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화는 말버릇처럼 “여담인데요”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담의 사전적 의미는 ‘본 줄거리와 관계없이 흥미로 하는 딴 이야기’. 오경화는 그렇게 여담을 핑계 삼아 샛길을 내고 도랑으로 빠지는가 싶더니, 결국엔 어떻게든 중심을 찾아냈다. 소나무와 친구가 된 사연을 한참 떠들다가 자신을 솔방울에 비유했고, 숲을 이루는 나무의 시선을 빌려 작품과 사회를 바라봤다. 대화 속에서 오경화는 여러 차례 위치를 바꿨다. 그는 연기를 잘하고 싶은 배우였다가 맛집과 아지트를 소개하는 동네 친구가 됐고, 뒤이어 더 나은 삶을 상상해 보자고 제안하는 청년의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자신은 평면이 아닌 알록달록한 다면체라고 알리듯 오경화는 그 모든 모습을 제 것으로 받아들였다. 농담과 진담이 풍성하게 섞여 든 여담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오경화와 처음 마주 앉은 날이 떠올랐다. 5년 만의 재회였다. 오경화는 2018년 서울독립영화제 배우프로젝트 수상자였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연기를 하는지, 정말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물어봐요. 만약 아니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만두려고요.”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올해, 오경화는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말이야 바른 말이지>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선보이며 극장을 찾았다. 여전히 연기하고 있다는 것은 오경화가 아직 자신에게 ‘아니’라고 답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처럼 변함없는 얼굴을 간직한 오경화에게 그간 밀린 이야기를 청해 들었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나.
우리가 2018년에 만났지? 홍경 배우랑 같이 인터뷰했던 기억이 난다.
두 배우 모두 수상 이후 승승장구했다.
홍경 배우가 훌륭하지. 오경화는 아직 좀 더 해야 한다. (웃음) 배우프로젝트에 좋은 배우가 많이 참여하는 것 같다. 재작년에 수상한 노재원 배우의 독백 영상을 찾아봤다. 그분 영상이 배우들 사이에서 유명했거든. 정말 잘하더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연기였다.
시작점에 선 모습을 본 적이 있어 작품에서 오경화 배우를 발견하면 괜히 친밀감을 느꼈다. 지금도 동창 만나는 기분이다.
그런 거 좋다. 실은 이전에 인터뷰하다가 소외감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 홍경 배우가 PTA 좋아한다고 말하자 기자랑 죽이 맞아서 한참 얘기하더라. 난 당시 PTA가 폴 토마스 앤더슨이라는 것도, 그 감독이 누구인지도 몰랐거든. 무슨 말인가 싶어서 둘을 지켜보기만 했다.
오경화 배우도 샐리 호킨스와 장영남을 좋아한다며 신나게 말을 잇던 모습이 떠오르는데.
여전히 좋아한다. (웃음)
이번 달엔 <믿을 수 있는 사람> 개봉뿐만 아니라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tvN) 방영도 예정돼 있다. 주인공 목하(박은빈)의 단짝 친구 문영주 역을 맡는다고. 촬영은 전부 마쳤나.
어제가 마지막 촬영이었다. 한동안 안 바쁘다가 근래 좀 정신없이 지냈다. 평소 일이 없는 시간을 그리 힘들어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서 잘 쉬는 편이다.
쉬는 루틴이라면?
신진 작가의 미술 전시회를 자주 간다. 주 1회 정도. 재미있는 데다 대부분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다. 한 군데만 가는 것이 아니라 동네를 쭉 돈다. 예를 들어 종로에 가면 국립현대미술관부터 주변에 위치한 국제갤러리, 학고재, 갤러리 애프터눈 등까지 들르는 거다. 그쪽 라인이 진짜 끝내준다. 하루만 그렇게 돌면 진이 다 빠진다. 비슷한 방식으로 양재, 홍대, 성수, 북촌, 서촌 등 서울 이곳저곳을 탐방한다.

어릴 적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나.
