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늦더위> 기진우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4-05-28

“근데 진짜 재밌는 게 뭔지 아세요?” 기진우는 대화의 기술을 갖췄다. 이만해도 충분히 재밌는데 더 재밌게 해주겠다고 나서니 자연히 귀가 쫑긋해졌다. 이야깃거리도 풍부했다. 어제 친구랑 술 마신 얘기부터 얼마 전에 다녀온 전주국제영화제 에피소드까지 기진우는 막힘없이 털어놓았다. <늦더위>에서 8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동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 맹탕 같은 얼굴과 적당히 물러서는 태도, 한창 젊은데도 이미 늙어버렸다고 여기는 이의 말투와 눈빛은 온데간데없었다. 남들은 벌써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은 계절에 홀로 긴팔 셔츠를 고집하며 서성대는 동주. 영화에 담긴 머뭇거림이 어쩌면 실제 배우의 것일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는데, 기진우는 오히려 뒤를 돌아보기보다는 앞을 내다보는 사람에 가까웠다. 과거가 아닌 미래로 시선이 향하기에 그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다.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지금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늦더위>는 그렇게 탄생했다. 주저하는 기색 없이 초여름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진우와 만났다.

 

 

개봉 말고도 좋은 소식 들리던데.

운 좋게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MBC)에 합류했다. 한 프로파일러가 살인 범죄의 용의자로 딸을 의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고, 10월까지 촬영할 것 같다. 현재 소속사가 없다 보니 개인적으로 미팅 연락을 받았다. 갑자기 이렇게 길이 풀리기도 하는구나 싶어 놀랍고, 한석규 선배님을 포함해 좋은 배우들과 연기할 기회가 생겨서 행복하다.  

 

어떤 역할 맡았나.

막내 형사. 

 

막내 형사면 어리바리한 쪽, 아니면 되바라진 쪽?

자주 혼난다. 선배 형사가 “너 그거 했어?” 물으면, 주로 “못했습니다” 하는 쪽이다. (웃음)

 

오늘은 뭐 하다 왔나.

어제 친한 동생이 넷플릭스 드라마 촬영 끝났다고 연락이 와서 만났다. 친구 이야기 들어주며 맥주를 좀 마셨더니 아침에 찌뿌둥하더라. 일어나자마자 동네 한 바퀴 돌고, 해장할 겸 커피도 마셨다. 오늘 사진 찍으니까 머리 정도는 단정하게 만져야 할 것 같아서 샵에도 들렀다. 예전 소속사에 있을 때 알게 된 곳인데 거기서 일하는 형이랑 친하다. 형에게 부탁해서 머리만 살짝 손질하고 왔다.

 

나도 어제 야구 보면서 술 마셨다. 서로 정신 차리고 말해야겠네.

어느 팀 응원하나. 나도 요즘 야구 본다. 원래 아니었는데 이번 드라마에서 윤경호 선배님을 만났거든. 형사 팀장님으로 나오신다. 경호 선배가 소문난 야구팬이다. 우리 아버지 고향이 전남 장성인데 기아 타이거즈가 전라도 팀이라고 하더라. 선배가 “기아 타이거즈 팬이 되면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어”라고 했다.

 

순거짓말이다. (웃음)

팬 만들려고 그랬나. 아무튼 요새 기아 타이거즈 경기를 챙겨보고 있다. 볼수록 재밌더라.

<늦더위>
<늦더위>

서한솔 감독이 말한 대로다. 기진우 배우는 자신과 달리 사교적이며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고 했거든. 내게는 그 말이 타인에게 호기심 많은 배우라는 설명으로 들렸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는 건 연기하는 데도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고.

어제 만났던 친구와도 비슷한 얘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배우 친구를 잘 안 사귄다고 하더라. 예민한 성격이라서 늘 타인에게 어느 정도 벽을 두게 된다고. “근데 형은 좋은 사람 같아서 이 얘기를 하는 거야. 형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게 됐다. 내가 뭐 특별히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하다. 배우 중에 그 친구처럼 사람 만나고 대하는 걸 어려워하는 이가 더러 있는데, 나는 그들과도 친구가 됐으니까. 

 

배우에게 작업은 결국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일이라고 하던데, 사람을 그토록 좋아한다면 작품이 끝날 때마다 힘들지 않나. 더없이 가까웠다가 한순간 헤어지니까.

