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에겐 집이 두 채다. 하나는 현실 속 집이고 다른 하나는 꿈속 집이다. 전자엔 크고 작은 세간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대단한 물건은 없지만 꼭 필요한 것부터 없어도 그만인 것까지 살뜰히 정돈한 손길이 눈에 띈다. 반면, 후자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를 기약한다. 경희는 잡지에서 손수 오려낸 인테리어 이미지를 공책에 스크랩하며 일일이 이유를 달아둔다. 거실 벽에 서예 작품을 걸고 창밖으로 정원을 내다보는 집. “고급스럽지 않니? 엄만 나중에 이런 데서 살 거야. 두고 봐.” 열두 살이 된 딸 명은은 경희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제게 말을 거는 듯하지만 기실 엄마는 다른 이를 향해 외치고 있어서다. 젊은 여자가 밤낮없이 억척 떤다며 한마디씩 툭툭 내뱉는 동네 사람, 금은보화라도 맡겨 놓은 것처럼 수시로 손 벌리는 가족, 집안에서건 밖에서건 도통 자리를 잡지 못하는 남편, 그리고 누구보다 손톱에 낀 때를 달고 사는 자신에게 경희는 두고 보라고 말한다. <비밀의 언덕>은 경희의 집과 같은 영화다. 어른과 아이를 두루 살피는 솜씨가 야무지고, 현실의 고단함을 여과 없이 기록하면서도 끝내 희망에 눈길을 보낸다. 경희가 팔자려니 하며 가장 노릇을 떠맡듯 장선은 두 세계 사이에서 묵묵히 중심을 잡는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놀랍게도 불안하지 않다. ‘괴물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데뷔작 <소통과 거짓말>(이승원, 2015), 엄마에게 버림받은 딸을 연기하며 스스로 인물에게 ‘한희(커다란 기쁨)’라는 이름을 붙여줬다는 <바람의 언덕>(박석영, 2019) 등 장선은 그간 영화에서 곧잘 외톨이가 되곤 했다. 쉽게 이해받을 수 없는 인물과 직면할 때마다 장선은 선뜻 품을 열어줬다. 어쩌면 그러한 담대함과 포용력이 경희에게로 이어졌는지 모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생을 감수하는 경희가 대견해서 장선에게 대화를 청했다. 1996년의 경희와 2023년의 장선은 무얼 공유할까.
시사회에서 배우들이 나란히 선 모습을 보니 정말 가족 같더라. 객석에서도 애정 어린 눈빛을 보냈고.
강길우 배우가 “호불호가 크게 나뉘지 않을 작품”이라고 소개했는데 공감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영화 중 가장 ‘불호’가 없지 않을까. 따뜻한 작품이고 마음을 두드리는 대목도 많다. 아무래도 연기하면서 종종 엄마가 떠올랐는데 시사회에서 그 얘기 하다가 울뻔했다. 목소리가 떨려서 황급히 대답을 마무리했지.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랬다. 감독님이 제일 먼저 울컥했고 길우 배우도 눈시울이 붉어지는지 먼 산을 보더라. 그 와중에 문승아 배우는 “저는 프로니까요!”라면서 아주 씩씩하게 답했다. (웃음)
문승아 배우와 모녀로 호흡을 맞췄다. 현장에선 어땠나.
평소엔 해맑고 귀여운데 촬영 시작하면 돌변한다. 어찌나 집중력이 좋은지 오히려 내가 그 친구한테 힘을 받을 정도였다. 아역 배우라는 생각이 안 들더라. 서로 장난치며 놀다가도 슛 들어가는 순간 본인이 해야 할 연기에 몰두한다. 자신만의 해석으로 인물을 표현하는 걸 보면서 감탄했다. 자산이 큰 배우다. 틀에 맞춰서 다듬기보다는 이대로 자라도록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눈에 익은 배우들인데 한데 모이니 새롭더라. 다들 평소와 결이 다른 인물을 맡기도 했고.
