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SIFF 2023 <부모 바보> 이종수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Festival / 2023-12-01

<부모 바보>는 일기장에 부모 욕을 한가득 써 내려갔던 어린 날의 분노를 겨누는 동시에, 그걸 누가 보면 어쩌나 싶어 서둘러 종이를 찢어버린 순간에 밀려든 부끄러움까지 들춘다. 이종수 감독은 담벼락에 몰래 낙서하는 심정으로 첫 영화를 만들었다. 사회복지사 백진현(윤혁진)과 사회복무요원 임영진(안은수), 사회복지 혜택을 요구하는 박순례(나호숙)가 한 지역 복지관에서 만난다. 구체적 형편과 입장은 다르나 세 사람에겐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가족이 버팀목보다 족쇄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감독에 따르면 백진현은 부모에게 속았고 임영진은 멍청한 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순례는 부모이자 바보다. 영화는 셋을 엮어 열패감과 배신감 같은 눅눅한 감정을 곱씹는가 하면, 세대 간 괴리와 사회제도의 허점까지 슬그머니 짚어낸다. 이종수 감독은 사회에 불만이 많다. 물려받은 것도 물려줄 것도 온전치 않기에 “당장 어떤 말을 하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은 사람”이다. 영화를 선택한 것은 그 말에 귀 기울이고 응답해 줄 누군가가 필요해서다. “여전히 찡찡거릴 부분이 많아서” 만들어야 할 영화가 수두룩하다는 감독과 마주 앉아 일단 부모부터 실컷 흉봤다.

 

 

복지관을 배경으로 세 인물의 만남과 그들의 사연을 담았다. 자전적 경험을 반영했다고 밝혔는데 영화를 만드는 데 작용한 필연과 우연은 각각 뭐였나.

원래 미술을 했다. 대학 입시 준비하며 2008년부터 홍대에서 긴 시간을 보냈는데 틈틈이 상상마당에 갔다. 그날 상영하는 독립영화를 한 편씩 봤다. ‘독립영화의 맛이 이런 거구나!’ 처음 느꼈던 건 <똥파리>(양익준, 2009)다. 그러다 임자를 만났다. <시>(이창동, 2010)를 본 거다. 어릴 적에 <초록 물고기>(1997)라든지 <박하사탕>(2000)을 봤던 기억은 어렴풋이 나는데, 성인이 되어 마주한 <시>는 충격이었다. 처음으로 생각했거든. 아, 이런 식의 예술도 가능하겠구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평범하게 회화과나 디자인과에 진학하려고 했다가 마음을 틀어서 현대미술을 전공했다. 미술 공부하고 음악적 소양도 좀 쌓다가 마흔쯤 사람 사는 얘기를 하는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 꿈을 가진 것이 필연이라면 필연이다.

 

일찌감치 인생 계획을 세웠네.

멋있잖아. 마흔인데 영화감독이면서 음악도 하고 전시도 하고. (웃음) 근데 어쩌다 보니 결혼하고 늦은 나이에 공익으로 입대했다. 그게 우연이다. 서른 다 됐을 무렵인데 거기서 무시를 많이 받았다. 내가 잘난 사람은 아니지만 그 정도까지 무시당한 적은 없거든. 그간 열심히 일했다. 낯을 가리는 성격도 아니고, 친구들 사이에서 재밌다는 소리도 제법 들었다. 어디 가서 이상한 사람 취급받거나 부당한 오해를 산 적이 없는데, 딱 머리 깎고 그곳에 들어가니까 상황이 달라지더라. 마음에 악이 싹트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사회에 불만이 많은데 더 심해진 거지. 이러다 사고 치겠다는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화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에 음악을 배웠고, 본래 성격은 외향적인데 강제적으로 내향적 시기를 겪었다. 하루는 근무하면서 뉴스를 보는데 어떤 남자 인터뷰가 나오더라. 영화 속 영진처럼 교각에서 노숙하는 사람이었는데 되게 잘해놓고 사는 거다. 가재도구도 다 마련해 놓고. 저런 방식으로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며 놀랐고 얼마 후 이태원으로 이사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동네로 가고 싶었다. 홍대에선 아직도 아는 사람과 마주치거든. 연이 없는 곳에서 살다 보니 뉴스에서 본 남자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남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왜 중요했나.

