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성 배우를 만나러 가는 길에 문자를 받았다. 지난해 <역할들>로 인터뷰했던 김범석 배우였다. “영성이 제가 정말 아끼는 동생이에요. 응원합니다. 화이팅!” 알고 보니 둘은 김영성이 대학 졸업 후 몸담은 극단 골목길에서 한솥밥을 먹은 사이. 어쨌든 반가운 문자에 답장할 때만 해도 ‘응원’이라는 단어를 곱씹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김영성은 <빅슬립> 속 기영과 딴판이었다. 시종일관 눅눅하고 심드렁했던 사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화사했다. 몰라보겠다고 했더니 “좀 많이 다르죠?”라며 환히 웃었다. 이어진 대화 내내 그는 아끼는 누군가를 응원하느라 바빴다. “영원한 파트너”인 아내를 걱정했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두 아이를 자랑했다. 거울 보며 당당하게 말하는 법을 가르쳤던 어머니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숨죽여 울던 아버지를 추억하며 거듭 사랑을 전하기도 했다. <빅슬립>은 김영성에게 응원하는 마음을 선물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제 힘으로 한 발짝 떼려 하는 기영을 연기하면서 그도 주먹을 꽉 쥐었고, 기영만큼 혼자서도 괜찮은 척하는 길호(최준우)의 악다구니를 끝까지 바라봤다. 누구보다 두 인물을 오래 품고 돌본 김태훈 감독에게는 몇 번이나 “화이팅!”을 외쳤다. 큰 잠을 잔 덕분에 김영성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의 응원 일지를 받아 적다가 깨달았다. 김영성은 지금 타인에게 박수를 보내며 자신의 성장을 지켜보는 중이다. 초보 파수꾼이 되어 매일 삶의 들판을 일구는 그가 더 멀리 가기 전에 잠시 붙잡아 세웠다.
작년에 좋은 일과 힘든 일을 모두 겪었다. <빅슬립>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배우상을 차지했고 <범죄도시 2>(이상용, 2022)로 ‘천만 관객 조연’이라는 타이틀도 생겼다. 동시에 아내이자 동료인 김윤주 배우가 아팠다고 들었는데.
윤주와 부산국제영화제를 함께 갔는데 계속 피곤하다고 했다. 몸이 좀 이상한 것 같다면서 불안해하기에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병원에 갔다. 검진 결과를 보고 당황했다.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겠다. 당시 출연하기로 한 작품이 몇 편 있었는데 한동안 일도 멈추고 간호에만 매달렸다. 다행히 많이 회복했는데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다. 중간중간 검사하러 갈 때마다 둘이 손 바들바들 떨면서 기도한다.
<빅슬립>과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함께 거치는 듯하다. 촬영 당시엔 상업영화와 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어떻게 출연을 결심하게 됐나.
오디션 결과도 안 좋고 좀 힘든 시기였다. 독립영화처럼 공부할 수 있는 작품을 찍고 싶었다. 공개가 안 돼 그렇지, 단편영화는 여러 편 찍었거든. 상업영화는 공부가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연기하고 싶다는 갈증을 느꼈던 거다. 아무래도 상업 현장에 가면 ‘피해 주지 말고 빨리 하자’라는 생각이 앞서니까. 한 장면씩 진득하게 고민하고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의견을 나누고 싶었다. 오랜만에 필름메이커스를 들어가서 보다가 <빅슬립> 오디션 공고를 발견했다. 당시 내가 서른여섯이었는데 공고에 표기된 기영의 나이는 마흔쯤이었다. 나이가 살짝 어긋나도 지원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밍이 좋았다. 특별히 <빅슬립>에 눈길이 갔던 건가.
