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에 노트를 펼치고 이름을 썼다. 단정한 한자 밑엔 한글 뜻을 옮겨 적었다. 하나의 여동생 이름은 소원이다. 분단의 아픔을 겪은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통일은 영원한 과제이자 바람이고, 교포 3세인 배우의 부모는 ‘하나’가 되고 싶은 ‘소원’을 딸들에게 이름으로 새겨 주었다. 청향은 맑은 향기라는 뜻이다. “심청이랑 같은 청이에요. 우리말로 발음하는 울림이 좋아서 그렇게 지었대요.” 청향의 여동생인 사량은 비단 사에 어질 량을 쓴다. 풀이하면 비단처럼 곱고 어진 마음. 청향과 사량의 부모 또한 재일조선인 3세다. 딸들이 좁은 땅에 매몰되지 않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하며 이름을 붙였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이원식, 2024)에 출연한 강하나, 조청향, 조사량은 접점이 많다. 글자마다 고심한 티가 역력한 이름을 지닌 세 배우 모두 오사카 출신의 교포 4세이고, 재일조선인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창작극을 선보이는 극단 달오름에서 동고동락했다. 나이로는 막내인 강하나가 <귀향>(조정래, 2016)을 통해 가장 먼저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조청향과 조사량은 <조선인 여공의 노래>를 계기로 이원식 감독과 또 다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중이다. 개봉 일정에 맞춰 한국을 찾은 세 배우를 한자리에 초대했다. 언니, 동생 하며 수다를 떠는 사이 대화엔 국어와 일어가 자유롭게 섞였다. 사량의 말을 청향이 통역하고, 청향의 답에 하나가 다시 질문을 던지는 식이었다. 조금씩 보태고 다듬으며 완성한 문장들은 어느 때보다 또렷이 들렸다. 어릴 적부터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끈질기게 고민한 이들다웠다.
셋은 언제 처음 만났나.
조청향_ 하나 어머니가 운영하는 극단 달오름 공연을 중학생 때부터 봤다. 달오름이 학교에서 공연을 많이 하거든. 당시 하나는 초등학생 아니면 중학교 1학년 정도였던 것 같다. 달오름에서 작품을 함께하게 됐던 것은 내가 성인이 된 다음이다. 이후 극단 달오름의 객원 배우로 10년 가까이 활동 중이다.
강하나_ 그러고 보니 오랜 인연이다. 청향 언니가 20대 초반, 나랑 사량 언니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함께 무대에 섰다.
조청향, 조사량 배우는 자매다. 어쩌다 둘이 같은 꿈을 꾸게 됐는지 궁금하다.
조사량_ 언니가 연기를 먼저 시작했기에 난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도 미술을 전공했다. 근데 우연히 학교 연극부 활동하면서 연극이 참 재밌다고 느꼈다. 10대 시절엔 내 마음이나 생각을 밖으로 꺼낼 수 없어서 갑갑하지 않나. 근데 연기를 통해 표현하니 즐겁더라.
청향 배우도 동아리에서 연기를 접했나.
조청향_ 고등학교 연극부에 들어간 이후,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근데 연극에 매료됐던 시점은 훨씬 이전이다. 어릴 적 달오름의 공연을 봤던 것이 계기였다. ‘와, 이런 세계가 있구나! 나도 꼭 해야겠다!’라고 생각했고, 일부러 연극부가 있는 학교에 진학했다.
‘이런 세계’는 뭘 의미하나. 무대가 내뿜는 에너지, 배우들의 열기, 작품 주제 등 여러 가지가 눈에 들어왔을 텐데 특히 끌렸던 것은 뭐였는지 궁금하다.
조청향_ 배우가 내 눈앞에서 움직이며 감정을 표현하는 상황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내게는 그만한 충격이 또 없었다. 연극을 보면서 곧장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청향, 조사량 배우는 2인극 <치마저고리>를 포함해 여러 작품에 동반 출연했다. 자매이자 동료 배우로 무대에서 함께 호흡하는 것은 어떤 경험인가.
