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그라운드 배급상담소의 카운셀러 다섯 명을 한 자리에 초대했다. 모두 2022년 5월 상담소가 문을 열 때부터 함께했지만, 각자 온라인 상담을 진행해 온 터라 만남은 드문 일이었다. 배급 상담 영역은 크게 국내, 해외, 단편으로 나뉜다. <이태원>(2019) <우리는 매일매일>(2021) 등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개봉하고 현재 첫 번째 극 장편 <럭키, 아파트> 개봉을 준비하는 강유가람 감독이 국내 배급 상담을 맡는다. 해외 배급은 부산국제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다수 영화제에 선정위원으로 참여한 김영우 프로그래머와 <피의 연대기>(김보람, 2018)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아만다 나정 김, 2024) 등 제작과 <위로공단>(임흥순, 2015) <버블 패밀리>(마민지, 2018) 등 해외 세일즈를 두루 진행하는 시소픽쳐스의 오희정 프로듀서가 상담자로 나선다. 단편 배급은 각각 <실>(2020)과 <시체들의 아침>(2018)으로 주목받은 이나연, 이승주 감독이 상담한다. 이나연 감독은 최근 디즈니+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NCT 127: 더 로스트 보이즈>를 통해 메인 작가로 데뷔했고, 이승주 감독은 장편영화 연출을 준비하는 중이다.
그간 상담 과정에서 마주한 고민은 비단 배급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본인 영화의 문제점을 알려 달라는 요구부터 영화인으로서 미래를 꿈꾸기 어렵다는 호소까지 내담자들은 종종 경계를 가로지르며 말을 건네 왔다. 다섯은 경험을 바탕으로 ‘업계 현실’을 깨우치는가 하면,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하소연과 응원을 번갈아 주고받는다. 이날 좌담회도 마찬가지였다. 대화는 근심과 욕심을 나누며 무르익더니, 이야기를 마치겠구나 할 때쯤 테이블에서 “그럼 뭐부터 시작할까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들은 카운셀러이자 영화 현장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이며, 오랜 시간 독립영화를 지켜본 관객이기도 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과 어느 때보다 견고한 자본의 논리 속에서 나름대로 길을 내며 달려왔지만, 아직도 정답을 확신하기 어렵다. 그들은 얼핏 시험을 마친 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각자 써낸 답과 길고 긴 문제 풀이 과정을 비교하며 다들 쉬는 시간을 분주히 보냈다. 그렇게 완성된 오답 노트에는 정답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적혀 있다. 우리는 왜 영화를 만들까? 왜 보여주려고 할까?
주로 어떤 분들이 배급상담소를 찾나. 상담 주기는 어느 정도인지도 궁금하다.
김영우_ 많이 하면 한 달에 세 번 정도. 몰아서 들어올 때가 있고, 안 올 때는 한참 안 온다. 해외 시장에 명확한 궁금증을 가진 분들은 오희정 피디가 맡는 것 같고, 내게는 해외 영화제 출품을 포함해 좀 더 일반론적이고 막연한 질문이 주로 들어온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제 영화는 어느 영화제에 출품하면 좋을까요?”다. 창작자 대부분 영화제 출품 방법이나 과정에 관해선 파악하고 있는데, 영화제 성격과 배급 시기 등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영화제 출품은 국내와 해외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거든. 국내 주요 영화제에 먼저 출품할 거냐, 아니면 해외 영화제를 먼저 도전할 거냐. 둘 중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지 묻는 분들이 많다. 사실 그건 작품 특성과 장르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어서 선명하게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내가 말을 해봤자 작품 선정은 결국 영화제 몫이고. 결국 대강 흐름을 설명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쪽으로 상담 방향을 잡고 있다.
오희정_ 막연하게 오는 분과 나름대로 해외 배급을 경험한 분이 반반이다. 후자의 경우, 전작에서 아쉬움이 남았던 부분을 해소하고 싶어 찾아오신다. 나의 대안적 경험을 포함해 여러 사례를 소개하는 편이다. 해외 배급도 국내 배급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다 만들고 나서 시작하면 늦는다. ‘사전 단계에서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배급까지 길이 이어질 수 있는가?’에 집중해서 얘기한다. 구체적으로 숙제를 열심히 하라고 말씀드린다. 김영우 프로그래머가 말한 대로 가장 많이 들어오는 질문은 ‘어느 영화제에 가야 할까?’인데, 내가 답을 내려줄 수 없다. 적어도 기출문제 풀듯 각 영화제의 최근 동향을 스스로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최근 베니스에서 어떤 한국영화를 상영했는지, 로카르노의 프로그램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등 영화제 홈페이지 들어가서 미리 좀 살펴보고 분석도 해보라고 강조한다.
영화를 완성한 다음이 아니라, 기획 개발 단계에서 찾아오는 분들도 있나.
오희정_ 편집 단계에서 오는 분들이 제일 빠른 것 같다. 보통은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보고 전부 안 됐을 때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국내 배급도 몇몇 배급사에 선택받지 못하면 배급이 어려운데, 해외 배급은 더하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해외 플랫폼에 막연한 희망을 품지만, 그걸 실행해 줄 플레이어가 얼마 없다. 결국 본인이 직접 해야 하는데, 처음엔 막막하다 보니 소극적 접근에 머물렀던 것 같다. 그러다 영어가 익숙한 젊은 세대가 등장하며 상황이 바뀌었다. “하면 되지, 왜 안 돼?”라는 마인드로 해외 시장과 부딪히는 거다.
