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도 그리는 숙제를 받아 든 소년은 난감하기만 하다. 빈칸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서다. 유일한 가족인 엄마는 어쩐 일인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소년은 궁금하다. 나는 과연 어디서 왔을까?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캐나다에 이주해 1990년대를 보낸 소영(최승윤)과 동현(이든 황) 모자의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는 정체성에 관한 심오한 고뇌에 빠져들기보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구체적 얼굴에 더 집중한다. 동급생들의 놀림에 당차게 맞서던 어린 동현(황도현)이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자라는 동안 소영은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일만 한다. 인종차별과 시한부 선고처럼 다소 익숙한 사건들을 경유하지만 영화가 그것을 소화하는 방식은 전혀 빤하지 않다. 그 중심엔 최승윤이 그려낸 “독립적이고 씩씩한 여자”가 있다.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여러 공연을 무대에 올린 최승윤은 그간의 고민을 담아 <아이 바이 유 바이 에브리바디>(2019)를 공동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동료의 눈썰미 덕에 “딱 맞는 배우”를 만났다는 앤서니 심 감독 역시 다양한 역할로 스크린과 무대를 누벼온 배우다. 2019년에 첫 번째 장편 <도터>를 완성한 그는 한국계 이민자로서의 경험과 부모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두 번째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를 만들었다. 소영과 동현이 캐나다에서 한국에 이르는 여행을 하는 동안 재주 많은 두 창작자는 어떤 여정을 거쳤을까?
캐나다에서 자란 동현은 10대 청소년이 돼서야 본인과 부모의 고향인 한국에 발을 딛는다. 감독에게도 비슷한 한국 방문의 기억이 있나.
앤서니 심_ 8살에 캐나다에 이민했고 18살에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이었는데 부모님이 한국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하시더라. 그때 갔던 곳이 강원도다. 할아버지가 태어나 자랐고 우리 식구의 히스토리가 있는 땅이다. 외국에 살 때는 나와 땅이 아무 관계가 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난 항상 방문자였다.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캐나다에서도 외국인, 서울에서도 외국인이라고 불렸다. 그럼 내 고향은 어딜까? 그런데 강원도에서 처음으로 다른 감정을 느꼈다. 거기서 난 방문자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과거가 그곳에 있었다.
예전부터 한국계 이민자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왔나.
앤서니 심_ 1990년대 이민자들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민 생활 전반을 다루고 싶었던 건 아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많이 고민했다.
이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는? 부모의 나이가 되어서 비로소 시작한 프로젝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앤서니 심_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 부모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하다가 이 이야기에 이르렀다. 부모님이 딱 내 나이에 이민하셨다. 지금도 상상하기 어려운데 그때는 더 힘들었을 거 아닌가. 한국 TV도 못 봤을 테고 한국 음식도 찾기 어려웠겠지. 인터넷이 없으니 당연히 화상 채팅도 못 했을 거다.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그런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고 여기며 하고 싶은 걸 다 하려고 했다. 촬영이나 사운드처럼 기술적인 부분까지 말이다.


등장인물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 주인공의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봐야 하는 영화여서 소영을 연기할 배우가 특히 중요했을 거다. 최승윤 배우는 안무가, 무용가, 연출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오디션을 보게 됐나.
최승윤_ <아이 바이 유 바이 에브리바디>를 부산에서 상영했을 때 우연히 캐스팅 디렉터 수 킴을 만났다. 앞으로 연기할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하더라. 당시에는 별로 그럴 마음이 없었다. 이후엔 종종 안부만 묻고 지냈다. 그렇게 3년 정도 지났을 때였나, 역시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데 그분이 이 프로젝트 얘기를 꺼냈다.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계속 설득 아닌 설득을 하시는데 뭔가 이유가 있는 것만 같고. (웃음) 캐나다 프로덕션이지만 한국 사람들 이야기여서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인생 첫 오디션을 봤다. 그 전에 영화를 만들었고 친구들 프로덕션에 출연한 적도 있어서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낯설지는 않았다.
앤서니 심_ 수가 정말 잘하는 게 사람의 잠재력을 보는 거다. 처음 승윤 씨 얘기를 했을 때, 배우가 아닌데 왜 굳이 추천하는 거냐고 물어봤다. 말로는 표현 못 할 뭔가가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승윤 씨가 전에 찍었던 영상들을 받아서 봤는데 정말 독특한 뭔가가 있었다. 카메라에서 탁 튀는 에너지라고 할까.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실은 소영 역을 캐스팅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북미에서 시작해 한국까지 돌며 찾았는데도 딱 맞는 배우가 없었다. 배우를 못 찾으면 영화를 안 만드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관객이 이 역할을 믿지 않으면, 감동을 줄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여겼으니까. 딱 맞는 사람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오래 걸려 승윤 씨를 만났다.
