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잃은 엄마, 홀로 살아남은 남자, 아내를 잃은 남편. 각자 상실과 아픔을 껴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봄이가도>에 담겨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시도하는 영화의 표정은 봄처럼 따뜻하고 때로 담담하다. 영화를 연출한 장준엽, 진청하, 전신환, 세 감독을 만나 영화를 함께 만들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개봉을 앞둔 심정까지 궁금한 점들을 물어봤다.
영화가 세 감독님들의 공동연출을 통해 만들어진 만큼 우선 세 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대학에서 함께 영화를 공부했다고 알고 있는데.
장준엽 _ 저와 전신환 감독은 대학교(한양대 연극영화과) 동기여서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냈고, 진청하 감독은 1년 후배다.
진청하 _ 별다른 교류가 없다가 군대에 다녀오고 복학하고 나서 다시 만나게 됐다.
장준엽 _ 다들 복학하고 나서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시나리오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다들 장편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고, 그것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만나서 스터디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가 세월호 2주기였다. 당시에 사건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나 문제의식이 같았고 그러면 이러이러한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했는데 셋이 마음이 맞았다.
2016년에 <봄이가도>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혹시 2014년의 기억을 들려줄 수 있나.
장준엽 _ 당시에는 사건 이면에 이렇게 큰 일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사회적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도 알지 못했다. 그때는 우선 추모해야 할 일이고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일이 점점 커지더라. 아까 말했던 2주기 때 우리가 가장 크게 문제의식을 느꼈던 부분은, 왜 추모를 해야 할 일인데 추모하기보다 사람들이 서로 헐뜯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서로 싸우고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정작 유가족들은 돌아오지 못한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는 슬픈 상황에서 그 슬픔에 공감도 하지 않고 분열하고 있을까 하는 그런 문제의식이 있었다.
진청하 _ 그 당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말년 휴가를 나온 상황이었는데 친구가 그 뉴스를 말해줬고, 침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곧 구출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보도되는 양상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더라.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처음에 곧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던 게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전신환 _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하다가 뉴스를 봤다. 구조되었다는 보도를 보고 학교에 갔다가 수업이 끝날 무렵 오보라는 소식을 다시 듣게 됐다. 계속 후속 보도를 보면서 너무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는데도 해결 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서로 싸우고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나, 라는 이야기들이 나왔던 걸 기억한다.
2016년 <봄이가도>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기 전에 다들 단편도 연출했고, 각자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할까 고민을 거친 시간도 있었을 텐데.
장준엽 _ 이건 세 명 모두가 마찬가지인데,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영화는 결국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작은 이야기들을 통해 거시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고 느끼게 해주는 게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진청하 _ 역사적인 것을 다루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유를 명료히 설명하긴 어렵다. 본능적으로 역사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 같다. 전작에서는 우리나라의 교육문제를 다뤘는데, 사회적인 이슈를 담아내고 싶었다.
장준엽 _ 인터넷 방송을 주제로 공포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먹방’ 같은 방송이 왜 그렇게 많을지 궁금했었다. 사회적인 외로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들을 주제로 하는, 폐가에 인터넷 방송을 하러가는 내용이다.

<봄이가도>를 지금의 내용과 공동작업이라는 형태로 연출하기로 구상한 건 언제부터였나. 영화를 만들면서 제작사 왕십리픽쳐스도 설립했다고 알고 있는데.
장준엽 _ 왕십리픽쳐스를 만든 건, 우리의 작업에 기반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였다. 광화문시네마를 떠올리면서, 비슷한 취지로 시작했다. 우리의 집과 같은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작업도 하고 함께 하기도 하고. 우리가 평소에 서로 작업한 것을 공유하고 의견을 묻는 걸 잘 한다. 학교가 왕십리에 있고 우리가 모이면 언제나 왕십리였고 그래서 이름도 왕십리픽쳐스가 됐다. <봄이가도>의 경우는 처음부터 장편 영화로 기획을 했다. 우리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영화를 만드는 게 어떨까를 생각한 첫 순간부터. 처음부터 같은 컨셉으로 통일성 있게 하루 동안의 일상을 다루는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왜 하루 동안의 일을 담겠다고 구상하게 되었나.
