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인디그라운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당신으로부터> 신동민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Festival / 2024-01-28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해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 만들기를 지속해 온 신동민 감독. 배우와 실제 인물이 함께 등장하며 극과 극 사이, 극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희한하게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항상 가족의 사정을 담는다. 생활력 강한 어머니와 가족을 떠난 아버지의 존재는 언제나 영화의 핵심이다. 세 단편을 엮어 하나의 장편으로 만든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2020)부터 단편 <당신에 대하여>(2020)까지 줄곧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을 중심에 뒀던 신동민 감독은 <당신으로부터>에서 좀 더 멀리 간다. 3부로 구성된 <당신으로부터>는 더 다양한 인물을 다루면서 그들의 세계를 비스듬하게 겹쳐둔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나인 듯 하나가 아니고, 그들은 같은 인물인 듯 다른 인물 같다. 그들은 어머니를 염려하고 아버지의 흔적에 대해 고민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들은 느릿한 시간 속에서 대체 불가능하게 구체화된다. 3부에서는 신동민 감독과 어머니 김혜정 씨가 그들이 10년 넘게 살았던 ‘삼팔선 아래’ 동네 운천으로 향하고, 영화는 현실과 점점 더 복합적인 관계를 맺는다. 익숙한 듯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당신으로부터>는 2023년 인디그라운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선정작으로, 올 한해 온라인 상영을 비롯한 여러 방식으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이번 기회를 틈타 영화를 만들고 보여주는 마음에 관해 물었다.

 

 

다음엔 공포 영화 같은 걸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던 것 기억하나. 공포는 아니지만 유령의 형상이 등장하는 영화를 내놨다.

원래 귀신에 관심이 많다. 엄마랑 동생이 예전부터 귀신을 많이 봤다. 그래서 내게도 가깝게 느껴지는 존재다. 아빠가 계속 엄마 꿈에 귀신의 형태로 나온다고 하더라. <당신으로부터>는 엄마와 아빠의 대화 장면을 찍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어떻게 구현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여러 기술을 시도하다가 아버지 영정사진을 내 몸에 겹쳐보게 됐다. 그렇게 내 얼굴과 아빠 얼굴이 반씩 들어있는 얼굴을 만들었다. 거기서부터 거슬러 가며 1부와 2부가 끝날 때 등장하는 형상들을 만들었다. 이해미 애니메이터님이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시고 작업을 잘 해주셨다.

 

사진과 몸에서 추출한 것들로 새로운 형상을 만든 셈이다. 제목과 이어지는 선택으로 들리기도 한다.

신체가 중요했다. 사실 3부의 동민 역을 해줄 배우를 오래 찾았는데 좀 어려웠다. 내가 해야겠더라. 엄마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았잖나. 내 몸이지만 분명 엄마와 닮은 점이 있을 테고, 그게 조금이나마 보였으면 했다. 닮음이라는 주제 자체가 중요하기도 했고. 처음엔 제목을 ‘당신’으로 지었다. 그런데 누군가를 너무 대상화하는 느낌이라 마음에 걸렸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니까. 그러다 문득 ‘당신으로부터’라는 말을 떠올렸다. 이건 결국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들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하거든.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무언가 주고받고, 그러다 보면 방향이 생기고, 어디론가 흐른다.

 

영화가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 민주, 2부에 승주, 3부에 동민이 나오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겹치는 듯 아닌 듯 흘러간다. 그들이 누군가의 딸이거나 아들이라는 점이 중요해 보인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 엄마와 동생이 귀신을 많이 봤다. 그중에는 아기 귀신도 있었다. 영화에 잠깐 나오지만 엄마가 나를 낳기 전후로 유산을 몇 번 했는데, 나중에 그게 그 아이들일 수도 있겠다고 하시더라. 그 애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하는 마음에 평행 세계를 그려보고 싶었다. 엄마가 딸을 갖고 싶었다고 말씀하시기도 했고. (웃음)

<당신으로부터>
<당신으로부터>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부터 신동민 감독 영화를 쭉 본 입장에서, 3부를 볼 때 마침내 그곳에 가는구나 싶었다. 아버지의 유해를 뿌린 산 말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성묘를 거의 안 갔는데, 이제 갈 때가 됐다고 느꼈던 것 같다. 딱히 계기가 있던 건 아니다. 그저 시간이 계기였다고 할까. 1부랑 2부는 시나리오를 썼고, 3부는 소설처럼 신 리스트만 짧게 써둔 채 현장에 가서 많이 채웠다.

