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한 아지랑이
<물안에서> 김승윤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3-04-21

“녹음 시작한 거예요?” 김승윤은 액션 신호를 받은 배우처럼 움직였다. 상체를 30도쯤 기울여 테이블에 몸을 바짝 붙이더니,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인터뷰 내내 의자에 등 한 번 붙이지 않았다. “부끄러워도 할 건 다 하는” 성격답게 대화를 이끌던 그는 이따금 비밀이라고 귀띔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부지런히 찾아냈다. 입가에 넘치는 생기가 두 뺨으로 퍼져나갈 무렵, 김승윤은 대뜸 불안을 고백했다. 시간 옆에 아깝다는 형용사를 서너 번 붙인 후였다. “이 시간을 아깝지 않게 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신을 찾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영화로 만난 모든 이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인사,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각오. 초조함을 책임감으로 대체한 김승윤의 맑은 웃음을 보자 <물안에서>의 흐릿한 남희 얼굴이 또렷이 다가왔다. 영화 속 남희는 대학 선배 성모(신석호)와 상국(하성국)을 따라 바다에 간다. 첫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성모를 도와 상국은 촬영을 맡고 남희는 배우가 된다. 김승윤과 남희는 닮은 구석이 많다. 물에 잠긴 듯 연신 흔들리는 세계에서 발차기로 허공을 가로지르는 남희처럼 김승윤도 요령 좋게 중심을 잡는다. 이제 컷 사인을 받기 전까지는 현장을 포기할 마음이 없다.

 

 

개봉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극장에서 배우끼리 GV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관객과 만나보니 어땠나.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밥 먹자고 연락받은 기분이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참석했을 때보다 한국 관객 만나려고 기다릴 때가 훨씬 떨리더라. GV 열기가 대단했다. 다들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켰고 질문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행사 끝나고 나선 줄 서서 사인받아 가고. 이야기할 부분이 많은 영화 아닌가. 나 또한 영화에 관심 있는, 특히 홍상수 감독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었다. 가족이나 지인들은 그냥 ‘승윤이 나오는 영화’라고만 알고 있으니까.

 

가족 입장에선 영화 보면서 좀 섭섭했을 것 같은데.

얼굴이 안 보여서 아쉽다고 하더라. 근데 난 기분이 괜찮은 정도를 넘어서 영광으로 여긴다. 이토록 특별한 작품에 내가 참여했다는 사실이 기쁘다. 감독님이 만드신 영화를 모두 봤는데 <물안에서>는 전무후무한 실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낸 변수가 혹시 나일까?’ 생각하면 좀 설렌다. 거장에게 초상화를 선물 받은 것 같다.

 

인물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영화를 초상화라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그림을 잘은 모르지만 대학 교양 수업에서 고전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와 같은 굵직한 예술 사조에 관해 배웠다. 빛과 움직임을 담아내는 데 집중한 인상파는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외면당했다. 당시 화풍은 사실적이고 정확한 묘사를 중시했으니까. <물안에서> 편집본을 본 순간, 갑자기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떠올랐다. 갤러리나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고 사진 찍는 게 요즘 MZ 세대 트렌드 아닌가. 나도 전시회를 즐겨 찾는데 감독님 영화를 보니 그림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더라. 그래서 신기하다. 일반적으로 회화 작품을 보면서 인물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냥 “물가의 여인들”이라고 부르는 식이지, 그들 개인의 이름과 역사를 궁금해하진 않는다. 영화에서 나도 그런 모델과 마찬가지라고 보는데 관심을 받으니 놀랍다.

 

여전히 기분 좋은 떨림을 느끼는 듯하다. 홍상수 감독과의 작업을 고대했나 보다.

감독님께 디렉팅 받기, 그게 내 버킷리스트였다. 이렇게 일찍 꿈을 이룰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건국대 영화과에 진학하면서 감독님을 처음 뵀다. 시간이 지나도 감히 감독님이라고 못 부르겠더라. 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 좋은 배우가 되어 감독님과 작업해야지. 그땐 교수님 말고 감독님이라고 불러야지.’

<물안에서>

팬심처럼 들리기도 한다. 감독의 어떤 점에 그토록 흥미를 느꼈나.

감독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수업 말미에 감독님이 “질문할 사람?” 하면 꼬박꼬박 손 드는 애가 나였다. 궁금한 점이 많은 데다가 학교 아니면 감독님을 따로 뵐 곳도 없으니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것저것 여쭤봤던 기억이 난다. 감독님 특유의 자유로운 연출에 관해 선배들에게 익히 들어 온 터라 배우로서 호기심이 생겼다. 이대로 졸업하기엔 아쉬웠는데 졸업 직전에 <물안에서>를 만났다. 커다란 배움과 성장의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아웃 포커스 촬영이라 오히려 다행이다. ‘방금 표정 어떻게 지었지? 나 어떻게 생겼지?’ 그걸 신경 쓸 필요가 없거든. 덕분에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긴 것 같다. 얼굴이야 다른 작품에서 많이 보여주면 된다.