시놉시스만 읽고도 확신을 얻고, 그런 건 아니었다. 얼추 나이대가 비슷한 인물인 데다 장편영화이기에 우선 지원하자 했던 거다. 단편영화를 한참 찍던 무렵에는 5일마다 한 번씩 필름메이커스에 들어갔다. 날짜를 표시해 놓고 주기적으로 오디션 공고를 찾아봤는데, 상업영화와 드라마를 찍으면서 한동안 단편 작업을 중단했다. 실은 회사에 오디션을 3개월만 스톱하고 싶다고 알린 상태였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오디션을 참여하다 보니 어느 순간 숙제처럼 느껴지더라. 뭐 하나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흘러가듯 한다는 느낌. 오디션 마치고 나면 마음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허했다. 내가 왜 이럴까.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누군가와 호흡을 맞춰 뜨겁게 장면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렇게 헤매던 시기에 <빅슬립>을 만났다. 회사에서도 당황했다. “영성아, 3개월 쉰다면서?” (웃음) 근데 이 작품은 꼭 해야겠더라. 말을 바꿔서 죄송하다고 했더니 “네 갈증이 풀릴 것 같으면 해봐”라며 응원해 줬다. 윤주도 내가 하루하루 즐거워 보인다고 했다. 분명히 인상 쓴 얼굴로 연기 연습하는데 자기 눈엔 웃음이 보인다고. 어떻게 보면 선물처럼 찾아온 작품 같다.
김태훈 감독에게 들은 오디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돌연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를 틀고 바닥에 눕더니 감독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고.
대본대로 안 하려는 병이 있다. 어떻게든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튀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한편 “이런 것도 매력 있지 않아요?” 하는 제안이기도 하다. <빅슬립> 오디션 대본이 짧았다. 이만큼 보고 날 선택하려면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 일단 대본에 맞춰 연습했는데 오디션 현장에 도착해서 마음이 달라졌다. 오디션 보러 가면 보통 두세 명 앉아 있다. 형식적인 질문 몇 가지에 답하고, 사진 찍고, 연기하면 끝이다. 근데 <빅슬립> 오디션장엔 여덟 명 정도가 있었다. 장소를 착각하고 잘못 왔나 싶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당시 날 보고 감독님은 박력을 느꼈다고 하더라. 난 놀라서 얼어 있던 건데. (웃음) 아무튼 어리둥절한 상태로 자리에 앉았더니 한 명씩 일어나서 마스크를 벗고 인사하는 거다. “감독 김태훈입니다.” “촬영감독 구두환입니다.” “조명감독 김주일입니다.” 속으로 그랬다. ‘나 왜 잘하고 싶지? 캐스팅 안 돼도 상관없다. 최선을 다하자.’
상대가 정성을 보여주니까.
나도 내 패를 다 꺼내고 싶더라. 괜히 폼 잡지 말고 내가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길호랑 막걸리 마시는 장면을 연기하는데 문득 ‘별이 진다네’가 떠올랐다. 대본과 다르게, 그냥 누워서 음악 들으며 내 이야기를 풀어보자 싶었다. 사실 우리 삼촌이 좋아했던 노래다. 기영이 길호에게 한마디씩 툭툭 하듯 어릴 적에 삼촌이 나한테 그랬거든. 넌 나중에 커서 뭐 하고 싶냐, 꿈이 뭐냐, 아버지 말 잘 들어라. 그랬더니 감독님이 혹시 다른 장면도 연기해 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어떤 장면?
영화 말미에 기영이 욕하는 장면. 자신에게 화가 난 사람이 상대를 다그치는 장면인데 욕이 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네, 해보겠습니다” 하고 한참 연기했다. 돌아보니 감독님은 언젠가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있더라. ‘저 사람 뭐지?’ 그런 감독은 처음 봤거든. 오디션 끝나고 와이프랑 통화하면서 좋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캐스팅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좋은 오디션이었다고. 이후 연락 받고 감독님과 다시 만났을 때도 그 인상이 그대로 이어졌다. 단지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를 정성스레 대하더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참 멋있어서 같이 작업하고 싶었다. 요즘도 감독님과 술 한잔 하면 종종 오디션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품에 참여하지 못한 배우들마저 영화 잘 됐으면 좋겠다고, 배우로서 좋은 경험 했다고 인사가 왔다더라. 그럴 만했다. 내게도 잊을 수 없는 오디션이었고, 마음가짐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됐다. 더 열심히 성장하자. 감독과 동료 배우를 성숙한 태도로 대하는 배우가 되자.
감독은 오디션 끝나자마자 “다음엔 저 배우랑 술을 진탕 마셔보자!” 결심했다고 하더라.
진탕 먹었다.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온갖 이야기를 나눴지. 근데 다음날 감독님이 기억에 없다며 묻더라. “영성 씨, 어제 무슨 얘기 했는지 혹시 기억나요?” “감독님, 저도 모르겠어요.” (웃음)
찐한 우정만 쌓고.
