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코드는 핑크, <퀴어 마이 프렌즈> 포스터를 채운 키 컬러다. 예쁘다고 칭찬했더니 강사라 피디가 넉살 좋게 속셈을 밝힌다. “저희도 <바비> 인기를 한번 따라가 보려고요” 주인공 송강원은 옆에서 웃음을 터뜨리며 거든다. “어떻게든 비비려고!” 여름을 맞이한 극장은 어느 때보다 활기차다. 연이어 개봉 소식을 알리는 대작들을 지켜보면서 서아현 감독은 슬며시 불안해진다. 세상에 내놓고 보니 우리 영화는 망망대해 속 조각배 같은 모습이어서다. 하지만 셋은 지금껏 그래 왔듯 서로 붙잡으며 무게 중심을 맞춘다. 따져보면 뭐 하나 딱 맞는 부분이 없는데 뭉치면 이상하게 기운이 솟는다. 같은 핑크라고 해도 옷감 재질과 채도는 각양각색인 것처럼 대화도 인디핑크에서 핫핑크까지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러한 다름과 파고가 <퀴어 마이 프렌즈>를 지탱하는 엔진이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장녀로 자란 아현에게 강원은 별난 친구다. 커밍아웃과 미군 입대 등 그가 내린 결정은 아현의 세계를 부수고 재건하길 반복하며, 둘은 조금씩 관계의 테두리를 넓혀 나간다. 강원과 아현이 서로 이해할 수 없어 휘청대면 사라가 길잡이 역할을 맡는다. 결국 영화는 확실하고 완벽한 행복이란 없다는, 인생은 원래 좀 시시하고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다. 그렇기에 이 우정의 삼각형은 신기하다. 하필이면 너를 만나서 내가 변하고,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는데 용감해지기로 한다. 혼자 사는 천국보다 함께 마주한 지옥을 긍정하겠다는 셋이 부러워서 한 자리에 초대했다.
엔딩에서 강원은 미국으로 다시 떠난다. 현재는 한국에 거주 중인 듯한데 그간 어떻게 지냈나.
송강원_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멘붕’인 상태로 미국에 갔다. 혹시나 잘못돼서 귀국하게 되면 비자 문제로 인해 복잡해지는 상황이었다. 친구들과 제대로 포옹도 못 나누고 헤어졌다. 그러다 2021년 말에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고 귀국했다. 한국에 머물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다행히 미군 부대 내에 일자리를 구했다. 모두 기적 같다. 한국에서 살 수 있게 된 것도, 영화를 개봉하는 것도.
서아현_ 극장에서 마스크 벗고 앉아 있는 관객을 보면 신기하다. 진짜 일상으로 돌아왔구나 싶다.
송강원_ 역대급 악몽에서 깬 느낌이지.
개봉 준비는 언제부터 했나.
서아현_ 작년부터 배급사랑 논의했는데 연말에 내가 크게 아팠다. 올해 상반기까지 항암 치료를 받느라 개봉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하반기에 이렇게 큰 영화들이 연달아 개봉할 줄 몰랐다. 체급이 전혀 다르긴 한데 내심 불안하다. 우리 영화가 개봉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것 같고. (웃음)
컨디션은 어떤가.
서아현_ 항암은 6차까지 했고 방사선 치료도 곧 끝난다. 이후 추적 관찰이 남아 있다. 지금은 매일 병원에 가지만 8월 말부터는 3개월 단위로 진료받을 것 같다. 투병 사실을 감추려는 마음은 없다. 다만, 관객이 영화에 담긴 몇 년 전 우리 모습과 현재가 크게 다르다고 느끼면 당황하지 않을까 걱정스럽긴 하다.
강원은 속앓이했겠다. 어머니와 친구까지 가까운 사람이 연달아 아팠으니.
송강원_ 그래도 요즘에는 바랄 게 없다. 어머니도 많이 좋아지셨고 아현 감독도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힘든 시간을 통과했을 테지만 잘 치료받고 있으니 감사할 뿐이다.
감독과 강원뿐만 아니라 강사라 피디 또한 영화에 꾸준히 등장한다. 단지 한 작품의 제작진이라기보다는 긴 시간 유대 관계를 맺은 삼총사처럼 보인다. 영화에 결합한 과정을 들려준다면.
강사라_ 아현 감독이 강원 오빠를 찍어보겠다고 했을 때, 나도 당연히 함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강원 오빠는 내 세계관에도 지진을 일으킨 사람이었거든. 아현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오빠 덕분에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받아 봤다. 아현이 촬영한 소스들이 외장하드에만 남지 않으려면 피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자연스레 촬영을 도우면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주최하는 ‘글로벌 피칭 아카데미(GPA)’ 모집 공고를 봤다. 일종의 영화 제작 워크숍인데 아현에게 지원을 제안했다. 이대로 가면 영화를 완성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날 거라는 예감이 들었거든. 감독의 등을 떠밀어야 했던 순간이다.