영화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받아들일 생각이 별로 없었다. 플롯이 어떻고, 개연성이 어떻고 하는 것들. <시> 같은 영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당연히 서사적으로 훌륭한 작품이지만, 내가 감동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창동 감독님은 영화를 실제처럼 만드셨다고 하더라. 윤정희 선생님의 본래 성격을 반영해 캐릭터를 만들고, 최대한 꾸밈없이 작업했다고. 결국 영화라는 건, 관객이 보는 순간 진짜라고 믿게 해야 한다. 나도 진짜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내 경험을 녹여서 <부모 바보>를 완성했다. 사실 영화제에서 선보일 줄은 몰랐다. 말만 하지 말고 실제로 영화를 찍자고 결심한 때가 작년이다. 7월에 단편, 9월에 중편, 그리고 올해 6월에 장편 <부모 바보>를 찍었다. 평생 아르바이트하며 번 돈으로 영화 하나씩 만들고 골방에 박혀 살 줄 알았는데 감사한 일이다.

 

<부모 바보>를 단편, 중편, 장편으로 확장했던 건가?

아니다. 처음부터 단편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도 봐라, 내가 말이 많지 않나. 서론도 길고. (웃음) 첫 단편 러닝타임이 29분이고 그다음에 만든 게 42분이다. 내 호흡이 긴 편이라 단편과 맞지 않는다. <부모 바보>도 115분 나올 뻔했는데 편집 도와준 분이 호흡을 짧게 가져가자며 100분으로 줄였다. 엊그저께 단편을 오랜만에 찍었다. 정보라 피디에게 당신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공동 연출하겠다고 했거든. 피디에게도 <부모 바보>가 첫 영화였다.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서 선물하는 의미로 단편을 같이 찍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서울독립영화제도 함께 방문하는 <지난 여름>의 최승우 감독도 촬영장에 왔다.

 

도와주러?

그렇긴 한데 조금 도와주고 술 많이 마시고 갔다. (웃음)

<부모 바보>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이 챕터 타이틀로 등장한다. 백진현과 임영진, 박순례를 ‘부모 바보’라는 그룹으로 명명하는 듯한데.

원래 더 센 제목이었다. <엄마는 창녀다>(이상우, 2011)라는 영화도 있잖나. 나도 봤는데 솔직히 저런 건 독립영화의 함정 아닌가 싶더라. 상업에서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저 정도까지 가는 거. 지나치게 잔혹하거나 절절하게 그려낸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용이 그렇다 해도 이창동 감독님처럼 어떻게든 그걸 아름답게 비춰보는 일에 관심이 있다. 아무튼 <부모 바보>는 명확했다. 부모 욕하고 싶었다. 여기서 말하는 부모란 단순히 엄마 아빠를 칭할 수도,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지침을 제공한 사람들 전부를 가리킬 수도 있다. 영제도 ‘God damn, Parents’로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붙는 느낌이라 ‘Heritage’로 정했다. 실은 부산국제영화제에 간다고 하니 괜히 해외 영화제까지 신경 쓰여서 영제를 거듭 고민했다. ‘God damn, Parents’는 너무 직접적이기도 하고,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의 성격을 고려할 때 외국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글 제목도 ‘바보’ 정도가 적절한 듯했다. 부모 욕을 대놓고 하긴 어렵지 않나. 내가 부모를 바보라고 생각해도 남이 “그래, 네 부모 바보야”라고 동조하면 기분 나쁘고. 그만큼 예민한 문제라서 남들 안 보이는 곳에 낙서하다시피 말하고 싶었다. 

 

세 인물 중 감독에게 가장 가까운 인물은 누구인가.

