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킹 댄서 신명(해준)은 성전환 수술을 계획 중이다. 대회 상금으로 모자란 비용을 충당하려 했는데, 배틀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심사위원에게 “너만의 색을 찾으라”는 쓴소리를 들은 와중에, 해준은 농악 명인으로 활동하던 아버지의 부고를 접한다. 고향 친구이자 아버지 제자인 우기(김우겸)는 추모 굿에서 소고춤을 추면,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고 귀띔한다. 신명은 울며 겨자 먹기로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밟는다. <공작새>는 <뿔>(2014) <우주의 닭>(2015) <손과 날개>(2019) <신의 딸은 춤을 춘다>(2020) 등 꾸준히 단편을 만들어 온 변성빈 감독의 데뷔작. <신의 딸은 춤을 춘다>로 처음 연기에 도전했던 배우 해준과 감독의 전작 대부분에 출연한 배우 김우겸을 나란히 캐스팅했다. “이제껏 없던 영화를 만들고 싶다” 다짐했던 감독은 ‘나다운 춤’을 완성해가는 신명과 닮았다. 쉴 새 없이 심장을 두드리는 전자 비트와 여럿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타악 장단을 절묘하게 섞으며, 영화는 한판 제대로 놀아보려 한다. 마음속 질기게 박힌 상처와 분노를 끊어낸 후, 공작새는 기어코 날개를 펼친다.
그간 단편을 여럿 만들었고, 매번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장편을 준비하면서 자신에게 거는 기대도 컸을 테고, 주변에서도 여러 이야기를 들었을 것 같다.
뭔가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도할 때 두려움을 느끼겠지만 난 아니다. 여전히 영화를 알아가는 중이고, 두려워하기보다는 도전해야 하는 시기라고 본다. 나에게 솔직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남들의 기대에 부응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고, 그렇게 생각할 때 영화를 더 잘 만들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장편이기에, 다른 누구보다 내게 유의미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마음이 컸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한 구간은 어디였나.
모든 작품이 마찬가지인데, 프리 프로덕션에 가장 집중하는 편이다. 아무리 체계적으로 준비한다고 해도, 촬영에선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걸 최대한 줄이려고 프리 프로덕션을 꼼꼼하게 진행한다. 특히 <공작새>는 안무와 음악 등 사전에 준비해야 할 부분이 많은 작품이었다. 음악 작업의 경우, 거의 절반 이상을 완성한 상태에서 본 촬영에 들어갔다.
가족 내 해묵은 상처와 용서, 창작자의 분투, 소수자가 맞닥뜨리는 차별의 시선 등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겹겹이 둘렀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구나 싶더라.
각본을 완성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사실 즉흥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다. <신의 딸은 춤을 춘다>를 만들면서 스태프와 배우들 모두 돈독해졌다. 2020년 말에 다 같이 술을 마시다가 “우리도 장편영화 만들어보자!” 이야기가 나왔다. 마침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 공모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다. 데드라인이 생기면 글을 빨리 쓰는 편이라, 시나리오를 곧장 완성했다. 당시만 해도 <공작새>를 로드무비로 구상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지원금 3억으로 구현하기에는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핵심 기획은 동일하게 가져가되, 예산을 절약하며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퇴고했다.


퇴고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뭐였나.
영화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민하다 보니, 결국 이야기를 새로 쓰게 되더라. 나는 제작 지원이든 투자든 일단 메이드가 확정되어야, 본격적으로 마음먹고 에너지를 쏟는다. ‘이게 진짜 내 데뷔작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과거를 많이 들여다보게 됐다. 문득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뭘 했을까 싶더라. 그때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풍물 동아리에서 꽹과리를 치며 상쇠로 활동했다.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시간이다. 학교에서 배운 동아시아 철학, 그때 삶의 가치와 방식에 관해 고민했던 시간도 다시 곱씹어봤다. 그렇게 나만 아는 개인적 이야기를 녹여내고 싶다고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해준 배우와는 두 번째 작업이다. 해준 배우는 <신의 딸은 춤춘다> 이후 <Butch up!>(이유진, 2021) 등에도 출연하며 꾸준히 연기를 선보이는 중이다. 트랜스젠더, 댄서, 아티스트 등 본인의 정체성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해준은 영화로 알게 된 사람이 아니라, 삶의 한 과정에서 만난 친구다. 처음에는 해준이라는 댄서의 아우라를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누군가는 단지 퀴어라는 이유로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해준은 그런 선입견을 뛰어넘을 만한 매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해준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까지도 가닿을 수 있는 매력, 그걸 영화에 담고 싶었다. <신의 딸은 춤을 춘다> 이전까지 해준은 연기를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해준이 원하기만 하면, 충분히 해낼 거라고 봤다. 원래 전작은 댄스 영화가 아니었는데, 해준이 춤을 추고 싶다고 해서 인물 직업을 싱어송라이터에서 댄서로 바꿨다. 이번에도 해준이 가장 잘 연기할 수 있는 인물을 만들려고 했다. 신명과 해준은 분명 다른 인물이지만, 해준이 살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통해 신명이라는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때 해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매력과 날 것의 에너지가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김우겸 배우는 감독의 작업 여정을 근거리에서 관찰하고 경험한 동료 중 하나다. 인터뷰에서 밝히기로는, 감독이 “영화를 계속할지 말지 고민이 많은 시기”에 찍은 <뿔>을 통해 처음 만났다고.