나중에 감독님 얘기 듣고 한참 웃었다. 시나리오를 보냈더니 나, 강길우, 임선우 배우 반응이 똑같았다고 하더라. “왜 저한테 이 역할을?” 다들 의외라고 생각했던 거다. 실은 그게 감독님 목표였다. 다른 작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 그간 자주 맡지 않은 역할을 주고 싶었다고. 예를 들어 임선우 배우가 이렇게 ‘허당미’ 넘치는 캐릭터를 연기한 건 처음 아닌가. 강길우 배우도 주로 무게 있고 책임감 강한 인물을 연기했다. 감독님은 내가 그간 땅에 발붙이지 않은, 말하자면 경희와 달리 생활감이 좀 옅은 캐릭터를 맡아 왔던 것 같다고 하더라. 장선이 연기하는 경희가 단번에 그려지지 않아서 오히려 좋다며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셋 다 엄마, 아빠, 선생님을 연기한 적도 거의 없다. 아마도 영화가 ‘서툰 어른’이라는 키워드를 포함하다 보니 낯선 조합이 잘 들어맞지 않았나 싶다.
두 아이의 엄마를 연기해 보니 어떤가.
처음엔 조금 걱정했다. <소통과 거짓말>을 비롯해 두어 번 정도 엄마 역할을 맡긴 했지만 말 그대로 어린 엄마였다. 미숙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근데 경희는 서툴다고 해도 엄마로 보낸 세월이 십 년이 훌쩍 넘는다. 가만히 있어도 가족과의 유대가 묻어나야 했고, 명은이에게 때로 모질고 무심한 듯 행동해도 딸을 향한 사랑이 느껴져야 했다.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켜켜이 쌓인 시간과 애정을 담아낼 수 있을까. 경희가 또 중간중간 등장하는 인물이다 보니 설득하기가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근데 감독님이 워낙 확신하시는 터라 믿고 가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일순 미소를 짓는다든지 입은 웃지 않는데 눈빛은 따스하다든지, 그런 식으로 나만의 엄마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며 북돋아 주셨다.


<비밀의 언덕> 이전에 배우가 표현했던 모녀 관계는 둘로 나뉜다. 아이를 잃은 엄마 아니면 엄마를 잃은 아이. 적어도 물리적 상실 없이 존재하는 모녀 사이를 그린다는 점에서 이번에는 준비 과정이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싶은데.
접근 방식은 항상 비슷하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다 시도하는 편이다. 근데 경희는 시나리오에 없는 내용을 스스로 생각해 보는 일이 특히 중요하게 다가왔다. 화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영화에 어떤 식으로든 담길 테니까. 경희의 일과를 구체적으로 상상했다. 새벽 몇 시에 나가서 가게 문을 여는지, 어떤 손님들을 만나는지, 그때 기분이 어떻고 속으로 무슨 생각하는지, 언제쯤 퇴근해서 귀가하는지. 작품을 끌어가는 인물의 경우, 극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과 실시간으로 많은 순간을 공유한다. 경희는 그렇지 않다 보니 오히려 세세하게 채우려고 했던 것 같다. 한편, 평소보다 현장에 기대는 면도 있었다. 뭔가를 더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그곳에 있기, 가족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대신에 가족으로 믿고 존재하기. 그럼 감정과 분위기는 자연스레 발생하리라 봤다.
원래 인물의 히스토리를 쓰는 편인가.
연기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첫째가 인물이다. 새로운 인물을 만나서 알아가고 가까워지는 과정을 무척 좋아한다. 히스토리를 쓰다 보면 ‘얘는 이런 사람이구나’ 딱 알아차리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인물에 관한 힌트를 최대한 찾으려고 노력한다. 정확하게 힌트라고 할만한 지점은 매번 다르기에 가급적 다양한 갈래로 생각한다.
경희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어땠나.