김영우_ 일단 해외 배급 상황이 국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회사도 정말 몇 군데밖에 없다. 근데 내담자가 혼자서라도 해보겠다고 하면, 이야기 방향이 바뀐다. 해외 출품의 경우, 1월 선댄스영화제부터 시작해서 주요 영화제 8-10개를 기본으로 언급한다. 근데 장편은 출품비가 만만치 않다. 개인이 감당하기 벅찬 수준이면 영화진흥위원회 출품 지원 제도를 활용하라고 알려드린다. 상담자이자 정보를 공유하는 창구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두 번째로 많은 질문도 영화제와 이어진다. “출품하면 제 영화를 진짜 볼까요?” 영화제 프로그래머, 선정위원 등이 자기 작품을 실제로 안 볼 것 같다고 의심하는 거다. 이건 근본적인 불신이다. 대부분 감독이 그렇고, 천 편 이상 출품되는 단편영화 쪽은 더 그럴 수밖에 없다. 불신이라고 했지만 결국 ‘내 영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뜻이다. 나도 오희정 피디와 마찬가지로 사전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당 작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 이야기다. “당신이 봉준호, 박찬욱이 아니라면 노력해야 한다. 국내외 프로젝트 마켓과 워크숍 등에 참여해서 다른 사례도 좀 보고,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동시에 내 프로젝트를 알리는 홍보 창구로 그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보통 이것저것 해보고 안 돼서 답답한 마음으로, 한 템포나 반 템포 늦게 오는 분들이 대부분이기에 최대한 현재 시점에서 시도할 만한 일을 알려드리려고 한다. 꼭 해외 영화제에 국한하지 않는다. 인디그라운드 퍼스트링크 사업이라든지 국내 영화제 마켓 등에 먼저 참여하기를 권한 적도 있다. 결국 국내와 해외를 전체 맥락에서 살펴보고 본인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집중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으로 이야기가 정리되는 편이다.
국내 배급 상담은 극장 개봉에 관한 고민을 나누는 자리 아닐까 싶은데, 앞서 해외 배급 상담처럼 으레 나오는 질문을 소개한다면.
강유가람_ 내게는 거의 다큐멘터리 상담만 들어왔다. 배급사를 만나고 싶어 하는 욕망은 되게 큰데, 배급사는 한정적이라는 데서 고민이 시작된다. 선택지가 많은 분과 선택지가 없는 분, 이렇게 두 경우로 나뉜다. 어떤 배급사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질문은 비슷하지만 상황이 다르다. 전자는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비교하기도 하고, 후자의 경우엔 개인 배급을 고민하는 분도 더러 있다. 한편, 제작 중 상담을 요청하는 분들과는 편집이나 후반작업에 관한 이야기도 나눈다. 처음엔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질까 봐 일부러 영화를 안 보고 상담했는데, 대화가 어느 선에서 막히는 듯해 지금은 가급적 보려고 한다. 그래야 어느 배급사가 어울리겠다거나 어떤 단체랑 얘기하면 공동체 상영이 가능하겠다거나 라는 식으로 조언할 수 있겠더라. 물론 영화 보고 나서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막막할 때도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주제에 따라서 마케팅 포인트라든지 배급사 성격이 조금씩 나누어지니까.
실제 상담은 제작과 배급 영역을 넘나드는 듯하다. 카운셀러인 동시에 플레이어이기에 ‘나라면 어떻게 할까?’ 가정하는 순간도 많을 텐데.
강유가람_ 남 얘기로 안 들릴 때도 있고, 왜 내게 이런 걸 묻는지 의아할 때도 있다. 결국 자기 영화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감독 본인이다. 내 영역을 넘어서는 부분에 관해 질문하면 진땀 나는데, 국내 배급 현실을 최대한 상세히 알려드리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배급사를 만난다고 모든 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개봉하고 일정 스코어를 달성한다고 해서 곧장 내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등등. 감독에게 그만한 현실 감각은 필요하다. 개인 배급을 고민하는 몇 분에게도 추천하지는 않았다. 배급 피디를 맡아서 <왕자가 된 소녀들>(김혜정, 2013)을 자체 배급한 적이 있다.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한 것은 좋은 경험이었지만, 일 자체는 힘들었다. ‘배급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구나’ 깨달았지. 비용을 따지다 보니 배급사의 역할을 의심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와 같은 현실을 정확히 알려드리는 것도 상담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나연_ 단편도 비슷하다. 다만, 대다수가 ‘처음’이라는 점에서 상담 내용이 조금 달라진다. 첫 작품이자 첫 영화제다 보니 아주 기본적인 것을 묻는다. 영화제 출품 방법은 물론이고, 애초에 어떤 영화제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영화학교 출신과 비출신이 6대 4 정도 비율이고, 비출신 중에는 영화계에 연고가 없다고 느끼는 분들이 꽤 많다. 나는 단편 <못, 함께하는>(2016)으로 영화제에 처음 갔는데, 당시 학교 선배였던 조현민 감독이 인디포럼을 알려줬다. 오늘이 출품 마감이니 한번 넣어 보라고 하더라. 사실 그전까지 인디포럼이 어떤 영화제인 줄도 몰랐다. 배급상담소를 찾는 분들도 그때의 나랑 비슷한 것 같다. 그래도 영화학교 출신은 주요 영화제를 대충 아니까 나름대로 전략을 짠다. 전주국제영화제나 부산국제영화제처럼 프리미어 기준이 있는 곳을 우선 출품하고, 그 외 영화제를 순차적으로 도는 식이다. 근데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면 이 흐름을 혼자 터득해야 한다. 영화학교 출신이어도 이런 걸 전공 수업에서 배울 수는 없다. 영화제 많이 간 선배한테 묻거나 인터넷 검색하며 스스로 깨쳐야 한다. 상담을 거듭할수록 상담의 필요성을 실감한다. 상담 범위가 배급에 국한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50분 상담이 기본인데, 배급사별 특성과 개인 배급 방법, 배급 전략과 그에 따른 장단점 등을 설명하는 건 25분이면 충분하거든. 나머지 25분은 창작자로서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다. 궁금한 점을 질문해 보라고 하면 거의 대화가 그렇게 흘러간다. 우는 분도 많다.
주로 어떤 어려움을 토로하나.