피디 입장에서는 선수를 경기에 처음 내보낸 기분이겠다. 영화에 관한 객관적 평가를 들어보니 어땠나.
강사라_ 우리는 단순하게 친구 이야기라고 봤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의미를 찾아내며 이야기 폭을 넓혀주더라. <퀴어 마이 프렌즈>에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오희정 피디를 그곳에서 멘토로 만났다. 피드백을 들으면서 ‘이거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사적 다큐멘터리라고 할지라도 제작비 등 현실적 조건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완성도를 고려한 적정 예산 규모를 파악하고 나니 영화를 제대로 케어할 인력이 필요하구나 싶더라. 얼마 후 오희정 피디에게 영화 제작사 ‘시소픽쳐스’ 영입을 제안받았다. 오 피디라면 우리 영화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거라고 믿었고, 시소픽쳐스에서 이 작품을 같이 진행해 보기로 했다. 입사하고 나니 더는 물러설 곳이 없더라. 돌이킬 수 없구나. 우리 이거 무조건 만들어야 하는구나. (웃음)
서로 얽히면서 판을 키워 나갔다. 제작 기간이 무려 7년에 달하는데 도망치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
강사라_ 강원 오빠가 다시 미국으로 떠난 후에 아현이 묻더라. “혹시 강원이 나한테서 도망가고 싶어서 출국을 서두른 걸까?”
서아현_ 촬영하는 내내 사라 피디랑 ‘카메라가 강원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거든. 강원이 떠나기 전에 “아현아, 감독 아현이 말고 친구 아현이 빨리 돌려줘”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강원뿐만 아니라 영화에 나오는 모든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다. 20대야 그렇다 쳐도 30대가 되면 한자리에 모이는 것만도 일 아닌가. 각자 사는 곳도 다르고 바쁘니까 겨우 시간 내서 만난다. 근데 내가 거기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다들 얼마나 불편하겠나. 촬영하면서 죄책감이 쌓여 갔다. 내색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괜히 혼자 부담을 느꼈던 거다. 당시 강원은 거의 열흘 만에 살던 집을 처분하고 급히 출국했다. 다들 놀라며 마음 아파했고, 나 또한 오빠를 보내고 싶지 않은 복잡한 심경이었던 것 같다.
송강원_ 내 딴에는 아현을 걱정해서 했던 말이다. 친구들이 불편했을 거라고 하지만, 그 속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어야 하는 얘는 또 어땠겠나. 나이는 서른을 넘어가는데 영화는 당장 완성될 기미가 안 보이고. 그러니까 얘를 보면, 얘가 애쓰는 모습을 보면 내가 힘든 거다. 아현이나 나나 편안하지 못했던 시기다. 우리가 좀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서아현_ 결국 영화를 빨리 완성하라는 말이지.
송강원_ 그만둘 애가 아니라는 걸 알거든. 중간에 몇 번이나 멈추라고 했다. “아현아, 지금이야!” (웃음) 근데 끄떡없더라. 오히려 판은 점점 커지고, 아현이 제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 넣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강사라_ 한 번은 아현이 너무 지친 나머지 오늘 한강에 갈까 생각했다고 하더라. 일부러 더 세게 말했다. “한강 갈 때 외장하드 꼭 챙겨!” 촬영본이 남아 있으면 결국 우리가 편집해서 영화를 완성하지 않겠냐고, 그러니 아무 흔적도 남기지 말라고 농담했다. (웃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연출자는 미안함과 책임감을, 출연자는 긴장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다만, 처음에는 뚜렷한 기획이나 구성안 없이 시작했던 것처럼 보인다. 당시 촬영본은 ‘강원의 우당탕 브이로그’ 같은 느낌이고, 감독은 관찰자로서 일정한 거리를 두며 화면 밖에 머무른다.
서아현_ 그 무렵에 만든 피칭 트레일러 보면 깜짝 놀랄 거다. ‘내 친구 강원이를 소개합니다!’ 외치면서 시작하는데 20대 특유의 혈기 왕성함이 느껴진다. 말한 대로 처음엔 카메라 들고 강원을 쫓아다니기만 하면 다큐가 만들어지는 줄 알았다. 시간이 흐른 후, 피디들이 새로운 방향을 제안했다. 강원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감독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면 맥락과 의미가 훨씬 풍성해질 거라고 하더라. 촬영 시작하고 이미 4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영화가 더 좋아지는 방향이라고 하니 수락하긴 했는데 실은 ‘나를 찍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강사라_ 촬영 초반에 친구들이 아현이에게 묻더라. “너 강원 오빠 좋아하는 거야?”
누가 봐도 팬심이거든. 영화 전반부에 걸쳐 감독은 강원을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칭하며 애정과 동경을 표현한다.
