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무성한 여름, 고고학자 영실(옥자연) 앞에 홀연히 나타난 음악가 인식(기윤)은 발굴 현장에 쳐놓은 안전띠를 걷어내며 말 그대로 선을 훌쩍 넘어버린다. 소나기처럼 예고 없이 시작된 사랑은 운명의 동의어나 다름없지만 하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노래는 성희롱과 가짜 뉴스의 고전이라고 부를 만한 ‘서동요’다. 영실은 선화 공주가 불쌍하다고 하는데 인식은 그 뜻을 좀처럼 헤아리지 못한다. 그렇게 둘은 기형과 보편을 넘나들며 10년의 세월을 칭칭 휘감은 인연을 이어간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사랑의 고고학>을 공개한 작년 봄, 이완민 감독과 대화를 나눴다. <누에치던 방>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앞에서 감독은 차분히 단어를 골랐다. 특히 3시간 가까이 극을 이끄는 옥자연에 관해 묻자,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을 대화에 불러내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듯 말을 아꼈다. 한편으로는 이런저런 설명을 덧댈 필요조차 없을 만큼 그의 연기에 만족했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감독은 “옥자연 배우는 이미 영실에게 필요한 것을 전부 갖고 있었다”며 감탄하면서도 그게 무엇인지는 끝내 들려주지 않았다. 사실 영실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인물이다. 소심한가 하면 대범하고 예민한가 싶으면 무디다. 무엇보다 옥자연이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킨 캐릭터와 비교하면, 영실은 대척점에 놓인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아하고 자신만만한 얼굴을 갑옷처럼 두른 채 극을 휘젓는 대신에, <사랑의 고고학>에서 옥자연은 비무장 상태로 사랑 없는 사랑을 감내한다. 말의 무게를 익히 실감하는 감독과 배우가 영실을 빚어낸 과정이 궁금해서 한 자리에 초대했다. 세 번째 질문을 던졌을 때쯤 감독은 “혹시 펜 하나 빌릴 수 있을까요?” 물었고, 대화 내내 종이에 무언가를 빼곡히 적었다. 배우는 그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감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까 감독님이 했던 이야기 말이에요” 하며 조심스레 운을 뗐다. 그렇게 말과 생각에 차등을 두지 않으며 둘도 영실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환상 없이, 원칙 없이 자신이 딛고 선 땅에 오롯이 의지하면서.
예테보리영화제에 초청받아 함께 스웨덴에 다녀왔다. SNS에 멋진 사진을 많이 올렸더라.
옥자연_ 너무 즐겁게 지내다 왔다. 일정 마치고 잠시 여행했는데 오로라 사진 찍느라 바빴다. 감독님은 내가 인스타그램에 어떤 사진을 올렸는지 잘 모를 텐데.
이완민_ 그때 얘기해줘서 한 번 봤다. 영화제 가기 전부터 우리 머릿속엔 오로라라는 단어가 가득했다.
옥자연_ 오로라 지수가 날마다 바뀐다. 보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얼마나 거대하고 화려한 오로라를 볼 수 있느냐의 문제더라. 우리는 운 좋게도 어마어마하게 큰 오로라를 봤다. 엄청난 선물을 받는구나 싶었다.
이완민_ 영화제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드라마에서 봤다며 자연 씨를 알아보는 관객들이 꽤 많았다.
옥자연_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신기했다. 관객 대부분은 침착하고 차분하게 관람했다. 표정을 읽을 수 없어 내심 걱정했는데, 상영 후 몇몇 분이 다가와서 “beautiful film”이라고 칭찬해주더라. 문화 차이가 있긴 해도 영화가 다루는 관계에 충분히 공감한다는 걸 느꼈다.
개봉 버전은 편집이 살짝 바뀐 듯한데.
이완민_ 168분에서 5분 줄어 163분이 됐다. 러닝타임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정한 것은 아니고 과잉이다 싶은 부분을 들어냈다. 영실이 장례식장에 가는 장면은 오히려 길이가 늘어났다. 누구 장례인지, 어떤 상황인지 정도는 설명해줘야 한다는 피드백을 받아서 추가했다.
옥자연_ 처음 편집본이 나왔을 때는 다들 감독님한테 러닝타임을 줄이라고 조언했다더라. 근데 막상 줄인 버전을 보여줬더니 긴 버전이 훨씬 좋다고 인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완민_ 난 갈등을 싫어하는 사람이라 일단 여러 버전을 만들어서 보여준다. (웃음)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작품 구상은 <누에치던 방>을 공개한 다음부터 줄곧 해왔다고. 그러면 이걸 영화로 만들어야겠다 혹은 이게 영화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던 건 언제였나.