우리가 격하게 통하는 지점이 있다. 본질적으로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해야 할까. 아버지 세대에게 짠함을 느끼는 부분도 비슷했다. 자신도 아이도 돌보지 못한 채 일했던 아버지, 그럴 수밖에 없던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이제 눈물이 나더라.
플래시백 장면은 전혀 없으나 몇몇 장치가 기영의 전사를 암시한다. 기영은 과거에 관해 말하길 피하는 인물이지만, 배우는 유년기부터 기영의 타임라인을 쭉 그려봤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도 기영의 과거는 내게 맡겼다. 다만,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는 관객들이 현재의 기영을 잘 지켜봐 주길 바라며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난 어린 시절에서 많은 이야기를 가져왔던 것 같다. 유년기의 경험과 감정을 극대화해서 기영을 상상했다. 슬펐거나 화났던 일을 떠올리고 ‘기영이라면 그때 훨씬 더 슬프고 화났을 거야’ 생각하는 식이었다. 게다가 영화에 실제 내 어릴 적 사진이 나온다. 그걸 보면서 연기하니 자연스레 기영에게 날 투영하게 되더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부모님과 영화를 봤다. 엄마 아빠 뒷모습을 지켜보며 ‘사진 보고 무슨 생각할까?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상영 끝나고 나와서 어땠냐고 물어보니 아빠가 딱 한 마디 하시더라. “너 담배 좀 그만 피워.” 다른 얘기는 일절 안 하시고. (웃음)
어떤 아이였나. 청소년기를 돌이켜보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나.
조용하고 숫기 없고. 질문하고 싶어도 손을 못 들었지. 내 기억엔 없는데 엄마와 거울 앞에서 손 들고 발표하는 걸 연습한 적도 있다고 하더라. 그러다 연기 시작할 무렵부터 성격이 바뀌었다. 친구들과 두루두루 어울리고, 반장 선거도 나갔다. 워낙 내성적이어서 지금 이렇게 연기하는 걸 친구들도 신기하게 본다. 근데 어릴 적에도 승리욕은 강했다고 한다. 축구하다 지면 분해서 울 정도였다고. (웃음) 공부는 못했지만 운동을 좋아했다. 축구도 잘했고 체육대회에서 이어달리기하면 항상 계주로 뽑혔다. 어릴 적엔 운동 잘하면 인기를 얻지 않나. 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친구라곤 동네 친구 몇몇이 전부였는데,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친구 폭이 넓어졌다. 이런 애도 있구나, 저런 애도 있구나. 처음엔 그 사이에서 관심을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교내 동아리에 들어간 건가?
인문계 고등학교였는데 어느 날 예술계로 나눠서 애니메이션과와 연극영화과가 생겼다. 연극영화과는 두발 자유를 허락한다는 말에 솔깃해서 들어갔다. (웃음)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가 부추기기도 했다. 걔는 일찌감치 배우를 꿈꾸던 애였다. 놀지 말고 공부 좀 하라면서 책과 대본을 여러 권 선물해 줬다. “이거 읽어 봐. 안톤 체호프라는 작가가 쓴 거야.” 그렇게 연기 공부를 시작했는데 사실 수업 초반엔 굉장히 당황했다. 하루는 선생님이 병원에서 주사 맞는 순간을 표현해 보라고 하더라. 선생님이 “놉니다” 하면 “아앗!” 이러면서 연기를 하는데… 와, 다들 어쩌면 그렇게 뻔뻔한지. 난 민망해서 어디 숨고 싶더라. (웃음)
큰 흥미나 열정 없이 얼렁뚱땅 연기를 시작했는데 어쩌다 배우가 됐나.
어떤 공연에서 작은 역할을 맡았다. 등장하는 시간을 따지면 채 1분도 안 됐을 거다. 별생각 없었는데 막상 무대에 오르자 엄청나게 떨렸다. 그날 공연 마치고 관객에게 박수받는 순간, 처음으로 욕심이 생겼다. ‘주인공 하면 진짜 멋있겠는데?’ 그 후 주인공을 하고 나서 마음먹었다. 난 연기해야겠다고. 이 길이 얼마나 외롭고 어려운지 전혀 몰랐을 때다. 철없는 상태로 대학까지 진학했다. 돌이켜보면 가장 뜨겁게 살았던 시절이다. 연기하고 싶다는 애들만 모인 곳 아닌가. 같이 어울리면서도 늘 경쟁하고, 각자 패를 감추며 연습했다. 고향이 그리웠다. 부모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나더라. ‘부모님이 만들어 준 등록금을 허비하면 안 된다. 어떻게든 주인공을 따내야겠다.’ 학기마다 오디션이 열렸는데 무조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로 임했다. 부모님을 초대해서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 그렇게 달려드니 동기들은 물론이고 선배들까지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눈으로 지켜보더라.
