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수와 장민경은 각각 2016년과 2017년에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 합류했다. 이들은 기록 활동가로 일하며 세월호 참사 4주기에 공개된 416프로젝트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2018)를 함께 만들었다.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내기인 오지수는 생존 학생 장애진 씨와 만나 <어른이 되어>를 연출했고, 장민경은 <이름에게>(연출 주현숙) 조연출을 맡았다. 6년이 지나서 참사 10주기를 맞이하는 올해, 두 감독은 각기 다른 작품으로 관객과 만난다. 장민경은 국내 사회적 참사를 다룬 데뷔작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을 개봉했고, 오지수는 연분홍치마의 옴니버스 3부작 <세 가지 안부>에서 자신의 세 번째 단편 <드라이브97>을 선보인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에서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이자 열성이 넘쳤던 활동가 배은심 씨는 본인을 “유족 선배”라고 칭한다. <드라이브97>에서 세월호 참사 생존자 장애진 씨와 희생자 김민지 씨의 오랜 친구인 한혜진 씨는 참사 이후 힘겨운 시간을 보냈으나 “저까지 없으면 애진이한테 중학교 기억은 없는 것”이기에 마음을 다잡았다고 전한다. 두 영화에서 출연자들은 무언의 약속을 주고받는 듯했다. 그들은 기꺼이 서로의 증인이 되기로 했고, 카메라를 들고 그들 곁을 지켜 왔던 장민경과 오지수도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지난 10년이 둘에게 어떤 기억과 흔적을 새겼는지 물었다.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이하 미디어위) 활동은 언제쯤 정리했나.
오지수_ 2020년에 해산 결정하고 나서 약 2년간 해산준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촬영본 모두 정리하고 엑셀로 목록 만들고, 그렇게 아카이빙을 싹 했다. 2022년 5월에 페이스북으로 공지를 올렸네. “미디어위원회가 4년간 촬영해 온 기록물들은 향후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찾는 과정에 쓰일 수 있도록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기억저장소,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와 공공 아카이빙 협약식(2020)을 맺어 관리되고 보관되도록 하였습니다. 컨택 포인트 관련 상세 안내는 글 아래 내용을 참고 바랍니다.”
오지수 감독이 2016년, 장민경 감독이 2017년에 미디어위에 합류했으니 따지고 보면 둘은 세월호 참사와 더불어 이십 대를 보낸 셈이다.
오지수_ 한 살, 두 살, 차곡차곡 나이를 먹었지.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시사회에 참석했는데 기분이 되게 이상하더라. 난 영화 시작하기 전에 무대인사 보면서 이미 울었다니까. (웃음) 고 이한빛 PD 동생 이한솔 님과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유족 허경주 님이 게스트로 오셨고,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작가이자 제작에도 참여한 이은지 PD가 사회를 봤다. 민경까지 네 사람이 딱 서 있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온 사람들이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타나서 관객들에게 “잘 봐주시면 좋겠다”고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감정이 확 올라왔다. 게다가 한솔 님과 경주 님이 민경을 좋아하더라. 감독님을 믿기에 같이 했고, 끝까지 영화를 책임져줘서 고맙다며 두 분 다 생글생글 웃었다. 딱 봐도 애정이 느껴졌다. 민경을 오래 지켜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 참사의 유족만 담기도 벅차고 힘든데, 민경은 다양한 참사를 접하고 그 유족들과 만났다. 팔로우하고 설득하고 연락하고 따라가고… 민경이 어떤 과정을 통과했는지 얼추 알기에, 유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서 있는 모습이 유독 아름다웠던 것 같다. 촬영부터 개봉까지 거의 5년이 걸렸다. 혼자 많이 고생했을 거다.
개봉 버전으로 편집하면서 기존과 달라진 부분도 있나.
장민경_ 많지는 않은데 일단 푸티지 사용을 줄였다. 저작권 해결하려고 보니 큰 비용이 들더라. 다 빼고 촬영본으로 교체했다. 뉴스 아카이브 대신에 당시 집회나 추모식을 찍은 영상을 삽입하는 식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태원 참사. 관련 내용을 영화 후반부에 넣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결국 자막을 쓰기로 했다. 참사 발생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유족을 섭외하기도 어려웠고, 관계를 쌓지 못한 상태에서 참사 이야기 듣겠다고 그분들을 촬영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긴 해서 자막을 택했다. 그나저나 지수 영화를 빨리 봐야 하는데! 중간중간 만나서 진행 상황을 들었지만 완성본은 아직 못 봤다.
두 영화의 공통과 차이가 확실해서 나란히 놓고 보니 재밌더라. 오프닝과 엔딩은 거의 비슷하다. 이를테면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은 팟캐스트 녹음실의, <드라이브97>은 셀프 사진관의 ‘ON AIR’ 사인을 비추며 시작한다. 곧이어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흐름도 같다.