이나연_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네트워크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영화학교 출신이 아닌 여성 창작자의 경우, 고립감을 크게 느낀다. 다음 작업이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영화 작업을 지속할 수 있을까? 내 동료는 누구인가? 그들이 털어놓는 막막함에 공감한다. 심지어 난 영화과를 졸업했는데도 함께할 동료가 줄어든다고 느끼니까. 보통 세 단체를 추천한다. FFF(여성영상인네트워크), WDN(여성감독네트워크), 나머지 하나는 여성 영상·영화 단체 카톡방이다. 구인·구직이나 작업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는 곳이라 반응이 좋다. 두 번째 화두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창작과 생활을 어떻게 병행하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나는 예술가에게 현실 감각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재테크 공부도 하고 돈에 대한 시각을 넓히라고 조언한다. 극소수를 제외하면, 예술가는 사회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노동하며 살아간다. 남들보다 더 비참한 것도, 더 대단한 것도 아니다. 영화를 만드는 나만큼 사회인으로서의 나도 중요할 뿐이다. 어느 한 쪽의 몸집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두 가지 정체성을 존중하면서 자신을 잘 먹여 살려야 한다고 말해준다. 그밖엔 전문가라면 누구나 금방 답해줄 수 있는 내용이다. 기술적인 부분도 많이 묻거든. DCP 출력을 왜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업체는 어떤 곳이랑 컨택해야 하는지, 이런 하나하나가 그들에겐 다 과제다.
이승주_ 나는 그래서 앞선 25분은 배급 정보를 개괄하고, 나머지 25분은 세부 사항과 사례에 집중한다. 영화를 2007년부터 만들었는데 2012년까지는 배급사도 못 찾고 영화제도 계속 떨어졌다. 영화를 7편 정도 만들 때까지 그랬다. 경험담을 들려주면 다들 좋아하더라. 수익이 가장 큰 영화와 수익이 없는 영화를 비교해서 공개하기도 한다.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단편 배급을 계획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게 구체적 수치를 말씀드리면 현실을 체감하는 것 같다. 물론 내담자 대부분은 수익보다 관객을 만나고 싶다는 욕망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가 어떻게든 세상에 공개되길 원하는 거다. 이 또한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우선 배급사 유무에 따라 차이가 크다는 점을 밝히고, 내가 개인 배급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 말씀드린다. 혼자 영화제 정보를 파악해야 하니 눈뜨자마자 2시간씩 ‘영화제 출품’을 키워드로 검색했다. 영화제 홈페이지, 블로그, 카페 등을 돌며 정보를 구할 수 있는 만큼 구하고, 주마다 총정리해서 모든 영화제에 출품했다. 한 영화는 영화제 40여 곳에 넣어서 7~8번 선정됐다. 중요한 것은 영화제도 빈틈이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제 다 떨어졌다며 기운 빠진 채 상담소를 찾는 분이 많은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신생 영화제나 군소 영화제 등은 그래도 가능성이 있거든.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말씀드린다. 남들이 알든 모르든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수상하는 경험 자체가 감독에겐 힘이 된다.
단편 창작자 중에서는 개인 배급을 택하는 이도 많을 텐데.
이승주_ 개인 배급을 고민하는 분들에게도 전달하는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우선 제약을 인지해야 한다. OTT나 IPTV 플랫폼은 개인과 계약을 맺지 않기에, 창작자 혼자 진행하기엔 분명히 어려운 점이 있다. 다만, 영화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온/오프라인 상영 창구가 있으니 최대한 공모에 참여하라고 전한다. 실제로 나와 상담하고 나서 영화 상영하는 분을 봤다. 어느 영화제에서 상도 받더라. 배급상담소 활동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되, 정말 안 되겠다 싶을 때는 둘 중 하나를 결정하라고 말씀드린다. 유튜브에 공개할지, 아니면 개인 소장할지. 관객을 만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다음 작업에 추진력을 얻기 위한 작품으로 남겨 둔다면 그 또한 의미 있다고 본다.
다섯 명 모두 인디그라운드 배급상담소가 문을 열 때부터 상담에 참여했다.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어떤 변화나 경향이 읽히는지 궁금하다.
이승주_ 단편 쪽에선 최근 OTT에 관한 질문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온라인 플랫폼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어떤 조건으로 계약하는지 등을 자주 물어본다.
근래 영화제가 줄어든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될까? 미쟝센단편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인디포럼 등 단편영화와 신진 창작자에 주목했던 영화제가 사라지지 않았나.
이승주_ 영향이 큰 것 같다. 말하자면 예전에는 구심점 같은 영화제가 있었다. 그곳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인지도를 얻고, 심지어 몇몇은 장편 계약까지 성사하는 결과를 낳았다. 감독으로서 예상하고 꿈꿀 수 있는 경로가 있던 셈인데, 이제 그 영화제라는 장 자체가 없어진 거다. 그러다 보니 단편영화 만드는 분들도 목표를 거기까지는 안 두는 것 같다. 단편을 잘 만들어서 장편 계약하겠다, 이 작품을 계기로 입봉하겠다, 그런 마음이 아니라 눈앞에 놓인 작품 하나만 본다. 당장 이걸 어디서 어떻게 보여줄 거냐. 상담하면서 “단편 잘하면 장편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으니 열심히 하시라” 격려하긴 하는데, 확실히 대화하다 보면 예전보다 사고의 폭이 좁아졌구나 싶다.
강유가람_ 배급 시장의 변화라고 해야 할까. 내담자가 나도 잘 모르는 플랫폼이나 낯선 서비스에 관해서 질문하면, 이 산업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구나 싶다. 배급 비용을 지불하면 일정 기간 영화제 출품을 대리해 주는 서비스 플랫폼이 여럿 생겼다는 사실도 비교적 최근에 인지했다. “저도 여기에 돈을 내고 배급을 의뢰해도 되나요?”라고 질문하는 업체 중에는 처음 듣는 곳도 꽤 있다. 나 역시 경험하지 못한 플랫폼이다 보니 어떻게 답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더라.