강사라_ 틀을 깨고 뛰쳐나가는 강원 특유의 에너지를 아현이 무척 좋아했다. 본인이 못하는 일을 강원은 한다고 여겼고, 강원을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그러한 매력이 담길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GPA에서 만난 멘토가 아현에게 묻더라. “결국 강원을 통해 네 삶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 아니야?” 아현의 출연 여부조차 결정하지 않았을 시점인데 그렇게 영화의 중요한 축을 지적해 줬다. 덕분에 영화가 담아야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확인했다. 아현에게 강원은 왜 매력적인 인물인가, 둘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서아현_ 하지만 방향성을 변경하는 큰 결정을 내린 다음에도 어려운 과제가 남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캐릭터인지 인지하기가 쉽지 않더라.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피디와 편집자에게 도움을 받았고, 그 무렵부터 촬영감독이 합류해서 나와 우리를 찍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강원뿐만 아니라 나 역시 하나의 캐릭터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를 서서히 깨우쳤다.
촬영을 시작할 당시, 강원 또한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다. 카메라가 익숙해서였을까.
송강원_ 익숙하다기보다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거다. 나 또한 찍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다큐멘터리에 관한 최소한의 개념조차 없었다. 아현과 나에게 대화는 일상이었다. 만나면 늘 길고 깊은 이야기를 나눴고, 이를 바탕으로 연극을 포함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함께했다. 아현은 우리 이야기를 여러 방식으로 기록했기에 영화를 찍겠다고 할 때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번에는 기록 장치가 카메라구나 했을 뿐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건 언제쯤인가. (웃음)
송강원_ 애들이 여기저기서 지원금을 받아 오더라. (웃음) 제작 관련해서 세부 사항은 일부러 알리지 않은 듯하고 중간중간 굵직한 내용만 공유해 줬다. 지원금 받은 후 실제 장비나 대관 장소가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되고 있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특히 오희정 피디가 합류한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강사라_ 긴 시간을 거쳤지만 강원 오빠가 카메라에 불편함을 내색한 적은 거의 없다. 유일하게 불편함을 표현했던 순간이 오빠 아팠던 날이다. 아현도 그날 카메라를 들지 말지 굉장히 고민했다.
서아현_ 감독이자 친구로서 카메라를 들어야 하는데 원체 무디고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하는 성격이다. 언제 친구로서 강원 곁을 지켜야 하는지, 또 언제 감독으로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는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그때마다 사라 피디와 논의했다. 예를 들어 오빠가 뉴욕에서 막 돌아온 시점에는 사라가 먼저 촬영을 미루자고 제안했다. “아현아, 오빠가 지금 힘든 것 같아. 우리 당분간 카메라 없이 친구 관계를 회복하자.” 그러고도 한동안 카메라를 들지 못했다. 가방에 카메라를 넣은 채 오빠 집에 갔지만 못 꺼내고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았다. 근데 오빠가 아팠던 날, 사라 피디에게 전화가 왔다. 힘들어도 오늘 꼭 촬영해야 한다고 하더라. 괴로운 마음에 한 손에는 카메라, 다른 한 손에는 포장 음식을 들고 갔다. 솔직히 문전박대당하지 않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봐봐, 감독도 왔고 친구도 왔어!”라는 느낌으로. (웃음)
강원의 힘든 모습을 보는 것만큼이나 보여주는 일이 괴로웠나 보다. 친구이자 감독이 되는 법을 깨우쳐야 했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나.
서아현_ 당시 촬영감독이 날 붙잡고 말하더라. “누나, 우리 강원이 형 홍보 영상 만드는 거 아니잖아. 이거 다큐멘터리잖아.” 그제야 인정했다. 난 강원이 보란 듯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구나. 오빠의 힘든 모습을 담기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도 싫었다. 근데 촬영감독이 말한 대로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더라. 강원의 좋은 면만 짜깁기하여 영화를 만든다면, 관객이 강원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강사라_ 보란듯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은 아현 감독 자신에게도 향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퀴어 마이 프렌즈>를 일종의 실패담이라고 본다. 실패가 곧 성장을 의미하기도 하고. 근데 감독은 끝까지 누구나 납득할 만한 성장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더라. 강원이 떠난 후 영화를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냐고 묻자, 본인이 뭔가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결국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웃음)
K-장녀의 면모가 여기서 나온다. 어떻게든 책임지고 인정받을 만한 성과를 내기.
강사라_ 아현이 제시한 목표는 운전면허 시험 합격이었다. 다들 속으로 ‘이거 아닌데’ 하면서도 정 원하면 해보라고 했지. 자기가 운전하는 모습을 찍어야 한다고 해서 실제로 촬영 감독과 시험장까지 갔다. 심지어 오늘 면허 따면 다음에 북악스카이웨이 드라이브하는 걸 찍자고 하더라. 일단 시험부터 마치자고 했는데 면허 시험에 떨어졌다. (웃음) 다음 시험 일정 확인하는데 촬영 감독이 한마디 했다. “북악스카이웨이 되게 꼬불꼬불한 거 알지? 내 목숨을 누나에게 걸 수 없다.” 그렇게 돌고 돌아 아현과 강원이 귀엽게 영상 통화를 주고받는 현재 엔딩으로 영화가 완성됐다.
편집자가 셋이라고. 새로운 사람과 작업할 때마다 각각 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나.