조청향_ 배우라는 길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동생과 특별히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그냥 속으로 걱정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유명해지지 않는 이상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나. 나보다 부모님이 더 걱정하셨을 거다. 한 명도 아니고 둘씩이나 배우가 되겠다고 하니 생각이 많으셨겠지. 동생과 한 무대에 서기 시작했을 무렵엔 되게 어색했다. 사량이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난 대화하는 것도 괜히 부끄럽더라. 화도 났다. 무대에서 하나가 실수하면 그럴 수 있지 싶은데, 같은 실수를 사량이가 하면 화가 막 나는 거다. 싸우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면서 차츰 익숙해졌던 것 같다.
조사량_ 사실 난 언니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연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난 그냥 달오름 작품에만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다른 극단, 다른 작품에서 배우로 활동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겼다. 근데 시간이 흐르면서 달오름 밖에서도 연기할 기회가 생겼다. 한 번은 언니랑 오사카의 다른 극단 공연에 함께 출연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부끄러워졌다.
조청향_ 달오름에서는 우리가 자매라는 사실을 다들 아니까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든. 근데 다른 곳에서는 뭔가 새롭게 인사하고 소개하는 상황을 마주하니 처음엔 좀 어색하긴 한 것 같다.


강하나 배우는 재작년 서울에서 <치마저고리>를 1인극으로 소화하기도 했다. 연기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했는데, 처음 무대에 선 것은 4살이었다고.
강하나_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래도 무대에 오르는 상황에 관해 나름 인지하긴 했던 것 같다. 당시 엄마가 달오름을 창단하기 전이었다. 조연출을 맡은 작품에 아역이 필요했는데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한번 해봐라. 그게 끝이었다. 정말 얼떨결에 데뷔했다.
할머니 김창생은 재일조선인 2세 소설가이고, 어머니 김민수는 재일조선인 3세이자 극단 달오름 대표를 맡고 있다. 어릴 적부터 예술 활동을 일상으로 흡수하는 동시에, 예술을 통로 삼아 재일교포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였을 텐데.
강하나_ 힘든 순간도 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재일교포라는 정체성도, 예술도 이미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커다란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많이 고민하고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정체성을 버리거나 예술을 관두고 싶은 적은 없었다. 당연히 거쳐 가는 삶의 과정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세 배우 모두 국가와 역사, 내 존재를 둘러싼 고민을 어릴 적부터 해왔다. 남들은 생각하지 않아도 사는 데 별 지장 없는 영역을 계속해서 다뤘다는 뜻이고, 정체성을 만들고 발견하는 와중에 연기를 일찍 시작했다. 사춘기를 치열하게 보냈겠구나 싶다. 재일교포라는 점이 배우가 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을까?
강하나_ 말을 듣고 보니 그렇다. 실은 조선학교에 다녔기에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다. 주변에 워낙 비슷한 사람이 많으니까. 근데 얘기한 대로 일본에서 태어난 일본인,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등은 자신의 뿌리라든지 정체성에 관해 생각할 일이 별로 없지 않나. 그렇게 따지면 감사하기도 하다. 난 초등학생이 될 무렵부터 계속 생각했으니까. 물론 그래서 더 어렵게 사는 면도 있지.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차별과 편견을 겪기도 하고. 그래도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상처받는 일이 적지 않았으나, 그만큼 얻는 것도 많았다.
조청향_ 중학교까지 조선학교에 다니고 일본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뭐랄까, 처음으로 일본인 커뮤니티에 속한 셈이었다. 조선학교에서는 조선 사람으로서 긍지를 갖도록 가르친다. 다 같이 손잡고 힘 있게 살자. 우리 말과 역사를 배우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해주시거든. 나 또한 그렇게 배웠고 여전히 자부심을 느낀다. 근데 일본 사회에서 생활하며 충격받았다. 재일교포라는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더라. 조선인으로서 내가 배우고 고민했던 것들이 일본 사회에서는 아주 작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존재구나. 대부분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구나. 그걸 깨닫고 나니 무서웠고 짜증도 났다. 이 짜증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고민하던 무렵, 연극을 만났던 거다. 내게 연극은 장소다. 생활하고 표현하는, 자기가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는 장소. 처음 무대에 섰던 날이 기억난다. 조명을 받고 관객 앞에 등장했을 때, 해방감과 안도를 동시에 느꼈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구나. 여기 있으면 나다울 수 있겠다.
