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가장 소중한
SIFF 2022 <두 사람> 반박지은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Festival / 2022-12-04

"내 세대의 사람을 못 만나는 거지, 한국에서는.” 김인선과 이수현은 70대 레즈비언 커플이다. 유학 중 처음 만났고 곧 사랑에 빠졌다. 각자 짊어진 무게가 상당했지만 같이 살기로 결심했다. 독일에 정착하여 오랜 시간 간호사로 일한 두 사람은 어느새 30년 넘게 곁을 지켜 온 인생의 동반자다. 요약하면 아름다운 이야기, 하지만 그들의 삶이 마냥 온화하게 흘러간 것은 아니다. 달콤한 로맨스는 수시로 비난당했고 나답게 살려는 노력은 빈번히 짓밟혔다. 하지만 둘의 마음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외려 단단해졌다. 애정과 돌봄의 공동체를 일군 인선과 수현은 열심히 노동하고 불의에 맞서는 시민이다.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노인으로서 갖가지 차별에 노출되는 그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으며, 젊은이가 기대하는 ‘멘토’ 역할까지도 기꺼이 떠안는다. 반박지은 감독은 그들 집에서 밥 먹고 수다 떨며 장편 다큐멘터리 <두 사람>을 완성했다. 질곡의 사랑을 차곡차곡 담는 동안 감독의 마음속엔 무엇이 쌓였을까.

 

 

영화제 일정에 맞춰 귀국했다고. 독일 이주는 언제 어떤 이유로 결심했나.

독일에 간지 6, 7년 정도 됐다. 한국에 돌아오려고 한다. 본래 한국에서 조연출로 일했는데 일이 싫어져서 떠났다. 아예 그만둘 생각으로 독일에서 공부하며 지냈는데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더는 여기서 살 이유가 없겠구나 싶더라. 인종 차별도 심해지고. 사실 일할 기회도 한국이 더 많다 보니까.

 

일은 다시 좋아졌나.

한국에서 살 때만 해도 영화 만들 생각이 없었다. 일 자체를 제대로 몰랐던 데다 조연출과 연출이 하는 일이 다르기도 하고. 어쨌든 다큐멘터리는 재밌다. 그러니까 또 하고 있지. <두 사람>을 끝낸 지 얼마 안 돼서 내 작업을 시작하진 못했고 현재 다른 작품에 피디로 참여하고 있다. 

 

한국에서 제작한 마지막 단편 <대교집>(2018)을 그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했더라.

한국에서 찍고 독일에서 편집한 작품이다. 실은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마치고 한국에 또 들어올 생각이 없었는데, 서울독립영화제에 가고 싶어서 귀국했다. 물론 다른 일정도 함께 소화할 예정이지만. 오랜만에 영화제 갈 생각하니 기분 좋다. 옛날에 압구정에서 입시 준비했거든. 이 동네에 추억이 많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지는 않은 듯한데.

미대 다녔다. 그림 그리고 비디오도 만들고. 졸업 후 특허 디자인 회사와 베트남 전쟁 관련 시민단체에서 잠시 일했다. 퇴사하고 백수로 지내던 시기에 친구가 ‘줌마네’에서 개최한 ‘두 번째 영화를 위한 제작 워크숍’을 소개해줬다. 학교에서 영상 작업을 짧게 해봤던 터라 흥미가 생겨서 친구 따라 참가했다. 그때 이숙경 감독님에게 <길모퉁이 가게> 조연출을 제안 받았다. 적성에 맞는 일은 아니었다. 

 

어떤 점이 안 맞았을까.

다큐멘터리가 그렇게나 강도 높은 작업인 줄 몰랐다. 아르바이트하듯 별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오산이었다. 감독님과는 작품을 대하는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다. 영화 제작에 열정이 있다거나 뚜렷한 목표를 세운 상태도 아니었다. 그저 영화를 좋아했고 현실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이제 이숙경 감독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감독이 되어 보니 그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 그동안 한 분야로 모을 수 없는 들쭉날쭉한 길을 걸었다. 지금 와서야 경력이라는 게 좀 생기는 것 같다. 남의 영화를 보는 것과 내 작품을 만드는 것은 참 다르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 아직 영화 안 만들어봤으면 한번 해보시라. 세상 모든 감독을 존경하게 된다. (웃음) 

 

다큐멘터리 연출은 오랜만이다. 극영화, 애니메이션, 실험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고 첫 장편으로 다큐멘터리를 선보이게 됐는데.

다큐멘터리가 훨씬 재밌기는 한데 실은 지금도 애니메이션 만들고 싶다. 당시엔 이렇다 할 기술이 없는 상태라 한 컷 한 컷 가내수공업으로 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의 매력은 한 주제를 깊게 파고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인물과 대면하며 계속 고민하고 함께 어려움을 돌파해나가는 과정이 좋다.