 

여러모로 매듭을 지은 느낌인가.

글쎄. 어쨌든 중심에 계속 내가 있으니까 뭔가 끝났다거나 매듭지었다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 그저 경계선을 조금씩 넓히고 있다는 생각이다. <당신에 대하여>에서는 극영화 형식에서 좀 더 벗어나 보려고 했고, <당신으로부터>에서는 많은 사람과 더욱 풍성한 세계를 그리고 싶었다.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특히 염두에 두거나 고민하는 지점이 있나.

마음 가는 대로 해보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떠올려보면 항상 감독 본인의 마음이나 관심이 더 먼저고, 그에 대한 표현 방법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형식이나 구조가 따라오는 것 같더라. 아녜스 바르다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같은 감독들의 영화가 그렇다. 옳고 그름을 미리 판단하거나 뭘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머니는 이번 작업에 대해 뭐라고 하시던가. 여전히 즐거워하시나.

이번에 역할이 너무 적다고 아쉬워하셨다. (웃음) 다음에는 본인 다큐멘터리를 찍어달라고 하신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고. 현장에서는 재밌어하기도 하시고 육체적으로 지쳐하기도 하시고 반반이었다. 3부는 우리가 실제로 살았던 공간에서 찍었다. 가족이 다 함께 10년 넘게 살던 곳이다. 그 동네에는 엄마가 다녔던 초등학교, 중학교도 있다. 나도 같은 학교를 나왔다. 예전에는 굉장히 활발한 동네였는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더라. 정말 오랜만에 그곳에 가서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영화를 찍은 거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감정이 생기기도 했다. 엄마는 영화 찍는 것도 좋아하시지만 그 이후에 더 즐거워하시는 듯하다. 특히 관객과의 대화를 좋아하신다.

<당신으로부터>
<당신으로부터>

3부에 동민과 혜정이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의 경험이 반영된 대목이기도 할 텐데, 어떻게 그리고 싶었나.

단편을 찍을 때부터 영화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이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 영화의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도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또 계속해서 영화와 우리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가끔 엄마가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영화 속 대사인가 싶다니까. 관객과의 대화라는 게 좀 직접적이고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런 우리 상황에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엄마가 다음에는 예쁜 옷을 입고 싶다고 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셨다. 촬영 전에 배우들이랑 사전답사를 했는데 동네에 작은 영화관이 생겼더라. 거기서 관객과의 대화 장면을 찍게 됐다.

 

어머니랑 관객과의 대화 다니는 동안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이 만났을 듯하다.

예전에 인디스페이스에서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상영과 행사가 끝나고 극장 앞에서 한 관객분이 우시면서 엄마랑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나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아마 그분 어머니도 아프셨던 것 같다. 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엄마랑 같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섰는데 갑자기 그 얘기를 하시더라. “그 애 잘 지내고 있을까? 영화 한번 보여주고 싶다.”면서. 그게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분은 <당신으로부터>를 보시지 않았을까.

보셨겠지? 우리 어머니한테 애정 혹은 유대를 느끼셨던 걸 테니 아마 이번 영화도 보시지 않았을까 한다. 어떻게 보면 그분이 내게 닮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신 거다. 3부 관객과의 대화에 비슷한 장면을 넣었는데, 영화 보시고 좀 괜찮아지셨으면 한다.

 

다른 인상적인 상영 경험도 궁금하다.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주관하는 영화캠프에 2년째 참여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다양한 영화를 보여주고 의견을 묻는 시간이 재밌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에게 다소 어려울 것 같아 보이는 내 영화도, 키아로스타미의 <빵과 골목길> 같은 영화도 전혀 어려워하지 않는다. 무언가 보고 느끼는 것에 경계가 없는 것 같다고 할까. 어른이 되고 나면 낯선 것들이 불편해진다. 나 역시 그렇고. 영화가 사람들과 더욱 친해지면 좋겠다. 다양한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며 익숙해지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느낀다.