그래도 이어질 연은 이어지더라. 대부분 다음을 기약하면서 헤어지지만, 어떻게든 볼 사람은 서로 연락해서 만나기도 하고.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부터 세어 보면 연기를 시작한지 꽤 됐다. 그간 사람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고, 사실 작년에는 연기를 그만둬야 하나 싶기도 했다. 이전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어느 순간 연기를 접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근데 때마침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이 결정됐고, 마리끌레르에서 화보를 찍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잘해서라기보다는 중간에서 도와준 여러 사람 덕분에 기회를 얻은 거다. 지금 촬영 중인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어떤 분이 나를 제작사에 추천하면서 작품과 처음 연결고리가 만들어졌다. 그분한테 말씀드렸다. 연기를 좋아하고 잘할 자신도 있지만, 한동안 날 알아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했다고. 그래서 연기를 그만둬야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가 다가왔다고.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도 있구나, 그걸 깨닫는 순간 왠지 모르게 치유된 느낌이 들었다. 

 

프로필에 대학원 학력만 나와서 본래 다른 일을 하다가 연기를 늦게 시작한 줄 알았다. 예고를 다녔다면 꽤 일찌감치 진로를 정했다는 뜻인데, 대학에서도 연기를 전공했나. 

예고 졸업 후 예대에 진학했다. 근데 재미가 없었다. 기존에 배웠던 것을 되풀이하는 느낌이라 돈이 아까웠다. 자퇴하고 연극이 아닌 영화 연기를 따로 공부했다. 한 교수님이 그러셨거든. “너는 매체 연기해라. 영화감독들이 널 좋아할 거야.” 아마도 내가 쌍꺼풀 없는 평범한 얼굴이다 보니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다. 그 말을 듣고 영화 오디션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재밌는 게 뭔지 아나? 처음엔 오디션에서 계속 떨어졌다. 그러다 엄마 덕분에 감독님 한 분을 만났다. 엄마가 일하는 건물에 만둣집이 있거든. 그곳 사장님 딸이 감독이라는 거다. 그분이 단편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엄마가 내 얘기를 꺼냈다고 하더라. 감독과 미팅하고 그 작품에 조연으로 참여했다. 근데 세상에, 그 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어떤 작품인가.

<환불>(송예진, 2018). 뜻밖에 알려진 작품에 출연하면서 내게도 커리어라는 것이 생겼다. 그 후엔 배우 모집 공고를 보고 프로필을 넣으면 미팅까지는 이어지더라. 심지어 소속사에서도 인스타그램으로 DM이 왔을 정도였다. 그때부터 단편영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감사하게도 출연작 대부분 영화제를 갔다. 그렇게 영화 작업에 한참 재미를 느껴 가는 동시에, 공부도 계속했다. 자퇴 후 매체 연기는 학원에서 배웠고, 평소 관심 있던 분야는 따로 수업을 들었다. 20대 후반이 되면 분명히 생업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기로든 뭐든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 시기에 나를 잘 채워야겠다는 마음이었다. 20대 초반 내 궁금증은 ‘왜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갈까?’였다. (웃음) 경영학부터 시작해서 정치와 지리 등을 공부했고, 여성학과 청소년 인지발달 관련해서도 공부했다. 

 

방송통신대학교를 말하는 건가.

대학교를 2학년까지 다녔기에 학점은행을 통해 나머지 학점을 채웠다. 요건을 달성하면 졸업을 인정받고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고등학생 때부터 공부는 꾸준히 했던 편이라 도전할 마음을 먹었다. 학점을 채우는 동시에 소방 안전관리사와 텔레마케터 국가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후 대학에 다시 갈지, 대학원에 진학할지 고민하다가 대학원을 택했다. 학부로 들어가면 신입생과 나이가 꽤 차이 나는 터라 아무래도 서로 불편할 듯했고, 무엇보다 영화를 ‘만들면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단국대 대학원엔 연출, 각본, 제작, 연기 등 다양한 트랙이 공존했기에 교내에서 뭔가 합을 이룰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기진우 ⓒ이영진

영화 속 동주는 엔딩에 이르러서야 분갈이를 겨우 마음 먹는다. 그와 달리, 현실의 기진우는 분갈이를 알아서 잘하는 타입이네.

