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엔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한다. 머리도 편하게 올리고 다닌다. 오늘은 <3학년 2학기>(이란희, 2024) 인터뷰로 만나는 자리이니 나름 신경을 썼다. 유이하는 영화 속 창우처럼 단정하게 입고 왔다며 더플코트 소매를 매만진다. 직업계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교실은 헐렁한 모양새다. 크고 작은 회사로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들이 대부분이라서다. 유이하가 생애 첫 주연으로 만난 인물, 열아홉 창우도 교복 대신 작업복을 입고 공장에 서 있다. 나이에 비해 일찍 철 들었으나 또 나이답게 어리숙한 이 소년은 아직 변변한 서명이 없어 이름을 쓴다. 계약서에, 동의서에, 조의금 봉투에.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공간에서 어떻게든 제 몫을 다하려 애쓰는 창우의 얼굴은 어지럽게 흔들리면서도 조금씩 단단해져 간다. “저를 좋게 봐줄까요?”라고 조용히 묻던 창우처럼 유이하도 제 앞에 놓인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보건교사 안은영> 단역을 시작으로 <지금 우리 학교는> <무빙> 등을 거쳐 <3학년 2학기>에 도착한 지금, 유이하는 “내가 어떻게 커 나갈지” 궁금하다.
오디션 경쟁률이 꽤 높았다고.
정확히 모르겠는데 오디션 전체 참가자가 거의 4천 명 이상이라고 들었다. 당시 난 필름메이커스에서 공고를 발견하면 닥치는 대로 지원하던 참이었다. <3학년 2학기>도 그중 하나였는데 운 좋게 여기까지 왔다. 오디션에서 감독님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예상이 아예 안 되더라. 웃지도 않으시고. ‘날 호기심 있게 봐주시는 건가? 저 눈빛은 뭐지?’ 오디션을 4차까지 봤다. 맨 처음에는 조감독님과 카메라 테스트하고 간단히 대화를 나눴다. 그다음부터 감독님과 대본 일부를 리딩했다. 4차 오디션을 진행할 무렵엔 캐스팅 후보가 어느 정도 추려진 상태여서 다른 배우들과 함께 리딩을 했다. 성민 역을 맡은 김성국 배우랑 같이 들어갔는데, 그때는 감독님이 좀 웃으셨다. 만약 오디션에 합격한다면 우재 역할을 맡을 줄 알았다.
우재는 장난스럽고 약간 반항심도 있는 인물이다.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 되는데?
애초 시놉시스에선 우재가 안경도 쓰고 약간 캐릭터 있는 친구로 나왔다. 외양이 비슷한 데다 이전에 내가 캐릭터 연기를 꽤 했으니 잘하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마지막 오디션에서도 감독님이 내게 우재 역을 많이 시켰고. 실은 어떤 이유로 나를 창우로 캐스팅하셨는지 모르겠다. 감독님은 우재 역의 양지운 배우를 발견하면서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고 하셨다.
촬영장에서 만난 이란희 감독은 어땠나.
이 질문이 나올 것 같아서 미리 생각해 봤는데, 디렉팅 관련해서 기억나는 게 딱히 없더라. 감독님께 여쭤볼까 하다가 그건 아니다 싶어 다른 친구들한테 물어봤다. 근데 다들 비슷했다. 현장에서 집중하느라, 또 자기 연기 신경 쓰느라 바빠서 기억이 안 난다고. 돌이켜보면 난 연기하는 그 순간에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 한 것 같다. 감독님은 연기를 세부적으로 지시하기보다는 본인이 그리는 영화의 흐름은 이렇다는 식으로 전체를 말씀하시는 스타일이다. 그 느낌을 파악하려고 감독님 전작 <휴가>(2021)를 열 번 넘게 봤다.


열 번 넘게 본 소득이 있던가.