진청하 _ 일상을 다루는 게 중요했다. 하루하루의 일상. 특별하고 거대한 이야기보다 한 사람의 하루와 일상 속에서 상처와 위로를 담고 싶었다.
장준엽 _ 각자 다양한 계절을 담으려고 했다. 여름, 가을, 겨울에 촬영했는데, 봄이 가도 여름이 오고 가을, 겨울이 오고 또다시 봄이 오지 않나. 그처럼 우리의 기억과 추모도 계속해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독립적이면서도 느슨하게 연결되어있다. 각 단편들이 <향아>, <살아남은 자>, <매미, 첫 번째 휴일>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영화에서는 각 단편의 제목보다는 시의 구절을 통해 에피소드가 나뉜다. 이런 구성방식과 각자의 시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들려줄 수 있나.
진청하 _ 결국 이 영화는 한 편의 장편영화라는 생각이 가장 중요했다. 각 부분이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고 마치 시처럼 한 행 한 행 연결되는 형태로, 시를 읽는 것처럼 통일성 있게 보이길 원했다.
장준엽 _ 가장 마지막에 삽입된 정호승 시인의 시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가 제일 먼저 선택됐다. 그 구절이 너무 좋아서 영화의 제목도 거기서 따왔다. 각자 연출한 에피소드 앞에 삽입된 시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저는 한용운 시인의 <나는 잊고저>라는 시를 사용했는데, 잊으려 하면 생각나고 생각나면 잊히지 않는다는 구절에 크게 공감했다. 상실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측면과 여성적인 문체가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진청하 _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어릴 때부터 매우 좋아했던 시다.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갖는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굉장히 이해하고 싶었고, 두 번째 에피소드의 인물에 대해서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다. 구상했을 때부터 그 시를 사용하고 싶었다.
전신환 - 넣고 싶은 시가 너무 많아서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도종환 시인의 <팔월> 이라는 시를 발견했다. 에피소드의 중요한 키워드가 상실, 매미와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게 그 시에 다 들어있더라. 영화와 딱 들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를 전면에 드러내지는 않으면서도 그것을 지시해야하는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내에서 제작되었던 극영화들의 경우에 관객들로 하여금 세월호 참사를 환기시키게 하는 은유들을 많이 쓰기도 했다. <봄이가도>는 은유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직접적이지만, 동시에 직설적인 언급은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장준엽 _ 우선 영화의 관객이 한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영화를 기획할 당시는 세월호 추모에 대해 이제 그만하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던 시기였다. 세월호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전면적으로 이 문제의 원인과 진실을 밝히자는 말에 반감을 갖는 사람도 많았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상실한 사람의 감정에 초점을 두고 싶었던 것도 있다. 사건 자체를 은유적으로 드러내거나 메시지를 세게 던지자는 생각보다는 그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엄마나 각자의 주인공의 입장에서 공감하면서 보편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었다.
진청하 _ 진실을 파헤치겠다는 종류의 영화는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은유나 상징으로 세월호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업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던 것도 있다. 좀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은 정확한 성찰을 하고 난 뒤에야 그런 작업이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삶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않나. 그런 것들은 그 사람들의 일부인 것이다. 그 삶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부분들은 굳이 피하지 않고 이야기하자, 그렇게 균형을 맞추게 됐다.
전신환 _ 기본적으로 둘의 의견과 같고 처음부터 그런 부분을 같이 이야기했다. 그런데 최근에 느낀 건, 세월호 참사를 사회에서 잊으려고 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연출하려고 했어도 영화에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광화문 광장의 모습이 나오고, 거기에 뭐가 있는지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않나. 사실 영화에서 이미지만큼 직접적인 것도 없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각각의 에피소드는 어떻게 구상했나. 따로 또 함께의 과정을 거쳤을 것 같은데.
