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흥정
<한 채> 허장·정범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4-11-21

둘은 늦깎이로 입학한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영화학과 강의실에서 만났다. 기획 개발 당시 아이디어를 발표했는데 겹치는 구석이 은근히 많았다. 허장 감독은 무연고 사망을, 정범 감독은 전세사기와 위장 가족을 다뤘다. 말하자면 둘 다 사회 문제에 안테나를 세웠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골치 아픈 일들에 자꾸 마음이 갔고,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화면 중앙에 데려오고 싶었다. 그렇게 정범과 허장은 <한 채>를 짓는 일에 합심했다. 변변한 주거지 없이 거리를 헤매는 문호(임후성)와 지적 장애가 있는 고은(이수정) 부녀, 낮에는 택배 배달하고 밤에는 대리운전하며 쉴 틈 없이 살아도 반지하를 벗어나지 못하는 도경(이도진)이 그 집에 들어온다. 그들의 계획은 위장결혼으로 신혼부부 특별공급 아파트를 분양받는 것. 하지만 여태 그러했듯 세 사람 앞에 놓인 삶은 원만하지도 완만하지도 않다. 카메라는 세간의 규율과 논리를 등진 채 가파른 길을 걷는 인물들을 끈질기게 뒤쫓는다. 의심하면서도 나란히 누워 잠들고, 배신했다가도 무언의 약속을 주고받는 관계. 허장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공동체의 진화다. 문호는 고은에게 밥 먹으라는 말을 평생 반복하며, 일터로 나가는 도경에게 기어코 도시락을 쥐여주며 생존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문호가 없는 집에서도 고은과 도경은 마주 앉아 아침밥을 먹는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입속으로 들어가는 밥은 단지 배를 불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 달고 살던 허기를 채운다. 집 한 채라는 공간을 매개로 공동체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탐구한 두 감독은 “결국 그 집을 채우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름부터 오래된 콤비 같다.

허장_ 본래 쓰던 이름이 있는데 개명했다. ‘허’가 아버지 성이잖나. 어머니 성인 ‘장’도 호적에 등록하고 싶었다. 이렇게 바꾸면 어머니도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2~3년을 반대하셨다. 여성스럽지 않고 부르기 쉬운 이름도 아니라며 불편할 거라고 하시더라. 지금도 집에서는 옛 이름으로 불린다. 정범 감독이나 나나 두 글자 이름을 써서 그런지 오해하는 분도 꽤 많다. 이름 특이하다면서 혹시 둘이 부부냐 묻기도 하고. 그런 말 들으면 나만 민망해한다. 결혼하고 아이도 있는 정범 감독은 무덤덤한데. 솔로 멘탈과 유부남 멘탈은 좀 다른가 싶다. (웃음)

정범_ 난 성을 떼고 이름만 쓰는 거다. 원래 이름은 박정범이다. 

 

<한 채>에서 연출과 각본은 공동으로 진행했고, 프로듀서는 허장 감독이, 촬영은 정범 감독이 겸했다. 주요 역할을 둘이 전부 해결한 터라, 웬만큼 경험치가 쌓인 관계일 거라고 봤다. 

허장_ 대학원에서 처음 만난 사이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작업을 경험하며 한 가지 다짐했다. ‘언젠가 내 작품을 하게 되면 제작 시스템을 압축적으로 꾸려야지.’ 예산 집행하는 과정에서 피디가 연출자랑 방향이 안 맞으면 그거 의견 맞추느라 한세월이 간다. 촬영감독과 연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시간, 에너지, 돈을 굉장히 절약했다. 다른 누구 말고 우리 둘만 잘하면 됐거든. (웃음) 물론 서로 속내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둘 다 장편영화는 처음이었고 도전 정신으로 임했다. 나쁘지 않았던 선택 같다. 소통 방식에서든 제작 과정에서든 컴팩트함을 추구했다. 애초 작품의 기획 개발부터 함께했기에 자연스럽게 협업을 익힌 것 같기도 하다. 