이완민_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인디포럼에서 4년 정도 활동했는데 어느 순간 힘이 소진됐다고 느꼈다. 이제 책상 앞에 앉아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단일한 계기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 무렵 스스로 문제라고 여겼던 것들, 내게 흥미진진하게 다가오는 것들을 한데 모아서 만들어낸 이야기에 가깝다. 돌이켜보면 개인적 고민과 감정을 형상화하려고 일련의 과정을 거쳤던 것 같다. 물론 자료야 늘 수집한다. 수행하듯 신문이나 잡지를 스크랩하고, 책이든 영화든 대상을 정한 후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보자’ 하는 걸 좋아한다. 당시에도 모아놓은 자료가 꽤 됐다. 한편, 원칙주의자 인물에게 관심이 있어서 영실과 같은 인물을 머릿속에서 계속 불려가는 상태였다. 그리고 반감. 내가 느끼는 반감을 건드려보고 싶었다.


무엇을 향한 반감이었나. 당시 관심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볼 수 있을까.
이완민_ 어떤 관계를 피해자 대 가해자 구도로 설명하면 묻혀버리는 이야기가 있다고 봤다. “저 사람들 문제”라는 식으로 선을 긋는 상황에 반감이 들었고, 다른 방식으로 갈등을 수면화하고 싶었다. 특수성을 없애거나 혹은 희미하게 만든 후, 오히려 어떤 전형을 더해 가시적인 걸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저번 인터뷰에서 내가 <봄날은 간다>(허진호, 2001)에 관해 말했던가? 마냥 그렇게 볼 수만은 없지만, 결국 그 영화는 ‘한 남자의 순정을 나쁜 여자가 짓밟는다’는 틀에서 전개된다. 하지만 남자가 헤어진 후에 여자를 찾아간다든지 여자의 차를 긁어버리는 행위의 경우, 내게는 순정이 아니라 폭력처럼 느껴진다. 다양한 관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이래저래 반감이 쌓였던 것 같다. 성별을 바꿔서 순정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영실은 엄격한 원칙주의자다. 끝까지 사랑을 지키려고 애쓰지만 희생을 자처하진 않는다.
감독이 언급한 ‘가시화’ 작업의 중심에 영실이 있는 셈이다. 옥자연 배우의 사진을 보고 “자기 안으로 쑥 들어가는 느낌”을 받아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이는 <사랑의 고고학>을 관통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관객 또한 영실과 비슷한 데가 있든 없든 영실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게 되지 않나.
이완민_ 특정 사진이 그랬다는 뜻은 아니다. 그 얘기를 특히 조심스럽게 했던 것 같다. 전적으로 내가 느낀 바이기에 그게 곧 자연 씨라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내게 중요한 느낌이었던 건 사실이다. 대개 인물 사진을 보면 모델이 자신을 어딘가에 꿰맞추는 듯한데 자연 씨는 달랐다. ‘이 사람은 지금 뭔가를 찾고 있구나, 그게 굉장히 활성화됐구나.’ 사진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영실은 단언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감독은 배우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는데, 그 점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배우는 영실이 누구인지 어떻게 파악했나.
옥자연_ 일단 영실은 일반적 생애 주기를 따르지 않는 인물이다. 남들 취직하는 나이에 취직하지도, 남들 결혼하는 나이에 결혼하지도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배우가 공감할만한 부분이다. 고고학자라는 직업도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 근데 학생들이 “독립 연구자로 사는 거 힘들지 않아요?”라고 묻자, 본인이 느끼는 괴로움을 되게 재밌는 문장으로 설명한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가난, 노동의 무가치함, 환멸을 예상”해야 한다며 적나라하게 말한다.
옥자연_ 내 삶이 어떻고 이 길은 이렇다는 이야기를 포장하지 않고 정확하게 해서 좋더라. 동시에 영실이 자기 일을 얼마나 기쁘게 여기는지 느껴졌다. 대본이 자세한 안내서였다. 대본을 읽는 것만으로도 영실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스케치할 수 있었다. 영실이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도 대본을 보며 알았다. 언어 습관이라고 해야 할까, 의외의 단어를 사용하는 모습은 감독님과 닮은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감독님도 일상 대화에서 접하기 어려운 단어를 자연스럽게 쓰거든. 근데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너도 그래. 가끔 너 되게 이상한 단어 쓰잖아!”라면서 웃더라. 친구가 예로 든 단어는 유예였다. 유예가 그렇게 이상한 단어는 아닌 것 같은데. (웃음) 하여간 친구 말을 듣고 나니 좀 더 자신 있게 영실의 어휘를 구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실은 책, 그중에서도 고문서를 자주 접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실존 인물이나 특수한 상황에 부닥친 인물이 아니라면 굳이 기존 캐릭터를 참조하진 않는 편이라고. 영실을 연구하고 만들어가는 과정도 비슷했나.
