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행동, 따뜻한 눈빛
<희수> <이어지는 땅> 공민정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Interview / 2022-12-22

희고 깨끗한 얼굴, 길고 가느다란 몸. 공민정은 꾸밈없는 그릇 같다. 형형색색의 꽃보다는 그 꽃의 빛깔과 향기를 머금은 화병에 가깝다. 3년 전 겨울에 찍은 <희수>(감정원, 2022)에서 공민정은 감정이 찰랑이는 투명한 얼굴로 대구와 동해를 오간다. 도시와 도시뿐만 아니라, 자신과 타인 사이를 경계 없이 들고 난다. 공민정은 지난 여름엔 동료들과 유럽으로 떠나 여행하듯 <이어지는 땅>(조희영, 2022)을 촬영하고 돌아왔다. 영화 속 이원은 런던에서 밀라노로 자리를 옮겨 가며 제 안에 기억과 꿈을 저장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 개봉과 영화제를 통해 두 편의 영화를 선보인 공민정과 만났다. 여러 계절을 겪는 사이, 배우의 얼굴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의 몸에는 또 무엇이 다녀갔을까? 공민정은 뜻밖에도 이제 사랑을 연기할 수 있겠다고 고백했다. 왜 하필 사랑이냐 묻자, 사랑 말고 달리 뭐가 중요하겠냐며 조용히 웃었다. 설렘과 관능이, 열정과 허무가 동시에 타오르는 사랑의 모든 순간을 온전히 체현하길 공민정은 기다리고 있다.

 

 

<이어지는 땅>과 <희수>에는 교집합이 있다. 이원과 희수 둘 다 산책자이자 여행자라는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데. 둘 다 영화에서 참 많이 걷는다.

촬영 기간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많이 걷는다. 나한테는 걷기가 일종의 치료제다. 생각을 다듬고 기분 전환하는 시간이다. 근데 듣고 나서 생각해보니 두 영화가 정말 비슷하네. 시공간이 교차하는 구성도 그렇고, 전반적인 분위기도 닮은 데가 있다. 연기하면서 딱히 걸리거나 불편한 지점 없이 편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어지는 땅>을 찍을 때는 하루에 몇만 보씩 걸었다. 오히려 차를 타고 움직이기가 여의찮아서 웬만한 거리는 도보로 이동했거든. 열흘 내로 촬영을 마쳐야 했다. 시간도 빠듯하고 힘들 수밖에 없는 조건인데 별로 힘든 줄 몰랐다. 다른 배우와 스태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힘들어할 겨를이 없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든 잘 만들어내고 싶다는 마음을 공유했던 것 같다.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즐겁게 찍고 왔다.

 

그렇게 오래 걷는 모습을 보니 걸음걸이가 눈에 들어오더라. 큰 힘 들이지 않고 가볍게 걷는다. 척추의 긴장을 풀고 길쭉한 팔다리를 흔들면서 보폭을 유지한다.

내가 좀 흐느적흐느적 걷지? 마음과 기분에 따라서 걸음걸이가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희수>에서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자유롭지만 조금 낯가리는 걸음걸이라고 해야 할까. <이어지는 땅>에서는 확실히 그보다 경계 없이 걷는다. 그냥 ‘여기가 내 공간이다’ 하는 마음으로 돌아다녔다.

 

결국 그 걸음걸이가 영화의 리듬과 속도를 결정한다.

발이 핵심이다. 감정이든 태도든 발에서 나온다. 연기 역시 발에서 출발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 난 습관처럼 발을 본다. 놀랄 만큼 내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거든. 머리로 인지하기 전부터 몸에 티가 나는 거다. 기분 좋으면 발을 동동 구르거나 위아래로 까딱까딱 흔든다. 경계하는 상황에선 발을 배배 꼰다. 양발을 편히 두지 못한 채 가운데로 오므리기도 하고. 그걸 발견하면 ‘지금 내가 되게 방어적이구나’ 알아차린다. 신기하다니까. 여럿이 있을 때도 발을 살펴보면 내가 누구를 멀리하고 싶은지, 누구한테 가고 싶은지 알 수 있다.

 

언제부터 발을 의식했나.

오래전 연기 코치님이 발을 들여다보라고 조언해주신 적이 있다. 연기가 풀리지 않거나 감정이 안 생겨서 막막하다 싶을 때는 일단 발부터 움직여본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서서히 감정이 차오르기도 하고.