그랬나 보다. 중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으로 미술을 했는데 선 그리다가 끝났다. 힘 빼고 일자로 싹싹, 그거 생각보다 어렵다. 원뿔 도형 같은 거 보고 그리면서 명암 넣는 법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신진 작가의 작품을 보러 다니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림 보는 취향과 영화 보는 취향이 똑같다. 새로움과 독특함을 간직한 동시에 소통이 가능한 작품들. 대개 신진 작가라고 하면 젊음과 열정을 앞세워 자기 이야기만 할 거라고 짐작한다. 근데 의외로 관객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작가들이 많다. 난 그림 하나를 10분 가까이 본다. 한 작품에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기까지 오래 걸린다. 충분히 소통하면서 감정을 주고받고 싶거든. 전시회장에서 운 적도 여러 번이다. 하루는 그림 앞에서 눈물을 닦는데 큐레이터가 다가와서 말하더라. “울고 가시는 분들 많아요. 괜찮아요.”
가장 많이 운 전시는 뭐였나.
최근에 이한나 작가의 개인전 <빛을 품은 어둠>에 갔다. 토끼, 오리, 강아지 등 아주 귀여운 캐릭터들이 나오는 그림이었다. 내가 보기엔 그런 캐릭터들이 어떤 상태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뭘 좋아하는지 작가가 그림 속에 표현해 놓은 것 같다. 동물들이 따뜻한 밤톨 안에 들어가기도 하고 함께 나무를 심기도 한다. 여담인데 내가 소나무를 좋아한다. 윤동주문학관 위에 근사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오래된 나무였는데 거칠게 튀어나온 부분 없이 몸통은 거의 민짜였다. 그 나무에 푹 빠져서 종종 만나러 갔다. 어떤 사연인지 몸통이 중간에 크게 꺾여 있어서 처음에는 나무가 아파 보였다. 근데 그 꺾인 부분에 등을 기댔더니 나무랑 한 몸처럼 딱 포개지더라. 나한테 소파가 되어준 거다. 그곳이 좀 춥다. 바람이 불어서 한기가 느껴진다 싶으면 나무를 뒤에서 껴안았다.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혼자서 그 나무를 ‘소나무 아빠’라고 부르며 아꼈다. 근데 어느 날 가서 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더라.
전시회에서 ‘소나무 아빠’가 떠올랐나 보다.
작가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그림들이 한 편의 동화처럼 연결성을 갖고 이어진다. 토끼였나, 그림 속 어떤 친구가 좋아하던 나무를 갑자기 잃어버린다. 걔가 슬퍼하자 다른 동물이 와서 다독여 준다. 너무 슬퍼하지 말고 새로운 친구를 만들자고. 둘이 꽃을 심고 꽃밭을 가꾸는 모습을 보는데 울 수밖에 없더라. ‘소나무 아빠’가 사라진 직후였거든. 최근에 북악산에서 두 번째 소나무 친구를 찾았다. 거기 소나무 군락지가 있거든. 소나무가 엄청 많은데 이번에는 ‘소나무 엄마’를 만났다.
아빠와는 느낌이 어떻게 다른가.
일단 배꼽이 있다. 분명히 하나의 나무인데 중간에 몸통이 갈라졌다가 다시 만난다. 그 자리에 배꼽이 생겼다. 나도 우리 엄마 배꼽에서 나왔잖나. 나무를 보는데 엄마 같더라. 한 번씩 나무를 끌어안고 온다. 어떻게 보면 그곳이 내 작은 아지트인 셈이다.
전시회 나들이만큼 산책도 자주 했네. 상경해서 연기 시작한 지 5년 차에 배우프로젝트로 만났고 이후 또다시 5년이 흘렀다. 오경화가 연기 주변을 맴돌며 싸우고 사랑한 지도 10년쯤 됐다는 소리다.
실감 안 난다. 그냥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몇 년이나 됐지?’ 하면서 숫자를 세진 않는데, ‘어쩌다 이 바닥에서 이만큼 오래 머물게 됐나?’ 궁금하긴 하다. 전공도 아닌데 무작정 시작해서 여태 연기만 파고 있으니까. 난 계획을 세우는 타입이 아니다. 계획한 바를 이루려고 살면 재미가 없을 것 같다. 현재가 아닌 미래를 사는 느낌? 사기가 떨어지지 않겠나. 지금 하고 싶은 일은 정작 멀리하게 될 듯하고. 하루 일정은 생각하지만 10년, 5년 단위로 장기 계획을 세우지는 않는다.
5년 전에도 똑같이 말했다. 계획이나 목표 같은 건 너무 거창하게 들린다고.
그때 걔도 그랬다고?
