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와 모래성
SIFF 2022 <괴인> 이정홍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 Festival / 2022-12-03

목수로 일하는 기홍(박기홍)은 얼마 전 친구 경준(최경준)과 함께 피아노 학원 인테리어 공사를 마쳤다. 경준을 붙잡아 두려면 다음 일감이 어서 들어와야 하는데 기홍의 마음과 달리 상황은 지지부진하다. 그 사이 경준은 고향집에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기홍은 집 주인 부부 정환(안주민), 현정(김전길)과 어울리는 시간이 부쩍 늘어난다. 어느 날 그는 승합차 루프에서 눌린 자국을 발견한다. 정환은 재밌는 일이라도 생긴 듯 들뜬 기색이고 기홍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범인 찾기에 돌입한다. 근데 이상하다. 기홍 앞에 나타난 이는 세상에 둘도 없는 불한당이 아니라 얼굴에 아직 애티가 남은 소녀다. 집 없이 떠도는 하나(이기쁨)가 세 사람이 사는 집으로 놀러 온 밤, 기홍은 현정과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분명히 뭔가 어긋나고 뒤틀렸는데 어디서부터 손 봐야 하는 걸까. <괴인>은 모래성처럼 위태롭고 불안하지만 어째선지 진짜로 무너지진 않는 사람들 이야기다. 서사는 불투명하고 이름을 알 만한 배우도 없다. <괴인>은 향후 개봉이라든지 상업영화 데뷔 같은 계획을 염두에 두지 않은, 세속적 욕망을 거의 단념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이해받거나 말거나 원하는 대로 해보겠다는 욕심과 고집이 충만한 영화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서울독립영화제에 방문한 이정홍 감독을 만났다. 범인을 파고들며 ‘괴인’을 빚어낸 여정이 감독에겐 어떤 고민과 즐거움을 안겼을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전에 인터뷰를 제안했는데 상영 전이라며 한 차례 미뤘다. 영화에 관해 말하기를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었는데 뭘 걱정했나. 완성을 확신하지 못했던 건가.

그때까지 영화를 제대로 못 보겠더라. 심지어 부산에서 P&A 상영까지 갔는데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튕겨 나왔다. 앞에 앉은 분이 조금 산만하면 ‘재미없어서 그런가?’ 싶고. 첫 공식 상영 마친 후 무대에 올라가서 “이제야 영화를 봤습니다” 했다. 진심이었다. 애초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영화가 됐는데 그걸 받아들이고 소화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기획 당시에 어떤 영화를 상상했나.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뭐였나.

단편을 찍어봤지만 오래전 일이고 장편은 처음이다. 내 능력을 넘어서는, 컨트롤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더 그랬다. 영화를 단체 작업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구나 싶더라. 특히 배우의 에너지와 공간 분위기가 내 상상과 달랐다. 오히려 훨씬 좋은 면을 현장에서 보게 됐는데 그걸 무시한 채로 기존 계획만 고집하기에는 아쉬웠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로 영화를 찍었다. 그렇다고 내용이 바뀐 건 아니지만 정서적으로는 많은 영향을 받았다. 변수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박기홍 배우.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그 친구 성격을 모르지 않거든. 근데 걸음이나 동작이 그렇게 빠른 줄은 미처 몰랐다. 영화가 진지하면 안 되겠더라. 기홍 배우를 앉혀놓고 분위기를 잡으려고 하자 자꾸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박기홍이라는 사람에게 영향을 받아 영화의 무드가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변화였다고 생각하지만 촬영 당시에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뭔가 여유를 갖고서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연출과 제작을 병행하는 입장이기에 촬영 후반으로 갈수록 온갖 압박에 시달렸다. 정확한 기간은 창피해서 말을 못 하겠고, 꽤 길게 촬영했다. 다만, 중요한 걸 배웠다. 배우의 성격과 특징 등 모든 요소는 어떤 식으로든 영화에 담긴다는 사실. 다음 영화를 만들 때 되새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관객과 만나면서는 어땠나. 긴장은 좀 가셨나.

익숙한 느낌의 영화는 아닐 텐데 의외로 쉽게 받아들이더라. 주변에서 겁을 많이 줬다. 관객들이 이게 무슨 내용이냐면서 어려워할 수 있다고. 공개 전까지 걱정이 컸다.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나름대로 목표가 있었다. 사회적 이슈라든지 유의미한 내용을 켜켜이 담아보려고 했다. 근데 전부 실현하기는 어렵더라. 아직은 내가 그만한 깊이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래도 영화를 재밌게 봐줬으면 했는데 관객 반응을 보며 한시름 놓았다.