에이, 아니다. 실은 대학 입시에서 3수 했다. 당시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너무 가고 싶었다. 처음부터 아예 탈락했으면 미련이 없을 텐데, 1차를 한두 번 붙으니 자꾸 마음이 쓰이더라. 3년간 입시 준비하며 동주처럼 마음고생 아닌 마음고생을 했다. 이처럼 뜻대로 안 풀린 경우가 은근히 많다. 대학원 들어갈 때 회사도 생겼는데, 이후 오디션에서 정말 많이 떨어졌다. 특히 캐스팅 번복이 다섯 번 일어나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러다 대학원 졸업 시즌에 회사에서도 나오고.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더 스스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내가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영화를 하나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영화 작업에 뛰어들었다. 음, 근데 말하다 보니 분갈이를 잘한 것 같긴 하다. (웃음) 위기 때마다 그래도 내 살길을 찾았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본인에게 크게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다면?

우선 고등학교에서 연기의 재미를 느끼게 해 주신 김서원 선생님. 내가 처음으로 매체 활동을 시작했을 때, 전폭적인 응원을 보내주셨다. 항상 눈으로 ‘하트 뿅뿅’을 날려주셨지. 또 내가 뭘 하든 무한한 신뢰를 주시는 강윤정 선생님. 마지막으로 대학원에서 만난 문소리 교수님까지. 옆에서 많은 영감과 자극을 주셨다. 항상 마음속에 이분들이 계신다.

 

“명품 사는 것보다 그럴 돈 아껴서 영화 제작 한 번 해보는 게 훨씬 낫다”는 문소리 배우의 조언을 듣고 서한솔 감독에게 <늦더위>를 제안했다고. 당시 그 말이 유난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문소리 교수님도 <여배우는 오늘도>(2017)를 직접 연출하셨잖나. 캐스팅을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출연할 작품을 만들어 보라는 이야기에 공감했다. 처음엔 핸드폰으로 찍어봤고, 다음엔 동생의 DSLR 카메라와 10만 원 주고 구입한 마이크를 사용해서 찍었다. 친구 두 명과 모여서 얼렁뚱땅 영화를 만들었다. 연출, 각본, 촬영, 연기, 편집 모두 직접 했다. 러닝 타임이 2분 정도인 짧은 영화인데, 그 작품이 서울영등포국제초단편영화제 경쟁 부문에 선정됐다. 마치 매체 영역이 내게 할 수 있다며 ‘우쭈쭈’ 해주는 것만 같아서 너무 신났다. 그러고 보면 단국대 대학원 커리큘럼과 문화 자체가 그런 시도를 격려했던 측면이 있다. 교수님도 우리가 제작 지원에 마냥 매달리지 않기를, 직접 인프라를 만들어서 꾸준한 창작자가 되길 원하셨던 것 같다.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에서 수학한 장우진, 김덕중, 오정석 감독 등이 떠오른다.

느낌 알겠지? (웃음) 난 성공적인 가르침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인터뷰를 보니 본인은 최소한의 조건만 갖춰서 작업하고 싶다고 하더라. 스태프도 최소한으로 꾸리고, 거창한 장비도 필요 없다고. 홍상수 감독도 계속해서 작업 규모를 줄이고 있지 않나. 어쨌든 창작자들한테는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한 여건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학교에서도 바로 그 부분을 많이 가르쳤던 것 같다. 작년 서울독립영화제 창작자 포럼에서 장건재 감독이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독립영화 감독들이 어떻게든 두 번째 영화까지는 찍는데, 이후에 사라지는 감독들이 점점 늘어난다고 하더라.

 

환경이 열악한 탓도 있지만, 여전히 독립영화를 상업영화의 포트폴리오로 인식하는 경향도 문제라고 본다. 상업영화를 못 찍어서 독립영화를 만든다고 오해하기도 하고.

난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 감독이든 배우든 결국 과제는 자기 증명이다. 대단한 위치에 올라가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지 않나. 내가 내 자리에서 나를 증명하려고 애쓰듯, 송중기나 김수현 같은 배우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보기엔 정상을 찍은 스타이지만, 그분들은 나름대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듯 자신을 증명하도록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 기반을 조성하는 일이 창작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마침 나는 함께할 동료들이 가까이에 있었다. 한솔이에게 우리가 지금 이 시기에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자본이 들어오면 그렇게는 못 할 테니까. 더 늦기 전에, 젊었을 때 이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늦더위>
<늦더위>

그냥 화분을 구해 분갈이만 하는 것이 아니라, 토양까지 스스로 만들 작정이었다.