 

두 여자도, 부부나 연인도 아닌 ‘두 사람’이다. 단순한 제목이지만 곱씹을수록 선언적이라는 느낌이 들더라.

두 분이 올해 8월 31일에 결혼했다. 그전까지 공식적으로 부부는 아니었고 임대차계약서에 이름을 같이 올렸던 관계다. 제목을 정하기까지 많이 고민했다. 피디가 먼저 ‘두 사람’ 어떠냐고 아이디어를 줬는데 1년이 지난 후에야 제목을 확정했다. 수현 님이 그러시더라. 할머니라고 불리는 것도 싫고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것도 싫다고. 생각해보니 성별을 표현할 이유가 없더라. 인선과 수현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니까. 커플인 동시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 제목이 쉬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근데 인터넷 검색이 어렵더라. 그것까지는 생각 못 했다.

 

후보에 오른 제목 중엔 뭐가 있나.

두 분의 거주 지역을 따려고 했다. 크로이츠베르그Kreuzberg라고 베를린에서 외국인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전체 주민의 3분의 1이 이주 배경을 갖고 있고, 오래전엔 동독과 서독의 경계에 위치했던 곳이다. 의미는 좋은데 관객에게 너무 어려울 듯했다. 아, 두 분께도 여쭤본 적이 있다. ‘찰떡궁합’이 좋겠다고 하셨다. (웃음)

<두 사람>
<두 사람>

전시회에서 인선과 수현의 사진을 보고 관심이 생겨서 연락했다고. 무엇에 그토록 끌렸나.

사진 뒤편에는 나치 박해를 받은 동성애자를 추모하는 기념비가 있다. 물론 손을 잡고 있을 뿐이지만 그 앞에서 두 사람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의미를 전한다고 느꼈다. 게다가 한 분은 머리가 허옇게 세고 다른 한 분 역시 노인이고. 그간 내가 본 적 없는 성소수자의 모습이었다. 사진 뒤에 숨겨진 이야기가 엄청나게 많을 것 같아서 두 분을 꼭 뵙고 싶었다. 같은 베를린에 사는데도 연락처 구하기가 쉽지 않더라. 인선 님과 인연이 있는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 한겨레신문 기자 등을 통해 어렵게 수소문했다. 메일을 보냈더니 “그래요, 한번 봐요”라고 답장이 왔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두 사람 반응은 어땠나. 단번에 수락하던가.

수현 님의 경우,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했던 상황이 아니라 조심스러웠다. 한국에 가족도 계시고. 처음에는 인선 님께만 물어봤다. 얼마간 고민하셨는데 다행히 수락해주셨다. 당시 나 말고 미국에 사는 다른 감독에게도 연락받았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같은 동네에 산다는 점 때문에 나를 선택해주신 것 같다. 

 

이후 인선이 수현을 설득한 건가.

촬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수현 님을 담게 됐다. 한집에 사는 분들이다 보니 인선 님만 찍기가 어려웠다. 카메라 앞으로 수현 님이 지나가기도 하고, 인선 님을 찍을 때 수현 님 뒷모습이 살짝 나오기도 했다. 조심스레 여쭤봤더니 그냥 찍으라고 하시더라. 처음에는 카메라를 피하지 않는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셨다. 방송이든 영화든 다 괜찮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나이가 40살 정도 차이 나다 보니 초반에는 세대 차이라고 해야 할까. 약간 거리감을 느끼셨다. 내 딴에는 출연자와의 거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실제로 “수현 님” “인선 님”이라는 호칭을 썼는데, 두 분은 좀 어색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젊은 사람이 고생한다며 챙겨주시더라.

 

노년에 접어든 레즈비언 커플을 다루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온다. 기획 단계에선 어떤 그림을 그렸나.

촬영을 시작했던 2019년에는 ‘결혼’이라는 사건이 영화 말미에 들어올까 궁금했다. 두 분이 아픈 상황에 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주인공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출발했고 두 분이 나눠 온 사랑에 집중하려고 했다. 사랑 이야기는 담아낸 것 같은데 두 분 아픈 모습을 다시 마주하기가 힘들더라. 찍으면서도 괴로웠고, 두 분은 당연히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드셨을 거고. 근데 영화적으로 보면 예상치 못한 내용이 들어오며 주제가 확장된 셈이지 않나. 모순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둘은 1985년 재독한인여성교인수련회에서 처음 만났다. “예쁜 애한테 예쁜 꽃을 줬다”고 회상하는 수현의 음성에 여전히 설렘이 묻어난다. 둘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을 것 같은데. 

영화에 넣고 싶은 장면이 너무 많았다. 너무 많이 빼야 했다는 얘기다. 편집이 큰일이었다. 꽃을 줬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정말 영화적이다!’ 했다. 게다가 첫 만남이라니, 안 넣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근데 그 외에도 재밌는 이야기가 너무너무 많다. 영화 한 편 더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웃음)

 

평소 두 분 모습은 어떤가. 애정 표현도 잘하시나.