그냥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상상했다. ‘이 배우는 왜 이렇게 연기했을까? 여기서 감독님은 뭐라고 하셨을까?’ <휴가>에 출연한 김아석 배우가 <3학년 2학기>에도 나오고 나랑 친구다. 걔한테 물어보고 싶었다. 감독님 디렉팅을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해야 하는지. 근데 왠지 반칙하는 느낌이라 끝까지 안 물어봤다. 혼자 해보자. 감독님을 100% 믿고 가자. 그렇게 마음먹고 촬영장에 들어갔다.
고지식한 데가 있네.
창우는 그런 애 같더라. ‘창우라면 아석이한테 분명히 안 물어봤겠지? 나도 묻지 말자. 혼자 해결하자.’
실제로 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시나리오가 마냥 낯설진 않았을 듯하다.
난 제빵을 전공했다. 고교 시절 기억과 느낌을 들고 오려 했는데, 이것도 하나하나 상세하게 떠오르지 않더라. 그래도 최대한 그 시기에 배우고 겪었던 것들을 담아내려 했다. 솔직히 <3학년 2학기> 찍으면서 뒤늦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당시엔 완전히 다른 세계로 여겼거든. 공부하고 수능 보고 대학 가는, 그런 사람들은 나와 전혀 다른 세상에 있다고 느꼈다. 인문계 다니는 애들이 부럽다거나 싫지도 않았고, 당연히 수험생에게 모든 관심과 집중이 쏠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근데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그제야 누군가는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겠구나 했다. 몰랐지만 어렸을 적에 나는 일정 부분 포기한 상태였던 것 같다. ‘그래, 수능일에 나라가 흔들릴 정도로 소란스러운 게 맞지. 쟤네 열심히 노력했잖아. 난 공부 안 했잖아.’ 실은 나도 그랬는데, 나도 공부하고 취업하려고 애썼는데. 같은 청소년인데도 동일 선상에 놓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를 찍을 때보다 지금 좀 더 시야가 확장됐다고 느낀다. 영화제를 통해 다른 분들의 경험을 들을 기회가 많았거든. 그 시절 내가 있던 세상이 평등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졸업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됐다.
개봉하면 모교에서 ‘선배와의 만남’ 같은 행사라도 열어야겠다. 당시엔 왜 제빵을 선택했나.
중학교 다닐 때 부모님이 권유하셨다. 공부에 흥미도 없고 잘하지도 못하다 보니, 부모님이 요리든 뭐든 기술을 배우는 건 어떻겠냐고 하셨다. 사는 곳 근처에 제빵 학교가 있어서 자연스레 택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물 흐르듯이 4년을 배웠고 군대에 갔다. 전역했는데 빵 만드는 일을 또 하고 싶지는 않더라. 일용직 아르바이트하며 하루하루 지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면 무슨 의미가 있지?’ 그 무렵 현수막 제작하는 일을 했는데 익숙해지니 시간이 참 안 갔다. 같이 일하는 형들도 마찬가지라 휴대전화로 영상을 틀어놓고 일하더라. 나도 드라마나 보면서 해야겠다 싶어 한 편 보기 시작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드라마가 재밌었고 배우들이 궁금했다. ‘저 사람들은 평소에 어떤 얘기할까? 저기서 같이 대화하면 어떤 기분일까? 촬영장 바깥에서는 무슨 생각하며 살까?’ 그러다 영화도 찾아보고 하면서 호기심이 커졌다. 이십 대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연기에 처음 관심이 생겼던 거다.

당시 재밌게 본 드라마는 뭐였나.
<육룡이 나르샤>(SBS, 2016)였다. 볼수록 사람이 궁금해지더라. 드라마에서는 서로 미워하고 욕하고 죽이고 그러는데, 분명히 촬영을 마치면 다른 모습일 것 아닌가. 웃으면서 대화하고 놀기도 하고. 뭔가 참 멋있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일상을 어떻게 보낼지가 제일 궁금했고.