옥자연_ 레퍼런스를 찾으려고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책에서 힌트를 얻는 편이다. 이번에는 감독님이 촬영 전에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를 보내줬다.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는데 내가 책을 안 돌려드렸더라.
이완민_ 괜찮다. 가져도 된다.
옥자연_ 내가 샀다고 생각했다. 책을 펼쳤다가 자 대고 반듯하게 그은 줄을 보고 알았다. 감독님 책이구나. (웃음) 그렇게 책 읽고 대화하면서 영실을 차츰 이해했던 것 같다. 인식과의 관계는 보편적으로 이해할 여지가 많았다. 물론 어느 순간 ‘영실은 어떻게 다 참지?’ 싶긴 했다. 감독님에게 물었더니 “영실에겐 기사도가 있는 겁니다” 하더라. 기사도라는 단어가 실마리 역할을 해줬다. 근데 아까 감독님이 인물에게서 특수성을 덜어내려고 했다는 얘길 듣고 갸웃했다. 난 영실의 개성과 구체성에 굉장히 매력을 느꼈거든. 어떤 부류의 인간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한 명의 사람으로 다가와서. 내가 오해했던 건가 싶다.
이완민_ 아니, 그때 말한 특수성은 인물의 고유성과는 별개다. 가해와 피해라는 명료한 구도로 잡아낼 수 없는 영역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미였다.
옥자연_ 내가 주로 접했던 작품들과 달리, 이 영화엔 사소한 장면이 참 많다. 사소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아무튼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그랬고, 촬영하면서도 그런 장면에 마음이 갔다. 밥 먹는 장면을 찍는데 감독님이 그러더라. “저는 먹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상하게도 그 말에 감동했다.
말한 대로 일상적 행위를 많이 포함한 영화다. 바쁘게 사는 인물은 아닌데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냥 택배를 받는 게 아니라 옥상에서 파를 심다가 택배를 받고, 그냥 길을 걸어가는 게 아니라 분리수거를 마친 다음에 길을 걷는다.
이완민_ 한 걸음 물러서서 얘기하자면 당시 주목했던 것 중 하나가 고립이었다. 고립 또는 고독, 그 상태를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인물이 나름대로 뭔가를 계속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 보니 때때로 널브러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생계를 유지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지 않나. 돈을 벌려면 움직여야 하고.
옥자연_ 분리수거하는 장면에서도 감독님이 스치듯 말했던 기억이 난다. “저는 이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웃음)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나한테 <사랑의 고고학>은 주변을 풍성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영실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뒤쫓는 게 아니라, 영실이 보내는 시간을 중심으로 삼는다. 덕분에 작은 행위와 풍경이 영화 속에 많이 들어오는 것 같다.
시나리오에서 그러한 자잘한 움직임을 어느 정도까지 지시했는지 궁금하다. 이를테면 상 차리는 장면에서 반찬통 하나를 집어 들고 냄새를 맡지 않나. 그 행위 역시 지문에 포함된 건가.
이완민_ 그건 아니었다. 매우 적절한 애드리브다. (웃음)
옥자연_ 내가 평소에 그러거든. 엄마가 반찬을 보내주면 거의 반은 썩어서 못 먹는다. 그래도 썩기 직전까지 먹겠다는 마음으로 항상 냄새를 맡아본다. 영실이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대사가 없는 신의 경우, 그렇게 자율적으로 연기하도록 감독님이 많이 열어줬다.

<속물들>(신아가, 2019)의 탁소영, <마인>(tvN, 2021)의 강자경, <슈룹>(tvN, 2022)의 황귀인 등 최근 작품에서 팜므파탈, 전략가, 빌런으로 지칭할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단지 ‘센캐’여서가 아니라 세속적 욕망을 감추지 않고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영실과는 대조적이다.
옥자연_ 모두 내가 좋아서 선택한 작품이고 멋진 캐릭터였지만 바로 그 지점, 세속적 욕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은 선상에 머무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살아가는 데 돈도 필요하고 명예도 중요하다. 하지만 삶의 동력을 다른 데서 찾는 사람도 많지 않나. 뭔가를 갈망하는 상태로 질주하는 인물을 연달아 맡다 보니 좀 지쳤던 것 같다. <사랑의 고고학> 대본을 읽을 당시, 구태여 영실의 욕망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영실이 누워있는 것만 봐도 좋은 상태였다고 해야 하나. (웃음) 영실의 마음을 묻는 질문은 인식과의 관계에서 많이 나왔다. 가해자 대 피해자로 그리지 말자고 감독님과 얘기를 나눴는데, 초반에는 연기하면서 ‘내가 영실을 피해자로 만들고 있나?’ 의심했다.
전작과 달리 가면이 두껍지 않은, 차라리 없다시피 한 인물이라서 그랬을까?