 

아웃 포커스로 촬영한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인지했나.

중간에 감독님이 말씀해 주셔서 알았다. 선배들은 진작 알았다고 하던데 난 작은 화면으로 모니터링하다 보니 솔직히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야외 촬영하며 햇빛을 많이 본 탓에 눈이 좀 흐려졌겠거니 했다. (웃음) 감독님이 이번에는 그냥 이렇게 찍고 싶다고 하시더라. 내가 주연이라는 것도 촬영 도중에 알았다. 말하고 보니 진짜 아무것도 모른 채 여기까지 왔구나 싶다.

 

감독이 뭐라며 출연을 제안하던가.

“다음 작품을 찍으려고 하는데 네 생각이 났다. 한번 만나보자.” 전화 받고 카페에서 뵀다. “영화를 찍을 수도 있고 안 찍을 수도 있다” 하셨고 나도 그 이상 기대하지 않았다. 며칠 후 다시 연락을 주셨다. 영화를 찍기로 했다며 모레 김포공항으로 오라고 하더라. 그렇게 제주도에 갔다. 석호 선배, 성국 선배랑 다 같이 밥 먹는 자리에서 물어봤다. 영화에 누구누구 나오냐고. “너희 셋만 나와. 너희 셋 이야기야.”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감독님께 오디션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여쭤봤다니까. 다른 오디션처럼 지정 대본을 놓고 연기할 순 없는 상황이니 자유연기라도 보여드릴 작정이었다. 근데 감독님이 됐다며 그냥 믿는다고 하셨다. 우리가 떠올랐고, 그래서 우리를 믿고 작품을 쓸 거라고.

 

사전에 감독에게 요청받은 바라든지 다른 배우들과 의논한 바가 있다면.

안 그래도 제주도 가기 전에 감독님께 준비물 없냐고 여쭤봤다. 명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잘 먹고 잘 자고 좋은 몸과 마음으로 오면 된다.” 세상에 그처럼 쉬운 준비가 또 있을까 싶더라. 몇 차례 감독님과 작업해 본 선배들은 생각보다 그게 어렵다고 하던데 난 신기할 만큼 편안하고 재밌게 지내다 왔다. 메이크업도 안 하고 완전히 민낯으로 영화를 찍었다. 감독님이 꾸밀 필요 없다면서 진짜 제주도 여행 간다는 생각으로 짐을 싸 오라고 하셨거든. 솔직히 고백하면 날로 먹은 기분이다. (웃음) 좋은 사람들과 여행 갔다 왔더니 영화가 완성되고, 난생처음 베를린에도 가고. 스트레스받은 적도 일절 없다. 그간 감독님의 디렉팅을 갈망했기에 대본이 오면 그저 반가웠다.

 

평소 대담하다거나 태평하다는 말을 듣는 편인가.

대담하다는 말은 종종 듣는다. 대부분 즉흥을 힘들어하는데 난 입시 준비할 때부터 즉흥 연기 과제를 제일 좋아했다. 짧은 대본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분석하고 1~2분간 자유롭게 연기하기. 그 과정을 즐기다 보니 감독님 디렉팅에도 잘 맞았던 것 같다. 애드리브는 없다. 정확한 대본이 있고 감독님이 요구하는 바도 분명하다. 다만, 그 안에서는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다. 감독님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난 ‘이거 나랑 좀 찰떡인데?’ 생각했다. 어쩌면 아는 게 없어서 마음이 가벼웠는지도 모른다. 주연인지 조연인지,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 미리 들었다면 그때부터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 난 그저 눈앞에 놓인 상황에 집중하면 됐다. 한 장 한 장 건네주신 대본대로 연기했다. 레디, 액션, 컷. 그렇게 촬영을 마쳤고 얼마 후 감독님이 영화를 완성하셨다. 내가 봐도 특별한 작품이라 내심 기대했지만 진짜 베를린에 갈 줄은 몰랐다. 감독님이 툭 물어보시더라. “2월에 뭐 하니? 시간 괜찮으면 베를린 갈래?”

 

옆 동네 놀러 가자는 투로. (웃음)

“이번 주말에 고기 먹을래?” 같은 느낌이지. 감독님께 드레스는 어떻게 입냐, 뭘 준비하면 되냐,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이번에도 대답은 동일했다. 편하게,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 감상평에도 자연스럽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더라. 영화의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웠기에 결과물도 그렇게 나온 것 아닌가 싶다.

김승윤 ⓒ이영진

듣다 보니 영화 속 남희는 김승윤을 많이 닮았구나 싶다. 배우는 영화를 보며 무얼 발견했는지 궁금하다. 촬영 당시엔 인물과 이야기 전체를 그리는 일이 불가능했지만, 시간이 흘러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면.