정범_ 허장 감독은 피디 출신이다. <한 채> 피디를 굳이 다른 데서 찾을 이유가 없었다. 한편, 난 대학원에 진학한 다음 촬영을 독학했다. 내가 연출한 단편뿐만 아니라, 동기들 단편까지 총 5편을 찍었다. 교내 커리큘럼 자체가 촬영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공간 에세이 찍어와라, 인물 에세이 찍어와라, 하는 식이거든. 교수님은 연출 전공생에게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시했고, 그 과정에서 촬영에 점차 흥미를 붙였다. 내가 촬영한 걸 보더니 허장 감독이 “<한 채>도 네가 직접 찍으면 좋겠다” 하더라. 

허장_ 작업 초기에 촬영감독을 따로 구할까 싶어 아주 잠깐 알아보기는 했는데, 얼마 안 가서 정범 감독으로 결정했다. 정범 감독이 촬영을 즐겨하더라.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느껴져서 좋았다.

 

촬영에 영화의 정체성이 묻어난다. 콘셉트를 정하는 과정에선 어떤 대화를 나눴나.

정범_ 공간 자체가 인물을 가까이 잡을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우리가 항상 이야기했던 것 중 하나가 인물이 프레임을 꽉 채웠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래야 공간이 비좁아 보이면서 문호, 도경, 수정이 비좁은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로 보일 테니까. 정갈하게, 깨끗하게 찍으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덜 담길 거라고 봤다. 다소 투박할지언정 현장 느낌을 최대한 드러내려 했다. 한편, 영화 속 포도 농장처럼 공간을 보여주고 싶은 장면에서는 인물을 더 멀리 잡았다. 어떤 공간인지 알려주고, 그런 공간 안에 인물이 존재한다는 걸 나타내려고 했다.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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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에서 쉽게 만나지 못한 배우들을 주연으로 기용했다. 임후성 배우는 연극 연출가이자 시인이고, 이수정 배우는 주로 상업영화와 드라마에서 조단역을 맡아 왔다.

정범_ 일단 임후성 배우는 내가 속한 극단의 연출이다.

 

극단 피오르에 같이 있나. 본래 연기를 했던 건가.

정범_ 연기하러 극단에 들어갔다가 임후성 연출님을 만났다. “야, 넌 연기가 아니라 연출해야 해.” 연출님 말을 듣고 실제로 얼마간 극단 조연출로 있었다. 근데 코로나19 터지고 나서 극단 상황이 악화했다. 아예 사무실을 빼야 했고, 공연도 할 수 없었다. 이제 각자도생 해야 한다며 헤어지는데, 연출님이 영화 연출을 공부해 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실은 그때까지도 난 계속 배우를 꿈꾸는 상태였다. 오죽하면 대학원 면접에서도 진학 이유를 묻는 교수님한테 “연기를 더 잘하기 위해 연출을 공부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니까. 그런데도 뽑혔고, 대학원에서도 “넌 연기 말고 연출해라”라는 말을 들었다. (웃음) 

 

생각보다 긴 인연이네. 대학원에서도 영화를 찍으며 직접 연기할 마음이었나.

정범_ 원래는 그러려고 했는데 연출에만 집중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관뒀다. 근데 단편을 찍다 보니 연출이 생각보다 꽤 재밌더라. 도경 역의 이도진 배우는 내 첫 번째 단편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학교에서 작품 기획안을 공유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도진 형이 내 발표를 흥미롭게 봤다고 하더라. “그럼 같이 한번 해보자”, “나중에 내가 연출하면 네가 촬영해줘” 그렇게 서로 작품을 도우며 연출, 촬영, 연기 등을 번갈아 맡았다. 원래 입학했을 당시엔 1년간 인사만 하는 사이로 지냈는데, 그 작업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임후성 배우에게든 학교 교수에게든 혹시 물어본 적 있나. 왜 연기 말고 연출하라고 하는지.

정범_ 안 물어봤다. (웃음) 임후성 배우의 경우, 주변에서 묻는다. 극단 연출과 작업하기 어렵지 않았느냐고. 근데 난 전혀 힘들지 않았다. 연출님 작업에 함께할 때는 배우로서 어려운 순간도 있다. 워낙 본인이 추구하는 철학이 확고하시거든. 하지만 평소에는 아버지 같은 분이다. 정말 좋다. 작업할 때는 치열한데 끝나면 또 풀어주신다. 같이 희곡 읽으면서 인문학적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대로 즉흥 연기도 해본다. 어차피 단원도 나 하나였다. 연출님 부인이 극단 대표이자 작가이고. 연출님, 작가님, 나, 이렇게 셋이 매일 모여서 연극 얘기하고 영화 얘기하면서 지냈다. 