20대의 나는 영진이었고 30대엔 진현이었다. 지금 와서는 오히려 순례에 가까운 것 같다. 많이 방황하며 20대를 보냈는데, 자존심은 또 세서 누구한테 도와달라거나 내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지 못했다.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거든. 30대엔 진현이처럼 내 과거와 비슷한 삶을 사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능력도 안 되면서 도와주려고 했지. 근데 베이비시팅이라는 게,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게 힘든 일이잖나.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멀어진 동생들이 많은 것 같다. 최근엔 와이프라든지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을 보살피게 된다. 그들이 철딱서니처럼 굴어도 그냥 봐주고 싶어진다. <부모 바보> 현장에 왔던 어린 스태프들을 보면서도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 관계의 취약성과 모순을 지금은 어떻게 받아들이나. 무뎌졌는지, 아니면 선을 긋게 됐는지?

하나는 확실하다. 적어도 이 문제로는 그만 찡찡댈 수 있을 것 같다. 그간 쌓인 불만을 영화로 토해 냈거든. 가족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선은 여전하다. 부모를 바보라고 했지만, 자식도 부모에게 당연하게 바라는 면이 있지 않나. 내가 부모 입장이 되면 그런 것을 말하려나 싶기도 하고.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에 선정된 후, 재작년 동일한 부문에서 상영했던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김세인, 2022)를 뒤늦게 봤다. 이 감독은 부모가 되어 봤나? 어쩌면 이토록 엄마에게 이입해서 감정을 표현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신선한 얼굴들로 영화를 채웠다. 캐스팅 과정은 어땠나. 

윤혁진을 가장 먼저 캐스팅했다. 따로 아는 배우도 없고 필름메이커스에서도 적당한 배우를 찾지 못해서 답답했는데 ‘메가폰코리아’라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트에서 발견했다. 배우 본인도 모르게 그 사이트에 프로필이 올라간다고 하더라. (웃음) 윤혁진 배우의 연기 영상을 봤는데 마음에 들었다. 무슨 단편영화를 하나 만들어 놨더라. “내가 어제 프로필을 찍고 왔는데 뭐 어디서 불러줘야 연기를 하지” 혼잣말하다가 자기 출연작을 소개하는 식이었다. 영상을 보며 ‘얘구나!’ 했다. 내 마음대로 배우의 말투나 습관에 맞춰서 대사를 쓰고 나서 연락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닌데 당신 연기가 좋아서 이렇게 썼다. 같이 하겠느냐. 그랬더니 하루만 고민해도 괜찮겠냐고 되묻더라. 딱 잘랐다. “아니요. 하기 싫으면 지금 얘기해 주세요.”

 

박력 넘친다. 무슨 작전이었나. 

절실했다. 혁진 배우를 캐스팅하지 못하면 플랜B를 서둘러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강하게 말하니 혁진 배우가 시나리오를 그 자리에서 읽겠다고 하더라. 빠르게 읽은 다음 출연을 결정해 줬다. 한편, 영진 역엔 일반인 같은 에너지를 쓰고 싶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션 베이커, 2018)에 나오는 그런 일반인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내가 순진했지. 어쨌든 최대한 일반인 같은 사람을 찾다가 필름메이커스에서 안은수 배우를 발견했다. ‘90년대 출생’ 남자 배우 프로필 78페이지에서. (웃음) 겨우 찾았는데 이 친구가 배우를 관뒀다는 거다. SNS 주소도 다르고 연락처도 아예 없어서 피디에게 부탁해 어렵게 수소문했다.

그러면 안은수 배우도 출연을 고사했을 법한데.

연기를 그만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상황인데 자기를 어떻게 찾았냐며 놀라더라. 근데 알고 보니 우리 영화 조연출과 예전에 단편 현장에서 함께 작업했던 사이였다. 이것도 인연이겠구나 하며 안은수 배우를 설득했다. 나호숙 선생님을 만나는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요새 중년 여성 배우가 귀한 데다, 여러 작품에 출연하신 분들은 피하고 싶었다. 내가 영화 경력이라고 할 게 없으니 캐스팅이 더 쉽지 않았다. 스무 분 넘게 만나고 나호숙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일단 만나자고 하시더라. 선생님은 만나서 거절할 생각이었던 거다. 내 이야기 30분만 들어주시라 부탁하고 한창 떠들었더니 넘어오셨다.