대신 자신에게 계속 묻는다고 했다. ‘연기 진짜 하고 싶어?’ 아니라는 답이 나오면 관두겠다면서 연기를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일”로 정의했다.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정직하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눈물 난다. 인터뷰 멈추고 사진 먼저 찍어야 할 것 같은데. (웃음)
‘그때 걔’ 좀 멋지지? 지난 5년간 그 질문을 혼자 거듭했을 텐데.
오프라 윈프리가 하루 세 번 감사 일기를 쓴다고 해서 그걸 따라 한지 3년쯤 됐다. 신기하게도 바로 어제 썼던 일기가 그런 내용이었다. 나한테 물어봤다. ‘네가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까? 주연을 한다고 행복할까? 너는 무엇에서 진정한 행복과 편안함을 느낄까?’ 연기가 즐겁지 않은 이상 돈, 명예, 인기 같은 것들 모두 나와는 상관없더라. 연기하는 기쁨 외에 다른 것이 나를 이 길로 이끄는 주된 원동력이 된다면 곧장 무너질 것 같다. 흔히 배우의 궁극적 목표를 한 가지로 말하지 않나.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인기를 얻고. 다들 정상을 바라보며 산에 올라가는 것 같다. 각자 방법은 다른데 방향은 같은 느낌? 애써 정상을 찍은 다음엔 거기서 안 내려오려고 또 애쓰고. 근데 난 외부적 보상에 별로 끌리지 않는다. ‘나도 남들처럼 돈 많이 벌고 싶어!’ 생각하다가도 막상 호흡이 차분해지면 ‘근데 부자 되면 뭐?’ 자문한다. 돈은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지 본질이 아니니까.
2018년 이후로는 드라마 활동에 집중했다. <하이에나>(SBS, 2020)에서 배우 김혜수와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호평받았고, <보건교사 안은영>(넷플릭스, 2020) <링크: 먹고 사랑하라, 죽이게>(tvN, 2022)에도 출연했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면서 자연스레 ‘프로다움’을 고민했을 듯한데.
마침 얼마 전에 친한 언니와 그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난 직업으로 요약되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다. 물론 현장에서 프로다움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 선배들은 체력 안배에 훨씬 능숙하고, 나무로서 제 몫을 다하는 동시에 숲을 볼 줄 안다. 그런 여유와 시야를 배우고 싶지만, 배우라는 직업에 날 가두고 싶진 않다. 배우 세계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나로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이길 원한다. 연기하고, 그림을 구경하고, 목공을 배우는 나. 그 모든 나로서 내 세계를 구축하고 싶다.
‘연기하는 나’를 유일한 정체성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다짐 같다.
소나무가 내뻗은 가지 중 하나, 거기에 매달린 솔방울 중 하나. ‘연기하는 나’는 그렇게 나를 이루는 여러 요소 중 하나다. 더 멋진 가지가 되려고, 더 알찬 솔방울을 만들려고 노력할 뿐이다.
담담하게 말하지만 돌이켜보면 최근 몇 년간 만났던 작품보다 만나지 못했던 작품이 훨씬 많을 거다. 계속 오디션을 보는 과정에서 아쉬운 결과도 여러 차례 마주했을 텐데 마음은 어땠나.
괜찮을 리가 있나. ‘이불킥’ 엄청나게 했다. 초반엔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서 동료들에게 많이 물어봤다. “넌 기분이 어때? 어떻게 받아들여?”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편안해지더라. 냇가에 서서 물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내 몫이 아닌 작품은 흘러가도록 둘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래도 유난히 마음에 들어왔던 경우, ‘잘 가’하면서 손 흔드는 기분으로 뒷모습을 오래 쳐다보긴 한다. 예전에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한결 나아졌다. 떠나간 것을 잡지 않기. 현재만 살기.
앞선 이야기와 이어진다. 미래를 계획하지도, 과거에 연연하지도 않는 삶. 현재에 충실하고 싶다는 건 소박하게 들리지만 사실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중용을 이루고 싶다. 딱 중간을 지키는 것.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명상하고 왔다. (웃음)
올해 개봉한 작품이 두 편이다. 옴니버스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진정성 실천편>에 출연했다. 최하나 감독 특유의 코미디를 맛깔나게 소화하더라.