서아현_ 제작 기간이 길다 보니 풋티지만 20TB가 넘었다. 혼자서는 작업할 엄두가 안 나더라. 첫 편집자 이진주 씨는 초반 어셈블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줬다. 강원이 수많은 일을 겪는데 어떻게 연대기적으로 이를 구성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결정해야 했다. 진주 씨가 강원의 캐릭터를 잡아주며 영화의 첫 번째 관문을 함께 넘어가 줬다.
강사라_ 감독 입장에선 본인이 나오니 풋티지를 보는 일 자체가 괴로웠을 거다. 같이 볼 수 있는 사람부터 찾았고, 그 과정에서 이진주 편집자를 만났다. 진주 씨는 이번 작업을 통해 편집자가 되기로 결정했다. 현재 내가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다큐멘터리 <양양>(감독 양주연) 편집 작업을 같이 하고 있다.
서아현_ 그다음엔 SJM문화재단, EIDF, 전주국제영화제가 공동 주최하는 에디팅 랩에 참여했다. 촬영과 편집이 맞물리는 시기였는데 그곳에서 멘토로 Stella Van Voorst van Beest라는 네덜란드 편집자를 만났다. 원격으로 3박 4일 멘토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찾아 헤매던 스토리 아크를 발견하게 됐다. 스텔라 감독이 기획안과 풋티지랑 보더니 명쾌하게 말하더라. “강원은 너한테 히어로인 거잖아. 근데 너는 히어로가 무너지는 모습을 봤고. 그러면 히어로와 네가 나란히 성장하는 영화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먼 나라의 편집자가 우리 이야기의 원형을 찾아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놀랐다. 코비드 기간이라 직접 만나서 소통하기는 불가능했지만, 원격으로 충분히 작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1년 가까이 스텔라 감독과 협업하며 이야기 뼈대를 만들어 나갔다.
시기적으로는 2020년 정도 됐겠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편집자는 이연정 감독이다. <사랑의 고고학> (이완민, 2022) <휴가>(이란희, 2020) <한여름의 판타지아>(장건재, 2014) 등 다수 작품에 참여했고, 주로 극영화 편집을 도맡은 작업자다.
서아현_ 스텔라 감독과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일했다. 새로운 편집자를 만나는 것은 스텔라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아무래도 본인은 해외에 있는 데다, 영화가 내레이션을 활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좀 더 섬세하게 흐름을 다듬어 줄 편집자를 만나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
강사라_ 당시 우리 고민도 비슷했다. 사실 편집은 할 만큼 했다고 봤다. 짜임새 있게 정리하긴 했는데, 왠지 모르게 영화가 빛을 잃은 느낌이었다. 스텔라 감독 탓이 아니라 우리가 영화에 너무 익숙해져서다. 계속 화면을 보고 편집하다 보니 가로막히는 지점이 오더라.
빛을 되찾도록 마법 가루를 뿌려줄 사람이 필요했구나. 기승전결을 만들고자 골몰하는 과정에서 벗어나니 뭐가 보이던가.
강사라_ 이연정 감독을 만난 일 자체가 우리에게 크나큰 복이다. 영화가 빛을 잃은 것은 결국 우리가 빛을 잃어서였다. 애정과는 별개로, 제작 7년 차에 접어들자 서로 얼굴 보는 것이 스트레스더라. 만나면 매번 일 얘기하니까. 그만큼 지쳤을 때인데 연정 감독이 회복의 시간을 마련해줬다. 삶과 사람을 대하는 그분의 넉넉한 품 덕분에 우리 관계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본인 어렸을 적이 떠오른다고 하더라. 편집 방향을 바쁘게 제안하기보다는 아현과 날 먹이면서 마음 다독이는 데 힘을 많이 쏟으셨다.
서아현_이미 1년 반 넘게 편집했던 때다. 혼자서 마무리를 시도하긴 했는데 컷이 더 안 좋아졌다. 뭐가 문제인지 알겠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모르겠더라.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좌절감이 극에 달할 무렵, ‘편집실 연정’ 문을 열었다. 이 영화가 담은 우정에는 연정 감독의 가치관이 분명히 녹아들었다고 본다. 내가 영화 말미에 강원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지 않나. 실은 편지를 쓰기 전에 연정 감독을 만났다. 본인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쓴 편지를 내게 읽어줬고, 그 후 나도 강원에게 편지를 쓸 수 있었다. 작업 막바지라서 다들 소진된 상태였는데 운 좋게 연정 감독을 만나서 영화를 무사히 마쳤다.
<포카혼타스>에 나오는 버드나무 할머니 같다. 지혜와 위로가 절실했던 두 친구를 보며 강원은 어땠나.
송강원_ 둘은 내 앞에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아현과 나의 우정이지만 결코 그것을 전부라고 할 수 없다. 사라와 아현, 둘만의 지난한 서사가 또 있거든. 둘이 힘든 시간을 감당하지 못했다면 영화도 갈피를 잡지 못했을 거다. 연정 감독에게 정말 고마웠다. 만나자마자 친구들이 느꼈을 온기가 내게도 전해지더라.
