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제1회 한국단편영화상 <건전지 엄마> 강인숙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Festival / 2023-12-07

오목한 그릇에 이것저것 섞어 비눗물을 만든다. 빨대를 넣고 힘껏 분다. 보글보글 거품이 난다. 아이들의 손에 들린 비눗방울 총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열심히 비눗방울을 만드는 건 바로 건전지 엄마. 건전지로 작동하는 여러 물건 속에서 힘차게 활약하는 그의 일터는 어린이집이다. <건전지 엄마>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중무장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러닝타임은 8분 남짓이지만, 손가락 마디만 한 주인공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너무나도 넓다. 건전지 엄마는 아이들이 잘 먹고 잘 자라주기를 바라며 그 광활한 세상에서 동분서주한다. 아이들의 낮잠 시간,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심상치 않은 연기가 피어오르자 건전지 엄마는 그만의 비상 통로로 향한다. 에어캡으로 만든 안전 조끼도 입고 있다. 참 재밌고 귀여운데,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진다. 우리는 불현듯 우리가 누군가의 헌신을 통해 자라났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기자기한 세상에 여운 진한 이야기를 담는 이들은 <무슨 일이야?>(2008)부터 줄곧 함께 작업하는 전승배, 강인숙 부부다. 구상부터 실현까지 항상 손발을 맞춰 작업한다는 이들은 김포에 ‘토이빌’이라는 스튜디오를 만들고 매일 즐거움을 찾는 중이다. <건전지 엄마>는 제1회 한국단편영화상 기술상 수상작. 그 세계를 꼼꼼히 구성한 강인숙 미술감독을 만났다.

(제1회 한국단편영화상 수상작은 12월 8일부터 14일까지 인디그라운드 온라인 상영관 indieground.kr/indie/selectOnlineList.do에서 볼 수 있다)

 

 

건전지 가족 세계관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 건전지 할머니 이야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건전지 아빠로 시작해서 엄마, 할머니로 이어지고 있다. (웃음) 주변에서 <건전지 아빠>를 보고 할머니, 이모, 언니처럼 다른 가족도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할머니는 이제 캐릭터와 세트 정도를 기획하고 있다.

 

건전지 엄마와 아빠가 인간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돌본다는 내용이 흥미롭다. 건전지가 하는 일이 굉장히 많아서 보기에 즐겁기도 하고. 어떻게 시작된 아이디어인가.

육아를 하다보면 아이들이 갖고 놀던 장난감의 건전지를 갈아달라고 가지고 올 때가 많다. 건전지를 갈아 끼워주면서, 어쩌면 건전지도 함께 육아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더라. 건전지를 보고 있으면 부모의 마음과 어느 정도 닮아 있다고 느껴진다.

 

자기 몸을 태운다는 표현이 떠오른다.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부모가 생각나지. 건전지도 그렇다고 봤다. 너무 당연해서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싶었다. 아이와 어른이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에 대해서도 말해보고 싶었고. 그러면서 가족의 사랑을 느끼길 바랐다.

 

육아하며 느낀 점이 배경이 됐다고 했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많이 자랐을 거다.

큰 애가 중학교 1학년이다. (웃음)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돌이켜보면 아이들을 키우며 우리도 같이 성장했던 듯하다. 아이들을 통해 많은 에너지를 받았다. 그 힘으로 우리 역시 자라온 거다.

 

일상에서 소재를 자주 찾는 편인가.

아무래도 가족이나 이웃 이야기를 계속 하게 되더라.

 

<건전지 엄마>의 주 무대는 어린이집이다.

아이들이 제일 먼저 사회생활을 하는 곳이 어린이집이라고 생각했다. 집 이외의 다른 공간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기저귀도 간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어쩌면 제2의 엄마가 아닐까. 선생님들이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주시곤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해주셨다.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에피소드를 구성했다. 즐겁게 비눗방울을 불며 놀고, 점심시간에 맛있게 밥을 먹는 그런 모습들 말이다. 선생님들께 감사와 응원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건전지 엄마>
<건전지 엄마>

겨울을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도 있나. 

화재경보기에 건전지가 들어간다는 거 알고 있었나? 우리도 처음엔 몰랐다. 어떤 물건에 건전지가 들어가는지 찾아보던 중에 알게 됐다. 그러다 어린이집에서 발생할만한 사건을 떠올렸고, 어린이집이다 보니 안전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트리에서 화재가 발생해 건전지 엄마가 아이들을 용감하게 구해내는 이야기를 하게 됐다.

 

전반적으로 밝고 따뜻해서 연말에 보기 좋은 영화다. 어떤 분위기를 떠올리며 작업했나.