감독님은 배우를 토대로 캐릭터를 만드시는 것 같다. 처음인데도 대사가 편했거든. 평소 대화하듯 대사를 외웠다. 남희가 아침마다 스트레칭한다거나 태권도 3단이라는 것도 실제 내 이야기다. 감독님 앞에서 발차기는 물론이고 스트레칭도 한 적이 없는데 그런 대사를 어떻게 쓰셨나 싶다. 리허설도 안 했다. 대본에 발차기한다고 쓰여 있긴 했지만 누구도 보여달라는 얘기를 안 하더라. 대사만 맞춰보고 곧장 촬영했는데 감독님이 좋아하셨다. 진짜로 잘할 줄은 몰랐다고. (웃음) 태권도를 그만둔 지 좀 됐는데 최근에 수련을 다시 시작했다. 발차기로 알려진 이상 적당히 하면 안 되겠구나 싶더라.

 

구체적 서술이라 실제 배우의 모습 아닐까 예상했다. 살짝 부끄러워하면서도 발차기를 연속으로 보여주며 자랑하는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감독님이 그걸 캐치하신 것 같다. 부끄러워도 멍석 깔아주면 안 피한다, 그게 남희와 내 공통점이다. 남희는 담백하고 당당한 인물이다. 남자 선배들과 영화를 찍으러 제주도에 간다는 것 자체가 참 용감하지 않나. 감독님이 사랑스럽게 담아주신 것 같다.

 

남희는 셋 중에 의문문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물이다. “괜찮은 것 같아요?” “선배님이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서요.” 달리 말하면 남의 생각과 마음을 신경 쓰는 사람인데 주눅 들어서 눈치 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 또한 배우와 닮은 면이지 않을까.

지금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의식하지 못했다. 감독님이 특이한 경계를 잘 그려주신 것 같다. 영화 속 내 모습이 좋아 보이더라. 선을 넘지 않는 최대치의 솔직함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평소에도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감독님뿐만 아니라 모든 교수님께 그랬다. 질문은 몰랐던 걸 배우고 해답을 얻는 기회라고 보거든. 그 좋은 기회를 놓쳐버리기가 아까워서 하나라도 꼭 질문하려고 한다.

 

현장에서는 주로 무엇에 관해 질문하나.

오히려 일할 때는 시키는 대로 한다. 뭔가를 묻기보다는 그냥 많이 웃고. 근데 이건 선배들한테 얘기를 좀 들어봐야겠다. MBTI가 I로 시작하는데 선배들이 그럴 리가 없다면서 “너 E지? E가 맞아” 하더라. (웃음) 선배들과 있으면 텐션이 올라가는 것 같다. 난 질문한 적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데 선배들 입장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남녀노소 누구와도 대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긴 하다. 상대가 교수님이든 친구 어머니든 서로 말을 주고받는 일이 어렵지는 않다.

 

인터뷰하면서도 느꼈다. 경직된 데가 없어 보인다.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표정도 풍부하다.

만나기 직전까지는 무척 떨리는데 눈을 마주 보고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긴장이 사라진다. GV도 그랬다. 심장이 머리에서 뛰는 것 같더라.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선배들이 괜찮다면서 “쟤 막상 무대 올라가면 바뀐다”고 했다. 그 말이 맞더라. 관객들과 눈을 맞추니 긴장보다는 설렘과 반가움이 커졌다. 믿음을 배반하고 싶지 않은,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 아닐까. 관객이든 기자든 나와 대화하려고 시간 내서 와준 사람들 아닌가. 애써 모였는데 가만히 앉아 있다 가면 누가 좋아하겠나. 시간만 아깝지. 뭐라도 얻어갔으면 하는 마음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것 같다. GV에서 간단한 영어 질문을 받은 경우, 나도 영어로 답한다. 내가 하는 말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데 일일이 통역하는 시간이 아깝더라. 다들 손 들고 질문할 차례를 기다리는 상황이니까. 누구나 알아듣고 이해할 정도라면 양해를 구할 수 있다고 본다. 어차피 영어를 유창하게 못 하니 귀엽게라도 하자 싶어서 인사부터 한다. Nice to meet you!

 

촬영은 얼마간 했나.

딱 1년 전에 촬영했다. 2022년 3월 말에 제주도로 가서 열흘 정도 머물렀다. 이틀간 관광하듯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촬영 장소를 물색했고 6회 차로 찍었다. 영화에 나온 펜션이 실제 우리 숙소였다. 숙박을 15일 예약했는데 감독님이 중간에 갑자기 서울 가자고 하시더라. “난 다 찍었는데 혹시 아쉬운 사람은 여기 더 있어도 돼. 예약 남았으니까 여행하다 와.” 다들 미련 없이 제주도를 떠났다. (웃음) 숙소에서 내내 함께 시간을 보냈다. 다 같이 밥 먹고, 놀고, 영화 찍고, 수다 떨고. 별 얘기도 안 한다. “죽기 전에 뭐 먹고 싶어?” “여자친구랑 어떻게 지내?” 이런 시시콜콜한 내용이 전부다. 감독님 안 계시면 배우들끼리 내일 어떤 장면을 찍을지 추측했다. 유채꽃밭에 갈 것 같다, 저번에 갔던 카페에서 누가 피아노를 칠 것 같다, 내일은 이런 옷을 입으라고 할 것 같다⋯. 근데 한 번도 맞힌 적이 없다. 모두 예상을 빗나갔다. 옷마저 한 벌만 계속 입지 않나.