강사라_ 편집실에 소파가 있다. 일하러 가면 컴퓨터 앞이 아니라 그 소파에 앉아서 한참 시간을 보내다 왔다. 연정 감독 말로는 다들 그런다고 하더라. (웃음)
영화에서 생략한 부분에 관해 들어보면 좋겠다. 우선 강원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했다. 미국으로 떠날 만큼 춤과 노래, 연기에 열정을 보였는데 점차 취미의 영역으로 두는 듯한 느낌이더라. 본격적으로 데뷔를 준비한 적은 없나.
송강원_ 뮤지컬 배우가 되고자 미국으로 떠난 것은 아니다. 처음엔 교환 학생으로 갔다. 연기에 관심이 많다 보니 그곳에서도 연극과 수업을 들었다. 욕심이 생겨서 그 학교에 편입했고 3년간 유학 생활을 했다. 매년 미국 대학생 연극 축제에 참여했다. 뉴욕으로 여행 가서 뮤지컬 다섯 개씩 보던 시절이다. 뭔가를 열렬히 좋아하면 주변에서 묻지 않나. 그게 네 꿈이냐고. 배우 되고 싶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삶의 범주에서 배우가 된다는 건 매우 힘든 길이었다. 예를 들어 어머니는 언제나 나를 지지하지만 “배우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라거나 “예술가 집안은 따로 있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연기하는 걸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본인 생각이 그렇다는 건데, 나도 비슷한 걱정을 품게 되더라. 그래도 좋아하니까 원하는 만큼 매진했다. 인생에서 그만큼 불태운 시절이 또 있을까. 다만, 내게 진짜 문제는 군대였다. 미국에서 배우의 길을 걷는다고 해도 일단 신분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 아닌가. 무슨 IT 회사나 바이오 회사에 들어가도 비자가 나올까 말까 한데, 브로드웨이를 꿈꾸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20대 내내 군대가 화두였고 미군 입대라는 가능성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거기에 매달렸다. 일이 착착 진행된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입대까지 1년 가까이 걸렸다. 미국에서 비자 연장하고 한국에서 입대를 연기하면서 줄타기하던 시절이다. 몸도 마음도 무척 고됐는데 어쩔 도리가 없으니 견뎌야 했다.
말만 들어도 힘들다. 그 시간이 지나간 후에도 불안이 완벽하게 해소되지는 않았을 테고.
송강원_ 트라우마처럼 상처가 남았다. 입대 관련해서 서류를 준비했는데 담당관이 그걸 잃어버렸던 일이 있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서류를 다시 만들어야 했고 굉장히 초조했다. 한국에 오는 게 무섭더라. 병역 문제로 잡혀가는 꿈을 자주 꿨다. 몇 년 후 보스턴 공항에 갔는데 별안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공항에서 늘 검사받는 입장에 처하니까 그곳만 가면 우울해지는 거다. 어쨌든 나는 미군 입대를 선택했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입대하고 나서도 계속 노래했다. 부대에 엔터테인먼트 센터가 마련되어 있거든. 피아노 치며 발성 연습하고, 노래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그랬다.
강사라_ 강원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을 늘 찾아내는 사람 같다. 뮤지컬 역시 본인을 표현하는 창구 중 하나였고. 요즘에는 글도 쓰고 팟캐스트도 진행한다.
아현이 어떤 갈림길에 선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 먼저 강원이 독일에서 “요즘 자주 무너지고 운다”는 엽서를 보냈을 때. 이전까지 감독은 강원을 씩씩하고 주도적인, 그래서 나보다 훌륭한 사람으로 여겼다. 속내를 털어놓은 강원에게 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실은 꽤 충격받지 않았을까. 한 달 후면 한국에 돌아올 강원을 만나러 굳이 미국까지 간 이유는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서아현_ 당시 독일에 거주하는 강원과 거의 매일 같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근데 편지를 받고 나선 아무 말도 못했다. 계속 대화하면서도 편지를 받은 적 없는 것처럼 굴었다. 강원이 보낸 편지 같지 않았다. 내 머릿속 강원은 자기 앞가림 잘하는, 내가 깨지 못하는 틀도 깨부수는 용감한 사람이었으니까. 친구가 힘든 줄 몰랐다는 사실에 놀랐고,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너무 달라서 당황했다. 강원이에게 누구보다 좋은 친구가 되겠다는 치기 어린 마음으로 영화를 시작했거든.
