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광장 옆에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합창하는 무리는 지금 포용력을 발휘하며 전도에 힘쓰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는 죄악이기에 나와 마찬가지로 신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윽박지르는 중이다. 그들이 지목하는 당신 중 하나인 강원은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는 듯 입꼬리에 힘을 준다. 축제의 흥분이 가라앉으려는 찰나, 강원 옆에 서 있는 아현이 툭 끼어든다. “오빠, 우리 지옥에서 만나자. 내가 지옥까지 같이 가줄게!” 둘은 그제야 마주 보며 와하하 웃는다. 농담에 실어 보낸 것은 일종의 프러포즈다. 신이 용서하든 말든, 세상이 비난하든 말든 나는 너와 함께할 거라는 약속. 친구의 커밍아웃 스토리로 시작한 <퀴어 마이 프렌즈>의 클라이맥스가 될 만한 순간이다. 한데 영화는 이 장면을 아껴두지 않고 미리 꺼내 보인다. 아현은 카메라를 들고 강원을 쫓아다닌지 얼마 안 돼서 기운 넘치는 앨라이로 변신했지만, 강원에게 지옥이란 먼 훗날 도착하게 될 미래의 장소가 아니어서다. <퀴어 마이 프렌즈>는 우리가 함께라면 지옥도 문제없다고 해맑게 자신하는 대신에, 그러한 낙관이 수시로 무너지는 시간을 기록한다.
아현과 강원에게도 신은 존재한다. 둘은 기독교 대학에서 처음 만났고 연극 동아리 활동을 통해 가까워졌다. 춤과 노래에 관심이 많던 강원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을 믿는 동성애자”라고 SNS에 커밍아웃했다. 고백보다는 선언이라 불러야 할 문장들 앞에서 아현은 무얼 느꼈던 걸까. 강원이 한국으로 돌아온 2015년부터 아현은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 감독은 당시 뚜렷한 목표나 방향을 설정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 무렵에 처음 만든 피칭 트레일러 보면 깜짝 놀랄 거다. ‘내 친구 강원이를 소개합니다!’ 외치면서 시작하는데 20대 특유의 혈기 왕성함이 느껴진다.” 촬영 초기에 기록된 영상은 대체로 장난스럽고 호기심에 가득 차 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장녀로 자란 아현에게 강원은 새로운 사람이다. 감독은 ‘나와 다르게’라는 수식을 붙이며 강원의 열정, 능력, 용기를 치켜세운다. 동시에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내 친구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려는 카메라, 내 친구의 세계를 전부 이해하고 싶은 감독은 그때까지만 해도 한 몸처럼 보인다.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으나 촬영은 무려 7년간 이어졌다. 강원의 삶이 파란만장하게 흘러가서만은 아니다. 물론 30대를 통과하며 강원은 몇 차례 생활 축을 변경한다. 입대 문제를 놓고 긴 시간 고민한 끝에 그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다. 아현이 독립도 취직도 못 한 채 제자리걸음 하는 사이, 강원은 미군에 입대하여 한국과 독일을 오간다. 직장을 구하고 연애를 시작하고, 그렇게 강원이 인생의 ‘퀘스트’를 순조롭게 달성해 가는 모습을 보며 아현은 부러움과 안도를 동시에 느낀다. 바로 그때 강원은 엽서에 “나는 요즘 자주 무너지고 운다”고 쓴다. 내레이션으로 강원의 상황과 제 마음을 전달해주던 감독은 침묵에 잠긴다. 선언이 호기심을 자극했다면 고백은 거리를 부여한다. 아현은 그제야 카메라와 자신이 별개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강원의 추종자를 자처하는 카메라는 강원을 집어삼키는 중력과 충돌한다. ‘내 친구를 소개’하는 일에 머무른다면 영화는 필연적으로 그의 괴로움을 외면할 수밖에 없어서다.
