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안보국(NSA) 정보 분석원으로서 정부의 대량 감시를 폭로한 내부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을 다룬 <시티즌 포>(2015)로 아카데미 시상식 트로피를 차지한 다큐멘터리스트 로라 포이트라스. 정부와 기업의 기밀문서를 공개하는 위키리크스(WikiLeaks) 창립자 줄리안 어산지(<리스크>), 악명 높은 국제 테러범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추종자들(<서약>) 등 감독의 카메라는 언제나 정치·사회·경제에 파장을 일으키는 인물들을 조명하고, 그들을 둘러싼 집단적 반응을 폭넓게 탐구해 왔다. 제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신작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에서 감독은 전설적 사진작가이자 시각 예술가, 그리고 정력 넘치는 사회 운동가인 낸 골딘에게 눈길을 돌린다.
1970년대 말 사진작가로 데뷔한 이래 낸 골딘은 성소수자 커뮤니티, 성적 억압과 에로티시즘, 에이즈 위기 등을 작품에 담으며 검열과 차별에 저항해 왔다.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사진집 『성적 의존의 발라드(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1986)와 동명 슬라이드 쇼, 기획 및 큐레이션을 총괄한 종합 전시 <증인들: 우리의 사라짐에 저항하여(Witnesses: Against Our Vanishing)>(1989)은 낸 골딘의 예술 세계뿐만 아니라, 그가 통과한 투쟁의 역사를 드러내는 주요 작품이다. 60대 중반에 접어든 2017년부터 낸 골딘은 ‘P.A.I.N(Prescription Addiction Intervention Now)’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미국 전역에 오피오이드 위기를 확산한 옥시콘틴 제약사 퍼듀 파마와 회사의 실소유주 새클러 가문, 그들에게 받는 기부금으로 운영 자금을 마련하는 전 세계의 대형 미술관과 박물관을 겨냥해 전방위적 활동을 펼쳤다.
영화는 낸 골딘을 뒤따르는 과정에서 두 갈래 축을 끊임없이 교차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부를 만한 P.A.I.N의 투쟁을 기록하는 동시에, 낸 골딘의 육성과 작업을 통해 투쟁 이전의 삶을 증언하는 방식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낸 골딘이 P.A.I.N 활동에 뛰어든 이유는 단순명료하다. 그 자신이 바로 무분별하게 팔아치운 마약성 진통제로 인해 심각한 중독을 경험한 피해자라는 것이다. 한데 영화가 엮어낸 흐름에서 바라보면 이 활동은 단지 옥시콘틴 피해자로서 권익을 보장받기 위한 한 차례의 싸움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낸 골딘이 이와 같은 수난과 폭력을 삶에서 끊임없이 경험했으며, 그때마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타인과 협력하고 함께 저항해 왔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한다.


말하자면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투쟁 현장을 참을성 있게 기록한 다큐멘터리이자, 낸 골딘을 거대 권력의 피해자와 변화를 이끄는 주체라는 두 위치 사이에서 줄다리기해 온 인물로 보여주는 전기 영화다. 총 7개의 챕터로 나뉜 영화에서 감독은 낸 골딘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 붙이는 편집 방식을 택하며, 인물의 취약성과 창조성을 나란히 드러낸다. “마음이 병들었다”며 부모에게 입막음 당한 채 집에서 쫓겨난 언니 바바라의 죽음과 진실을 은폐해야 했던 유년 시절에 대한 낸 골딘의 증언 이후, 섹슈얼리티 규범에 대항하는 그의 사진을 전시하는 현장으로 넘어갔다가, 곧장 다음 장면에서는 “나는 오피오이드 위기에서 살아남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그의 에세이를 비추는 식이다. 마치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양육자와 생애 처음으로 겪은 상실이 낸 골딘으로 하여금 사진을 찍게 했다는 듯이, 통제와 억압을 지배 수단으로 사용한 그의 가족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착취하여 부를 축적한 새클러 가문이 사실상 그리 멀지도 다르지도 않다는 듯이 말이다. 영화는 그렇게 자의적으로 맥락을 구성하며 낸 골딘의 생애를 반복적이고 확장하는 “자립과 의존 사이의 투쟁”으로 그려 낸다.
구타당한 여성, 성매매 산업 종사자, 드랙퀸, 에이즈 환자, 약물 중독자가 낸 골딘의 카메라에 담겼다. 변방으로 밀려난 수많은 이가 낸 골딘의 친구였으며 그 자신이기도 했다. “사진 찍기는 일종의 방어였어요. 내가 거기 있어야 할 이유였죠.” 괴로움과 공포로 가득 찬 세계에서 애초 방어 전술로 택했던 촬영은 그를 고립에서 벗어나게 했고, 나아가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를 목격하도록 이끌었다. 어쩌면 영화가 제시하는 대로 낸 골딘은 계속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만 50만 명을 죽음에 몰아넣은 오피오이드 위기 속에서 그는 친구의 부고와 추도식이 날마다 이어지던 잔혹한 시대를 기억한다. “성소수자를 전부 죽이면 에이즈는 사라질 것”이라는 혐오 발언이 공공연하게 퍼져 나가고, 정부와 의료계 모두 에이즈를 죄악시하며 두 손을 놓아버린 때였다. 희생자를 애도하고 사회의 무책임을 고발하는 전시 <증인들>은 “예술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적 기금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낸 골딘과 P.A.I.N의 활동 계보를 거슬러 추적하다 보면 반 에이즈 위기 운동 단체인 액트 업(Act Up)이 등장한다. 과거에 액트 업이 그러했듯 낸 골딘은 이제 오피오이드 중독 생존자와 유족 등 동료들과 함께 모여 메트로폴리탄, 구겐하임, 루브르를 찾아가고, 약병과 피 묻은 돈을 뿌리며 “새클러의 거짓말이 사람들을 죽인다”고 외친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이처럼 ‘유혈사태’를 파헤치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영화에 삽입된 낸 골딘의 사진은 삶의 환희와 비통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시각적 아름다움을 제공하고, 시위와 퍼포먼스를 포함한 P.A.I.N의 끈질긴 저항 활동은 감동을 자아낸다. 유대를 강화하며 대안적 공동체로 자리매김하는 사이, 그들은 실질적 변화와 성과 또한 획득한다. 미술관과 대학에서 기부금을 거부하겠다는 선언이 잇따랐고, 결국 퍼듀 파마는 파산을 신청하고 재판석에 앉는다. 낸 골딘은 분노와 슬픔에 몸을 연신 떨면서도 동료의 손을 잡은 채 진술을 끝까지 잇는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는 낸 골딘을 향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카메라를 든 여성 창작자로서, ‘입막음’이라는 위협에 줄곧 시달리는 시민으로서 로라 포이트라스는 낸 골딘에게 공감하는 듯하다. 감독이 표하는 애정과 존경에 화답하듯, 낸 골딘은 영화 내내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의 역사를 들려준다. 그 고백이 영화를 한층 내밀하고 풍성하게 만든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감독 로라 포이트라스 출연 낸 골딘 수입·배급 찬란 공동배급 하이스트레인저 공동제공 소지섭, 51k 제작연도 2023년 상영시간 122분 등급 15세이상관람가 개봉 2024년 5월 1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