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지원은 최근 월악산에 다녀왔다. “산세가 험준하고 기암 단애가 맹호처럼 치솟”은 산. 누군가는 뒷걸음질 칠 산의 기세에서 위지원은 새해를 힘차게 시작할 든든한 기운을 엿봤다. 그는 정상을 향해 부지런히 걷는 데 익숙하다. 호기심이 동할 때, 승부욕을 자극하는 도전을 만날 때, 이 배우의 신비로운 눈은 환하게 빛난다. 알고 싶은 게 생기면 책 사이에 파묻히고, 몸을 열심히 움직이면서 미지의 세계에 빠져든다. 마주치는 온갖 장벽을 모두 자양분으로 흡수하면서. 이왕 하는 건데 어려움을 잘 극복하며 나아가보자는 마음에는 그늘보다 햇살이 더 자주 깃든다. 좀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빨간 옷 입은 여자와 영감을 기다리는 미술작가 지우를 동시에 연기하면서도 그랬다. 깨달음이라는 알쏭달쏭한 단어를 한 손에 쥐고 그는 즐겁게 걸었다. 그렇게 이별이나 아픔 같이 일상적으로 공감할 만한 정서부터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이해에 이르기까지, 배우 위지원은 <벗어날 탈 脫>의 세계를 고루 경험하며 무사히 등산을 마쳤다. 이제 시작점에 섰다고 느끼는 그는 조만간 바다에서도 자유롭게 헤엄쳐볼 작정이다.
개봉 소식을 전하며 <벗어날 탈 脫>을 질문이 샘솟는 영화로 소개했다. 어떤 질문들을 떠올리나.
어쩌면 영화를 보고 나서 어떤 질문을 해야 하나 싶을 수도 있다. 기존의 영화들과 조금 다른 형식이니까. 새로운 느낌일 거다. 그런데 <벗어날 탈 脫>이 이야기하는 깨달음은 어렵고 무거운 게 아니다. 그냥 나무를 볼 때나 구름을 볼 때처럼 일상에서도 순간순간 깨닫게 되는 게 많다. 난 주로 감사한 것들과 소중한 것들에 대해 깨닫는 경우가 잦은 편이다. 영화가 전하는 감정이 절대 일상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정말 질문이 샘솟는 영화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썼다. 영화는 기회가 될 때마다 계속 보고 있는데,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이더라. 아마 다른 분들도 어떤 감정으로 어떤 상황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 다를 거다.
평소 깨달음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아 <벗어날 탈 脫>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고. 생각이 많은 편인 게 느껴진다. 그런데 소속사 콘텐츠에서는 쾌활하고 밝은 모습을 자주 보여주더라. 좌우명이 ‘유머를 잃지 말자’다.
그 말을 친구들한테도 굉장히 많이 한다. 일부러 사람들한테 많이 보이게 해둔다. 코로나 때도 마찬가지고 살다 보면 힘든 순간이 있잖나. 그럴 때 축 처져있기 쉽지만, 그냥 툭툭 던진 유머 한 마디에도 사람들은 웃는다. 모든 걸 무겁게 받아들이기보다 가볍게 생각하며 웃어넘기는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평소 성향이 그렇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편하게 받아들이는 스타일이다. 한편으로는 공부하는 걸 엄청 좋아한다. 호기심도 많고. 그래서 어떤 작가든 글이든 카테고리에 따라 하나를 파면 흥미가 떨어질 때까지 깊이 파고드는 성향이 있다. 그것도 하나의 깨달음이라고 본다. 알지 못했던 걸 알게 되는 순간에 남들이 모르는 걸 발견한 듯한 희열이 느껴져서 재밌다.
지루할 틈이 없겠다.
혼자 시간을 잘 보낸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 해보려고 노력한다. 사실 별로 특별한 건 아니다. 건강과 기분을 생각하며 아침에 러닝을 한다든지, 뭔가 배운다든지. 사실 나와 직업이 너무 붙어 있어 분리가 안 되면 힘든 부분이 있잖나. 그런 걸 의식하면서 나만의 취미를 찾고 즐기려고 한다. 최근에는 전자음악 만드는 취미가 생겨서 푹 빠져 살았다. 개봉을 맞아 잠시 중단했지만. (웃음)
음악 만들기가 주는 재미나 매력은 무엇인가.