영화가 담백하다. 특정 이미지를 재현하거나 이야기를 꾸미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할까 최승윤 배우는 처음 시나리오 읽고 어땠나.
최승윤_ 소영이 너무 용감하고 씩씩한 여자라서 처음엔 과연 사람이 이 정도로 용감할 수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할머니나 어머니처럼 내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꽤 있더라. 소영이 그리 낯설거나 과장된 인물은 아니었던 거다. 그렇게 소영과 점차 가까워졌다. 물론 이민자의 삶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한국인이라고 다 같은 한국인인 건 아니지 않나. 자기가 속한 사회와 환경에 따라 사는 모습도 달라진다. 그런 부분은 감독님의 도움을 받았다. 프리 프로덕션에서 다양한 자료를 공유했고 리허설도 많이 했다.
앤서니 심_ 외국에서 TV로 접한 동양인 여성의 이미지는 항상 되게 조용하고 화도 잘 안 내는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 그게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코미디나 쿵푸를 했지. 게다가 한국 여성 캐릭터는 훨씬 드물었다. 그런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 내가 아는 여성들, 어머니, 이모, 할머니를 상상하며 소영이란 역할을 썼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내게 익숙한 그 캐릭터를 보며 외국 관객들도 “우리 엄마 같다”고 반응하더라.
시나리오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인물들이 한국어와 영어를 혼용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았다는 것이다. 사춘기 소년이 된 동현과 소영은 그들만의 언어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앤서니 심_ 내가 아는 대로 솔직하게 쓴 거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 쓰는 말이 진짜 독특하다. 나와 동생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니다. 우리가 지어낸 단어도 많고. 그런 모습을 미디어에서는 많이 못 본 것 같다. 실제로 그렇게들 사니까 영화에도 넣고 싶었다.
최승윤_ 한국어로 연기할 땐 나와 한국어가 가깝다. 내 생각이 한국말로 표현되는 게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반면 영어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감정을 싣기가 어렵다. 일상적인 말을 하는 건 더 어렵고. 외국에서 잠깐 생활한 적이 있는데 그때 먹고 살기 위해 영어를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그럴 땐 발음을 잘하기 위해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당장 그 말을 뱉지 않으면 소통할 수 없고 마음을 전할 수 없으니까.
앤서니 심_ 서바이벌 영어다.
최승윤_ 정말 생활 영어.
소영이 동현의 학교 선생님과 얘기할 때가 떠오른다. 너무 화가 나는데 그래도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최승윤_ 한국말로 하면 더 조목조목 따질 수 있는데 그럴 수 없으니 더 분하지.
앤서니 심_ 그것도 내가 많이 본 광경이다. 한국 분들은 외국 사람들과 싸우다가 분하고 화가 나면 그냥 한국말로 욕을 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 뜻은 모르지만 나쁜 말이라는 건 또 느낀다. (웃음) 소영도 마찬가지다. 너무 답답하니까 한국말이 막 나오는 거다.


배우는 소영의 삶을 이해하고 연기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나. 세대와 경험이 다른 데다 표현해야 하는 나이의 폭도 넓었는데.
최승윤_ 연기를 전문으로 배운 게 아니라서 내가 모르는 인물을 만들어낼 줄 모른다. 어설프게 접근하기보다 그 모든 재료를 내 안에서 찾으려고 했다. 예를 들면 아들과의 관계. 나는 아들이 없잖나. 엄마라면 어떨 것이라고 가정하기보다 동현을 연기한 황도현 배우, 이든 황 배우와의 실제 관계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감독님이 장려해주셔서 배우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자연스레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생기더라. 또 소영이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당시 대중문화를 많이 찾아봤다. <라이스보이 슬립스>가 1990년대부터 시작하니까 소영은 70년대와 80년대를 한국에서 보냈을 거다. 그즈음의 한국 영화와 음악을 통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느꼈을 정서에 접근하려고 했다.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영화를 전부 봤다. (웃음) 쎄시봉부터 김민기까지 음악도 많이 들었다.
찾아본 영화에서는 어떤 힌트를 얻었나.
최승윤_ 당시 영화 속 여자들이 지금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모습보다 더 당돌하고 톡톡 튄다. 그게 참 재밌고 흥미로웠다. 아마 소영도 그랬겠지. 감독님이 보내주신 LA 폭동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인상 깊게 봤다. 외국 기자가 찍은 영상 속 한국 이민자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특정한 행동보다도 그들이 삶에 임하는 태도를 눈여겨보게 되더라. 아무래도 더 절박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가장 마음을 건드리는 소영의 대사나 행동을 떠올려본다면.
