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안
BIFF 2022 <비닐하우스> 이솔희
글 손시내 사진 이영진 / Festival / 2022-10-08

<비닐하우스>는 선한 사람들의 선택이 나쁘게 맞물리는 영화다. 비닐하우스에 사는 문정(김서형)은 소년원에 간 아들을 기다리며 돈을 모으고 있다. 그녀는 태강(양재성)의 집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한다. 태강은 시력을 잃은 노인이고, 그의 아내는 치매를 앓고 있다. 한편 문정이 상담 모임에서 만나 가까워진 순남(안소요)은 뚜렷한 거처 없이 여기저기 떠돈다. 이들은 모두 착한 사람들이지만, 각자 당면한 삶의 문제엔 이기적으로 대처한다. 인간은 왜 살고자 노력하며, 살아있는 동안 어떤 행동까지 할 수 있을까. 영화는 그처럼 처절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면서, 좀처럼 명확한 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문정의 행보를 비춘다. 그녀의 표정과 몸짓은 영화의 빈칸을 풍성하게 채운다. 충격적 사건과 불길한 음악이 <비닐하우스>만의 독특한 장르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인물의 쓸쓸한 뒷모습은 인생의 허무를 체감케 한다. <비닐하우스>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 과정을 통해 완성된 영화로, 이솔희 감독의 첫 장편이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부문에서 상영한다.

 

 

청소년영화제 상영 이력이 있다. 청소년기부터 미디어 스쿨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이후 성균관대학교,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진학하며 쭉 영화를 공부했는데.

아버지가 영화 일을 하셔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영화를 접했다. 손 뻗으면 닿는 자리에 늘 영화가 있었다. 아버지가 저녁마다 언니와 나를 앞에 두고 영화 틀어주시던 게 생각난다. 어릴 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했고, 대학교 때는 실험영화를 하고 싶어 했다. 말도 안 되는 걸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예전엔 혼자 쓰고 혼자 찍는 과정이 되게 행복했다. 머릿속에 있는 게 이미지로 실현되니까 재밌더라. 그런데 본격적으로 공부하고부터 영화는 결국 사람들과 같이하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그게 정말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졸업 작품 <그 여름의 끝>이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 <개미무덤>은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다. 한편으론 미스터리적 색채가 가미돼 있기도 한데, 어떤 관심사를 바탕으로 작업해왔나.

좋게 말하면 특별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친구들이 산수학원 다닐 때 엄마랑 곤충 채집하러 다니는 식이었다. 그게 좋았던지, 지금도 가만히 멍때리고 있으면 어린 시절만 생각난다. 유아기에서 못 벗어났달까. (웃음) 아이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고, 아이들이 결코 순수하지 않다는 점에 관심이 많았다. 어쩌면 성인보다 강력한 욕망이 있고, 절제하지 못하고,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고 내뿜는 강력한 시기잖나. 따뜻한 성장영화는 이미 많으니까 나는 다른 걸 건드리고 보여주고 싶었다. 아카데미에 가서는 다른 시도도 해봤는데, 졸업 작품 찍으려고 시나리오를 쓰고 보니 아이가 주인공이더라. 결국 돌아왔구나 싶었다.

 

<비닐하우스>는 이야기보다도 인물과 감정이 발단처럼 보이는 영화다. 시작엔 무엇이 있었나.

엄마와 외할머니의 모습.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잠깐 계셨던 적이 있다. 정말 어린 아이 같은 상태였다. 그런데 엄마가 그런 외할머니 앞에서 매일같이 당신 어머니로 인해 갖게 된 트라우마와 상처를 쏟아내시더라. 엄마는 이제야 그걸 말할 수 있게 됐는데, 정작 그때가 오니까 외할머니는 아이가 됐다. 처음엔 이 관계에 흥미를 느껴 모녀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다. 그러다 태강 캐릭터가 들어오면서 남자 노인과 여자 요양보호사기 등장하는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한편으론 노인 스릴러를 써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비닐하우스>
<비닐하우스>

영화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자기 뺨을 때리는 여자의 이미지로 대뜸 시작하는데, 이후 구구히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 비범하다.