 

이수정 배우는 어떻게 만났나.

허장_ 주연 배우 중 유일하게 오디션을 봤다. 처음 보는 순간,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지만 꼭 표현하고 싶은 고은의 모습을 이 배우가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를 건네고 잠시 읽을 시간을 드렸다. 그 후 다시 만나 1시간가량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중에 그 촬영본을 모니터링하면서 더 확신을 얻었다.

정범_ 우리는 연기 오디션을 안 봤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작 방식을 받아들이고 함께할 수 있는 배우를 찾는 일이었다. 

허장_ 영화 혹은 인물에 관한 한두 줄짜리 설명을 보고 연기한다는 것도, 그 자리에서 ‘지적 장애인을 연기해 보세요’라고 요청하는 것도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어떤 연기를 준비해서 온다고 하더라도, 그건 인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쇼잉에 지나지 않을 듯했다. 배우가 뭔가를 꾸며내야 하는 상황은 가급적 지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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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유형이나 등급, 양상 등도 구체적으로 논의했나.

정범_ 지적 장애 등급에서 ‘정상’ 범주에 가까운 등급으로 설정했다. 장애인을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고, 실은 그런 접근이 유의미한가 싶기도 했다. 수정 배우도 혼란스러워해서 우리가 리허설 중에 아이디어를 냈다. “장애인을 연기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몸은 성인이지만 수정 씨가 초등학교 1~2학년으로 돌아간다고 상상해 보자.” 수정 배우가 그때 힌트를 얻은 것 같다. 우리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어릴 적에 썼던 글들, ‘나의 뇌 구조’ 그림 등을 찾아보며 캐릭터를 스스로 구현해 나갔다.

허장_ 수정 배우에게 그러한 길을 제시하기까지 우리는 지적 장애에 관해 여러모로 조사하는 과정을 거쳤다. 타인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긴가민가하는 정도로 장애 경계선에 있는 분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가 영화를 리얼하게 찍기 위해서도, 수정 배우가 연기를 소화하는 면에서도 그 상태가 가장 적합하겠다고 봤다.

 

문호 형으로 나온 박덕호 배우, 부동산 주인 역에 최규원 배우, 옷 가게 주인으로 나온 곽영애 배우 등은 비전문 배우처럼 보인다.

정범_ 비전문 배우들이다. 가게 주인과 공인중개사는 실제로 그 가게와 부동산에서 일하는 분들이고, 문호 형님으로 나온 분은 우리 아버지다. 내가 봐도 연기 잘하시더라. (웃음) 

 

기존에도 비전문 배우와 작업한 적이 있나. 처음이라면 부담스러웠을 텐데.

정범_ 단편 찍을 때도 몇 번 같이 했다. 

허장_ 우리가 그분들과 애써 호흡을 맞췄다기보다는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정범 감독 아버지의 경우엔 정범 감독이 원체 여러 모습을 파악하고 있으니 알아서 잘 이끌었을 거다. 옷 가게와 부동산 사장님들도 별로 긴장하지 않으셨다. 우리 팀이 소규모인 데다 카메라도 작다 보니, 촬영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됐다. 또 로케이션 섭외할 때부터 생활감이나 인간적인 분위기가 많이 묻어나는 공간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신기하게도 그런 공간 속에는 그런 분들이 계시더라. 그걸 화학 작용이라고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촬영하면서도 “레디, 액션” 안 했다. 그냥 조용조용하게 찍었고, 덕분에 연기 연출은 무리 없이 진행됐다. 

정범_ 테이크도 많이 안 갔다. 애초 대사를 드리는 대신에, 상황만 말씀드렸다. 이런 상황이고 이런 얘기를 할 것 같다. 그 정도만 설명하고 찍었다. 예컨대 아버지한테는 문호를 고모처럼 여기면 어떻겠냐고 했다. “아빠가 좀 싫어하는 고모 있잖아. 그 고모가 찾아왔다고 생각해 봐.” 