경희에겐 친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전사가 있다.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 빨리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인물이라는 점, 가까운 이에게 배신을 여러 차례 당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생활력이 강하고 의지도 세지만 냉소적으로 구는 데가 있다고 봤다.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남의 도움 따위 필요 없어. 혼자서도 다 해낼 수 있어.’ 그러니까 경희가 왜 성호랑 결혼했는지 알겠더라. 미덥지 못한 구석이 있긴 해도 마음이 갔을 거다.
적어도 뒤통수 칠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해서?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믿음인데 성호는 경희에게 없는 걸 가졌거든. 여유로움과 편안함. 경희는 늘 촉수를 세우고 살아간다. 발도 빠를 거다. 앞장서서 바삐 걸어가는 경희와 뒤에서 느릿느릿 따라 걷는 성호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런 모습이 문득 경희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빨리빨리 해결해야 해’라면서 전부 책임지려고 하는 자신과는 아주 다른 태도에 끌렸을 듯하더라. 또 하나는 경희가 새아버지 가족에게 돈을 챙겨 주거나 그로 인해 스트레스받을 때도 성호는 별말 없이 넘어간다는 점이다. 여러 면에서 충돌하긴 해도 가족을 부양하는 문제로 경희를 다그치진 않는다.
딸 명은과의 관계는 어떻게 파악했나.
아들 민규와 비교하면 명은이는 주장이 강한 애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편집되긴 했는데 명은이가 학원을 여러 차례 옮겼다는 대사도 있었다. 경희는 그때마다 안 된다고 하면서도 학원을 계속 보내줬던 거다. 결국에는 명은이가 갖고 싶다고 조르는 원피스를 사준 것처럼. 삶이 벅차다 보니 가끔 꿈 많은 딸이 원망스럽기도 했을 거라고 봤다. 엄마로서 내색할 순 없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는 ‘나한테 좀 너무한다’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현장에서도 그런 마음이 자연스레 생겼다. 서운하고 부담스럽고. 동시에 똑똑하고 재능 많은 아이인데 원하는 걸 못 해주니 더 미안해지고.
시사회에서 엄마 얘기하다가 울컥했다고 한 이유를 알겠다. 겨우 30대 중반쯤 됐을까 싶은 경희 얼굴을 보면서 ‘나 키울 때 엄마도 진짜 어렸구나’ 했거든. 사랑, 원망, 미안함 등 다양한 감정이 공존하는 ‘엄마 마음’을 짐작해 보게 된다.
나도 연기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에 엄마가 딱 경희 나이였더라. 어릴 때는 엄마도 어리다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걸 다 하셨나 싶다. 게다가 아빠와는 부딪칠 일이 거의 없지 않나. 엄마랑 붙어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항상 엄마와 싸운다. 그런 기억이 떠올라서 엄마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살펴보니 이승원, 박석영, 궁유정 등 같은 감독과 두 번 이상 작업한 경우가 많다. 이지은 감독이 두 번째 작업을 제안한다면 어떨 것 같나.
너무 좋지. 감독은 물론 해당 역할에 가장 어울리는 배우를 선택하는 것이지만, 이미 경험했던 배우에게 또 연락을 준다는 건 작업 ‘케미’라든지 결과물에 만족한다는 뜻이기도 하지 않나. 한 감독과 연이어 작업하다 보면 유대감이 쌓인다. 자연스레 동료 의식도 생기고 사적으로 가까워지기도 한다. 사실 난 작품 준비할 때 감독님을 엄청나게 관찰하는 타입이거든. 감독이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감독의 어떤 모습이 글과 인물에 투영되기 마련이다. 그걸 파악하려고 노력하면서 힌트를 얻는 과정이 재밌다. 한편, 그 감독의 세계관에 다시 한번 들어갔을 때 어떻게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고민도 된다. 완전히 다른 인물을 맡기지 않는 이상 자칫하면 겹쳐 보일 수 있으니까.
주로 그늘진 사연을 간직한 인물을 연기했다. 결핍과 절망을 표현했던 적이 많은데, <비밀의 언덕>에서는 그게 피로감으로 드러난 것 같다.