<이어지는 땅>
<이어지는 땅>

<이어지는 땅>과 <희수>의 계절은 정반대다. 여름과 겨울, 굳이 따지면 어느 쪽을 더 좋아하나.

여름. 추위를 싫어해서 겨울에는 줄곧 웅크리고 다닌다. 조만간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가볼까 싶다. 살짝 더운 곳에서 몸을 늘어뜨리고 쉬는 게 나와 잘 맞는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최근에는 일하느라 시간 내기가 어려웠다.

 

여행을 좋아하는 동시에 루틴을 중시한다. 일하는 감각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러 번 말했다.

정해진 일과란 게 없으니 스스로 루틴을 만든다. 루틴에 맞춰 열심히 살다 보면 때때로 벗어날 구멍이 필요해지고. 난 여행지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다. 낯선 장소, 새로운 생각, 특별한 발견. 여행은 그런 선물로 가득하다. 여행을 가면 엄청난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마음 안과 밖에서 사건이라 부를만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그런 경험이 나에게 귀한 자산으로 남는다. ‘죽기 전에 뭐가 생각날까?’ 자문하니 여행과 사랑이 전부겠더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여행은 진짜 잊을 수 없겠지.

 

그래서 희수도 학선(강길우)과 여행을 가고 싶었나 보다. 희수가 공장에서 맨손체조 하는 모습도 떠오른다. 구호에 맞춰 동작을 무감하게 반복한다기보다는 자신만의 루틴을 챙기는 것처럼 보인다.

정원 감독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희수에겐 체조가 자신을 돌보고 지키는 행위라고. 눈앞의 상황과 몸에 집중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딱 맞는 움직임은 그때 나올 테니까.

 

촬영 시기로 따지면 오래전 영화인데. 머리카락 길이만 봐도 시간이 꽤 지났구나 싶다.

3-4년 사이에 긴 머리가 됐다. 심지어 최근에 한 번 잘랐는데 여전히 길긴 하다. <82년생 김지영>(김도영, 2019)과 같은 해에 <희수>를 찍었다. 짧은 머리를 좋아한다. 손 안 가는 헤어스타일. (웃음) 좀 길어졌다 싶으면 바로 자르는 편이라 그때도 별생각 없이 숏커트 했다. 다행히 그 모습이 <82년생 김지영>의 은영과 잘 맞아떨어졌고 <희수>까지 이어졌다. 이렇게까지 오래 긴 머리를 유지하기는 처음이다. 아무래도 다양한 역할을 맡는 데 도움이 된다. 근데 성격은 어디 가질 않으니 요새는 짧은 머리가 딱 어울리는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 그럼 단숨에 잘라버려야지.

 

<이어지는 땅>의 이진근 촬영감독과는 단편 <주인들>(2022)을 포함해서 여러 차례 작업했다.

진근 오빠와는 20년 가까이 알고 지냈다. 대학 동기이고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다. 덕분에 훨씬 편하게 찍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영화에 모두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뭔가를 들여다보려 몸을 기울이는 순간, 카메라가 옆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관찰자라는 인물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이어지는 땅>에서는 길을 걷다가 플라밍고를 발견하고, <희수>에서는 기차에 탄 후 창밖을 바라본다. 관찰자라는 말을 들으니 ‘그게 나인가?’ 싶다. 골똘히 응시하거나 먼 곳을 보는 모습이 잘 어울렸다는 뜻 아닌가. 실제 나에게 그런 모습이 분명히 있을 거란 말이지.

<희수>
<희수>

평소에도 잘 보고 듣는 사람이구나 싶다. 이원이 친구의 꿈 이야기를 잠자코 듣다가 딱 한 마디 하지 않나. “일이 많았구나.” 관찰과 듣기는 타인을 헤아리는 마음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관찰하는 모습도 각각 다르다. 누군가는 집요하게 파고드는가 하면, 다른 누군가는 경계하고 의심한다. 나는 투명하게 관찰하는 타입인가 보다. 세상만사에 달관한 도인처럼 보인다는 얘기도 들었다. 인생 다 살아본 사람 같다고. (웃음)

 

또 하나 겹치는 장면이 있다. 혼자서 곤히 잠든 모습. 꿈과 현실을 유영하는 듯한 영화의 구성과 맞닿는 장면인데, 외로워 보이면서도 무척 사랑스럽다.