한솔이가 많이 도와줬기에 가능했다. 고마운 일이다. 솔직히 한솔이는 나랑 안 해도 되거든. 전작 <종착역>(권민표, 서한솔, 2021)이 좋은 평가를 받았고, 차기작 작업에 충분히 욕심을 낼 만했다. 나를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데 <늦더위>를 함께했다. 민표와도 <목소리들>을 찍었고. 두 친구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다.

 

말하자면 배우가 감독을 고른 경우다. 왜 하필 둘에게 제안했는지, 어떤 믿음 혹은 목표로 이야기를 꺼냈던 것인지 듣고 싶다.

생각해 보니 기본적으로 신뢰했던 것 같다. 다른 감독이라면 충분히 ‘쟤가 주연 맡고 싶어서 이러는구나’ 오해할 수도 있고. 난 단순했다. 그냥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를 좋아하니까. 아마 그 마음이 두 친구에게도 전달되지 않았을까. 결과만 놓고 보면 내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본래 나를 막 보여주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그보다는 제작비를 절약하는 차원에서, 인건비를 줄일 수 있도록 내가 연기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주연이다 보니 나와 내 또래가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고자 했다.

 

영화를 왜 좋아하나. 뭐가 그렇게 좋은가.

일단 연극과 달리, 결과물이 남는다는 점이 좋다. 게다가 연극은 에너지를 크게 써야 한다. 무대 저편까지 대사와 감정을 보내려면 표현도 그만큼 커져야 하니까. 근데 영화에선 일상처럼, 지금 대화하듯 조곤조곤 얘기할 수 있다.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다고 느꼈다. 연극은 에너지를 극대화해서 쓰는 느낌인데, 영화는 에너지보다 내 특성과 분위기를 좀 더 세밀하게 활용하는 작업에 가까운 것 같다. 과정뿐만 아니라 결과도 즐거웠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영화제에 초청됐거든. 신기하고 재밌고 또 감사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이건가 보다’ 하며 자신감이 붙었고 점점 영화에 매료됐다. 대학원에서는 문소리 교수님 덕분에 좋은 영화를 많이 봤다.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영화 좀 열심히 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본인이 한 기자를 만났는데 요즘 연기 전공생들은 영화를 너무 안 봐서 대화가 안 통한다고 했다더라. 그러면서 팁을 알려주셨다. 

 

좋은 영화 고르는 법?

뭘 봐야 할지 모르겠으면 영화제 상영작부터 보라고 하시더라. 심사를 거쳐 선정된 작품이니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을 찾아가서 특히 국내 개봉을 안 할 것 같은 작품부터 보라고 알려주셨다. 그러다 <로데오 카우보이>(클로이 자오, 2017)라는 작품을 우연히 봤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더라. 그 영화를 보며 영화가 더 좋아졌다. 한솔이가 <늦더위>의 레퍼런스 영화로 추천해준 <패터슨>(짐 자무쉬, 2017)도 빼놓을 수 없다. 평범한 일상이 지닌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잖나. 특별하거나 엄청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좋다고, 그저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얘기해주는 영화 같아서 위안을 받았다. 이렇게 문소리 교수님과 동료 감독들의 추천작을 보며 독립영화에 푹 빠졌다. 독립영화 덕분에 영화 자체가 확 좋아졌고. 전주국제영화제 GV에서 “저는 돈만 있으면 독립영화를 꾸준히 찍고 싶어요”라고 했는데, 어떤 관객분이 블로그에 그걸 공유하셨더라. 저 남자 배우가 아주 마음에 든다면서. 나도 그 블로그 캡처해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했다. (웃음) 

 

그래서 직접 영화를 만들어보니 어땠나. 가장 값진 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하다.