얇은 비닐로 만들어진 집에 사는 여자를 보여주고 싶다는 게 영화의 또 다른 출발이었다.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고, 내 주변에도 있다. 그런데 말도 안 된다는 피드백을 제법 들었다. 그 허상을 지워주고 싶더라. 자기를 때리는 것도 비슷하다. 난 그게 그렇게까지 부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 또 자기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순간에 자신을 때릴 수도 있다. 내가 아는 경험이기 때문에 밀고 나갔다. 말할 때 계속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거나, 입술을 만지는 사람이 있잖나. 그 정도로 받아들여지길 바랐다. 어쩌면 조금 폭력적일 수 있지만, “이 여자는 계속 이런 행동을 할 테니 적응하시라, 왜 그런지 같이 찾아가 보자.”는 마음이었다. 주변에서는 우려도 컸다.

 

아무래도 장편 작업은 인물과 인과를 매끄럽게 다듬는 훈련의 과정을 수반하는 듯하다.

단편 찍을 때 동물적이고, 논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인물이 별다른 논리 없이 움직이고 말한다는 거다. 게다가 그게 두 시간 정도로 길어지면 관객이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생긴다고. 나 역시 그게 약점이라고 생각해서 이번 작업에서는 계속 긴장하며 말과 행동의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선생님들께서는 의심하고 설득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것 같은데, 여전히 어렵다. (웃음)

 

이유를 다 걷어내고 나면 문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어떤 인물인가.

이기적이고 불쌍하고 당찬 인물. 문정은 인간이 가진 여러 감정을 마구 드러내는 사람이다. 절제를 전혀 못 하는, 감정이 새어 나오는 캐릭터이길 원했다.

 

그간 여러 드라마에서 뚜렷한 이미지를 쌓아온 김서형 배우가 새로운 톤으로 문정을 연기했다. 기어드는 목소리, 비척대는 걸음, 수줍은 듯한 표정까지, 전에는 보지 못한 모습이다.

선배님의 독보적인 캐릭터와 이미지 때문에 나 역시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처음 만난 자리에서 선배님이 다리 다친 비둘기 구해준 얘기랑 밥 챙겨주는 동네 고양이들 얘기를 두 시간 동안 하셨다. (웃음) 순수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연출자로서 경계하는 부분을 솔직하게 말씀드리며 대화를 나눴고, 다행히 이야기가 잘 됐다. TV에서는 세팅된 얼굴을 주로 봤는데, 실제로 만났을 때 발견한 자연스러운 표정이 정말 마음에 들더라. 현장에서도, “선배님 저랑 고양이 얘기할 때 지었던 표정 기억나세요?” 하며 자연스럽게 찍으려고 했다. 감사하게도 그 과정을 재밌어하신 것 같다.

<비닐하우스>
<비닐하우스>

배우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을 텐데, 지켜보면서 어땠나.

매번 대단했다. 문정이 태강의 손톱을 깎아주는 장면이 있다. 원래는 지금처럼 감정이 드러나는 씬이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는 딱딱한 장면이었다. 촬영 전에 셋이서 어떻게 손톱을 깎을까 손을 잡고 얘기했는데, 양재성 선생님이 농담처럼 서형 선배님한테 “이 나이 돼서 내가 진짜 호강한다. 네가 손톱도 깎아주고.”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울컥하신 것 같더라. 이후에도 선배님한테 그 감정이 계속 남아있었고, 결국 감정을 이어가며 촬영을 마쳤다. 처음엔 계획에 어긋나는 감정이라고 여겼다. 근데 너무 좋더라. 덕분에 굉장히 풍부한 씬으로 완성됐다. 배우의 힘을 느낀 순간이다.

 

태강은 품위 있는 지성인이면서, 삶의 지속에 관한 고민을 던져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앞서 말한 ‘노인 스릴러’가 살아나기도 한다.

태강은 견고하게 두고 싶었다. 남자 노인과 젊은 요양보호사라는 구도 때문에 섹슈얼한 관계로 그려질 거라고 보는 의견도 있었는데, 전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진짜 멋진 사람으로 남아있길 바랐고, 결국 그런 사람이 하는 선택을 통해 인간의 나쁜 욕망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안소요 배우가 연기한 순남도 중요한 배역이다. 그 역시 장르 영화적 면모를 드러내는 인물이면서, 취약한 상태의 젊은 여성이 겪을 법한 여러 일들을 생각하게 한다.

어릴 때부터 봉사 활동하는 어머니를 따라 장애인복지관에 오래 다녔다. 그러다 보니 장애를 가진 분들이 편했다. 그런데 자라면서 장애인을 불편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 자연스레 의문이 생겼고, 장애라는 키워드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되더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나 기준이 모호하다고 느끼는 때가 많다. 어쨌든 <비닐하우스>에도 장애인 캐릭터가 주변 인물 중 하나로 있길 바랐고, 동시에 장애가 그 캐릭터의 유별난 특성이 되지 않길 원했다. 하지만 결국은 순남의 장애를 대사로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 최대한 경계하려고 했는데, 역시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다루는 건 어려운 경지란 걸 느꼈다. 이건 다른 얘기지만, 내 오랜 친구들이 영화를 보고 내가 가진 두 가지 면모가 문정과 순남에 각각 담겨있다고 하더라. (웃음)

 

듣고 보니 영화를 만든다는 건 사회의 여러 관념과 편견을 마주하는 과정 같다.

