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서 거리를 비질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직 어둑한 새벽,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늑장 부리지 않고 일어나 이불을 갠다. 싱크대에서 양치, 면도, 세수를 차례대로 끝내고, 한쪽 방을 가득 채운 식물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물을 준다. 이윽고 ‘The Tokyo Toilet’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푸른색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면 출근 준비 완료. 히라야마는 맨션 앞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 들고 성큼성큼 밴에 올라 탄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감도는 도시에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한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틀자, 때마침 The Animals의 ‘House of the Rising Sun’이 흘러나온다.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는 이 군더더기 없는 아침을 매일 반복한다. 빔 벤더스와 야쿠쇼 코지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퍼펙트 데이즈>는 실제 도쿄 시부야 내 17개의 공중화장실을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 ‘The Tokyo Toilet’에서 시작됐다. 주최 측에서는 프로젝트의 의미를 담은 영상 작업을 기획했고, 40년 전에 16mm 카메라를 들고 같은 곳을 방문했던 빔 벤더스를 적임자로 판단했다. <도쿄가>(빔 벤더스, 1985)처럼 감독 자신이 동경하는 오즈 야스지로의 흔적을 쫓는 데 몰두하는 것은 아니지만, <퍼펙트 데이즈> 또한 곳곳에 <동경 이야기>(1953,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향수와 존경을 간직한다. 생의 진리를 깨우친 듯한 영화 속 과묵한 사내, 주인공 이름마저 히라야마다. 이는 오즈 야스지로의 페르소나로 유명한 배우 류 치슈가 <동경 이야기> <꽁치의 맛>(1962) 등에서 연기했던 캐릭터 이름과 같다.
‘버블’로 일컬어지는 1980년대 경제 전성기의 풍경과 <동경 이야기> 클립을 교차하고 결합하던 빔 벤더스의 카메라는 이제 관찰자 위치에 머무르기를 택한다. <퍼펙트 데이즈>는 히라야마의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의 행위 대부분은 몸에 밴 습관처럼 자연스럽다. 정해진 시각에 일어나 일하고, 같은 곳에서 밥을 먹고, 목욕탕에 가고, 중고 서점에서 구입한 책을 읽다가 잠들기까지 하루는 평온하게 유지된다. 영화는 사건을 늘려 이야기를 만드는 대신에, 히라야마가 속한 안정적이고 소박한 삶을 비추는 데 긴 시간을 할애한다. 말하자면 히라야마는 자신만의 시계와 지도를 가진 사람이다. 무엇에도 쫓기지 않으며 새로운 곳을 향한 열망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본분을 다하겠다는 자세로 화장실 청소에 충실히 임하고 집과 일터 사이의 익숙한 장소를 맴돌 뿐이다. 만남과 이별에서 발생하는 사사로운 감정을 뒤로한 채, 그는 7~80년대 음악이 저장된 카세트테이프와 필름 카메라, 백여 권의 종이책 등 아날로그 문화를 가까이에 둔다. 영화는 히라야마를 통해 금욕과 자족을 구체화하며 이러한 태도가 삶을 긍정하는 길이라고 암시한다. 히라야마는 가끔씩 웃는다. 식물에 물을 주면서, 화장실 밖에서 이용객이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코모레비’를 필름 사진에 담으면서. 히라야마의 젊고 무책임한 동료 다카시는 “어차피 더러워질 텐데 뭘 그렇게까지 하세요”라며 청소 중인 그를 미심쩍게 바라보지만, 히라야마는 그런 핀잔에 흔들리지 않고 도시의 배설물을 치우는 일에 집중한다. 그 순간 히라야마는 세간의 계산에 휩쓸리지 않는 정직한 노동자이자, 속죄하는 마음으로 수련에 정진하는 수도자처럼 보인다.



영화는 참을성 있게 히라야마의 현재를 관찰하는 동시에, 그의 과거는 끝까지 비밀에 부친다. 운전기사를 대동한 여동생의 출현은, 그가 누렸을 법한 부유한 생활과 부모와의 갈등을 짐작하게 하지만 거기까지다. 설명하지 않은 사연은 구멍으로 남겨 놓고, 영화는 대신 히라야마의 묘연한 꿈을 들여다본다. 흑백 필름이 영사되는 듯한 꿈속엔 빛과 그림자, 나뭇잎을 출렁이게 했던 바람이 등장한다. 때로는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이름 모를 노숙자의 춤이 재생되기도 한다. 출처도 의미도 불분명한 일상 조각들이 꿈을 채우는 사이, 히라야마를 뒤따르던 카메라는 뜬금없이 스카이트리에 눈길을 던진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파탑,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마천루를 아래서부터 위로 경계하듯 훑는다. <퍼펙트 데이즈>는 일종의 도시 우화다. 영화는 제 몫의 고독과 번민을 껴안고 묵묵히 살아가는 인물을 통해 도시가 잃어버린 가치를 탐구한다. 히라야마는 스카이트리의 대척점에 선다. 그곳을 쌓아 올리고 채워 넣는 욕망을 등지고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고집한다. 다만, 영화가 뭔가를 의도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뭔가를 시야에서 의도적으로 가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히라야마를 보면 버스 운전사로 일하며 틈틈이 시를 쓰는 <패터슨>(짐 자무쉬, 2016)의 패터슨, 담배 농장에서 소작하며 가난한 이웃을 위해 눈물 흘리는 <행복한 라짜로>(알리체 로르바케르, 2018)의 라짜로 등 선하고 강인한 인물 몇몇이 떠오르지만, 따져 보면 히라야마는 결국 그들 캐릭터의 절반쯤에 머무르고 만다.
히라야마의 순응적 태도는 얼마간 의문을 남긴다. 그는 모든 변수를 차단함으로써 모든 위험을 거부한다. “돈 없으면 사랑도 못 한다니 어떻게 세상이 이래요”라며 좌절하는 청년에게 제 지갑에서 돈을 꺼내 쥐어주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엄마 말이 삼촌은 우리랑 다른 세상에 산대”라는 조카의 말에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너와 내가 연결된 것처럼 보여도 실은 아닐지 모른다는 그의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것은 생의 진실을 깨달은 사람의 겸허함인가, 아니면 체념과 자조가 빚어낸 합리화인가. 영화는 환상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히라야마가 청소하는 화장실은 오물 한 점 없이 깨끗하다. ‘Perfect day’, ‘Sunny afternoon’, ‘Pale Blue Eyes’ 등 그의 낡은 밴에서는 매번 절묘한 타이밍에 노래가 흘러나온다. 야큐쇼 코지는 이러한 장면을 작위적으로 만들지 않을 만큼 신중하고 극에 몰입해 있지만, 인물을 꽉 맞춘 틀에 가두고 관찰하는 영화의 시각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퍼펙트 데이즈>의 클라이맥스는 엔딩이다. 야쿠쇼 코지는 대사 없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표정만으로 불완전한 인생을 통과하는 슬픔과 환희를 고루 표현해 낸다. 그러나 그 순간 흐르는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에 귀를 기울이면, ‘이대로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품게 된다. 저항 정신과 전위성, 실험적 의도가 넘쳤던 7~80년대 로큰롤과 재즈가 향수 짙은 올드팝이 되는 듯해서다.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 감독 빔 벤더스 출연 야쿠쇼 코지 수입·배급 티캐스트 제작연도 2023년 상영시간 124분 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 2024년 7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