해보기 전까지는 창작을 어떻게 하나 싶었다. 난 배우로서 누군가 쓴 작품을 표현하는 일을 해왔으니까. 그런데 나도 몰랐던 감각이 있었나 보다. 하나하나 만들다 보니, 내가 듣기 좋은 음이 있고 듣기 싫은 음이 있더라. 곡을 하나 만들고 다음 곡을 만들 때 또 같은 음을 쓰게 된다. 그게 너무 신기했다. 해보기 전에는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게 돼서 좋은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조합이 변주되면서 노래가 엄청 재밌어지는 것도 즐겁다.
사람들한테 들려주기도 했나.
SNS에 올렸다. 올해 앨범 낼 거라고 말하고 다니는 중이다.
서보형 감독과는 어떻게 알게 됐나. <솧>(2018)에도 캐스팅하고 싶었다는 걸 보면 꽤 오랜 인연인가 본데.
<솧>에 나오는 주보영 배우와 같은 회사에 있었는데, 서로 많이 의지하는 사이였다. 그 친구의 초대로 서보형 감독님 감독전을 보러 갔다가 서로 처음 뵙게 됐다. 그런데 감독님이 날 알고 계셔서 엄청나게 놀랐다. <솧>의 배우로 염두하고 있었다고 하시더라. 그런데 연기 영상 자체를 보는 게 쉽지 않아 다음 작품을 생각하며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런데 그 자리에 내가 나타나서 감독님도 놀랐다고 하셨다. (웃음) 이후 연락을 주셔서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감독이 <벗어날 탈 脫>을 쓸 즈음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고. 그때 빨간 셔츠에 검은 치마, 영화에 등장하는 귀신 복장이었다고 들었다. 서보형 감독은 헛것이라는 의미로 환(幻)이라고 부르던데.
좋아하는 옷을 입고 나갔다. 그걸 보고 환을 떠올리실 줄이야.
옴니버스 영화 <서울괴담>(2022)의 <빨간 옷>(연출 홍원기)에서도 빨간 옷을 입고 귀신으로 등장한다.
혼자 웃었다. 또 빨간 옷이네 하면서.
화보를 많이 찍어서인지 옷에 관심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활동하기 편한 옷을 주로 입는 편이고, 큰 관심은 없다. 화려한 옷도 별로 가지고 있지 않다. 직업적인 특성상 관심을 아예 안 둘 수는 없으니 필요에 의해 구매할 때가 종종 있긴 하다. 하지만 옷이나 가방이나 신발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다. 그런 걸로 마음이 채워지지는 않는다고 할까.
공포영화는 즐기는 편인가. 빨간 옷의 귀신을 두 번이나 연기했는데.
이전까지는 굉장히 무서워했다. 영화관에서 보게 되면 눈을 가린다. 소리도 너무 끔찍하잖나. 그런데 귀신 역할을 해보니 내가 천하무적이더라. (웃음) 그다음부터는 시선이 좀 바뀌었다. 공포 영화를 볼 때 귀신 역할을 하는 배우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연기를 보는 걸 원래 좋아하기도 하고. 귀신을 연기한 다음부터는 공포 영화도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됐다.
카페에서는 어땠나. 영화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한 날이었나.
편하고 자연스러운 자리였다. 나갈 때부터 그런 자리로 생각했다. 아마 감독님도 그랬을 거다. 감독님이랑 성격이나 음악적 취향이 되게 비슷한데, 그런 대화를 주로 나눴던 거로 기억한다. 내가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그런 얘기도 하고.
그 대화 덕분에 영화에 삼계탕이 등장했다고.
맞다. (웃음) 감독님이 항상 ‘탈’이라는 한자에서 영화를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벗어날 탈’로 하고 싶다고 하셨다. 당시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은 직후여서 그랬는지 그 이야기에 굉장히 관심이 갔다. 시나리오로 나오면 어떨까 궁금했고, 배우로서의 궁금증만큼 개인적 깨달음에 대한 욕구도 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나리오가 나왔다.
완성된 영화만큼 시나리오에도 독특한 지점이 있던가.
시나리오 자체는 엄청 심플했다. 시각적으로 그려지는 건 있었는데, 영화가 원하는 건 좀 불투명한 느낌이었다. 아직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감독님께 여쭤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라고 하시더라. 깨달음이 뭐냐고 대놓고 물어본 적도 있다. 역시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네.” 하셨다. 그런데 난 어려울 걸 풀어나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어떻게든 없는 답을 찾으려고 촬영 때도 공부를 많이 했다. 감독님께 질문도 많이 하고. 감독님이 연출하는 스타일 자체도 되게 열려있다. 중간에 생각나는 걸 얘기해도 다 들어주신다. 작업 자체가 편하고 재밌었다.