적극적으로 표현한다기보다는 그냥 늘 같이 계신다. 병도 병인데 나이가 있다 보니 두 분 모두 병원 갈 일이 많다. 인선 님이 병원 가는 날, 수현 님이 꼭 동행한다. 그 모습 보면서 감동했다. 인선 님이 글 쓰는 동안 물이랑 과일 챙겨주고, 평소에도 신경 써서 요리해주고. 그런 게 애정 표현 아닌가 싶더라. 

 

인선과 수현은 개성 뚜렷한 인물이다. 그렇게나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기질이 달라 보여서 재밌더라. 디아스포라영화제와 퀴어문화축제 참석 등을 위해 한국으로 떠나는 인선은 무덤덤하다. 반면 수현은 인선을 멀리 보내는 게 내심 불안한 눈치다. 시위나 집회에 갔을 때도 인선은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는데 수현은 멀찍이 서서 지켜본다.

인터뷰도 비슷했다. 인선 님은 본인 이야기를 하는 데 훈련된 분이고 표현력도 매우 좋다. 반면에 수현 님은 한 발짝 뒤로 빠지는 스타일이라 말 붙이기가 꽤 힘들었다. 가까이서 지켜보니 ‘30년 넘게 저렇게 살아오셨구나’ 싶더라. 농담할 때도 비슷했다. GV 가면 관객들이 두 분 관계를 엄청나게 궁금해한다. 싸우면 어떻게 화해하시냐, 사랑을 유지한 비결이 뭐냐. 인선 님이 그러시더라. “내일 당장 헤어질 수도 있어요. 영원한 건 없잖아요.” 수현 님은 조용히 듣고만 계시고. (웃음) 흥미로운 커플이다. 편집 감독과 두 분 MBTI를 유추해봤다. 캐릭터가 달라서 재밌더라. “감독님이라면 두 분 중에 어떤 타입이랑 사귀고 싶나요?” “감독님은 누구랑 더 비슷한가요?” 우리만의 게임처럼 그런 얘기도 했다. (웃음)

 

두 사람이 서로 존대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대화도 습관인데 오랜 세월 유지해왔구나 싶었다. 

신기했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렇게 존대하면서 말장난도 치고. 두 분을 보면 든든하고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하는데 아무나 가능한 건 아니겠지.

 

식사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오프닝에 나온 콩나물밥부터 줄곧 식탁 위에 고기가 올라오지 않던데.

내가 촬영하러 가면 항상 같이 밥 먹자고 하신다. 사양해도 매번 차려주시는데 실은 내가 육식을 안 하거든. 내게 맞춰서 식사를 준비해주시는 거다. 베를린에서는 콩나물이 귀하다. 숙주는 많은데 콩나물은 한국 마트에 가서 구해야 한다. 두 분에게 엄청나게 얻어먹었다. 날 먹여 살렸다고 보면 된다.

 

한국 촬영은 어떻게 진행했나. 감독도 인선과 동행했나.

2019년인데 촬영 초반이라 처음엔 따라갈까 말까 고민했다. 그래도 인선 님 혼자 보내면 마음이 안 좋을 것 같더라.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셔야 했다. 예정된 행사뿐만 아니라 언론사에서 인터뷰를 요청한다거나 갑자기 미팅이 생기는 등 현장에서 추가되는 이벤트도 많았다. 사실 내 눈에 비친 ‘한국 속 김인선’은 외국인 같았다. ‘베를린에 사는 김인선’보다 더 외국인처럼 보였다고 해야 할까.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지낸 시간이 훨씬 길지 않나. 게다가 한국은 엄청나게 빨리 변한다. 인선 님이 길을 잃고 헤매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서울은 내게도 복잡한 도시인데 인선 님에게는 오죽할까 싶더라. 다행히 별일 없이 서울 일정을 마치긴 했지만 고생 많으셨다. 두 분은 베를린에서 인터넷 뱅킹은 물론이고 카드 결제도 안 하거든. 한국은 이제 카드 없으면 불편하잖나. 가게에서도 대부분 키오스크로 계산하니까. 서울에선 택시 잡기도 어렵다고 하시더라. 길에서 아무리 손 흔들어도 차가 안 선다고. 

<두 사람>
<두 사람>

해외에서도 상영한 적이 있나.

아직 없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한국 관객들은 두 분을 퀴어 당사자이자 오랜 세월을 함께한 레즈비언 커플로 봐주는 것 같다. 디아스포라, 이민자 등 또 다른 정체성에 관해 말하는 분은 그리 많지 않다. 해외 상영하면 그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관객 반응도 이해한다. 인선과 수현 또한 본인을 ‘롤모델’로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하고.