오지수_ 실은 오프닝을 마지막에 찍었다. 정확히 말하면 추가 촬영이다. 그전까지 애진과 혜진, 두 출연자에게 별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방향 정도만 혼자 머릿속으로 정리해 놓고, 둘에게는 “오늘은 너희 밥 먹는 거 찍을게”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그날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체적 계획을 밝히며 주문했다. “얘들아, 내일은 사진관에 가서 이러이러한 장면을 찍을 거야. 그러니까 너희 화장하고 오는 게 좋을 거다.” (웃음) 사진 촬영 후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며, 그때 민지에 관해 적극적으로 물어보겠다는 말도 미리 전했다. 일전에 둘이 노는 모습을 찍다가 ‘인생네컷’에 갔던 적이 있다. 친해지고 싶어서 계속 따라다녔던 시기인데, 그날도 ‘인생네컷’ 부스까지 뒤따라 들어간 거다. “무슨 포즈 할까?” “야, 너 이쪽 봐봐” 그런 자연스러운 대화가 둘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는데, 부스가 워낙 좁다 보니 촬영 과정은 우당탕 그 자체였다. 화각도 애매해서 촬영본이 좀 아쉬웠다. 관객에게 편안한 화면을 제공하고 싶었다. 널찍한 공간을 대여하고 카메라도 두 대로 늘려서 야무지게 찍어 보자는 마음으로 추가 촬영을 결정했다.
한참 셀프 촬영에 열중하던 두 사람이 감독을 부른다. 같이 사진 찍자고 할 줄 예상하지 못한 것 같던데.
오지수_ “나도? 나도?” 하며 엉겁결에 둘 옆으로 갔다. 그 순간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라는 걸 실감했다. 촬영하는 내내 내가 언제쯤 영화에 들어가야 하는지, 그러니까 지수라는 인물은 어디서 들어올 수 있는지 계속 고민했다. 애진이 “지수야, 너도 같이 찍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순간, 이거구나 싶었다. 감독으로서도, 둘을 좋아하는 친구로서도 좋았던 기억이다. 애진, 혜진과 정말 친구가 됐다는 느낌이었다. 그날 촬영본 보면서 서로 그림체가 너무 다르다며 웃었다. 걔들은 디즈니 과인데 나만 혼자 <센과 치히로>더라. (웃음)
장민경 감독은 촬영 시작하기 전에 무엇을 구상하고 협의했는지 궁금하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유경근 씨를 포함한 여러 게스트,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을 제작하는 CBS, 방송 책임자인 정혜윤 라디오 PD 등 다양한 단체 및 개인과 협업해야 했는데.
장민경_ 우선 가족협의회, 416연대, CBS가 함께하는 팟캐스트 방송이 결정됐다. 기록 차원에서 방송을 촬영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미디어위가 그 일을 맡게 됐다. 첫 촬영을 앞두고 아마 한두 번쯤 회의했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영화를 계획하지는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유족 활동을 기록하는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이후 제작할 트레일러나 홍보 영상 소스를 마련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근데 어느 순간 ‘ON AIR’ 사인에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머릿속 스위치가 켜졌다. 여기서 그만두면 안 되겠다 싶더라. 시그널을 받은 기분이었다. 보통 뉴스에서는 유족들이 발언하는 시간도 짧거니와 심경을 묻고 답하는 정도에 그친다. 팟캐스트는 마치 위급 상황을 중계하는 재난방송 같았다. 한 분씩 초대해 대화를 나누며 관련 참사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줄곧 묘했다. 돌이켜보면 그 아리송한 느낌이 출발점이었던 것 같다.
보고 들은 것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는 뜻 같다. 감정적 동요가 컸나 보다.
장민경_ 말하자면 내가 ‘세상 끝의 사랑’의 첫 번째 청취자였으니까. 스튜디오가 굉장히 좁아서 출연자의 표정을 가까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대화와 표정, 스튜디오 안에 흐르는 공기에 영향을 받았다. 본래 미디어위에서 작업을 가져가기로 했는데 촬영 중간에 해산이 결정됐다. 나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걱정했다. 다루기 쉽지 않은 주제인 데다 심지어 데뷔작이니까. 글쎄, 뭔가에 홀렸다고 해야 하나. 유경근 님을 제외하면 출연자 모두 처음 뵙는 분들이었다. 유경근 님과도 대화해본 적은 없었고. 낯가림도 심한데 어떻게 용기를 냈는지 모르겠다.
두 작품의 구성상 가장 큰 차이는 연출자인 ‘나’의 있고 없음이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이 나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출연자의 자리를 마련한다면, <드라이브97>은 나를 통로 삼아 출연자의 이야기에 가닿도록 한다.