최승윤_ 내게는 고려장 이야기가 큰 감동을 준다. 처음엔 왜 그 타이밍에 사이먼한테 그런 얘기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나중에 깨닫게 된 게 있다. 우선은 사이먼에게 은유적으로 이별을 말하기 위해서였을 거다. ‘나는 당신과 결혼할 수 없어요. 아직 아들을 위해 할 일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그 이야기가 소영을 단순히 희생하는 엄마로만 해석하지 않게 만든다. 소영은 아들을 위해서 사는 만큼 자기를 위해서도 사는 인물이다. 소영은 고려장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의 여행을 미리 언급하는 것 같다. 세상에 홀로 남겨질 아들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여행 말이다. 동시에 그 이야기가 소영의 결심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외면하고 버려두고 떠나온 과거를 죽기 전에 다시 방문하려는 결심. 그러니까 그건 소영의 용기 있는 선택이기도 한 거다. 그래서 씩씩하게 연기하고 싶었는데 한번은 눈물이 나더라. 그런데 감독님이 그 테이크를 썼지. (웃음)
앤서니 심_ 다 이유가 있다. 다른 테이크에서는 너무 말을 잘하려는 게 보였다.
최승윤_ 롱테이크로 찍었기 때문에 영어 대사를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다.
앤서니 심_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좀 기계적인 느낌이었다. 감정이 드러난 테이크는 그 감정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좋아서 쓴 거다. 너무 울고 싶은데도 상대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어서 속으로 갈등하는 게 느껴지더라.
최승윤_ 사이먼이 그 정도 했으면 남은 생은 그에게 기대서 살 수도 있을 텐데, 소영은 그걸 거부하니까. 거기서 텐션이 생긴다.
앤서니 심_ 그걸 받아들이기에는 소영은 자존심이 너무 강하지. 여태까지 혼자서 살아왔잖나. 소영은 그렇게 끝날 사람이 아니다.
사이먼이 처음 등장했을 땐 너무 멋있는 캐릭터가 될까 봐 긴장했다.
앤서니 심_ 멋있지 않았나? (웃음)


문제를 다 해결해 줄까 봐 걱정했는데 그게 아니라서 안심했다. (웃음) 사이먼이라는 인물한테서는 소영과 동현 곁을 말없이 지키고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앤서니 심_ 사이먼은 동현과 소영은 물론이고 동현의 작은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는 캐릭터다. 부족함을 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이먼 역시 한국을 궁금해하고 어떻게든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찾고 싶어 한다. 그걸 소영이나 동현과는 다른 앵글로 찾을 뿐이다. 시나리오 쓸 때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 사람이 원하는 건 소영을 웃게 해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거다. 중요한 건 소영이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다. 소영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이고 거절하기도 한다. 내가 본 이민자들의 모습이 그랬다. 그 아름답다는 나라에 이주해 몇십 년을 지내면서도 좋은 걸 하나도 못 즐기고 살아온 분들이 많다. 그런 삶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최승윤_ 돌이켜보면 공장 언니들과 촬영했을 때랑 사이먼과 촬영했을 때가 제일 좋았다. 캐나다에서 늘 전투하며 사는 소영이 그때 처음으로 웃거든. 단맛이 있는 촬영이었다. (웃음)
앤서니 심 감독은 처음에 <라이스보이 슬립스>를 코미디로 생각했다고 말한 적 있더라. 당사자로서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데 웃음과 유머가 동반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건가.
앤서니 심_ 처음부터 내게 가장 중요했던 건 비슷한 삶을 살았던 분들이 진솔하다고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거였다. 그때 떠올렸던 아이디어에는 웃긴 게 많았다. 영화 앞부분에 나오는 장면들, 재밌지 않나? 영어 이름을 선택해야 하는데 아이는 잘 모르니까 ‘마이클 조던’이 되고 싶다고 하잖나. 말썽부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는 게 그거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다. 처음엔 그런 부분에 집중해서 코믹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계속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장르가 중요한 게 아니더라. 캐릭터들의 삶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고자 했다.
최승윤_ 아이 이름처럼 처음엔 소영 혼자 고민하던 문제를 10년 뒤에는 공장 사람들과 다 같이 이야기하면서 웃는 게 너무 좋았다. 커뮤니티가 생긴 거고 그 안에서 여러 고민이 웃음으로 승화된 거니까. 동현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느낄 때도 비슷하다. 에고트립이 아니라 삼촌이랑 목욕탕에서 물놀이하는 장면 하나로 다 보여주는 이 영화의 방식을 좋아한다.