옥자연_ 아무래도 영향이 있겠지만 그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내가 고민했던 건 표현이다. 인식이 영실에게 “넌 지금 나한테 트라우마를 주고 있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가장 힘들었다. 영실의 태도와 반응을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렵더라. 돌이켜보면 영실이 아닌 옥자연으로서 좀 분노했던 것 같다. 감독님은 차분히 설명했다. 그 시점에서 영실의 감정이 분노는 아니라고. 근데 인식 대사를 듣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화가 나는 거다. ‘영실이 무슨 천사야? 바보야?’ 속으로 따져 묻기도 하고. (웃음) 결국 나와의 싸움이었던 것 같다. 영실만큼 기사도가 있거나 포용력 있는 사람은 아니다 보니 인물에게 착수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반대로 감독이 배우에게 설득당한 적은 없나.
이완민_ 그 신을 제외하면 대부분 자연 씨에게 동의했다. 트라우마를 언급하는 장면은 중요했다. 영실이 오류에 빠지는 순간을 짚고 싶었다. ‘내가 이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줬구나’ 하며 물러서는 순간, 그게 다음 과정으로 이어지는 동력인데 거기서 이미 분노해버리면 드라마가 성립이 안 되니까.
옥자연_ 당시엔 내가 분노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적 갈등이 심했나 보다. 영실은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무척 크고 무겁게 받아들였을 거다.
이완민_ 가스라이팅 관련 서적을 여러 권 찾아봤는데 공통으로 그걸 지적하더라. 가해자는 상대에게 재차 책임을 돌린다고.
영화가 관계 폭력과 연인 간 위계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영실과 인식은 가스라이팅, 스토킹, 언어폭력 같은 용어로 규정하기엔 어려운 관계라는 생각도 든다. 감독 또한 누군가의 잘못을 판정하기보다는 경계에서 관찰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완민_ 나로서도 쉽지 않긴 했다. 결론을 정해놓고 간다기보다는 장면 장면을 함께 따라가면서 인물에게 이런 선택지도 줘보고 저런 선택지도 줘보는 과정을 거쳤다. 조심스럽지만 실제 내 삶에서 일어났던 일도 얼마간 반영했다. ‘대체 이게 무슨 사이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나 역시 그런 관계를 경험했기에 마냥 이기적으로 해석할 수가 없더라. 상대가 진짜 악한이라면 이미 등 돌려 걸어 나왔을 거잖나. 하지만 상대는 악한이 아닌 데다 나도 어떤 문제들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한 고민과 반성을 동반하다 보니 딱 떨어지는 이야기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내가 헷갈렸던 혹은 판단하기 힘들었던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보려 했다.

영실은 보면 볼수록 나무 같다. 직업상 땅과 가깝기도 하고 무엇보다 뿌리내린 곳을 잘 떠나지 않는 성격 아닌가.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자라는 듯하지만 물이며 햇빛이며 은근히 챙겨야 할 게 많다는 점도 그렇고.
옥자연_ 보는 입장에선 답답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솔직히 난 영실을 떠올리면 기분 좋다. 그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괜히 든든하다. 힘든 시기를 거치는 와중에도 삶을 꿋꿋하게 지켜가는, 제 방식대로 살아가는 영실의 모습에서 용기를 얻는 것 같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약 10년을 담는다. 자막과 블랙으로 챕터를 굵직하게 나누는데 인물 표현에 어떤 차이를 두려고 의식했나, 아니면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답게 일관된 정서를 가져가려 했나.
옥자연_ 감독님이 먼저 과거와 현재를 다르게 표현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난 영실을 긴 시간에 걸쳐 천천히 생기를 잃어가는 사람이라고 봤다. 과거 모습에서 점점 색이 빠져나간 결과가 현재 아닐까.
생기를 잃어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면이 있다. 비 내리는 날 천막에서 영실은 하늘을 보며 뺨에 웃음기를 가득 머금다가 일순 낯빛이 어두워진다. 감독도 “환희에서 수심으로 건너가는 표정”이라며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았다.
옥자연_ 환희에서 수심이라니 감독님 표현이 정말 근사하다. 뭔가를 염두에 두고 지은 표정은 아니라 실은 좀 멋쩍다. 그냥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소리도 좋고 냄새도 좋다. 어릴 적 흙탕물에서 뛰어놀며 자랐다. 비 내리면 물웅덩이에서 첨벙대며 노는 아이였다. 그날도 자연스레 편안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인식과 한창 설렘을 느끼는 시기이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멍했던 걸 수도 있다. (웃음) 그때 감독님은 조금 놀랐는지 혹시 무슨 일 있냐고 묻더라.