 

“내가 너만 생각하면 답답해!” (웃음) 

정범_ 심지어 그 장면은 원테이크로 찍었다. 비전문 배우들은 테이크를 가면 갈수록 ‘촬영 중’이라는 상태를 인지하기에 긴장도가 올라간다. 뭔가를 꾸며내려고 하다 보니 말과 행동은 더 어색해지고. 처음부터 원테이크로 가겠다 마음먹고 사전에 대화를 충분히 나눴다.

허장 ⓒ이영진

공간을 마련하고 꾸미는 것이 중요했을 텐데. 도경의 반지하 집, 문호와 고은이 떠도는 여관, 위장 결혼과 주택청약 사기 행각이 벌어지는 상가, 포도 농장, 택배를 나르는 아파트, 대리운전하는 도로 등 영화 자체가 불안정한 주거지와 일터를 반복적으로 옮겨 다니는 여정이다. 어떻게 찾아낸 공간이고, 촬영 전에 무엇을 준비했는지 듣고 싶다.

허장_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곳은 크게 없다. 촬영하기 전에 용인 중앙시장 일대로 답사를 갔는데, 다행히 그곳에서 공간에 관한 아이디어도 얻고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공간도 많이 확보했다. 맨 처음 발견한 곳이 영화 오프닝에 나온 그 쓰러지기 직전의 모텔이다. 중앙시장 근처에 있거든. 옷 가게와 순댓국집, 골목길도 중앙시장과 그 일대에서 찾았다. 본래 가족사진을 찍는 스튜디오도 시장 내에서 구하려 했는데, 중간에 문제가 생겨서 그곳만 위치가 다르다. 도경이 거주하는 반지하 제작부 친구가 사는 집이다. 도경 누나 집은 로케이션 매니저로 일한 내 지인이 빌려줬고. 우리 사정을 아는 주변 사람들이 도움을 많이 줬다.

정범_ 예산을 줄이는 과정에서 나름 배운 것이 있다. 굳이 우리가 미술을 새로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을 구하는 게 훨씬 낫더라. 지인 집이라고는 해도 가능한 공간을 다 둘러봤다. 그중에 어느 곳을 도경 집으로 할지, 도경 누나 집으로 할지, 하나하나 정해 나갔다. 실제 삶이 묻어 있는 곳에서 촬영하니, 미술에 큰 에너지를 들일 필요가 없었다. 

허장_ 도경 집은 원래 주인이 혼자 사는 집이다. 거기서 문호와 고은까지 셋이 지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 책장 위치만 살짝 바꿨다. 우리 영화에서 다마스도 하나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처음엔 막연히 스타렉스를 알아봤다. 그러다 가격을 줄이는 과정에서 다마스를 찾았다. 픽업해서 받아보고 놀랐다. 왜 여태 다마스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어서. 보자마자 ‘이건 도경이 차다!’ 싶더라. 운 좋게 타이밍도 잘 맞았다.

정범_ 다마스는 운전 때문에 애먹긴 했다. 1종 수동 운전을 해야 하거든. 나도, 도진 형도 1종 보통면허라서 촬영하기 전에 운전 연습 엄청나게 했다. 둘 다 수동 운전을 까먹어서. 다마스 빌려 놓고 번갈아 도로 주행하고 운전 연수도 받고 그랬다. 아마 동기 아니었으면 그렇게까지 부탁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허장_ 생각났다. 다마스에 택배 상자를 채우려고 스태프 전부가 한 달 동안 모았다. 그게 우리 작품에서 미술이라고 할 만한 거다.

정범_ 두 달은 모았지.

허장_ 택배 오면 상자 잘 보관해 달라고 부탁했다. 위로 뜯지 말고 아래로 조심조심 열라고. (웃음) 

정범_ 포도 농장의 경우, 실제로 작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샤인머스캣 농장에 가서 찍었다. 농장도, 그 마을 전경도 모두 용인이다. 밑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용인이 완전 시골이거든. 촬영시 이동 거리도 최대한 단축하고 싶었는데, 학교가 단국대 죽전캠퍼스다 보니 용인에서 찍기가 수월했다. 택배 배달하는 아파트는 내가 사는 곳이고.

허장_ 영화 후반부에 나온 빌라는 내가 사는 곳이다. (웃음) 

 

제작진 집을 총동원해서 찍었네.

