸다. 최대한 잘 숨어있기가 목표였다.

 

현장에서 답을 찾은 셈이다.

장주은_ 그게 나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준비할 때도 유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를 편하게 느끼시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많이 만났다. 촬영할 때도 다른 준비보다 요리를 많이 해갔다. 5인분의 유부초밥이랑 내려가서 해드릴 카레를 준비했다. 소풍 가는 것처럼.

이강희_ 1박 2일이었나?

장주은_ 2박 3일이다. 짧은 기간이라 더 신경을 많이 썼다.

 

영화 보시고는 어떤 반응이었나.

장주은_ 순범 어머니랑 수인 어머니는 연극도 계속하셨고, <장기자랑>(이소현, 2023)에도 나오셔서, 영화제 상영에 조금 익숙하시다. 그런데 수연 아버님은 그런 경험이 완전히 처음이라 엄청나게 부끄러워하셨다. 물론 세 분 다 부끄러워하시긴 했다. 딱히 코멘트는 안 해주셨고, 고맙다며 나를 세게 안아주셨다.

<모든 가족은 퀴어하다>
<남쪽 항구에는 여전히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김건희 감독은 <청파동을 기억하는가?>(2016), <당산>(2017) 등 꾸준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왔다. 앞서 작업의 중심에 공간이 있다고 했는데, <여공의 밤>을 만들게 된 질문은 무엇인가.

김건희_ 어릴 때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 옆이 다 공장이었다. 영등포 일대가 전부 공장지대였다 보니까 늘 무서우면서도 궁금했다. 항상 개가 지키고 있고, 남자 어른들이 저리 가라고 말하는 그곳에 도대체 뭐가 있나 싶었다. 평소에 리서치하는 걸 좋아하는데, 자료를 찾다 보니까 과거에는 그곳에 여성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나한테는 굉장히 남성 중심적인 공간으로 느껴지는데 말이다. 그 많던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가고 남성들만 남았는지 의문이 생겼다. <당산>은 좀 더 사적인 물음에서 시작한 중편 분량의 다큐멘터리여서 그 질문까지 가닿지는 못했다. 그걸 끝내고도 계속 마음이 남아서 영등포에 있었던 그 여성들을 무작정 찾으러 다녔다.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했다고 언급하던데.

김건희_ 서울대 고문헌 자료실에서 찾은 자료다. 식민지 시기에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집합시켜서 찍은 사진, 피혁 공장, 가죽 공장 내부에서 여성들이 일하고 있는 사진들이 남아있더라. 그게 되게 강렬했다. 한편으로 내가 계속 가지고 있던 불안도 이걸 시작하게 된 이유다. 공간에 남은 기억의 집적, 그게 주는 감각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당산>의 시작이기도 했고.

 

자료는 어떻게 찾나.

김건희_ 그냥 계속 찾는 거다. 한문으로도 검색해 보고. 그렇게 타고 들어가다 보면 연관 이미지가 뜨는데, 그걸 또 계속 타고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고문서만 경매하는 사이트도 나온다. 그런 식으로 찾아 나갔다.

 

그러다 당시의 기억을 간직한 여성들을 찾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90세가 넘은 분들이다.

김건희_ 정말 맨땅에 헤딩했다. 도청, 시청에 다 전화를 돌렸고, 구별로 주민센터에도 연락했다. 정말 오래 걸렸다. 제작 기간이 5년이다. 전혀 관리가 안 돼 있더라. 유일하게 정리해 놓은 게 경기도청이다. 경기도에서 강제 동원된 분들을 조사하고 구술 자료를 기록해 놓았다. 그런데 담당자를 몰라서 전화가 돌고 돌았지. 그렇게 여섯 분을 알게 됐고 인터뷰도 진행했는데, 그러니까 영화가 너무 넓어졌다. 강제 동원도 도시와 지방의 경험이 굉장히 달랐고, 그렇게 넓어지다 보니 나중에는 영등포로 이야기가 돌아올 수 없었다. 가편이 4시간 넘게 나왔다. 그걸 잘라내는 게 정말 힘들었다. 결국 그분들의 이야기가 한 작품에 담을 수 없는 사이즈라는 걸 인지하고 두 분만 담게 됐다. 워낙 고령이어서 내가 찾아뵙는 것 자체가 그분들에게 노동이고 에너지를 쓰는 일이라는 점도 어려웠다.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서 조급한 마음도 있었고.

 

영화는 아카이브 된 기록들, 현재 남아있는 텅 빈 공간들도 유심히 바라본다. 좀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서 공포영화 같다는 감상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기록된 것과 기록되지 않은 것 사이를 헤매는 과정이 고민스러웠을 것 같다.

김건희_ 남아있는 게 너무 없어서 정말 어려웠다. 레퍼런스로 삼을 만한 영화도 없더라. 여태 이걸 왜 아무도 다루지 않았나 싶었다. 영화는 시각 매체여서 보여줘야 하는데, 없어진 것, 보여줄 수 없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게 연출적으로 애를 먹었던 부분이다. 일단은 닥치는 대로 찍었다. 촬영할 때도 계속 철거 뉴스가 올라올 만큼 언제 없어질지 몰랐으니까. 영등포는 워낙 번잡한 곳이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너무 많이 얽혀있는 공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잘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자체가 내게는 한국의 역사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이제는 서울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기계 공구상가 사장님도 만나고, 강제로 끌고 온 여성 노동자를 묵게 한 모텔도 촬영하게 됐다.