드라마 <하이에나>(SBS, 2020) 촬영하던 시기에 감독님 전작 <애비규환>(2020) 오디션을 봤다. 오디션에는 떨어졌지만 그 후 감독님과 인연이 이어졌다. 알고 보니 동갑에, 사는 동네마저 가깝더라. <하이에나> 촬영 끝날 무렵에 감독님도 <애비규환>을 마무리했다. 여유가 생겼으니 한번 만나자고 했고 북한산 아래에 있는 빵집을 약속 장소로 정했다. 당시 둘 다 은평구에 살았거든. 빵집에서 긴 대화를 나눴는데 또래여서인지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이후 <말이야 바른 말이지> 프로젝트를 시작할 무렵, 감독님이 먼저 연락을 줬다. 시나리오 읽자마자 너무 하고 싶었다. 풍자적인 작품이다 보니 감독님은 배우 입장에서 조금 불편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근데 내겐 딱히 거리낄 만한 이유가 없었고, 무엇보다 글이 재미있어서 잘하고 싶었다.
<진정성 실천편>의 덕윤은 엉뚱하면서도 진지하고, 우물쭈물하지만 은근히 할 말 다 하는 인물이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오경화 배우를 염두에 뒀을 것 같던데.
감독님께 들은 바는 없지만 덕윤은 내가 봐도 나랑 좀 닮았다. 나였던 것 같다. (웃음) 현장에 에너지가 넘쳤다. (신)사랑 언니도 진짜 팀장 같고, 누구보다 강아지 두목이 연기를 잘했다.

꾸준히 길을 닦아 나가는 모습이 단단해 보인다. 다만, 영화에서든 드라마에서든 ‘주인공 친구’라고 부르는 역할을 연달아 맡으면서 아쉬움과 부담 모두 쌓이지 않을까 싶다.
고향 친구 둘과 친하게 지낸다. 한 명은 음악하고, 다른 한 명은 단편영화를 연출한다. 어떻게 또 이런 구성으로 모였나 싶지. 우리 셋이 영화 하나 만들자고 종종 얘기한다. 아무튼 그 친구들 앞에서는 속마음을 편하게 털어놓는 편인데, 딱 한 번 말한 적이 있다. 나도 주연을 맡아보고 싶다고. 내가 스토리 라인이 되는 경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긴 호흡으로 전해보는 경험. 그걸 바라는 것 같다. 주인공 친구의 경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주인공의 메시지를 뒷받침해야 한다. 주인공 친구 역이 진부하다거나 싫다는 뜻은 아니다. 들여다보면 그들도 각각 다르거든. 서로 다른 정체성과 특징을 지닌 인물이기에 반복적으로 연기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작품의 주연으로서 모든 메시지를 아우르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은 당연히 있다. 내가 누군가의 친구나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친구와 가족이 나오는 영화라면 어떨까. 어떤 캐릭터가 나라는 존재의 외면과 내면을 만나서 새로 태어나게 될까. 그 캐릭터는 어떤 이야기를 펼치며, 그 메시지는 동시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
기다리는 마음이 있구나.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독립영화를 많이 하고 싶다. 단편도 좋고 장편도 좋다. 내가 주연이라면 어떤 장르일지도 궁금하다. 코미디가 아닐 수도 있잖나.
의외로 스릴러? 되게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무서운 짓을 벌이는 모습을 상상했다. (웃음)
스릴러 좋지. 같은 맥락에서 로맨스도 괜찮을 것 같다. 언젠가 때가 오겠지. 이러나저러나 작품을 만나는 건 결국 흐름에 맡겨야 하는 일이니까.
한편으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보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주인공 친구’가 아닌 우정을 연기하는 일에 관해 묻고 싶더라. 한영에게 정미는 긴 시간을 함께한 단짝이자 속내를 내보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 속에서 오경화는 단지 한영의 친구가 아니라, 한영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대면하는 인물을 만들어 낸다.
감독님이 추구하고 원했던 그림이 그거다. 대부분 이 작품을 한영에 관한 이야기라고 받아들이겠지만, 감독님은 한영, 정미, 미선(이노아), 리샤오(박세현) 등 모든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면 좋겠다고 재차 강조하셨다.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어느 날엔 한영이만 보이는데, 또 다음 날엔 리샤오만 보인다. 가장 최근에 봤을 때는 미선이만 보여서 노아 언니에게 연락했다. “오늘은 신기하게 언니만 보이더라.” 감독님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 역시 도구화하거나 헛되게 소비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시나리오 처음 읽을 때부터 마음이 갔다.