우겸 배우와는 대화가 정말 잘 통한다. 사고방식이라든지 영화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나와 비슷하다. 둘 다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뿔>을 찍고 나서도 2~3년 동안 말을 안 놓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형, 동생 하면서 지금은 격 없이 지낸다. (웃음)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캐릭터를 구축하는 능력이 훌륭한 배우여서 함께 일하면 도움을 많이 받는다. 종종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까지 질문해주거든. 그걸 고민하다 보면 영화가 점점 풍성해지더라. 내가 시나리오를 쓰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인물을 구현해줘서 매번 감탄한다. 첫 장편이기에 꼭 함께하고 싶었고 앞으로도 계속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
우기 역할을 김우겸 배우가 맡지 않았다면 신명이라는 인물이 이만큼 돋보였을까 싶다. 두 배우가 서로 눌러주고 띄워주며 한 화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내더라.
프리 프로덕션에서 해준, 김우겸, 공재현 배우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원활한 디렉팅을 위해 감독은 배우나 스태프와 소통할 때 상대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세 배우는 놀랍도록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다. 해준은 최대한 자세하게 말해주기를 원했다. 현장에서도 디렉팅 없이 슛을 들어가면 불안해했고, “눈 깜박하지 마세요”라는 식으로 일일이 짚어주길 바랐다. 우겸 배우는 그와 정반대다. 디테일보다는 감정의 본질과 배경에 초점을 맞춘다. 그걸 이해해야 또 다른 표정과 표현이 나오니까. 한편, 재현 배우는 ‘이렇게 세게 말해도 되나?’ 할 정도로 내 딴에는 집요하게 다가갔다. 감정을 끌어내려고 꽤 힘들게 했는데 과거 경험이나 아픔을 끄집어내어 연기에 적용하는 방식이 재현 배우에게는 안 통하더라. 결국 배우가 스스로 준비해온 것을 토대로 감정 세기를 조절하는 데 집중했다. 배우마다 디렉팅 방법은 제각각이었지만 자주 만나서 대화한 덕분에 현장에선 크게 힘들지 않았다. 특히 해준 배우는 단편 작업할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해준은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때 에너지로 끌고 가려는 특징이 있다. 리딩 과정에서 그걸 최대한 없애려고 했다. 가짜로 하지 말자. 에너지로 속이지 말자. 해준 배우도 이번 작업하면서 진지하게 이야기하더라. 댄서로서 수명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데 연기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이다. 배우로서 해준이 지닌 가능성과 캐릭터를 대하는 진심 어린 태도를 확인했다. <공작새>를 계기로, 많은 작품에 출연하면 좋겠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이자 고깔소고춤으로 유명한 고창농악을 다루며, 농악보존회와 다각도로 협업했다.
본래 내가 경험했던 경기농악의 거북놀이를 다룰까 했는데 봉수지 피디로부터 고창농악을 소개 받았다. 피디 또한 대학 다닐 때 농악을 열심히 했다고 하더라. 다른 농악보존회를 설득하는 것보다 이미 관계가 쌓인 곳과 협업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작년 4월에 고창농악보존회를 처음 방문했다. 그때 농악 전수관에서 일하는 사부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깊이 감명 받았고 고창농악으로 설정을 바꿔야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여름에는 배우들과 함께 농악 전수도 받았다. 우겸이랑 해준이가 굿에 푹 빠져들어서 열정적으로 배우더라. 애초 일주일 동안 배우기로 했는데 우겸이는 꽹과리가 너무 재미있다면서 몇 주 더 머물기도 했다.
영화에는 실제 농악 이수자가 등장한다. 연주뿐만 아니라, 연기도 직접 소화하더라. 비전문 배우를 기용하는 데 망설이지 않는 편인 듯하다.
맞다, <뿔>을 제외한 모든 작품을 그렇게 작업했다. 연기력보다 당사자성을 우선하며, 배우를 캐스팅했다.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다고 해서 연기를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캐릭터를 풍성하게 만드는 사람은 그 캐릭터를 가장 깊게 이해하는 사람이다. 사부님들 역시 마찬가지다. 매체 연기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무대 연기를 하시는 분들이다. 디렉팅에서 큰 어려움을 느끼지도 못했고 사부님들 덕분에 대사도 훨씬 매끄러워졌다. “나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라며 의견을 주셨고 그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영감을 얻었다.
“굿은 모든 사람을 받아준다. 사람이 사람을 받아주지 않을 뿐이다.”라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결국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고.