오지수_ 참사 4주기에 애진과 내 이야기를 엮어 <어른이 되어>를 작업했던 터라, 사실 이번에는 ‘나’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을 고민했다. 근데 애진과 혜진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내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아주 가까운 사이임에도 각기 입장과 고민이 다르다. 양쪽을 다 아는 사람이 나였다. 두 사람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동시에 둘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잘 전달하는 것 또한 나의 역할이라고 봤다. 지수라는 인물은 활동가이자 세월호 참사를 겪은 같은 세대의 청년이다. 여러 이야기를 운반할 수 있는 좋은 인물로 보였다. 오히려 촬영 초반에는 애들한테 말 걸지 말라고 했다. “나 신경 쓰지 마. 너네 둘이 얘기해.” 그러다 점차 확신이 생기면서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둘 사이에 들어갔다. 애진과 혜진이 민지에게 줄 미니어처 만들 때, 내가 도와준다면서 끼어들기도 하고. 처음에는 세월호 참사 작업할 때마다 나를 드러낸다는 것이 아주 긍정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내가 주인공들의 자리를 뺏는 것 아닌가? 나 말고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려주고 싶은데 왜 번번이 나의 이야기를 경유해야 하나? 내가 그 방식밖에 못 쓰는 건가? 상황을 납작하게 받아들이며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생각에 빠져들었던 시기가 분명히 있다.
그러면 이번 작품에서 확신을 얻은 계기는 뭐였나.
오지수_ 사실 혜진이라는 인물 덕분에 이 구조를 선택하는 데 자신감을 얻은 면이 있다. 애진은 단원고 생존 학생으로서 고민과 어려움을 갖고 있다. 나도 그걸 이해하고 싶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다 알기란 불가능하다. “너를 다 이해해. 너를 열심히 이해하고 싶어.”라고 말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가끔 들고. 혜진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그런 부분이 겹쳐 보였다. 혜진도 애진에게 전부 말하기는 어렵겠구나. 그렇다면 이 둘의 이야기덩어리를 내가 왼팔과 오른팔에 하나씩 안고 관객에게 가봐야겠다. 왜냐면 두 이야기를 따로 뗄 수는 없거든. 각각 단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로 봐주십사 하는 마음에서 지수라는 인물을 넣기로 했다. 이번 작업을 2022년 말에 시작했는데 사실 못 하겠다는 말도 몇 번 했다. 세월호 참사를 지나서 이태원 참사까지 맞닥뜨리자 무력감이 밀려오더라. 너무 힘들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바뀌는 것 같다. 그런 하소연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나도 나름대로 어떤 동력을 찾고 싶어서 이 작업을 붙잡았구나 싶다. 애진과 혜진, 지수, 그리고 민지까지 네 명의 친구 이야기를 내가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장민경_ 난 오히려 반대였다. 처음 기획했을 때는 내가 작품에 들어가서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려고 했다. 근데 기획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꾸 삐그덕거리는 걸 느꼈다. 팟캐스트 종료한 직후, 충격적 장면을 연달아 접했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선거운동이 한창이었는데 안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추모공원을 납골당이라 부르며 혐오시설 취급하는 발언도 끊이지 않았고. 그 속에서 내가 어떤 말을 할 수 있는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참사를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의 언어를 찾기 어려웠고, 그렇다고 영화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말하는 대신에 공간을 찾아갔다. 참사 현장을 방문해서 풍경을 지켜보거나 희생자들의 유해를 뿌렸다는 바닷가 근처를 맴도는 식이었다. 당시 영화를 만드는 내 마음이 그랬고, 애도의 시간을 표현할 방법이 그뿐이었다. 공간을 담은 영상에 유족들의 말을 사운드로 넣었다. 그렇게 동시에 깔아두고 내가 느꼈던 걸 관객들과 느끼고 싶었다. 전체를 서사화하기는 아직 어려우니 그런 방식으로나마 마음을 공유하고자 했던 것 같다. 한편, 애도의 시간을 나누고 싶은 마음 외에 분노라는 감정도 내 안에 있음을 발견했다. 출연자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거쳐 온 시간을 전해 들으면서 윗세대에 화가 났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안 들어줬지? 정작 바뀌어야 할 사람은 그대로인데 왜 이분들만 노력하지? 그래서 유족들이 스스로 변화한 지점을 이야기하는 장면을 담았다. 이 영화를 내 윗세대가 본다고 가정하면, 나보다는 차라리 유족들에게 공감하겠구나 싶더라. 그분들의 시선을 따라서, 그분들의 감각을 새김으로써 마음이 움직이길 바랐다. 지수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나도 관객에게 편지를 썼던 거다.
둘에게 이태원 참사가 커다란 파장을 안겼구나 싶더라.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의 경우, “사회적 참사는 반복되고 있습니다”라며 마지막에 등장하는 자막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자신을 가급적 드러내지 않으려 하던 연출자가 화자로 나서는 유일한 순간인데, 그 목소리는 애원이나 호소라기보다는 일갈처럼 다가왔다.