질문은 어떤 형태였나.
헷갈리는 부분이 참 많지. 영목과 지우가 연결되어 있는 듯한데 그렇지 않은 느낌도 있다. 그래서 단순한 질문을 많이 했다. 둘이 같은 공간에 있는지, 지우에게는 영목이 영감인 것 같은데 영목이 원하는 게 지우인지. 둘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질문을 주로 던졌다. 그런데 그게 연기하는데 중요하진 않았다. 깨달음이 최종 목표이긴 하지만, 개인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게 영목과 지우의 공통된 목표다. 영화는 그 과정을 보여준다. 그게 남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우리 영화가 좋다고 느낀다. 개인이 겪는 이별, 아픔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 일상적 고민이 들어있으니까. 그래서 통화하거나 요가하는 장면들은 더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싶었다.
서보형 감독은 위지원 배우의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하더라. 내면에서 이것저것 소화하다가 내는 의견 중에는 반짝이는 게 많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벗어날 탈 脫>의 중요한 순간 중 하나가 지우와 영목이 마주치는 장면이다. 여기에 위지원 배우가 낸 의견이 반영됐다고. 원래 키스신이었는데,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걸 보여주는 장면으로 완성됐다. 감독의 의도를 이해하면서도 새로운 시선을 가진 사람이 낼 수 있는 아이디어다. 매혹적이고 관능적인 대목이라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일단 재밌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 감독님이 그런 걸 잘 들어주시고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시다 보니 얘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영화 중간에 옛날 무성영화 장면들이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하는 대목이 있다. 거기 키스하는 연인들이 나오는데, 그것과 겹치게 영목과 지우의 키스신을 넣으면 어떨까 했던 게 원래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둘은 연인이 아니기 때문에 좀 과하게 보일 수 있겠더라. 직접적인 접촉은 없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또 지우가 원하는 영감이나 영목이 원하는 깨달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거잖나. 그런데 둘은 연결되어 있으니, 들숨과 날숨으로 그 관계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벗어날 탈 脫>이 호흡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니, 그렇게 시각적인 부분과 청각적인 부분을 채워줄 수 있겠다 싶어 제안했다.
지우처럼 ‘영감님’을 기다리나.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나.
영감이 찾는다고 찾아지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일부러 일과 관련 없는 걸 더 찾고 해보는 편이다. 일과 관련됐다고 생각하면 거기 더 묶이고 갇히는 느낌이 많이 드니까. 그냥 길을 걷다가 꼬리를 무는 여러 생각을 하거나, 책을 많이 읽는다. 그러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답을 찾는 경우가 있다.
작년에는 주로 어떤 책을 읽었나.
원래는 지식에 대한 욕구가 커서 철학책 같은 걸 주로 봤는데, 작년에 소설에 관심이 생겨서 많이 읽었다. 거기 푹 빠져서 다른 생각이 하나도 안 나더라. 왜 여태 소설을 안 읽었나 싶었다. 상상해서 글 쓰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사람에 대한 관심은 『아몬드』(손원평) 독서로 이어졌고,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언젠가 쓰기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웃음)
나중에 좀 더 나이를 먹게 되면.
<벗어날 탈 脫>에 위지원 배우의 경험이나 의견이 여러 군데 반영됐는데, 프랑스 칸에서 찍은 사진이 그중 하나다. 거기서 ‘해변의 사나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여행 다녀온 건가.
직업이 배우니까 칸영화제가 너무 궁금했다. 단순한 이유였지. (웃음) 그래서 영화제 시즌에 맞춰서 다녀왔다. 그 유명하다는 영화제를 즐기고,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칸 옆에 있는 니스에 숙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찍은 사진이 영화에 쓰였다. 개인적인 여행 사진이 영화 소품으로 쓰이다니, 숨은그림찾기 같은 재미가 있다.
필름으로 찍은 사진인가.
맞다. 핸드폰이나 디지털카메라도 좋지만, 어떤 사진이 나올지 모르는 게 재밌잖나. 두근두근한다. 손가락이 나왔을지도 모르고. (웃음)
새로운 걸 배우는 것만큼 새로운 곳에 가는 것도 좋아하나 보다.