조사량_ 언니랑 비슷한 시기에 일본학교로 전학했다. 중학교 1학년까지 조선학교에 다니다가 2학년부터 일본학교에 갔는데 학교생활이 쉽지 않았다. 당시엔 하루빨리 일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일본인이 되면 차별도 없고 친구도 생기고, 학교 생활을 재밌게 할 수 있을 듯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전혀 상관없이 사는 일본 학생들을 보면서 ‘나도 좀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일본학교에 적응해 갔는데, 막상 연기를 시작하고 나선 “극단 달오름 작품에만 출연해도 좋다”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빨리 일본인이 되고 싶다는 바람과 어긋나는데.
조사량_ 두 마음이 늘 공존했다. 일본인이 되고 싶은 나, 조선인으로 살고 싶은 나. 한참 고민하던 시기에 달오름의 민수 언니를 만나서 대화했다. 언니가 그러더라. 일본학교에 가도, 일본인이 된다고 해도 난 계속 조선 사람이라고. 일본인과 조선인, 그 경계에 갇히지 말고 ‘사람’으로서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고. 그 말이 나한테 큰 힘을 줬던 것 같다.
민수 언니는 누구?
강하나_ 우리 엄마. (웃음) 이상하게 재일조선인 사회에 이모 삼촌 호칭이 없다. 나이가 스무 살 정도 차이 나니 원래라면 이모라고 불렀을 텐데, 왠지 조선인들은 그냥 언니라고 칭한다. 이모와 삼촌은 진짜 친척 관계에서만 사용하는 호칭이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도 민수 언니가 감독과 배우를 연결해 줬다고. (웃음)
강하나_ 이원식 감독님이 극단으로 연락을 주셨다. 처음엔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고, 그 후 엄마에게 다른 교포 배우도 더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셨다고 한다.
조청향, 조사량 배우를 추천한 이유는 들었나.
조청향_ 20대 배우를 찾는다는 이야기 외엔 못 들었다.
조사량_ 그리고 영화 촬영 시기에 스케줄이 딱히 없는 배우들. (웃음) 감독님이 오사카로 와서 같이 미팅한 다음 캐스팅이 결정됐다.
감독의 첫인상은 어땠나. 조청향, 조사량 배우는 영화 작업이 처음이다 보니 확신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조청향_ 그걸 뭐라고 하지, 優しい(야사시이)? 아, 상냥했다. 분위기도 말투도 부드러웠다.
강하나_ 오사카에서 연극 활동하며 만나는 한국 남자들은 주로 제주와 부산 출신이거든. 기 세고 강렬한 이미지를 지닌 분들과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감독님을 보고 이런 분도 계시는구나 했단다.
조사량_ 난 조금 궁금했다. 감독님이 속으로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더라. 웃는 얼굴에 말투도 친절한데, 이상하게 속을 알 수 없는 느낌? (웃음)
강하나 배우는 일본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귀향>(조정래, 2016)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2017)에 이어 오사카 방적 공장에서 일했던 조선인 여공의 역사를 따라가는 이번 작품까지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를 다룬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고 있다. 실존 인물들의 삶과 죽음을 표현하는 일이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나.
강하나_ 배우로서는 이미지가 이대로 고정되면 어쩌나 싶어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재일교포 배우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일본인도 한국인도 잘 모르는 이야기가 나를 통해 전달되는 거니까. 내게 그런 역할이 온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영화 말고도 재일교포 관련 인터뷰라든지 영상 촬영 등 곳곳에서 제안이 많은데, 가능하면 다 참여하고 싶다. 물론 재일교포 강하나가 아닌 배우 강하나로서도 계속 도전하고 싶고.
두 배우도 이번 작품에 참여하며 무게감을 느꼈을 텐데.
조청향_ 예술가로서 의지와 욕구를 지닌 분들과 작업하고 싶다. 자기가 이것만은 꼭 표현해야겠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하는 분들. 그들의 예술에 내가 도움이 되었으면 싶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니 부담이 있기는 해도 포기하지는 않는다. 이원식 감독님이나 김민수 대표님 같은 분을 보면 존경스럽다고 느낀다. 그런 마음을 담아서 배우 활동을 지속하는 면도 있다. 내가 지금 보탤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힘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함께하고 싶다. 일단 시작하면 뭐라도 배우지 않나. <조선인 여공의 노래>를 찍은 덕분에 조선인 여공의 삶을 공부할 수 있었다. 어떤 일이든 부담은 따라올 테지만 늘 배우는 마음가짐으로 연기하려 한다. 배울 것이야 무한하니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고 싶다.