실제로 어떤 인물을 만나든 그가 지닌 결핍에 관해 많이 생각한다. 결핍은 인물의 인과를 설명해 준다. 지금 왜 이런 모습인지, 어째서 그런 선택을 감수하는지. 인물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과정에서 따져봐야 할 부분이다. 동시에 사람은 단면적이지 않으니 결핍에 상응하는 또 다른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다. 경희 역시 내가 쓴 역사 안에서 분명히 결핍을 안고 있다. 그게 말한 대로 피로감과 외로움, 그리고 무엇보다 억울함을 유발한다. 경희는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여력도 없는 사람이다. 언제나 모든 책임이 당연하다는 듯 자신에게 돌아왔으니까.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아도 마음에 억울함이 쌓여 있지 않을까 싶더라.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해? 내 인생은 어쩜 이래? 경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만 나오는데 감독님이 사전에 ‘장례 치르고 6개월쯤 지난 후’라고 구체적 시기를 말씀해 주셨다. 경희는 장례식 다음 날 바로 가게 문을 열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생각해 보니 경희라면 진짜 그랬을 것 같더라. 몸도 마음도 고단한 ‘만성피로’ 상태. 이 또한 경희에 관한 주요 키워드 중 하나였다. 경희를 이해하려면 노동의 무게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딸이 원하는 만큼 딸에게 애정을 쏟지 못하는 건 비단 성격 탓만은 아니다. 무뚝뚝한 면이 있긴 하지만 상황이 주는 영향이 크다. 나도 아르바이트를 이것저것 하면서 비슷한 기분에 휩싸였던 시기가 있다. 끊임없이 물이 차오르는 느낌. 난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물 속이라서 걸음은 자꾸 느려지고, 그 와중에 누군가 위에서 물을 붓고 또 붓는 듯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크다 보니 하루하루 막막했던 것 같다.
필라테스 강사로 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르바이트는 뭘 했나.
공연 연습 시간을 피해 일하다 보니 20대에는 주로 새벽에 아르바이트했다. 밀리오레에서 옷을 꽤 팔았지. (웃음) 레스토랑 서빙, 에버랜드 퍼레이드 댄서 등 별거 다 해봤다. 가르치는 일도 많이 했다. 박물관과 유적지에서 어린이 대상으로 역사 수업하고. <창진이 마음>(궁유정, 2019)에서 초등학교 교사 역을 맡았는데 그때 생각이 딱 나더라. 지난 시간과 경험이 결국 내 자산이 됐구나 싶다. 새벽에 일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꼈던 피곤함이나 불안까지도.
외로웠을 것 같다. 연기하려고 연기 말고 다른 걸 해야 하는 시간.
사실 아르바이트도 즐겁게 했다. 내가 선택한, 정말 좋아하는 연기를 지속하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 기왕 하는 거 좋은 마음으로 하자 싶더라. 장점도 많았다. 새로운 세상을 접하면서 견문도 넓히고, 배우가 아닌 그냥 장선으로 존재하며 환기하는 시간도 갖고. 또 하나 재밌는 건 사람 구경. 이제 보면 그게 다 캐릭터 공부였다. 동대문에서 같이 일하는 언니들을 관찰하다가 묻곤 했다. “저 나중에 그거 써먹어도 돼요?” (웃음) 근데 아르바이트와 연극을 병행하다 보니 마음 한쪽이 내내 무거웠다. 어쨌든 일하는 시간만큼 인물에게 쓸 시간이 줄어드는 거니까. 다른 배우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나 말고 시간과 에너지를 더 써줄 수 있는 배우가 그 인물을 연기했더라면. 자꾸 그런 생각이 드니 외롭다고 해야 하나. 그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컸다. 내가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재하는 누군가에 관해 말하는 듯하다. 어떤 인물이든 그렇게 애착을 갖고 대하는 편인가, 아니면 당시 유독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나.