<물안에서>
<물안에서>

안 그래도 단출한 옷차림을 보며 궁금했다. 시간 흐름을 모호하게 만들려는 의도인지, 아니면 일정이 바쁜 탓에 의상을 바꿀 겨를조차 없던 건지.

매일 밤 여쭤봤다. “감독님, 저 내일은 뭐 입어요?” 며칠이나 똑같은 걸 입으라고 하더라. 촬영 막바지에 다다르니 옷에서 냄새가 났다. 종일 걷고 바닷바람 맞고 그랬으니까. 선배들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다. 감독님이 한 사람씩 따로 연락하셨거든. 글쎄, 감독님 마음은 감독님만 알겠지. 질문을 받으면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 했다고만 답하신다. 실은 나한테 좀 꾸민 옷도 가져오라고 하셨다.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은 ‘꾸안꾸’ 스타일로 챙겨 갔다. 솔직히 여자 배우로서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나. 근데 끝까지 그 옷을 입으라고 안 하시더라. 외투도 가장 칙칙한 걸 고르시고. (웃음)

 

후반부에 성모가 촬영을 시작하면 흰색 점퍼로 갈아입지 않나.

제주에서 산 옷이다. 성모 영화에서 남희가 쓰레기 줍는 여자 역을 맡는다. 실제로 우리가 해변에서 그런 분을 봤다. 흰색 점퍼를 입은 여자가 바닷가를 돌며 조용히 쓰레기를 줍더라. 감독님이 그 이야기를 쓰고 싶으셨는지 갑자기 저렇게 생긴 옷을 구해 오라고 하셨다. 가게를 돌아다니며 최대한 비슷한 옷을 찾으려 했다. 성모가 목격한 여자와 성모 영화에 출연한 남희, 그렇게 쓰레기 줍는 여자가 두 번 나온다. 전자는 현장 스태프로 온 김소령 선배가 연기했다. 제작부로 일하다가 난데없이 대사를 외워야 했으니 선배도 날벼락 맞은 기분이었을 거다. 선배가 먼저 그 옷을 입고 연기했고, 그 모습을 본 다음에 내가 다시 입었다.

 

듣고 보니 흰색 점퍼는 현실과 영화가 여러 차례 겹치는 걸 보여주는 증거 같다.

GV에서 질문을 받았다. “성모랑 감독님이 닮았다고 생각하세요?” 난 그렇다고 했다. 성모가 그랬듯 감독님도 제주를 돌아다니며 실제로 보고 들은 것에서 영감을 받으셨으니까. 돌담에 핀 꽃을 보며 남희가 말한다. “노란색이 너무 예뻐요. 화려하지도 않고.” 그 대사도 감독님 취향을 반영한 것 같다. 편안하게 고운 느낌을 좋아하시는구나 싶더라.

 

대사 얘기를 좀 더 해보자. 남희는 간밤에 “정신 차려!”라는 정체 모를 외침을 들었다며 두 선배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갑자기 불안해지더라고요. 죄책감이 밀려오면서 기분이 이상해지더라고요.” 근데 문장과 달리, 목소리나 태도에서 부정적 감정을 찾긴 어렵다. 오히려 뭔가를 발견한 사람처럼 묘한 흥분과 기쁨에 차 있다.

일단 우리 숙소 상황부터 말하면 실제로 방음이 안 됐다. (웃음) 감독님이 진짜 그 일에서 아이디어를 얻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는 석호 선배가 잠꼬대를 외치듯 했다. 다들 놀라서 깰 만큼 큰 목소리로. 그날 밤이 떠올라서 우리는 대본 받고 한참 웃었다. 근데 제주에서 그런 얘기도 했다. 여태 살면서 겪은 일 중 가장 신비로운 경험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거든. 누구는 귀신을 봤다고 하고 누구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들려주고. 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순간이 문득 떠오르더라. 그건 두렵다기보다는 감사한 경험이었다. 영화에서 남희가 겪은 일도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공포 영화 같다는 감상평을 보고 놀랐다. 처음엔 ‘이게 왜 무섭지?’ 어리둥절했다. 내 경우엔 신앙이 있다 보니 일면 종교적으로 그 장면을 받아들였다. 날마다 회개해도 인간이기에 죄를 짓는다. 회개하는 마음을 계속 품고 사는 내 평소 모습대로 연기했고, 정신 차리라는 외침 역시 하나님의 음성으로 여겼다. 한편으로는 문자 그대로 정신 차려야겠다 싶기도 했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놀다 보면 가끔 ‘현타’ 오지 않나.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면서.