이완민_ 그날이 촬영 첫날이었다. 카메라로 영실을 보는 최초의 순간이었는데 소름이 확 끼치더라. 현장 상황이 열악해서 걱정하긴 했다. 배우와 스태프 모두 멀리 왔는데 갑자기 비까지 오고. 다들 고생하는 걸 알기에 혹시나 싶어 물어봤다.
말이 나온 김에 발굴 현장에서 촬영한 건 어떤 기억으로 남았나. 비전문 배우도 여럿 등장하는 것 같은데.
옥자연_ 우선 계절이 계절인 만큼 엄청나게 더웠고, 현장은 머릿속에 그렸던 풍경과 달라서 흥미로웠다. 탁 트인 풍경을 상상했는데 막상 가보니 비를 대비해 군데군데 비닐을 덮어놨더라. 그런 구체성이 재밌고 신기하게 다가왔다. 계속 신경 썼던 부분은 ‘내가 얼마나 전문적으로 보일까?’였다. 실제 발굴 현장에서 일하는 종사자와 함께 나오다 보니 긴장이 되더라. 감독님은 촬영 전에 현장을 답사하고 작업에도 직접 참여했다. 하필 가장 바쁜 시기여서 그때 따라가질 못했다. 두고두고 아쉬웠다. 늘 하던 일하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자신 있는 척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근데 감독님이 나보다 더 고고학자 같더라. 카고바지랑 조끼 입은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리고.
이완민_ 영화인 복장과 비슷하거든. (웃음)
옥자연_ 바깥일이라는 게 그런가 보다. 영화든 발굴이든 현장 일 아닌가.


과거 인터뷰에서 롤모델로 한강 작가를 언급했더라. 그의 시선을 닮고 싶다며 “찬찬히, 깊게, 또렷하게 꿰뚫어 보는 눈”을 갖고 싶다고 했다. 영실의 롤모델도 그와 같겠다는 생각이 든다.
옥자연_ 나도 연기하면서 그 인터뷰를 떠올렸던 순간이 있다. 어쩌면 영실을 통해 내 이상과 가장 가까운 캐릭터를 만났는지도 모른다. 그냥 스쳐 보내는 것, 놓쳐버리고 마는 것. 작가가 그걸 들여다보고 쓰는 사람이라면 배우는 연기로 비슷한 작업을 하지 않나 싶다. 사실 도처에서 연기한다. 사람이 자기 이름을 갖고 살아가는 일 또한 연기에 가깝다. 다만, 뭔가를 마주할 때 흘려보내지 않아야, 자세히 살펴봐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인터뷰할 때만 해도 난 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여겼다. 너무 많은 것을 쓱쓱 지나치는 듯했고 천천히 보고 싶다는 건 막연한 희망이었다. <사랑의 고고학>을 촬영하면서도 그랬다. 연기하는 내내 ‘나도 영실처럼 느리게 가야 하는데’ 생각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저 때 난 너무 빨랐어’ 한다.
SNS에 개봉 소식을 알리며 “한 땀 한 땀 정성 들인 영화”라고 소개했다. 간결하면서도 자신감과 신뢰가 묻어나는 말이다. 모든 장면에 떳떳하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옥자연_ 내 연기가 만족스럽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도 정성을 들인 건 사실이니까. (웃음) 모든 작품이 그렇듯 연기만 놓고 보면 아쉽다. 하지만 <사랑의 고고학>에선 보석 같은 순간을 여러 번 만났다. 내가 봐도 나는 나한테 참 엄격하다. 나를 못살게 구는 편인데 그런 내 눈에도 영실이 종종 사랑스럽게 보여서 고마웠다.
영실은 거의 변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영화 막바지에 한 차례 공기가 바뀐다. 특히 영실이 학생을 대하는 태도는 오프닝과 확연히 다르다.
옥자연_ 영실이 크든 작든 뭔가를 계속 시도한다는 점을 감독님이 짚어줬다. 발을 측정하러 간다든지 짧은 바지를 입고 밖에서 좀 뛰어본다든지. 그런 장면이 하나둘 쌓이면서 영실이 어디론가 나아간다고 느꼈다. 내 ‘치트 키’를 말하자면, 영화 후반부에 학생들과 얘기하다가 울컥하는 장면에선 감독님의 전작 <누에치던 방>을 떠올렸다. 특정 장면이 아니라 영화에 깃든 정서에 주목했던 것 같다. 한때 가까웠으나 어느새 멀어진 인연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우정으로 연결된 든든한 관계도 있다. 영실 곁에 존재하는 친구들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수연과 아영도 그렇고, 희원과도 우정이 싹틀 만한 희망이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영실이 동성 친구와 함께 나오는 신을 좋아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사람과 만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거든. 나를 지탱해주는 이들을 향한 고마움, 지나간 인연에 대한 아쉬움 등을 되새기며 연기했다.