어떤 점이 눈에 들어왔나.
당시 소수자에게 관심이 많았다. 정확히 말하면 소수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과연 누구인지, 왜 그들을 소수자라고 부르는지. 소속사에도 몇 번 말했다. 관련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난다면 꼭 해보고 싶다고. 밑바탕에 ‘사실 우리는 다 똑같잖아’라는 생각이 있던 것 같다. 다수라고 불리는 사람이나 소수라고 불리는 사람이나 내가 느끼기엔 다 같은 사람이거든. 근데 그 안에서 여러 기준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자꾸 나눈다. 그래야 파악하기 쉬우니까. 범주화를 통해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고, 혹은 어떤 일을 빨리빨리 처리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근데 난 이해하기 어렵더라. 사람마다 DNA가 다르듯 차이는 자연스럽게 발생하지 않나. 노약자가 처음부터 노약자는 아니다. 나이 들수록 세포가 노화되고 언젠가 젊은이도 노인이 된다. 너와 내가 다른 것처럼 우리는 모두 똑같이 다르다. 누군가를 소수자라고 칭하며 선을 긋는 대신에 사회가 폭넓은 시선으로 다뤄주면 좋겠는데. 나라고 아무 편견 없이 살아온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게 다 무의미하구나, 편견에서 벗어나야겠구나. 아르바이트하면서 조선족 이모들을 여럿 만났다. 으레 그들을 돈만 좇는 사람처럼 여기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각자 사정이 다르더라. 이모 중엔 전문직에 종사했을 정도로 영리하고 유능한 사람도 많았다. 탈북민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런 생각을 거듭하던 터라 <믿을 수 있는 사람>에 굉장히 끌렸다.
곽은미 감독은 시나리오에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은 부분까지 배우가 스스로 채우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고 하더라. 탈북민과 요양보호사에 관해 조사하며 정미의 전사를 써 내려갔다던데.
정미는 뜨문뜨문 등장하는 인물이기에 스스로 이어 붙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봤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정미가 독일 이주를 결정한 데서 출발했던 것 같다. 함께 독일로 떠날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 외에 다른 이유는 없을까. 문득 정미가 요양보호사로 돌보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징검다리 하나가 놓였다. ‘정미는 북한에서도 할머니랑 같이 살았을 것 같은데?’ 상상해 봤다. 고모가 먼저 한국으로 떠나고, 정미는 할머니와 단둘이 북한에 남는다. 그러다 결국 할머니 없이 정미 혼자 한국까지 왔고. 정미가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 이해됐다. 은연중에 할머니가 떠올라서 노인을 보호하는 일에 끌렸을 것 같더라. 한영이는 역마살이 있는 애니까 가이드를 선택했고. (웃음) 한편으로는 정미가 조심성 많은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영이에게조차 독일 이주에 관해 어중간하게 털어놓지 않거든. 정말로 확실해졌을 때, 제 안에서 정리가 완벽하게 끝났을 때야 계획을 밝힌다. 이 또한 요양보호사라는 직업과 연결되더라. 사람을 돌보는 일엔 조심성이 필요하니까.
정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할머니에게 말을 걸고 밥을 먹이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직업뿐만 아니라 기질과 성향까지 드러내는 장면처럼 보이더라. 배우 스스로 징검다리를 놓은 결과였구나 싶다.
여담이지만 관객이 나보다 인물에 관해 더 많이, 더 정밀하게 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난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거나 뭔가를 의도하지 않았는데, 관객이 빈 곳을 채우며 나름대로 해석해 주는 거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좋아한다. 나한테 GV는 배움터거든. 감독, 모더레이터, 관객 등 여러 사람의 의견과 경험을 들으면서 새로운 시각을 얻는다. 배두나 선배님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점이 3개만 있어도 사람들은 삼각형을 볼 수 있고, 점을 4개 놓으면 사각형이라고 받아들인다고. 연기는 독특한 작업이다. 배우가 점을 찍으면 관객은 형태를 파악한다. 내가 1부터 100까지 일일이 제시하지 않아도 서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여유가 좀 생기더라. 다 만들어야 한다는, 완벽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니까. 내가 하고 싶은 연기와도 맞닿는 것 같다. “난 삼각형이야”라고 말하는 연기보다 “나한테 점이 3개 있는데 한 번 봐봐”라고 말하는 연기가 좋거든.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기.