이승주_ 창작자에게 선금을 받고 배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다. 나도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인디스토리, 포스트핀, 필름다빈, 센트럴파크 등 기존 단편영화 배급사는 창작자와 계약한 후 작품 배급을 통해 발생한 수익을 셰어하는 식인데, 신규 서비스 업체들은 애초 계약 단계에서 작품 관리 및 영화제 출품을 목적으로 비용을 청구한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 고민할 수밖에 없다. 최소 30만 원 이상을 지출해야 하는데, 그만큼 상영 기회를 얻을지도 미지수고. 어차피 본전 찾기는 힘든 일이라고 말씀드린다. 솔직히 말하면 장편과 달리 단편 배급사의 경우, 창작자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순위가 정해져 있다. 여기 해서 안 되면 저기, 저기 해서도 안 되면 거기. 이런 식으로 하나씩 두드려 보는 거다. 그러니까 유료 서비스를 고민한다는 건 돌고 돌아서 그곳에 도착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내담자 중에는 “제가 이러이러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진짜 이거라도 해야 합니까? 아니면 그냥 깔끔히 관둘까요?” 묻는 분도 있다. 결국 작품 수준을 논하게 되는 상황이라 조심스럽지만, 해당 배급사가 어떤 전략을 취하는지 살펴보라고 조언하는 편이다. 영화제가 아닌 IPTV 쪽에서 강세인 곳도 있고, 그렇게 보여주기를 원하면 새로운 방식을 경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결국 선택의 문제이며 여지는 있다는 얘기다.
김영우_ 영화제 프로그래머 입장에서 잠시 얘기하겠다. 영화진흥위원회도 한 해 제작되는 단편의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지 못하는데, 프리미어 조건이 없고 연말에 열리는 서울독립영화제 기준으로 보면 약 1,400편 내외다. 나도 1년에 6~700편 정도는 보게 되더라. 창작자가 배급사 순위를 인지하듯 영화제도 마찬가지다. 배급사에서 보통 작품을 한꺼번에 출품하다 보니, 나중에 작품 목록을 정리한 엑셀 파일을 보면 '어느 배급사 작품이구나' 하는 식으로 정보가 한눈에 딱 들어오거든. 근데 심사 과정에서 어떻게든 그 틀에 갇히지 않으려고 애쓴다. 특정 배급사 작품으로 쏠리지 않으려고 몇 차에 걸쳐 여러 심사위원이 토론하고, 최대한 다양한 루트의 작품을 선정해 보자고 이야기한다. 비단 배급사뿐만 아니라 학교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교육과 표준화된 제작 시스템을 갖춘 영화학교에서만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진 않거든. 여러 가능성을 인지하며 균형을 맞추려 한다. 단편 작업하는 분들에게 이건 꼭 말씀드리고 싶다. 모든 영화제가 고민하는 부분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향한 관심이 늘어난다는 것은 한편으론 긍정적 변화 아닐까. 영화제가 축소되고 폐지되는 상황은 안타깝지만, 창작자 입장에서는 영화제 중심 구조를 벗어날 기회처럼 보이기도 한다. 선택지가 많아져서 우선순위를 정하기가 어려운 느낌도 들고.
이나연_ 그렇진 않다. 대다수 단편영화 창작자의 경우, 영화제만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영화제를 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느낀다.
이승주_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편은 영화제를 통해 관객과 만나는 것이 기본이니까.
김영우_ 사실 현재 상황에서 영화제를 대체할 만한 다른 대안이 없다.
이나연_ 극장에 걸릴만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 그걸 처음 답하는 자리가 영화제다. 본인이 만든 단편을 영화제에서 상영하면, 이후 장편 연출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희정_ 결국 순서가 생기는 거다. 장편도 같다. ‘어차피 극장 개봉한다고 더 많은 관객과 만난다는 보장도 없는데 난 그냥 처음부터 플랫폼으로 가겠다’ 생각하는 분이 있어도 쉽게 실행하지는 못한다. 애초 개봉을 안 하고서는 플랫폼에 들어가기가 어렵거든. 작품을 아예 플랫폼 오리지널로 제작하지 않는 이상. 물론 유튜브처럼 창작자가 바로 부딪힐 수 있는 창구가 존재하긴 한다. 근데 이를 염두에 두는 이유는 극장과 영화제 등 기존에 작동하던 창구가 줄어들기에 대안을 고민하는 차원인 것이지,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이 창구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이라서는 아니다.
김영우_ 배급을 이야기하다 보면 국내/해외, 장편/단편이 막 섞여버릴 수밖에 없다. 대부분 비슷할 텐데 장편은 단편에 비해 훨씬 선택지가 부족하긴 하다. 상업 주류 시스템에서 제작된 영화들은 알아서 간다고 치면, 독립영화는 극이든 다큐든 결국 영화제를 통해서 관객과 만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힘들다. 이런 작품이 있다고 세상에 알려야 하는데, 영화계 자체에 진입이 안 되는 상황이니까. 사실 해외 배급을 문의하는 분들 중 ‘분노의 출품’을 계획하는 분이 꽤 많다. 한국이 자기 영화를 외면하니까 해외로 가겠다는 거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국내 영화제의 다양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이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떤 조건이나 제약 없이 적은 예산이라도 안정적으로 지원한다면, 그래서 영화제마다 정체성을 갖고 그에 걸맞은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시도를 포용할 수 있을 거다. 현재는 몇몇 작품이 일단 한 번 주요 영화제에 선정되면 일 년 내내 도는 구조 아닌가. 선정작 편수는 한정적인데, 그러면 거기서 탈락한 영화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게 가장 큰 고민이다. 예전에는 인디포럼이든 인디다큐페스티발이든 중간 역할을 하던 영화제가 있었는데, 그마저 사라지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거다.
