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해방구
<생츄어리>
차한비 / Choice / 2024-06-14

영화는 국내에 생츄어리가 단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을 자막으로 알리며 시작한다. 전국 각지에 17개의 야생동물구조센터가 존재하고 해마다 15,000여 마리의 동물을 구조하지만, 그중 35퍼센트만 자연으로 돌아간다. 학대와 부상, 고립의 위험에 처한 나머지 65퍼센트의 운명은 결국 안락사로 귀결된다. 껄끄러운 현실을 영화가 굳이 일러주는 이유는 “회귀 불능의 야생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시설”, 즉 생츄어리가 이들 동물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여겨서다. 왕민철 감독은 전작 <동물, 원>(2019)에서 ‘국내 1호 거점동물원’으로 지정된 청주동물원의 동물들과 사육사들의 일상을 살펴보며 동물권과 환경 문제를 한 차례 탐구한 바 있다. <생츄어리>에서 감독은 동물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견해를 수집하고, 그 속에서 실질적 변화를 마련하고자 분투하는 이들의 활동에 주목한다. 전작에 출연했던 청주동물원의 수의사 김정호를 포함하여, 의료인이자 동물복지활동가로 일하는 최태규, 그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는 연구자, 열악한 환경의 사육장과 번식장을 찾아다니며 구조에 매진하는 활동가, 그리고 생사의 경계에 선 동물에 이르기까지 다수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두컴컴한 수로를 누비는 한 무리의 사람들,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들을 뒤쫓는 카메라도 연신 사방으로 흔들린다. 뜰채와 포획 망을 들고 긴박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을 멈춰 세운 것은 고라니들이다. 야산의 산기슭과 습지에 서식한다고 알려진 동물들이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들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을까. 인간의 편의에 맞춰 구획된 도시에서 동물들은 곧잘 살 자리를 잃고 헤맨다. 잡히지 않겠다고 바닥에 구르며 울부짖는 고라니들과 한바탕 씨름한 후, 활동가들은 근처 야산으로 이동해 그들을 다시 풀어준다. 한편, 사육 곰 농장에서 웅담 채취 목적으로 사육되는 곰들은 비좁은 철창에 갇혀 평생을 보내다가 도축 당한다. 잔인한 산업을 부추기고 유지하는 욕망에 제동을 거는 이들도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후원 모금을 통해 곰들을 사서 미국으로 보내고, 최태규는 농장주의 허락을 얻어 사육장에 곰을 위한 해먹을 설치한다. <생츄어리>를 보면 인간이 동물에게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뉨을 알 수 있다. 살리기와 죽이기다. 동물이 안전하게 살 수 없도록 환경을 망쳐 놓은 것이 인간이라면, 그 사실을 반성하고 비판하며 환경을 고쳐 보겠다고 나선 것도 인간이다.

<생츄어리>
<생츄어리>

살리기와 죽이기라는 극단을 일상처럼 경험하는 대표적 인물은 의료인이다. 영화엔 수술대에 오른 동물과 그를 치료하는 인간이 종종 등장한다. 마취하고 소독하고 살을 찢고 장기를 적출하거나 신체 일부를 절단하고 다시 살을 꿰매는 일련의 과정에서 동물들은 인간과 다름없어 보인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듯 침과 땀을 흘리며 낑낑대고, 피를 쏟아내며 몸을 늘어뜨린다. 문제는 이러한 치료가 생명과 고통을 동시에 연장하는 경우에 벌어진다. 안락사는 첨예한 화두다. 누군가에게는 손쉬운 선택처럼 여겨져 주저함을 낳지만, 다른 이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내려야 할 결단이다. “뛰는 심장 소리 듣고, 약 주입하고, 심장 소리 안 들리는 거 확인하고.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일이죠.” 동물이 처한 상황을 고려할 뿐만 아니라 동물과 교류하며 맺어 온 관계 또한 외면할 수 없는 의료인들은 안락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재차 딜레마를 겪는다. 동물을 살리는 행위엔 인간의 양심과 욕심이 섞이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판단은 언제나 동물의 입장과 의지를 배제한 채 이뤄지기에 반쪽짜리 결론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르는 대신에, 여러 주체의 고민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며 안락사를 둘러싼 문제의식과 그 한계를 들여다본다.

‘생츄어리’ 프로젝트 역시 험난한 여정을 통과한다. 최태규는 동물원 내에 사육 곰 생츄어리를 함께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고 청주동물원에 입사하지만 시행착오 끝에 퇴사를 택한다. 여전히 그곳을 지키며 동물을 돌보는 김정호는 “동물원과 생츄어리 그 중간쯤”을 상상하고, 야생동물을 안락사하며 피로와 절망이 쌓인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들은 “아, 우리도 생츄어리 있었으면 좋겠다”고 습관처럼 탄식한다. 최태규는 사육곰 구조와 생츄어리 건립을 목표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생츄어리가 들어설 부지를 확보하고 시설을 짓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필요하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는 이와 같은 현실적 조건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일만큼이나 대화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인다. 활동가들은 ‘동물권행동 카라’를 비롯해 여러 단체와 협력하고, 최태규는 간담회와 연대 회의를 오가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묻는다. 영화는 의사 결정에 참여한 인물들이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과정을 기록한다. 목소리에서 망설임과 갈급함이 동시에 묻어나고, 고민을 거듭하는 와중에도 그들 일상에서 수많은 동물이 머물다 사라진다. 카메라는 이들을 영웅이나 구원자처럼 묘사하지 않지만, 치열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뻗어가는 대화는 이들이 과거에 없는 것을 상상하고 만들어 내는 선구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생츄어리>
<생츄어리>

상품과 식품이 아닌 살아있는 존재로 동물을 인식할 수 있을까. 단순한 애정과 보호를 넘어 동물들과 함께 사는 세상을 꿈꿀 수도 있을까. 영화는 우선 그 일에 뛰어든 이들을 관찰함으로써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살리기와 죽이기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동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노화와 질병, 장애를 이유로 안락사 대상으로 분류된 동물 존재는 인간에게도 유효한 질문을 낳는다. 이따금 카메라는 인물들의 등 너머로 가서 그들이 간신히 살린 동물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광경을 비춘다. 다리 한쪽이 없는 고라니가 들판을 껑충껑충 달려 나가고, 날개를 다쳤던 백로가 푸드덕거리며 하늘로 날아간다. 인간이 도시를 허물고 지으며 사지로 내몬 동물들. 그들의 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며,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소리치며 배웅하는 인간들. 그리고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소망하기엔 요원해 보이는 도시 풍경까지 모두를 한 프레임에 담아 보는 카메라의 시선이 미덥다.

 

생츄어리 Sanctuary 감독 왕민철 출연 범돌, 범순, 반순, 클라라, 김서방, 킹, 콩, 김정호, 최태규, 김봉균, 오예은 제작 케플러49, 시네마 달 배급 시네마 달 제작연도 2022년 상영시간 109분 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 2024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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