여행을 엄청 좋아한다.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도 좋지만 혼자 가는 것도 좋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걷고 싶을 때 걷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웃음) 예전에는 혼자 여행 다니는 게 겁나서 계획을 엄청나게 세워서 갔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더라. 되는대로 다니자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길 걷다가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는 과정도 참 재밌다. 새로운 사람 사귀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영화에 쓰인 사진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나.
니스의 바다는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바다였다. 구름이 진짜 가까이 있는 느낌이더라. 휴양지라 그런지 사람들이 다 하얀 자갈밭 같은 데 편히 누워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그런 걸 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거든. (웃음) 그런 여유로운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꾸준히 새로움을 찾는 한편, 매사 긍정적이다. 부러운 성격인데. 일에는 어떤 영향을 주나.
좋은 영향을 준다고 느낀다. 감사하게도 부모님과 언니 역시 엄청나게 긍정적이다. 그래서 응원을 많이 받는다. 내가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이왕이면 재미있게 잘해보자는 마음이다. 일이기 때문에 힘겹게 하고 싶지는 않다. 개인의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에 따라 잘하고 있는 듯하다.
부모님은 영화 보시고 뭐라고 하시던가.
딸이 나와서 좋다! (웃음)
일반적인 작업 루틴이 있나. <벗어날 탈 脫>은 조금 다른 경우였을 수도 있겠다.
매번 다른 시도를 한다. 늘 똑같은 방법으로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비슷하게 나올 것 같아서. 오디션을 보든 작품에 참여할 때든 나만 아는 작은 것들을 시도하는 편이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하면서 데이터를 많이 모은다.
어떤 시도?
마음을 조금 달리 먹어보기도 하고, 연민이 좀 더 느껴지게 연기해 보기도 하고, 좀 더 단순하게 가보기도 한다.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한다. 내가 별 감정 없이 연기할 때 보는 사람한테 어떻게 다가갈까 고민해보고, 반대로 100%로 하면 어떻게 보일까 생각하며 다양하게 해본다.
배우는 결국 연기하는 걸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니까, 좋은 데이터베이스가 될 듯하다. <벗어날 탈 脫>을 준비하며 감독과 배우들이 길상사에서 108배와 좌선을 연습했다고 들었다. 그때부터 서보형 감독은 위지원 배우의 움직임에서 남다른 점을 본 것 같더라. 선이 다르다는 얘기를 자주 하던데, 무용을 한 적도 있나.
움직임에 관심이 많아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를 배웠다.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재즈 댄스, K팝 댄스 등. 무용도 무용이지만 모델 일을 한 경험도 도움이 된다. 클로즈업된 뷰티 촬영을 많이 했는데, 모니터로 손, 어깨, 발 등을 보며 체크했던 게 환 역할에 도움을 줬다.
영목을 따라 걷는 장면이 떠오른다. 발만 나오는데도 확실히 뭔가 다른 공기를 만들더라.
그게 첫 촬영이었다. 감독님이 “발 연기 잘 한다.”고 하셨지. (웃음)
최근에는 월악산에 다녀왔던데.
도시보다 자연을 좋아한다. 충주 쪽에 명산이 많다는 얘기를 들어서 가봤다. 설산에 올라가 본 적이 없어서 가보고 싶었다. 새해도 됐겠다, 좋은 기운 좀 받자는 생각이었다. 승부욕이 있어서 힘들어도 끝까지 가는 편이다. 등산하시는 분들도 그 맛에 하시는 거 아닐까. 목표가 눈앞에 있잖나. 조금만 더 하면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오르게 된다.
잠깐 K팝 댄스 얘기도 했는데, 어릴 때는 노래와 춤을 좋아해서 가수를 꿈꿨다고 들었다.
어릴 때 얘기다. (웃음) 되게 조용했는데 신기하게 축제나 장기 자랑 때는 나가서 춤을 추고 싶더라. 요즘 말로 조용한 관종이랄까.
재능을 확신했던 걸까?
개인적 만족이 컸다. 잘 추고 못 추고는 사실 잘 모르겠고. (웃음) 부모님은 공부를 열심히 하길 바라셨다. 그래서 중간고사 등수를 걸고 춤을 배우게 해달라고 한 적도 있다. 오디션도 봤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고 나니 아이돌 할 성격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뮤지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걸 출발로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
2015년에 창작 뮤지컬 <별의 비밀>로 데뷔했다고 기록돼 있다. 뮤지컬에 관심을 가지면서 관련 학과로 진학한 건가.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 일단 연극영화과에 가겠다는 생각으로 입시를 준비했다. 그렇게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과에 들어갔는데, 굉장히 자유롭게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무용과 노래를 배우며 뮤지컬 오디션을 준비했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는 어땠나.