수연은 눈에 띄는 캐릭터다. 두 사람에게도 그런 친구 있나. 기운 빠져서 낮잠 자는 날 가만히 지켜보다가 감자 다 쪘다며 깨워주는 친구.
이완민_ 있지만 환상은 없다. 이런 사람을 친구로 둬야겠다고 생각하며 관계를 지속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함께 나눈 시간이 쌓이고 그러다 보면 그 사람에게 고마워진다. 그와 동시에 결국 고통은 각자의 몫이라는 걸 갈수록 강렬하게 느낀다. 인간이 지닌 한계 같다. 책을 읽다가 와 닿은 문장이 있다. 누군가의 곁에 있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상대가 아니라 각자에게 달린 문제라고 하더라.
옥자연_ 감독님 말에 공감한다. 물론 수연처럼 오래된 친구는 소중하고 애틋하다. 희원처럼 새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관계도 마찬가지다. 근데 그러다 어느 날 그만 만나자고 할 수도 있는 거다. 다만, 잠깐 지나가는 위로에 그칠지언정 그러한 만남 역시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알게 모르게 기대며 위로받는 관계 덕분에 어떤 시간을 건너기도 하니까.

감독은 작년 인터뷰에서 “개선된 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고, 영실은 영화에서 “나를 좀 바꿔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한다. 더 나은, 혹은 달라진 나를 <사랑의 고고학> 이후에 만났나.
이완민_ 확실히 바뀌긴 했다. 그러려고 만든 영화니까. 거의 셀프 테라피에 가깝거든.
옥자연_ 더 구체적으로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이완민_ 그래봤자 장편 두 편을 만들었을 뿐이지만, 매번 내 정신적 문제를 살피고 해결하는 차원에서 작업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작업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정체된 감정이나 예속된 관계에서 벗어나 훨씬 좋은 상태로 넘어온 듯하다.
옥자연_ 촬영하다가 내가 뭐라고 질문했더니 감독님이 “제 고민이 좀 해소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이 나한테 무척 좋은 영향을 줬다. 영화를 찍는 과정도 결국 삶의 한 부분이지 않나. 연기하면서 계속 배우고 느끼고, 그러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눈앞에 놓인 신에만 매몰되어선 안 되겠구나 싶더라. 사실 그때 난 “방금 제 연기 괜찮았어요? 이상하지 않아요?” 그런 걸 물었거든. 근데 감독님은 자기가 뭘 고민하고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얘기해준 거다. 셀프 테라피 중이라서 그랬나. (웃음) 하여간 그 순간 영화를 찍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중요한 건 영화를 찍으면서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지켜보고, 또 어떻게 변해가는지 알아차리는 거다. 작품을 대하는 관점을 달리해야겠구나 싶더라. 그러면 신 하나 하나에 목 매는 일도 줄어들 것 같고.
둘도 영실처럼 “자아가 지속적으로 위협받는 느낌”을 갖고 사나. 그때마다 어떻게 빠져나오는지 혹은 어떤 마음으로 버티는지 궁금하다.
이완민_ 난 잔다. 거대한 불안이야 사라지지 않지만 그날그날 마주하는 불편함은 잠으로 잊는 편이다.
옥자연_ 인터뷰 초반에 감독님이 내 사진 얘기를 했다. 뭔가를 찾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실은 그게 요즘 내 고민과 연결되는 이야기다. 내 것을 찾는 일. 그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갈등하고 어려워하는 중인 것 같다. 이른바 업계라는 곳에 들어오니 연기 외에도 다양한 요소를 고민해야 하더라. 내가 갖춰야 할 것들, 근데 난 아직 갖지 못한 것들. 그걸 채우고 습득하는 과정에서 불쑥 동요하곤 한다. 어떤 틀에 맞춰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일정한 상황이나 위치에 반복적으로 놓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드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계속 탐구하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렇게 해보다가 실수하고 또 저렇게 해보다가 실수하고. 지금은 그런 과정을 겪고 있다.
선택에 따르는 리스크를 온전히 감당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경우의 수를 끊임없이 계산해야 한다는 점에서 압박을 느끼겠구나 싶다.
옥자연_ 워낙 많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중심을 잡기가 수월하지는 않다. 나도 사람이라 무슨 말을 들으면 솔깃하기도 하고. 그런 상태이기에 영실을 생각하면서 든든함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좀 더 용기 내도 괜찮지 않을까? 굳이 내 마음을 거부하면서까지 타인의 기준을 따라야 하나? 여러 생각이 든다. 영실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한 친구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 친구가 대화하다가 갑자기 한 3분 정도 말을 멈추고 가만히 있거든. 그러면 나도 더 묻지 않고 그냥 옆에서 시간을 보낸다. 나중에 걔가 “내 속도를 기다려주는 언니가 너무 좋아”라고 하더라. 친구는 자신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힘들었을 수 있는데 사실 난 그렇게 느린 호흡을 가진 친구가 있어서 좋다. 그의 속도에 애써 맞춘 것이 아니라 나 또한 그 시간을 편안하게 보냈거든.