김건희 ⓒ이영진

각자 작업하면서 고민을 나눌 동료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저마다 외로운 시간을 보냈겠다는 생각도 든다.

장주은_ 다큐멘터리가 처음이라 피드백을 많이 받고 싶었다. 학교 편집실에서 작업했는데 아무도 피드백을 안 해주더라. 아무래도 좀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다 배급사인 시네마달을 만났고, 김일권 대표님이 유일하게 피드백을 해주셨다. 꼼꼼한 감상을 남겨주시면서 컷 두 개만 바꾸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게 너무 쓸 게 없어서 그냥 넣었던 컷이었다. 수정해 보니 정말 좋아지더라. 촬영할 때는 친구 한 명이랑 내려갔다. 카메라 두 대, 마이크 하나. 완성하고 보니 사운드도 앵글도 부족한 게 많았지만 기술적인 것보다 앞서는 게 있다는 걸 느꼈다. 다큐멘터리를 공부하는 시간이었다고 느낀다.

김로사_ 영화과를 다녔지만 다큐멘터리로 졸업한 경우가 나를 제외하고 거의 없다 보니 영화 만들 때는 동료가 별로 없었다. 한 학기 내내 이 영화 들어가고, 저 영화 들어가고 물려서 하니까 다들 너무 바빴고. 한편으로는 피드백을 부탁하려고 해도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 다들 위로만 해주려고 할 것 같더라. 교수님이 잘 잡아주셨고, 나도 시퀀스를 글로 정리해서 배치를 옮겨보며 혼자 열심히 피드백하려고 했다.

이강희_ 마찬가지다. 만들면서 생기는 고민을 나누거나 부탁할 사람이 없었다. 구성안을 처음 써보니까 줄글로만 적게 돼서 그 부분도 어려웠다. 그나마 편집 감독님이랑 대화를 여러 번 했다. 의지를 많이 했다.

김건희_ 동료는 기쁨과 고통의 원천인 것 같다. 쉽지 않다. (웃음) 학교에 함께 다녔던 친구들한테 촬영을 부탁했는데, 워낙 기간이 길어서 한 사람이 계속 찍기는 어려웠다. 최대한 여성분들과 작업하고 싶었지만 여성 촬영감독이 많지는 않았다. 남성 촬영감독들과 작업하면서는 설명을 많이 하고, 레퍼런스 이미지도 열심히 준비했다. 1년 정도 혼자 편집하다가 친구한테 SOS를 쳤고, 둘이 6개월을 했다. 그러다 둘 다 까막눈이 됐을 무렵, 시네마달 대표님을 만나서 셋이 회의하기 시작했다. 편집 캠프 같았다. 동료와 함께하는 게 재밌고, 같이 뭔가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 건 그때였다.

장주은_ 혼자 편집할 때 너무 외롭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혼자 하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외롭고, 같이 하면 든든하고 의지가 되지만 짜증 날 때가 있고. (웃음)

 

여러 경험을 하며 각자 산 하나씩 넘은 느낌이다. 앞으로의 작업은 어떤 규모나 방향을 꿈꾸고 있나.

장주은_ 처음 만들어본 다큐멘터리지만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방식이라면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졸업하는 시기에 영화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들었는데, 다시 길을 찾은 것 같다고 할까. 그전에는 내가 왜 영화를 하는지 몰랐다. 어떤 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 방향성을 찾았다. 나한테 예술의 목적은 위로인 듯하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극영화는 지금이 아니면 안 하게 될 것 같아서,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김로사_ 아빠가 있는 집에서 편집해서 그런지 외롭지는 않았다. 촬영하러 혼자 돌아다닐 때도 그랬다. 세상에 나오지 않은 극영화를 연출한 적이 있다. 스태프들한테 피해를 끼치기 싫어서 빨리빨리 결정하곤 했는데, 항상 후회가 남더라. 나는 뱉은 말도 후회하는 경우가 많고, 생각도 천천히 정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다큐멘터리가 내 성향과 잘 맞는다고 느낀다. 계속 이렇게 소규모로 찍어가고 싶다. 다만 이번에는 렌즈가 붙어있는 캠코더로 찍었기 때문에 영상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촬영 공부를 좀 더 하려고 한다.

김건희_ 혼자 하고 싶은 작품도 있고, 같이 하고 싶은 작품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하면 좋을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이번에는 첫 장편이라 시행착오가 많았다. 특히 프리 프로덕션을 길게 못 한 게 후회된다. 빨리 찍어야 한다는 마음이 너무 컸다. 물론 동료들한테 의지할 수도 있겠지만, 갈피를 잃을 때 방향성을 찾아야 하는 건 나니까 다음에는 그 과정을 충분히 거치고 싶다.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계속 찾아가는 일도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강희_ 영화를 만드는 모든 과정이 재밌었다. 다만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도 잘 알고 싶다.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만들 때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있는 동안 영화는 계속 만들 것 같다. 지금은 제주 무속 신앙과 신화를 젠더 개념을 둘러싼 갈등과 묶는 작업, 그러니까 제주 신화를 퀴어하게 해석하는 작업을 생각하고 있다.

장주은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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