앨라이의 첫 번째 단계 아닌가. 아무도 너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할 거라고 다짐하고, 정작 자신이 가장 많이 무너진다. 한편으로는 출연자와의 거리를 처음으로 인지한 초보 감독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아현_ 강원을 쫓아다니기 시작한 시기가 실은 내 암흑기였다. 졸업하고 시도했던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구실로 오빠에게 치대면서 힘든 시간을 견뎠던 것 같다. 나보다 강하다고 여겼던 친구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니 내가 무너질 것 같더라. 두려움이 엄습했다. 돌이켜보면 강원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던 것 같다. 강원이 내 카메라를 꺼린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는데 뉴욕에서 처음 느꼈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과 더불어 강원이 괴로운 이유를 알 수 없어 무서웠다. 뉴욕 촬영에서 “뭐가 제일 힘들었어?”라는 두루뭉술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강원은 이미 커밍아웃했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후 군대 문제도 나름대로 해결했다.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까지 만났다. 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왜 갑자기 독일에서 무너졌는지 그땐 영문을 모르겠더라.


강원이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에서 비롯한 공포는 퀴어문화축제 장면으로 연결된다고 봤다. 무대에 오르기로 했던 강원이 나타나지 않자, 감독은 ‘강원이 포기했다’고 표현한다. 선택이 아닌 포기라는 단어를 썼다는 점에서 감정적 응어리를 짐작할 수 있다. 영화에 넣으려던 ‘해피 엔딩’을 날려서가 아니라, 강원이 끝내 등을 보였다는 사실이 감독에겐 충격이었던 것 같다.
서아현_ 편집하면서 많이 고민했던 장면이다. 피디, 편집자와 대화하면서 내레이션 대본을 여러 차례 고쳤다. 근데 포기라는 단어 외에 무엇으로 이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내가 아는 강원은 이 무대를 안 할 사람이 아니거든. 판타지를 놓지 못한 채 연연하는 나를 발견했다. 결국 내 마음이고 내 방식이다. 강원이 무대에 올라가서 춤을 추면, 사람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받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당시엔 그 기회를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강원이 더 바닥으로 가면 어쩌나 두렵더라. 물론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이 될 거라는 기대도 했다. 춤 연습하는 강원을 보면 거의 태릉선수촌에 와 있는 듯했으니까. 강원은 오래 고민한 끝에 무대에 오르기로 선택했고 열심히 준비했다. 보란 듯이 해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거기에 내 기대를 투영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 또한 보란 듯이 살고 싶었고, 강원이 맞이할 환희의 순간을 찍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여겼다. 이 친구가 무너짐으로써 나도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레이션을 계속 고치다가 어느 순간 좌절을 들여다보게 됐다. 강원이 포기해서 미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 실패한 것만 같아서 불안했던 거다.
강사라_ 친구라는 게 그렇지 않나. 나의 행복이 너의 행복과 연결된 것처럼 불안 또한 마찬가지다. 앞서 뉴욕에 갔던 장면을 언급해서 놀랐다. 당시 뉴욕 촬영하러 가기 전에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피칭에 참여했다. 행사 끝나고 돌아오는데 아현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더라. 강원이 바닥으로 갈까 봐 두렵다면서. 강원에게 편지를 받은 후 힘들어 보이긴 했는데 정확히 어떤 마음인지는 그제야 알았다.
상대가 고립을 자처하면 나 또한 고립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니까. 한편으로 강원이 어떤 말을 참고 있는지 궁금했다. 강원에게 아현과 카메라는 본인의 퀴어 정체성을 자극하는 존재다. 이는 자유로운 대화를 이끄는 동시에, 부담을 얹는 순간도 적지 않았을 듯한데.
송강원_ 오히려 반대다. 아현이 “내가 아는 강원은 이 무대를 안 할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데 동의한다. 나도 내가 그럴 줄 몰랐거든. 하기 싫은 일조차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했다. 처음으로 못한 것이 제대다. 계속 잡고 있을 힘이 없어서 놓아버렸고, 나 또한 실패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정체불명의 어둠이 내 안에 번지는 시절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느낌이었다. 안개 속에 파묻힌 듯해서 미칠 것 같았는데, 다큐멘터리는 그나마 날 선명하게 해주는 작업이었다. 촬영하는 시간에 많이 의지했다. 다만, 안간힘 쓰며 버티던 와중에 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완전히 나가떨어졌다. 기름통이 0을 찍은 것처럼 몸이 멈췄다. 퀴어로 대상화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다. 오히려 나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몰라서 방황할 때, 아현 덕분에 생각할 기회를 얻고 내 언어를 찾아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아현이 그 시절의 나를 살린 것 같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온전히 귀 기울여 들어줬거든.
아현에게도 강원은 새로운 삶을 선사하는 존재다. 특히 미국, 독일, 한국을 오가는 강원을 보며 물리적 거리가 주는 감각을 자연스레 체득했을 텐데, 인물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들려준다면.