국내 독립영화의 제작과 배급은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제도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제작 및 개봉 지원제도의 시점, 규모, 방식 등이 매해 달라지며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사실상 전 과정이 연동된 구조이기에 창작자는 거듭 고비를 마주하는 심정일 텐데, 현장에선 어떤 문제를 지적하나.
강유가람_ 장편은 워낙 공을 많이 들이잖나. 돈도 돈인데 절대적으로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 제작뿐만 아니라, 작품을 완성한 후 배급사를 만나는 과정에서도 긴 시간을 보내곤 한다. 개봉 지원의 경우, 예전엔 일단 개인 자격으로라도 접수하기를 권했다. 어쨌든 그렇게 개봉 지원금을 획득하면, 이후 배급사를 만날 기회가 생길 수 있으니까. 근데 제도가 바뀌었다. 개인 자격 지원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배급사를 만나지 못하면 아예 영화진흥위원회 개봉 지원을 시도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창작자에게는 허들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올해 제작 지원도 마찬가지고. 개인적으로 길을 내보려 하는 감독들에게 좋은 상황은 아니고, 나 또한 조언할 여지가 줄어든다.
이승주_ 단편은 그래도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유튜브가 있으니까. 작년이었나, 배급사와 단편 계약을 했는데 새로운 조항이 생겼더라. 1년 안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감독들이 영화제에서 성과를 못 내면 중간에 계약 해지를 요청하는 일이 있었나 보더라. 그냥 유튜브에 공개하는 것이 낫겠다면서.
오희정_ 배급사 입장에서는 이미 출품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인데 곤란하지. 초기 비용이 드는 데다 영화제 출품 비용도 점점 상승하는 추세다. 영화제에서 일하는 분들도 힘들다. 급여 수준은 그만그만한데, 할 일은 많고 볼 영화도 쌓여 있다. 결국 비용을 더 투입해야 하지만 이쪽에 그럴 만한 돈이 있나. 독립영화 한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창작자, 영화제, 배급사 등이 서로 비용을 부담하는 식으로 굴러갈 수밖에 없는데, 전체 파이가 줄어드니 자꾸 반목하게 된다. 창작자는 영화제도, 배급사도 믿기를 어려워하는 거다. 한때 아시아 다큐멘터리를 해외 배급했는데, 그 일을 중단한 데는 이유가 있다. 돈도 안 되고 의미만 찾기엔 상황이 너무 어렵다. 그 작품들을 사랑하는 자식처럼 여겼기에 배급까지 맡았던 것이지, 애초 수익을 바라보고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현재 우리 회사에서 제작하는 작품이 있고 해외 배급을 경험했음에도, 내 작품은 내가 배급하지 않는다. 그게 철칙이다. 난 프로듀서로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야 해서다. 한 작품만 붙잡고 늘어질 수 없고 동시에 여러 작품을 보살펴야 한다.
최근 독립영화 배급의 화두가 플랫폼이라는 점엔 다들 동의하는 듯하다. 그중 유튜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현재로서는 진입 장벽이 가장 낮을 뿐만 아니라 확장성도 기대할 만한 매체다. 창작자가 지닌 욕망의 본질이 더 많은 관객과 만나는 것이라면 유튜브가 제일 적합하지 않나. 그런데도 여전히 영화제를 가고 싶어 하고 극장 개봉에 도전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김영우_ 개인적 편견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간혹 스크리너를 유튜브 링크로 보내는 분들이 있다. 영화를 빨리빨리 봐야 하는 입장에선 사실 유튜브 링크가 편하다. 그래도 웬만하면 스크리너는 유튜브 말고 비메오 등을 통해 비공개 링크로 보내라고 말씀드린다. 내가 옛날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는데 유튜브 스크리너는 성의가 없어 보이거든. 이유를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접근성 문제 같더라. 나는 영화를 업로드하는 창작자 입장이 아니라 그 영화를 보는 수용자 입장이지 않나. 유튜브에서 무료로 보는 영상에 관해 애초 기대치가 높지 않다. 물론 어떤 공공 프로젝트로 제작된 단편을 유튜브에 전체 공개하는 것은 이해할 부분이다. 다만, 그 외의 경우라면 유튜브 영상을 그렇게까지 열심히, 기대하면서 보지는 않는다. 영화제를 다 돌고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열린 공간에 공유하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니 그냥 유튜브에 올려버리자’ 하거든. 근데 따져보면 조회수가 그리 높지 않다. 난 유튜브를 적합한 모델이 아니라고 본다. 적어도 현재 우리가 영화라고 부르는 형태의 영상물을 유통하고 관객과 만나는 데 있어서 적합한 모델은 아니다.
이나연_ 잠시 짚고 싶은 부분이 있다. 실제로 감독들이 “비메오 말고 유튜브로 스크리너를 보내면 심사에 영향을 주나요?” 묻거든. 누군가한테는 성의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방금 알았다. 감독 입장에서 보면 비메오는 유료 결제를 해야 하기에 경제적 부담이 될 수 있다. 올해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 심사에 참여해 단편영화를 100편가량 봤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모두 비메오보다 유튜브 링크로 스크리너를 전달한 경우가 더 많았고, 내게 그러한 차이는 심사 과정에서 단 1점의 영향도 주지 않았다.
김영우_ 단어로 인해 오해가 생길 수 있겠다 싶은데, 당연히 심사에 영향을 주는 문제는 아니다. 유튜브 링크여도 공개 범위를 다르게 설정할 수 있고, 그걸 택하는 창작자마다 맥락이 또 있을 거다. 아주 개인적 선호라고 봐도 좋은데, 비메오와 유튜브를 놓고 비교하면 내 경우엔 비메오로 영화를 볼 때 훨씬 귀찮다. 화질이나 속도 조정이 유튜브만큼 쉽고 빠르지 않다 보니 더 열심히 보게 된다. 그런 차이가 내게는 때로 창작자가 자기 영화에 갖는 애정도의 차이로 다가오기도 한다.