질문 듣자마자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친구들이다. 동주가 학교 동창들과 만나는 장면에 실제 내 친구들이 출연했다. 대개 연기를 그만두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한다. 영화에 대사로도 나오듯 출판, 건설업, 학원 등 분야도 다양하다. 그중 한 친구 부모님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영화를 보셨다. GV 마친 후 친구 어머니를 뵀는데 나한테 고맙다고 하시더라. 무슨 마음인지 알 듯했다. 그간 아들이 연기한다는 얘기를 듣기만 했지 실제로 본 적은 없었던 거다. 아들을 영화관에서 보고 기뻐하시던 그 얼굴이 기억에 참 오래 남는다.  

<늦더위>
<늦더위>

영화에서 배우들의 합이 무척 돋보였던 장면이다. 오래된 친구들을 섭외한 듯한데.

거의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이 나왔다. 처음엔 감독을 말렸다. “한솔아, 우리 벌써 끝이야? 더 찍어야 하지 않아?” 그랬더니 한솔이가 장담하더라. “아니야, 아니야. 나왔어.” 찍으면서도 즐거웠지만 찍고 나서 더 애틋한 장면이다. 연기를 시작할 무렵에 만난 친구들이고 어릴 적부터 동고동락했던 사이다. 많은 추억을 나눴지만 친구들이 연기를 관두면서 만남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그러다 <늦더위>를 통해 오랜만에 함께 연기했다. 걔네랑 한 작품에 출연한 경험 자체가 특별하다. 내가 아끼는 친구들과 영화를 찍었다니, 나이를 더 먹고 나서도 같이 볼 수 있는 우리 영화가 세상에 존재한다니. 앞으로 두고두고 행복할 것 같다. 

 

친구들은 어떤 기준으로 섭외했나. 신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던 건가.

한솔이가 먼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예를 들면 전 여자친구 역할은 두 캐릭터를 줄 거라고 했다. 의상이나 촬영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 친구였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예고를 다닐 때부터 계속 연기했기에 내 주변에 배우가 많은 편이다. 예전에 용인대학교 단편영화를 촬영할 당시, 커플로 호흡을 맞췄던 정미형 배우가 기억나서 추천했다. 동주의 군대 후임으로 나오는 이원웅 배우는 예전에 입시학원에서 만났다. 그 친구 볼 때마다 영화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목구비가 진짜 예쁘거든. 클로즈업하면 눈코입이 외국 배우 같다. 나처럼 영화를 즐겨 보는 친구라서 만나면 늘 “그 영화 봤어? 어땠어?” 하며 수다를 떤다. 영화 출연 경험은 적은 친구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 한솔이에게도 잘하는 배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촬영 전에 미팅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 친구가 플랜테리어로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동주가 플랜테리어로 일한다는 설정이 나왔다. 한편, 안민영 선배도 일전에 함께 작업했던 적이 있다. 한솔이와 민표가 찍은 단편 <이민철과 나>라고 세상에 공개된 적 없는 작품인데, 아무튼 그 영화에서 선배를 보며 좋은 인상을 받았다. <늦더위>로 연락하기 전에 솔직히 조금 걱정했다. 1회차 촬영인 데다 청주에 위치한 산에서 찍었거든. 날도 더웠고. 힘들어하시면 어쩌나 했는데 오히려 우리를 걱정하시며 챙겨주셨다. 감사한 분들이 많다.

 

동주랑 기진우는 전혀 다른 사람 같다. 매사 적당히 물러나는 동주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지금 눈 앞에 있는 기진우 배우는 참 적극적이고⋯

아주 진취적이지. (웃음)

 

영화를 찍으며 좀 답답했겠다 싶을 정도인데. 

한솔이에게 얘기했던 적이 있다. “영화에 갈등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쯤에서 나 누구랑 한 번 싸워야 할 것 같은데?” 그때 한솔이가 “우리 영화에 악당은 없어”라고 하더라. 무슨 뜻인지 바로 납득했다. 사실 성인 배우 입장에서 보면, 한솔이랑 민표 촬영장에는 당황할 만한 지점이 더러 있다. 얘네 둘은 정말 느긋하고 뭐가 없거든. 나긋나긋, 노곤노곤. 감독이 “레디, 액션!”을 외치지도 않는다. 그냥 카메라 버튼 누르면 시작하는 거다. 보통 배우들은 “레디, 액션!” 하면 딱 긴장하고 몰입하는데, 얘네 영화에서는 그게 안 된다. 다행히 <종착역> 출연하면서 한솔의 연출 스타일을 경험했던 터라 무리 없이 적응했다. ‘우리 영화에 악당은 없어? 오케이. 그러면 이 무드를 잘 지켜야겠구나.’ 더불어 동주는 촬영 당시 내 모습을 반영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드라마도 찍고 <늦더위>도 개봉하니 기운이 좋은 상태인데, 촬영 무렵엔 막막했다. 학교 졸업하고 딱히 정해진 것이 없었거든. 회사에서도 나오고 캐스팅도 무산되고. 내 인생은 어떻게 되려나. 앞으로 뭐 해서 먹고 살지? 그런 생각으로 답답하던 시기였다. 