그 말도 자주 듣는다. 난 가만히 눈 감고 잘 때 제일 예쁘다고 하던데? (웃음) <이어지는 땅>은 묘한 영화다. 어느 순간 호림(정회린)과 이원은 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원이 해결하지 못한 과거의 자아, 그게 호림인가? 아픈 채로 남겨둔 자신을 다시 마주하는 건가?’ 조희영 감독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언제나처럼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죠”라면서 확답을 피하더라. 더 묻진 않았다. 인물의 정체와 관계를 고정하기보다는 상상할 여지를 갖고 연기하는 편이 내게도 나으니까. 근데 촬영하면서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호림은 이원의 과거구나. 둘은 같은 사람이구나. 이원은 지난날을 얼마간 그리워하는 상태라고 봤다.

 

이원과 호림을 동일 인물로 이해했다고 말한 것처럼 지난 인터뷰에서는 희수를 귀신으로 여겼다고 했다. 그렇듯 환상적 설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배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 해방감을 얻는지 아니면 연기하며 의식해야 할 조건이 생기는지 궁금하다.

희수를 영혼이라고 생각하지만 ‘영혼 연기’를 할 수는 없다. 그냥 희수라는 인물로서 존재할 뿐이다. 다만, 마음속에 뭔가 쌓인다. 애틋함이라든지 다정함 같은 것들. 연민을 앞세워 연기하진 않지만, 그런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는 다르다. 희수를 그저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할 때와 ‘희수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희수 마음이 좀 편안해져야 할 텐데.’라는 마음으로 접근할 때는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내 속내를 연기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내 몸은 어떤 부분을 자연스레 세팅한 채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 인물을 예쁘게, 귀하게 여기는 마음. 다치지 않도록 소중하게 대하는 마음. 결국 애정의 차이인 것 같다. 연기를 통해 꼭 전달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물을 향한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느끼나?

매번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다. 근데 어느 순간에는 마음이 아주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잔디밭 장면. 감정원 감독이 다가와서 묻더라. “언니, 왜 똑바로 안 걷고 이리저리 피했어요? 혹시 꽃 밟을까 봐 그런 거예요?” 당시 내가 어떤 모습으로 걷는지 몰랐다. 그냥 정원 감독 말대로였다. 희수라면 소소한 생명이나 어여쁜 존재를 해치지 않을 테니까. 근데 나도 그런 면이 있거든. 희수 같은, 희수와 닮은 면이 행동에 자연스레 묻어 나오면서 완성했던 장면이다. 폭력성이 강한 인물을 연기했다면 걸음걸이가 완전히 달랐을 거다. 꽃을 밟든 잔디가 상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앞만 보며 뚜벅뚜벅 걸어갔겠지.

 

내게 없는 걸 새로 만든다기보다는 이미 체화하고 몸에 지닌 것 중 인물에게 가장 어울릴만한 걸 꺼내 쓴다는 뜻인가.

근데 나한테 없는 게 있을까? 멀리 있을 수는 있다. 아주 얕고 희미할 수도 있다. 근데 없지는 않다. 공들여 찾고 다양한 방법으로 극대화하다 보면 결국 내 것이 된다. 없을 수 없고, 없어도 있다. 내 목소리를 내려면 무조건 믿는 수밖에. 배우마다 인물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를 텐데, 난 그렇게 믿어야 연기할 수 있다. "평소에 난 이렇게 행동하지 않아. 비슷한 말도 해본 적 없어. 나랑 이 캐릭터 진짜 안 맞아." 그렇게 인물을 뚝 떨어뜨리는 방식이 내겐 별로 유효하지 않다. 게다가 사람은 너무나 가변적이다. 누구와 함께하고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 하물며 날씨, 음식, 장소와 같은 일상적 요소에도 시시각각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까 어떤 인물이든 연결고리가 존재한다고 본다. 그걸 의심하고 부정하면 더 힘들더라.

