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한 시스템을 응시하라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조선호 / Choice / 2018-10-12

브리지워터 정신병원에 대한 다큐멘터리 <티티컷 풍자극>(1967)으로 데뷔해 지속해서 공공기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어온 프레더릭 와이즈먼이 이번에는 뉴욕 공립도서관으로 향한다. 와이즈먼이 도서관을 구성하는 방식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양상들을 최대한 다양하게 보여주는 방식이다. 도서관의 많은 분관에서 진행되는 각 분야의 유명 인사들의 강연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쉴 새 없이 보여주고, 화려한 프로그램 뒤에서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는 도서관 직원의 모습과 운영진의 열정적인 회의 장면들도 균일하게 보여준다. 인터뷰나 내레이션과 같이 상황을 설명해주는 장치를 최대한 배제한 채 도서관의 모습들을 조망하는 것에서 오는 일정한 거리감은, 마치 206분 동안 CCTV를 보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게 한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를 통해 도서관을 샅샅이 살펴봐도 뉴욕 공립 도서관의 운영구조를 파악하거나 프로그램 기획 과정을 파헤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도서관의 다양한 모습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분절적인 양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가령 예산에 대해 회의를 거듭하는 운영진들의 모습 뒤에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한적한 모습들이 이어지고, 그림 컬렉션 수업이 진행되는 장면이 뒤따라오는 방식이다. 운영진들의 회의는 뒤이어 따라오는 도서관의 모습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그림 컬렉션 수업 또한 운영진들의 회의나 도서관의 모습과는 어떤 연관성도 없는 상태로 뒤따라온다. 이상한 것은 와이즈먼이 각 장면 간의 분절성을 증폭하고 있다는 점이다. 와이즈먼은 각 장면들을 인과관계가 형성되지 않도록 붙여놨을 뿐만 아니라, 장면들의 서사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재빠르게 다음 장면으로 건너뛴다. 순간적으로 전환되는 장면들로 인해 영화의 분절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상황을 설명하는 장치를 최대한 배제하는 와이즈먼이지만,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서트 쇼트다. 공립도서관의 분관들을 옮겨다닐 때마다 도서관 밖의 거리 모습들이 인서트 쇼트처럼 삽입되어 있는데, 도서관 외부의 황량한 풍경들은 도서관 내부에서 진행되는 풍성한 강연과 프로그램의 모습들과는 확연한 대조를 이루며 또 다른 분절을 야기한다. 이 인서트 쇼트 또한 도서관 안에서 진행되던 서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빠르게 컷팅되어 들어가는데, 급작스럽게 등장한 황량한 거리의 모습은 도서관 내부의 다양한 내러티브가 도서관 밖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인서트 쇼트의 모든 요소가 도서관 내부의 장면들과 분절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와 내러티브는 단절되고 있지만, 거리에서 들려오는 불안한 사이렌 소리는 도서관 내부로 장면이 전환되어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귀를 맴돈다. 와이즈먼이 유일하게 장면들간의 인과관계를 형성하도록 허락한 것은 사이렌 소리가 가져다주는 불안함뿐이다.

초기작들에 비해 공공기관을 바라보는 와이즈먼의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많은 이들의 지적에는 절반만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와이즈먼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분절된 양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공공기관 자체가 아니라, 공공기관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구성원들이다. 와이즈먼은 각 장면들간의 관계를 분절적으로 담아낼 뿐, 한 장면 안에서의 내러티브를 분절적으로 담아내지 않는다. 한 장면을 구성하고 있는 강연, 교육 프로그램, 운영진들의 회의는 <뉴욕 라이브러리에서>가 진행될수록 충실히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쌓아간다. 그는 강연 속 연사들의 가치나 교육 프로그램의 사회적 역할 그리고 거리의 노숙자들까지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 보호하려는 운영진들의 열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의 분절성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공공기관이라는 시스템 자체다. 와이즈만은 양질의 강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열의 넘치는 운영진들이 도서관이라는 틀 안에서 효과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근심한다. 그리고 도서관 안과 밖의 대조적인 모습이 보여주는 것처럼, 공익을 추구해야하는 공공기관이 오히려 수혜자와 비수혜자들의 경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근심한다. 와이즈만은 여전히 공공기관의 교묘함을 차갑게 응시하고 있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Ex Libris - The New York Public Library 감독 프레더릭 와이즈먼 출연 리처드 도킨스, 엘비스 코스텔로, 패티 스미스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제작연도 2017년 상영시간 206분 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 2018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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