늘 그렇다. 왜냐면 그 인물은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거든. ‘그가 작품을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지만 그는 진짜로 있다. 그한테 미안해지고 싶지 않다.’ 인물에게 나라는 배우의 욕심을 넣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장선이 아닌 그 인물로 있어야 한다. 내가 할 일은 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물과 만나서 그를 잘 살아나게 하는 일이니까. 실존 인물을 연기한 적이 몇 번 있다. 당사자는 돌아가신 분이고 가족과 지인이 관객으로 오셨다. 객석에서 나보다 더 큰 에너지를 발산하며 지켜봐 주시더라. 그 경험이 강렬하게 남았다. 삶을 가진 한 인물을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갖자고 다짐했다. 근데 말은 이렇게 해도 그에 못 미치는 순간이 왜 없겠나. 현장에서 집중을 못 하면 이따금 자의식이 끼어든다. 그러면 내가 지금 누구인지 스스로 되물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나를 비운 자리에 인물을 들어오게 하는 일, 그건 자신에 대한 통제를 자의적으로 포기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자의식을 지워내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특별한 훈련이라도 있나.
지향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이렇다 할 방법이 있다기보다는 계속 그 과정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인물을 분석하며 조금씩 알아가다가 결국 현장에 가서 만난다. 인물이 겪는 모든 사건과 감정이 실제로 나를 통과하도록 그저 그 순간에 머물러야 한다. 물론 나라는 존재를 모조리 지우기란 어렵고, 따지고 보면 나와 나 아닌 것이 섞이면서 새로운 뭔가를 만든다. 다만, 작품에서는 인물이 살아온 시간 중 한 조각만을 떼어 보여준다고 해도 배우는 그의 삶 전체를 포함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실 말하면서도 불가능에 도전한다는 생각이 든다. 매번 한계와 마주한다. 길을 헤매는 시간이 괴로운데 참 신기하게도 그 시간에 자유롭다고 느낀다.
연기하면 시간을 제대로 쓴다는 느낌을 받는 걸까.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왜 연기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가장 제대로 쓰이는 일이라서”라고 답한다.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냥 연기하는 순간이 제일 좋다. 내 에너지와 삶을 알맞은 곳에 고스란히 쓰고 있다는 느낌. 실은 연기 외에 뭔가를 꾸준히 해본 적도 없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퇴근하는 생활을 못 버틴다. 아르바이트도 시간 좀 지나면 싫증 나고, 실제로 몸에서 이상 반응이 나타난다. 괜히 이곳저곳 아프고. 근데 연기는 할수록 계속하고 싶어진다. 어려워서 그런가 보다. 해도 해도 어려우니까 늘 새롭고, 벽에 부딪히면서 오히려 힘을 얻는다. 한마디로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지금도 얼굴에 설렘이 가득하다.
이 사랑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웃음)
초등학생 시절, 교회 크리스마스 성극에 참여했던 것이 첫 연기 경험이라고. 당시 맡은 역할이 ‘천사1’인데 오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무슨 복선 같다. 신과 인간의 중간에 위치한 천사처럼 배우 역시 일종의 매개자가 되려고 하지 않나.
그 무렵 수녀님들이 계신 성경학교를 다녔다. 수녀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언니처럼 따랐다. 우리랑 장난치면서 놀아주는 왈가닥 수녀님이 한 분 계셨는데, 하루는 그분이 애들 앞에서 순교자를 연기했다. 젊은 수녀가 얼마나 절절했겠나. 나랑 웃고 수다 떨던 수녀님이 코 앞에서 확 바뀌는데 정말 충격받았다. 어린 나이였는데도 그 순간 ‘저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한동안 장래 희망이 수녀였다. 수녀가 되면 연기할 수 있구나 싶어서. (웃음) 그러다 크리스마스 성극을 준비하게 됐다. 다 같이 라면 끓여 먹고, 대사 연습하고,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고. 그 모든 과정이 행복으로 다가와서 ‘평생 이렇게 살면 좋겠다’ 싶더라. 그 후 책에서 우연히 ‘연극’이라는 글자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기나긴 짝사랑이 시작된 거다.