부딪치는 순간이 없었다면 절대 완성하지 못했을 거다. 시나리오 쓰고 나서, 이건 내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니까 내가 잘 아는 영화로 만들어 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도 내 영화를 완벽히 알지 못하겠다. (웃음) 시나리오 쓰고, 찍고,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며,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 같다.

 

비닐하우스는 어떻게 찾고 세팅했나. 벌판에 홀로 선 검은 요새 같은 느낌인데.

시나리오 단계에서 설정했던 비닐하우스는 문정의 친엄마가 살던 곳이고, 문정이 어린 시절에 같이 살았던 적도 있는 곳이다. 그걸 보여주는 장면들도 있었는데, 최종고가 나오면서 문정 어머니의 과거는 전부 빠졌다. 비닐하우스 내부는 잠깐 사는 게 아니라, 오랜 삶이 녹아있는 공간처럼 보이길 원했다. 처음엔 비닐하우스가 다닥다닥 모여 있는 동네를 상상했다. 하지만 여건이 쉽진 않았다.

이솔희 ⓒ이영진

화면 전반이 푸른빛의 차가운 색감을 띤다. 어두운 장면이 많고, 낮에 찍은 장면도 창백한 인상이다.

처음엔 배경을 여름으로 설정했다. 선풍기나 땀 같은 요소도 많이 집어넣었고. 그런데 아카데미 장편 과정은 보통 가을에 찍는다. (웃음) 실제로 추울 때 영화를 찍어서 그런지 본능적으로 차가운 이미지를 찾게 된 게 아닌가 싶다. 화면 관련해선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여긴다.

 

화면비는 가로로 넓은 2.35:1을 썼다. 어느 날 아침 문정 엄마의 손이 등장하는 장면처럼, 어디서 뭐가 솟아날지 모르는 미지의 두려움이 흥미롭게 구현됐다.

그런 장면이 곧잘 나온다. 화면 위나 아래에서 뭐가 나오고, 카메라가 한참 무빙한 다음에야 인물과 정보가 드러나는 식이다. 내가 그런 기교를 처음부터 원했나 보다. 시나리오에서도 티가 나거든. 숨기다가 보여주고 싶은 욕구랄까. 촬영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무언가 감추고 숨길 수 있되, 보여줬을 때는 집중이 되는 화면비를 찾으려고 했다. 아무래도 비닐하우스가 직사각형 모양이니까, 답답하고 꽉 막힌 느낌을 찾으려고도 했다.

 

불협화음을 연상케 하는 음악도 분위기 조성에 큰 몫을 한다. 무엇을 원했고, 어떻게 조율했나.

김현도 음악감독님과는 대학교 졸업 작품, 아카데미 졸업 작품을 전부 함께했다. 내가 설명을 잘하지 못하는 편인데, “뚱땅이기보다 끽깍댔으면 좋겠다.”고 해도 항상 마음에 드는 음악을 만들어주셨다. 이번에는 음악을 전혀 안 쓰고 공기 소리로 채우고 싶었다. 아마 많은 연출자들이 그런 욕심을 가질 거다. 음악에 잡아먹힐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고. 그런데 아무래도 장르가 드러날 때는 음악으로 긴장감을 조성해줄 필요가 있겠더라. 결국 음악감독님께 부탁드리고 15곡을 받았다. 영화가 막 살더라. (웃음) 그런데 집중이 좀 안 되는 느낌이라, 주신 트랙을 섞어봤다. 음악감독님께 허락받고, 감독님이 의도한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트랙을 넣어보는 식으로 조율했다.

 

첫 장편을 마무리한 소감은. 학교 밖에서는 어떤 작업을 하고 싶나.

결과적으로는 내게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웃음) 그래서 다 하고 나면 무너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욕심이 생기더라. 더 해보고 싶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배우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됐다. 연출이 정말 어렵고, 계속 누군가를 아프게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도. 공부를 많이 했다. 다음엔 기쁘고 재밌는 걸 하고 싶다. 지금 슬슬 작업하는 이야기는 다채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블랙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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