장민경_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자막 자체를 그 장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쓰기도 했고. 지수와 나의 성격 차이도 있다. 난 웬만하면 참는 스타일이다. 곧장, 직접적으로, 활발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니다. 예를 들면 영화에서 ‘참사의 반복’도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팟캐스트 들어보면 세월호 참사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근데 다른 참사를 증언하는 과정에서 계속 세월호 참사가 떠오르며 기시감이 든다. 그것만으로도 내 의도가 충분히 전달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까지 일어나고 나니 그냥 넘어갈 수 없겠더라. 내가 실제로 분노했기에 한기를 느꼈던 것 아닐까. 문구를 놓고 마지막까지 고민을 거듭했다. 사실 영화를 완성했던 2021년 당시에는 개봉을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유의미한 변화가 시작되어 이 영화는 세상에 필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근데 아니었다. ‘거기서 마무리하면 안 됐구나. 더 할 수 있으면 해야 하나 보다.’ 그렇게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생각을 바꿨다.
그간 미디어위 활동하고 작품 만들면서 세월호 참사 유족, 연대자, 시민 등과 함께 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더 괴로웠을 듯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애를 썼는지 아니까. 절망과 무력감을 단번에 털어내기 어려웠을 텐데 요즘 마음은 어떤가.
오지수_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냉소였다. 세월호 참사는 내게 오히려 동력이 됐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었고 연대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배웠다. 근데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직후에는 전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상을 보내던 이들이 159명의 희생자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된 듯했다. 참사 당시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리고 ‘내 친구들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혜진이 세월호 참사를 복기하는 과정에서 그 이야기를 똑같이 하더라. 민지에게서는 연락을 못 받았으니 너무 괴로운데, 동시에 애진이는 무사하니 다행이구나 싶고. 그 마음을 누구에게 또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냉소, 회의, 의심. 그런 감정에 휩싸여서 솔직히 이 영화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 수차례 자문했다. 근데 그만두는 것이 답은 아니더라. 참사를 기록하고 연대하는 활동을 통해, 나는 분명히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이제 와서 소용없다고 말하며 그만두는 것은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결과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냉소는 결국 슬픔이었던 거다. 정말이지 속상했다. 슬픔을 전복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한 결과, 애진과 혜진의 관계에서 동력을 찾았다. 둘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민지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민지에 관한 소소한 추억을 나누며 허물없이 웃는 두 사람의 표정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것 같다. 참사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필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주 작은 기억을 계속해서 길어 올려야 하는구나. 그런 접근을 통해 냉소에서 벗어나 동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감독으로서도 그렇지만, 오지수 개인으로도 민지에게 고마웠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는데 왠지 민지가 가깝게 느껴졌다. 편집하는 내내 ‘아마 민지가 지금 곁에 있다면 애진이나 혜진보다 나랑 더 잘 맞았겠는데?’ 생각했다. (웃음) 그런 마음을 하나하나 계속 살피면서 살아보려고 한다. 세월호 참사를 포함해 다른 참사들 또한 자세히 기억하고 싶다.
오지수 감독에게 우정은 참 중요한 주제처럼 보인다. <드라이브97>과 <어른이 되어>뿐만 아니라, 극영화 <허밍>(2022)도 친구 관계를 이야기한다. 감독이 세계를 이해하고 그곳에 몸담는 방식이 곧 타인과 친구 되기라는 생각도 든다.
오지수_ 성인이 되자마자 미디어위 활동을 시작했다. 늘 소속감을 느끼길 원했고, 활동 자체가 내게는 관계 맺기의 중요성을 상기하는 과정이었다. 관계 맺기란 우정을 쌓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서로 친해져서 마음을 가뿐하게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것이 내게 무엇보다 중요했다는 뜻이다. 비단 동갑내기 친구들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과 친해지는 일에 집중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유족분들과 불편하지 않게 대화할 수 있지? 다른 활동가들의 욕구와 고충을 이해하며 나도 적극적으로 연대할 방법은 뭘까? 단순하게 말하면 친해져야 했다. 같이 술 먹고 풀어진 모습을 보여준다고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과 내가 어떤 관계를 쌓을 수 있는지 꾸준히 고민하고 상상해야 했다. 쉽지 않은데, 그래서 재밌더라. 내게는 주어진 틀이 없었다. 학교나 직장 소속이 아니니 가볍게 형성되는 관계가 거의 없었고, 스스로 친구와 동료를 만들어야 했다. 20대의 가장 주요한 고민이었기에 자연스레 영화 작업으로 이어진 것 같다.
그런 친구와 동료 중 한 사람이 장민경 감독이었을 텐데.
장민경_ 나도 이태원 참사 이후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지수가 <드라이브97>을 시작할지 말지 한참 고민하던 무렵, 우리 술 마시면서 거의 다섯 시간쯤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지수가 많이 망설이긴 했지만,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계속 보였다. 그게 진심이었고. 친구로서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않나. 지수가 아무리 장막을 드리워도 나는 굳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여기에 너의 반짝이는 순간이 있다”고 주장했지. (웃음) 우리는 그걸 서로 발견해 주고 또 반사해서 보여주는 관계니까.
오지수_ 작업하다 보니 자주 만나지는 못 하지만 계절마다 한 번씩은 꼭 뭉친다.