평판이 안 좋았겠는데? (웃음)
그래도 평판은 괜찮다. 아마 나쁘지 않을 거다. (웃음) 이 악물고 도전한 덕분인지 대학 내내 주인공만 했다. 희망에 부풀었고 알게 모르게 건방진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다들 나한테 잘될 거라고 했으니까. 근데 졸업 후 대학로에 가보니 연기 잘하는 사람이 차고 넘치더라. 깜짝 놀랐다. 극단 선배들 보며 반성도 많이 했다. ‘저 선배는 지금까지 어떻게 버텼을까?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할까?’ 연기하는 마음가짐을 배웠던 시기다. 들뜨지 말고 겸손하게, 차분히 내 길을 가는 자세가 중요하구나 싶더라. 심지어 극단 들어가서 공연은 한두 편밖에 못 했다. 청소, 포스터 붙이기, 조명 세팅 등 주로 무대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흔들리기도 했다. ‘난 배우가 될 재목은 아닌가? 연기하러 왔는데 왜 이렇게 돼버렸지?’ 계속 고민하면서도 연기를 관두진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마음이 단단해졌던 것 같다. 그 무렵에 <빅슬립>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전 기간에 감독님과 마주 앉아서 지금껏 어떻게 살았는지 서로 과거 이야기를 쭉 나눴다. 공유하는 감정과 경험이 많아서 대화가 잘 통하더라.
기영을 생각하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는 독특한 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갈 데 없으면 들어와. 싫어?” 명령조인데 잘 들어보면 챙겨주는 내용이다. 말투를 포함해 표정, 자세, 걸음걸이 등을 세밀하게 연구했다.
내가 생각한 것들을 감독님이 대부분 수용해 줬고 현장에서도 소통하며 맞춰 나갔다. 난 기영의 전체적인 이미지, 걸음걸이, 복장을 특히 고민했다. <범죄도시 2>를 촬영하면서 태닝했던 다음이라 얼굴색은 이미 좀 어두웠고, 신발을 접어서 신는 것은 내 아이디어였다. ‘툴툴댄다, 털털댄다’ 같은 표현을 자주 썼다. 건조하고 무심하게 보였으면 했거든. 본래 감독님은 기영을 더 거칠고 무정한 느낌으로 생각했는데, 난 기영 내면에 엄마가 깊이 들어와 있다고 해석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영화 속 느낌이 완성됐다. 목소리 톤과 말투는 사전에 연습하며 조율해 나갔다. 대사를 내 입에 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바꾸면 어때요?” 제안하면 감독님이 노트북에 받아 적으면서 “좋아, 좋아!”하는 식이었다. 오히려 감독님은 대사 없는 신을 더 신경 썼던 것 같다. 기영이 담배 피우는 장면이라든지 가만히 서서 생각하는 장면은 테이크를 여러 번 갔다. 담배를 얼마나 오래 피우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생각에 잠긴 눈빛은 어떤지. 감독님이 그걸 강조한 덕분에 장면마다 감정이 차곡차곡 쌓인 듯하다.
의상도 직접 아이디어를 냈나.
옷을 스스로 구해보고 싶어서 집 근처 중고 옷 가게에 갔다. 앞서 말했던 삼촌을 계속 떠올렸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삼촌의 이미지, 골방에서 담배를 피운다든지 기타 치면서 김광석 노래 부르던 모습, 삼촌이 주로 입었던 옷 등을 떠올리며 기영을 70% 정도는 찾은 것 같다.
길호의 바가지 머리를 촌스럽다고 구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 기영의 헤어스타일도 만만치 않다. 대충 자른 더벅머리는 누구 아이디어였나.
