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전율
<파벨만스>
차한비 / Choice / 2023-03-24

흔히 사랑을 교통사고에 비유한다. 아무리 전방 주시하며 경계해도 누가 와서 들이받으면 피할 도리가 없다. 나의 운전 실력과 조심스러운 태도, 계획된 경로까지 모조리 무력하게 만드는 한순간의 충돌. 이때 사랑은 통제 불가능한 사건이 된다. 어린 새미(마테오 조라이언 프랜시스드 포드)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미스터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아버지 버트(폴 다노)와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 미치(미셸 윌리엄스)의 손을 잡고 생애 처음으로 극장에 방문한 날이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기 전, 새미는 두려움을 토로한다. “캄캄하다면서요. 들어가기 싫어요.” 그뿐인가, 스크린에는 거인처럼 커다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고 듣기도 했다. 미치는 미소 띤 얼굴로 “영화는 잊히지 않는 꿈”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전하며 아들의 손을 부드럽게 이끈다. 그날 저녁, 새미는 <지상 최대의 쇼>(세실 B. 드밀, 1952)를 관람한다. 스크린 중앙 저편에서 기차가 달려온다. 자동차 한 대가 철로에서 버티며 기차를 멈춰 세우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끝내 벼락같은 충돌이 일어나고 운전사는 저 멀리 튕겨 나간다. 그 장면을 목격한 새미는 얼빠진 표정이다. 한쪽 눈은 죽음을 향한 공포로 일렁이고, 다른 눈은 영화에 매혹당해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니까 사랑이 교통사고와 같다는 비유는 곧 경고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위험하다. 자칫 목숨을 앗아갈 수도, 안락하게 보존되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도 있는 것이 사랑이다.

<파벨만스>의 원제는 ‘The Fabelmans’로 Fabelman은 새미와 그들 가족의 성을 가리킨다. 우화 또는 꾸며낸 이야기를 뜻하는 ‘페이블’에 ‘~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석하는 단어 ‘맨’을 조합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소개한 바에 따르면 <파벨만스>는 일종의 자전 영화다. 감독은 실제 삶에 자리한 주요 대목을 영화에 가져왔으며, 특히 부모님에 관한 기억을 풍성하게 활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화에는 스티븐이 아닌 사무엘(새미, 샘)이 등장한다. 감독은 스필버그라는 빛나는 성을 묵음 처리한 채 페이블맨 가족의 일대기를 쓰기로 한다. 영화는 미치와 버트, 그리고 새미가 겪는 실패를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한다. 사랑에 빠진 이들, 공포와 매혹에 휩싸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짓는 ‘페이블맨’들은 언젠가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결국 쓰는 자를 벗어나 읽는 자에게 속한다. 아름답고 열정적인 사랑은 그 사랑에 포함되지 못한 이에게는 상처를 남기고, 새미는 격렬한 통증을 감수하며 배운다. 영화는 나에게서 출발하지만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는다. 심지어 많은 경우에 만드는 자의 주장과 의도를 배반하면서 완성되는 것이 영화다. 스필버그가 이러한 영화의 운명을 깨닫지 못했을 리 없다. <파벨만스>의 제목을 <스필버그스>로 바꾼다 해도 영화는 기어코 제 손을 떠날 것이다. 감독은 차라리 ‘페이블맨’, 이야기를 짓는 사람들과 그들 가족이 쓴 우화를 펼쳐보려 한다.