정범_ 로케이션 비용을 많이 절약했다.

허장_ 그래도 적절히 사례하려고 애썼는데 사례는 됐다며 되려 거절하신 분도 있다.

정범_ 순댓국집 사장님은 우리가 불쌍해 보이셨는지 돈을 안 받겠다고 하시더라. 이렇게 와서 밥만 먹으면 됐다고. 얼마 전에도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선물도 드렸다. 개봉 소식을 전했더니 사장님이 깜짝 놀라시더라. 조그만 카메라 하나 갖고 와서 뭘 하기에 학생들이 무슨 과제라도 하나 보다 싶었는데, 어떻게 그새 영화를 만들었냐고. 보통 촬영장이라고 하면 화려하지 않나. 조명도 여러 개 설치하고, 카메라도 막 이만한 거 쓰고. 근데 우리 팀은 애들 몇 명이 와서 사부작사부작하는 느낌이라 영화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하시더라.

 

카메라는 뭘 썼나. 

정범_ 파나소닉S5. 미러리스 카메라이고, 상대가 촬영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크기가 작아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기에 딱 좋다. 가성비를 생각하면 그 카메라가 좀 ‘사기’다. 색도 제대로 잡고, 공간도 많이 열려 있다.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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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기획 개발 당시, 서로 아이디어가 교차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인물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기묘한 형태의 가족을 구성하는 이야기인데, 출발점은 어디였나.

허장_ 정범 감독이 전세사기, 위장 전입 같은 키워드를 끈질기게 붙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몇 달 동안 보다가 기획에 동참했다. 처음에는 젊은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주인공이 탈북민과 위장 결혼하고 어떤 역경을 헤쳐 나가는 식이었는데, 어느 순간 우리도 좀 막혔던 시즌이 있다. 하루 이틀 지날 무렵, 정범 감독이 아이디어를 냈다. 지금도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밤에 흡연 구역에서 대화하던 중에 정범 감독이 문득 문호와 고은의 시초가 되는 관계를 언급했다. 그 이야기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후 작업 속도를 한껏 높였다.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로케이션 답사하고, 리허설하고, 그렇게 넣고 빼기를 반복하며 현재 버전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영화는 가족이라는 단위를 두 가지 축으로 설명한다. 하나는 경제공동체 일원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 상에 모여 밥 먹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가족생활은 곧 경제 활동과 식사를 함께 하는 일상을 뜻한다. 왜 두 가지를 중요하게 그렸나.

허장_ 물리적인 집에 관해 많이 이야기하게 되는데, 결국 우리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 집을 채우는 사람들이었다. 동시에 정범 감독은 자신이 어떤 아버지로 존재해야 할지 고민한다고 했다. 나도 가족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던 시기라 공감할 수 있었다. 집과 가족에 관한 경험을 확장하면서 집이라는 공간 내부를 채우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를 꽉 채우고 싶었다. 

정범_ 전세사기 사건의 핵심은 피해자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피해자들은 어째서 그토록 집을 갈망했을까. 혼자 잘 살려고?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려고, 내 아이들을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려고 집을 갈망한 이도 분명히 있을 텐데? 그렇게 질문을 늘려가다 보면, 끝내 가치를 묻게 되더라. 집이 지니는 가치는 무엇인가. 난 혼자 산다고 하면 집에 큰 욕심 안 낼 것 같거든. 내가 편히 먹고 잘 정도의 평수면 충분히 만족할 것 같다. 결국 같이 사는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우리 가족에게 안전한 보금자리가 되어줄 공간을 찾는 거다. 그러면 집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공간일 때, 그 가치가 가장 빛을 발하지 않나 싶다.

허장_ 하나 좀 덧붙이자면, 일종의 최소 조건을 상상했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서로를 향한 보살핌이 합쳐지면, 어쨌든 따뜻한 공동체는 존재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식사와 최소한의 경제 활동 등에 집중해서 장면을 구상했던 면도 있다.

 

한편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 문호와 도경은 혼자 딸을 키우는 아버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역할과 책임을 버거워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아버지의 영화’를 기획하게 된 이유가 있나.

정범_ 어머니도 상관없는데. 크게 염두에 두고 그러지는 않았지?

허장_ 따지고 보면 인물들 속에 부성, 모성, 형제애 등이 다 있으니까.  