이쯤 되니 수녀님의 연기가 궁금해진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볼 때와는 느낌이 달랐나 보다.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지켜봤거든. 근데 텔레비전도 엄청나게 봤다. 자정 넘으면 프로그램 다 종료되고 애국가 나온 다음에 화면 지지직거리는 거 알지? 그때까지 혼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애가 나였다. 엄마는 기다리다가 지쳐서 먼저 자러 들어가고. 지금도 말씀하신다. 엄마는 농담했던 건데 진짜 말한 대로 됐다고. 내가 하도 텔레비전을 붙잡고 사니 “쟤 저러다가 배우 되는 거 아니야?” 하셨단다. 따라 하기도 많이 했다. 다섯 살 됐을 무렵부터 동네 할머니며 연예인이며 흉내 내고, 혼자 거울 앞에 서서 표정 짓고 그랬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첫눈에 반하고 나서 확신을 갖게 된 건 언제쯤이었나. 마냥 설레고 들뜬 마음이 가라앉은 후, 연기에 절실해지는 순간이 있었을 텐데.
중학교 졸업할 때쯤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예고 진학을 포기했다. 정작 부모님은 별말씀 없으셨는데 내 딴에는 그래야 한다고 판단했던 거다. 생각보다 훨씬 힘들더라. 방황기를 심하게 겪다가 결국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엄마 입장에선 당황스럽지. 언제 연기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냐면서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어떤 문턱을 하나 넘었다는 느낌을 받은 건 대학에 진학한 다음이다. 초반에는 주로 코믹한 역할을 맡다가 <집으로>라는 작품을 만났다. 러시아 작가 류드밀라 라쥬모프스까야의 희곡이고 구소련 붕괴 직후가 배경이다. 처음으로 깊은 감정을 써야 하는 인물을 연기하게 됐는데 굉장히 어려웠다. 어릴 적부터 우는 모습을 가족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고, 친구들 사이에서 늘 밝은 애로 통했다. 슬픔이나 우울 같은 부정적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기 꺼리는 나로서는 큰 벽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극에서 친한 동생이 죽은 이후 내가 등장하는 신이 있거든. 연습 중에 동생 역할을 맡은 언니가 “잘하고 와”라며 손에 핸드크림을 발라줬다. 신이 시작됐는데 그 핸드크림의 레몬 향이 선명하게 나는 거다. 그때부터 감정이 막 터져 나오더라. 울기로 약속한 장면에서 웃음이 났고 웃어야 할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이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로 무대에서 시간이 흘러갔다. 터닝 포인트라고 일컬을 만한 순간이다. 당시 연습을 지켜보던 선생님도 드디어 어떤 관문을 통과한 것 같다며 좋아하셨다. 여전히 레몬 향기가 잊히지 않는다.
웃음과 울음에 관해 좀 더 이야기하면 좋겠다.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비밀의 언덕>은 ‘가장 적게 웃는 영화’ 아닐까. 그간 작품에서 웃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크고 환한 웃음, 실없이 흘리는 웃음, 위악 떨듯 과장된 웃음 등 때마다 성질과 효과가 달라졌다. 무엇보다 울거나 화를 낼 법한 타이밍에 웃어버리는 선택이 인상적이더라. 근데 경희는 웃음을 가면 혹은 방어기제 같은 장치로 쓰지 않는다. 관련해서 감독과 대화를 나누거나 고민했던 부분이 있나.