이번에 찍은 점 중 하나를 소일거리라고 표현해야겠다. 정미는 한영과 만날 때마다 손을 바쁘게 움직인다. 매니큐어를 칠해 준다든지 만둣국을 끓여주는 식이다. 둘의 대화는 조용한 카페에서 마주 보고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늘 일상의 소소한 행위와 체험을 동반하며 이뤄진다.
듣고 보니 그렇다. 소일거리라고 부르는 것들을 실제로 이설 배우랑 촬영 전에 많이 했다. 남산 가서 사진도 찍고, 평양냉면도 먹고, 설이 집에도 놀러 갔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설이가 주연 배우여서 좋았다. 주인공 친구 역할을 소화하려면 주연 배우와 친해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엔 설이가 먼저 다가와 줬거든. 과거의 한영과 정미를 애써 상상하지 않아도, 혼자 친밀감을 만들어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됐던 거다. 설이처럼 능동적인 친구를 만나서 좋았다. 난 수동적이진 않지만 낯을 좀 가린다. 누가 먼저 살짝만 찔러주면 “너무 좋아!”하는 타입. (웃음) 촬영 준비하면서 설이와 영화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그날 정미 마음은 어떨까. 한영은 어떤 옷을 입을까. 둘의 심경 변화는 전체적으로 어떤 흐름을 그릴까. 설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인물에게 가까워졌다.
이별을 앞둔 한영과 정미가 얼싸안고 노래하는 장면에 관해 듣고 싶다.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운 두 인물이 말을 삼키며 마음을 전하는 장면인데, 두 배우가 눈을 마주치는 모습이 뭉클하더라.
거기서도 두 사람 성격이 보인다. 정미는 주변 눈치 안 보고 노래하는데 한영이는 힐끗 주변을 둘러본다. 그날 생각하면 초콜릿 츄러스가 떠오른다. 설이가 먹는 츄러스가 맛있어 보여서 졸랐다. “나 한 입 주라.” 촬영 마치고 나서 혼자 남산에 갔다. 초콜릿 츄러스가 생각나서 일부러 찾아갔던 건데 그때 그 맛이 안 나더라. (웃음) 남산 신을 촬영하던 날엔 처음부터 기분이 묘했다. 테이크도 몇 번 안 갔다. 이불 속에 몸을 넣듯 그냥 장면에, 인물의 마음에 쑥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독일 이주는 정미의 선택이지만, 그걸 백 퍼센트 자의라고 볼 수만은 없다. 서울에서 안정적으로 삶을 꾸릴 수 없으니까, 자유롭게 살기 어려우니까 떠나는 거다. 아쉬움과 미안함이 공존했다. 그 와중에 어떻게든 어려움을 이겨내며 한국에서 살아보고자 하는 한영이의 의지도 느껴지고. 내 입으로 말하긴 민망하지만 그 장면 볼 때마다 운다.
감독은 오경화 배우를 “호기심이 많고 감정이 깊어 상대 배우에게 좋은 에너지를 준다”고 표현했다. 상대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 연기하면서 의식하는 부분인가.
그렇진 않다. 아까 말했듯 낯을 가리는 데다 경계심도 있는 편이다. 내가 설이에게 좋은 에너지를 줬다면, 그건 설이가 마음을 열어준 덕분이다. 설이 앞에선 처음부터 긴장하지 않았다.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있으면 됐다. 설이한테 잘 보일 필요도, 다른 모습을 꾸며낼 이유도 없었다. 얼마 전에 설이에게 말했다. “너는 날 시소 중간에 있게 해. 그래서 네가 좋아.”
나를 붕 뜨게 하지도, 가라앉게 하지도 않는 사람. 내가 나를 유지하게끔 도와주는 사람. 그런 이와 호흡을 맞췄다니 다행이다.
귀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난 선망의 대상 같은 건 싫다. 미쳐버릴 정도로 좋아하는 감정은 솔직히 불안하거든. 바라는 것이 많으니 더 크게 실망하고. 친구 사이에서도 적당한 거리를 지키고 싶다. 역시 중용이 중요하다. (웃음)
그러면 누군가와 함께 연기한다는 것은 오경화에게 어떤 의미인가. 무얼 고려하고 또 기대하는 작업인지.