 

세 배우의 마음을 돌렸다니 말솜씨가 꽤 좋은가 보다. (웃음) 

처음엔 고사했지만 캐스팅 이후 다들 열심히 해줬다. 곧장 배역을 준비하는 나호숙 선생님께 감동받았다. 연기도 마음에 든다. 특유의 ‘쪼’가 남아 있긴 해서 선생님이 등장한 구간엔 살짝 아침 드라마 느낌이 난다. 근데 난 좋더라.

 

대사는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롱테이크가 많다. 대사를 쓰며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뭐였나.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가? 살면서 실제로 들어봤던 말인가? 이 두 가지를 많이 신경 쓴다. 순례 에피소드의 경우, 내가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던 당시 경험에서 가져왔다. 복지관에서 도둑으로 몰렸던 적이 있다. 할머니들이 복지관 와서 한 시간 수영하고 나면 딱히 할 일이 없다. 카운터에 앉아 있는 나한테 다가와서 신세 한탄하거나 옛날에 남산 소학교에서 공부한 얘기해주고 그런다. 하루는 어떤 할머니가 나를 도둑으로 몰며 화를 내더라. 알고 보니 수영장에서 아주머니들끼리 세력 싸움이 있었는데, 거기서 진 것이 분해 화풀이했던 거다. 이렇듯 경험에 비추어 인물의 반응과 대사를 구현했다. 현장에서도 비슷한 기준으로 연기에 공을 들였다.

 

감독의 주된 요구 사항은 뭐였나.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하기를 바랐는지.

습관이 나오지 않기를 원했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연기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윤혁진과 나호숙 배우 둘 다 연극을 오래 했던 터라 앞서 말한 ‘쪼’가 있다. 다른 거는 다 괜찮다고, 중간에 말을 더듬어도 상관없으니 그 ‘쪼’에 유의해달라고 부탁했다. 윤혁진 배우는 일부러 대사를 안 외웠다. 시나리오를 정독하고 상황을 파악하되, 대사는 현장에서 신과 신 사이에 빠르게 암기하는 식이었다. 자신이 대사를 완벽히 숙지할수록 자신감이 생겨서 쉽게 쉽게 간다고, 그러면 내가 원하는 느낌에서 멀어질 것 같다고 하더라.

 

평이한 구도로 촬영한 영화에 영진이 찍은 캠코더 영상을 삽입하여 이질감을 빚어낸다. 영진을 일상적인 장소를 반복해서 찍고, 확대해서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사람으로 설정한 이유는? 

먼저 구도는 촬영감독과 합의한 콘셉트에 따라 조정했다. 남의 삶을 훔쳐보는 느낌이 났으면 했다. 영진은 말하자면 부모에게 상처받은 자식 대표다. 돌이켜보니 지금 나보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날 키웠더라. 미숙해서, 혈기에 못 이겨서 때때로 아이에게 실수를 저질렀는데, 난 그걸 선명하게 기억한다. 뒤끝이 있는 편이거든. (웃음) 어쨌든 상처받은 자식 대표로서 영진이 기록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영상을 아이의 시선처럼 보여주려고 했다. 어릴 적에 엄마가 날 맡길 곳을 찾지 못하면 일터에 데려갔다. 엄마는 일하고 난 혼자 그곳을 돌아다녔지. 그때 본 풍경이라든지 관찰했던 것을 영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새나 자연처럼 계획하에 찍을 수 없는 이미지가 많아서 최대한 수집했다. 촬영이 끝나면 혼자 캠코더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찍었다.

 

영진의 비디오 클립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도 궁금하다. 쿠스코의 <Planet Voyage>처럼 80년대 유럽 전자음악을 연상케 하는 곡들인데 직접 작업했더라. 극을 묘하게 환상적으로, 약동하는 분위기로 만든다. 