함께 영화를 만드는 제작진이나 출연자에게는 ‘못하겠어요’라고 말하기 어려울 거다. 서로 속내를 터놓고 말할 상대가 있어서 다행이다.
장민경_ 그런 이야기도 했다. 개봉 전에 작은 규모로 공동체 상영회를 열었는데, 내가 몰랐던 다른 참사의 유족이라든지 그분들의 친구가 관객으로 온 적이 있다. 그분들이 평소 터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상영회에서 꺼내시더라. 상영회가 하나의 장을 연 듯했다. 팟캐스트 방송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재현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누군가에게 이 영화가 힘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내 무력감을 멈추게 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과 작업이 아무런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불안하고 힘들거든. 근데 아닐 수도 있다는, 이 영화를 통해 또 다른 이야기가 엮일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에서 ‘이야기 엮는’ 일을 유경근 씨에게 맡겼다. 그를 길잡이 삼아 다양한 참사를 다루는 과정에서 영화의 폭과 깊이가 확장한다. 유경근 씨가 팟캐스트 방송 진행하는 모습을 보니, 좋은 인터뷰어이자 청자라는 생각이 들더라.
장민경_ 확실히 유족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셨다.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 아니까. 상대에게 시간을 준다기보다 자신도 그 시간을 함께 견디셨던 거다. 기침하는 황명애 님에게 괜찮다면서 쉬었다 가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떠오른다. 인터뷰어로서 본받을 만한 태도였다. 특히 고석 님과의 대화가 놀라웠다. 고석 님이 일상을 살다가도 불현듯 어떤 순간순간이 떠올라서 괴롭다고 하시지 않나. 그다음에 유경근 님이 대체 뭐라고 하실지 궁금했다. 나라면 아무 말도 못 하고 얼었을 것 같거든. 근데 유경근 님은 담담히 자기 이야기를 하시더라. 이전까지 나는 아픔을 털어놓는 상대 앞에서 매번 어쩔 줄 몰랐다. 그와 마주할 방법을 찾지 못해 침묵하는 정도였다. 유경근 님은 거기서 자신을 열어젖히고 함께 아픔을 내보이셨던 거다. 사실 고통을 말하는 사람은 컴컴한 곳에 홀로 남은 느낌을 받기도 하는 것 같다. 발가벗겨지는 순간이니까. 근데 유경근 님도 고석 님에게 어둠을 내보이자, 두 분이 비로소 한 공간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화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렇게 말을 주고받는 방식을 집중해서 보려고 했다.
<드라이브97>은 장애진 씨와 함께한 두 번째 작업이기도 하다. 시간을 거치면서 장애진 씨는 감독에게 어떤 의미로 자리 잡았는지, 이번 영화에 한혜진 씨는 어떻게 들어오게 됐는지 궁금하다.
오지수_ 원래 작품 준비하면서 다른 생존 학생들을 10명 정도 만났다. 근데 섭외에 전부 실패했다. 애진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다 실패하고 마지막으로 너에게 연락했다. 나한테 너밖에 없다.” (웃음) 많은 분이 10주기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생존 학생과 만나는 과정에서도 가족협의회와 유족 분들이 어떻게든 다리를 놓아주려고 했다. 밥도 여러 번 먹고 동갑이라고 어필도 해보고 나름 노력했는데, 다들 영화 출연을 고사했다.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무섭다고 하더라. 왜냐면 참사 당시 특례 입학부터 시작해서 온갖 욕을 먹었으니까. 아주 친한 소수의 사람만 내 이야기를 안다고, 대학이나 직장 등 다른 곳에서 말한 적은 없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를 ‘그 일’이라고 칭하는 이들도 많았다. 아직도 참사를 떠올리거나 언급하기 힘들어했기에 나로서도 더는 붙잡을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되어>로 애진에게 내 러브레터를 보냈으니 이번에는 애진 외에 다른 생존 학생을 만나려 했는데, 태초의 기획이 사라진 거다.
장애진 씨 반응은 어땠나.
오지수_ 별수 없으니 날 거둬줬지. 다른 애들의 이야기도 나와야 관심과 시선을 더 얻을 텐데, 하며 처음엔 조금 아쉬워했다. 그러다 “네가 찍는 거면 뭐든 할게”라고 하더라.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애진이 뭐 찍을 거냐고 물어보는데 할 말이 없는 거다. 계획이 틀어진 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든. 둘이 카페에 앉아서 노트 펼쳐놓고 ‘10주기… 생존 학생…’ 끄적이는 중이었다. 애진이 불쑥 자기 친구를 만나겠냐고 묻더라. “혜진이라고 있어. 걔랑 매년 민지한테 가는데, 올해 미니어처를 만들어서 선물하려고 해. 그거 찍을래?”