정범_ 아버지로 등장한 건 순전히 무의식의 영역이다.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가 집을 지키는 사람, 식구들 위해 밖에서 일하며 희생하는 사람으로 다가왔다. 아버지의 얼굴보다 등을 자주 보고 자란 느낌이다.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을 살다 보면 자식과 얼굴 마주할 시간이 없으니. 무의식에 그런 경험이 녹아 있기에, 촬영장에서도 문호와 도경의 뒷모습을 담는 데 집중했다.

허장_ 불현듯 떠올랐는데,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등장했다면 관객들이 너무 쉽게 인물을 동정하거나 연민에 빠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 시대 한국 사회에서 성장한 우리들이 체험한 아버지를 영화에 자연스레 투영했던 것 같다.

 

영화 중간, 문호는 도경 집에 고은을 두고 일하러 떠난다. 도경 또한 “고은이 혼자 두는 거 걱정 안 되세요? 저도 남잔데”라며 문호의 행보를 의아하게 여긴다. 문호가 도경을 믿었는지, 딸에게 무슨 일이 벌어져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혹은 무슨 일이 벌어지기를 내심 바랐는지 끝내 모호하게 남겨놓은 이유가 궁금하다.

정범_ 농장에서 문호가 도경에게 아상처리라는 농사 기법을 들려준다. 가지에 일부러 상처를 내면 그 상처가 아무는 과정에서 새 가지가 탁 뻗어 나온다고. 그 말이 문호의 행동을 정확히 설명한다고 봤다.

허장_ 임후성 배우는 이렇게 말했다. “문호의 삶은 미래가 없는데, 그가 생각하는 고은의 삶은 언제나 미래다. 문호는 고은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떤 결단도 서슴없이 할 수 있다. 난 그렇게 믿고 연기에 임했다.” 정범 감독도 나도, 다른 배우와 스태프들도 그 말에 동의했던 것 같다. 감독과 배우가 논의하고 뭔가를 합의하는 과정도 있지만, 문호를 보여주는 임후성 배우의 선택에 관해서는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나는 그 아상처리가 어떤 면에서는 문호 자신을 향한 각오와도 연결된다고 느꼈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더라도 고은의 미래만은 지키려는, 어떻게든 딸에게 보금자리는 만들어주고 떠나겠다는 의지. 

정범 ⓒ이영진

여전히 궁금증이 남는다. 그 이후 이어지는 목욕신을 떠올려 보면, 영화는 분명히 성적 폭력의 가능성을 암시하며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문호 역시 자신의 부재가 몰고 올지 모르는 끔찍한 상황을 상상할 텐데, 대체 어떤 마음으로 딸 곁을 떠났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허장_ 문호는 고은을 목숨 걸고 지키는 사람 아닌가. 남들 눈에 잔혹하게 비칠 법한 선택도 내리는 인물이라고 본다.

정범_ 임후성 배우와도 인물을 놓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가 짚은 핵심은 의외로 단순했다. “내가 이 삶을 살아본 적 없는데 어떻게 곧장 이 인물이 될 수 있겠냐. 내가 잡고 갈 끈은 딱 하나다. 문호는 먹고살기 위해 뭐든지 한다.” 생존이 요원한 입장에서는 복잡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뜻이다. 어쩌면 문호와 고은은 사는 내내 그런 식으로 생존 전략을 터득했을 것이다. 옷 가게 신도 마찬가지다. 문호는 고은을 먼저 가게에 보낸 다음, 뒤늦게 나타나서 옷값을 흥정한다. 먹고살기 어려운, 단돈 만 원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겐 그 어떤 개념과 가치보다 생존이 앞선다. 임후성 배우가 해석한 문호는 그랬다.

 

안 그래도 방금 그 장면을 생각하던 참이다. 문호의 속내를 자꾸 캐묻게 되는 이유는, 영화 초반에 나온 옷 가게 신을 포함해서 중간중간 냉담한 현실 인식과 무력감이 뒤엉킨 모습을 보여줘서다. 문호는 선악 구분이 무의미한 영역에 머무른다.