오늘 좀 신기하다. 내가 최근 고민하는 주제에 관해 질문이 여러 번 나왔거든. 진짜 이틀 전에 생각한 건데, 한 단어로 표현하면 믿음이다. 운 좋게 설이 같은 친구를 만나서 연기하든, 낯선 환경에 들어가서 처음 본 사람과 연기하든 결국 믿어야 한다. 나를 향한 믿음과 상대를 향한 믿음 둘 다 필요한데, 상대를 믿으려면 일단 나를 의심해선 안 된다. 근데 아직 그 믿음을 피부로 느끼진 못한 것 같다. 머리로는 대강 알겠는데 체화하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차차 배워나가야 할 부분이다. 어쩌면 믿음은 그 대상에게 마음이 가는 상태 자체를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실수하거나 기대에 못 미쳤을 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 같기도 하고.
용기와 포용력을 포함하는 자세처럼 들린다. 스스로 칭찬해 준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나.
“괜찮아!” 실제로 자주 하는 말이다. 원래 괜찮다는 말을 못 했는데 친한 언니 덕분에 습관을 들였다. 내가 힘들어할 때면 언니가 그렇게 북돋아줬거든. 이제 내가 나에게 말해준다. 이번에 못 해도 다음이 있으니 괜찮다고. 하다못해 거울 보면서도 말한다. “야, 너 오늘 얼굴 좀 괜찮다!” (웃음) 그게 중용이다. 예쁘다는 말은 나한테 극이거든.
말 그대로 중용의 시간이네. (웃음) 5년 전에 오경화는 자신과 대화를 열심히 나누는 사람처럼 보였고, 지금도 여전하구나 싶다. 연기하는 이유, 계속 연기하고 싶은 이유를 2023년 버전으로 말해 본다면.
잠깐 생각해도 되나. 나한테 정말로 물어보고 싶다.
천천히 말해도 괜찮다.
연기는 간접적이라서 좋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한 번 걸러서 보여준다. 연기를 막 시작했을 무렵, 난 행복을 주고 싶어서 이 일을 한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행복은 직접적이지 않다. 간접적 행복이다. 나는 나만 행복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같이 행복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테레사 수녀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근데 내 생각엔 그분도 타인에게 베풀면서 스스로 행복했을 것 같거든. 내가 행복하게 연기함으로써, 그 행복을 관객과 시청자가 간접적으로 느낌으로써 다 같이 행복해지면 좋겠다. 그런 간접적인 흐름이 마음에 든다.
나와 타인 사이에 얇은 막 하나를 두고 행복을 주고받는 듯하다.
내가 낯을 가리지 않나. 대놓고 표현하기엔 낯간지럽다. 미술을 좋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난 그림을 통해 작가의 정서를 간접적으로 느낀다.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연기를 선택한 건 장영남 선배님 덕분이다. 선배님의 연기를 봤을 때 투명한 비눗방울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만약 선배님이 그림을 그렸거나 노래를 불렀다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을지 또 모를 일이다. (웃음) 어쨌거나 내게 연기는 감정과 생각을 전하는 도구이고, 이를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연기의 가장 큰 매력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구나.
많다고? 난 많고 싶은 쪽인데.
이미 많은 것처럼 보이는데. 너와 나, 우리 둘만의 사랑이 아니라 동심원처럼 퍼져 나가는 사랑을 꿈꾸지 않나.
그러길 원한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방향을 선택하고 싶다. 나는 ‘위 아더 원’을 믿는 평화주의자거든. 사람 다 거기서 거기인 동시에 각각 특별하다. 우리가 공유하는 보편과 차이를 이해했으면 한다. 지구도 원래 하나 아니었나. 바다는 육지를 가르지 않았고 땅은 이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서로 반대하거나 배척하지 말고 하나로, 그렇게 순리대로 가면 좋겠다.
그러게, 다들 밖을 향해 팔을 좀 벌리고 살면 좋을 텐데.
그런 태도를 지닌 작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나도 거기에 참여하고 싶다. 성소수자가 무지개 깃발을 들고 행진할 때, 광장 한쪽에서는 그들을 반대한다고 소리친다. 그때마다 같이 어울려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소수자도 똑같은 사람인데 왜 거리에 나와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왜 매번 그와 같은 상황에 부딪혀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회가 좀 더 포용력을 발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