감독님이 자르자고 했다. 그 장면에서 기영이 길호 머리카락을 움켜쥐는데 많이 고민했다. ‘둘이 너무 친해 보이나? 벌써 가까워지면 안 되는데?’ 불안하더라. 일부러 상남자 느낌으로 길호 머리를 투박하게 잡았다. 감독님한테 이런 식으로 디테일을 계속 얘기했다. 기영이 멀리서 길호를 바라보는 정도로 영화를 끝맺어도 응원하는 마음이 충분히 전달될 거라고 생각했거든.
낮술 신에 관해서도 듣고 싶다. 오디션에서 연기했다는 장면인데 푹 꺼진 눈자위와 나사 하나가 풀린 듯 구부정한 자세, 상대를 비스듬히 쳐다보는 시선까지 보면 볼수록 기영 자체인 듯했다.
아침햇살 마셔서 눈빛이 그런가. (웃음) 원래 소주였는데 삼촌 생각나서 막걸리로 바꾸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삼촌이 막걸리 따라주면서 먹어보라고 했던 적이 있다. 겉보기엔 우유 같아서 한 입 삼켰다가 그대로 도망쳤지. 그런 기억과 향수를 더듬으며 작업했던 것 같다. ‘길호에게 소주는 좀 쓰지 않나? 달달하면서도 쓰고, 배도 부른 막걸리가 어울리지 않을까?’ 그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다 보니 제안할 것들이 하나씩 생기더라. 감독님한테 막걸리는 어떠냐고 묻자 좋다면서 곧바로 아침햇살을 준비해 줬다. 난 그 장면에서 입은 옷을 좋아한다. 옷만 보면 기영이랑 안 어울릴 것 같은데 어쩐지 괜찮아 보였거든. 촬영 전날 구했던 옷이다. 감독님한테 사진을 찍어서 보냈더니 일단 가져오라고 했다. 현장에서 입고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디테일을 고민하고 현장에서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다는 건 그만큼 인물에 대한 정의가 확고했다는 의미 같다. 기영을 구현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바는 뭐였나.
뜬금없지만 훈련병 시절을 떠올렸다. 거기 있는 사람들 다 힘들거든. 어떤 훈련하는지 얼마나 고생하는지 다 알고. 근데 각자 말없이 건빵 먹다 보면 그 시간을 버티게 된다. 옆에 있는 사람 덕분에 하루가 지나가는 거다. 내일도 나 혼자 훈련하는 게 아니구나. 얘네가 함께하는구나. 그런 마음이 결국 삶으로 번져 가는 것 같다. 하루하루 자기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신 참 고생했다”라는 격려를 매번 받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그냥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을 얻지 않나. 자극받아서 나도 더 힘내야겠다 싶고, 따뜻함을 느끼기도 한다. 기영에게 그런 시선을 주려고 했다. 기영은 결국 길호의 인생을 먼저 살아본 사람이다. 투박하고 서툴지만 타인을, 또 과거의 자신을 바라볼 힘은 가졌다고 봤다.
최준우 배우를 포함해 김한울, 현우석 등 여러 신인 배우와 호흡을 맞췄다. 어떤 경험으로 남아 있나.
신선했다. 내가 1을 던지면 2로 받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10이나 -5를 내놓더라. 1하면 2, 3하면 4, 그런 전형적인 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즐거웠다. 어린 친구들이 발산하는 에너지가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 같다. 상대가 전혀 방어막을 치지 않고 “전 이렇게 해볼래요”라고 하니, 나도 “그러면 이건 어때?” 받아치면서 재밌는 티키타카가 나오더라.
영화 후반부에 기호는 경찰서에서 돈을 안 훔쳤다고 울부짖고, 기영은 굴다리 아래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세상과 자신을 향한 지독한 분노를 쏟아내며 비로소 두 사람이 접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듯 한쪽은 감정을 분출하고 다른 한쪽은 대사도 없이 묵묵히 받아주는 장면을 찍을 때, 배우들은 어떤 대화를 나누나.
