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교과서가 없나요?” 이리스(이자벨 위페르)에게 불어를 배우기로 한 원주(이혜영)는 뜻밖의 교육법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리스가 들고 있는 건 교과서가 아니라 메모장이다. “이건 얼마인가요?”, “날씨가 좋네요.”처럼 정형화된 ‘여행 필수 문장’ 대신, 감정을 건드리는 일상의 특정한 순간을 유일무이한 문장으로 표현해 외국어를 배워보자는 것이다. 그를 위해 이리스는 학생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방금 무엇을 느꼈냐고 끊임없이 묻는다. 그리고 둘 사이의 대화를 곱씹어 프랑스어 문장을 만들고 메모장에 적는다. 문장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주고 계속 반복하라고도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종류의 경험을 갖게 하려는 거라는 이리스의 말은 근사하다. 이는 굳어진 영화적 규범과 관습을 비틀어 세계와 만나는 감각을 생경하게 만들어 온 홍상수 감독의 방법론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리스는 그의 학생을 익숙지 않은 길로 이끄는 선생이자, 그 역시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떠도는 이방인이다. 학생과 함께 있지 않을 때 그는 혼자 비빔밥을 먹거나 개울에 발을 담근다. 여행 필수 문장 같은 건 필요치 않아 보인다. 이리스의 하루를 보여주는 <여행자의 필요>는 그렇게 교본 없이 세상을 경험하는 순간들을 담는다.
이리스의 두 학생은 일면 비슷한 데가 없어 보인다.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젊은 여자(김승윤)는 피아노를 치고,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말한다. 원주는 그보다 더 나이 들었고, 기타를 치며,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 일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리스가 이끄는 대화는 이들 사이의 공통점을 환기한다. 피아노를 치며 무엇을 느꼈냐는 질문에 여자는 행복했고, 멜로디가 아름답다는 걸 느꼈다고 답한다. 더 깊은 곳에서 샘솟은 감정을 재차 묻자 의외로 그는 짜증이 났다고 말한다. 좋은 연주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다. 이리스와 함께 막걸리를 마시다가 기타를 연주한 원주도 같은 질문을 받는다. 재미있게도 그 역시 행복과 아름다운 멜로디를 느꼈다고 답한다. 이어지는 질문에는 사실 짜증이 났다고, 좋은 연주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홍상수의 영화에서 이 같은 기묘한 반복은 낯설지 않다. 전작인 <우리의 하루>만 해도 라면에 고추장을 풀어서 먹는 식습관을 가진 두 인물이 별다른 관계성을 전제하지 않고 등장했다. 하지만 <여행자의 필요>는 나 말고도 이렇게 먹는 사람이 있다는 아리송한 언급조차 포함하지 않는다. 보는 이를 자극하는 건 영화가 드러내지 않는 인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말 그 자체다.


더 좋은 연주를 하고 싶어 짜증이 났다는 말은 어떤 면에서 인간의 조건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은 이상적인 무언가를 표현하거나 어떤 상태에 도달하고 싶어 애쓰지만, 육신에 한계가 있어 번번이 목표 달성에 실패하고 만다. 물리적 형태가 없는 예술인 음악은 그러한 조건을 더 선명히 체감하게 한다. 물론 우리는 더 많은 제약과 함께 살지만 이런저런 조건과 한계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는 법이다. <여행자의 필요>가 서사 안으로 끌어안은 삶의 조건은 돈이다. 이리스가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이리스를 위해 방 한쪽을 내어준 인국(하성국)에게 보답하기 위해 그는 월세의 일부를 부담하고 싶어 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 설정은 이리스를 더욱 독특한 여행자로 만든다. 그는 관습에 기대지 않고 세상을 보려는 태도와 땅에 발붙이고 살기 위해 필요한 요건을 한 몸에 품고 뚜벅뚜벅 걷는다. “속세에 살면서 도를 닦는 사람, 죽는다는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사는 사람, 사실에 근거해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인국의 설명은 이리스의 이러한 지점에 대한 언급이다. 전자기기로 몸의 접지 상태를 확인하는 다소 이상한 장면에서 이리스는 자기 수치가 0까지 내려간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는 희망과 제약 사이에서 끊임없이 영점을 맞추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영화가 드러내는 또 다른 조건은 언어와 관련된다. 이리스와 다른 인물들은 대화하기 위해 영어를 사용한다. 이들의 의사소통에 언어의 규칙과 문법이 개입한다는 뜻이다. 본래도 말하고 싶은 것과 실제로 말해지는 것 사이에는 미세한 틈이 생기게 마련인데, 현저히 많은 영어 대사는 그 틈새의 존재를 좀 더 분명히 인식하게 한다. 게다가 이들이 나눈 대화는 그대로 프랑스어로 번역되지 않는다. 이리스는 대화를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해 새롭게 작문한다. 피아노나 기타를 연주할 때의 느낌을 묻고는 “내 안의 이 자는 누구인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서 짜증이 나는 이 사람은?”이라고 쓰는 식이다.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진다. 이는 불가피한 한계가 아니라 이리스가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세계를 감각하는 방법이다. 영화의 후반부, 이리스는 느닷없이 찾아온 인국의 어머니를 피해 동네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는 도서관 외벽에 쓰인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을 본다. 마침 그곳에 있던 한 여자가 영문으로 번역된 시를 보여주며 프랑스어로 읽어달라고 한다. ‘민들레’나 ‘까치’의 적절한 번역어를 찾지 못한 이리스는 그것을 ‘꽃’과 ‘새’로 옮기지만, 그런 방식으로도 시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여행자의 필요>는 우리가 본 것을 있는 그대로 말이나 영화로 표현할 수 있다는 관념에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홍상수의 영화는 나날이 단출해지고 있다. 이번에도 제작, 각본, 감독, 촬영, 편집, 음악을 감독 혼자 도맡았고, 그 외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스태프는 세 명뿐이다. <여행자의 필요>는 이 정도의 규모와 여건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대신, 영화 제작을 둘러싼 어떤 조건들을 다시금 숙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따금 초점이 맞지 않는 화면과 소음처럼 들리는 외부의 소리들을 노출하면서, 돈이나 언어 같은 문제를 이야기 속에 끌어들이면서 말이다. 영화가 아무리 작고 가벼워지더라도 여전히 카메라의 무게만큼은 무거울 것이다. 이리스가 종종 보여주는 고단하고 피곤한 얼굴은 왠지 그 무게를 생각하게 한다. 녹색 카디건을 입고 다녀 마치 숲의 요정처럼 보이던 그는 영화가 끝날 때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간다. 함께 있던 인국의 말처럼 집에 가는 것일까? 하지만 이리스는 앞서 “거기가 나의 집인가요?”하고 반문한다. 이리스가 향한 예측할 수 없는 그곳에는 아마 또 다른 방식의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여행자의 필요 A traveler’s needs 감독 홍상수 출연 이자벨 위페르, 이혜영, 권해효, 하성국, 조윤희, 김승윤 제작 영화제작 전원사 배급 영화제작 전원사, 콘텐츠판다 제작연도 2024년 상영시간 90분 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 2024년 4월 2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