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가미 나오코는 데뷔작 <요시노 이발관>(2001)부터 근 20년간 공동체에 관해 이야기한 감독이다. 결핍을 지닌 개인이 더불어 사는 삶이란 어떻게 가능한지 질문하면서, 그는 세상에 존재했으면 하는 최소의 단위와 최후의 보루를 상상한다. 대다수 영화는 필연적으로 현실과 격리된 이상 지대 묘사에 치중하는데, 인적 드문 헬싱키 골목에 일식당을 연 <카모메 식당>(2007) 속 주인공을 따라 출신지와 접점이 전혀 없는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가 하면, <안경>(2007)에서는 조용하고 평온한 일상을 되찾고자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바닷가로 터전을 옮긴다. 오기가미 나오코는 대중에게 익숙하거나 역량이 과대평가된 대도시에서 벗어나 전통적 개념의 마을과 동네를 복원하려 한다. 눈에 보이는 풍경만큼 인물은 느긋하고, 무해하다 싶을 정도로 소소한 에피소드가 드라마를 채운다. 고립이 아닌 고독을 선택한 구성원 덕분에 영화 속 공동체는 일면 풍요를 누리는 듯하지만, 정신적 차원의 함양을 강조하는 방식은 의문을 남긴다. 현실을 회피하며 상처를 보듬으려 하거나, 심지어 어떤 해악도 없는 무균 상태를 꿈꾸는 것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슬로우’와 ‘미니멀’이라는 표어를 앞세워 생활 리듬 및 규모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는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2017)를 기점으로 포용력의 실체를 고민하기에 이른다. 다소 안온한 낙관에 머무는 듯했던 감독은 전작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을 중앙에 불러냈다. 젠더 차별, 학교 폭력, 돌봄 노동 등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영화에 끌어들였으며, 이는 개인이 거부하거나 초월하는 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전 작품이 마련한 토대와 사뭇 차이를 보인다. 신작 <강변의 무코리타>는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오기가미 나오코는 이제 삶은 환상으로 메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음과 동행하는 것이며, 육신과 영혼은 서로 맞물려 생의 무게를 지탱한다고 말한다.
강변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출발하지만 영화 분위기는 그리 동화적이지 않다. 누가 봐도 빈털터리인 야마다(마츠야마 켄이치)는 도착하자마자 취직이 예정된 젓갈 공장부터 방문한다.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내려온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당장 먹고살 길이 요원해서, 다른 하나는 자신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기를 바라서. 작업반장은 야마다에게 거처까지 마련해 주며 “누구든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는 법”이라고 다독인다. 이방인을 향한 호의는 오기가미 나오코 영화에 으레 등장하는 것이지만 야마다의 반응은 남다르다. 그는 약점을 들킨 사람처럼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언급했다는 것은 자신을, 자신이 과거에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안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야마다는 작업반장이 소개한 ‘무코리타 연립주택’에 거주하며 집과 공장을 오가는 생활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다. 영화의 서사 구조와 인물 관계는 무코리타 연립주택의 설계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야마다는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벽을 치고 살아간다. 다만, 각자 분리된 공간에 거주한다 해도 이곳은 오며 가며 이웃을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프레임 가득 야마다만 들어오던 집에 사람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무코리타 연립주택은 마을의 축소 모형처럼 변해 간다. 인물들은 제 앞을 가로막은 벽이 무용하게 언제든 옆집으로 건너갈 수 있고, 영화는 그들을 뒤따르며 또 다른 소식과 사연을 연거푸 풀어 놓는다.
카메라는 강과 들판, 단층집이 이루는 수평적 조화에 집중한다. 모든 인물의 삶을 동일선에 놓는 것처럼 단조로운 풍경이 이어지지만, 앞서 말했듯 <강변의 무코리타>는 갈등을 무력화하는 공간에 기대어 평화를 주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곳은 폭우가 내리면 강이 범람하고 집과 텃밭이 무너지는 위태로운 지역이다. 주민들은 파괴를 직감하며 두려움에 몸서리치고, 노숙자와 빈자는 태풍이 휩쓴 자리에서 망연자실하게 멈춰 선다. 현재를 지배하는 불안은 재해와 가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절연했던 아버지의 부고를 접한 야마다, 자식을 잃은 시마다(무로 츠요시)와 남편을 떠나 보낸 미나미(미츠시마 히카리), 아들과 함께 검은 양복을 입고 묘석을 팔러 돌아다니는 미조구치(요시오카 히데타카) 등 무코리타 연립주택 사람들은 죽음과 가깝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위기를 접할 때마다 망자를 떠올리는, 죽음을 껴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에게 공동체란 무엇일까. 야마다는 그를 괴롭히는 질문을 내뱉는다. 내게 과연 행복할 자격이 있는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며 마음 놓고 웃어도 괜찮은가. 영화는 인물들이 피부 아래 숨겨 놓은 누추한 감정을 곱씹어 내린 끝에, 죽음엔 주어지지 않지만 삶에는 존재하는 귀중한 것을 제시한다. 그건 바로 “다시 시작할 기회”다. 재도전을 전제하는 ‘다시’라는 말은 단번에 성공하지 못하는 인간의 취약성을 드러내지만, ‘기회’는 삶을 지속하는 한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선물이자 애써 행복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가리킨다. 야마다를 포함해 인물들은 저마다 죽음을 애도하는 여정에 다다른다. 이는 곁에 없는 자를 그리워하는 일을 넘어서, 그의 삶에 깃든 수많은 기회를 짐작하며 고생했다고 어루만지는 의례가 된다.
영화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미나미가 집안에 간직한 남편의 유골을 꺼내어 만지는 장면이다. 오기가미 나오코는 그간 인물을 무성애적 존재로 그리곤 했다. 공동체의 핵심은 과묵하고 지혜로운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유의 유연한 필치로 인물에게 생동감을 불어 넣으며 유머를 가미하기는 했지만, 육체를 족쇄로 여기거나 육체의 한계와 무관하다는 점에서 인물은 종종 비현실을 자처했다. 주인공 역할에 여성이 아닌 남성을 선택했다는 것도 변화인데, 무엇보다 <강변의 무코리타>는 여성을 성애적 존재로 묘사한다는 면에서 놀라움을 안긴다. 미나미는 남편의 뼈를 쓰다듬고 핥는다. 바닥에 누워 제 몸 이곳저곳 뼈를 갖다 대며 문지르는 행위는 에로틱하면서도 비감을 자아낸다. 영화는 구체적 표현을 삼가며 모호한 구석을 남겨 놓지만, 그 순간 뼈는 분명히 피와 살을 지닌 육신으로 치환된다. “인간은 동물이었지” 자각할 때마다 혐오와 공포를 느낀다고 고백한 미나미는 그렇게 남편을 애무하고 남편과 섹스한다. 여기엔 생사가 밀착된 삶의 모습이 노출될 뿐만 아니라, 감독이 지금껏 들여다볼 기회를 주지 않던 정념이 짙게 자리 잡는다. <강변의 무코리타>는 행복과 온정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전하는 동시에, 외로움과 갈망 역시 인생에서 떼어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강변의 무코리타 川っぺりムコリッタ (Riverside Mukolitta)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마츠야마 켄이치, 무로 츠요시, 미츠시마 히카리 수입 엔케이컨텐츠 배급 디스테이션 제작연도 2022년 상영시간 120분 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 2023년 8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