고창농악에, 고창에서 악기치고 춤추며 살아가는 사부님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다. 사부님들이 술을 잘 드시더라. 정말 죽기 직전까지 마셨다. (웃음) 난 어렸을 때 굿을 쳤지만, 지금은 하나도 칠 줄 모른다. 단지 그때 기억이 좋아서 시나리오를 쓰게 됐는데 굿을 업으로 삼은 분들과 만나서 참 좋았다. 대화 중에 사부님이 툭 해주셨던 말들이라든지,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우고 깨달은 바를 영화에 많이 반영했다.
왁킹과 굿, 결국 춤이다. 공간을 좀 더 넓게 사용하며 화면에서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을 텐데, 4:3 화면비를 택했다.
나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화면비를 고민한다. 4:3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영화를 본 관객들이 신명의 얼굴을 기억하기 바랐다. 일상에서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진 이를 쉽게 만나기란 어렵지 않나. 극장을 나와서도 그 얼굴이 떠오른다면 이 영화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4:3은 참 아름다운 화면비인데도 국내에서는 잘 시도하지 않는다. 상업영화에서는 물론이고 독립영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하이퍼 리얼리즘 영화라든지 그립 장비를 최소화하는 영화에서만 간혹 회화적 방식으로 사용될 뿐이다. 특히 4:3으로 찍은 장르 영화는 잘 기억나지 않더라. 장점만큼이나 단점이 명확하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 솔직히 이번이 아니면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도가 높은 상태로 작업할 때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미술, 의상, 음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먼저 음악은 왁킹과 굿을 접목하는 서사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작곡가이자 DJ로 활동하는 케이스핏이 <신의 딸은 춤을 춘다>에 이어 장편 작업도 함께했다.
음악은 제대로 디렉션을 주기에 어려운 영역이다. 별별 방법을 다 쓴다. 색깔에 비유하기도 하고, 혼자 멜로디를 만들어서 들려주기도 하고. 어쨌거나 한계가 분명한데 케이스핏 음악감독은 놀랍도록 내 마음에 드는 음악을 만들어낸다. 이번에는 굿이 등장하니 한국 타악기를 써보자고 합의했다. 엔딩 클라이맥스에 삽입한 음악은 거의 200번 정도 수정했다. 둘 다 적당히 만족하지를 못 해서 “더 잘할 수 있다!”고 북돋우며 끝까지 붙들었다. 영화 속 자장가 또한 멜로디 자체는 단순하게 들리겠지만 완성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 멜로디를 다양하게 변형해서 써야 했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신명의 의상과 분장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
의상과 분장을 중요하게 여겼다. 신명이라는 인물이 자신을 어떻게 디자인하는가. 이는 인물에게 일종의 투쟁 방식이고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볼거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인물의 정서를 담고 싶었다. 친한 패션 디자이너에게 스타일링을 부탁했고, 그분이 신명이 엔딩에서 착용한 의상을 직접 제작까지 해줬다. 영화 중반부 이후 신명은 점차 화장을 옅게 하고 헤어 스타일과 의상도 차분해진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목소리를 내고, 굿을 치면서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신명. 인물의 내면이 변화하는 모습을 의상과 분장으로 드러내려 했다.
영화는 신명을 통해, 창작자에게 영원히 따라붙는 과제를 질문한다. “너만의 색을 찾아라” 감독은 어떤가. 자신만의 것을 찾았다고 보나.
영화 만드는 내내 생각했다. 나만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뭘까? 그걸 하고 싶지만 세상에 정말 나만의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래도 내 인생은 나만 살아봤잖아”였다. 내 삶의 맥락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 경험과 감정을 이미지, 사운드, 스토리 등 영화 곳곳에 넣으려고 했다. 신명이 자신만의 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과거와 직면하지 않나.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겪은 고통과 아픔을 다시 마주하고 이를 영화로 풀어냈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용서하려고 씨름하는 과정이었다. 물론 힘들었지만, 지금은 좀 더 건강해진 것 같다.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을 동력 삼아 용서까지 나아갔구나.
영화를 만들 때마다 내 발목을 붙잡는 마음의 문제들이 있다. 처음에는 그게 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결국 궁금해진다. 인물들이 내리는 선택에는 직관과 논리가 반씩 섞이는데, 불현듯 ‘얘는 왜 이걸 선택하지?’ 싶어지거든. 그때 시나리오를 객관적으로 보면서 ‘아, 내가 이런 문제에 얽혀 있구나. 이 영화는 나에게 이런 의미가 있구나’ 하고 깨닫는다. 미움이 극에 달했을 때, <공작새> 초고를 썼다. 그러다 퇴고하면서 알았다. 나는 용서에 다다르는 여정을 담으려고 하는구나.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향한 분노를 풀어내려고, 미워하는 마음을 털어내려고 했다. 그래야 영화가 관객을 기만하지 않을 테니까.
좋아하는 감독은?
테렌스 멜릭을 가장 좋아하지만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웃음) 아주 힘들었을 때, <나이트 오브 컵스>(2015)를 보면서 다시 살고 싶어졌다. 대중에게는 그리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한 작품이지만, 내게는 감독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다가왔다.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었고 정말 큰 위로가 됐다. 영화가 내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영화보다 시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해석해야 하는, 결국 관객 스스로 제 것으로 만드는 영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