서아현_ 강원은 한국을 떠나거나 돌아오기로 하는 과정을 거듭한다. 난 막연하게 떠나기를 원했을 뿐 실천하지는 못했다. 한국 사회에서 쭉 생활하며 익숙해졌던 것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이전까지 내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문제와 마주하게 된 거다. 군대도 그중 하나였다. 모든 남자가 군대에 간다는 건 이상한 일이더라.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상황 자체가 말도 안 되고. 강원이 다시 미국으로 떠난 후, 편집에 집중하던 시기에 변희수 하사의 부고를 접했다. 변 하사는 성전환 수술을 이유로 육군에서 강제 전역됐고, 취소 소송을 진행하다가 결국 2021년 3월 목숨을 끊었다. 나도, 사라 피디도 무척 괴로웠다. 더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으니까. 제 존재를 부정하는 집단에서 그분이 얼마나 노력했을지, 얼마나 좌절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강원은 막판에 떠밀리듯 한국을 떠나야 했다. 한국에 정착할 길을 찾으려 관련 기관을 방문했지만, 한국 군대에서 복무하지 않았으니 이 나라에 살 자격이 없다는 식이었다. ‘지금 내가 속한 사회가 대체 어떤 곳이지?’ 싶더라. 강원이 커밍아웃하지 않았다면 구태여 생각하지 않았을 문제다. 변희수 하사의 이야기를 지나가는 뉴스가 아니라, 나와 내 친구의 일이라고 인지하게 된 것이 내겐 큰 변화다.
송강원_ 나 역시 개인 문제에 집중하느라 사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일에 둔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변희수 하사는 내게도 충격이었다. 신문 사회 면에 실리는 기사가 내 삶 깊숙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그간 홀로 분투하면서 걸러내고 걸러냈던 모든 공포가 현실로 다가온 듯했다. 슬프다는 말로는 전부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실제로 그 시기에 성소수자의 죽음이 연이어 발생했고 정치인의 혐오 발언도 이어졌다.
강사라_ 솔직히 강원이 한국에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송강원_ 트랜스젠더 당사자는 아니지만 총알이 귓가를 스친 느낌이었다. 난 국적을 포기하고 미군에 입대했다. 결과는 그렇지만, 중간에 뭔가 잘못됐다면 그러지 못했을 수도 있다. 모든 성소수자가 나처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한국 군대에 두려움을 느꼈는데, 그것이 전부 마음속에서 뛰쳐나와 일렁이는 듯했다. 여전히 가슴 아프다.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아현의 옥상 장면에 관해서도 얘기하면 좋겠다. 시기별로 챕터를 나눈다기보다 아현이 강원과 영화를 징검다리 삼아서 모르는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가 문득 브레이크를 걸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서아현_ 옥상은 내게 낙이 되어주는 공간이었다. 혼자 커피 마시고 생각 정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나를 촬영하기로 했을 때, 찍을 만한 것이나 있을까 했다. 강원은 드라마틱한 삶을 사는 주인공처럼 보였지만, 나는 딱히 하는 일도 없었거든. 강원 오빠 집에 놀러 가거나 옥상 가서 커피 마시는 게 전부인데 뭘 찍지? 결국 일상을 담는 과정에서 옥상 장면이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편집 감독들이 말하길 옥상은 날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하더라. 가족과 한집에 살지만 그 공동체에 오롯이 흡수되지 못하는 사람. 지하철을 타고 도시를 부유하듯 집에서도 떠돌 수밖에 없는 사람. 옥상은 내게 강원과 함께 겪은 일을 되새기는 공간이고, 관객에게도 어느 정도 정리할 시간을 주는 공간이 된 것 같다. 재밌는 일화가 있다. 사라 피디가 어느 날 집으로 캠핑 의자를 보내주더라.
강사라_ 앉을 곳도 없는데 왜 매번 거기에 올라가겠나. 얘가 답답하면 여기 가는구나 싶었다.
서아현_ 집안에는 혼자 있을 곳이 없으니까. 영화에서 강원과 싸운 뒤 옥상에서 긴 시간을 보낸다. 그때 터덜터덜 끌고 와서 펼쳤던 의자가 사라 선물이다. 덕분에 앉아서 메모하고, 한숨도 쉬고 그랬다. 엔딩을 어떤 장소에서 맺을지 고민하다가 옥상이 떠올랐다. 집이 김포공항 근처라서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이 운 좋게 찍혔다.
영화를 만들면서 셋의 관계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히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이 물리적 거리나 감정적 충돌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가 지속되는 이유 아닐까 싶다.
서아현_ 돌이켜보면 영화를 시작하던 무렵에 우리 관계는 설익은 상태였다. 마음 맞고 속속들이 이해하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7년의 세월을 지나고 나서 보니 아니더라. 난 친구들도 잘 몰랐을뿐더러 심지어 나도 몰랐구나. 그러면서 친구들을 안다고 자신했구나. 그걸 깨닫고 나니 우리 관계를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됐다. 우리는 나란히 달리는 평행선인 것 같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도 하면서 계속 함께 간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이야기를 바라보면서 함께한 시간이 있기에 그러한 감각이 생긴 것 아닌가 싶다.
강사라_ 서로 불안과 기쁨을 포함해 모든 것을 공유하는 시기를 거쳤다. 그만큼 결속력이 강했는데 영화를 완성할 때쯤에는 오히려 붙어 있기가 힘들기도 했다. 연정 감독이 “시간이 더 지나면 떨어져 있어도 연결된 사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라고 하더라.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 못하는데 지금은 훨씬 가깝다고 느낀다.