 

타이밍이 맞았네. 2020년에 촬영했으니 이제 영화를 보면 예전 앨범 펼친 기분이겠다.

4년 전의 내가 영화로 기록됐지. 내 젊은 날, 혹은 특정 시기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는 건 배우라는 직업의 큰 장점 같다. 정말 사진첩 펼치듯 나중에 나이 들어서 꺼내볼 수 있고. 

기진우 ⓒ이영진

동주처럼 무작정 떠나본 적도 있나. 언제 그런 마음이 드나.

최근에 숨이 막혀서 일본에 다녀왔다. 한국을 잠시 떠나고 싶더라. 나를 여기에 두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혼자 도쿄 가서 핸드폰 꺼놓고 계속 돌아다녔다.

 

왜 숨이 막혔을까.

정말 배우를 못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몇 가지 일을 벌여놓은 참이었다. 근데 갑자기 드라마에 캐스팅되고, <늦더위>가 영화진흥위원회 개봉 지원을 받았다. 배우로서 할 일이 생긴 거다.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하고 싶어 하는 성격인데, 여러 일을 동시에 굴리다 보니 되려 이도 저도 안 되는 듯했다. 뭔가를 자꾸 포기해야 하고 미뤄야 하는 상황이 싫더라. 환기가 필요해서 가까운 일본에 다녀왔다.

 

이름에 관해 들어보면 좋겠다. 나동주에서 나도율로, 나도율에서 기진우로 이름을 두 차례나 바꿨다. 세 개의 이름을 갖게 된 과정에 배우의 역사가 담겨 있지 않을까 싶더라.

나동주로 살 때, 되게 버거웠다. 열심히 해도 뭐 하나 되는 일이 없었다. 나동주에게만 세상이 지나치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답답한 마음에 철학관을 찾아갔다. 워낙 절박하다 보니 이름이라도 바꾸자 싶었던 거다. 거기 계신 분이 “너 참 돌고 돈다”라고 하더라. 배우로 잘 풀릴 사람인데 중간에 너무 고생한다고. 그분에게 나도율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내 마음을 이해하니 엄마는 잘 바꿨다며 좋아했는데, 아빠는 동주가 더 좋다고 했다. 아무래도 손수 지은 이름이니까. (웃음) 아무튼 도율로 활동하면서 <열두 번째 용의자>(고명성, 2019)도 캐스팅되고 좋은 일이 많았다. 그러다 앞서 말한 대로 연기 외에 다른 일을 조금씩 시작하면서 또 다른 이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전화가 오면 상대가 연락한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더라. 배우로서 응해야 할지, 아니면 어떤 사업의 운영자로 응해야 할지 헷갈리고. 캐릭터를 좀 분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시 철학관을 찾았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샤머니즘에 몰두한 사람처럼 보이려나? (웃음) 그보다는 이것도 저것도 허투루 하기 싫다는 마음으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 어쨌든 새로 방문한 철학관에서도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곳에서 날 보자마자 “할 게 배우밖에 없는데 배우 맞죠?”라고 하더라. 그분과 대화를 나누며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고, 기진우라는 이름도 같이 받았다. 근데 말하다 보니 재밌다. 지금 인터뷰한 내용을 싹 돌이켜봤거든. 나 참 복잡하게 사는 인간이구나 싶다. (웃음)

 

복잡하게 사는 와중에 쉴 때는 뭐하나.

산책한다. 2시간 정도 음악 들으면서 걷는다.

 

많이 걷는 사람은 생각이 많다던데.