듣다 보니 두 사람은 영실의 현재를 어떻게 상상하는지 궁금하다. 옥자연 배우는 과거 실연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연극을 접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연기에 몰입하는 순간을 경험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별의 슬픔을 연기로 극복했다기보다는 이별 이후 새로운 에너지가 차올랐다는 얘기로 들리던데. 그렇게 보면 영실도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옥자연_ 당시 상황을 부연하자면 이별의 에너지로 연기에 몰두했던 건 아니다. 이별하고 나서 말 그대로 그로기 상태였다. 근데 연극 수업에 가면 싹 잊혀지더라. 이별이고 뭐고 나한테 침투를 못 하는 거다. 연극이 너무 재밌으니까. ‘내가 겪는 이 거대한 일을 아무것도 아닌 걸로 만들어버리다니!’ 이별이 이별 따위가 되는 상황에 충격받았다. 음, 지금 영실은 연애하지 않는 상태면 좋겠다. 내가 자꾸 영실로부터 용기를 얻고 싶어 하는 것 같긴 한데. (웃음) 혼자서 충분히 씩씩하길 바란다.
이완민_ 난 영실이 더는 원칙주의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원칙이 영실을 갉아 먹은 순간이 많거든. 원칙에 갇히기보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사람이길 바란다. ‘원칙 그거 한 번 세게 지켜봤는데 영 아니더라’ 하고 털어버렸으면 한다. 자연 배우와 비슷하다. 자족하는 사람, 혼자서도 안정을 지키는 사람이야말로 관계 맺기를 고려해볼 수 있는 것 같다.
내 마음을 전달하고 상대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상태, 영화 말미에 영실이 그걸 뭐라고 표현하는데.
이완민_ “추접스럽다.” (웃음) 결국 이런 거다. 인식은 관계에 실패한 후 영실을 구원자로 선택한다. 자기 이상에 영실을 맞추려 하지만 맞아떨어지지 않으니 영실을 몰아붙인다. 일종의 학대다. 근데 영실도 이전 관계에서 문제가 없던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인식을 만나서 문제적 관계를 반복한다. 인식과 헤어지고 난 후엔 또 새로운 환상을 품고. 계속 구원자를 찾아다니는 상태, 그걸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인식과 영실, 둘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영실도 자칫하면 인식과 똑같이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누군가한테 집착하기 시작하면, 영실이 또 다른 인식이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와 같은 굴레에서 이제 벗어나자는 의미였다.
사람이 참 못났구나 싶다.
이완민_ 그래서 자신을 알면 알수록 타인에게 관대해진다고 하지 않나. (웃음)
자연 배우 얘기를 좀 더 해보자. <세이브 더 캣>(허지예, 2021) <국화의 틈>(박시현, 2021) 등 최근까지 단편도 꾸준히 찍었다. 대본이 많이 들어올 텐데 어떤 기준과 과정으로 작품을 선택하나.
옥자연_ 일단 내게 온 대본이면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려고 한다. 기준을 말하기엔 애매하다. 직관에 따라 선택하는 편이지만 처음엔 끌리지 않더라도 오래 읽다 보면 좋은 대본을 만나기도 한다. 어떤 배역은 너무 뻔하고 기능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지만, 나름대로 재밌게 표현할 구석이 많다는 생각이 들면 또 매력을 느낀다. 다른 배우들은 뭐라고 하나? 다들 어떻게 작품을 고르는지 나도 궁금하다. 솔직히 말하면 작품과 캐릭터가 처음부터 전부 마음에 드는 경우는 흔치 않다. 내 경우엔 사람이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좋아하는 선배님이 출연하는 작품 또는 좋아하는 감독님이 연출하는 작품이면 나도 해야겠다 싶다. (웃음) ‘이런 캐릭터만 할 거야’라는 기준은 없다. 그래도 배우로서 흥미를 느끼는 지점을 얘기하자면 의외성인 것 같다. 영실이도 그랬다. 보면 볼수록 다양한 면이 눈에 들어와서 연기하며 희열을 느꼈다.

요즘 좋아하는 배우는?
옥자연_ 기윤! 처음 만난 날, 내색하지 않았지만 되게 놀랐다. 시나리오만 봤을 땐 날카롭고 예민한 얼굴을 상상했거든. 유약하다든지 커트 코베인 닮았다는 말도 나오고 하니까. 그렇게 둥글둥글하고 사람 좋은 얼굴이 나타날 줄 몰랐다. 근데 오히려 재밌더라. 내 편견을 깨주는 배우가 와서 날 흔드는 연기를 하니까. 기윤 오빠를 다른 작품에서 만나면 어떨지 궁금하다. 오빠랑 호흡은 좋았던 것 같다. 서로 말하다 보면 웃기다. 난 오빠한테 다 의지했다고 하고, 오빠는 또 나한테 다 의지했다고 하고. (웃음)
데뷔작은 2012년 국립극단에서 공연한 연극 <손님>이다.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기억하는데.