오희정_ 사실 질문을 받고 처음 생각해 봤다.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영화제와 극장을 대신할 수 있을까? 앞서 나왔던 얘기처럼 뷰잉의 속성 자체가 다른 것 같다. 영화 관람은 경험과 연결된다. 실내에 들어가서 문 닫고 불 끄고 갇힌 채로 의자에 앉아서 스크린을 보는 행위, 그것에 여태 긴 시간을 써 왔다. 즉 영화 관람에는 화면의 세부 사항에서 의미를 찾아가며 장면 전환과 사운드 등 여러 요소를 오롯이 느끼는 경험이 포함된다. 반면, 유튜브에서 영상을 시청하는 것은 집중도에서 한결 자유롭다. 영상 틀어 놓고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플랫폼과 뷰잉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 영화와 유튜브는 미스 매치로 보인다. 개인적 얘기를 하면, 나는 유튜브와 별로 친한 사람이 아니다. 큐레이션이 안 이뤄지면 내게 유의미한 것을 찾는 데 애를 먹어서 그렇다. 유튜브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MUBI 등 다양한 플랫폼이 생기고 또 자리를 잡았다. 근데 난 생각했던 것만큼 활발히 이용하지는 않게 되더라.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디 있는지 몰라서 못 보는 거다.
오히려 플랫폼마다 알고리즘을 사용해 큐레이션 해주느라 바쁜데?
오희정_ 그 정도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다. 특히 유튜브는 큐레이션이라기보다 오픈 소스를 늘어놓고 여러 가지를 전시하는 데 머무른다. 내 취향이나 선호에 상관없이 막 뻗어 나가는 느낌. MUBI 같은 경우는 넷플릭스랑 비교하면 좀 더 헤비 큐레이션을 선보이지만, 내게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내가 할머니 같은 사람이라 영화를 아직도 좀 고지식하게 보는 걸 수도 있다.
김영우_ 현재 시점에서는 대부분 비슷하게 생각할 거다. 어쨌거나 유튜브의 강점은 명확하다. 광범위한 관객에게 접근할 수 있기에 우리도 활용해야 할 면이 있다. 다만,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혹은 그게 정말 가능한지에 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단편을 극장 개봉하기가 어렵지 않나. 옴니버스로 다른 작품과 엮어 장편 사이즈를 만들거나 따로 이벤트를 기획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물론 최근 상업 단편의 개봉 사례가 생기긴 했으나 그걸 대안으로 보기엔 어렵고. 그렇다면 지금 인디그라운드가 운영하는 온라인 상영관 같은 형태가 우리의 대안인가? 온라인 상영관으로 영화를 보는 것과 유튜브를 통해 보는 것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나? 인디그라운드 온라인 상영관은 프로그래밍과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플랫폼이고 관객 수도 꽤 많다고 들었다. 근데 숫자라는 건 대체 어느 정도 돼야 유의미한 걸까? 이렇듯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다. 심지어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과 유튜브도 더는 새로운 창구가 아니지 않나. 최근 제작되는 작품은 일본 투자금을 받은 드라마와 숏폼 드라마에 집중되어 있고, 인력도 많이 이동한 상태다. 우리에게 무엇이 도움이 될지 생각했을 때, 플랫폼 자체가 답은 아닌 것 같다.
다큐멘터리는 어떤가. 예를 들어 시의성 있는 현장 다큐멘터리 쪽은 유튜브를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빠르게 영화를 공개해서 현실을 알리고자 한다면, 극장보다 온라인 상영에 마음이 기울 텐데.
강유가람_ 애초 두 플랫폼의 호흡이 다르다. 극영화든 다큐멘터리든 마찬가지다. 유튜브 채널에 올린다고 조회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수익을 내기도 생각보다 어렵다. 물론 유튜브에서 사회적 담론을 공유하며 뉴미디어 방송을 시도하는 여러 채널이 있다. 근데 신문사나 방송사가 운영하는 채널이 아니라면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미디어 활동가가 꽤 있지만, 본인 영상이 얼마나 소구력을 갖는지 확신하는 분은 많지 않을 듯하다.
오희정_ 배급 상담에서든 회사 작업에서든 항상 강조하는 것이 있다. 창작자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우리 팀 작업할 때는 대놓고 말한다. 이 영화의 타깃 관객이 누구냐. 고급스러운 취향과 안목을 가진 씨네필 해외 프로그래머를 만족시킬 거냐, 독립예술영화를 즐겨보는 관객을 겨냥할 거냐. 그것도 아니면 일반 대중을 위해 만들 거냐. 물론 아주 좋은 작품을 만들면 모두에게 가닿겠지만, 난 그런 결과를 마주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믿는 입장이다. 대상을 확실히 정해야 한다. 매우 아름답고도 난해한, 실험적 작품을 만들어 놓고서 ‘왜 대중이 내 영화를 원하지 않지?’ 고민하는 건 낭비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서든 돈을 벌고 싶어서든 가급적 많은 이에게 내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나의 욕망이라면, 그 목표에 걸맞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예술성, 작품성, 대중성 등 모든 요소를 확보한다면야 좋겠지만, 내 경험상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첫 작품 <피의 연대기>(김보람, 2018)를 제작할 때부터 타깃 관객을 빠르게 선택했다. 해외 촬영도 많이 했고 해외 마켓 경험도 있기에 일찌감치 해외 시장을 염두에 뒀지만, 첫 편집본을 보고 감독과 소통한 다음 방향을 수정했다. 가장 우선하는 관객이 누구인지 물으니 국내 관객이라는 결론이 나왔거든. 그 후 코어 관객을 고려하며 편집을 거듭했다. 결국 창작자의 욕구와 욕망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유튜브에 가고 싶으면 처음부터 유튜브 플랫폼에 효과적인 언어를 택해야 한다. 영화는 영화대로 만들고 나중에 “빨리 공개하고 싶으니까 유튜브에 올리겠다”고 하면 승산이 없다. 그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는 것 같다.