 

재밌는 해석이다. 종교적 깨달음과 위안을 간증하는 순간이라고 보면, 남희의 흥분 상태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너무 홀리하게 해석했나? 대부분 영화를 음산한 느낌으로 받아들이더라. 셋은 사실 유령이다, 낮인데 자꾸 밤이라고 하는 게 미심쩍다, 이건 다 성모의 꿈이다 등. 내 눈엔 쓰레기 줍는 여자가 예수님처럼 보였다. 아무런 대가 없이 속죄하는, 말하자면 신에 가까운 사람. 성모는 여자를 따라가려 하는데 처음엔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도 희미한 빛을 뒤쫓는 성모를 보면서 그가 조금씩 이상을 향해 간다고 느꼈다. 성모가 바다로 들어가는 엔딩도 마찬가지다. 신성하고 황홀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다. 물 안에서 성모는 허우적대지도, 다리에 힘이 풀려 고꾸라지지도 않는다. 영원히 그럴 것처럼 앞으로 계속 걸어갈 뿐이다. 그건 일종의 세례식 아닐까?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미 아닐까? 빛을 따르기로 결단한 성모의 뒷모습이 숭고해 보였다. 근데 많은 분이 우울하다고, 심지어 성모가 자살했다고 말하는 걸 보며 충격받았다. 해석의 여지를 좀 열어보고 싶더라.

 

<인트로덕션>(2021)에 이어 신석호 배우는 두 번째 바다 입수다. 엔딩 장면이 상당히 길게 이어지는데 실제 현장에서도 그만큼 촬영을 지속했나.

그대로 담았다. 음악도 현장에서 블루투스 스피커로 틀고 곧바로 녹음했다. 맨눈으로 봐도 정말 멀리까지 갔다. ‘감독님이 왜 컷을 안 하시지?’ 살짝 걱정했다. 석호 선배가 키가 큰데 컷 사인이 나오기 직전엔 발이 바닥에 닿을락 말락 했다더라. 실은 촬영 전에 우리끼리 “혹시 이번에도 바다 들어가는 건 아니겠지?” 얘기했던 적이 있다. 선배들한테 큰소리쳤다. 누군가 들어가야 한다면 내가 들어가겠다고. 근데 석호 선배가 뭔가를 예감했는지 그러더라. “아니야, 왠지 나인 것 같아” (웃음)

김승윤 ⓒ이영진

현장에서 촬영했던 기억과 완성된 작품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뭐였나.

촬영지에서는 확신이 불가능했다. ‘이렇게까지 리얼해도 매력 있을까? 내가 얘기하는 걸 감독님이 찍은 게 전부인데 이게 정말 영화가 될까?’ 완성된 영화를 보고 감동이 가시지 않아서 며칠간 울면서 일기를 썼다. 컷 하나하나 모여서 만들어낸 힘이 대단했다. 각각 캐릭터도 분명하고 제목, 스토리, 촬영이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감독님은 역시 천재가 맞구나 싶더라. 학교에서 연기와 연출 공부를 병행했는데 이번에 결심했다. 난 연기만 열심히 해야겠다고.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천재성을 확인했나.

배우에게 촬영 당일에 대본을 준다는 것 자체가 아무나 흉내 내서는 안 될 행동이다. 감독님이 아침마다 프린터로 대본을 출력해서 한 장씩 나눠주신다. 일일이 이름을 적어주시고 촬영 후엔 종이를 다시 걷어 가신다. 내 입장에선 꿈만 같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에 딱 집중하고 나면 그다음엔 모두 아지랑이처럼 사라진다. 무엇보다 감독님은 자연스러운 힘을 잘 활용하신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무언가 떠오르면 그걸 자연스레 영화에 가져온다. 근데 학교에 감독님 따라 하는 애들이 꼭 있거든. 계획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내일 아침에 말해준다고 하고, 자연스럽게 찍는 걸 좋아한다며 괜히 카메라 줌만 반복하고. (웃음) 나도 감독님 영화에 자주 나오는 대화 신을 과제로 찍어본 적이 있다. 인물 셋이 모여서 얘기하는데 너무 재미없더라. 감독님처럼 힘을 자연스럽게 쓰지도, 변수를 유연하게 다루지도 못하니까. 음악도 방에서 직접 만드신다. 편집 툴은 뭐 사용하시는지 궁금해서 여쭤보니 나랑 똑같은 사양이고. 결국 한 끗 차이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는 거다. 현장에서 감독님 카리스마에 놀라기도 했다. 상황에 굴하지 않는 꿋꿋함이라고 해야 할까. 제주도가 워낙 붐비지 않나. 촬영하면 다들 수군거리고 들여다보는데 감독님이 앞에서 딱 말씀하셨다. “영화 좀 찍겠습니다. 잠깐 조용히 해주세요.” 그러고 나서 누가 속삭이거나 말거나 영화에 오롯이 집중하셨다. 덕분에 배우로서 힘을 얻었다. 내가 의심하거나 불안해할 이유가 없더라. 감독님 마음은 확고하니까. 그건 진심으로도 부족한 마음이다. 감독님을 영화를 전심으로 대한다.

 

연출 공부는 어쩌다 시작했나. 연기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지만 은근히 욕심이 남아 보이는데.