조사량_ 작품을 만들어 가는 구성원으로서 부담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혼자 연기하는 것도 아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우리 셋이 부담을 나눠 가졌다고 본다. 커다란 부담도 쪼개면 좀 덜하지 않나.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다큐멘터리임에도 배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과거를 재연하고 재현한다. 세 배우는 영화에서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한 조선인 여공을 만나고, 그들이 존재했던 일터에 머무르고, 활자로 남은 증언을 소리 내어 낭독하는데, 마치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되살리는 행위처럼 보이더라. 연기하면서 각자 자신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인식했을지 궁금하다.
강하나_ 여공과 마주치는 그 장면은 내게도 인상적이었다. 촬영하면서도, 모니터하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둘 다 내가 연기한 인물인데, 다른 사람인 것만 같고 그곳에 실제로 여공이 와 있는 듯했다. 촬영하면서 이따금 여공들과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증언을 읽으면서는 당시 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조사량_ 지금과 다른 시대이고 내가 모르는 인물이기에 상상해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의식을 가지고 상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조사량이라는 배우로서 여공을 연기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조청향_ 사량이 얘기에 덧붙이면, 우리가 했던 연기는 평소의 그것과는 다르지 않나. 대본에 나온 특정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여공들의 삶을 떠올리며 한 장면 한 장면 함축적으로 표현해야 했다. 나는 여공들의 역사에서 유의미한 장소를 방문해 증언을 낭독한다는 설정이 굉장히 흥미롭다고 느꼈다.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어려움과 재미가 동시에 찾아왔다.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도 ‘저기서 증언을 읽고 있는 사람은 나인가, 아니면 그 여공인가?’ 생각했다. 감독님은 그 모든 효과라든지 의미를 염두에 두셨기에 초반부터 이 역할을 재일교포 배우에게 맡기겠다고 정하신 것 같다. 현재를 살고 있는 교포 4세 여성이 당시 여공들의 마음을 곱씹고 연기했던 거다. 그러면서 하늘로 정신을 보낸다고 해야 할까. “보고 계십니까?”라는 느낌으로 작품에 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사량_ 하나랑 둘이서 노래를 불렀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여공들이 혼자가 아니었구나, 이렇게 함께 의지했겠구나.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강하나 배우는 영화에서 실제 1930년대 방적 공장에서 일했던 신남숙 씨와 만난다. 오랜만에 할머니 집을 방문한 손녀처럼 정다워 보이더라. 한국어와 일본어를 번갈아 사용하는 대화 방식도 자연스럽고.
강하나_ 사실 오사카에서도 1세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거의 없다. 우리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신남숙 할머니를 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설렜다. 한편으로는 처음이다 보니 긴장하기도 했다. 1세를 실제로 만난다는 건 나를 포함해 우리 또래에게 드문 일이거든. 근데 이런 말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너무 귀여웠다. (웃음) 친할머니처럼 따뜻했고, 대화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곧장 친밀감이 피어났다. 아마 그 장면을 보면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못 알아듣는 단어가 나와서 집중이 좀 깨질 수도 있다. 할머니가 오사카에서 오래 사셨다 보니 언어가 계속 섞이거든. 한국말 하시다가 오사카 사투리가 툭 튀어나오는데, 난 그런 대화가 무척 편안했다. 머릿속에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귀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
조청향_ 우리도 평소 대화하면 일어와 국어를 섞어 쓰거든.
강하나_ 할머니의 ‘한본어’가 너무 익숙하게 들려서 인상 깊었다. 기회가 되면 또 뵙고 못다 한 이야기를 청해 듣고 싶다.
영화를 준비하며 따로 공부해야 할 부분도 많았을 듯하다. 살아본 적 없는 시대를 상상해야 했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조청향_ 감독님이 보내준 자료 중 증언집을 계속 읽었다. 전부 낭독하지 않더라도 내용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몇 살에 일본으로 와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어땠는지, 그런 증언을 반복해서 읽으며 당시 상황을 그려 보려고 했다.
조사량_ 둘에 비하면 난 한국어가 훨씬 서툴다. 증언집을 펼쳤는데 어려운 단어가 많았다. 처음엔 한 문장 읽는 데만도 긴 시간이 걸렸다. 사전에서 의미를 찾으며 조금씩 공부했다.
이번 작업은 배우들에게 오사카라는 지역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도 됐을 것 같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영화 촬영하며 생경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싶은데.