 

조희영 감독은 모든 테이크를 다르게 연기하는 점에 감탄했다며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것에 비해 캐릭터와 감정에 대해서 꼼꼼하게 이야기 나누려는 배우”라고 칭했다. 우선 이걸 물어보고 싶다. 본인이 찾아낸 접점에 의지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다르게 연기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방금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해보라고 하면 똑같이 못 한다. 당연히, 분명히 다르게 말할 거다. 1분 전과 후의 내가 다르듯, 이전 테이크와 다음 테이크의 나는 다를 수밖에 없다. 상대 배우가 다르게 주면 다르게 받아야 하고, 불현듯 바람이 불어오면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물론 모든 현장에서 그처럼 자유로울 순 없다. 처음 약속한 대로 연기해야 하는, 약속을 어기면 더 힘들어지는 현장도 있다. 다만, 내 감정과 모습을 통제하지 않는 상황에서 더 좋은 걸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장에서는 나도 적극적으로 응한다. 같은 대사를 하더라도 표정과 말투, 목소리 톤 등 매번 새롭게 변화하는 부분들이 생긴다. 근데 진짜 궁금한 건 이거지? 그토록 날 것을 선보이는 데 스스럼없는 사람이 왜 캐릭터를 철저하게 파악하려고 하느냐.

공민정 ©이영진

두 가지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즉흥적 연기와 논리적 해석은 언뜻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거든.

희영이도 한 번은 우스갯소리로 그러더라. “어차피 언니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잖아.” (웃음) 내가 대본을 열심히 읽으니 희한하다는 듯 쳐다봤다. 아예 안 읽고 연기하는 사람 같다면서. 근데 나 진짜 많이 생각하거든. 긴가민가하면 의문이 풀릴 때까지 고민한다. 단편 <두 개의 물과 한 개의 라이터>(2020)에 갑자기 화내는 장면이 있다. 대본을 아무리 봐도 모르겠더라. 난 그렇게 버럭 지르는 사람이 아니니까. 편하게 가려고 했으면 희영에게 말했을 거다. 이 감정은 잘 모르겠으니 다르게 연기하고 싶다고. 근데 감독에게는 그렇게 글을 쓴 이유가 있지 않겠나. 그와 같은 순간을 체험했거나 목격했거나, 어쨌든 그 장면에서 만들어내고 싶은 바가 있다는 뜻이다. 난 그걸 대충 넘겨서는 안 되고 진심으로 구현해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다가 난데없이 화냈던 순간을 찾아내고자 과거의 나를 끈질기게 되짚어봤다. 결국 어떤 장면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때 상황을 복기하니 ‘갑자기 화를 낸다’는 지문이 어떤 뉘앙스인지 알겠더라. 난 그걸 ‘버튼’이라고 부른다. 버튼을 찾아내서 누르는 거다. 버튼이 있느냐 없느냐, 버튼을 인지하며 연기하느냐 아니냐. 여기엔 뚜렷한 차이가 있다. 가급적 시나리오에 적힌 대로, 감독이 원하는 감정과 리듬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동시에 그 안에서 내가 춤추고 놀 수 있는 자리를 탐색한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그건 연기도 창작도 아니다. 브이로그 찍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두 영화는 시간을 자의적으로 활용하며 과거, 현재, 미래를 섞는다. 시간이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는 작품에선 감정선을 어떻게 그리나. 사건 중심으로 기승전결을 파악하는 방식은 통하지 않을 텐데.

시공간의 교차와 분리는 영화적 구조일뿐 실제 연기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희수>에서는 현실에서 일하는 나와 여행을 떠난 나, 이렇게 두 사람으로 존재했다. 그 둘을 따라가는 데 집중했고 다른 부분은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어지는 땅>도 마찬가지다. 런던에 머무는 나와 밀라노에 거주하는 나. 다만, 중의적으로 접근하기는 했다. 호림은 타인이자 또다른 나, 과거의 이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호림과 마주하면 시선이나 목소리에 자연스레 감정이 실렸다. 옛날 앨범 펼치는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20대에 꺼내 보는 10대 사진, 30대에 다시 보는 20대 사진. 생경하면서도 그리운 마음이 든다. 앳된 모습이 괜히 안쓰럽기도 하고.