원체 잘 웃는다. 감독님들은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 갭이 큰 얼굴이라고 평하시더라. 오죽하면 <창진이 마음>에서는 웃지 말라는 디렉팅을 받았다. “사람 너무 좋아 보여요. 그렇게 웃으면 안 돼요.” (웃음) <소통과 거짓말> <해피뻐스데이>(이승원, 2016) 그리고 <바람의 언덕>의 경우, 감독님이 먼저 웃음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셨다. 실제 나를 관찰하며 아이디어를 얻으셨을 수도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닥치면 웃으면서 위기를 넘기는 태도가 내게도 있거든. 음, 언젠가부터 감정은 장애라는 생각이 들더라. 울고 싶지 않은데 울고, 화낼 의도가 아닌데 화내게 된다. 그러면 울면서 부끄러움이 생기지 않나. 화를 냈다가도 미안함이 바로 올라오고. 울거나 화내기 직전에 ‘사실 그러고 싶지 않아’라는 마음으로 인해 웃음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작품과 배역마다 웃음의 의미를 달리하려고 노력한다. 근데 <비밀의 언덕>의 경희는 애초 웃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손님 응대할 때를 제외하면 딱히 웃을 이유가 없으니까.
경희가 진심으로 웃는 순간은 영화 후반부에 딱 한 번 나온다.
그 장면을 위해 일부러 웃음을 아껴둔 건 아니지만 나도 보면서 마음에 들었다. 감독님이 담고 싶어 했던 모습이 저것이구나 싶더라. 경희는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이다. 긴장을 풀거나 웃음을 터트릴 만한 여유가 없다. 그런 인물의 입가에 미소가 슬며시 번지는 순간을 예쁘게 담아주셔서 감사하다.
경희가 낯설게 다가온 이유가 또 있다. 그간 작품을 보며 경계 막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인물에게든 세상에든 기이하리만치 열려 있어서 쿡 찌르면 푹 들어갈 것 같더라. 그만큼 외부에 저항 없이 흡수되기에 “땅에 발붙이지 않은”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던 것 아닐까. 반면에 경희는 자기 세계가 허물어지는 상황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인물처럼 보인다.
경희는 허용 범위가 딱 정해져 있다. 확고한 기준에 따라 행동하고, 외부와 거리를 두며 벽을 세운다. 그런 면에서 나 역시 경희를 신선하게 바라봤다. 사실 그걸 알아봤다니 좀 신기하다. 지금까지 영화를 통해 만난 인물 대부분은 두려움, 어색함, 모욕감 등으로 인해 저마다 조금씩 경계선을 긋는 캐릭터였다. 근데 말한 대로 연기하는 과정에서 난 최대한 말랑말랑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상처받기 쉬운, 어떤 자극이든 즉각 받을 수 있는 상태. 그러다 보면 상대방과 현장이 주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거든. 물론 아쉬운 점도 많다. <비밀의 언덕>만 해도 촬영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다시 보니 ‘왜 저렇게 했을까?’ 싶은 구석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영화가 모든 인물과 이야기를 잘 쌓아간 덕분에 그마저도 사랑스럽게 상쇄된 듯하다.


그러면 영화의 어떤 메시지에 가장 이끌렸나. 겉보기엔 잔잔한데 알고 보면 끊임없이 속삭이는 영화다. 다양한 주제로 말을 거는데 그중 마음을 파고든 질문이 있다면.
시사회에 초대했던 지인들이 영화 보고 나서 술자리를 가졌다고 하더라.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웃음) 유년 시절과 부모님에 관한 기억, 상처 주지 않는 거짓말과 상처 주는 솔직함, 살면서 부끄러웠던 순간 등등. 영화 덕분에 모처럼 풍성한 대화를 나눴다며 고맙다고 했다. 처음엔 경희에게 집중하다 보니 명은이 시야에 없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좀 더 깊이 다가왔다. 근데 완성된 영화를 볼 때는 명은이의 변화에 마음이 갔다. 특히 마지막에 상을 받으며 웃는 장면.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던 아이가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처럼 보였다. ‘남과 달라도, 남에 비해 부족해도 괜찮아. 이게 나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명은이가 너무 기특하고 애틋하더라. 남이 보는 나 말고 내가 아는 나, 그게 소중하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스스로 인정하기, 배우도 그걸 경험하는 중인가.