아이들이 원래 좀 화사하잖나. 아이들의 통통 튀는 개성을 표현하면서 따뜻한 에너지를 나누고 싶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점심 만드는 장면 보고 정말 감탄했다. 가서 먹고 싶을 정도더라. (웃음)

정말 즐겁게 만들고 촬영했다. 특히 계란을 푸는 장면에서 흰자를 슬라임으로 표현해 봤는데 되게 재밌었다.

 

<건전지 엄마>의 주 재료는 양모펠트다. <토요일다세대주택>부터 사용하고 있는 재료인데, 어떤 특성에 끌렸나.

건전지는 차가운 소재지만 따뜻한 느낌을 전달하고 싶어서 양모펠트를 이용했다. 처음 도전할 땐 시행착오도 많이 했다. 인형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뼈대가 있어야 한다. 그 위에 양모를 바늘로 찔러가며 점차 부피를 늘려나가는 거다. 이 때 바늘을 어느 정도로 찌르느냐에 따라 인형이 단단해지기도 하고 말랑말랑해지기도 한다. 처음엔 그런 걸 전혀 몰랐다. 무조건 단단하게 박아야 하는 줄로만 알았지. (웃음) 그랬더니 뼈대가 전혀 움직이지 않더라. 촬영을 해야하는데 포즈가 안 잡혔다. 그래서 털을 다 제거하고 다시 만들고 그랬다.

 

<무슨 일이야?>에서는 클레이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캐릭터가 찌그러진 자기 얼굴을 조물조물해서 다시 펴기도 한다.

캐릭터 팔이 쭉 늘어나기도 한다. 클레이는 눌리고 펴지는 느낌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소재다. 손맛이 있다. 원래 점토의 느낌을 좋아했다. <월레스와 그로밋>이나 <치킨런> 같은 아드만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을 보며 점토로 만들어진 인형이 움직이는 것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다.

 

건전지 엄마가 일하는 공간은 어떻게 구성했나. 아날로그 방식으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무척 흥미롭다.

보통은 집이나 자연을 세트로 구성한다. <건전지 엄마>의 어린이집도 자료 조사를 통해 세트를 만들었다. 상상하면서 만든 공간은 건전지 부스다. 구상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과정이 굉장히 재밌었다. 우리는 건전지의 힘을 빌려 비눗방울 총, 즉석카메라, 거품기 등을 편히 사용하잖나. 건전지 엄마가 그 내부에서 수작업으로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면 재밌겠더라. 체온계 안에서 건전지 엄마가 하는 일은 부모님이 손으로 아이들 이마를 짚어보는 걸 떠올리며 구성해봤다.

 

평소 열심히 관찰하는 편인가.

항상 주변을 살핀다. 전승배 감독님이랑 이야기 나누다가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고.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한다. 아이들이 가끔 엉뚱한 말을 던지는데 거기서 힌트를 얻을 때도 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적어두기도 한다.

<건전지 엄마>
<건전지 아빠>

유튜브 채널에 짧은 제작과정을 시리즈처럼 올려두었다. 비밀을 훔쳐보는 느낌이 들어 재밌더라.

이 분야를 잘 모르는 분들과도 메이킹 영상을 공유하고 싶었다.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다고 할까.

 

작업 루틴은 어떻게 되나.

오전에 아이들 학교 보내고 작업실로 향한다. 작업할 땐 하루도 빠짐없이 한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손으로 무언가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게 가장 좋다. 그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고, 그걸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맘에 든다.

 

원래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고.

영상에 관심이 많아서 학교 다닐 때 광고 동아리 활동을 하기도 했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었다. 졸업하고 나서 전승배 감독을 만났고,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직접 해보니 어떻던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웃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았구나 싶었다. 지금까지도 너무나 즐겁게 작업하고 있다. 단 한 순간도 재미없던 적이 없다.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 좋은 일이다.

 

동화책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 올해 출간한 『건전지 엄마』가 벌써 세 번째 책이다.

책 작업은 애니메이션과 별개로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판형에 맞춰 스케치하는 더미 작업을 하고, 이후엔 촬영도 다시 한다. <건전지 엄마>가 8분 정도 되는데 그림책으로 표현하려면 그보다 더 축약해야 한다.

 

책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단편 애니메이션은 주로 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나는데, 좀 더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림책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꺼내볼 수 있다. 또 보는 속도를 독자가 직접 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내가 머무르고 싶은 장면은 조금 더 오래 보고, 넘기고 싶은 부분은 넘기면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또 어떤 작업을 꿈꾸나.

앞으로도 주변을 잘 관찰하며 일상의 이야기를 해나가려고 한다. 그 안에 따뜻한 에너지를 담고 싶다.

 

단편 작업에서 어떤 의미를 얻는지.

단편 작업은 나를 창작자로 이끌어 주었고 이제는 삶이 됐다. 함께 걷는 친구이자 가족처럼 느껴진다. 소중한 창작의 시간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강인숙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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