결국 <퀴어 마이 프렌즈>는 강원에서 강원과 아현으로 주인공을 늘린다. 아현은 친구의 안녕과 행복을 소망하는 인물이자, 출연자의 삶을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 막 알아차린 신인 감독이다. 7년간 그들의 우정은 진화한다. 손을 내미는 것으로 시작해서 손을 잡지 않고서도 체온을 주고받는 방법을 터득하기까지 카메라는 긴 시간 그들 곁을 맴돈다. 감독 입으로 “미저리 같은 친구”라고 표현할 정도지만 관계는 일방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빛뿐만 아니라 그림자 또한 내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강원 앞에서 아현은 그에게 던졌던 모든 질문이 과연 누구를 향한 것인지 곱씹는다. 물음표는 강원을 경유해서 아현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따라서 영화 속 7년은 한 창작자가 저만의 시각과 태도를 길러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눈앞에 놓인 대상을 그저 찍는다고 해서 영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님을 깨달은 후, 아현은 강원에게 답을 구하는 대신에 스스로 묻는다. 무엇이 힘든지, 왜 가장 힘든 순간에는 서로 기대기가 어려운지.


강원은 제 상태를 “살고 싶어서 죽어버리고 싶은 청춘”이라고 일컫는데, 이는 비단 그에게만 속하는 진단은 아니다. 영화는 고통의 종류와 원인은 다를지언정 비슷한 아픔이 도처에 자리한다는 사실을 조명한다. 모든 남성에게 의무를 떠안기는 동시에 동성애자를 색출하겠다고 나선 군대, 사회적 합의를 볼모 삼아 차별금지법 제정을 수년째 미루는 국회, 입시와 취직부터 결혼과 출산에 이르기까지 쉴 새 없이 경쟁 붙이는 사회. 그 속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토로하는 강원과 “모두 실패한 것만 같았다”고 자책하는 아현은 결국 절망을 공유한다. 그들은 안전 이상을 꿈꾸지만 현실은 안전마저 보장하지 않는다. 정답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강원은 괘씸한 존재가 되고, 아현은 미련하다는 핀잔을 듣는다. 영화는 그렇듯 ‘내 자리’를 찾지 못해 낙담하는 동시대 젊은이의 무력감을 들여다본다. 응원과 지지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불어넣고 끌어내는 와중에도 자꾸 빼앗긴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현은 정말 강원과 지옥까지 간다. 괘씸하고 미련해서 그들은 카메라에 대고 비밀을 속삭인다. 나를 알면 너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내 세계를 열어젖힌 다음부터 너의 세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뻗어갈 거라는 말이 영화에 무음으로 삽입된다. 카메라는 성취를 포착하는 임무에서 벗어나 오늘 뭘 먹었는지 말하면서 깔깔대는 둘의 얼굴을 번갈아 비춘다. 이는 비밀에 대한 반응이다. 어떤 변화가 닥치든 상관없다고 웃는 그들에게 숨겨야 할 이야기란 더는 없다.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지옥은 두렵고 험난하지만, 목소리 큰 사람들이 주장하는 천국보다 덜 외롭다. 아현의 손에서 강원의 손으로 카메라를 옮기며 영화는 ‘우리’의 테두리를 넓혀 간다. <퀴어 마이 프렌즈>는 퀴어와 앨라이의 동행을 이상화하거나 동성애자 남성과 이성애자 여성의 전형적 우정을 재현하는 데 관심을 쏟지 않는다. 강원과 아현은 대안 가족 모델을 제시하려고 애쓰지도, 연애 혹은 패션을 주제로 조언을 주고받지도 않는다. 세련된 본보기가 되려는 욕심 없이 그들은 서운함과 불안에 못 이겨 울고불고하며 싸운다. 그렇게 서로 빚지며 살기를 택한 인물 덕분에 ‘우리 지옥’은 끝내 가볼 만한 세계가 된다.
퀴어 마이 프렌즈 Queer My Friends 감독 서아현 출연 송강원, 서아현 제작 시소픽쳐스 배급 영화사그램 제작연도 2022년 상영시간 82분 등급 12세관람가 개봉 2023년 8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