송강원_ 적절한 거리를 터득하고 난 후에 친구들이 더 잘 보인다. 개인적으로 ‘내 삶은 삶대로 흘러가고 영화는 사이드에 있다’ 전제했는데 완전히 착각이었다. 그럴 수가 없다. 핫독스에서 만난 프로그래머가 우리의 여정을 ‘아티스틱 프로세스’라고 칭했다. 우리 관계는 이 다큐멘터리로 인해 깨질 수도 있었다. 근데 결과적으로 관계는 더 깊어지고 숙성됐다. 다들 삶을 예술화하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 욕구가 있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한 덕분인 것 같다.
강사라_ 나 역시 비슷한 기분을 경험했다. 편집 과정에서 강원을 반복해서 보며 ‘오빠가 이때 이랬구나’ 뒤늦게 알아차린 순간이 있다. 촬영하면서도 몰랐던 지점을 점차 이해해 가는 거다. 요즘 강원 오빠가 모든 행사에 참여하면서 영화를 본다. “이제야 아현이랑 사라가 보여”라고 하더라. 영화를 제작하면서 이 관계가 계속 이어지고 확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우리에겐 소중하고 재밌는 경험이다.
후반부에 강원이 아현의 카메라를 건네받는다. 아현이 촬영하는 이유를 묻자, 강원은 빚 갚는다고 말한다. 여전히 빚을 졌다고 느끼나.
송강원_ 사랑하는 친구들을 아끼고 보살피는 방법이 뭘까. 그걸 고민하던 시기에 나온 말이다. 이제 영화를 보면 감사하다. 우리의 한 시절을 담은 영화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기쁘다. 아현과 사라가 편집하며 느꼈을 기분을 나 역시 느끼고, ‘쟤가 저랬는데 미처 못 봤구나’ 생각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 영화가 아니었다면 내가 공항으로 떠난 후 아현이 그렇게 울었는지도 영영 몰랐겠지. 영화 덕분에 친구의 다양한 모습을 본다. 지금은 친구이자 감독인 아현뿐만 아니라 여성 아현, 청년 아현도 보인다. 그렇게 타인을 조금씩 이해하는 과정이 내겐 무척 유의미하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을 했는데 이걸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야 할까? 그런 생각을 거듭하는 요즘이다.
서아현_ 난 삶에 기대치가 아주 높은 사람이었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마음과 별개로 환상이 컸다. ‘내 삶엔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 벌어질 거야. 난 엄청나게 멋진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야.’ 엔딩을 만들면서 확신을 갖기 어려웠다. 정말 이렇게 끝나도 관객이 받아들일까 걱정했다. 근데 영화를 완성하고 쭉 보니 좋은 결말이구나 싶더라. 강원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를 만드는 경험이 내게 큰 배움이 됐다. 지금은 삶에 그리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산다.
강사라_ 차분하게 말하는데 실은 그간 별의별 일이 많았다. 차기작에 관해서도 이야기 좀 해라.
그 와중에 벌써 다음 작품을 시작했나. 말하는 걸 보니 이번에도 강사라 피디가 함께하는 듯하다.
서아현_ 차기작 질문을 받을 때마다 생각 없다고 했다. 충분히 했는데 뭘 더 하겠나, 그렇게 여겼다. 7년간 쫓아다닐 정도로 좋아하는 강원조차 매일매일 편집하면서 프레임 단위로 보니 질리더라. (웃음) 어떤 인물이든 이슈든 이만큼 애정을 갖고 다룰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영화를 만들면서 처절하게 깨달았다. 난 감독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감독이 되길 원했구나. <퀴어 마이 프렌즈>는 내게 작품이라기보다는 인생의 과업에 가까웠다. 어떻게든 해내야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마무리했고, 향후 작품 계획은 전혀 없었다. 일단 인생의 두 번째 과업인 독립을 실행에 옮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삶에 또 다른 지각 변동이 일어난 셈이었다. 그러자 생각이 바뀌더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또 생긴 거다. 사라 피디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데, 내가 삭발하고 항암 치료하던 시기에도 틈틈이 기록을 남겨줬다. 본래 사라 피디의 사진과 내 글을 엮어서 책을 만들까 했는데, 지금은 영상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
기대된다. 젊고 아픈, 경제적 기반이 불안정한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아현_ 아프면서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요새 강원 오빠도 페미니즘 서적을 열심히 읽는데 얼마 전에는 ‘아픈 여성’에 관련한 책을 선물해 주더라. 덕분에 힘을 얻는다. 일단 내가 통과하는 시간을 차근차근 기록해 보려고 한다.
강사라_ 영화를 통해 결국 살아가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아주 즐겁지 않아도 괜찮다. 일상을 공유하면서 같이 살아내는 법을 배웠고 그렇게 사는 중이다. 이러한 관계와 경험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가 관객을 만나면서 점차 알게 됐다. 그러니까 영화가 관객에게도 힘으로, 친구로 가 닿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