 

<괴인>은 <창밖의 풍경>(2014)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첫 번째 장편영화다. 단편 <해운대 소녀>(2012) <반달곰>(2013) 등으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는데 한동안 작품 활동이 없었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생계 활동했다. 돈을 벌어야 했는데 가능하면 그 일이 영화와 구분되기를 원했다. 광고 회사에 2년 다녔다. 영화에 100% 집중하기는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나한테는 도움이 됐다. 덕분에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으니까. 원래 졸업한 다음에는 이창동 감독님 연출팀에 들어갔다. 당시 준비하던 영화는 엎어졌고 2016년에 <버닝> 연출팀에서 일했다. 그러다 <버닝>마저 다음 해로 밀리는 바람에 광고 회사에 취직했다. 대학에서 영화가 아닌 광고를 전공했거든. 주 3일 출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내 작업하면서 지냈다. 지금은 학교 동문을 주축으로 자그마한 광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괴인>
<괴인>

시나리오는 얼마 만에 완성했나. 

2013년부터 썼다. 시나리오 쓰는 데만 8년을 보낸 건 당연히 아니다. 내가 어떤 성향의 창작자인지 파악하고,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시간이었다. 초기 시나리오에서는 <괴인>의 하나가 주인공이었다. 집이 없는 노랑머리 여자애.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고 2년 주기로 주인공이 계속 바뀌었다. 사실 하나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존재했으니 어떤 면에서는 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쓰다가 실패하고 쓰다가 실패하기를 반복했다. 2017년 접어들어서야 지금의 기홍, 그러니까 목수 일을 하는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괴인>의 집필 기간은 어림잡아 2년 정도 된다.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데, 실은 내가 어떤 영화를 찍을 수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더라. 서사 중심의 영화를 잘 만들 자신도 없고 그런 일을 업으로 삼을 만큼 와닿지도 않았다. 좋아하는 영화야 있지만 그런 영화들은 내가 갖지 못한 위대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의 몫인 듯했다. 그저 최대한 솔직하게 만들자고 결심했다. 동시에 시나리오는 내게 단지 글쓰기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외에 또 다른 고민과 실험을 포함하는 과정이었다. 예를 들면 광고를 찍는 일 또한 내게는 공부였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영화를 완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등장인물이 많다. 인간 군상을 보여주듯 다양한 유형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 또한 집필 과정에서 달라진 부분인가.

현재 조연까지 포함해서 인물이 15명쯤 된다. 이건 초반부터 지속된 아이디어다. 한 인물을 중심에 놓고 그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를 다뤄보고자 했기에 필연적으로 인물이 여러 명 등장해야 했다.

 

오디션에서 비전문 배우를 600명 가까이 만났다고. 괴인 찾기 프로젝트라고 칭할 만하다. 

오디션장은 옛날 TV에서 봤던 장면과 흡사한 풍경이었다. 가수 데뷔 준비하는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승객들에게 인사하고 노래 부르고 했잖나. (웃음) 나도 낯가림을 견디며 한 사람당 짧게는 15분에서 길게는 30분까지 대화를 나눴다. 따로 이상형을 그려두진 않았고 날 궁금하게 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목표였다. 내성적이거나 말수가 적어서 도통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 활발해 보이는데 왠지 이면에는 다른 모습이 있을 것만 같은 사람.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영화에도 내게도 유의미한 경험이었다고 본다. 

 

배우들이 시나리오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배우에게 인물의 감정과 행동을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았을 듯한데.

시나리오에 적힌 대로 연기한 배우, 텍스트를 바탕으로 생명력을 좀 더 불어넣은 배우. 반반이다. 그들의 실제 모습을 관찰하면서 촬영 전에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기본적으로 서사에 집착하지 않기에 가능했던 결정 같다. 인물의 성격이 달라지면 여러 가지 변화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때 당황하기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반영하는 편이다. 연기에 관해 배우에게 설명한 적은 거의 없다. 궁금해서 물어보는 분들까지 피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먼저 나서서 연기 디렉팅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감독과 배우의 작업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더라. 비전문 배우여서 연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각자만의 방식이 있다는 뜻이다. 오히려 대화가 악영향을 주기도 했다. 기홍 배우와 한참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연기를 하더라. 이전에는 시나리오를 무의식 한쪽에 심어둔 채 그냥 본능적으로 표현했거든. 근데 내 말을 듣고 나선 머리로 연기하는 거다. 배우로서 테크니컬한 능력이 없다 보니 그 모습이 이상할 수밖에 없고. 전체적으로 대화가 적은 프로젝트였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아니요,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답답하기도 했다. 뒤로 갈수록 테이크 수가 줄긴 했지만 처음에는 3~40번씩 찍었으니까. 근데 신기하게도 그중 한두 테이크에서는 본인만의 감정과 매력대로 무언가를 해내더라.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내 일이었다. 배우들도 나만큼이나 잘 견뎌줬고. 후반부에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는 모습을 봤다.