주변에서 해주는 칭찬에 그다지 무게를 두지 않는다. 내가 나에게 만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굉장히 엄격한, 심지어 가혹한 잣대로 나를 바라보게 됐다. <비밀의 언덕>을 촬영할 무렵, 누군가 얘기하더라. 너는 다른 사람에게 절대 하지 않을 말을 너한테는 계속한다고. 그 말을 듣는데 나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그동안 최선을 다했던 내 모습을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면서 어쩜 그랬을까 싶고. 이제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고 좀 토닥이면서 가고 싶다. 가끔 ‘자책 모드’에 빠질 때가 있는데 속으로 외친다. ‘그거 아니야! 일단 멈춰!’ (웃음) 그 후 오답 노트를 만들듯 뭘 잘했고 또 못했는지 객관적으로 보려고 한다. 부족한 점에만 몰두하지 않기, 그게 요즘 내 화두다. 더 멋진 연기를 못했다고 주저앉기보다는 ‘그것이 그때의 최선’이라고 인정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쪽이 훨씬 낫다고 본다. 한편, 시간이 흐르면 약점으로 여겼던 것이 강점이 되기도 한다. 어릴 적엔 주근깨가 너무 싫었다. 엄마처럼 흰 얼굴을 갖고 싶어서 몰래 레모나를 사 먹었다. (웃음) 근데 연기하다 보니 이 주근깨가 개성이 되더라.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매력적이라며 부러워하고. 모두 달라서 각자 아름답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중이다. 인물에게 애정을 갖는 만큼 나도 아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기가 재밌다’와 ‘연기를 즐긴다’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데 어떤가. 그렇게 재밌는 연기, 즐기고 있나.
물론이다. 왜냐면 진짜 힘들고 괴로운 순간마저도 내겐 즐거움이거든. <소통과 거짓말> 마지막 촬영 날, 지금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행복해서. 5일간 찍었는데 쉬운 신이 단 하나도 없었다. 모든 회차와 장면이 어려웠고 당연히 감정적으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됐다. 근데 배우로서는 카타르시스라고 해야 할까, 분명히 힘을 얻었다. 최근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2>(tvN, 2023)으로 드라마에 도전했다. 드라마 현장은 처음이고 퓨전 사극이라는 장르도 낯설었다. 감독님이 “지나치게 리얼하다”라면서 톤을 조절해달라고 하시더라. 지금껏 받은 피드백과 정반대의 지적이었다. 연기에 법칙은 없다는 점, 작품과 역할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상기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연기하고 싶다. 여유를 가져야 한다. 어쨌든 인물도 타자 아닌가. 여유가 없으면 인물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는 건 더 힘들고. 재료인 나, 인간 장선을 잘 챙기기로 했다.
너무 건강해질까 봐 두렵지는 않나. 결핍과 상처에 둔감해지는 상황을 못 견뎌 할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안다. 근데 타고난 기질은 어디 가지 않더라. (웃음) 외부 자극에 워낙 민감한 데다 어떻게든 인물에게 밀착하려고 애쓰는 타입이다. 아무리 건강을 지키자 다짐해도 곧잘 인물을 따라간다. 마음이 찢긴 인물을 만나면 현실에서도 좀 무너져 내린다. 어차피 그렇게 될 테니까 연기하지 않는 시간만이라도 회복에 집중해 보겠다는 뜻이다. 내 기질이 싫지 않다. 남들은 우울하다거나 예민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나만의 고유한 빛이 되기도 하니까.
지금 따라 가고 싶은 인물은 누구인지 궁금하다. 어떤 타자와 접속하기를 기다리나.
먼 미래를 계획하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자리한 인물에게 마음을 쏟아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긴 한데, 오늘 말하다 보니 <소통과 거짓말>처럼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싶은 기분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마당이 있는 집>(ENA, 2023)의 임지연 배우, <화차>(변영주, 2021)의 김민희 배우처럼 끝까지 무너져서 더는 칠 바닥도 없는 인물을 만나고 싶다. 세상 자유로운, 거리낄 것 하나 없이 휘젓고 다니는 인물이 되면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고. 누가 됐든 내게 와주는 인물을 귀하게 여기며 다양한 얼굴을 마주 보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