허장_ 문호랑 고은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 둘이 아주 오래전부터 어떻게 사회적으로 진화해 왔는지 드러난다. 이도진 배우도 작업 중에 문득 ‘이렇게 진화하면 안 돼? 어째서 이런 진화는 인정받을 수 없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 각자 입장과 위치가 다르니 누군가는 영화 속 인물과 관계를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공동체의 진화란 단 하나의 모양만을 따르진 않으니까.

정범_ 각본을 공동으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시너지가 생겼다. 인물의 선택과 과정을 보여주긴 해야 하는데, 허장 감독이나 나나 그걸 설명하고 싶지는 않더라.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어떤 상황에 인물을 놓고, 그들이 마주한 현실을 보여주는 게 가장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의 단편적 기억이 많이 튀어나왔다. 옷 가게 신의 경우, 비슷한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어머니가 아이를 어떤 공간에 혼자 보내서 상황을 이롭게 만드는 걸 봤거든. 내가 이 이야기를 탁 던졌더니 허장 감독이 그럴 수 있겠다며 동의했고, 마침 위장 결혼 파트너를 처음 대면하는 자리를 앞두고 있으니 새 옷을 산다는 설정도 맞아떨어졌다. 

허장_ 난 시골에서 나고 자랐던 터라 그런 상황에 익숙한 편이다. 아직도 오일장 같은 데 가면 보이거든. 장애가 있는 자녀를 시장 한쪽에 데려다 놓고 보호자는 자리를 떠난다. 오디오 같은 거 틀어주고 껌 팔라고 시킨 다음, 점심쯤 되면 다시 자녀를 데리고 가서 밥 먹인다. 세상에는 그런 현실도 있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내 기억 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장면이다.

 

개봉 준비하느라 차기작 등 다른 작업을 진행하기엔 여력이 없으려나.

허장_ 못하기는, 이 사람 아주 바쁘다.

정범_ 12월 말에 장편영화 크랭크인 한다. 여름 신이 있어서 이미 2회차 찍었고,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촬영에 돌입한다. 소년 재판에서 위탁 감호 처분을 받은 아이들이 생활하는 일명 ‘6호 시설’을 다룬다. 그 아이들이 시설을 나와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조직적 범죄를 저지른다는 이야기를 추적하면서 시작하게 됐다.

허장_ 우리 둘 다 고민이 많은 시기다.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아서 제작 일에 뛰어들었는데, 이번에 장편 극영화를 경험하다 보니 확실히 다큐멘터리와는 접근 방식이 다르구나 싶더라. 현재 구상하는 다큐멘터리 작품이 있다. 나도 겨울 지나기 전에 일단 촬영을 시작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가 극영화 연출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

허장_ 다큐멘터리만 했던 건 아니다. 극영화에도 종종 참여했는데, 실은 20대부터 이것저것 많은 분야를 거쳤다. 내 경험과 경력을 한데 모으는 작업을 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대학에서는 글을 썼고, 중간에 대학로에서 연기도 했다. 아까 공동체의 진화를 언급했는데, 그 생각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냐면 예전에 서울역에서 공연하던 시절이다. 공연하다가 쉬는 시간 되면 광장 옆에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 자연스레 홈리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은 수건돌리기를 하면서 놀더라. 광장에 남녀노소 여덟 분 정도가 둘러앉았는데, 그들 나름의 서열과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가족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이 그속에 다 있더라. 분명히 핏줄 섞인 가족이 아닐 텐데, 꼬맹이 한 명은 “작은 아빠”라는 호칭을 쓰면서 한 남자를 따르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도 한 편 썼다. 생각해 보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꽤 오래됐는데, 극영화 연출팀에 바로 들어가기는 힘들었다. 제작 분야에서 경력을 쌓다가 더 늦기 전에 그간의 경험을 다 합치는 작업에 나섰다.

 

둘 다 연기 경험이 있다는 것도 좋은 시너지를 냈을 듯하다. 

정범_ 우리 <한 채>에도 나온다. 난 대리운전 기사 불렀던 취객으로, 허장 감독은 도경 집을 세입자에게 소개하는 부동산 중개인으로 출연했다. 

<한 채>
<한 채>

정범 감독은 극단 생활을 얼마나 했나. 