신기하게도 바로 그런 장면에서만 대화를 많이 안 했다. 감독님과는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는데 배우와는 아니었다. 경찰서 신의 경우, 난 기영과 마찬가지로 길호를 또 준우를 그저 기다렸다. 내 눈엔 힘들어하는 게 보이지. 길호라기보다는 한 배우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때 나와 기영의 마음이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기영이 길호를 응원하듯 난 준우를 응원했거든. ‘넌 잘하고 있어.’ 한편, 굴다리 신은 테이크를 가장 여러 차례 갔던 장면이다. 테이크마다 새로운 방향을 시도했다. 내뱉는 욕도, 쇠 파이프를 집어 던지는 타이밍도 각기 다르다. 내가 길호 코앞까지 다가가서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테이크고 있다. 체감으로는 거의 2~3분을 가만히 봤던 것 같다. 그러다 끝에 길호 어깨 한 번 툭 치고 나오고. 물론 중요한 장면이고 액션 연기를 해야 하니 사전에 많이 연습했다. 근데 촬영을 시작하자 내 정서가 달라지고, 상대 배우가 들어오면서 변화하는 부분도 생기더라. 감독님이 잠깐 쉬자고 한 다음, 나를 불러서 얘기하더라. “영성아, 나도 잘은 모르겠어. 기영 자신에 대한 분노, 아버지를 향한 원망. 그거 힘들어. 아주 힘들 거야. 근데 누가 너 힘든 거 잘 안다면서 계속 안아주잖아? 그러면 화도 난다? 혼자 극복하기엔 어렵다는 거 아는데 혼자 해내야만 하는 것도 있어. 우리는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해. 그러니까 뭔가를 꿋꿋하게 해야 해.” 감독님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굴다리 신만큼은 날 것에 가까운 느낌으로 가려고 감독님이 연출, 촬영, 연기 등 다각도로 노력했던 것 같다.
먹고사는 문제와 신념을 지키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기영을 보면서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 보편적으로 공감할 부분이자, 배우로서 곱씹을 만한 내용 같다.
오히려 촬영할 당시보다 최근에 더 와닿는 이야기다. 내가 아빠가 됐거든. 애들을 보면서 <빅슬립>을 생각하니 좀 더 기영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 나 같고, 내가 아는 사람 같다.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기영이를 응원한다. 이번 작업하면서 느꼈는데 그간 자신을 다그치기만 했지, 칭찬한 적은 별로 없더라.
매번 주인공만 했는데도?
만족하지 못했다. 결국 만족은 스스로 만드는 건데 나한테 너무 야박했다. <빅슬립> 마친 후엔 날 많이 칭찬했다. “잘했어. 좋았어.” 습관처럼 그 말을 자주 하려고 노력한다. 애한테도 마찬가지다. 알아듣지 못해도 계속 말해 준다. 너도 언젠가 괴롭고 힘든 세상을 겪겠지. 나처럼, 우리 아빠처럼 살겠지. 그래도 지금은 좋았어. 잘했어. “좋다”라는 말을 나와 내 주변에 많이 하는 요즘이다. 좋은 마음을 유지하며 열렬히 좋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의 영향이 크다. 하나를 해도 진짜로, 진심으로 임하는 태도를 배웠다. 그렇게 노력해야 좋은 어른으로 인생을 마무리 짓고 괜찮은 할아버지가 되지 않겠냐는 얘기도 여러 번 나눴다. 음, 감독님도 나도 남에게 부탁하기 어려워한다. 영화 개봉하니까 보러 와라, 그런 말을 못 하는 거다. 근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갔던 날, 둘이 회를 먹는데 감독님이 그러더라. “최선을 다해서 <빅슬립>을 보내주자. 너는 네가 생각하는 최선을, 나는 내가 생각하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말하자면 감독님은 나한테 “이런 최선 좀 해라, 저런 최선 좀 해라” 말하는 사람이 아닌 거다. 곁에서 감독님을 지켜본 덕분에 관계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점검할 수 있었다. 좋은 감독, 멋진 형을 만난 것 같다. 우리 애들이 자라면 <빅슬립>을 선물해 주고 싶다. 애들한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거든. 아빠 젊은 시절도 구경할 수 있고.
“아빠의 퍼석퍼석함을 봐라.”
애들이 고등학생 됐을 때쯤엔 더 퍼석퍼석하겠지? (웃음)
감독이 일러줬다는 “하나를 해도 진짜로” 하는 태도란 뭘 의미하나.