 

말한 대로 이원과 희수는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떠도는 사람인데,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어딘가에 뿌리 내리기를 시도한다. 이원은 풀밭에서 꽃씨를 심으며 등장하고, 희수는 떨어진 꽃을 땅에 묻어주면서 퇴장한다. 흙을 만지는 모습이 두 작품에 모두 담겼다는 점이 단지 우연은 아닌 것 같더라.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두 작품에, 이원과 희수라는 캐릭터에 마음이 갔나 보다. <희수>에서는 ‘내가 날 체험했나?’ 할 정도로 몰입했다. 거슬리는 부분은 하나도 없는데 촬영하는 내내 근간이 건드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근원적 뿌리가 떨리는 느낌. <이어지는 땅>은 그보다 편하게 임했지만, <희수>만큼이나 정서적으로 밀착한 상태였던 건 맞다. 떠돌지만 뿌리 내리려고 하는, 뿌리 내리고 싶은데 자꾸 떠도는 사람. 나도 그렇다. 누구보다 안정을 갈망하면서도 아직까진 정처 없이 돌아다닌다. 언젠가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특히 <희수> 찍으며 여러 번 생각했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이런’은 뭘 의미하나.

희수는 나였다. 진짜 나. 시나리오에 대사가 거의 없었다. 내 말과 행동으로 신을 완성할 수 있도록 열어 놓은 작업이었다. 매우 조용한 영화다. 고요함과 조심스러움, 아마도 그게 나의 핵 아닐까. 살면서 많은 부분이 다듬어지고 변화했지만 애초 난 희수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다. 조용히 지켜보는 사람, 단단함을 바라지만 알고 보면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유약한 사람. 어렸을 적엔 더했다. 좋다거나 싫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거든. 수줍음 많고 말수 적은 애였다. 발표 시간에는 손 들기가 무서워서 눈치만 봤고, 친구들에게도 먼저 못 다가갔다. 나랑 안 놀아주면 어떡하나 싶어서. 그만큼 내성적이었다. 대신에 난 뭔가를 계속 봤다. 관찰하고, 생각하고, 그러다 시를 많이 썼다. 대회에서 상도 여러 번 받았다.

 

어떻게 연기할 마음을 먹었나 모르겠다. 되게 용기를 내야 했을 텐데.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꽤 오랜 시간 막연하게 동경했다. 초등학교에 연극부가 있었다. 뭐가 그리 무섭고 창피했는지 연극부 교실 주변만 맴돌았다. ‘내가 감히 어떻게 연기를 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앞을 못 떠나겠더라. 너무 재밌어 보였거든. 쭈뼛대며 멀찌감치 서서 연극부 친구들을 구경했다. 그때 내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쩌면 그렇게 오래도록 고민했기에 막상 시작한 다음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

 

두 영화의 마지막 공통점은 사랑과 이별이다. 둘 다 따지고 보면 지난한 러브 스토리 아닌가. 심지어 <희수>에서는 떠나는 사람으로, <이어지는 땅>에서는 남겨진 사람으로 죽음을 경험한다.

알고 보면 나 사랑꾼이라니까. (웃음) 근데 이제 아주 전형적이고 본격적인 멜로 영화도 찍고 싶다. 사랑의 한 구간만 보여주는 작품 말고 사랑 자체를 다뤄보고 싶은 마음이다. ‘꽁냥꽁냥’ 설렘으로 시작해서 한참 웃고 떠들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격렬하게 싸우기도 하는 사랑. <블루 발렌타인>(데릭 시엔프랜스, 2012) <우리도 사랑일까>(사라 폴리, 2012) 같은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두 작품에서 미셸 윌리엄스가 연기한 캐릭터, 사랑의 온갖 감정과 모습이 담긴 그 인물들에 마음이 간다. 나도 폭넓은 감정 스펙트럼을 표현하고 싶고, 잘 해낼 자신도 있다. 준비를 마쳤으니 기량을 선보일 때가 왔다. 인터뷰하는 김에 말해야겠다. 지금 날 캐스팅하면 진짜 ‘득템’하는 거다! (웃음)

공민정 ©이영진

<희수>에서 안민영 배우와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중년 여성이 “아가씬 사랑해봤어?”라며 평범하고 안온한 일상은 사랑이라 할 수 없다고 하자 희수가 되묻는다. “그럼 사랑이 뭔데요?” 공민정에게 사랑은 뭘까. 어떤 사랑을 기대하는지, 어떤 사람에 반하는지 들려준다면.

웃긴 사람. 날 웃게 해주는 사람. 개그맨처럼 재밌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웃음에는 맥락과 코드가 있다. 얼마 전 폐막식 사회자로 참석한 서울독립영화제2022 슬로건이 ‘사랑의 기호’였다. 내게는 웃음이 사랑의 기호다. 누군가의 표정이나 제스처, 혹은 지나가듯 건넨 농담에 웃으면서 사랑이 싹튼다. 살다 보면 그런 사람 만나잖나. 남들은 하나도 재미없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되게 웃긴 사람.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그와 함께하면 행복하다는 뜻이겠지.