건국대 영화과가 원래 연출과 연기를 동시에 가르친다. 연출 수업에 가봤는데 재밌더라. 사실 입학할 때만 해도 내가 중퇴할 줄 알았다. 배우로 빨리 잘 돼서 대학 관둘 거라고 예상했지. 누구나 처음엔 꿈을 크게 꾸지 않나. (웃음) 성적 관리에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냥 재밌게 학교 생활을 했다. 근데 오디션에서 재차 떨어졌다. 연기할 곳이 마땅치 않으니 답답하더라.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연출을 배웠고 편집도 할 줄 아니까. ‘누가 날 안 찍어주면 어때. 내가 연출하면 되지.’ 그렇게 학교에서 힘을 좀 길렀던 것 같다. 졸업 영화도 연출로 제출했다. 물론 연출 전공자만큼 잘 만들진 못했지만 만족한다.

 

연출작에 직접 출연도 했나.

졸업 영화만. 다른 실습작에선 친구들을 출연시켰다. 학교에 연출하는 애들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연기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정작 찍어주는 사람이 없는 거다. 무명이긴 해도 친구들에 비하면 난 카메라 앞에 설 기회를 조금이나마 잡는 상태였다. 깨작깨작 광고도 찍고. 난 학교 밖에서 찍히는 사람이니 학교 안에서는 찍는 사람이 되자 싶더라. 친구들과 농담처럼 이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우리 영화과야! 걱정하지 마. 우리끼리 북 치고 장구 치면 다 돼!” 서로 의지하며 힘든 시간을 버틴 것 같다.

 

과대 스타일인데. 졸업영화제에서 사회도 봤더라.

과대처럼 막 책임지고 여러 사람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다. 사회자도 얼렁뚱땅 맡게 됐다. 다만, 어떤 위기감 내지 아쉬움이 쌓이긴 했다. 교내 영화관 ‘KU 시네마’를 참 좋아하는데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활기를 잃는 게 보였다. 영화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 점차 줄어드는구나 싶더라. 학교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부터 에너지가 떨어졌고 그게 너무 안타까웠다. 졸업영화제를 기획하는 친구들이 힘을 냈으면 해서 장난으로 문자를 보냈다. “김승윤, 사회자 지원합니다!” 내 딴에는 응원 메시지였는데 연락이 왔다. “진짜 언니가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무도 지원을 안 해요.” 솔직히 막막했는데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처럼 보이긴 또 싫었다. 기왕 맡은 거 신나게 하자고, 우물쭈물하면서 영화제 텐션 떨어뜨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끝나고 나니 좋은 추억이다. 친구들이 기운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길 잘한 것 같다. 후배들이 날 보면서 ‘내년에 나도 저거 하고 싶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생기고. 최대한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같은 느낌으로. (웃음)

김승윤 ⓒ이영진

학교 안과 밖에서 배운 영화, 그리고 홍상수 감독 현장에서 경험한 영화가 각각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비교해서 말해 볼 수 있겠나.

졸업하면서 몇몇 교수님께 감사하다고 메일을 썼다. 난 학교에서만 연기를 배웠다. 짧은 입시 기간을 제외하면 연기 학원도 다녀본 적이 없다. 그런 나에게 학교는 마음껏 깨지고 말랑해져도 되는 공간이었다. 실수해도 괜찮은 곳, 누가 날 선택해 주지 않아도 계속 연기할 수 있는 곳. 그게 너무 감사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소속사가 생기면서 희망에 부풀었는데 기대만큼 결과를 내지 못하니 힘들었다. 혼자 울기도 많이 울고. 근데 펑펑 울고 나서 ‘내일 학교나 가자’ 생각하면 괜찮아지더라. 내일 갈 곳이 있고 거기서 또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았다. 내 에너지가 죽지 않도록 북돋아 준 곳이다. 학교에선 못해도 다 같이 지켜봐 주고 끝나면 서로 손뼉 친다. 작게나마 좋은 일이 생기면 스스럼없이 응원하고. 힘들 때마다 학교 연습실에 가서 혼자 발성 연습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학생이라는 사실이 날 지켜줬던 것 같다. 수업과 시험도 일종의 스케줄 아닌가. (웃음) 한편, 학교 밖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리면 속이 좀 쓰리다. 때로는 실력보다 인맥이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세상에 그만큼 잘난 사람이 많은 걸까, 아니면 비교하는 사람이 많은 걸까? 어쨌거나 편안하기보다는 고된 느낌에 가깝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오디션에 떨어진 원인을 분석하다 보면 미치겠고. 아직 한 작품을 쭉 끌고 가는 캐릭터를 맡은 적은 없다 보니 이따금 ‘나 여기에 배우로 와 있는 거 맞나?’ 혼란스럽기도 하다. 홍상수 감독님 현장은 또 다르다. 분명히 대중에게 공개할 작품인데, 모두 그 사실을 알 만큼 유명한 현장인데 이상하게도 상업적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 그냥 선배들과 재밌게 놀았던 기억뿐이다.

 

<물안에서>가 특이한 경우였을 수도 있고.