<파벨만스>
<파벨만스>

“잊히지 않는 꿈”을 맛본 후, 소년은 영화에 푹 빠져든다.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는 ‘교통사고’는 무섭고 황홀해서, 새미는 그걸 떨쳐내고 싶은 동시에 다시 보고 싶다. 그는 한밤중 장난감 기차를 선로에서 움직여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장난감 자동차와 충돌시킨다. 아들의 속내를 알아차린 미치는 새미에게 버트의 카메라를 건넨다. 새미가 처음으로 찍은 ‘기차 영화’는 광활한 스크린 대신 그의 작은 두 손바닥에 영사된다. 영화는 그에게 더는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내 갖고 노는, 손에 붙잡고 기뻐할 수 있는 자랑거리다. 그는 두 여동생을 배우 삼아 미이라 영화를 찍으며 집안을 한바탕 어지럽혀 놓는다. 제법 십 대 티가 나는 나이에 접어들자 새미(가브리엘 라벨)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존 포드, 1962)를 모방한다. 필름 값을 마련하려고 모래바람 이는 애리조나 산속에 들어가 전갈을 잡고, 온 식구와 친구들을 동원해 총격전을 연출한다. 케첩을 가짜 피로 사용하던 시절은 오래전에 끝났다. 이제 배우들은 가슴에 움켜쥔 작은 풍선을 터뜨려 피를 흘리고, 새미는 필름에 구멍을 내서 총구 섬광을 실감 나게 구현한다. 이미 그는 전갈이 맹독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영화에 매료됐지만, 버트는 “실제로 쓸모 있는 것들”에 집중하라고 가르친다.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줄기 삼아 <파벨만스>는 예술가의 탄생으로 뻗어간다. 여기에서 뿌리가 되는 것은 “우리 집은 과학자와 예술가의 전쟁터”라고 자평하는 한 가족의 역사다. 새미에게 영화는 거듭 다른 의미를 띤다. 무언가를 흉내 내는 놀이와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희열을 선사하는 취미, 그렇게 유희의 영역에 머물렀던 영화는 어느 날 새미를 다시 공포로 밀어넣는다. 버트의 이직으로 인해 이사가 결정된 후, 새미 가족은 캠핑을 떠난다. 버트의 조수이자 가족 모두와 각별하게 지내는 베니(세스 로건)도 함께다. 버트가 누구나 칭찬할만한 모범적 가장이라면, 베니는 매력 넘치는 연예인이다. 아이들을 불러 모아 온화하고 진중한 태도로 사물의 원리를 설명하던 버트는 이내 혼자 남는다. 미치를 나뭇가지에 매달고 흔들어대는 베니 곁으로 아이들이 몰려가서다. 교훈을 전하는 버트와 농담을 던지는 베니 사이에서 미치는 위태롭게 균형을 잡는다. 이후 미치가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크게 상심하자, 버트는 새미에게 ‘캠핑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방에 틀어박혀 필름을 만지다가 새미는 알아차리고 만다. 어머니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 미처 눈치채지 못했거나 인정하지 않았을 뿐 미치와 베니는 서로를 원하고 있다. 새미는 경악한다. 영화가 진실을 포착한다는 것, 그 진실은 때로 몸서리치게 파괴적이라는 것. 어쩌면 새미는 그 순간 영화가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을 제 손으로 확인했는지도 모른다.

<파벨만스>
<파벨만스>

죄책감에 못 이겨 카메라를 팔아버린 새미가 다시 감독으로 나서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족의 분리와 유대인 혐오 등 새미의 십 대 후반엔 그늘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약동하는 기운이 끊임없이 피어오른다. 무성영화 판에서 일했다는 삼촌 보리스(주드 허쉬)가 갑자기 나타나서 욕망과 불화하는 예술가의 고통을 설파하는가 하면, 예수님께 기도하자며 새미를 무릎 꿇게 한 모니카(클로이 이스트)는 키스 세례를 퍼붓는다. 그들이 몰고 온 자극 덕분인지 새미는 교내 ‘소풍 영화’를 찍는 일에 동의한다. 배우들을 컨트롤할 수 없는 환경이지만 그는 평소대로 공정을 밟는다. 잘 찍고, 잘 이어 붙이면 된다. 영화는 여전히 ‘신의 놀이’여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보여줄 수도, 얼간이를 영웅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새미는 다시 한번 예술가이자 사기꾼이 되어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내놓는 영화의 힘을 제대로 마주한다. <파벨만스>를 스필버그의 실화라고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그가 어떤 유산을 물려받았는지 짐작해볼 순 있다. 영화는 버트의 책임감과 미치의 예민하면서도 담대한 성격, 베니의 유머까지 전부 껴안는다. 포용력을 발휘하며 유려한 솜씨로 찍고 이어 붙인 끝에, 영화는 “역사상 최고의 감독” 존 포드(데이비드 린치) 앞으로 새미를 데려간다. 얼떨떨한 만남을 마친 후 새미는 기운차게 걷는다. 그때 카메라가 흔들리면서 화면 중앙에 위치했던 지평선이 아래로 쑥 내려간다. 새미가 말하는 것 같다. ‘봐라, 나는 작고 하늘은 이토록 넓다.’ 기어코 제 발로 미지의 세계에 들어서는 청년의 뒷모습이 영화 그 자체처럼 보인다면 과장일까. 하지만 <죠스>(1975)로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연 이래 반세기에 걸쳐 할리우드를 지킨 스티븐 스필버그가 증명한다. 새미와 마찬가지로 영화 또한 늘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운명을 타고났다.

 

파벨만스 The Fabelmans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미셸 윌리엄스, 폴 다노, 세스 로건, 가브리엘 라벨 외 수입·배급 CJ ENM 제작연도 2022년 상영시간 151분 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 2023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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