생각 많지. 요즘에는 <늦더위> 홍보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누가 이 영화를 보면 좋을까.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거나 독립영화를 많이 찾아보는 사람 외에, 내가 이 영화를 추천해 주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인지 찾았나.

뭔가를 위해서 자기만의 시간을 열심히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영 마친 후, 한 관객분이 한솔이에게 다가와서 말씀하셨단다. “저 공무원 시험 5년 준비했고 올해 또 떨어졌습니다. 오늘 이 영화 보러 여기에 왔습니다. 잘 봤습니다.” 우리 영화가 그런 영화구나 싶더라.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떨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17:1이더라. 수많은 분이 지금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거라는 뜻이다. 목표를 바라보며 미래를 준비하려고 애쓰는 내 또래들,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을 청춘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모든 분들한테 조금이나마 전하고 싶다. 나도 이렇게 살고 있다고, 당신만 괴로운 시간을 통과하는 거 아니니까 우리 같이 씨앗을 심어보자고. 

<유진이에게...>
<목소리들>

혹시 작년에 왜 연기를 관둬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들려줄 수 있나. 연기하면서도 배우 아닌 배우 지망생의 기분으로 살아가는 시기 아니었을까 싶은데. 

결정적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서른 살 남자라면 으레 갖춰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있지 않나. 연기로 먹고살려면 내 기준에서는 지금보다 알려진 배우가 이미 돼야 했다. 서른에 접어들자 친구들의 벌이 수준도 올라갔다. 자연스레 비교됐다. 고향 친구들은 벌써 결혼하고 애 낳고 집도 마련했다는 이야기가 서서히 들려오는 시기였다. 무엇보다 그 무렵에 엄마가 대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시작하셨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했고 완치 판정을 받으셨는데, 어쨌든 수술 이후에 엄마의 체력이 완전히 회복된 느낌은 아니었다. 본래 아버지도 몸이 불편하시고, 나는 장남이고. 이 모든 상황이 복합적으로 다가오면서 문득 배우를 관둬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 생각보다 많을 수 있구나, 마음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배우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구나.

 

노력했다고 곧바로 성과를 내는 길은 아니니까.

작년에 GV에서 엇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어떤 관객분이 “이 배우 잘 되면 좋겠다”라고 댓글을 남겨 주셨더라. 그걸 보고 뭉근한 위로를 받았다. 운 좋게 <늦더위> <목소리들> 등을 찍긴 했지만, 장편 주연 경력이 있다고 해서 다른 작품에 쉽게 캐스팅되지는 않는다. 요즘 주변에서 다들 축하한다고 하더라. 드라마도 들어가고, 영화도 개봉하고. 남들 눈에는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보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드라마 촬영이 끝나는 10월 이후엔 배우가 아닐 수도 있어’라고 생각한다. 앞날을 예상할 수 없으니 매번 힘들다.

 

그러면 본인이 생각하는 배우로서의 장점은 무엇인가. 

상황이나 분위기에 따라서 얼굴이 확확 바뀐다. 이렇다 할 특색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선과 악이 동시에 보인다고 하더라.

 

경찰이 될 수도, 범인이 될 수도 있는 얼굴.

지금 촬영하는 드라마로 형사 역을 처음 맡았다. 나 같은 막내 형사가 진짜 있을까? 이렇게 둥글둥글하고 순둥숭둥하게 생긴 형사가 있다고? 스스로 믿음이 안 생겨서 동대문 경찰서로 갔다. 건물 앞에 서서 1시간 동안 출근하는 형사들을 지켜봤던 거다. 근데 있더라. 범죄자를 상대할 것처럼 안 보이는,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다른 형사들. 그분들 보며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감독님한테 이 얘기했더니 크게 웃으셨다. 자기도 다 알아보고 캐스팅한 거라고. (웃음) 

 

마냥 둥글둥글하고 순둥순둥한 느낌은 아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일전에 만난 감독님 한 분이 그러더라. 공부 잘하는 전교 1등인데 뒤에서는 애들 조종하는 양아치 역할이 어울릴 것 같다고. 또 다른 감독님은 “진우 씨는 도화지 같아요. 내가 교복 입히면 학생처럼 보이고, 깡패 옷 입히면 깡패처럼 보일 같아요.”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서로 다른 느낌을 한 얼굴에 가졌다는 것이 내 장점인가 보다.

기진우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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