김영우_ 지금 나온 이야기가 실은 해외 배급의 핵심이다. 국내와 해외 배급의 경계는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국내 관객이 만족한 작품은 해외 영화제도 간다는 말이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15년 넘게 일했는데, 국내에서는 안 되다가 해외에서 갑자기 잘 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물론 평가는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버닝>(이창동, 2018)은 국내 개봉 당시 성적은 저조했으나, 해외에서는 큰 호응을 받았다. <기생충>(봉준호, 2019)이 전 세계를 휩쓸었지만, 국내 관객 중엔 봉준호 감독 작품 중 최고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어쨌든 이런 차이를 떼어놓고 보면, 국내나 해외 한쪽에서만 일방적으로 인정받은 영화는 없다. 독립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측면이든 장점과 개성을 지닌 작품이 국내든 해외든 가는 거다.
해외 영화제 상영 및 수상하는 감독들은 꾸준히 나온다. 다만, <벌새>(2018) <기생충> 등 이후에는 그런 성과가 국내 개봉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해외 영화제에서 눈부신 실적을 낸 작품조차 관객에게 외면당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오희정_ 기본적으로 현재 국내 개봉해서 잘 되는 영화가 없다. 해외에서 잘 됐는데 국내에서는 안 된다고 볼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 잘 된 작품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해외에서 주목하는 한국 영화는 어떤 작품인가. 다큐멘터리를 해외 배급하는 경우, 국내 공개한 버전과 편집 방향이 달라지는 일이 종종 있다. 예컨대 세월호 참사라든지 군대를 주제로 한 영화라고 할 때, 우리는 이미 그 정서를 알지 않나. 이걸 해외 관객에게 어떻게 소개할지, 어떻게 맥락을 쌓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극영화는 취향 차이가 점점 생긴다고 해야 할까. 해외 관객이 기대하는 한국영화 혹은 아시아영화와 현재 국내 관객이 선호하는 콘텐츠 사이의 갭이 크다.
김영우_ 해외 영화제가 선택한 작품도 특정 장르나 취향에 집중된 면이 있다. 액션과 스릴러 등 장르물이 대부분이고, 근래 배우가 두드러지는 영화가 추가됐다. 아무래도 한류라는 흐름을 무시할 수 없고, 배우들 또한 업력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본다. 다만, 이 가운데 독립영화를 향한 주목도가 낮아진 점이 안타깝다. 독립영화 중에서도 드라마가 탄탄하고 사회적 이슈를 담은 작품이 해외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힘을 얻는 걸 지켜봤는데, 이 경우가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 문제다. <괴인>(이정홍, 2023)을 보고 웬만한 해외 영화제는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안 되더라. 한국영화를 10년, 20년 쭉 팔로우했던 프로그래머들은 영화에 담긴 여러 맥락을 이해할 텐데, 사람이 바뀌니 어려운 거다. 몇 년 해서는 무슨 영화인지 이해도 안 되고 따라잡기 힘들거든. 영화 자체로도 완결성이 필요하지만 맥락이라는 게 있잖나. 이 작품은 이런 흐름에서 특이하구나, 기존과 다른 시도를 했구나, 그 차이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국 독립영화를 향한 이해도와 관심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듯해 아쉽다.
자연스레 국내 단편영화 중 장르물을 표방하는 작품이 점차 늘고 있다. AI, 디스토피아, 학교폭력, SNS 등 비슷한 소재가 반복해서 등장하고, 표현 방식도 기존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야만 영화제에 갈 수 있다고, 상업 현장에서 기량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김영우_ 롤모델이 있으니까. 특히 단편에서 OTT로 넘어간 경우는 <몸값>(이충현, 2015)을 비롯해 몇 가지 선례가 있다. 단편을 기반으로 장편 제작에 성공하기도 하고.
이승주_ 감독 입장에서 말하면 오퍼도 많이 들어온다. 단편을 보고 연락하는 거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버티다 보니 난 결국 이렇게 됐지만. (웃음)
이나연_ 여러 생각이 든다. 솔직히 윤석열 정부 들어서고 나서 ‘난 그냥 세상과 차단된 채 살아야겠다’ 했는데도 이따금 어떤 위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여성 영화인 작업실을 운영하는데 작업실 멤버가 한 명밖에 안 남았다. 월세를 낼 수 없어서 다들 방을 빼는 거다. 그만큼 일이 줄었고 제작 들어가는 작품도 없다. 난 내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좋다. 창작자로 살면서 인생의 많은 부분이 변화했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가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됐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런 나조차 올해 너무 무기력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믿을 수 없는데 광장은 잠잠하고. 나라도 피켓 들고 나가야 하나 싶으면서도 무기력하니까 계속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 아주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그 시기를 조금씩 뚫고 나갔다.
오희정_ 공유해주면 좋겠다. 이 무력감을 어떻게 떨쳐 내는지 궁금하다.
이나연_ 독립영화가 나한테 뭐지? 왜 나는 독립영화가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이런 질문에 혼자 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평생 독립영화만 할 건 아니지만, 지금 시점에서 예술은 무엇이고 독립영화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같은 본질적 질문이 내게 필요했다. 자문자답하는 과정에서 불안과 답답함이 얼마간 해소됐다. 앞서 언급한 심사를 하면서도 느꼈는데, 창작자들이 자꾸 쫓기듯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 상담 중에 “제발 편집 잘하세요. 편집에 공을 들이세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마감일이 다가오고 마음은 바쁘니까 누가 봐도 성급하게 편집해서 출품해 버린다. 근데 편집은 영화를 아예 새로 만들 수도 있는 과정이거든. 시나리오를 1고, 2고, 3고 업데이트하듯 편집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그 일에 소홀하다는 것은 결국 창작자로서 본인 작품에 애정과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상담에서 되게 적나라하게 묻는 분들이 있다. “어떻게 하면 영화제 많이 가요? 어떻게 하면 상 받아요?” 근데 정작 이유가 없다. 왜 영화제를 가고 싶은지, 대체 뭘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든 것인지. 기본적인 질문에는 하나도 관심 없고 결과를 보느라 바쁘다. 작품보다 막연한 성과에 목표를 두며 자신을 지우는 듯해 마음이 안 좋다. 내가 정의하는 예술은 솔직함이다. 내가 나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은 예술 안에서만 가능한 일 같다. 근데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작지원 심사하면서 깊이 절망했다. 한국 영화계 망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말 솔직한 작품, 감독 자신에게 중요한 작품이 별로 없다고 느껴서다. 물론 정책과 제도도 심각한 문제인데, 동시에 창작자들 또한 반성하고 토론해야 하는 시기라고 본다. 우리가 우리 작품을 예술로 인정하고 애정 있게 다루지 않으면 상황은 더 악화할 것 같다.