조청향_ 안 그래도 공간을 보면서 감독님에게 감탄했다. 이런 곳을 어떻게 찾으셨나 싶었지. 촬영 장소에 도착하면 어느 곳을 둘러봐도 드라마가 느껴졌다. 연기자로서 책임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조사량_ 양돈장에 갔을 때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되게 충격적이었다. 당시 여공들이 ‘조선 돼지’라는 멸칭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멀지 않은 과거에 ‘조선 돼지’로 불리던 사람들이 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머릿속이 복잡해지더라.


셋이서 모닥불을 피우는 바다는 어디인가.
조청향_ 오사카 남쪽인데 실은 그곳이 관광지에 가깝다. ‘린쿠타운’이라고 대형 아울렛이 근처에 있거든. 대개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다행히 한적한 해변을 찾아서 찍었다.
강하나_ 원래 촬영지는 다른 곳이었다가 변경된 것으로 기억한다. 해변 이름은 마블비치. (웃음) 난 키시다 공장이 기억에 남는다. 십자가가 그려진 빨간 벽돌 공장. 실제로 마주하니 담장이 진짜 높더라. 어린 여공들이 여기에 갇혀서 지냈겠다고 생각하니 슬펐다. 슬프다는 한마디로 표현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이 안에서 종일 노동에 시달리다가 일 끝나면 바로 기숙사 들어가고, 외출도 거의 못 하며 살지 않았나. 촬영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억울하고 화가 나면 자주 노래를 부르곤 했다는 조선인 여공의 증언이 영화에 나온다. 셋은 분하고 답답할 때, 어떻게 마음을 달래나.
강하나_ 난 운다. 부정적인 감정을 터뜨리기보다는 혼자 속에 담아두는 편이다. 그러다 나중에 폭발하면 우는 거다. 아니면 일기를 쓴다.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좀 정리되더라. 그래도 마음이 복잡하다 싶으면 평소 좋아하는 일을 한다. 음악을 듣는다든지, 친구들이랑 만난다든지. 친구한테도 속내를 전부 털어놓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함께 놀다 보면 충전하는 느낌이 든다.
조사량_ 나도 힘든 일이 생기면 주변에 별로 얘기하고 싶진 않더라. 부모님과 언니랑 넷이 한집에 사는데, 식구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혼자 밖으로 나간다. 밤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생각을 비우고, 때로는 몸에 나쁜 짓도 좀 한다. (웃음)
강하나_ 술 마신다는 얘기다. (웃음)
조청향_ 나도 글을 쓴다. 뭔가 상대를 저격하듯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쓰는 것은 아니고, 당시 상황을 글로 적으며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려고 한다. 운동도 한다. 운동하면 잠도 잘 오고 좋다. 헬스와 요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
혹시 일기 외에 다른 글도 쓰나.
조청향_ 요즘은 거의 안 쓰는데 고등학생 때까지는 대본을 열심히 썼다. 에세이도 썼고,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 인생을 회고하는 글도 써본 적이 있다.
향후 연출이나 각본 작업도 시도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조청향_ 당장은 아니다. 배우가 재미있으니 연기에 집중하려고 한다. 안 그래도 한 선배에게 여쭤본 적이 있다.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면 좋을지, 진로 선택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 선배는 배우 일에 매진하라고 하더라. 배우는 지금밖에 못 하지만 글 쓰는 일은 나중에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다고. 내 생각엔 연기도 나이와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일이긴 한데, 어쨌든 선배의 조언을 듣고 방향이 좀 잡혔다. 지금 가장 재밌는 일을 하고, 만약 연기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오면 깔끔하게 포기하자. 동시에 글은 계속 쓰자. 당장 발표하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쓰다 보면 시기가 오지 않겠나.
강하나 배우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 재학 중이다. 연기 유학을 온 셈인데, 일본 예대에 진학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일본에는 연기 전공 학과가 설치된 대학이 드물다고 듣기도 했는데.
강하나_ 일본에도 예대가 있지만, 한국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실은 나도 일본 예대를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았는데, 청향 언니 말로는 한국 대학 커리큘럼이 좀 더 체계적인 것 같다고 하더라. 한국은 연기 학원도 많고 일단 대학 입시부터 굉장히 치열하지 않나. 현재 활동하는 배우들의 프로필을 보면,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한 분들이 많다. 근데 예전이면 몰라도 요즘 일본 배우 중에 예대 출신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연기를 어떻게 시작하나. 세 배우처럼 극단 활동이 일반적인가.