선배들 말로는 내가 와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라. 원래 현장은 훨씬 조용하다고. 근데 난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하진 않았거든. 선배들이 베를린에서 자유롭게 관광한 적도 거의 없다고 해서 놀랐다. 난 구글 맵에 즐겨찾기 한가득 저장해 놓고 출발했다. 선배 붙잡고 “여기 꼭 가야 한대요” 하면서 다리 터지도록 돌아다녔다. (웃음) 감독님은 항상 고맙다고 하셨다. 혼내거나 핀잔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도록 도와주셨다. 설령 영화가 완성되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영화를 엎을까 봐 불안했지만 이미 값진 경험을 했으니 감당할 수 있다고. 근데 감독님이 촬영을 마치고 말씀하셨다. “너희 덕분에 좋은 영화가 나올 것 같아. 고마워.” 잊지 못할 순간이다. 나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싶더라. 상업 현장에서 “프로답게” 처신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근데 때로는 그 말이 나를 잃거나 뭔가를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거든. 프로다움에 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요약하면 감독님 현장은 너무너무 재밌었다. 베스트 프렌드를 찾은 느낌. (웃음)

 

누구보다 수월하게 적응한 것처럼 보였는데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았나 보다. 왜 영화가 중간에 엎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나.

한 컷 한 컷은 정말 소소했거든. 어떻게 엮일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여자 주인공이 나라니 이대로 괜찮은가 싶더라. 실은 연기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던 무렵에 감독님께 연락을 받았다. 침체기였다. 이곳을 떠날 수는 없는데 길이 안 보였다. 이 정도로 기회가 없다는 건 연기하지 말라는, 내가 배우 깜냥이 아니라는 뜻 같고. 연출부 막내 스태프 자리에 들어가서 삼각대라도 나를까 싶더라. 그렇게 답 없는 고민을 반복하며 시나리오 공모전을 준비하는 와중에 감독님께 전화가 온 거다. 반가웠지만 자신이 없었다. 내가 배우처럼 보이긴 할까? 화면에 나오면 쳐다보고 싶은 사람일까? 무엇보다 연기할 수 있을까? 혼자 연습만 했지 현장에서 연기한 지는 너무 오래된 상태였다. 하지만 내가 또 부끄러워도 할 건 다 하는 사람 아닌가. (웃음) 일단 도전하긴 했지만 속으로 ‘영화가 엎어져도 괜찮아’ 되뇌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방패를 세운 셈이다. 내게 귀한 작품이란 건 사실이지만 감독님 명성에 누를 끼친다면 안 만드는 것이 당연하니까. 감독님이 이렇다 저렇다 말씀을 안 하셔서 조마조마했다. 사인도 조용하게 보내셨거든. “컷!”이 아니라 “컷⋯ 이건 된 것 같아⋯” (웃음) 근데 다 끝나고 나서 칭찬해 주셨다. 잘했다고, 계속 연기하면 좋겠다고.

 

어떻게 감독은 그 타이밍에 김승윤을 떠올렸을까. 각별할 수밖에 없겠다.

난 선물이라고 표현한다. 진짜 큰 선물. 쉽게 포기하지 말자는 생각이 든다. 넌 얼굴이 어떻고 급이 어떻고 하는 말을 계속 들으면 겁이 난다. 여기 진짜 무서운 세계구나. 그러다 스스로 깎아내린다. 내 모든 부분이 별로인 것만 같다. 외모, 연기, 성격 다 남보다 한참 모자란 것 같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질 때 감독님을 만났다. <물안에서>는 내게 동아줄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교수님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다. 이런 순간을 맞이할 수 있어 행복하다. 지금 인터뷰도 ‘라디오스타’ 나온 기분으로 하고 있다. (웃음)

 

나도 안영미처럼 해주고 싶은데. (웃음) 대학 들어가기 전엔 어떤 사람이었나. 연기를 비교적 늦게 시작한 경우 같다.

어릴 적부터 성대모사를 좋아했다. 주변 사람 똑같이 흉내 내고 TV에 재밌는 거 나오면 무조건 따라 했다. 선배들 말대로 무대 체질인가 싶다. 내 발로 무대에 올라가진 않는데 누가 무대에 올려놓으면 그 기회를 놓친 적은 없다. 원래 꿈은 아나운서였다. 어른들이 잘 어울린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다 지망하는 대학에 떨어지고 성적에 맞춰 진학하게 됐다. 학교에서 홍보 사진을 찍었는데 우연히 몇 번 더 모델 일을 하게 됐다. 한 포토그래퍼가 이쪽 일을 제대로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묻더라. 카메라 앞에 서는 걸 보니 연기도 잘할 것 같다고. 양심에 손을 얹고 자문했다. 왜 아나운서가 되려고 했지? 진짜 되고 싶은 건 배우였다. 방송국에 취직하고 몇 년 후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연기 쪽으로 빠질 계획이었다. 최종 목적지는 명확한데 바로 도전할 엄두를 못 냈던 거다. 내가 속한 환경이 그랬다. 꿈이 아나운서라고 하면 다들 멋지게 봐주지만 배우라고 하면 눈빛이 달라졌다. 왠지 착실하지 못한 학생 같고. 고민 끝에 연기 학원을 찾아갔다. 내가 상술에 넘어간 걸 수도 있는데 다들 좋은 얘기를 해주더라. 넌 잘할 것 같다고, 열심히 하면 가고 싶은 학교 다 갈 수 있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곧바로 대학에 자퇴서를 냈다.