정범_ 2년쯤 됐을 무렵, 갑자기 팬데믹이 시작됐다. 본래 토목공학을 전공한 공대생이고 직장 생활했다. 결혼하고 회사를 5년 정도 다녔는데, 첫째 아이 태어난 다음부터 내가 이상해졌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러다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겠구나’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그렇게 인생 끝났다는 기분으로 살도록 나를 내버려둘 순 없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 마음먹고 극단을 찾아갔다. 일단 아내한테 말하지 않고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그러면 월급이 80퍼센트는 나오거든. 아침에 출근한다고 집 나가서 혜화로 향했다. 

허장_ 신기하지. 보통은 애가 태어나면 인생을 자본주의에 헌납하게 되는데. (웃음)

정범_ 진짜 갑자기 그랬다. 애를 딱 보는 순간, 인생이 이대로 끝나버릴 듯한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다. 어떤 아버지가 돼야 할지 고민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집에 돈 벌어주다가 인생 끝나는 아빠보다는 꿈을 향해 가는 아빠로 남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육아휴직을 1년까지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알다시피 토목 회사가 워낙 남성중심적이고 조직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거든. 내가 그곳에서 육아휴직을 최초로 쓴 사람이다. 신청하자마자 협박 아닌 협박이 시작됐다. “너 육아휴직 쓰고 나서 돌아오면 자리 없을 수도 있다. 잘 생각해라.” 우기듯 육아휴직을 6개월 쓰고 나서 또 6개월 추가 신청했다.

 

그 회사에 전설로 남아 있겠다.

정범_ 내가 그러고 난 다음부터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 직원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더라. 나야 육아휴직 마치고 퇴사했지만. (웃음) 코로나19 시기에 단국대 대학원으로 진학했고, 동시에 양재와 과천 화훼 시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새벽에 경매 물품도 나르고. 고되긴 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허장 감독은 흩어진 커리어를 한데 모으고 싶어서 연출을 시작했고, 정범 감독은 삶을 놓치기 싫어 꿈을 좇다가 연출까지 도전했다. 영화를 완성하고 나니 어떤가. 잘 선택한 것 같나. 

허장_ 좋은 선택이었던 것은 확실한데, 점점 책임감이 늘어난다. 내가 만든 세계에 구체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구나 싶다. 좀 더 신중하고 사려 깊게 이 작업을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범_ 요즘 들어 그러는 거지? 우리 원래는 안 그랬잖나. 영화 한 편 완성하기, 졸업하기, 그런 것조차 너무 거대한 일처럼 다가왔다. 부산국제영화제 선정되기 전에 편집실에서 얘기한 적 있다. <한 채>가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고.

허장_ 나는 그렇게까지 슬픈 생각은 안 했다. (웃음)

정범_ 내 말에 동의해 주지 않았나.

허장_ 본인이 왜 그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거였지.

정범_ 가정이 있고 애가 둘이다 보니 마음이 그랬다. 애들 먹여 살리려면 영화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 다음에 영화를 언제 찍을지도 모르겠고, 영화를 계속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처음이자 마지막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보자. 편집도 그 형식으로 가자. 허장 감독과 얘기했던 게 떠오른다. 그러다 불쑥 부산에서 연락을 받았다.

 

그 순간 확신을 얻었나. 

정범_ 눈물 나더라. 너무 갑작스러워서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고. 허장 감독은 모르는 얘긴데, 사실 나 부산국제영화제 P&A 시사 마치고 숙소 돌아와서 정말 펑펑 울었다. 

허장_ 아니, 왜 자꾸 우나? (웃음)

정범_ 다른 경쟁 작품을 보니까 우리 영화가 한없이 작아 보이더라. 우리는 돈 없이 찍은 티가 너무 나는데, <장손>(오정민, 2024) <딸에 대하여>(이미랑, 2024) <301호 모텔 살인사건>(연제광, 2024) 등 다른 감독들 데뷔작은 다 근사했다.

 

근데 상까지 받았다. 심지어 LG올레드 비전상과 시민평론가상 2관왕이었다.

정범_ 허장 감독한테 “이거 영화 계속하라는 뜻인가?” 물었더니 답이 곧장 돌아왔다. “당연히 해야지!”

허장_ 내가 그랬나? 아무튼 정범 감독은 감수성이 풍부하다니까. <한 채> 덕분에 극영화의 매력을 여실히 느꼈다. 지금 준비하는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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