총 연출이 따로 있었네. (웃음)
오지수_ 그렇지, 사실 애진이가 수뇌부다. (웃음) 애진이 일단 혜진에게 의사를 물어보겠다고 해서 기다렸다. 혜진이 내키지 않을 수도 있고, 영화 출연은 어디까지나 혜진 스스로 선택할 문제니까.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이 한 2~3개월 됐다. 겉으로 드러낼 수야 없지만 초조했지. 이들조차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고. 다행히 혜진이 만나자고 하더라. 그게 작년 7월 초였다. 당시만 해도 혜진은 얼굴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억이 사라진 부분도 있고, 자신보다 힘든 사람이 많은데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와도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말도 하더라. 애진이 중간에서 함께 설득해 줬다. 혜진 역시 친구를 잃은 피해자 아닌가. 충분히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데 아무래도 걱정이 컸던 것 같다. 내게는 결전의 날이 있었다. 내 마음을 진솔하게 전하고, 혜진이 그래도 어렵다고 하면 포기하자는 마음이었다. 이런저런 어려움을 감당하면서도 민지를 기억하려는 마음, 참사 이후에 겪고 느낀 것. 내가 보기에 그건 전부 혜진의 진실이었고, 다른 누구도 함부로 재단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때 혜진이 내 말을 끄덕끄덕하면서 들어주더라. 걱정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이해해 준 거다. 영화에서 아쉽게 편집하긴 했지만, 가끔 작업이 힘에 부치면 그날 촬영한 혜진의 모습을 찾아보곤 했다. 이후 혜진이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스케줄도 미리 알려주고, 다른 친구 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선 오히려 애진보다 혜진이 마음의 문을 더 활짝 열어줬던 순간도 있는 것 같다.
애진과 혜진 두 인물의 성격 차이가 뚜렷하더라. MBTI로 치면 애진은 T가 틀림없구나 싶고. 현장에서 지켜본 둘은 어땠나.
오지수_ 오프닝에서 인물 소개할 때, MBTI를 원래 넣으려고 했다. 혜진도 T이긴 한데 애진은 진짜 대문자 T다. (웃음) 직업도 영향을 준 것 같다. 혜진이는 회사 생활을 꽤 했다 보니 몸에 밴 습관이 있더라. 동시에 애진과 달리 혜진은 10년 만에 남들 앞에서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처음 하는 상황이다 보니, 감정적으로 더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둘도 둘이지만, 무엇보다 내가 느낀 점은 나와 그들이 정말 다르다는 거다. 하루는 애진에게 “우리는 비슷한 데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아”라고 했더니 애진이 빵 터지더라. 그렇게 웃는 애진을 처음 봤다. 애진의 관심사는 연애, 결혼, 미용 등이다. 내가 아주 무지한 분야지. (웃음) 그러니까 결론은, 이들과 나는 세월호 참사 외엔 공통 관심사가 딱히 없는 거다. 참사에 관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일념 하나가 일치해서 여태 만나고 있구나 싶더라. 애진도 맞장구쳤다. 주변 친구 중에 세월호에 관해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우리가 드디어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마음만은 같다는 것을 깨달은 후로 진짜 친구가 된 것 같다. 서로 의지했기에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두 작품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것 중 하나는 트라우마다. 출연자 대부분은 특정 기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몸과 마음의 통증이 불시에 튀어나오기도 한다. 출연자를 향한 애정이나 존경과는 별개로, 그들과 긴 시간 소통하며 작업을 끌어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도망가고 싶었던 적은 없나.
장민경_ 당연히 많지. (웃음)
오지수_ 민경이는 진짜 지난한 과정을 거쳤으니까. 심지어 출연자가 한두 분도 아니고. 난 못할 것 같다.
장민경_ 계속하다 보니 맷집이 생긴 걸 수도 있지. 배은심 선생님이 영화에서 “세월은 약이 아니다”라고 하시는데 그 말이 와닿았다. 처음엔 나도 감당하기에 어려웠다. 출연자들이 때로는 촬영을 힘들어하기도 했고, 영화 안팎에서 다양한 갈등도 이어졌다. 근데 신기하게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와 무게가 조금씩 늘어났다. 처음엔 여기까지였는데 점점 저기까지. 내가 다 이해하고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냥 마음의 공간이 좀 더 넓어져서 완성할 수 있던 것 같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웃음) 가수 아이유가 그런 말을 했더라. 도저히 공연을 못할 것 같았는데 관객들이 ‘넌 할 수 있어!’라는 눈빛을 보내준 덕분에 해냈다고.
장민경_ 아마 출연자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타인과 함께하며 자신의 반경을 넓혀 온 거다. 그런 전염은 참 좋고 신기한 경험 같다. 이전에는 생각조차 못 했던 일도 나서서 하게 되고.
오지수_ 그러고 보면 나도 친구들 덕분에 작업을 완료했던 것 같다. 애진에게 혜진을 소개받고, 둘에게 민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되게 궁금해졌다. 예체능에 뛰어난 민지, 꾸미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민지, 얼굴도 예쁜 민지. 영화 일을 하다가 어디선가 마주쳤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친구였다. 민지 봉안당에 미니어처를 놓고 보는데 문득 ‘난 이제 민지를 그리워하겠구나’ 싶더라.
