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과 공포로 잔뜩 굳어 있던 달바(젤다 샘슨)가 거울 앞에서 처음으로 웃는다. 진한 화장, 금발로 물들인 머리카락, 촌스러운 업스타일, 레이스 블라우스와 진주 귀걸이. 열두 살 여자애의 취향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성숙한 외양인데, 거울 속 제 모습을 확인한 소녀는 이제야 정답을 맞혔다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영화는 다음 장면에서 구치소 면회실로 이동한다. 백열등 밑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달바 앞에 자크가 등장한다. 자그마치 7년간 딸을 납치하고, 감금하고, 학대하고, 강간한 죄로 수감된 아버지. 달바는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기 무섭게 패딩 점퍼를 벗어 던진다. 등이 푹 파인 이브닝드레스 차림이다. 소녀는 예전처럼 칭찬받고 사랑받기를, 거역할 수 없는 요구가 쏟아지기를 고대하지만, 자크는 고개 숙인 채 가해 사실을 인정한다. 그것은 달바가 예상치 못한 오답이다. 자크가 틀렸다고? 자크는 범죄자이고 자신은 피해자라고? 달바는 무너져 내린다. 제 세계의 전부였던 대상이 쓰레기만도 못한 죄인으로 추락하는, 사랑이라고 믿고 배웠기에 행했던 모든 일이 폭력과 억압의 증거가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달바는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 난 여자애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존재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나이에 맞게 행동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 채 어른 흉내를 내고, 좋고 싫음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낀다. 영화는 달바가 겪은 가해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지만, 달바에게 결여된 것을 끊임없이 비춘다. 달바는 또래 친구도 없고, 쇼핑을 가본 적도 없다. 좋아하는 색깔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꿈이 뭐냐는 질문에도 입을 다문다. 그런 소녀가 새빨간 립스틱과 펀칭 블라우스에 집착하며 ‘어른스러운’ 걸음걸이를 구사할 때, 관객은 자연스레 자크가 본인의 여자 취향을 딸에게 강요했다는 역겨운 사실을 알아차린다. 집 외에 다른 공간과 자크 외에 다른 성인을 극도로 경계하는 달바의 반응 또한 소녀를 가로막던 엄격한 규율과 금기를 암시한다. 다만, 영화는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들추는 일만큼 가해자를 처벌하고 심판하는 데도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형사를 통해 근친상간과 소아성애라는 죄목을 짧게 언급할 뿐, 자크는 이내 영화에서 모습을 감춘다. 대신 카메라는 대부분 시간을 달바에게 할애한다. 소녀의 얼굴에 시시각각 휘몰아치는 감정적 동요를 비추고, 불현듯 폭발하는 에너지를 담는다.


아버지와의 강제 분리 이후, 달바는 하룻밤 사이에 새로운 환경으로 내몰린다. 영화는 달바를 뒤따르는 과정에서 사회 안전망이 허술하다는 점을 짚는다. 청소년 보호 쉼터는 개인 공간을 제공해줄 만큼 형편이 여유롭지 않고, 아이들은 쉼터 교사 제이든(알렉시 마넨티) 같은 선의를 지닌 소수의 어른에게 의지해야 한다. 쉼터 입소와 퇴소 또한 당사자인 아이들의 의지보다는 어른들의 사정과 판단으로 결정된다. 달바의 룸메이트 사미아(판타 기라시)는 쉼터에서 떠나 이모 집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친생 부모와 달리, 친척의 경우는 아이를 데려가면 양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사미아는 이모에게 다른 목적이 있을 거라 의심하지만 결국 쉼터에서 영원히 살 순 없다는 말에 굴복한다. 한편, 쉼터 바깥에는 더한 어려움이 도사린다. 비슷한 상처를 지닌 아이들의 공간으로서 쉼터가 그나마 이해와 소통의 가능성을 품는다면, 학교는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공간이다. 주변의 도가 지나친 호기심은 달바 자체를 문젯거리 취급하며 2차 피해에 몰아넣는다. 화가 난 제이든은 아이를 “언제쯤 ‘여러분’ 사회에 받아들여 주실 거죠?”라고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침묵뿐이다.
달바는 그 속에서 절대 평화롭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자크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하는, 자크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선호와 욕구를 판단해야 하는 현실이 버겁기만 하다. 그러나 영화는 아무리 늦어도 혹은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해도 아이는 어떻게든 아이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달바는 매번 아버지 손에 이끌려 금발로 염색했던 긴 머리를 싹둑 자른다. 화장 지운 맨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치고 화를 낸다. 첫 번째 싸움이 벌어졌던 날, 달바는 쉼터로 돌아와 해방감과 유대감을 만끽하면서 비로소 거울 없이도 웃는다. 성장기에 으레 그러하듯 오해를 거듭하며 우정을 쌓는가 하면,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충동으로 관계를 일순 그르치기도 한다. 영화는 달바의 연속하는 실수와 실패를 인내심 있게 조명하며, 소녀가 저만의 궤도에 진입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더디게 자라는 머리카락이 단발쯤 되었을 무렵, 달바는 안아달라고 조르는 대신에 누군가를 먼저 안아줄 수 있게 된다. 유혹하는 법이 아닌 위로하는 법을 깨우친 달바는 무엇보다 제대로 걷는다. 친구 사미아가 일러준 대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정면을 응시하며 열두 살처럼, 소녀답게 두 다리를 내젓는다.


7년간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소녀의 홀로서기. 기가 막힌 이야기지만 마냥 근거 없는 상상은 아니다. <러브 달바>를 데뷔작으로 선보인 감독 엠마누엘 니코는 아동 학대 피해자들을 위한 보호소에서 만난 아이들과 교류하며 각본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다른 예로 브리 라슨에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룸>(레니 에이브러햄슨, 2016)은 딸을 24년간 방공호에 가두고 성폭행한 아버지 ‘요제프 프리츨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 공개된 <사진 속의 소녀>(스카이 보그먼, 2022)의 주인공 수잔 세바스키는 어릴 적 양부에게 납치되어 평생 학대와 착취를 당하다가 의문사했다. 계속되는 범죄만큼 실존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또한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러브 달바>도 그중 하나이지만 앞선 두 작품과는 조금 다른 길을 택한다. <룸>처럼 고립과 편견에 맞서는 강인한 인물의 탈출기도, <사진 속의 소녀>처럼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탐사 극도 아니다. <러브 달바>는 풀리지 않는 의문을 의문대로 남겨둔 채, 연약할 수밖에 없는 인물과 조용히 동행한다. 피해자를 향한 동정 어린 시선을 배제하며 자극적 소재를 취하려 한다는 의심에서 벗어나고, 사랑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배워 가는 인물에게 존경과 존중을 전한다.
러브 달바 Dalva 감독 엠마누엘 니코 출연 젤다 샘슨, 알렉시 마넨티, 판타 기라시 수입·배급 오드 제작연도 2022년 상영시간 88분 등급 15세이상관람가 개봉 2024년 8월 1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