<물안에서>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

언젠가 이럴 줄 알았다면서 속 시원하다고 하시더라. “승윤이는 왠지 모르게 늘 내숭 떠는 느낌이 들었는데 차라리 잘 됐어” 부모님이 마음껏 꿈을 펼쳐보라며 지원해 주셨다. 나중에 포기해도 괜찮으니 지금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본가가 전주인데 그때부터 서울에 올라와서 입시를 준비했다. 고시원에서 잠만 자고 나머지 시간엔 학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6개월 만에 건국대를 포함해 여러 대학에 합격했다. 그제야 비로소 확신이 생겼다. 내가 영 끼가 없진 않구나. 그렇게 스물하나에 연기를 시작했다.

 

이십 대를 알차게 보내고 있다. 학생 신분을 막 벗어난 참인데 요새 마음은 어떤가. 조바심은 잦아들었나.

시작할 때부터 멀리 보자고 생각했다. 그래도 서른에는 누가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작품이 하나쯤 생기길 바랐다. 근데 서른도 되기 전에 <물안에서>를 찍었다. 지금은 힘을 가득 채운 상태다. 주변에서도 갑자기 예뻐졌다고 한다. 난 달라진 데 없이 똑같은데 신기하더라.

 

기운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난 딱히 못 느끼거든. 하여간 계속 연기해야 할 것 같다. 다른 일은 연기만큼 오래 할 자신이 없다. 어릴 적에 “넌 평범하게 살긴 힘들 것 같다”는 말을 듣곤 했다. 예전에는 무서웠는데 이젠 아니다. 감정에 솔직하고 기복도 심한 편이다. 잘 울고, 잘 웃는다. 이게 배우에게 엄청난 무기더라. 사람과 삶을 사랑하면, 그 감정을 전달할 능력이 있다면 계속 연기할 수 있다. 나랑 잘 맞는 일 같다.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도 할 수 있는 일이고. 앞으로 다양한 작품을 만나고 싶다.

 

영화에서 성모가 인생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사는 인생, 김승윤은 어떻게 살고 싶나.

오래전부터 사랑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랑 일하는 사람들이 다 즐거웠으면, 관객들이 날 보며 힘을 얻었으면 했다. 근데 이번에 확실하게 알았다. 타인이 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타인을 의지하더라. 촬영장에선 감독님과 선배들에게 기댔고 극장에선 관객에게 기댔다. 그간 날 주도적인 사람으로 여겼는데 알고 보니 혼자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더라. 타인을 의지하며 겨우 살아가고 있구나. 사랑을 주기보단 받는 데 익숙하구나. 그걸 깨달아서 요즘 굉장히 부끄럽다. 날 향한 믿음에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다.

 

하루하루 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하루하루 잘 지내라” 그게 우리 팀 인사다. 감독님한테 사인을 부탁드렸는데 “좋은 마음으로 하루하루 잘 지내라” 이렇게 적어주시더라.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작품을 소화할 능력이 생긴다. 믿음에 보답하려면 자신을 잘 돌봐야겠구나 싶다. 하루하루 잘 먹고 무사해야지. 얼마 전 관객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영화 보고 숨통이 트였다면서 고맙다고 하더라. 내가 뭐라고 이런 말을 듣나 싶은데 덕분에 꿈이 늘어난다. 관객들이 헤어지기 전에 인사하거든. “다음 작품 기다릴게요. 배우님 응원해요.” 누군가 날 기다릴 때, 그때 딱 눈앞에 나타나고 싶다. 서로 얼굴 알아보며 반갑게 또 인사 나눴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 나도 든든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어떤 신인 감독이 나한테 기댈 수도 있고, 내가 선배들에게 그랬듯 후배가 날 의지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당분간은 좀 더 기대볼 생각이다. 한꺼번에 너무 무리하면 안 되더라. (웃음)

 

안 해본 것이 많다.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만나고 싶나.

생각만 해도 설렌다. 김민희 선배님을 좋아했는데 이번에 같이 작업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선배님 앞에서 <연애의 온도>(노덕, 2013) 대사를 읊으며 성대모사 했다. “내가? 내가 내 맘대로라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춰주고 있는데 뭐가 내 맘대로라고?” 입시생 사이에서 연습 대사로 유명하거든. 전부 외우고 있어서 선배님 뵙자마자 보여드렸다. (웃음) 나도 그런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입꼬리가 덜덜 떨릴 만큼 애절한 가족 드라마도 좋고 진한 로맨스라면 두 팔 벌려 환영이다. 로맨스 연기를 해본 적이 없다. 갈수록 사랑 영화가 줄어든다는 느낌이다. 자극적이고 통쾌한 영화가 대세인데 난 여전히 사랑 이야기에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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