신동민 ⓒ이영진

영화를 만들고 나면 자연스럽게 상영에 대한 고민도 뒤따르겠다.

무주의 영화캠프나 인디그라운드에서 진행하는 큐레이팅과 온라인 상영 같은 것들이 영화와 사람을 좀 더 가까이 이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시작이면 좋겠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더 멀리 더 넓게 나아갔으면 한다. 모세혈관처럼. 그래야 우리가 만드는 영화도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오랜 시간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문제일 거다.

 

극장 외에 영화를 틀고 싶은 다른 장소를 생각해 본 적 있나.

개봉해 본 경험은 한 번뿐이지만 극장에서 할 수 있는 건 대체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난 교육기관에서 영화를 많이 찾아주면 좋을 것 같다.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영화를 상영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면 어떨까. 그런 작은 상영이 많아지길 바란다.

 

어렸을 땐 비디오에 익숙했다고 했다. 영화과에 다녔으니 다양한 영화를 접한 시절도 있었을 거다. 영화로부터 무엇을 얻었나.

비디오는 정말 킬링타임용이었다. (웃음) <처키>부터 <후레쉬맨>까지 별걸 다 봤다. 20대가 되고도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시네필도 아니었고. 그러다 영화과 다니고 영화를 찍어보니, 영화에서 지혜를 얻게 되더라.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할 때 내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어른 같은 존재랄까. 영화를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방향이 좀 보이는 듯하다.

 

영화를 계속 찍기 위해서는 어떤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우선 내가 즐거워야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다고 본다. 하고 싶은 걸 하고, 보고 싶은 걸 보면서 내 리듬대로 계속 판단을 잘해 나갈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해지지 않을까. 여전히 돈은 없지만 말이다. 작년에 에릭 로메르의 인터뷰집 『에리크 로메르 - 아마추어리즘의 가능성』을 읽고 좀 더 해봐도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카메라도 샀다. 협동하는 작업, 좀 더 큰 작업도 물론 좋지만 우선은 지금 조건 안에서 계속 지속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느낀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당신으로부터>를 마무리하고 느낀 변화가 있나.

이전에 찍은 영화들은 미련이나 후회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 경우에는 영화를 안 찍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하고 좋은 상태였던 거다. (웃음) 그런데 그렇게 영화를 계속 만들면 너무 괴로울 것 같더라. <당신으로부터> 찍을 땐 그냥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영화에 담아야겠다는 마음이 제일 컸다. 이 영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을 확 돌려줬다. 그래서 너무 고맙다.

 

다음 작업도 계획 중인가.

인터뷰로만 이뤄진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 <당신으로부터>에서 아빠의 이미지를 구체화한 게 조금은 마음에 걸리더라. 내가 얼굴을 강요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좀 다른 방식으로 대상을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이다.

 

다른 근황은?

최근에 유기견 보호소에 다니고 있다. 거기서 찍어볼까 싶기도 하다. 참, 강아지 호두가 가족을 찾고 있다고 꼭 좀 써주면 좋겠다. 지금 우리 집에서 임시 보호 중이다. 아침마다 깨워줘서 알람이 필요가 없다. (웃음)

 

'독립'영화란 뭘까. 인디그라운드에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사업을 처음 시작한 2020년에 선정 위원들이 가장 고민한 부분도 바로 그거였다. 제작부터 배급까지 전 과정에 걸쳐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인데. 신동민 감독에게 독립영화는 어떻게 다가오나.

그 사람다운 영화가 독립영화 아닐까. 본인이 만들었으니 영화에서 본인이 보이는 건 당연하다. 모든 선택의 기준이 자기 안에 있을 테니까.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마음이 다듬어지지 않은 영화, 다듬어지더라도 그런 선택을 한 감독의 마음이 보이는 영화가 독립영화인 것 같다.

 

올해는 어떻게 지내려고 하나.

좋아하는 걸 많이 찾으려고 한다. 사람도 많이 만나고 바쁘게 지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또 영화를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신동민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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