시작하는 태도다. 나와 감독님의 시작은 오디션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도 그만인데, 제작진 한 명씩 일어나서 인사하고 일일이 소개했다. 감독님이 그렇게 준비했기에 나도 잘하고 싶었고, 작업하면서 점점 더 감독님을 응원하게 됐다. 이번에 알았다. 누군가를 힘차게 응원한다는 거, 참 좋은 마음이구나. 계속 응원하고 싶다. 나도 부족하지만 노력해서 누군가에게 응원받고 싶고. 물론 언제나 좋은 사람이 되기란 어렵지. “좋았어. 잘했어.” 했다가도 운전하다 보면 갑자기 짜증이 올라오기도 한다. (웃음) 그래도 좋다고 말하니 긍정적 효과가 많더라. 와이프랑 덜 싸우고, 애들 앞에서 더 웃고. 이전보다 유쾌하고 건강한 분위기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지구력을 키우는 방법 같기도 하다. 한 번에 빛나려는 욕심에서 벗어나 일정한 좋음을 유지하기.
누가 날 좋게 보든지 하찮게 여기든지 그런 시선은 별로 중요하지 않더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질문해야 한다. 말한 대로 그건 한 번의 멋짐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노력하며 자세를 가다듬는 일에 가깝다. 감독님에게 배운 것을 주변에 전파하고 있다.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잘 살고 싶어서.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런 의미에서 <빅슬립>을 많은 분이 봤으면 좋겠다. 영화에 감독님의 태도와 심성이 그대로 드러나거든. 누구든 일단 영화를 본다면 내가 뭘 말하는지 느낄 수 있을 거다.
대화에 응원과 선물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왔다. 부산국제영화제 수상 소감이 떠오른다. “연기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라고 주신 선물 같다”고 말했다. 앞에 놓인 길을 정확히 볼 수 없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닌데 언제, 왜 연기를 포기하고 싶어지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 심지어 퇴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자괴감이 든다. 아무도 날 괴롭히지 않는데 내가 날 망치는 거다. 재밌자고 시작한 연기인데 자괴감에 빠져서 포기하게 될 것만 같았다. 당시엔 연기해도 더는 즐겁지 않더라. 30대 중반부터 그런 상태였는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생각이 확 많아졌다. 아무래도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없으니까. 영화제에서 시상식 전날 연락이 왔다. 자막 처리해야 하니 수상 소감을 미리 써서 보내달라고 하더라. 부모님, 와이프, 아이들 다 자는 한밤중에 혼자 맥주 마시면서 적었다. 학교 다닐 적에 개근상 받은 후로 상은 처음이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한참 고민했다. 상은 “네가 최고야”가 아니라, “네가 좀 더 해봤으면 좋겠어”라는 응원 같더라. 감독님은 “이런 생각하면 안 되는데 내가 널 훌륭한 배우로 만들려고 감독이 된 것 같아”라고 했다. 넌 괜찮은 배우라고, 그러니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겠냐고 거듭 응원해 줬다. 모든 순간이 선물처럼 다가왔다. 영화제 상영이 결정됐을 때부터 그랬다. 나도 울었지만 감독님도 연락받고 와이프랑 울었다고 하더라. 훨씬 긴 세월을 기다려 왔을 테니 벅찰 수밖에. 그래도 부산에서는 실컷 즐기자는 마음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도 처음이고, 스태프들도 신나서 웃고, 술까지 공짜 술이고. (웃음) 꿈 같고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다 윤주가 아프니까 선물따위 필요 없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그냥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고 싶을 뿐이었다.
지금은 마음을 어떻게 정리했나.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또 어떤 상황을 마주할지 모르겠지만, 김영성의 배우 인생을 뜨겁게 살아보려고 한다. 열심히, 정성껏 준비해서 연기할 작정이다. 그런데도 현실적으로 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시기가 온다면, 미련이나 후회 없이 멋지게 보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정말 최선을 다해야지.
어떤 연기를 하고 싶다거나 어떤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바람이 있나.
멜로하고 싶다. 부산국제영화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더니 기자들이 빵 터지더라. 로맨스가 안 어울리나 보다. 사실 상업영화에서 내 또래에 이런 얼굴을 가진 배우들이 맡는 역은 대개 비슷하다. 수염 좀 길러서 형사 아니면 조폭이다. 나보다 말끔하게 생기면 안경 쓰고 양복 입은 다음에 검사 되는 거고. (웃음) 근데 예전부터 멜로를 좋아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1998)를 지금도 즐겨 본다.
듣고 보니 그 영화도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를 담고 있네.
