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하지 않는
<바람의 세월>
차한비 / Choice / 2024-04-05

‘그’의 목소리는 서두르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말의 속도와 세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지나쳐 온 풍경을 최대한 차분히 그린다. “눈을 감으면 더욱 선명해지는 기억”은 주로 세월호 참사 이전의 것이다. 너와 함께한 시간, 너와 함께할 시간, 참사 이후에는 그런 기쁨을 좀처럼 느낄 수 없었다. 너를 잃은 이유도 모른 채 살 수는 없어서 진상규명을 외쳤고, 믿을 만한 언론이 없어서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 참사 유족과 시민이 왜곡 없이 소통할 창구도 마땅치 않아서 유튜브에 ‘세월호 유가족방송 416 TV’ 채널을 개설했다. 그렇게도 없는 것이 많았다. 촬영과 편집을 반복하며 투쟁을 이어간 10년. 거리 행진과 집회에서, 광화문 광장과 목포신항에서 ‘지성아빠’ 문종택과 그의 카메라는 등대처럼 자리를 지켰다. 그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족, 생존자, 활동가, 시민이 합심해 빈 땅에 길을 내는 과정을 낱낱이 기록했고, 그 영상을 모아서 김환태 감독과 <바람의 세월>을 엮어 냈다. 영화를 견인하는 문종택의 내레이션은 언뜻 건조하게 들리지만, 덤덤한 음성 속에는 만성이 된 그리움과 울분이 묻어난다.

<바람의 세월>은 ‘세월호 탑승자 전원 구조’라는 오보가 나온 시점부터 참사 10주기를 맞이한 현재까지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는 연대기적 구성을 취한다. 단지 참사 이후 10년을 갈무리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이토록 지난한 세월을 우리가 함께 거쳐 왔다고 말하기 위함이다. 문종택은 카메라를 통해 증거를 남겼다. 정치인의 거짓말과 기만적 태도를 포착했고, 일부 극우단체를 위시해 혐오와 조롱에 앞장섰던 이들을 주시했다. 하지만 영화가 더 열성적으로 비추는 것은 그에 굴하지 않는 마음이다.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하는 얼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에 쏟아지는 환호, 한가득 둘러앉아 노란 리본을 만드는 손길 또한 증거로 쌓였다. 특별법 제정이 가로막히고 책임자 처벌이 요원한 순간, 유족들은 거리로 나서서 수많은 사람과 동행했다. 내레이션에서 문종택은 곁을 내어준 동료 시민을 향해 거듭 감사를 전한다. <바람의 세월>은 세월호 참사의 연대기인 동시에, 또박또박 눌러쓴 편지다. 여태 함께해줘서 고맙다는 말은 앞으로도 함께해달라는 당부이기도 하다.

<바람의 세월>
<바람의 세월>

다만, 유족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공포와 외로움이 있다.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닌 문종택의 카메라만 담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 2016년 8월 25일,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는 더불어민주당사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예산과 인력 지원을 차일피일 미루며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어설프게 종료하려던 정부, 특별법 개정을 약속해 놓고 방관한 야당 모두를 비판하는 행위였다. 당시 단식 9일째에 접어들었던 ‘준형아빠’ 장훈도 농성에 참여했다. 기자들 앞에서 침착하게 입장을 밝히던 그는 “자식한테 왜 죽었는지는 알려줘야 하지 않습니까”라며 결국 눈물을 쏟는다. 그날 밤 문종택은 장훈과 건물 옥상에 오른다. 난간에 몸을 기댄 장훈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사이, 카메라는 위태롭게 진동한다. 화면에서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옥상 난간과 하늘의 경계, 그리고 장훈이 입은 노란색 티셔츠뿐이다. 나머지는 캄캄한 암흑에 파묻혀 있다. 영화는 그 장면에 짧은 대화를 이어 붙인다. 문종택이 어렵게 고백한다. “나 솔직히 들으면서 지금 두려운 게 있는데 말해도 돼? 당신 죽는 거 내가 찍는 거 아닌가 싶어서 진짜 두려워 죽겠다.” 장훈은 무슨 뜻인지 안다는 듯 웃으며 안심시킨다. “안 죽어요. 끝까지 갈 거예요. 아마 우리 가족협의회에서 제일 질긴 게 나일걸요.”

<바람의 세월>은 유족의 밤을 비춘다. 그들은 너무 찬란해서 야속하기까지 한 도시의 야경을 향해 노란색 손수건을 흔들고, 손을 뻗어 밤하늘에 뜬 별을 가리키며 우리 애라고 소개한다. 시민들이 다녀가자마자 철거를 시작한 합동 분향소를 지켜보면서 울부짖고, 단원고 ‘기억 교실’을 손수 정리하면서 무너져 내린다. 밤은 짐작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유족은 보통 노란색 옷을 맞춰 입은 한 덩어리로 인식된다. 그들은 가급적 통일된 목소리를 내며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한다. 그러니까 입장문을 발표하고 투쟁 구호를 외치는 낮에 비하면, 밤은 외면하기 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바람의 세월>의 흔들리는 카메라는 고정된 시선에 저항한다. 우리 사회는 유족에게 ‘피해자다움’을 기대하는 동시에, 그들이 슬픔과 분노를 투명하게 드러내면 지나치다고 비난해 왔다. 영화는 그러한 ‘적당한’ 선에 의문을 제기하려는 것 같다. 유족이라고 불리는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지옥을 견디는지 들여다보고, 그 와중에 이 싸움을 지속하는 동력은 어디서 찾는지 살핀다.

<바람의 세월>
<바람의 세월>

문종택과 유족들에게 지난 10년은 어떤 무게로 남을까. 그들은 저열한 소문에 시달리는 동시에, 시민들이 건네는 응원에 힘을 얻었다. 한때 광장을 메웠던 거대한 인파가 뿔뿔이 흩어지는 광경을 목격했으며, 그런데도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는 목소리를 의지할 것이다. 문종택의 고백과 장훈의 농담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저만의 방식으로 안부를 확인한다. 누구 엄마 누구 아빠로 부르며 아이 이름을 서로 되새기고, “살아 있네”라는 실없는 인사에 염려를 담는 식이다. 또 다른 죽음을 함께 아파하기도 한다. 실종자 수습에 헌신했던 김관홍 잠수사와 세월호 참사 기록 활동에 매진했던 박종필 감독의 부고, 그리고 재작년에 발생한 10.29 이태원 참사는 유족들에게 뼈아픈 기억이다. 10년을 회고하는 인터뷰에서 그들의 대화는 재차 반성에 가 닿는다.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싸웠으나 아직 “끝장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10년이나 흘렀는데도 사회적 참사는 반복되고,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현실이 개선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제 “왜 우리 애들만 안 됩니까?”라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대신에, “어느 지점에서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단단히 맞잡은 두 손을 바라본다. 어쩌면 이 기록은 지나온 시간에 전하는 감사이자, 다가올 시간에 고하는 다짐인지 모른다.

 

바람의 세월 SEWOL: Years in the Wind 감독 문종택, 김환태 출연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 및 촛불 시민 외 제작 연분홍치마 공동제작 다큐이야기 제작협력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공동배급 시네마 달, 연분홍프로덕션 제작연도 2024년 상영시간 105분 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 2024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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