 

개그 욕심은 없나. 웃는 만큼 웃게 하는 것도 중요할 텐데.

사랑에 빠지면 나나 상대나 웃기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냥 웃음이 새어 나온다. 서로 귀여워하다 보니 툭 던진 말 한마디에도 크게 웃고, 딱히 뭘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행복하다. 살아 있는 기분이다. 사랑하면 확실히 많이 웃는다. 사랑하지 않으면 웃음도 줄어들고. 사랑에 조건을 따지면 너무 많기도, 아예 없기도 하다. 어쨌든 내 경우엔 엄청난 계기가 필요하진 않다. 사소한 행동, 따뜻한 눈빛, 편안한 웃음이면 충분하다. 발이 차가운 편이다. 그걸 알아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말을 신겨주는 사람에게 감동한다. 그런 사람 만나면 사랑에 푹 빠질 것 같다.

 

사랑하다 보면 웃음을 잃는 순간도 더러 찾아온다.

물론 나도 연애할 때는 여느 커플처럼 다툰다. 남들이 ‘사랑하는 거 맞나?’ 할 정도로 싸우지. (웃음) 근데 싸운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갈등이 꼭 이별의 이유가 되어야 하나? 난 싸울지언정 “우리는 안 맞으니 헤어져야 해”라고 결론 내리고 싶지는 않다. 싸움을 상쇄할 만한 즐거움을 찾으면서 조금씩 맞춰 가야 한다고 본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다투는 일도 줄어들 테고. 사랑하는 사람 쉽게 못 만난다. 연애야 많이 할 수 있는데 사랑은 정말 드물다. 많아 봤자 평생 세 번? 삶은 짧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고 아쉽다. 

 

대화 마치기 전에 오늘 이야기한 두 영화에 관해 감상을 듣고 싶다. 관객으로 보면 어떤가. 취향에 맞나.

내게는 둘 다 귀한 작품이다. 우리 영화를 좋아해 준다면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면 좋겠다는 바람과는 별개로, 다수에게 다가가기를 목표 삼는 작품들은 아니란 걸 안다. 다만, 누군가의 마음 한구석을 깊이 두드릴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 좋아한다. 근데 또 사람 취향이라는 게 한 우물만 파진 않으니까. 요즘에는 블록버스터도 자주 본다. ‘킬링 타임’ 영화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쉬는 시간도 좋고. 몸과 마음 상태에 따라 끌리는 작품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지금 나에겐 쉬운 영화가 필요한 것 같다.

 

“일이 많았구나.” (웃음)

일이 참 많았지. 아, 근데 얼마 전에 <본즈 앤 올>(루카 구아다니노, 2022) 보면서 엄청나게 감탄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도 진짜 좋아했다. 그러고 보면 나한테도 취향이 있긴 하구나 싶다. <본즈 앤 올>은 표면적으로 식인 행위를 다룬다. 이 영화가 어떤 지점에서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의아한데, 끝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순간에 도달한다. 마지막에 “Eat me.”라는 대사가 들릴 때 마음이 정말. 슬프고 섹시하고 황홀했다. 바로 알겠더라. 이 장면을 보여주려고 영화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구나. 감독의 연출과 상상력에 다시금 놀랐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소위 ‘정상’이라 칭하는 범주 밖에 존재하는 인물들, 다종다양한 사랑을 꾸준히 다루고 있다. 영화에서 택하는 소재도 특별하지만 무엇보다 표현력이 놀랍다.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지났는데도 몇몇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티모시 샬라메의 대체 불가능한 아우라도 여지없이 대단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가 그랬듯 <본즈 앤 올>의 리 역시 티모시 샬라메만 구현할 수 있는 캐릭터다. 장르에 특화된, 자기만의 영역이 확실한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탈인간적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까, 티모시 샬라메나 틸다 스윈튼 같은 배우를 보면 압도당한다. 영화의 형식과 장치에 앞서 제 존재만으로 판타지를 설득해낸다. 관객뿐만 아니라 배우로서도 그런 힘에 끌리나.