가족, 사랑, 인생에 관해 말하는 작품에 끌린다. <스타 이즈 본>(브래들리 쿠퍼, 2018)처럼 한순간 격렬하게 타올랐다가 근사한 사진처럼 남는 로맨스도 좋아한다. <라라랜드>(데이미언 셔젤, 2016)도 여러 번 봤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서 변화한다고 믿는 사람.
연기는 결국 사람의 일이니까. 사람 덕분에 변화하고, 타인에게 영향도 많이 받는 편이다. 갑자기 친해지는 사람이 거의 없고 오랜 친구를 계속 만난다. 서로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이해하며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니 인연이 길게 이어지는 것 같다. 신기하게도 내 주변 사람들도 성향이 비슷하더라. 다들 처음 만나는 사람이 많은 자리를 어색해하고. (웃음)
감독과도 영화 이야기 많이 나눴나.
감독님과 목포 가는 길에 3시간 반 동안 <8월의 크리스마스>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 포인트 뭔지 알지?” 하면서 작은 것 하나하나 계속 말했다. 감독님의 영화 스펙트럼은 정말 다양하다. 내게도 배우로서 지표가 될 만한 작품, 연기에 참고하면 좋을 작품을 많이 소개해 준다.
예를 들면?
<하나 그리고 둘>(에드워드 양, 2000)을 추천하면서 내가 무조건 좋아할 거라고 했다. 오래전에 봤던 작품인데 러닝타임이 거의 3시간이더라. 아기 재우고 나서 음량을 최대한 작게 틀어서 봤다. 1시간 반 정도 지났을까? 아기가 깬 거다. 다시 재우고 나왔더니 감상이 깨져서 결국 다음날 처음부터 봤다. 역시나 너무 좋았다. 최근에 추천받은 영화는 <더 헌트>(토마스 빈터베르그, 2013)인데, 감독님 친구가 <빅슬립>을 보고 그 영화가 떠올랐다고 하더라. “김영성 배우 <더 헌트>에 나오는 배우랑 닮지 않았어?” 아직 안 봐서 모르지만 궁금하다. 숙제처럼 ‘다음에 볼 영화’ 목록에 적어 놓았다.
끝으로 배우에게 잠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감독은 <빅슬립>을 통해 인물에게 잠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하더라. 기영은 영화 내내 다른 이를 재우거나 그들이 자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엔딩에서 딱 한 번 잔다.
그 장면에서 아빠 생각을 많이 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힘들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문득 아빠가 보고 싶어졌다. 친구한테 “맥주 한 잔만 사줘” 연락해서 잘 놀다가도 혼자 귀가하는 길에 아빠한테 전화해서 울고, 그러다 아빠 얘기는 안 듣고 끊어버리고. (웃음) 어린 시절에 아빠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부엌 한쪽 구석에서 소주 마시며 울더라. 등은 축 처진 채로 울음소리도 안 내면서. 엔딩을 찍으며 그 시절의 아빠에게 이 잠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매일 돈을 벌러 나가야 하는 아빠가 잠을 잔다면, 나와 가족을 위해 고생하는 아빠에게 잠을 선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전엔 아빠가 무서웠는데 나이 먹을수록 점점 안쓰럽고 고마운 마음이 커진다. 근데 또 살갑게 표현은 못 하겠고. 아빠가 영화를 잘 봤으면 좋았을 텐데.
개봉하면 한 번 더 감상을 여쭤봐라.
실은 마음에 들었으면서 말을 아낀 걸 수도 있다. 갑자기 떠올랐는데 작년 부산에서 선물을 받았다.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을 당시, 왠지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근데 카페에서 윤주가 묻더라. “무슨 일 있지? 표정이 묘하게 좀 들떠 보이는데?” 은근슬쩍 넘어가려다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실패했다. (웃음) 와이프가 소식 듣고 앉은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그러고 나서 부모님께 영상통화를 걸었다. 아빠가 받더니 알겠다며 엄마에게 핸드폰을 넘기더라. 화면에서 안 보이기에 ‘혹시 우시나?’ 하고 나도 그냥 넘어갔다. 그날 제작진과 밤새 술 마시고 오전 6시쯤 숙소에 들어갔다. 아빠가 선물이라며 웬 꽃다발을 내밀더라. 우리가 묵는 펜션 옆에 들판이 있는데 거기서 꽃을 모아서 엮었다고. “이거 가져가. 수고했다.” 꽃다발을 안고 방에 들어가서 푹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