조청향_ 보통은 사무소에 들어간다.
강하나_ 한국으로 치면 소속사와 계약하는 거다. 대개 모델이나 아이돌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해서 이후에 배우로 전향하는 경로다.

그렇다면 한국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되려 길을 우회한다는 느낌이 들었을 법도 한데, 어떻게 결정했나.
강하나_ <귀향>(조정래, 2016) 촬영과 개봉을 경험하며 한국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도 이전까지 한국 대학에 진학할 생각은 없었다. 평범하게 일본 인문계 대학에 가서 당시 관심 있던 심리학을 전공하려고 했다. 근데 고등학교 3학년, 그것도 5월쯤 불쑥 한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계속 연기하고 싶고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은데, 일본에서 대학에 다니는 게 좋은 선택일까?’ 지금보다 한국말이 서툴렀던 때다. 환경을 고려하면, 언어와 연기를 동시에 공부할 수 있는 한국에서 대학 생활하는 것이 낫겠더라. 한국예술종합학교 입시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부랴부랴 준비했다. 감사하게도 재외국민 전형이 있어서 1차 시험을 일본에서 치렀다. 한국에 가서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연기 영상을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워낙 갑작스럽게 결정했기에 되면 좋고 안 되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불합격하면 일본에서 엄마랑 또 작품 하겠지’ 하며 마음을 비우고 지원했는데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었다.
졸업을 앞두고 있다. 현재 목표는?
강하나_ 고민이 많은 시기다. 나는 어딘가에 취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하기로 결정한 사람 아닌가. 그렇다고 먹고사는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으니 생각이 많아진다. 한편, 배우로서 이미지를 고민하기도 한다. 내가 재일교포라는 건 주변에서 다 아는 사실인데, 난 지금보다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고 싶거든. 학교생활 잘 마무리하고 한국에서 꾸준히 오디션에 참가할 예정이다.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이 자부심의 원천이겠으나, 한편으로는 주어지는 역할이 한정적이기에 갈증도 느낄 듯하다. 교포라는 정체성도 따지고 보면 배우를 이루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인데, 거듭 이를 바탕으로 작품에 소환되는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조청향_ 달오름뿐 아니라 다른 극단에서 객원으로 활동할 때도 내 정체성을 깊이 생각해 주는 분들과 많이 만났다. 역시 예술을 하는 분들이어선지 그런 정체성을 갖고 있는 나에게 매력을 느끼고, 같이 작업하자는 제안도 꾸준히 들어온다. 특히 오사카는 교포들이 많은 지역이잖나. 교포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일본 연극 연출가도 여럿이다. 내겐 그러한 만남과 작업 모두 커다란 기쁨이다. 그분들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는 데에 내가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다만, 요즘엔 그것만으로 연기 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재일교포 역할, 일본인 역할, 그런 구분을 전부 떠나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싶다. 재일교포 조청향뿐만 아니라 배우 조청향으로서 경험을 더 쌓고자 한다. 연기력을 포함해 배우로서 수준을 높이고 싶다는 마음이다.
배역만 놓고 보면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나.
조청향_ 악역 하고 싶다.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빌런처럼 강렬한 인물에 끌린다.
조사량_ 난 맑고 깨끗한 역할. 유명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욕심은 없다. 부모님이 들으면 실망하시겠지만, 사실 내게 중요한 것은 인지도가 아니라 표현 방식과 내용이다. 배우로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나 또한 다양한 역할에 갈증을 느끼고, 그중에서도 순수한 인물을 꼭 한번 맡고 싶다.
강하나_ 순수한 인물 많이 하는데? 청소년 역할도 계속하고.
조사량_ 근데 대부분 아픔이 있는 인물들이었지. 마음에 어두운 면 없이 그저 밝고 명랑한, 세상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역할 하고 싶다. 말하자면 정통 소녀 히로인.
강하나_ 난 멜로가 궁금하다. 로맨틱 코미디는 내 실력으로 아직은 어려울 것 같고. 아니면 아예 미쳐서 막 폭주하는 역할 해보고 싶다. 나랑 결이 완전히 다른 역할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다들 안 해본 역할을 원하는구나. 조청향, 조사량 배우는 이원식 감독과 차기작도 함께했다고.