올해 그걸 깊게 고민했다. ‘내 힘은 뭘까? 나는 어떤 힘을 가져야 할까?’ 배우마다 탁월한 면도, 보여줄 수 있는 모습도 다르다. 감독은 결국 그 이미지를 근거로 캐스팅을 결정하고. 계속 질문하며 찾아 나가는 중이다. 나는 무엇에 특화된 배우인지, 나만의 힘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희수>
<이어지는 땅>

최근 연이어 공개한 드라마에서는 주로 직업 특성을 강조한 전문직 캐릭터를 연기했다.

나도 신기했다. 작년에 <갯마을 차차차>에서는 치위생사 역할이긴 했지만 직업이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다 올해는 검사와 기자처럼 전문성이 부각된 캐릭터를 만났다. 사실 <갯마을 차차차>(tvN, 2021)가 워낙 큰 사랑을 받은 터라 이후 비슷한 역할이 들어올 거라 예상했다. 근데 감사하게도 날 다각도로 바라봐주시더라. <작은 아씨들>(tvN, 2022)의 김희원 감독님은 “밝게 웃는 아이 같은 모습 뒤에 서늘함이 있다. 나는 그 간극을 쓰고 싶다.”라면서 캐스팅을 제안하셨다. 나로서는 복 받은 셈이지. 감독님이 내 또 다른 면을 봐주지 않았다면 장마리라는 인물을 연기할 기회가 없었을 테니까. <천원짜리 변호사>(SBS, 2022)도 마찬가지다. 내게서 프로페셔널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발견해준 덕분에 나예진을 연기했다. 생각해보면 지난 2년간 정말 다양한 인물을 만났다. 보여줄 것이 더 많기를 바란다. 하나만 계속하면 아쉬울 것 같거든.

 

아름답고 볼썽사나운 사랑도 그려보고.

꼭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미셸 윌리엄스와 캐리 멀리건의 몇몇 작품을 보면 여전히 가슴이 뛴다. 설렘과 열정은 물론이고, 찬란한 순간이 모두 지나간 후에 텅 비어버린 마음까지 전부 표현해낸다. 표정 하나, 눈빛 한 번으로. 삶에 뭐가 다녀갔는지 알 수 있는 얼굴, 그게 정말 멋지다. 난 요새 이재규 감독님의 신작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촬영하고 있다.

 

쉴 틈 없이 일한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느낌이 드나.

아직 멀었다. 걸음마 하는 단계이니 앞으로 잘 걸어 봐야지. 일에 관해서는 사실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해낼 거라고, 잘할 수 있다고 항상 믿었다. 반면에 사랑은 확신할 수가 없다. 일과 사랑,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난 사랑인데. (웃음) 사랑을 충족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 같다. 어쩌면 사랑이 어려워서 일에 더 집중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구를 채우려고. 진짜 사랑하면, 내 근간을 채우는 사람과 만난다면 일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을 것 같다. 말 그대로 즐기면서 일할 수 있겠지. 결국 밸런스다. 일과 사랑 어느 한쪽에만 목매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 단단하게 사랑하고, 건강하게 일하고. 이제 그랬으면 좋겠다.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

그저께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들었다. 친구가 트리를 줘서 집에 설치도 하고. <천원짜리 변호사>에 함께 출연한 김지은 배우와 연락하다가 “야, 그날 만날 사람 없으면 우리끼리 놀자” 농담했는데 진짜 그렇게 될 것 같다.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지은이한테 기타 쳐주기로 했다. 최근에 신민아 배우랑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거든. 이상이 배우가 우리 선생님이다. 원래 상이에게 기타를 가르쳐줄 만한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했는데 자기도 기본적인 건 가르쳐줄 수 있다고 하더라. 셋이 모이면 즐겁다. 좋은 노래 듣고 연주도 하고.

 

지금 연습하는 곡은?

라디오헤드의 creep.

 

크리스마스에 연주하면 분위기 가라앉을 것 같은데!

이 노래야말로 진짜 러브송이지. (웃음)

공민정 ©이영진
Interview
이것이 전부란 말인가
<숨> 윤재호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5-03-17
Interview
사랑하는 당신
<두 사람> 반박지은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2025-02-11
Interview
정서의 확장
<은빛살구> 나애진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5-01-16
Interview
바람 불면, 하늘 보고
<힘을 낼 시간> 현우석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5-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