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입시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거의 “사람을 죽이지 말지어다.” 정도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수많은 10대가 자기 존재를 지우고 입시라는 삶의 유예기간에 무방비하게 내던져진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면 다 보상받게 되리라고, 대학에만 간다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으리라고 어른들은 말한다. 물론 이 말은 인정받는 대학에 가지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리라는 가정을 포함한다. 홍다예 감독의 다큐멘터리 <잠자리 구하기>는 그러한 유예기간을 불안과 함께 살았던 감독 자신과 친구들의 초상을 담는다. 죽고 싶다며 습관처럼 내뱉는 말들과 우울함이 서린 눈빛들은 입시가 삶을 어떤 식으로 갉아먹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어쩌면 이를 통해 무책임한 제도와 사회의 시선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그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계기를 만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자리 구하기>가 인상적인 건 비단 그런 기회를 제공해서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라지는 게 싫어서”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쉽게 놓치고 잊어버리는 시간 속의 생생한 감정을 포착하는 영화는 친구들의 지난 시절을 현재로 불러오며 공동의 기억을 만든다. 그 안에는 각자의 불안뿐 아니라 관계의 변화와 고통스러운 균열까지 함께 담긴다.
고등학교 3학년의 시간은 디데이를 세며 흘러간다. <잠자리 구하기>는 ‘D-55’, ‘D-24’ 같은 지표들을 따라 교실 안과 밖의 풍경을 기록한다. 개기월식을 보러 복도를 가로질러 달려가고, 자기소개서 제출 일자를 맞추느라 애태우며, 신경질적으로 문제집을 넘기는 모습들 속에는 언제나 흥분과 불안이 깃들어있다. 카메라를 든 감독은 친구들을 붙잡고 이것저것 묻기도 한다. 이들의 대화는 각자의 마음을 투명하게 비춘다.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건가, 왜 살아있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꼭 여행을 가서 행복한 삶이 뭔지 배워 오고 싶어. 나름의 방식으로 유예기간을 지나며 저마다 느끼는 바를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만, 폭주하는 입시 기차에서 아무도 뛰어내릴 수는 없다. 영화에 담긴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 마음을 찌르는 이유는 그것이 그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시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손에 들린 카메라는 격렬하게 흔들리며 돌파구를 찾는 듯 보이나, 이들에게는 장막을 찢고 외부로 나갈 힘이 없다. 다만 밤거리를 함께 걸으며 어렴풋한 미래를 가늠해 볼 친구들만이 곁에 있을 뿐이다. 윤지, 민지, 민정 등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 눈에 익어갈 무렵, 수능이 끝난다.


수능이라는 일생일대의 변곡점이 끝나도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도대체 왜일까? <잠자리 구하기>는 그처럼 지속하는 상태를 삶에 수많은 난관이 있다는 식의 일반적 서술로 갈무리하지 않으면서 고통스럽게 불안 속을 헤맨다. 누군가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누군가는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고, 누군가는 재수를 결정하면서 친구들은 점차 멀어진다. 여전히 카메라를 든 감독은 지연된 입시와 대학 생활로 이어지는 몇 년의 시간을 계속해서 기록한다.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 불안과 자기 존재의 가치를 찾기 어려워 안개 속을 더듬는 마음을 들여다본다. 세상이 입을 모아 말하는 거대한 고비를 넘기는 동안 다양한 실패가 흉터처럼 남는다. 감독은 “성장이 어떤 실패를 필연적으로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영화를 “성장 서사의 탈을 쓴 반(反)성장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고난을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이들에게 더 이상 가능한 성장의 모델이 아닌 것이다. 이는 물론 시대의 문제일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이 놓인 구조는 어떤 종류의 성장을 끝없이 유예한다. <잠자리 구하기>는 그 사실을 직시하면서도 그러한 설명과 해석이 포괄하지 못하는 날카로운 감정적 문제들을 그러모으는 데 더 몰두한다.
날 것의 감정을 기록하는데 카메라는 더없이 적절한 매체처럼 여겨진다. 숨길 수 없는 표정과 터져 나오는 말들은 그때 그 상황과 마음을 너무나 또렷하게 포착한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8년이나 되는 시간을 담았으니, <잠자리 구하기>를 동시대 청춘의 모습을 매우 충실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게다가 정념을 쏟아내듯 장면과 장면 사이를 채우는 감독의 내레이션까지 더해져 영화를 보는 동안 감정이 함께 요동친다. 한 친구의 말처럼 너무 현실적이어서 불쾌할 수도 있는 그 기록들은 자해와 자살 충동 같은 자기 파괴적 사고를 포함한다. 그 때문에 함께 들여다보기 힘든 내밀한 일기장 같은 영화로 느낄 수도 있지만, <잠자리 구하기>는 아무리 카메라를 들어도 끝내 가닿지 못하거나 붙잡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 간격을 응시하려는 정직한 작품이기도 하다. 때로 우두커니 놓여 있을 수밖에 없는 카메라는 촬영하는 이가 미처 보지 못한 친구의 얼굴을 담고, 어둠 속의 카메라는 “내가 다리에 갔을 때”를 힘겹게 회상하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제 옆에 없는 친구의 마음도 담지 못한다.


각자의 생각을 토해내듯 발설하며 화면을 함께 채웠던 친구들은 슬프게도 이제 곁에 없어 만나기조차 어렵다. 대학생이 되어 달라진 외모만큼 그들의 마음도 이제는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다. 서로의 고민을 이해하는 건 어렵고, 위로를 구하는 연락은 점차 피하고 싶어지기만 한다. 하지만 애써 향수를 붙잡지 않는 영화는 친구들 사이의 거리와 간극이 어느 날 불현듯 나타난 것이 아니라, 관계에 이미 내재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듯하다. <잠자리 구하기>는 긴 수렁을 지나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어쩌면 닿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우리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있지만, 그래도 너에게 손을 내밀고 싶다고 다짐하듯 말한다. “아무리 모든 게 무섭고 새로워 보여도, 우리는 그때처럼 같이 버티고 위로해 주면서 살아가자. 네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남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 사회복지사를 꿈꿨던 학생은 이제 영화를 만들며 “우린 서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잠자리 구하기>는 “이 미친 세상에” 누군가를 돕는다는 게 실은 서로 기대는 일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은 이가 쓰는 편지다.
잠자리 구하기 Saving a Dragonfly 감독 홍다예 출연 홍다예, 김윤지, 강민지, 최민정 제작 삼녀강 필름 배급 디오시네마 제작연도 2024년 상영시간 80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4년 10월 1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