 

박기홍, 최경준 배우와는 오랜 친구라고. 어떤 인연인지, 왜 두 사람이 <괴인>에 필요했는지 듣고 싶다. 

최경준 배우는 같은 과 후배다. 다른 학교에 다니다 와서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다. 과제를 같이 한 적이 있다. 대화 장면을 찍어 가야 했는데 직전까지 미루다가 전날 밤에 부랴부랴 했거든. 경준 형이랑 다른 친구 한 명을 데리고 나가서 편의점 앞에 앉혀놓고 연기를 시켰지. 근데 되게 잘하더라. 연기 아닌 연기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전부터 형을 대하는 내 마음이 복잡했다. 왠지 나 같아서 정이 가는데 한편으로는 한심하게 보이기도 하고. 그때 감정이 2년 후 <반달곰>으로 이어졌다. 박기홍 배우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나고 자란 30년 지기다. 어쨌든 내 삶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지 않나. 거기에 주인공까지 나랑 비슷한 사람으로 구하기는 싫더라. 그렇게 자기애가 강한 편도 아니고. 내가 잘 알면서도 나와 참 다른 사람, 그래서 기홍이를 절박한 마음으로 붙잡았다. 30년간 인연을 지속했으니 우리가 공유하는 핵심이 있겠지. 기홍이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면, 특히 타인과의 거리감을 형성하는 면에서 독특한 데가 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30분쯤 지나서 갑자기 말을 놓는가 하면, 아주 편안해야 할 관계에서는 불편해한다. 애초 출연 제안했을 때는 절대 안 한다고 했는데 현장에서 놀랐다. 큰 역할을 맡으면서도 주눅 드는 법이 없더라. 왜 자꾸 자기 얼굴을 찍냐면서 “이래서 영화가 되겠어?” 농담하긴 했지만. (웃음) 근데 걔가 되게 뻔뻔하거든. 나와 달리,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다. 자의식이 강하지 않기에 이만큼 연기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둘이 공유한다는 핵심은 뭔가. 30년 우정이 가능한 이유.

대구라는 출신지, 학교, 가족 관계, 집안 분위기, 살아온 환경이 비슷하다. 취향도 통한다. 기홍이가 안 그렇게 보여도 국문과를 졸업해서 소설도 쓰고 했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하지만. 기홍이가 추천해준 영화나 소설은 다 재밌다. 촬영장에서 일하는 것도 즐거워해서 <반달곰> <해운대 소녀> 찍을 때 연출팀으로 와줬다. 덕분에 든든했다. 나는 스태프들과 툭 터놓고 친하게 못 지냈다. 낯을 가리는 데다 기본적으로 미안한 마음이 있다 보니 다가가기 어렵더라. 근데 그 친구는 스태프들과 어울리며 내 험담도 하고. (웃음)

<괴인>
<괴인>

인물들이 함께 모이는 장면에서 배우들의 에너지가 충돌한다. 날 선 분위기다. 특히 대화 장면이 눈에 띈다. 관계 내 친밀감과 폭력이 수시로 교차하는 가운데 질의와 응답, 반말과 욕설, 거짓말과 명령 등이 오가며 긴장을 가중한다. 