옥자연_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라고 일종의 재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경력 있는 배우와 연기를 막 시작한 배우가 섞여 있었다. 국립극단에서 만 33세 이하 배우를 모아 연기, 신체 트레이닝, 신 창작 등을 5개월 정도 훈련시켰다. 정식 공연인 동시에 참여자에게는 워크숍 발표 같은 의미를 띠기도 했다.
황해도 신천 학살 사건을 다룬 황석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었다. 데뷔작부터 고생길이 좀 보였다고 해야 하나. 그간 연기하며 잔인하고 치열한 세계를 거쳐왔다는 생각이 든다.
옥자연_ 세어 보니 연기한 지 10년이 넘었더라. 작년에 ‘벌써 10년이네!’ 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 <사랑의 고고학>을 개봉하고 또 이렇게 예전 작품을 이야기해주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내 가능성을 확인했다. 앞으로 무궁무진한 세계와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그간 주변에서 여러 번 얘기해주긴 했다. “넌 이것도 잘 어울리고 저것도 잘 어울려. 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야.” 어째선지 예전에는 그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난 이것도 저것도 잘 못하는 것만 같더라. 10년을 해서 자신감이 생겼다기보다는 이제야 날 믿고 기대하는 것 같다. 내 안에는 나조차 모르는 내가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기쁘다.
곧 방영하는 드라마 <퀸메이커>에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올해 공개를 앞둔 작품이 또 있나.
옥자연_ 연말에 <경성크리처>를 선보일 듯하다. 최근 2~3년이 쉴 새 없이 흘러갔다. <사랑의 고고학>을 촬영한 2021년 여름에 특히 정신없었는데 지금은 다 찍고 한가하다. 개봉 일정을 함께 소화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촬영 당시 덜 바빴다면 어땠을까 싶다. 그럼 영실을 좀 더 느린 사람으로 표현했을 텐데. (웃음)


감독은 최근 무엇에 관심을 쏟고 있나.
이완민_ 늘 머릿속에서 굴려보는 주제 중 하나는 지속이다. 지속이 재미있다. 물론 영화적으로 실험 같은 건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웃음) 내게도 마지노선은 있거든. 같이 일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한다. 영화 개봉하고 관객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그 선을 다시 결정하게 될 것 같다.
옥자연_ 다들 즐겁게 하지 않았나? 촬영 감독님도 신나 보였고.
이완민_ 아직은, 그러니까 우리는 즐거운데 이대로 계속할 수 있을까.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이 모든 상황이 괜찮은 건지 아니면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하는지.
옥자연_ 단편 작업도 하면 좋겠다.
이완민_ 근데 장편이 좀 더 흥미롭다. 단편은 찌르는 재미가 있다면 장편은 고민을 겹겹이 쌓아가는 재미가 있다.
옥자연_ 실험을 그만해야겠다고 말한 다음에 나올 작품이 너무 궁금해지는데?
이완민_ 이렇게 내 영화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내가 마조히스트는 아니니까. 영화를 만들고 선보이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는구나 싶다.
‘작가주의’라는 호명은 괜찮나. 감독 스스로 얼마간 위험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감독 또한 자의식 과잉이라든지 셀프 테라피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고.
이완민_ 나름대로 가치 부여는 한다. 고유성은 유의미하고, 그렇기에 이런 영화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 안팎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행여나 불필요한 스트레스에 시달릴까 봐 염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스럽기도 하고.
옥자연_ 감독님이 스코어에 딱히 영향을 받는 분은 아니라서 나도 마음이 가벼운 상태였는데, 막상 개봉이 눈앞으로 다가오니 모르겠다. 우리 홍보팀이 너무 열심히 하거든.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만 같더라. (웃음) 감독님은 어떤가. 부담 좀 느끼나.
이완민_ 나도 모르겠다. 앞서 말한 대로 존재 자체는 의미 있다고 보는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돌멩이 맞으면 휘청할지도.
옥자연_ 댓글 하나하나 챙겨보는 스타일은 아니지 않나.
이완민_ 사실 다 찾아보는 편이다. 그렇게나마 소통한다고 생각하거든.
옥자연_ 난 안 본다. 정확히 말하면 못 보는 거지.
이완민_ 어쨌거나 영화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점검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따금 너무 고되다 싶으면 주변을 둘러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관객 자체를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꾸준히 작품 만드는 동료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기운도 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