소영이 자기 병을 알게 된 후 공장 동료인 미선과 나누는 대화도 인상적이다. 소영이 갑자기 오픈카 얘기를 꺼내면, 미선이 한국인은 머리카락이 굵어서 오픈카 타고 나면 머리가 부스스해진다고 말한다. 웃기고 슬프고 따뜻하기까지 한 장면이다.
앤서니 심_ 그런 말을 이민 동기분들이 실제로 많이 하셨다.
최승윤_ ‘남의 것을 따라 해도 결국 우리는 우리다’라는 걸 미선 언니가 재밌게 얘기해준 게 아닐까. 너무 의미심장한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웃음)
앤서니 심_ 꼭 오픈카가 중요한 건 아닐 거다. 아프다는 걸 알고 나서 소영은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걸 하나도 못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오후에 공원에 간 것도 그날이 아마 처음이었을 거다. 오픈카를 타거나 남자와 로맨틱하게 춤추는 것처럼 소영에게도 판타지가 있었겠지. 곧 죽을 수도 있는데 조금이라도 즐겨보고 싶지 않았겠나.
최승윤_ 그러니까 소영이 단순히 희생하는 엄마는 아닌 거다.
앤서니 심_ 맞다. 난 어렸을 때 부모님을 욕심 없고 강인한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아버지가 엄청 터프하셨는데 아픔도 못 느끼는 존재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 아버지가 할아버지 칠순 잔치 때 눈물을 흘리셨다. 그때 아버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깜짝 놀랐다. 아버지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란 걸 처음으로 느꼈다. 엄마는 옷과 신발을 좋아하셨다. 하지만 그땐 쇼핑을 자주 할 수 없었다. 일을 오래 하셨고 돈도 많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언젠가 엄마가 새 신발을 사고 엄청 즐거워하신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엄마더러 신발이 그렇게 많으면서 왜 또 사냐고 했다. 정말 무신경했지. 많다고 해봐야 다 헤지고 낡은 신발이었을 텐데. 그 말에 상처받은 엄마를 보며 엄마도 여자고 사람이라는 걸 생각했다. 모든 부모가 마찬가지다. 자기 역할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욕심이 없는 건 아니잖나. 영화에서 그런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최승윤_ 한 사람 안에는 정말 많은 레이어가 있으니까.


촬영 콘셉트는 어떻게 잡았나.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한 발 멀리서 혹은 문 뒤에서 인물들을 지켜볼 때가 많다. 누군가의 시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앤서니 심_ 카메라 감독과 처음부터 이야기했던 건 죽은 아버지의 시선으로 보자는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카메라 위치와 움직임을 정했다. 그래서 사이먼이 나오는 장면은 숨어서 보는 느낌이 든다.
16mm 필름으로 촬영하는 것도 처음부터 결정한 사항이었나.
앤서니 심_ 그렇다. 어릴 때부터 필름을 좋아해서 영화도 필름으로 찍고 싶었다. 8mm, 16mm, 35mm, 65mm를 다 비교해봤는데 우리가 원하는 90년대 느낌에는 16mm가 제일 잘 맞는 것 같더라.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옛날 사진 앨범처럼 느끼길 원했다. 그런 앨범에는 초점이 안 맞거나 프레이밍이 완벽하지 않은 사진들, 찢어지거나 접혀있는 사진들이 들어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소중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에도 초점이나 프레이밍이 살짝 늦게 맞는 장면들이 있다. 너무 완벽하게 찍으려 하기보다는 그런 불완전함을 우리 스타일로 만들려고 했다.
최승윤_ 대사도 마찬가지다. 더듬거나 실수한 부분이 꽤 있다.
앤서니 심_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말하니까. 틀렸을 때 “죄송합니다!”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고쳐서 말하는 게 리얼하잖나. 그런 게 담기길 원했다.
최승윤_ 테이크가 길어서 긴장되기도 했다. 무용수로서 무대에서 하는 작업과 비슷하게 느껴지긴 하더라. 무대에서는 무용수 한 명이 앞에 저질러놓은 것과 뒤에 일어날 일을 다 책임져야 한다. 동작 하나 삐끗했다고 “다시 하겠습니다.”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면에선 낯선 작업이 아니었지만 대사를 소화해야 한다는 건 도전이었다. 근데 그래서 더 재밌었다. 쫀득쫀득했다. (웃음) 현장 자체의 긴장도와 집중력이 남달랐다.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
필름 촬영이라 리허설을 꼼꼼히 해야 했을 텐데.