연기는 뒤늦게 뛰어들기 어려운 영역이다. ‘내일부터 빵을 만들어 보자!’ 할 수는 있어도 ‘내일부터 연기를 해보자!’ 마음먹기는 쉽지 않을 듯한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나한테는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빵이든 연기든. 그러니까 굉장히 거대한 도전으로 생각하지는 않았고, 그저 직접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매일 같은 일하며 시답잖은 얘기만 하는데, 형들이랑 어제도 오늘도 힘들다는 말만 하는데, 저 사람들은 사는 게 어떨까? 재밌을까? 오히려 연기가 가장 접근하기 쉬운 영역이었다. 연출, 촬영, 조명 등 다른 분야는 실제로 일을 하려면 오랜 시간 배워야 하니까. 부모님도 흔쾌히 허락하셨다. 내 입으로 “이거 해보고 싶어요”라고 말한 게 나이 스물다섯 넘어서 처음이었거든. 원하면 해보라고, 대신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곧장 서울로 와서 아르바이트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무엇을 시도했나.
네이버에 ‘연기학원’ 검색해서 제일 상단에 뜬 학원을 찾아갔다. ‘여기 다니면 나도 배우가 되겠구나!’ 하고. (웃음) 1년 정도 다녔더니 학원을 나와야 하는 때가 오더라. 더 다닐 반은 없는데 아직 배우라고 할 수도 없었다. 막막해서 주변에 물어보니 친구들이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고 했다. 나도 대학 들어가서 또 배우면 되겠구나 싶어 6개월 후 명지전문대에 입학했다. 근데 거기도 내가 생각한 세상은 아니었다. 동기들은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다가 나도 따라서 프로필을 돌리기 시작했다. 처음 연락이 왔던 작품이 <보건교사 안은영>(넷플릭스, 2020)이다. 오디션 보고 고정 단역으로 참여하면서 비로소 현장을 경험했다. 계약서도 처음 써봤다. 종이 두 장을 나란히 놓고 간인하는데 설레더라. 아직도 집에 그 계약서를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이후 학교는 바로 관뒀고, ‘앞으로 난 이거 한다!’ 하며 계속 오디션에 도전했다.
의외로 행동이 빠르다. 연기하겠다고 결정한 다음부터는 별로 망설임이 없었나 보네.
생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깊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바로 선택했다. 생각이 많아지면 안 될 이유만 자꾸 생기거든.
<보건교사 안은영> 현장은 어땠나. 배우와 작품을 둘러싼 궁금증이 해소됐나.
일단 감독님이 궁금했다. 현장이 바쁜 데다 감독님 주변에는 사람도 워낙 많다 보니, 우리 같은 단역들은 쉽게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늘 먼저 다가와서 인사해 주시는 걸 보며 신기했다. 물론 감독님을 붙잡고 얘기할 순 없었지만, 다른 스태프들과 대화하며 현장의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정유미, 남주혁 선배님 연기하는 것도 계속 숨어서 지켜봤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딱 집중해서 하는구나. 어떻게 가능하지? 무슨 생각하며 연기하는 거지?’ 나중에 선배님들 인터뷰 대부분을 찾아 읽었다. 감독님과는 후시녹음 하면서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여유가 좀 있을 때라 궁금한 거 다 물어봤다. 감독님은 어느 감독 좋아하시냐, 어떤 영화를 많이 보셨냐, 평상시에 어떤 책을 읽으시냐, 배우랑 어떻게 소통하시냐, 어떤 배우가 예뻐 보이냐 등등. 사실 감독님 인터뷰도 이미 많이 찾아봤지만. (웃음)

경험이 아주 많지는 않은 상태에서 <3학년 2학기> 주연을 맡았다. 무엇을 준비했는지, “감독님을 100% 믿”는 것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았으니 준비를 정말 열심히 해서 촬영장에 갔다. 탈의실에서 성민이랑 대화하는 신이 첫 촬영이었다. 나름 준비한 대로 연기해서 ‘됐다’ 했는데, 감독님이 모니터링을 해보라고 하시더라. 솔직히 감독님이 무슨 생각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한 번 다시 해보자고 하셔서 했는데, 여전히 모르겠고. 감독님이 원하는 느낌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일단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라고 하셔서 더 감정을 쏟았다. 소리도 지르고, 가방도 뺏어 던지고, 울기도 해보고. 그러다 마지막에 감독님이 “하고 싶은 거 다 했으면 이번엔 내가 얘기하는 대로 한 번만 해달라”고 하셨다. 속상하고 화나는 거 마음으로만 간직하고 담담히 연기해 보라고. 그렇게 그 신을 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큰일 났구나 했다. 내가 준비한 모든 게 아니었구나. 다 갖다 버려야 하는구나. 그러면서 작품을 점점 파고들었고 감독님이 생각한 창우를 구현하려고 애썼다. 감독님이 나를 배려하며 기다려주는 게 느껴져서 스스로 더 조바심이 났던 것 같다. ‘빨리 알아내야 해. 빨리 보여줘야 해.’ 마음이 급한 탓에 사실 캐릭터에 관해서는 많이 고민하지 못했다.