재밌는 독립영화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은 몇 년 전부터 들려왔다. 결국 사회 제도와 개인의 태도 모두 문제라는 뜻인가.
이나연_ 창작자인 나도 언젠가부터 독립영화를 기대하지 않는데, 일반 관객은 오죽할까. 비관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담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거다. 창작 환경에 대해서도 말하고 작품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영화제 떨어지면 끝, 이건 뭔가 잘못됐다. 당신 영화에 어떤 가치가 있으며 뭘 시도했는지 서로 발견하고 이야기할 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영화과에서도 그런 경험을 하기가 어렵거든. 학교에서 “이런 거 좋아하면 제작지원 못 받아. 평생 입봉 못해.”라는 말을 협박처럼 듣고 배급상담소를 찾아와서 “진짜 그래요?” 묻는 경우도 있다. 창작자는 자신이 어떤 취향과 언어를 가진 감독인지 스스로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것을 시도할 수 있도록 존중받아야 한다. 근데 현재 예술대학에서 그러한 창작 환경을 제공하고 있나? 왜 우리는 충분히 솔직한 작품을 만들지 못할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결론은 몰개성이다. 나다움을, 우리만의 다름을 잘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서로 만나서 으쌰으쌰 할 만한 장이 필요하다.
김영우_ 창작자는 아니지만, 최근 영화들이 비슷비슷하다는 진단에 관해 두 가지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일단 이는 우리나라 영화 교육 시스템이 일정 수준을 넘어섰기에 나타난 결과다. 양질의 영화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교육과 지원 제도가 탄탄하다 보니 그에 따른 일종의 반작용으로 엇비슷한 영화들이 생산되고 있다. 두 번째로 영화제가 해왔던 역할을 조명하고 싶다. 과거엔 영화제마다 커뮤니티가 존재했다. 영화제와 상영 감독, 관객이 유대감을 주고받았고, 영화제 운영진은 창작자와 네트워킹하는 데 힘썼다. 과거엔 일을 잘했는데 현재는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영화제 만능론을 펼치려는 것도 아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문화도 환경도 자연스레 변하기 마련이다. 다만, 창작자가 맞닥뜨리는 첫 번째 관문이 여전히 영화제라고 한다면, 어떤 기능은 복원하고 활성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영화제 내부에서도 네트워크 기능을 되살리자거나 느슨한 형태의 커뮤니티를 복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줄곧 나오고 있다. 사실 창작자 대부분은 영화진흥위원회 지원 제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개인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조건은 창작자한테 아주 치명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근데 현재 창작자들은 의견을 모으기엔 지나치게 파편화되어 있다. 결국 아는 사람만 알고 분노하는 사람만 분노하는 상황이다.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이들이 움직이지를 않는 거다. 현재 독립영화 쪽 정책 활동을 살펴보면 창작자가 아닌 활동가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전엔 창작자가 싸웠거든. 그래야 바뀐다. 창작자들이 나서서 직접 목소리를 내야 주장에 힘이 실리고 주변도 움직인다.
강유가람_ 오늘 만나서 다행이다. 이나연 감독한테 상담받고 싶다. <럭키, 아파트>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요즘 독립영화 재미없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무겁기도 하고. 어떻게든 모여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나연_ 그 말이 독립영화 감독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말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가 필요하다. 나는 왜 요즘 한국 독립영화가 재미가 없다고 느끼지? 이 작품들은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있지? 여러 사람들과 모여 질문하면서 닫힌 문을 열고 싶다.
오희정_ 우리조차도 모이는 일이 없으니까. 이런 기회가 아니면 다들 한자리에 나오기가 쉽지 않다.
김영우_ 서로서로 들어줘야 한다. “너 혼자가 아니야”라는 얘기를 의식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결국 현장에 있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다가가서 들어주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배급사 직원이 아니라 영화제 프로그래머와 감독, 피디가 배급상담소를 맡은 이유겠지. 참여자에게 실무적 도움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동료나 선배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바람으로 멤버가 꾸려졌구나 싶다.
오희정_ 미봉책을 고집하지 말고 본질을 고민할 때다. 일일이 따라잡기엔 이 변화가 너무 거세고 빠르다. 내가 만나는 창작자들도 조급함을 토로한다. 시나리오 초고도 안 나왔는데 내년 촬영 계획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정성과 장인 정신, 우리가 그걸 잃어가지 않나 싶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팔릴 만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면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이나연 감독이 말한 절망감이 무엇인지 알겠다. 작품을 선택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책임감을 더 가져야겠다.
이나연_ 참 슬픈 일이다. 단편영화는 대부분 청년 세대가 만들지 않나. 그들이 자기 시각과 목소리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서 슬프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면서도 각자 무력감에 잠겨 있다 보니 연결고리를 만들기 쉽지 않은 것 같다. 앞서 창작자가 목소리 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찾아보면 목소리 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독립영화를 아끼는 감독도 많다. 뭐부터 시작해야 할까? 서로 인사 나누고 대화할 장이 생기면 좋겠다. 그간 감독 중심으로 네트워킹이 이뤄져서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좀 더 확장된 형태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