쿠스코 좋아한다. 음악으로 아이러니를 형성하고 싶었다. 돈 있으면 유명한 실험 음악가들 곡을 많이 썼을 것 같은데, 돈은 없고 음악을 대충 만들 줄 알다 보니 직접 하게 됐다. 마냥 우울하지 않은, 희망과 절규 사이에 있는 음악을 쓰고 싶었다.

<부모 바보>

진현의 끝나지 않는 수다에 영진이 버티지 못하고 깜빡 조는 장면에서는 그와 또 다른 음악을 썼다. 현란한 하프 연주와 가곡을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가지고 있는 샘플을 섞어서 만들었다. 신비하면서도 클래식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 그 장면에서 태극기가 나오거든. 몽환적인 것보다 좀 더 고급스럽게, 경건한 분위기로 연출하길 원했다. 지루한 상황에 경건함이 많이 붙어 다녀서 그랬던 것 같다. 사실 어떤 논리가 아니라 직감에 따라서 만든 장면들이 많다.

 

애초 감독이 예상했던 나이보다 이르게 영화를 시작했다. 음악과 미술을 건너 영화에 발붙였는데, 두 영역에서 해소되지 않던 것이 영화에선 풀렸나.

풀리지. 음악이나 미술을 하면 나만 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걸 나만 안다는 뜻이다. 근데 영화를 만들면 누구든 본다. 미술 갤러리에선 준비된 관객을 중요하게 여긴다. 반면, 영화는 준비되지 않은 관객도 보고 즐길 수 있다. 그게 좋다. 난 어떤 말을 안 하면 죽을 것 같은 사람인데, 영화는 내가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매체 같다. 그간 경험한 예술 중 가장 예술과 거리가 멀지만, 날 살리는 예술이다. 부산에서 만난 관객 가운데 사회복무요원이 있었다. PTSD 올 것 같다며 리얼하게 잘 구현하셨다고 칭찬해 주는데 기분 좋더라.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리며 공감하는 관객도 있었고. 그분들과 대화하는 순간 깨달았다. ‘영화를 해야 빨리 안 죽겠구나.’ 근데 또 촬영하다 보면 수명이 깎이는 느낌도 들고.

 

기대에 어긋나는 반응도 접했을 텐데.

아직 악평이 없어서 힘들다. 왓챠피디아에서 0.5점도 한번 받고 그래야 하는데. 이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하면 받겠지. (웃음)

 

영화를 매개로 대화하고 싶은 욕구가 큰 것 같다. 대체 무슨 말을 그렇게 하고 싶나. 

부모는 바보다! 

 

요즘 흥미롭게 보고 있는 감독이나 작품은? 

감독보다 배우에게 관심이 있다.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배우들. 엊그저께 찍었다는 단편에 박가영 배우가 출연한다. ‘어쩌면 저렇게 연기를 툭툭하지?’ 감탄했다. 평소 자기 모습대로 눈빛도, 말도 툭툭. 윤혁진 배우도 마찬가지다. <부모 바보>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영감을 줬으니까. 요새 연기를 열심히 공부한다. 건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3학기째 수업을 듣고 있다. 단편에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좀 더 공부해서 비중 있는 배역도 맡고 싶다.

 

직접 연기할 마음이구나. 롤모델을 꼽아 본다면?

좋은 감독이 되고 싶어서 연기를 배우는 거다. 내 눈엔 노가다 현장과 영화 현장이 비슷하다. 노가다 판에 젊은 관리소장이 새로 들어오면 아저씨들이 텃세 부리거든. 일도 안 해본 사람이 뭘 안다고 나서냐고. 스태프, 배우, 감독도 서로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면 결코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 와중에 박가영 같은 배우를 보면 ‘저 사람에게 딱 맞는 옷을 입혀주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연출과 연기를 겸하고 싶다. 어릴 적부터 기타노 다케시 좋아했거든. 양익준, 타이카 와이티티처럼 연출도 연기도 제 식대로 하는 사람들에게 끌린다.

이종수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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