그렇기에 더 애쓰신다. 나한테 늘 물어보셨다. 한국에서는 성소수자들의 어떤 삶을 사는지, 사회 분위기는 어떤지. 나 역시 한국을 떠난 지 오래 됐기에 세세하게 알려드릴 순 없지만, 여전히 차별과 어려움을 겪는 이가 많다고 말씀드렸다. 인선 님이 뭐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본인 존재와 이야기, 활동이 힘을 줬으면 좋겠다고. 수현 님도 마찬가지다. 영화 출연을 결심한 배경에도 그런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인선은 은퇴 후 ‘사단법인 동행-이종 문화간의 호스피스’를 설립했다. 교육생에게 자원봉사를 남는 시간에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재충전의 기회로 받아들이자고 하더라. 감독은 어떻게 재충전하나.

작년 12월부터 볼더링에 빠져 있다. 기구 없이 등반하는 실내 스포츠다. ‘내 인생의 구원자’나 다름없다. 농담 섞어서 “다큐멘터리 관두고 클라이밍 해야겠다” 말하고 다녔을 정도다. 다큐멘터리는 오래 걸리는 작업 아닌가. <두 사람>만 해도 2019년에 촬영을 시작했으니 꼬박 3년이 흘렀다. 근데 볼더링은 1분 만에 결과가 나온다. 쾌감이 있다. 홀드 보면서 문제 푸는 과정도 재밌고, 하면 할수록 힘도 세지는 것 같다. 베를린에선 암장 사용료가 저렴한 편이라 일주일에 서너 번씩 갔다. 스트레스를 푸는 의미도 있지만 ‘레벨 업’을 향한 욕구에 좀 더 가깝다. 계속하면 실력이 쌓이는 게 느껴지거든. 얼마간 쉬면 예전만 못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시기에 접어든 두 사람을 바라보기에 영화엔 ‘인생’이라는 말이 참 여러 번 등장한다. 영제는 <Life Unrehearsed>이고. 감독에겐 이 작업이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호스피스에서 한 교육생이 “일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관해 배웠다”고 말하지 않나. 나도 비슷한 마음이다. 김인선이라는 사람이 지닌 삶의 태도, 그걸 배우고 싶다. 작업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나는 나, 일은 일’이라는 원칙을 되새기며 임했다. 덕분에 두 분을 향한 애정 혹은 작업에 대한 열의와는 별개로, 언제나 나를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호스피스 교육생들에게 인선 님이 가르쳐주는 동작이 있다. 몸 곳곳을 손으로 쓸어내리는 건데 그렇게 마음에 쌓인 찌꺼기를 털어낸다고 하더라. 호스피스는 고된 일이다. 육체적 피로는 물론이고 감정적으로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스스로 털어내는 연습을 하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임을 떠올려야 한다고 가르쳐주셨다. 인선 님의 책 제목도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나무연필, 2021) 아닌가. 실제로 그 문장을 자주 말씀하신다. 나도 마찬가지다. 우울증을 앓는 친구에게도 그 문장을 들려주고 싶다. 사실 친구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되겠지만 서로 북돋고 챙겨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작업하며 귀한 것을 얻었다.

영화를 시작했을 무렵,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삶이 금세라도 무너질 듯했는데 영화 덕분에 기운을 냈다. ‘두 분 보러 가야지’, ‘오늘 촬영해야지’ 생각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이 당시 내 삶을 지탱한 기반인 것 같다. 두 분 마음은 모르지만 난 우리가 알게 모르게 힘을 주고받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때는 찍히고 싶어 하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어떤 장면 좋아하나. 봐도 봐도 좋은 장면.

엔딩 장면이 가장 강렬하다. 정말 영화 같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담긴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은 얻어걸린 장면이다. 수현 님 생일에 같이 술 마시고 놀다가 ‘이제 촬영 좀 쉬어야지’ 하며 카메라를 정리했다. 근데 자정쯤 수현 님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거실에 조명을 틀더라. 그러고는 인선 님을 끌고 나와서 춤추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카메라를 다시 꺼냈다. 

 

그때 수현이 말한다. “아픈 데 약 발라주고 등허리에 로션 발라주고 우리는 그게 섹스지.”

이수현다운, 그리고 두 분의 관계에서 나올 법한 말이다. 똑같은 말을 내 나이에 했으면 그만큼 와닿지 않았을 거고. 두 분이 한 말이라 멋지게 들렸다. 

 

둘의 생일 풍경을 비추며 마무리한다. 감독의 일흔 번째 생일을 상상해본다면.

한 치 앞도 모르겠는데 일흔 번째 생일이라니. (웃음) 근데 앞으로 살아온 만큼 살면 그 나이쯤이긴 하다. 글쎄, 곁에 축하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아무도 없이 홀로 그날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누가 옆에서 노래라도 불러주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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