조청향_ 2년 전 <조선인 여공의 노래> 촬영 마치고, 이후 감독님한테 따로 연락이 왔다. 오사카에서 한번 만나자고 하더라. 식사하면서 간략한 작품 설명을 들었다. 이카이노 지역에 관한 다큐멘터리인데, <조선인 여공의 노래>에서 하나가 했던 길잡이 역할을 이번엔 내가 하는 식이었다. 얼마 전 촬영이 모두 끝났다.
조사량_ 이번 작업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이름은>에서도 조선인 여공 역할로 참여했다. 근데 대사가 없고 딱 한 번 소리 내어 ‘아리랑’을 부른다. 그 외엔 상대 배우와 눈빛만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든지, 서로 다른 시간대에 같은 길을 걷는 식이다.
배우로서 롤모델은 누구인가. 각자 그리는 미래상이 궁금하다.
강하나_ 좋아하는 배우는 김태리와 미야자와 리에. 사실 팬으로서 좋아하는 배우는 많은데 롤모델은 딱히 없다. 왠지 내 안에서도 ‘나는 보통의 일본 배우 혹은 한국 배우와는 다르다’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저 배우처럼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도, 저 배우처럼 되고 싶다거나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선뜻 못 하겠다. 왜냐면 그럴 수 없을 것 같거든. 그래서 이런 얘기 하면 사람들이 웃을 텐데, 내 롤모델은 엄마다. 언젠가는 각본을 쓰고 연출하며 내 이야기를 할 날이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엄마처럼 극단을 열겠다거나 엄마의 연기 스타일을 닮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웃음) 나와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오랜 시간 신념을 갖고 살아가면서 작품을 만들고 또 극단 활동을 지속해 나간다는 사실이 존경스럽다.
조청향_ 요즘 좋아하는 한국 배우는 김소연이다. 그분이 소화한 악역을 보면서 감탄했다. 다양한 인물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이기에 저런 역할도 가능하구나 싶더라. 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20대 초반에는 극단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아예 도쿄로 가서 활동할까 고민했던 시기도 있다. 오사카에서 연극하는 선배가 있는데, 그분은 1년에 한 번씩 본인이 아끼는 배우와 스태프를 모아서 공연을 올린다. 극단이 아니라 일종의 유닛으로 작업하는 형태다. 그런 사례를 보며 제작에도 관심이 생겼다. 최근 들어서는 연극만큼이나 영상 연기도 재밌구나 싶고. 어쨌든 현재로서는 내가 배우로서 기술과 기준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가 가장 궁금하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좀 더 나이가 들면 표현 창구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무대에서 연기로 표현하고 있지만, 나중엔 연출이나 글을 통해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글 쓰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고 푹 빠져드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 그 경험이 깊게 남아 있다. 요새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언어. 국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배우고 싶다. 이원식 감독님도 더 넓은 영역에서 활동하려면 일단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하셨다. 또 뭐가 있을까. 요가 강사도 해보고 싶고, 정말이지 꿈을 딱 하나로 정할 수가 없다. 당장 목표는 연기만 해도 먹고살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아직은 연기 활동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데, 인간은 결국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부모님께 계속 의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직업인이자 장녀로서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조사량 배우는 어떤가.
조사량_ ‘배우 하고 싶다’와 ‘배우 하고 싶지 않다’ 사이에서 엎치락뒤치락한다. 연기하는 그 순간은 즐겁고 행복한데, 끝나고 나면 너무 힘들다. 그것이 연기라는 행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마음이 안 좋다. 그래서 연기할 때마다 ‘이 작품 끝나면 이제 배우도 끝이다!’ 하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한편, 요즘 영화 작업하면서 영상이 재밌다는 걸 알게 됐다. 무대 연기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고, 영상 연기를 하다 보니 촬영에도 관심이 생겼다. 본래 취미가 사진이거든. 30대를 상상하면 과연 배우를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배우를 관둔다면 어떤 직업과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지도. 여러 생각이 드는 시기인데 충분히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좋아하는 배우를 한 명만 꼽자면 히가시데 마사히로.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요시다 다이하치, 2014)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를 좋아한다. 대사가 거의 없는데, 눈빛과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말 한마디 없이도 감정을 전달하는 모습에 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