장준엽 _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유가족들 중 딸을 잃은 어머니가 딸의 방을 그대로 청소해서 깨끗하게 보존하고 계셨다. 그 장면이 굉장히 마음이 아팠고 거기서 모티프를 얻었다.
진청하 _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큰 틀에서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역사적 사건과 그것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트라우마나 죄의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들을 공부하고 있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관한 프레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라는 책을 읽고 있기도 했었고. 그러다가 세월호에 승객으로 탑승했다가 구조 작업을 했던 분의 이야기를 접했고 내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신환 _ 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여러 가지 기억해놓았던 이야기들을 섞어서 만들게 되었다. 아내와 사별한 남편이 집에 왔을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게 아내의 음식냄새라던 일화, 빛 공해 때문에 매미가 밤낮없이 울고 그것 때문에 수명이 짧아진 매미가 일찍 죽는다는 기사. 이런 부분들을 엮어서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게 되었다.
배우들로서는 일상의 얼굴과 표정들을 보여주면서도, 복잡한 감정과 아픔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배우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연기할 수 있도록 했나.
진청하 _ 과장을 하거나 감정을 과도하게 표현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대본 리딩을 하려고 유재명 배우를 만났을 때 처음 하셨던 말씀이 “나는 (연기) 안할라고.”였다. 아 됐구나, 마음이 맞았구나 싶었다.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참고 딸 앞에서 티내지 않고 이겨내는 척 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장준엽 _ 희망을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다. 마지막에 웃으면서 마무리하게 되는데, 마냥 상승하는 감정을 보여줄 수는 없고 지금 현재진행형인 사건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정도여야 했다. 따뜻함과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적정한 선을 맞추는 게 어려운 작업이었는데, 전미선 배우의 의견을 믿고 따랐다. 그게 결론적으로도 맞았던 것 같다.
전신환 _ 전석호 배우와 표현에 대한 논의를 많이 했다. 마냥 슬퍼 보이기만 하지 않고 덤덤해 보이는데, 사실 그 안에 엄청난 슬픔을 담고 있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고. 그래서 덤덤하기도 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짓기도 하고 마지막에 감정이 터져 나오기도 하는 그런 연기가 됐다.

<봄이가도>는 기억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각자에게 기억이란 무엇인가.
전신환 _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기억나는 것. 잊어버리려고 해도 못 잊는 것.
진청하 _ 기억은 일종의 역사다. 내가 걸어온 발자취이기 때문에 나를 알고 그걸 통해서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아픈 상처와 우리가 잘못한 것들을 제대로 마주했을 때 정체성을 찾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기억이라는 게 그런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준엽 _ 각자의 방식으로 이어나가야 하는 것.
다음 계획이 있나. 다시 공동연출로 의기투합할 의향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전신환 _ 앞으로도 공동 작업은 계속 하고 싶다. 지금은 장편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고 다들 일하고 공부하면서 장편 시나리오를 쓰는 중이다.
장준엽 _ 일단은 각자 준비하고 있는 작품들이 있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공동 작업을 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다음 영화는 역사에 관한 이야기인데, 시대극이고 공포 스릴러가 될 것 같다.
진청하 _ 여러 소재를 생각하는 중이다. 시대를 넘나드는 기억과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는데, 개봉을 앞두고 있는 소감이 어떤가.
장준엽 _ 사실 막연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개봉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운도 좋았고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진청하 _ 겸손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혼자 힘으로는 여기까지 못 왔을 것 같다. 시네마달과 배우들이 많이 도와줬다. 기자간담회를 했는데 배우들이 저희를 감독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생이나 아들들처럼 생각해서 도와주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운이 좋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책임감도 생겼다. 앞으로 내가 더 잘해야지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그런 무거운 마음도 생겼다.
전신환 _ 개봉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기도 하고 지금은 좀 무섭기도 하다. 잘 안 되면 폐가 되는 것 같고 잘 된다고 해도 부담도 된다. 어제도 기자간담회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는데 가슴 아픈 댓글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 말을 하는 분들도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다. 시선이 바뀌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