장민경_ 무슨 말인지 안다. 촬영 초반에 예은이 생일이었고, 유경근 님을 따라서 추모공원에 갔다. 생일 선물을 고민하다가 예은이 가수 제이래빗을 좋아했다고 해서 앨범을 준비했다. 선물이랑 편지를 봉안당에 놓고 왔는데, 그날 이후 예은이가 종종 떠오른다. 친구들 생일을 보통 못 외우지 않나. 근데 창밖에 단풍이 들 무렵이면, 곧 예은이 생일이구나 하며 그때가 떠오른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지수의 말에 공감한다. 내게는 참사가 일어난 봄의 벚꽃보다 예은이 태어난 가을의 단풍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자연스럽게 얘기가 나왔는데 두 영화가 엔딩에서 방문하는 장소가 서호추모공원으로 같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은 유경근 씨 가족이 예은의 생일상을 차려주는 모습을, <드라이브97>은 친구들이 민지에게 미니어처를 선물하는 모습을 담는다. 두 작품 모두 작은 봉안함 앞에서 서성대는 이들의 얼굴을 비췄는데.
오지수_ 처음부터 영화의 종착지로 그곳을 생각했다. 민지 봉안당에 가는 날, 민지 아버지가 와주셨다. 그 장면도 찍긴 했는데 아버지가 원치 않으셔서 영화에선 들어냈다. 직장 동료 중 누군가 알아보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바라지 않고, 민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여전히 힘들다고 하시더라.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등장으로 인해 엔딩이 생존자와 유가족의 만남으로 그려질까 봐 고민하기도 했다. 어떤 이상한 위계나 갈등이 형성되는 것처럼 보이면 어쩌나 싶어서. 현장에서는 전혀 아니었거든. 차라리 감동적인 장면은 그때 더 나왔지. 아버지가 봉안함 열어주시고, 우리가 괜찮다고 하는데 용돈 찔러주시고. 어쨌든 아버지 촬영 분량을 걷어내고 애진과 혜진이 민지를 만나러 간다는 흐름에 집중하기로 했다. 더불어 애니메이션을 통해 민지와 벚꽃놀이하는 장면을 삽입했다. 우리 곁에 민지가 있다면 어땠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민지가 없더라도 우리는 이렇게 기억하면서 함께 미래로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현실에서 더는 함께할 수 없는 네 사람이 애니메이션 속에서 한자리에 모인다. 일종의 추모이자 약속처럼 보이는데, 어떤 의도로 삽입했는지 좀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오지수_ 내게는 그것이 만난 적 없는 민지와 노는 방법이었다. 애진과 혜진의 상상을 실현해 주고 싶기도 했다. 현실에서 함께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민지를 기억하면서, 그 마음을 안고서 사는 거다. 민지에 관한 자료는 18살에 멈춰 있지만 기억은 계속되니까. 민지를 소개하고 소환하는 과정에서 사진을 최소한으로 사용했다. 애진과 혜진이 그러더라. “우리가 죽었다고 생각해 봐. 죽은 다음에 내 과거 사진 막 풀리고 그러면 싫지 않을까? 민지는 진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애니메이션을 쓰겠다는 생각에 확신을 얻었다. 민지가 두 사람과 찍은 사진만 일부 사용하고, 나머지는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민지를 귀여운 캐릭터로 만들어 영화 안에서 통통 뛰어다니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마지막 장면에는 나도 함께 등장한다. 애진, 혜진, 민지를 계속 만나겠다는, 너희 곁에 나도 있을 거라는 마음을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었다.
장민경 감독도 엔딩을 일찌감치 정했나.
장민경_ 끝까지 고민했는데 엔딩만큼은 죽음보다 삶에 집중하자는 마음이었다. 누가 언제 태어났는지 보여주고 싶었고, 한 사람이 여기 살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추모제보다 생일 파티가 마음에 남았다. 향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초를 밝히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참사 10주기를 맞이해 새 작품을 내놓는 두 사람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들의 10년은 어땠나. 10년 전 장민경 감독은 학내 운동과 청소노동자 파업을 다룬 첫 단편 <안녕들하십니까>를 선보였다. 오지수 감독은 성인이 되자마자 세월호 참사 기록 활동에 뛰어들었다. 둘에게 10주기는 여러 갈래의 감각으로 다가올 듯하다. 10년 전만 해도 이렇게 살 줄은 몰랐을 테고. (웃음)
오지수_ 몰랐지, 알 리가 있나.