사실 그게 다 고민 아닌가.
그러네, 지금 말하면서 깨달았다. 다 고민하는 과정이었구나. (웃음) 돌이켜보면 내 상태가 창우와 닮았던 것 같기도 하다. 전혀 모르는 세계에 입장을 해버렸고,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했다. 배우로서도 인물로서도 마음이 분주했다. 배우느라 바빴다. 애초 연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도 감독님이 하는 말, 눈빛, 태도 같은 걸 하나하나 기억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감독님을 온전히 믿게 됐고, 감독님이 원하는 바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심 안도했다. ‘내가 노력했던 게 헛된 일은 아니었구나. 누워서 천장 보며 생각했던 게 영 쓸모없지는 않았구나.’ 자기 암시를 계속했거든.
외웠던 문장 같은 게 있나.
“말하는 대로.” 내 인생의 모토다. 어차피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니까, 그렇게 흘러갈 거니까 좋게 말하자. 내가 원체 단순한 사람이라 그런지 “감독님을 믿자” 하니까 진짜 믿게 되더라. 감독님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 함께 연기하는 친구들 모두 믿으며 연기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시상식에서도 유재석과 이적이 부른 노래 ‘말하는 대로’를 언급했다.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흔들릴 때가 많았다. 모든 일이 그렇듯 이 길도 마음처럼 안 되니까. 그때마다 그 노래가 힘이 됐다. 이상하게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그리로 데려가더라. (웃음) 노래도 나오고, 유재석 님이 방송에서 말했던 내용도 뜨고. 어느 순간 머릿속에 가사가 박혀버린 것 같다. 내가 뇌과학에도 관심이 많은데, 사람은 뭔가를 해야겠다고 말하는 순간 무의식 속에 그 문장이 명령어처럼 들어와서 그걸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는다고 하더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수상 소감으로 그 얘기를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내가 또 언제 상을 받을까 싶어 용기 냈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유재석 님한테 늘 고마웠던 것 같다. 그분이 말하고 보여주는 것들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늦게 연기를 시작할 때도, 대학을 그만둘 때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딱히 갖춘 것은 없었지만 “나는 내 길 갈 거야. 난 연기할 거야.” 말하고 다녔는데, 그러길 잘했다. 난 지금 만족한다.
말에는 힘이 있으니 머지않은 미래를 소리 내어 그려 본다면.
이정은 선배님이 인터뷰에서 그러시더라. 김혜자 선생님과 연기할 때 아무것도 안 하고 눈만 쳐다봤는데, 서로 얘기를 나누며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멋있더라. 그렇게 느낄 수 있게 연기하는 김혜자 선생님도 멋있고, 그걸 느끼는 이정은 선배님도 멋있고. 나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현장에서 만나는 이들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배우. 연기하면서든 그 외 상황에서든 상대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배우.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아니다. 닮고 싶은 선배님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난 한참 멀었다. 자주 말하며 노력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