기본적으로 <괴인>이 멜로 영화는 아니잖나. 액션도 아니고. 스릴러와 드라마가 결합한 장르라고 봤고 전반적 공기를 긴장감 있게 가져가고 싶었다. 미스터리한 느낌을 추구하되 일상에서 아주 멀어져선 안 됐다. 일상적인 듯하지만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는 방법을 많이 생각했고 그중엔 대화가 포함되어 있다. 사실 편한 관계라고 해도 권력이나 계급 차이가 존재하지 않나. 재벌과 극빈자처럼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관계도 있지만 대개는 중간 영역에 위치한다. 다들 잘 섞여서 살고 겉으로는 별 차이 없는 듯한데 어떤 순간에는 틈이 벌어진다. 말과 말 사이에 뭔가 담기기도 하고, 상대는 아무 의미 없이 말했지만 본인 혼자 그렇게 느끼기도 하고. 기홍과 정환은 아주 친한 친구처럼 지내지만 실은 끊임없이 그런 긴장을 주고 받는다.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촬영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기홍이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두루두루 어울리는 편이지만 선뜻 마음을 드러내는 친구는 아니거든. 자주 만나도 ‘우리 참 친해’라고 느끼기 어려운 사람이다.

 

일상이 그러하듯 <괴인>은 우연히 만나는 인물과 우연히 벌어진 사건을 포함한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필요했는데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8년 동안 차곡차곡 수집한 건가.

특이한 사람을 만나거나 특별한 일을 겪으면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누군가는 짜증을 낼 상황에서도 난 호기심이 앞선다. 내 경험이든 타인의 경험이든 관심 있게 보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 에피소드를 영화에 곧장 넣기는 어렵지만 쌓아놓고 보면 쓸모가 있더라. 실제 경험을 그대로 시나리오에 대입하기보다는 유사하게 변형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결국 영화의 만듦새와 이어지는 얘기다. 영화가 한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것도 좋다. 나 역시 그런 영화도 만들어보고 싶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오히려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들을 모아보려 했고 우리 삶 또한 그에 가깝다고 본다. <괴인>에는 사건이 없다고들 얘기하는데 그래도 뭔가 일어나고 있거든. 결정적 사건이 없다 보니 다양한 이야기가 끼어들기도 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기홍과 그의 관계에서 비롯한 여러 사건이 연결되며 뒤엉키는 느낌이 들었다.

 

안정이 아니라 불안을 자극하는 연결이다. 아귀가 안 맞는데 계속해서 돌아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면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게 죄를 짓는 일이구나’ 싶다. 

주인공의 모티브가 됐던 친구가 있다. 그를 만나면서 느낀 바를 솔직하게 담는 것이 <괴인>의 목표였다. 아직 객관화가 덜 돼서 감상을 말하기는 어려운데, 그 친구를 볼 때 나도 비슷한 마음이 든다. 별문제 없이 그럭저럭 잘 살지만 왠지 이 세상에 완전히 섞이지는 못 한 사람 같거든. 기홍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촬영할 때 되게 슬펐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 친구와 닮은 면이 있는 듯하다. 뭐랄까, 약간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으로 산다고 해야 하나. 이따금 서글프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싶더라. 포부는 좋은데 완성도가 아쉽다. 스스로 ‘버전 업’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군데군데 아쉬운가 보다. 영화 만들고 나서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달라진 점이 있나.

고생하며 만들었는데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빗대어 설명할 만한 영화도 딱히 없고. 실은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망친 듯했고 너무너무 고통스러웠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야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볼 수 있었다.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더라. 나름의 가치를 지닌 영화라는 생각이 들기에 기본적으로는 만족한다. 물론 내 눈엔 아쉬운 점이 많이 들어오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 다음 작품을 만드는 동기와 동력을 얻은 거니까.

 

평소에 어떤 영화 좋아하나.

의외로 취향이 넓은 편이라 영화를 편식하지는 않는다. 근데 어떤 시대 흐름에 따라 영화를 보다 보면 문득 자괴감이 든다. 스스로 작아지는 기분이 들 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해마다 한 번씩 꼭 보고 넘어가게 되더라.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심사위원으로 카세 료 배우가 오지 않았나. 내가 힘들 때마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압바스 키아로스타미, 2013) 보면서 ‘힐링’한다고 얘기했다. (웃음)

 

영화 외에는 어디서 편안함을 느끼나. 

집에 있는 게 좋다. 작년에 결혼했다. 집에서 와이프랑 장난치고 놀 때가 가장 편안하다.

이정홍 ©이영진
Festival
천진한 호기심
SIFF 2024 <허밍> 박서윤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2024-11-30
Festival
아무렇지 않게
SIFF 2024 <환희의 얼굴> 정이주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2024-11-29
Festival
웃기는 영화, 무해한 남자
SIFF 2024 <인서트> 남경우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4-11-29
Festival
나도 내가 궁금해
SIFF 2024 <3학년 2학기> 유이하
글 차한비 사진 이영진
2024-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