장민경_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해에 <안녕들하십니까>를 상영했다. 물론 그때도 내 인생이 꽃밭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웃음) 다만, 대형 참사가 이렇게 연쇄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막연한 희망과 기대를 품었다. 이 어렵고 힘들고 아픈 일들이 끝나면 다음에는 괜찮겠지. 근데 아니더라. 또 다른 참사를 겪으면서 이건 저절로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은 파도 타는 법을 잘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참사는 파도처럼 계속해서 들이닥칠 거다. 다음 10년에도 파도에 무너지거나 휩쓸리지 않고 파도를 잘 타고 싶다. 출연자들과 만나서 다행이다. 살아가는 방법을 부단히 터득해 오셨던 분들과 함께하면서 힘을 얻었다. 전에는 ‘그냥 다 망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런 마음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지수와 친구로 지내면서 나는 분명히 나아졌다. 내가 받았던 힘을 토대로 다른 곁을 만들고 싶다. 지난한 시간을 통과할 방법을 모색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점이 내게는 작지만 소중한 변화 같다.
그러게, 망할 때 망하더라도 천천히 잘 망하자.
오지수_ 더는 참사 다큐 안 하겠다고 찡얼대기도 했는데, 사실 머릿속으로는 다음 작업 아이디어를 굴린다. ‘형제자매를 찾아갈까? 애진 아버지를 만나볼까? 장편은 뭐 하지?’ 끊임없이 궁리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 어쩔 수 없구나 싶다. 10주기를 맞이해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에서 백서를 만들었는데, 나도 구술자로 참여하며 지난 시간을 정리할 기회가 생겼다. 기록과 연대가 무의미하게 보이는 시기를 겪었지만 조금 지나고 보니 냉소가 답은 아니구나 싶더라. 미디어위가 찍은 푸티지를 어떻게 쓸 수 있냐는 연락을 종종 받는다. 그때 했던 기록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가 찍은 장면을 이어 받아서 누군가는 다른 기억을 소환하고, 다른 작품을 만든다.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말하자면 배턴터치다. 10년간 알게 모르게 이어달리기했던 것 같다. 때로는 도망치고 싶고 허무함이 밀려들기도 했지만, 덕분에 그런 생각을 떨치고 여태 작업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당사자들도 모르지 않더라. 백서 발간 후 구술에 참여한 이들이 인상 깊은 문장을 한두 개씩 뽑았는데, 어느 분이 내가 쓴 문장을 고르면서 “계속 기억하고 연대에 동참하는 기록자들 덕분에 힘이 난다”며 고맙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미디어 활동을 시작할 당시 내 마음을 다시 상기하게 됐다. ‘맞아, 이 사람들 곁에 있고 싶었지. 당신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지.’ 그들 곁에 계속 있을 방법을 고민하며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난 10년은 무의미하지 않다. 앞으로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활동하려고 한다. 아직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말하지 못한 분들, 여전히 망설이는 분들을 만나고 싶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이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면 언젠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말하다 보니 조금 웃기다. 동료들한테 참사 다큐 안 할 거라면서 이제 여성 탈모인 다큐 만들겠다고 했거든. 내 탈모는 어떡하냐고!
탈모를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참사로 이어질 것 같다. 이 탈모가 어디서 기인했는가!
오지수_ 좋은 아이디어다. (웃음) 하여간 나는 계속 그 친구들 곁에 있기를 바라고, 그럴 수 있도록 신체든 심리든 내 상태를 건강하게 보존하고 싶다. 꾸준히 함께할 방법을 고민하는 중이다.
민경 감독은 어떤 작업을 계획하고 있나.
장민경_ 요새 다음 작품 준비하면서 골치가 아프다. 최근에는 개봉 일정으로 잠시 중단한 상황인데, 일단 참사를 지켜보면서 트라우마에 관심을 두게 됐다. 나는 타인을 통해 변화를 경험했다. 마음속에 세워 놓은 벽이 허물어지면서 내가 꽁꽁 싸맸던 기억이 흘러나왔다. 그중 하나는 가족의 정신질환이었고, 애초 그런 트라우마를 차근차근 돌아보겠다는 목표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다 새로운 사람을 여럿 만났다. 정신질환 당사자로서 저마다 고립을 오랫동안 경험한 분들이다. 격리된 시간도 꽤 길고. 지금은 그들 모두 그림을 그린다. 자신의 증상, 경험, 삶 등에 관해 그리는데 한 분이 그러더라. 예전에는 자기한테만 보이고 들리는 것이 고통스러웠다고. 한편으로는 그러한 환상이 기쁨을 주고 새로운 감각을 열어줘서 좋기도 했지만, 어쨌든 타인에게는 그냥 이상하게 비칠 뿐이라 터놓고 얘기하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근데 현실과 환상을 동시에 느끼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냐고 반문하더라. “나는 남이 보지 못하는 풍경을 볼 수 있고, 남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것이 나의 실존 아니겠는가.” 그 말이 인상 깊어서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다. 작업하다 보면 내 곁에서 고립된 순간을 경험하는, 나에게 말조차 꺼내기 힘들어하는 가족과도 같이 사는 법을 깨우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만나는 출연자들이 용기를 줬다고 본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나 역시 또 다른 배턴을 건네받아서 이어 달릴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