일단 첫 관람 경험부터 얘기해야겠다. 고등학생 때 뮤지컬 <시카고>를 봤는데 너무 충격적이더라. 놀이동산에 간 것 같았다. 용돈을 모아서 제일 좋은 좌석에서 봤거든. (웃음) 무대 자체가 굉장히 화려하고, 무대 바뀌는 게 마술 같았다. 인물들이 내뿜는 에너지가 정말 멋있었다. 여자 주인공도 섹시하고. 그래서 단순히 “난 저걸 해야겠다!” 싶었다. 대학 졸업하고 <별의 비밀>을 했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했던 것과 좀 달랐다. 노래와 춤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그보다 연기를 더 보여주고 싶어진 거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독립영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됐다.
왜 연기에 집중하고 싶어졌을까? 어떤 매력을 느꼈는지.
내가 느끼기에 연기는 정말 어렵다. 이보다 어려운 게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래서 이 어려운 걸 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해보게 된다. 그 어려움을 극복해 보고 싶다. 답이 없는데 답을 찾고 싶은 거다. 그런 욕구가 자꾸 생긴다. 언젠가는 조금이라도 감이 생기지 않을까 하면서 계속하고 있다. 이 일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더욱 해보고 싶어진다.
승부욕이 있다고 했는데, 성향에 잘 맞는 일을 만난 셈이다.
그러니까. (웃음) 대본을 읽을 때, 캐릭터에서 평소 나에게 없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사람인지라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이 그렇게 금방 올라오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연기하며 점차 캐릭터에 동화되고, 나한테서 그런 모습이 보이고 나면 스스로 놀란다. 나한테 이런 면이 있구나 하면서,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는 게 신기하다. 사실 나한테 그런 감정이 없었던 게 아닌 거다. 어쩌면 인간이 가진 여러 성향과 감정은 다 공통적인 게 아닐까. 그런 걸 알게 될 때 재밌다.
SNS에 좋아하는 영화나 배우 사진을 종종 올려두더라. 그 중 <코르사주>(마리 크로이처, 2022)의 비키 크립스는 위지원 배우와 눈매나 분위기가 닮은 것 같아 눈길이 머물기도 했다. 좋아하는 배우가 있나.
좋아하는 배우나 롤모델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난 오래 활동한 배우분들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같은 대사를 한다고 한들 그분들이 하는 대사는 내가 하는 대사와 다를 거다. 한마디를 하셔도 거기서 매우 많은 게 느껴진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그분들처럼 일을 즐기면서, 힘들지라도 잘 이겨내면서 오래오래 재미있게 하면 좋겠다.
특기를 일본어라고 적었던데. 다양한 취미 중 하나인가.
사람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거다. 우연히 일본인 친구들을 많이 만난 시기가 있었다. 일본어를 못해서 친구들 이야기를 바로 못 알아듣는 게 너무 슬프더라. 옆에서 알려주면 그제야 웃고 말이다. (웃음)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엄청나게 궁금했다. 그래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언어를 공부하니까 보이고 들리는 게 더 많아졌다. 노래나 영화에서도 좀 더 그 정서를 잘 느낄 수 있다. 다른 언어도 배워보고 싶다.
다음 목표는 뭔가.
독일어. 한자처럼 글자와 글자가 조합되어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는 게 새롭고 재밌다.
취미 목록을 계속 듣고 싶다. 올해 새로 도전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수영. 진짜 잘하고 싶은데 정말 안 되더라. 휴양지에 가면 바다든 수영장이든 들어가서 자유롭게 놀고 싶다. 그런데 한두 발짝 들어가고 만다. 올해는 어떻게든 수영을 해봐야지.
배우 위지원은 지금 어디서 어떤 방향을 바라보나.
정말 시작점에 있다. 내가 출연한 영화를 극장에서 개봉하고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일이 내 인생에 생긴 거잖나. 혼자 “지원아 이제 시작이다. 준비됐니?” 한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이전과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 어떻게 나를 잘 지키면서 일을 즐길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하고 있다. 분명한 목표는 없다. 많은 사람이 내 연기를 보고 재밌어하면 좋겠다는 욕심은 있다. 그래서 영어도 열심히 공부하려고 한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