앤서니 심_ 나 역시 무대 경험이 많아서 리허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리허설을 할수록 배우들이 자신감을 얻는다. 영어에 ‘Happy Accidents’라는 표현이 있다. 실수가 어떤 장면을 상상도 못 할 만큼 좋게 만들어주는 거다. 그러려면 자신감과 믿음을 가지고 마음 놓고 촬영해야 한다.
최승윤_ 준비하는 첫 주에는 감독님이 연기 선생님이 되어서 이것저것 가르쳐주셨다. 나를 포함한 다른 배우들의 연기 경험이 많지 않았거든. 몸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배우고 즉흥도 많이 해봤다. 그 다음에 리허설에 들어갔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있고 그걸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리허설을 하는 건 맞지만, 그렇게 연습했기 때문에 오히려 배우들이 현장에서 놀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무용도 마찬가지다.
밴쿠버는 1.33:1의 화면비로, 강원도는 1.78:1의 화면비로 찍었다.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나.
앤서니 심_ 시나리오에 이미 그렇게 써놨다. 캐나다는 어마어마하게 땅이 크지만 인물들의 삶은 각박하고 여유가 없다.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니까 주변을 잘 돌아보지도 못한다. 한국은 캐나다와 비교하면 작은 나라이지만 이곳에 온 동현과 소영이 마음을 열고 더 많은 걸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화면비로 그런 것들을 표현하려고 한 거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동현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는 영화다. 앤서니 심 감독의 전작 <도터>에서도 가족의 죽음이 중심 사건이다. 죽음을 계속 다루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바가 있나.
앤서니 심_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두려웠던 건 아니고 사람들이 누군가를 잃고 나서 그걸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가 궁금했다. 그게 참 신기하다. 각자 다르거든. 영화에서 사람들이 울고 싸우는 장례식은 많이 봤지만, 그들이 다 가고 난 뒤 누군가 혼자 남은 모습은 잘 못 본 것 같다. 첫 영화에서는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최승윤 배우는 여전히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카메라에 기록된 본인을 보는 건 어떤 경험이 되어가고 있나.
최승윤_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을 권유받을 때마다 거절했던 이유가 그게 영원히 남는 게 싫어서였다. 아마 그런 성격 때문에 무용을 했던 것 같다. 무용은 남지 않으니까. <라이스보이 슬립스>를 찍고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볼 때만 해도 집중이 하나도 안 됐다. 자꾸 나만 보였다. 왜 저렇게 했나 싶어 괴로웠다. 그런데 영화가 관객을 만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결국은 내가 남는 게 아니라 작품이 남는 거더라. 요즘엔 영화를 찍는 게 나보다 더 큰 어떤 것에 속하게 되는 거라는 걸 체감하고 있다.
배우로서 목표하는 바가 있나.
최승윤_ 없다. (웃음) 유일한 목표는 열려있는 거다. 인생이 내게 주는 기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와 열린 마음이 있으면 좋겠다. 딱 그 정도의 목표만 가지고 있다.
앤서니 심 감독은 배우로 먼저 커리어를 시작했다. 어떻게 연기를 하게 됐나.
앤서니 심_ 고등학교 들어갈 때 수업을 선택해야 했다. 주변 남자애들은 주로 목공이나 차 수리 같은 걸 했다. 난 그런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 대신 어머니가 권유하신 연극을 택했다. 어머니가 한국에서 대학교 다닐 때 극단 동아리 활동을 하셨다.
최승윤_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공연하셨다고 한다.
앤서니 심_ 연기하는 게 너무 좋았다고 하시더라. 그때 난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할 만큼 소심했다. 무대에 서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하시기에 별 생각 없이 해봤는데 되게 자연스럽고 재밌었다. 다른 애들은 어렵다는데 나한테는 쉬웠다. (웃음) 학교에서만 하는 게 아쉬워서 시내에 있는 연기학원에 다녔다. 그러다가 에이전트가 생겼다. 그렇게 계속한 거다. 그러다 연극을 직접 제작해보고 영화도 만들기 시작했다.
곧 개봉이다. 요새는 어떤 마음으로 지내나.
최승윤_ 신비롭다. 지금까지 내게 온 것들은 전부 상상하지 못한 경로로, 하지만 자연스럽게 왔다. 마치 내가 해야 할 일처럼 말이다. 이 영화도, 지금 인터뷰를 하는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그게 참 좋다. 하지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늘 너무 좋거나 슬퍼하지 않으려고 한다.
앤서니 심_ 여기까지 오다니 이 영화도 나도 참 운이 좋다. (웃음) 어떻게 보면 난 꿈을 다 이뤘다. 하지만 그런 게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더라. 그저 계속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앞으로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